김동리(金東里, 1913년 11월 24일 ~ 1995년 6월 17일)는 한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본명은 시종(始鐘)이다. 1934년 '백로(시)', 1935년 '화랑의 후예', 1936년 '산화'가 연이어 당선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구경(究境)을 탐구하는 문학 정신을 주창하였다. 또한 운명의 문제를 폭넓게 형상화 하였고, 해방 후에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작품에 구현하고자 했다.
김동리가 쓴 소설의 주제는 대체로 '운명'이다. 이것은 곧 그가 추구한 '생명이 구경적 형식'을 그는 스스로 '운명'으로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주요작품으로는 《사반의 십자가》,《무녀도》등이 있다. 소설가 손소희가 부인이다.
만월
나는 지금 보름달 아래 서 있다. 한 깊은 사람들은 그믐달을 좋아하고, 꿈 많은 사람들은 초승달을 사랑하지만, 보름달은 뭐 싱겁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맞는다던가? 한이 깊은 사람, 꿈이 많은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더 흔할 게고, 그래서 그런지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까지, 내 자신이 싱겁고 평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예외없이 싱겁고 평범하게 마련이라면, 나는 내가 그렇게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도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새벽달의 기억은 언제나 한기와 더불어 온다. 나는 어려서 과식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하얗게 깔린 서릿발을 밟고 새벽달을 쳐다보는 것은, 으레 옷매무시도 허술한 채, 변소 걸음을 할 때였다. 그리고, 그럴 때 바라보는 새벽달은, 내가 맨발로 밟고 있는 서릿발보다도 더 차고 날카롭게 내 가슴에 와 닿곤 했었다. 따라서, 그것은 나에게 있어 달의 일종이라기보다는 서슬 푸른 비수나, 심장에 닿은 얼음 조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게다가, 나는 잠이 많아서, 내가 새벽달을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선잠이 깨었을 때다. 이것도 내가 새벽달을 사귀기 어려워하는 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새벽달보다는 초승달이 나에게는 한결 더 친할 수 있다. 개나리꽃, 복숭아꽃, 살구꽃,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이란, 그 연연하고 맑은 봄 밤의 혼령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식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
이라고 한 시구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 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이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단들 초승달로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그것은 안 되리라. 마침 어우러져 피어 있는 개나리꽃, 복숭아꽃, 벚꽃들이 아니라면, 그 연한 빛깔과 맑은 향기가 아니라면, 그 보드라운 숨결 같은 미풍이 아니라면, 초승달 혼자서야 무슨 그리 위력을 나타낼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이미 여건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초승달이 아닌가? 보름달은 이와 달라 벚꽃, 살구꽃이 어우러진 봄밤이나, 녹음과 물로 덮인 여름밤이나, 만산에 수를 놓은 가을밤이나, 천지가 눈에 싸인 겨울밤이나, 그 어느 때고 그 어디서고 거의 여건을 타지 않는다.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산도 물도 수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보름달은 온밤 있어 또한 좋다. 초승달은 저녁에만, 그믐달은 새벽에만 잠깐씩 비치다 말지만,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우리로 하여금 온밤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름달은 온밤을 꽉 차게 지켜 줄 뿐 아니라, 제 자신 한 쪽도 귀도 떨어지지 않고, 한쪽 모서리도 이울지 않은 꽉 찬 얼굴인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좋은 시간은 짧을수록 값지며, 덜 찬 것은 더 차기를 앞에 두었으니 더욱 귀하지 않으냐고 하지만, 필경 이것은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행운이 비운을 낳고 비운이 행운을 낳는다고 해서, 행운보다 비운을 원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초승달이나 그믐달같이 불완전한 것, 단편적인 것, 나아가서는 첨단적이며 야박한 것 따위들에 만족할 수는 없다.
나는 보름달의 꽉 차고 온전한 둥근 얼굴에서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도 불완전하며 단편적이며 말초적인 것을 높이 사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기발하고 예리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성과, 거기서 빚어지는 무게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에 견줄 수는 없으리라. 사람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의 소유자를 나는 좋아한다. 흰자위가 많고 동자가 뱅뱅 도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절로 내 마음을 무장하게 된다. 보름달같이 맑고 둥근 눈동자가 눈 한가운데 그득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 누구를 바라볼 때나 무슨 물건을 살필 때, 눈동자를 자꾸 굴리거나 시선이 자꾸 옆으로 비껴지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편견도 없이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 기발하기보다는 정대한 사람, 나는 이러한 사람을 깊이 믿으며 존경하는 것이다.
