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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556 호
단기 4342. 2. 3 (음력 1. 9)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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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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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계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상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이 올해로 9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삶과 문학의 존엄성과 창조적 치열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신인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투고 자격은 문단 등단 이력이 없는 ‘신인’에 한하며,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고료와 상패를 드리고 기성문인으로 대우합니다. 원고는 우편으로만 접수하며, E-Mail 접수는 받지 않습니다.
■ 모집부문 # 시 10편 내외 #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1편 이상 # 문학평론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1편 이상
■ 마감 : 2009년 3월 31일까지(소인분까지)
■ 발표 : 본지 2009년 여름호에 당선작 게재
■ 시상내역 : 각 부문 당선작 1편(시 50만원, 소설·평론 각 100만원)
■ 보낼 곳 : 서울 마포구 용강동 50-1 용현빌딩 304호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회 ■ 연락처 : 전화 02)313-1486 / 팩시밀리 02)392-1838
■ 기타 : 겉봉에 붉은 글씨로 ‘신인상 공모 투고작(부문)’을 명기하시기 바랍니다. 채택되지 못한 작품은 반송해 드리지 않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21-070 서울시 마포구 용강동 50-1번지 3층 304호 (02)313-1486~7, minjak1118@hanmail.net http://www.minja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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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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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초래시키지 않는 생각,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공상이다.(엘리자 램브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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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말글 / 창작도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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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짐승이름
솟대에 올라앉은 새는 오리다. 오리는 물과 뭍을, 하늘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살아가기에 독특한 상징을 얻은 것인가. 한마디로 오리는 물새다. 물은 농사를 짓는 데 삶의 결정적인 열쇠였다. 시기에 알맞은 물이 있어야 풍년을 기약할 수도, 나라 힘을 기를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가 솟대에서처럼 오리는 다분히 물 신앙의 상징처럼 쓰였을 것이다.
오리는 다가올 재해를 미리 막는 영험한 구실을 하기도 한다. 풍수가들이 이르는바, 배가 떠가는 행주형(行舟形)의 땅에서라면, 불안정한 배에 안정을 더하고자 배의 돛대에 값하는 솟대를 세우는 일이 가끔 있었다.
불이 나도 그러하다. 또 오리는 해독력이 아주 강하다. 시궁창에서도 썩은 먹이를 찾아 먹으면서 살아가기에 사람들은 오리 고기를 즐겨 먹는다. 불포화 지방이기도 해서 그런다지만.
옛글에 오리는 올히(두시언해)였다. 조선관역어에는 아계(我係)였다. 한마디로 위를 뜻하는 ‘올’에 접미사 ‘-이’가 녹아붙어 이루어진 말로 보인다. ‘오라버니, 올벼’의 ‘올’이 그러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올-옫-옷-웃-욷-우게’의 낱말겨레를 떠올릴 수 있기에 그러하다. 방언으로 위(上)를, 옷을 우게라고도 이르는바, 이것이 바로 아가(올기)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압록강을 얄루장이라 한다. 여기 얄루도 올과 무관하지 아니하다. 저 높은 하늘을 바라 솟대만큼 목이 길었느니.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배식
학교나 회사 식당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용어가 '배식구' '퇴식구'다. 식당에 있는 표지판을 보면 무슨 말인지 짐작할 수 있지만, 단어 자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다. 좀 길어져도 '배식구(配食口)'는 '밥 타는 곳', '퇴식구(退食口)'는 '식기 반납하는 곳' 또는 '식기 반납' 등으로 쉽게 고쳐 쓸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단체가 공항에서 탑승 대기자를 대상으로 기내 좌석에 붙은 국·한문 혼용 안내문구 '救杳衣(구명동의)는 座席(좌석) 밑에 있습니다'에 대한 이해 정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55%, 일본인의 40%, 중국인의 66%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절반 이상이 한글이 있음에도 이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안내문구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한자어로 돼 있다는 얘기다. 잘못 사용하면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키는 의약품의 포장지에도 '경구 투여 금지'라는 설명이 적힌 것이 있다.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이 이토록 어려운 한자어로 돼 있으니 애들은 물론 어른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1992년 정부가 순화 대상 용어 편람을 내놓고, 각 기관이 일본식 한자어나 어려운 한자어로 된 행정·법률용어 등을 쉬운 말로 고쳐 쓰는 운동을 펴고 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배식구·퇴식구 역시 식품위생법에 나오는 용어다. 어려운 한자어는 권위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배식구·퇴식구처럼 마음만 먹으면 쉬운 말로 고쳐 쓸 수 있는 단어가 주변에 많다. 어려운 한자어는 현재의 한글 세대와 맞지 않는다.
담배를 피다
사람들 간의 대화나 신문·잡지·책 등에서 '담배를 피다''불을 피다''거드름을 피다''바람을 피다' 등의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맞춤법에 어긋난다. '담배를 피우다''불을 피우다''거드름을 피우다''바람을 피우다' 등으로 써야 옳다.
'피다'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 자동사다. 그러므로 '꽃이 활짝 피었다/ 불이 잘 피지 않는다/ 얼굴이 피고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검버섯이 드문드문 피었다/ 형편이 피었다'처럼 쓰인다. 따라서 '담배를 피다' 등처럼 목적어와 함께 쓰는 것은 문법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담배를 피다'가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표준국어대사전이 발간되기 이전에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 '피다'를 '피우다'의 준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모두 '피다'를 '피우다'의 잘못으로 바로잡았다.
