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종교와 죽음 - 베르나르 포르
에필로그
우리가 살펴본 장례에 관련된 대부분의 개념들은, '나'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와 영원히 죽지 않는 또 하나의 육체로 분리한다. 전자를 주관적인 '나'로, 후자를 사회적인 '나'로 표현할 수 있다.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이 중세기 내내 '왕은 두 육체를 갖고 있다'고 믿었던 것도 바로 이와 유사한 개념에서였다. 왕은 죽어도, 왕 안에 깃든 왕권은 죽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종복들은 장례식 때, "왕이 죽었다. 왕 만세!"라고 모순된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초기의 불교는, 세상을 포기한 자들이 품었던 이상의 항 변형으로서, 사회문화적 규범을 뛰어넘고자 하는 개인주의적 교리의 성격을 띤다. 이 교리는 죽음을 상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삶과 의식의 흐름이 진정으로 단절되는 것은 열반의 순간이지 죽음의 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죽음의 상대화는 불교의 주요 개념 중 하나에서 비롯된다. 먼저 전통적 관점에서 나온 진리로, 죽음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을 갖는 최종적 진리는, 죽음을 결코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우리는 장례에 관한 세 개념의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인도의 장례에서는 화장 후 재를 뿌리며, 중국과 일본의 장례에서는 조상숭배와 무덤을 중요시하고, 불교의 장례에서는 화장한 재를 스투파-유골함에 보존한다. 중국인들이 무덤에 대해 지극한 관심과 불안을 드러내는 데 비해, 인도인들은 무덤이라는 것을 모르며, 비도 세우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무덤 안에 들어 있는 죽은 자의 유품이나 조상 같은 표지, 그리고 해골을 완벽하게 보존하려느 노력에 의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계속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그 결과 중국의 공동체는 죽은 자들 속에 뿌리박고 있다. 반대로 힌두교는 죽은 자와의 단절을 바라며, 애착을 느끼는 장소와 산 사람들의 공동체로부터 죽은 자를 몰아내고자 한다. 이때 화장은 희생의 불길 속에 자신을 소멸시킴으로써 완벽을 찾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희생의 불길은 그의 사회적 인격과 개인으로서의 독특성으로 이루었던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세상과 특정 장소에 집착하는 중국의 종교처럼 세속적인 유형의 종교와, 브라만교나 힌두교처럼 신자들로 하여금 저 세상에 몰두하도록 격려하는 탈세속적인 유형의 종교를 대립시켜 볼 수 있다. 힌두교 장례식의 목적은 사회적 공간을 부인하고 초월하는 우등한 존재의 차원으로 죽은 자를 인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힌듀교의 장례에 대한 관념은 탈속적 종교에 속한다. 이런 종교의 가장 완성된 모습은 아마 세상을 포기한 자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육체는 불에 태울 필요초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앉아 명상하는 자세로 매장된다. 이렇게 하여 세상을 포기한 자의 무덤은 하나의 공동체를 묶어주는 표시가 될 수 있으며, 지리적으로 국한된 사회 그룹일 경우 보다는 영적인 공동체일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 경우에 불교는 중개물로 간주될 수 있다. 불교도들은 화장한 후에 모든 죽은 자의 뼛조각과 재를 힌두교도들처럼 뿌려 버리지 않고 유골함에 소중하게 보관하기 때문이다. 이 유골함을 중개물로 삼아, 죽은 자는 그 순간부터 열반이라는 무한한 (또는 정의할 수 없는) 공간 속에 있지 않고, 이 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여러 장례 양식들이 갖는 차이점은 단지 겉보기에만 그렇다. 매장이나 화장, 미이라화는 모두 불멸의 형태에 이르기 위한 고인의 육신의 정화 방식이다. 이것은 우월한 존재의 실체와의 동일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이때 우얼한 실체란, 힌두교에서는 브라만, 불교에서는 우주적인 붓다, 도교에서는 도, 그리고 유교나 대중 종교에서는 가문의 조상을 말한다. 장례식은 대용 신체나 분신(혹은 대체물이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즉 위폐나 유골, 초상화, 미이라뿐 아니라 스투파, 불상을 만든다. 명상이나 희생제사를 통해, 불멸의 육신을 갖기 위해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단념한다(불멸의 육신이 반드시 인간 육체의 형상을 취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확산의 논리는 '나'를 복수로 봄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나'와 '나의 그림자들'이라고 하기보다는 '나들'이라 하는 편이 옳다.