보름달은 지금 바야흐로 하늘 가운데 와 있다. 천심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간은 더욱 길며 여유 있게 느껴지는 것이 또한 보름달의 미덕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다릿목 정자까지 더 거닐며 많은 시간을 보름달과 사귀고자 한다.
수목송
돌과 흙과 쇠 같은 따위들은 그 깸 없는 깊은 잠에 주검처럼 굳어진 자들이라, 일깨워 우리와 사귈 수 없고, 조수와 충류들은 생로병사에 사람의 아픈 바를 지니되, 그 신령한 바를 갖추지 못하니, 또한 더불어 살기에 나를 기를 것이 없다. 수목은 이와 달라, 돌, 흙, 쇠같이 깸 없는 잠으로 굳어진 자도 아니요, 꽃으로 잎으로 또는 열매로 그 생명의 다양한 변화가 사람의 얼굴에서처럼 발랄하되, 그 생로병사에 신음없이 의젓함은 조수, 충류에서 멀다. 깨어 있으되 소란하지 않고, 삶을 누리되 구차하지 않음이 사람에서는 지인달사의 풍모라고나 할까?
우리가 수목에서 가장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 장수라 할지니, 느티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녹나무, 회화나무, 편백나무 따위들은 그 수명이 천 년에 이르는 자 많고, 떡갈나무, 이깔나무, 벚나무, 감탕나무 따위들은 그 연연하게 물들어 화사하기 꽃과 같은 잎을 달고도 견디기를 오히려 5백 년에서 지난다. 동양의 역사 소설인 "삼국지"에 보면, 주인공 유비의 고향은 탁현인데, 그의 집 앞에 천 년 묵은 뽕나무가 누각처럼 펼쳐 서 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을 누상촌이라 불렀다 하며, 또 다른 주인공의 하나인 조조의 죽음을 재촉한 이야기에도 천 년 넘은 배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뽕나무, 배나무도 다 각각 천 년의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뿐 아니라, 경주 불국사의 대웅전과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의 어느 기둥들은 각각 천 년 된 싸리나무와 박달나무라고 전해지고, 이 밖에도 고사 거찰에 대개 천 년 넘은 잡목 기둥이 한 두 개씩 들어 있다고, 그 절의 승려들로부터 자랑하는 말을 듣는다. 이로써 볼진대, 천 년을 사는 나무의 이름들은 따로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수목이 이와 같이 사람이나 조수, 충류에 비겨 그 유장한 세월을 누림은, 그 뿌리를 깊이 땅속에 묻고 그 잎으로 직접 태양을 흡수하게 때문이리라. 따라서, 수목은 대지와 태양을 직접 먹이로 삼고 살아가는 유기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할 때 맨 먼저 수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또한 수목에서 그 장수와 더불어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청춘이라 하겠다. 수목은 어린 나무나 늙은 나무나 잎을 달고 꽃을 피우는 이상 언제나 청춘이다. 그 잎은 푸르고 그 꽃은 붉은 것이 보통이다. 붉지 않으면 희거나 누르거나 푸르거나 하더라도, 꽃이란 꽃은 다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이렇게 청청한 잎과,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꽃을 가진 모든 수목은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와 위안을 준다. 우리가 고향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라든지 가까운 육친의 모습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연로해서 세상을 떠나셨거나 했을 땐 어버이 대신 형제나 또는 다른 친척, 친지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를 대신할 형제나 친척마저 타처로 떠나 버렸을 때, 아아, 그 때 고향을 지키는 얼굴은 마을 앞에 서 있는 늙은 팽나무나, 마을 뒤에 서 있는 묵은 느티나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예로부터 고향산천이란 말이 있고, 또 사실 산과 내야 나무보다도 더 오래고 더 믿을 만한 고향이기도 하지만, 마을 앞뒤의 늙은 팽나무나 묵은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어느 낯선 마을 앞에 늙은 회나무와 느티나무가 몇 그루 멋지게 가지를 벌리고 서 있으면 덮어놓고 그 동네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러워 보이며, 무언지 깊은 유서나 전설이라도 깃들인 것같이 느껴진다. 