'잔이 비다/ 잔을 비우다, 잠이 깨다/ 잠을 깨우다, 날이 새다/ 날을 새우다' 등도 마찬가지로 구분해 써야 한다. 최근의 맞춤법에서는 준말을 많이 허용하고 있는데 왜 '피다'는 허용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쓰레기를 태니(태우니), 밤을 새어서라도(새워서라도), 그릇을 금세 비었다(비웠다)' 등처럼 자동사 '태다, 새다, 비다' 등은 타동사로 쓰일 경우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렇듯 다른 자동사들은 타동사처럼 쓰일 경우 자연스럽지 못한데, 널리 쓰인다고 '피다'만 예외로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담배를 '피지' 말고 '피워야'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경사가 가파라서
'강을 끼고 비스듬히 올라가니 갑자기 경사가 가파라진다. 그래도 산 정상은 그리 멀어 보이지는 않는다.' '암스테르담 시가는 어딜 가나 비좁은 느낌을 준다. 건물들도 계단이 가파라서 오르내리기에 위험하다.'
예문처럼 '가파라진다'나 '가파라서'라고 쓰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잘못 활용한 것이다. '가팔라진다'와 '가팔라서'가 옳다. 기본형에 '르'가 붙는 용언들은 어떤 게 바른 형태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세 가지로 나눠보자.
우선 규칙적으로 활용하는 것들이다. 들르다, 치르다 등이 그 예인데 이들은 '-아/-어' 앞에서 매개모음인 '으'가 항상 탈락한다. 예를 들면 '들르+어'에서 '으'가 탈락해 '들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들려'로 잘못 쓰는 사람도 많다. 글머리의 예문은 '가파르다'를 규칙 용언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잘못 쓴 것이다.
둘째는 르 불규칙 용언으로 '르'가 떨어져 나가고 'ㄹㄹ'이 덧생기는 것이다. 흐르다, 오르다 ,부르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흐르+어'에서 '르'가 탈락하고 'ㄹㄹ'이 덧생겨 '흘러'가 되는 것과 같은 경우다. '가파르다'도 르 불규칙 용언이므로 '가파르+아'에서 '르'가 탈락하고 'ㄹㄹ'이 덧생겨 '가팔라'가 된다.
셋째는 러 불규칙 용언인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푸르다, 누르다, 이르다(至) 등이다. 이들은 뒤에 붙는 '-어'가 '-러'로 바뀌게 된다. 즉 '푸르+어'에서 '-어'가 '-러'로 바뀌어 '푸르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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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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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 6 - 류인혜
죽음같이 쓸쓸한 날은 물방울이 되어 구른다 소리마저 젖어 가라앉은 목청을 베고 누워 눈을 닫아 잠들고 싶다
푸른 물이 흘러가는 꿈을 꾸며 자라나는 잎새 함께 흐르고 싶은 그리움으로 자꾸만 옆으로 눕는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나는가 고개를 꼿꼿이 세워 살아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슬픔의 무게로 침묵하지 말아 수시로 물을 뿌려 목숨을 키우니 일으켜 세우면 일어나라
물뿌리개 높이 들어 충분히 젖어 들면 돋아난 날갯죽지가 펴지도록 하라
일어나는 떨림으로 다시는 쓸쓸하지 않아 사는 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 하늘로 날아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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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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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며, 생각하며 -침묵과 인내에게
박상륜
침묵의 끈 이내여, 인내의 끈 침묵이여 한 세상 여권인 양 천년 푸른 상생(相生)의 바람, 말없는 그 말씀 다독이며 이승 삶을 여민다.
침묵과 인내로 인생이란 두 수레바퀴 묵묵히 견디어 흘러 온 강심(江心)마냥 아득한 피안 저 너머 행복의 꽃은 피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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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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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덮고 창을 여니 강호에 배 떠 있다 왕래 백구는 무슨 뜻 먹었는고 앗구려 공명도 말고 너를 좇아 놀리라
[지은이]
정 온(鄭蘊)1569~1641.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 이괄의 난 때에는 이조참의로서 임금을 모시고 피난했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이조참판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척화를 부르짖었으나, 화의가 이루어지자 자결하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덕유산으로 들어가 띠집을 짓고 탄식하다가 5년만에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말뜻]
왕래백구(往來白鷗) : 오락가락하는 갈매기들. 앗구려 : 감탄의 뜻을 가진 '아서라.'
[감상]
읽던 책을 덮고 창문을 여니, 앞내에 배가 둥실 떠 있구나! 그 위를 오락가락하며 날고 있는 갈매기들은 무슨 뜻을 품고 있느냐. 아니다, 그런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무심히 자연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부귀도 공명도 다 말고, 나는 너를 좇아 마음을 비우고 한가로이 놀겠노라. 당시로서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를 다룬 극히 통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표현 형식에 만만치 않은 신선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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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동서양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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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지에는 평안이 없다 - 양생주
나의 삶은 끝이 있으나 앎은 끝이 없다. 유한한 것으로써 무한한 것을 따르면 위태롭다. 그래서 앎을 추구하는 사람은 위태로울 뿐이다. 선을 행하더라도 명예를 좇지 말고, 악을 행하여 형벌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 자연 그대로를 본받아 떳떳하게 살면* 몸을 보존하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다. 또한 부모를 공양하고 주어진 생명을 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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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유한한 것이다. 그러나 지의 작용은 한이 없다. 생명의 이러한 유한성을 도외시하고, 지가 이끄는 대로 끊임없이 추구하다 보면 평안한 날이 없다. 우리는 이러한 이치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지식에 속박되어 있다. 우리는 지식의 작용으로 선과 악을 말한다. 그러나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하는 것도 실상은 명예나 형벌을 규준으로 한 평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같은 선악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연을 본받아 그에 순응해야 한다. 그래야 편안하고 충실한 생애를 보낼 수 있다.