만약, 그 나무 곁에 주막이라도 있다면 곧 뛰어내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야릇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수목은 산야나 벽지에만 흔한 것이 아니라, 도회와 읍, 시의 거리 거리, 공청과 여사와 민가의 뜰마다 번성하지 않는 데가 없다. 이렇게 현대 같은 문명의 폭위에도 배척받지 않고, 도시의 시가와 청사, 여염집 마당에 번영, 무생하여 사람과 더불어 공존, 교환함은, 수목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그윽한 즐거움과 기쁨과 희망과 이익을 줄지언정, 우리의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수목이 없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 기쁨과 위안과 희망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서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수목에서 받는 이 형언 할 수 없는 그윽한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과, 그리고 마음의 안정은 어디서 연유하여 오는 것일까? 그것은 흡사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신에게서 받는 그것과도 같다. 수목은, 아니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 성격이 다른 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흰나비
어느 날 대낮에 흰나비 한 쌍이 난데없이 뜰로 날아 들어왔다. 그리하여 하얀 박꽃이 번져 나가듯 뜰 안을 펄펄펄 날아다녔다. 그 때 집 안은 절간 같은 고요에 잠겨 있었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은 금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뜰에는 이미 녹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본래 수풀을 좋아하여 내가 집을 가진다면, 한 백 평 가량은 울창한 수풀이 우거지게 하려고 생각하여 왔다. 위는 나뭇잎이 어우러져 하늘을 가리고, 아래는 찔레와 칡덩굴이 엉켜서, 그 속이 천고의 비밀을 감춘 듯한 그러한 수풀을 집 안에다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래부터 그렇게 유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뜰을 장만하고 집을 이룩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수풀을 가진 집이라고는 여지껏 본 적도 없었다. 아무리 돈이 있대도 그러한 수풀을 집 안에 가지기란 수십 년의 적공을 요할 터인데, 50이 가깝도록 이 모양인 나에게 그러한 꿈이 실현되기란, 참으로 너무나 꿈 같은 이야기였다.
그렇건만, 나는 아직도 그러한 나의 꿈을 포기한 적은 없다(나에게는 이밖에도 이러한 꿈이 몇 가지 있다.). 이것은 엉뚱하고 데퉁스럽게 낙천적인 나의 성격에 기인하는 바 크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남이 상상할 수도 없는 희망과 자신과 자부가 넘치고 있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러한 막연한 희망과 자신들이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금년 들어 나는 우연히 그러한 나의 꿈의 한 조각이 이루어진 듯한 집을 하나 얻어들게 되었다. 앞뜰이 넓은데다 나무가 꽤 많다. 가위 거목이라고도 일컬을 만한 은행나무가 네 그루요, 거의 그만한 크기의 잣나무와 그보다는 좀 작으나 정원목으로서는 보기 드물 만큼 큰 편인 단풍나무가 네댓, 그리고 역시 그러한 라일락이 몇 그루, 이 밖에 소나무. 향나무. 밤나무. 매화나무, 등나무, 포도, 찔레, 개나리들도 의외로 어우러져 있었다. 이 나무들이 모두 그렇게 화려한 꽃을 달지는 못하지만, 잎들은 심히 무성하여 그 푸르름이 바야흐로 성하 염천을 물리치리만큼 뜰에 가득하다. 그리하여, 진실로 오랫동안 수풀에 주려 온 나의 두 눈에 싱그러운 기쁨과 위안을 던져 주었다.
나는 온종일 대청에 나와 앉아 뜰을 내다보고 있다. 대낮은 고요하다. 복중이 돼서 그런지 숨이 막힐 듯한 고요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나무 그늘은 더욱 짙다. 뜰에 가득 찬 푸르름이 햇빛을 전부 강물로 만든다. 나는 끄덕끄덕 졸면서도 그냥 뜰에 가득 찬 푸르름을 안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어느 순간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흰나비 한 쌍이 난데없이 날아든 것은... 뜰에 가득 찬 녹음이요, 숨막힐 듯한 고요 속이었기 때문에 흰나비의 흰 빛깔은 더욱 눈에 띄었고, 그것은 마치 어떤 '의미'에 도전하는 상징과도 같은 아름다움이었던 것이다.