* 자연 그대로.... 살면: 원문은 연독이위경이다. 여기서 독은 등의 중간에 뻗은 혈관 또는 등 뒤 옷의 솔기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중간의 바른 것', '중정'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경은 법도 또는 기준을 가리킨다. 즉 '올바른 자연의 법칙 그대로'를 뜻하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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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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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흑구(1909~1979)
수필가. 소설가. 평양 출생. 미국 템플 대학 신문학과 수료 포항 수산 대학 교수 역임. 30년대에 월간지 '대평양', 문예지 '백광'을 창간. 주재하면서 단편 소설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한 바 있으며 해방 후에는 주로 수필에 전념하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정 생활의 애틋함을 그렸다.
옥수수
아내가 거리에 나갔다가 옥수수 두 개를 사 왔다. 하나씩 먹자는 뜻이다. 그러나 옥수수 자루가 얼마나 큰지 반 토막도 다 못 먹겠다. 한뼘 반도 넘으니 양적으로 한 자나 되는 것 같다. 요사이 TV에서 전하던 개량종 수원19나 20 호인 거 같다. 그리고 멀리 강원도 산간 지방의 화전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옥수수를 퍽이나 좋아했다. 키가 2미터 이상이나 자라난 옥수수밭이 길 양쪽에 서 있는 좁은 길로 혼자서 지나갈 때에는 무서운 짐승이나 뛰어나올 것 같아서 머리털이 오싹 일어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옥수수의 이파리들은 야자수의 이파리처럼 길게 뻗어 나무의 양쪽이 늘어져서 춤을 추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병사들이 칼을 빼들고 열을 지어서 몰려나오는 것 같은 무서움도 주었다. 키가 큰 옥수수나무들이 강한 비바람에 줄기가 휘어서 절을 하는 모양을 하였다가도 향일성이 강한 탓으로 다시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똑바로 쳐들었다.
나의 고향, 평양의 근방에는 옥수수를 전문으로 농사짓는 동리가 많았다. 대동강을 건너 동쪽에 있는 사동과 미림이 그 대표적이고, 밭이 많은 이북에서는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옥수수를 심어서 식량을 보탰다. 사동에는 내 누님이 살고 있어서 방학 때이면 으레 놀러 갔고, 그 곳의 옥수수는 좀 일찍여서 여름 방학 달인 8월이 한창이었다. 국민 학교 시절부터 나는 옥수수를 많이 먹었고, 또한 좋아했다. 옥수수의 나무는 키가 크고, 후리후리해서 멋이 있지만, 야자 이파리같이 길게 늘어진 것도 보기가 좋고, 또한 그 열매야말로 어느 열매와도 비길 수 없으리만큼 아름답고, 탐스럽고, 우아했다. 푸른 식물성 섬유의 천 조박지 같은 껍질로 싸여 있는 열매를 한 갈피 한 갈피 벗기어 가면, 마지막 속잎은 희고 깨끗한 모시 속옷과 같이 씌워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것마저 벗기면 파릿하고 흰 수염들이 열매를 보호하는 듯이 감싸고, 품어 주고 있었다. 흰 명주실과 같은 수염들을 곱게 뜯어내면,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순스럽고, 탐스러운 옥수수알들이 곱게 줄을 지어서, 지붕 위에 있는 기왓골같이, 가지런히 박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황홀할 지경으로 아름다웠다. 처녀의 빨간 입술 속에서 진주알같이 빛나는 이빨보다도 더 빛나고 자연스러웠다. 하느님의 섭리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하나의 신기한 조각이라고 생각하였다.
탐스러운 옥수수를 쪄서 먹어 보면 아무런 자극성이 없이 담백하면서도, 달고, 고소하고, 향긋하였다. 한알 한알 따먹어도 맛이 있고, 누에 모양으로 길다랗게 뜯거나, 이빨로 마구 뜯어 씹어도 그 맛은 한없이 달고, 고소하고, 향긋하였다. 열 자루를 그냥 계속해서 뜯어 치우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옥수수를 가공해서 먹는 방법이 많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옥수수묵이다. 옥수수알을 맷돌에 갈아서 된죽을 쑤고, 찬 우물물을 자배기에 채운 다음, 여러 개의 잔 구멍이 뚫린 바가지로 된죽을 찬 물 속으로 뚝뚝 흘러내려서 식히는 방법이다. 이것을 옥수수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올챙이같이 생겼다 해서 올챙이묵이라고도 한다.
옥수수가 많이 생산되는 미국에서는 이 담백한 옥수수를 여러 가지로 가공해서 식품으로 많이 사용한다. 옥수숫가루를 비롯해서, 설탕, 전분, 과자 등과, 튀김과 야채 기름 등 많은 종류의 식품을 가공한다. 그러고도 남는 옥수수는 소, 돼지의 가축 사료로 쓰이고, 그러고도 또 남는 것은 외국으로 수출하는 형편이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순한 이들의 말을 들으면, 북한에서 살고 있는 서민들은 주식으로 옥수수를 배급받아서 살아가기 마련이고, 이것도 부족하게 주어서 수수죽을 쑤어 먹는 형편이라고 한다. 아무리 옥수수가 맛이 좋다고 해도 매일같이 주식을 삼아 먹어야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서 죽을 쑤어서 먹어야 한다니, 그 어렵고 슬픈 사정은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식생활 사정이 이러하다니, 간장, 고추장은 어떻게 담가 먹으며, 채소나 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을 것이 뻔한 노릇이다. 우리 속담에 '굶는 것같이 서러운 일이 없다.'고 했는데, 북한에서는 무슨 까닭으로 백성들을 굶겨야 하나.
아내가 사 갖고 온 강원도산 수원 19호의 큰 옥수수 자루를 들고, 한알 한알 뜯어서 씹으며, 옛 추억에 잠겨 본다. 야자나무 수풀과 같이 우거져 서 있던 옥수수나무들의 긴 이파리들이 너울너울 팔들을 벌리고 춤을 출 때면, 손가락을 벌린 듯이 높이 피어난 옥수수꽃의 꼭대기로 수많은 풍뎅이들이 소리를 내며 날아다녔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옥수수의 시원한 그늘 속에 뚫린 길을 혼자서 20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다니던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풍경화와 같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웠던 옛 시절을 되씹는 듯이 옥수수의 반 토막을 맛이 있게 뜯어먹다가 오늘의 고향을 생각하면서 그만 내어놓고 만다.
석류
내 책상 위에는 몇 날 전부터, 석류 한 개가 놓여 있다. 큰 사과만한 크기에, 그 빛깔은 홍옥과 비슷하지만, 그 모양은 사과와는 반대로 위쪽이 빠르고 돈주머니 모양으로 머리 끝에 주름이 잡혀져 있다. 보석을 꽉 채워 넣고 붙들어매 놓은 것 같다. 아닌게아니라, 작은 꿀단지가 깨어진 것같이 금이 비끼어 터진 굵은 선 속에는 무엇인가 보석같이 빤짝빤짝 빛나는 것이 보인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석류의 모양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본다. 매끈한 사과와는 달리 무엇에 매를 맞았는지 혹과 같은 것이 울툭불툭한 겉모양 그 속에는 정녕코 금은보화가 꽉 채워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나는 아까워서 아까워서 석류 한 개를 놓고 매일같이 바라만 보고 있다. 행여, 금이 나서 터진 그 석을 쪼개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석 주머니 같은 이 석류 한 기를 구하기에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나. 나는 그것이 꽃 피는 봄부터 비바람이 부는 여름 장마철 속에서도, 또한 새맑은 가을 하늘에 추석달이 기울 때까지도, 얼마나 오랜 나날을 그리운 정으로 보고 싶고 갖고 싶은 꿈을 꾸었었나.
"할머님, 추석도 지나고 했으니, 이젠 그 석류 하나 따 주세요."
나는 석류나무집 할머니에게 이렇게 애걸했으나, 할머니는 또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니 약에 쓴다면서 벌써 따아? 찬서리를 맞고, 터져서 금이 나야 약이 되는 거지! 가래도 잘 삭고, 오랜 해수병엔 특효지. 몇 날만 더 참아요."
이렇게 한 해의 철이 다 기울어져서야, 끝내 구해 온 귀한 석류 한 개가 내 책상 위에, 내 눈앞에 고요히 놓여 있다. 석류나무는 소아시아가 원산으로 살구나무보다는 키가 작은 관상용의 낙엽 교목으로서, 이상한 꽃과 열매를 맺는 특색을 가진 나무다. 가지가 꾸불꾸불하고, 터실터실하고, 대추나무같이 삐죽삐죽한 가지 같은 메마른 작은 가지들이 이파리도 없이 여기저기 돋아 나온다. 석류나무는 물론 목재도 될 수 없지마는, 과실을 맺는 나무치고는 작은 편에 들고, 꽃도 열매도 많이 맺지 못한다. 그러나 그 꽃은 양귀비꽃같이 붉고, 아름답고, 그 꽃받침은 무화과와 같이 살지 누두형으로 되어 있으며, 나중엔 석류의 귀한 과피가 된다. 봄이 지나고, 장미의 계절이라는 6월이 되면 석류나무는 정열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장구같이 생긴 꽃받침 속에 선홍의 꽃잎으로 꽉꽉 채워서 그 둘레를 오붓하게 피어나온다. 꽃도 되고 또한 열매도 되는 이 육중한 꽃은 7월의 장마로 반 이상이 땅에 떨어져 어린애들의 손가락에 골무 노릇을 하기도 한다.
10월이 지나고 하늘이 코발트색으로 높아 가면, 주먹 같은 빨간 석류 열매들이 검푸른 이파리들 속에서 뻔쩍뻔쩍 빛나는 왕관을 쓴 듯이 빛나고 있다. 석류의 머리 쪽은 별과 같이 삐죽삐죽한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고, 그것들이 가을의 된서리에 쭈그러지면 돈주머니를 잘라맨 듯한 모양을 한다. 8월의 태양과 뜨거운 더위에서 정열을 다 뿜어 내지 못했는지 석류의 조롱박 같은 얼굴 위에는 매를 맞아서 부어오른 것같이 혹이 나와서 울툭불툭 매끄럽지가 않다. 나는 미국의 이미지스트인 여류 시인 힐다 둘리틀의(더위)라는 시의 몇 구절을 연상해 본다.
더위
이 짙은 공기를 통해서 열매가 떨어질 수 있을까... 배들의 끝들을 뭉툭하게, 또한 포도알들을 동그랗게, 치받쳐 올리는 이 더위 속으로 열매가 떨어질 수 있을까.
둘리틀의 (더위)라는 시를 읽으면, 모든 열매가 8월의 치받치는 더위 속에서 뭉툭하고 매끈하게 된다고 그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석류는 열매 속에 무수한 보물의 정열과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어서 그 겉모양까지가 울툭불툭 튀어나오다 못해서 찢어지고, 깨어져서 크게 금이 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된다.