흰 햇빛은 독수리 날개를 꺾고
이것은 내가 20여 년 전에 쓴 "표박 행로음"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가장 순수한(혹은 내적인) 경험으로써, 내가 가장 희다고 느낀 것은, 이 시구의 그 '독수리 날개를 꺾은' 햇빛이 아니었을까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부터 '도의 광휘'는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흰빛이거니 생각하여 왔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태고로부터 흰 빛깔을 숭상하여 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옷 빛깔을 보아도 곧 알 수 있는 일이다. 요즘의 양복은 외래복이니까 별도지만, 우리의 재래복은 신통하리만큼 일색으로 희다. 무색옷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린애들이나 그 밖에 특수한 경우에만 착용되는 것이고, 정상 상태는 언제나 흰 빛깔이다. 여기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최초에 흰 빛깔을 택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째서 흰 빛깔이 택해졌는가? 흰 빛깔엔 어떠한 뜻이 있는가? 흰 빛깔이 우연히 택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설령, 우연히 택해진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모든 사람에 의하여 오랫동안 지지되고 계승된 데는 우연 이상의 필연성을 인정해야 한다. 최남선 씨의 "고사통" 첫머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백'민. 아득한 옛날에 대륙의 극오부를 출발하여 동으로 이동하는 인간의 일 집단이 있으니, 그의 향하는 바는 일출처의 진이라는 곳이었다. 그네는 스스로 '붉은'이라 하니 신명의 자손이란 의미요, 후에 한자로 '붉'을 '백'이라 쓰고 백을 다시 '맥', 또 '맥'으로 고쳤다. 백민은 천을 신계로 하고, 태양을 천주로 숭배하고, 대산을 인간과 천상과의 교통로로 생각하고, 천주는 하계를 감시하다가 필요할 때에는 그 아드님을 강림시키는 것을 믿는 백성이었다. 동으로 전진하는 동안에 여러 곳에 천산 또 신산을 정하고 한참씩 머무르다가 마지막 새벽에 태양을 맞이하는 곳에 있는 거룩한 대산에 이르러 천주의 신도가 여기 있다 하고서 그 주변에 안주할 땅을 이룩하고, 여기저기'불'이란 것을 만들고 있었다. '불'은 한편 '부유' 또 '부여'라고도 하여 인민이 많이 모여서 질서 있게 사는 바닥을 일컫는 말이었다. '불'의 큰 것에는 '나라'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최초의 흰 빛깔을 택한 것은 어느 개인이기보다 '집단'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집단은 '태양을 천주로 숭배했다'고 하니 광명을 신명시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흰 빛깔은 신명의 빛깔이요, 도의 빛깔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유지하기 어려운 흰 빛깔이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며 계승되어 온 소이인 것이다.
흰 빛깔이 밝음을 뜻한다면 검정 빛깔은 어둠을 뜻한다. 어둠과 밝음이 상극적인 것처럼 흰빛과 검은빛도 빛깔의 양극이다. 흰 빛깔이 모든 빛깔의 바탕이라면 검정은 모든 빛깔의 말살을 뜻한다. 흰빛이 모든 빛깔의 모체라면 검정은 모든 빛깔의 죽음을 가리킨다. 흰 빛깔이 삶이라면 검정빛은 죽음이요, 흰 빛깔이 희망이라면 검정빛은 절망이요, 흰 빛깔이 순결이라면 검정빛은 오탁의 극이다.
우리 조상은 왜 '붉은'에서 신을 발견하고'도'를 느꼈을까? 이것은 그 성격이요 생리요 운명이었으리라. '붉은'은 '도'의 이름이요, '백'은 그 빛깔이다. 따라서 흰 빛깔을 숭상하는 한민족은, 그 성격과 그 생리와 그 운명에 있어, 광명의 민족이요, 순결의 민족이요, 희망의 민족이요, 명랑의 민족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위에서 '나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나는 막연한 희망과 자신에 차 있다고 말했지만, 그러고 보면 이것은 내 핏줄 속에 조상의 '붉은'이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저 뜰에 박꽃이 번져 나가듯 펄펄펄 날고 있는 흰나비야말로 내 젊은 날의 시구 '흰 햇빛은 독수리 날개를 꺾고'의 '흰 햇빛'의 한 조각 또는 그 '독수리 날개'의 한 부스러기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바도 아득한 옛날 우리의 조상이 처음으로 외치던 '붉은'의 한 조각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내 뜰에는 강물을 퍼붓듯한 눈부신 햇빛과 푸른 나무 그늘이 대낮의 고요를 겨루고 있다. 흰나비, 나의 손님이여! 너를 맞이하는 나의 미소 속에 너는 마음껏 나의 뜰에서 날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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