나는 석류를 손에 들고 깨어져 금이 난 그 속을 들여다보다가, 그 자수정 같고, 금강석 같이 빛나는 속을 쪼개 본다. 벌집같이 오몽고몽한 갈피 속마다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석류씨(알)들이 꽉 차 있다. 그 수정 같고, 금강석 같은 석류알을 하나 떼어서 입에다 물고 혀로 굴려 보면서 주요한 씨의 시집 "아름다운 새벽"에 실렸던 "앵두"의 일절을 생각나는 대로 한 번 되새겨본다.
5월에 무르익은 앵두 한 알, 입에 넣고 터질까 봐 그냥 혀로만 굴려 봅니다.
입에 넣고, 혀로 굴려 보고, 씹어 보는 그 맛, 입 속, 가슴 속, 머릿속까지 시원하고, 새틋한 그 맛. 온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가을의 된서리 속에서 과피가 터질 때까지 정열을 간직하고, 또 터져나온 그 기개의 참되고, 아름다운 결정이여. 나는 책상 위에 쪼개 놓은 석류알들을 두루두루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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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 / 문화 / 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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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고집퉁이 황진사
우리나라 역사에, 어쩌다가 고집세기로 후세에 이름난 분이 있었으니, 황순승이라는 어엿한 성명과, 진사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있건만, 세간에서 황고집으로 통하게 된 어른의 이야기다. 성질이 워낙 강직해서 한번 말한 것은 꼭 준행하고 조금도 굽힐 줄을 몰랐던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모두 황고집이라고들 불렀다.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싫지 않게 여겨, 집암이라는 호를 지어 쓰더라고 하니 그의 인품을 미루어 알 만하다.
평야 인현리에 살았는데, 세간에서 외성의 황씨라면 모두가 알아주는 그런 가문의 출신이다. 한번은 동네 앞 개울에 다리를 놓는데 또 한번 황진사의 고집이 활동하였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장마가 져서 으레 홍수가 지는 때문에, 여간 완구하게 놓은 다리가 아니면 배겨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여름 한철은 아예 개울에 다리 없이 첨벙거리고 건너 다니다가, 늦장마까지 염려가 가신 뒤에야, 온 동네가 나와서 함게 다리를 놓아 겨우내 건너다니다가, 이듬해 단오가 지나고 뜯어서 쌓는 것이 연중행사로 되어 있었다. 동네에서는 추렴을 거둬 재목을 구하여 끝구멍을 파고 촉을 해 맞추어, 마치 집 짓듯이 교각을 조립식으로 구성해 놓고는 그 위에다 섶을 얹고 흙을 펴 밟아 다지고 건너다니게 마련이었는데, 흙을 파다 붓는데 보니 허옇게 회가 섞여 있는 것이라 진사님이 물었다.
“자네들 이 흙 어디서 파 왔나?” “저 산날 잘라진 끝에서 파 왔습죠.” “거긴 사람들 묘 썼던 자린데, 그렇다면 이거 산소를 꾸몄던 광중 흙이 아닌가? 사람 시신을 딛고 다니는 것이나 같으니, 그 흙 버리고 다른 흙을 깔게.” “아유, 진사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회 섞인 흙이면 더 좋지 무슨 그런 걱정을 다 하십니까?”
젊은 사람들하고 더 다투기 싫어서 혀만 쩍쩍 차며 돌아서고 말았는데, 그 뒤가 문제다. 황선생은 겨우내 나들이 할 때 차가운 개울물을 그냥 첨벙첨벙 건너다녔지, 다리 위로는 통과를 않는 것이다.
한번은 도둑놈들이 길 가는 이들의 옷가지라도 벗겨갈 요량으로 어두운 뒤에 목을 지키고 있는데, 저만치 옷깃이 번듯한 사람이 오기에 `옳지 저놈을 털어야겠다.` 하고 벼르는데, 이 양반이 다리목까지 와서 얼음이 써걱써걱 하는 개울물을 그냥 건너는 것이다. 서로 쳐다보고 혀를 내둘렀다.
“얘들아, 황진사님이다. 우리가 이 생업을 해 먹을 망정, 그 어른의 옷을 벗긴다면 도둑놈 의리에 금이 간다.”
그리고는 그날 영업을 거두고 돌아갔다는 얘기가 전할 정도다.
한번은 볼 일이 있어 서울 출입을 했는데, 와서 들으니 그곳에 사는 친구 아무개가 죽었다는 얘기다. 일행들이 `마침 왔던 길이니 문상하고 가자` 하는 것을 그는 또 거절하였다.
“볼일 보러 왔던 길에 문상을 하다니 친구간 의리에 그럴 수가 있나?”
그리고는 부지런히 평양까지 돌아갔다가, 차림을 갖춰 다시 상경해, 문상을 치르고 돌아갔더라고 한다. 서울서 평양을 550리라 해서, 하루 평균 80리를 걷는데도 왕복에 보름이 걸린다. 친구간의 의리를, 더구나 죽은 사람 상대로도 이렇게 신의를 지켰으니, 다른 일엔 어떠하였으랴!
물론 조상 제사를 지내는데도 정성이 남달라서, 제수 흥정을 꼭 자신이 몸소 나서서 하는데, 한번 지목한 물건의 값을 물어 턱없이 비싸게 달라더라도, 다른 물건으로 대신하거나 값을 깎는 일이 절대 없었다.
“값을 깎아서 살 양이면 아예 제사를 안 지내는 쪽이 낫지.”
아들이 장성하여 장가를 들였을 때의 일이다. 새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의당 이튿날 아침 예모를 갖춰 문안을 드려야 하는 것인데, 해가 높다랗도록 그런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 여자 하인을 시켜서 가 동정을 보고 오라 일렀다. 그랬더니 하인이 돌아와 하는 말이라.
“밝기 전에 이미 일어나 세수랑 치장을 마치고 그림같이 앉아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그러면 나도 이렇게 일어나 있으니 들어와 뵈올 일이지, 무엇을 기다린단 말이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진사님! 새아씨 말씀이 `아버님께서 사당에 뵙고 내려오시거든 일러다고, 그러고 나서 들어가 뵈어야 순서니라`고 하십니다.”
황진사는 낯이 홍당무같이 붉어지며 감탄하는 것이다.
“내 행신 좀 봐라. 가도를 세운다는 주제에, 저 자신 아침마다 조상 사당에 다니는 체통은 안 지키면서, 자부의 인사부터 받으려 하다니...”
그 길로 사당에 올라가 절하여 뵙고 내려와 앉으니, 그제사 새며느리가 하인의 인도를 받아 들어와서 날아가는 듯이 절을 올리는 것이다. 진사님은 방바닥에 두 손을 짚어 자부의 절을 맞았다.
“네가 오늘 도리로써 나를 깨우쳐 줬으니, 정말 내집 며느리답도다. 일후로도 이 늙은 시아비에게 잘못이 있거든 서슴없이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그러고 나서부터 그 며느리의 의견을 남달리 존중하고, 옳은 가풍을 세우기에 전보다 갑절 마음을 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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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삽 - 이해인
넷째 묵음 : 십대들을 위하여
새 학기를 맞는 십대들에게
봄을 닮은 청소년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새 생명, 새 출발, 새 마음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 새봄입니다. 얼마 전에 책방과 문구점엘 들렀더니 새 책, 새 노트에 사려고 붐비는 이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과목도 더 많아지고 경쟁도 더 심해져서 학교에 간는 일 자체가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학교라는 배움터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은 참으로 소중한 선물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새봄과 더불어 새 학년이 된 여러분에게 나는 오늘 벗으로서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학교에서 나는 모든 친구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도움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내가 먼저 그의 좋은 친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때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꾸준히 그를 '위하는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아는 어떤 학생은 자기가 복사한 유인물을 친구와 함께 나누어 가질 경우 원본이나 잘 보이는 부분은 친구에게 먼저 주고, 자기는 그 다음 것을 선택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감동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둘째는, 공부를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심부름을 하든지 그 어떤 종류의 일을 하건간에 그저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기쁘게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하자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한 동양의 고전 <대학>에서의 말처럼 마음이 없이 건성으로 하는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해나 새 학기와 같은 새로운 계기가 올 때마다 좀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우리가 다져 먹는 '새 마음'이란 것도 결국은 무슨 일이나 함부로 해치우지 않고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하겠다는 다짐이요,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들조차도 짜증이나 불평이 아닌 감사로 받아 안겠다는 겸허하고 새로운 마음일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슬기롭게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자투리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늘 준비성 있고 계획성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한다면 바쁜 중에서도 은은한 기쁨이 샘솟는 매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지 않고 제때 제때 행하는 습관이 몸에 밴다면 내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하고 싶은 것으로 변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이러한 제 말을 잔소리로 듣지 않고 좋은 말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귀'를 가지셨으리라 믿습니다. 소나무, 회양목, 히말라야송 등의 상록수들이 유난히 많고, 봄의 꽃들이 다투어 피며, 귀여운 까치들이 자주 날아드는 이 남쪽(부산)의 수녀원 정원에서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봄 인사를 전하며 헤르만 헤세의 시 <봄의 말> 첫 구절로 이 편지를 끝맺습니다.
어느 어린이나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바를, 살아라, 뻗어라, 피어라, 바라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아라!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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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1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1장 <동양사상>편
<화담집> 저자: 서경덕 (1489~1546)
평생을 학문과 제자들의 양성에 전념한 <기철학> 의 완성자인 서경덕의 성리학설과 시문을 그의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화담집>은 18세기 청나라의 건륭제가 거국적이고 필생의 사업으로 편찬한 <사고전서>안에 한국인의 개인 저서로서는 유일하게 소개되었을 정도로 국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책으로, 우리는 이 책에서 중국 성리학의 단순한 수용이 아닌 한국 성리하그이 독자적인 이해과정과 치밀한 철학적 사유의 백미와 함게 자연과 인생을 관조하며 안빈낙도하는 한 철학자의 삶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생애
"10년 동안 면벽수도한 지족선사는 나에게 하룻밤에 무너졌지만 화담선생은 내가 가까이한 지 오래되었지만 그분의 마음과 몸을 어지럽히지 않으셨다. 성인이시로다" 고 감복한 것은 당대 최고의 명기였던 황진이었다. 황진이의 유혹을 사제간의 관계로 승화시킨 화담 서경덕은 누구인가?
조선 전기의 학자로 황진이.박연폭포와 함게 송도삼절로 불린다. 유년기의 호담은 명석한 두뇌, 고감한 성격, 정직한 마음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14세에 개성의 어느 선생님을 찾아가글을 배웠는데, <상서>의 기삼백(태음력의 수학적 계산)에 이르러 선생이 이 대목은 나도 배우지 못했고 세상사람 누구도 아는 이가 드물다고 하자 화담은 보름 동안 궁리 끝에 스스로 해득햇으며, 18세에는 <대학>을 읽고 격물치지(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의 원리를 깨달았다. 이때 감격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학문을 하는 데는 먼저 격물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고, 그날부터 화담은 천지만물의 명칭을 하나하나 써서 서재 벽위에 붙여놓고 날마다 궁리격물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화담의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어린 시절 어느 봄날에 나물을 캐기 위해 들에 나갔다가 새끼 종달새를 목격한 데서 비롯되었다. 종달새는 날이 지남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점차로 공중 높이 나는 현상을 주시하고 그 이치를 궁리하기에 이른다. 어린 화담의 종달새 관찰은 결국 후일 그의 이른바 기철학 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재로 작용한다. 후일 그가 밝힌 종달새의 비상은 새의 가벼운 깃털을 이용하여 상승하는 지기에 힘입어 날아오른다고 풀이했다. 새의 무게는 원래 하강하려는 것이 자연적 성질이나, 하늘의 양기 와 땅의 음기 가 서로 교호작용을 하는 데에 힘입어 그 가운데의 새는 상승과 하강의 날기를 자유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학문적 방법으로 화담은 약 3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20세가 되던 해에 나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번 저지른 과오를 두번 범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21세가 되던 해에는 매일 서재에서 혼자 단정히 앉아 사색에 열중하던 나머지 밥맛도 몰랐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이렇게 3년 동안 공부를 하는동안 문지방도 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자 사색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으나 천성적으로 탐구심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명성이 조정으로 알려지자 31세 되던 중종 14년 조광조에 의해 현량과에 응시하도록 추천받았으나 사양하고 학문연구에만 전력했다. 43세 때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응시,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수습훈련을 받던 중 벼슬을 단념하고 개성 송악산의 화담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전념한다. 언젠가 화담은 제자 이지함(<토정비결>의 저자)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찾아가, 조정의 벼슬을 거절하고 산림처사를 자처하며 살아가는 남명 조식을 만난다. 중앙에서 벼슬을 지내며 주리파와 주기파의 정통을 이은 이황과 이이에 비해 조식과 서경덕은 일종의 방계였다.이황과 조식은 같은 경상도에 살면서 때로는 우정을, 때로는 냉전의 상태를 유지했으며, 이이와 서경덕은 같은 경기도 출신으로 한 때 이이가 서경덕의 학설을 배우기도 했지만 서경덕의 이론을 일부 반박하기도 했다. 그후로도 몇번 조정에서 벼슬을 권고했으나 그가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고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했다. 그런 유유자적한 생활 속에서 마침내 그의 학문과 철학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다. 56세에 병이 깊어지자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옛 성현들의 말은 선유들이 다 주석해 놓았으니 그 이상 내가 덧붙여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들이 미처 설파하지 못한 것만 저서로 남기겠다. 지금 내 병이 이렇게 위독하니 나의 학설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원리기설><이기설><태극설><귀신사생설> 등 4편의 논설을 지었다.
화담의 사상과 <화담집>
현재 <화담선생문집>으로 전하는 <화담집>은 본집 2권과 부록 2권으로 구며져 있다. 화담 자신이 저술한 것은 본집 2권이며 부록 2권은 그의 연보.비명을 비롯한 여러 형식의 추모문으로 후인이 써모은 것이다. 본집 2권 중 권 1은 시문을 모은 것이고, 권2는 각조 소(疏)·서(書)·잡저·서(序)·명(銘), 을 모아 그의 철학을 밝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잡저에 있는 <원리기설><이기설><태허설><귀신사생설>의 논문 4편은 그가 죽기 2년 전에 마지막으로 쓴 자신의 철학적 서술이어서 <화담집>의 핵심을 이루는데, 이를 토대로 그이 사상을 정리해본다.
1.우주관
화담은 우주공간에 충만해 있는 하나의 원기를 형이상학적 대상으로 삼았다. 기는 우리말로 기운 이요, 물리학적 용어로 에너지 다. 이런 의미에서 화담은 참다운 과학적 철학자였다. 그가 말하는 태허는 곧 우주다. 이 기 는 우주에 가득 차 있다. 그렇다고 이 기와 태허가 별개의 두 물건이 아니다. 기가 곧 태허요 태허는 곧 기다. 기는 우주의 질량이므로 만일 기가 없어지면 우주는 곧 파멸된다. 알다시피 이와 기 는 우주와 인간의 근본원리를 규명하는 서일학의 중심개념으로 중국의 주자는 원리인 이와 그 작용인 기로 우주를 설명했는데, 화담은 정반대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형체가 없는 태허(우주생성의 이전상태)를 선천 이라 하니, 그것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쥐면 비어 있고 잡으면 없다. 이 태허에는 단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인데 후천에는 기 속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동이 일어나며 동시에 개벽이 일어난다. 이 같은 동작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 그렇게 시키는가? 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이것을 이의 기라 한다. 주자학의 이선기후를 인정하지 않고 이를 기에 내재하는 법칙으로 보았다. 이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이 우주구조에 대해 우주구면의 반경은 우주의 전질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질량이 0이 되면 반경도 따라서 0이 된다. 우주의 물질과 이것을 담아놓은 공간도 다 소실되고 또 커지기도 한다는 말과 같은 우주관이다. 화담은 말하기를 이것은 주염계와 장모거와 소강절이 한마디 말도 못하고 한 자도 써내지 못한 경지 라고 크게 자부한 것이다.
2.현상계
우주본체에서 적연부동하고 있던 일기는 어떻게 현상계로 내려와서 만물을 움직여 생성하게 하는가? 화담은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일기는 저 스스로를 포함한다. 이는 무엇이냐? 그것은 음기와 양기요 동과 정이다 라고 했다. 일기는 우주공간에서 적연부동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플라톤의 이른바 순수형상인 이데아와 같은 존재가 아니요, 발하려 하나 아직 발하지 않고 동하려 하나 아직 동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는 순수동작이다. 그러므로 화담은 <역전계사>에 있는 말을 인용하여 느끼어 마침내 통한다. (감이??통)고 했다. 여기서 소극적인 음기와 저극적이 양기가 생기어 서로 밀고 당기는 힘으로 천하만물을 생성, 발전케 한다.
3.이기설
중국의 정주학파나 우리 나라의 퇴계학파는 이와 기를 둘로 나누어 결코 일물이 아니라 했다. 그러나 화담은 기 밖에 이란 없다. 이란 것은 기의 주재다. 주재란 것은 밖에서 기를 주재한 것이 아니요, 기의 움직임이 그러한 까닭에 정당성을 가리키어 이것을 주재라 한다. 이는 기보다 선행할 수 없다. 기는 본래 무시한 것이니 이도 본래 무시한 것이다. 만일 이가 기보다 선행한다고 하면 이것은 기가 유한 것이다 고 했다. 화담은 이를 기 속에 포함시켜 둘로 보지 않았다. 이것은 화담이 장모거의 기와 주자의 이를 지양, 통일하여 일원적으로 본 것이다. 이야말로 그의 독창적이 면이 돋보인다.
4.일기장존설-기불멸설
화담은 또 우주공간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운동은 있지만 그 기 자체는 소멸하지 않는다 했다. 기가 한곳으로 모이면 하나의 물건이 이루어지고 흐텅지면 물건이 소멸한다. 비유하면 물이 얼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물로 환원하는 것과 같다. 화담은 또 말하기를 일편향촉의 기라도 그것이 눈앞에 흩어지는 것을 보지만 그 남은 기운은 마침내 흩어지지 않는다. (물질불변설)고 했다. 이것은 마치 물리학에서 하나의 촛불이 연소작용을 할 때에 그것이 타서 없어지지만 거기서 나오는 모든 에너지, 즉 위치 에너지와 열 에너지와 광 에너지 등등의 총화는 촛불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과 같다고 하는 이론과 같다. 이런 것을 물리학에서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 한다. 그러므로 화담의 기장존설 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 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화담이 주장한 학설의 요지다.
화담사상의 영향 및 평가
먼저 외국에서의 평가를 보자. 화담은 자기의 저술이 문체는 졸렬할지 모르나 천년 이래 성현들이 미처 전하지 못한 진리만을 후학에 전하기 위해 쓰며,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먼 외국까지 전달되어 동방에 학자가 나타났음을 알리고자 쓴다고 자부했는데, 이는 청나라의 <사고전서>안에 한국인의 개인저서로서는 유일하게 <화담집>이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의 뜻은 과연 적중하여 2백 년이 넘은 후대에 중국에서 빛을 보고 실현된 것이다.
퇴계는 일찍이 말하기를 화담은 다른 주석한 책을 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연구하여 이런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하나의 특이한 일이다 라고 평한 바 있고, 퇴계의 이기이원론적 주리론 과 화담의 이기일원론 을 통일하여 이기이원론적 주기론 (이와 기는 일이면서 이이요 이이면서 일이다)을 확립한 율곡은 화담의 이와 기가 서로 떠나지 않는다는 묘처에 이르러서는 일목요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책만 보고 그대로 따라가는 껏과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러므로 화담의 이기설은 옛 성현들이 다 전하지 못한 묘처라고 생각했다 고 했다.
백사 이항복은 일찍이 임금께 드리는 글에서 신이 듣기로 서경덕은 총명한 자질로 그의 학문은 황무지를 개척했고 격물치지의 이치를 사색하여 다 체득했습니다. 한 걸음에 도학을 성취한 사람으로서 당대 호걸의 선비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근세 유신들이 그를 이황과 서로 견줄만하다고 합니다 고 말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의 학문하는 자세다. 그는 어려서부터 권위적 학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반드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실증이나 납득할 수 있는 사색으로서 확인하고 넘어갔다. 선생이 어느 한 구절을 소홀히 넘기면, 만일 알지 못할 것이라면 선유가 왜 이곳에 써서 전하려 했을까? 하고 그 뜻을 알려고 애썼다. 독서란 사색하면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궁리하지 않는 독서란 소용없는 일이라고 분연히 다짐하곤 했다.
그의 학설이 독창적이란 점에서 불교의 원효와, 그리고 그의 자연현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실험자세(종달새의 비상현상에 대한 관찰과 사색 등)는 피사탑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통해 기존의 물체 낙하운동법칙을 수정한 갈릴레이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화담은 당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그의 문하에선 일류석학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박순.허엽.박민헌 등은 명문 출신으로 벼슬을 지낸 부류들이고, 이지함(명문출신으로 잠시 벼슬을 지냄).강문우.정개청 등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임종시에 한 제자가 "선생님, 지금 생각이 어떠십니까?" 하고 묻자 "살고 죽는 이치는 이미 안 지 오래다. 생각이 편안하다." 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자신의 죽음을 영육이 함께 이제 태허의 기를 마치 고향에로의 복귀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분명히 기의 세계에서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화담은 한국유학에 있어서 기철학 의 전통을 수립한 대표적인 자연주의 유학자이며 조선조의 청빈한 숨은 선비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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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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