스투파에 담긴 상징성은 불자들에게 육체를 신성시하고, 죽음을 또 하나의 탄생으로 여길 수 있게 해준다. "육체=스투파, 또는 '마비된' 육체"라는 공식은 엔트로피의 엄격한 법칙에 종속된 실체의 육체를 감추는 순수한 상징, 혹은 표징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관념보다 우세하기 마련이며, 육체를 신격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하도록 되어 있다. 분신도 결국은 단일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미이라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리 없는 외침과 손상된 얼굴 모습은 우리들에게 죽음이 끔찍한 진실임을 상기시켜 준다. 극도의 모순이긴 하지만, 죽음은 무덤훼손이라는 행위에 의해 그 폭력성이 배가된다. 이승에서 명예나 영화를 누렸던 고인들에게 이 폭력은 아예 관례처럼 행해지고 있는 듯하다. 중국에서는 불자들의 미이라든 아니든, 대부분의 미이라가 훼손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 행위가 신앙에 의한 것이든, 물욕에서 비롯된 것이든, 혹은 고학적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든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서구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무덤 훼손 행위는 아마 성-드니 왕가 무덤에 가해진 사건일 것이다. 이 왕가의 묘지는 혁명 때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는데, 그 이후로 그들 시신(혹은 잔재물)의 상태를 병적일 정도로 세심하게 묘사한 글들이 수없이 쓰여졌다. 그리하여 한때 영광스러웠던 육체들이 치욕스런 육체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며,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눈앞에서 두 번 죽음을 당한 격이 되었다. 이렇듯 속세의 흉계와 시신의 부패라는 끈질긴 현실은 장례에 대한 관념에 한계를 긋는다. '나'자신이면서 또한 '나'의 확산 구조는 완전한 서클을 이루지 못한다. 그안에는 상상과 도피가 있다. 생명은 결코 모든권리를 되찾을 수 없으며, 혼령들은 가정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 체계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똑같은 걸림돌에 부딪치게 될 뿐 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메마른 유골 속에서 불멸성을 찾으려는 꿈을 꾸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추구했던 불멸에 대한 꿈은 실망만 안겨주었다. 그 실망은 생명을 우스꽝스럽게 모방한 불길한 미이라들이 안겨준 실망이다. 그러나 그 꿈은 끈질기다. 서구인들의 불멸을 위한 시도들은 겉으로 보기에 과학적이지만 가소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러자 그것들은 적어도, 전과학적인 성격으로 오늘날은 부인되고 있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어떤 개념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음을 지적해 준다. 아무튼 현대과학이 발견한 저온과 다른 여러 냉동 기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몇 가지 명백한 사실들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는 작은 세포나 혹은 DNA분자로 '육체와 영혼'을 재구성할 수 있다면, 우리가 몹시도 집착하는 이 개성이란 무엇인가? 불교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파스칼도 자아가 환영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좌절된 꿈은 우리가 지닌 자아의 개념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요컨대 의식(영혼이라는 용어 대신)이 육신을 입을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일까? 과학의 전격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우리보다 더 많은 노력을 바쳐왔던 다른 문화들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나의 부재'를 실현할 능력이 없다면, 어쩌면 육체적 현실(혹은 환영)에 갇혀 있는 개인보다 훨씬 넓은 자아의 망의 일부분으로 흩어져 자신에게 중심을 두지 않은 자아개념이 도움이 될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나'가 (환영에 불과한 것이든 아니든간에) 서구 저편 서계에서는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서구인들이 그들의 현실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자아에 관한 또 다른 '별자리'를 생각해 냈던 문화를, 나악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와는 다른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자아에 대한 데카르트적인 관점이 (환영에 불과하든 아니든)서구인들에게 있어서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되었다. 우리는 마르셀 모스가 '해체'되었다고 표현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국적인 이론 속에서 안식처를 찾는 것은, 그 이론 안에서 미신적인 요소들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하다. 그러나 어쨌든 인간의 삶에 대한 아시아적인 개념이 어떻게 꽃피워졌는지를 발견할 때, 우리는 서구적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따라서 이 상황은 단지 인간 조건의 한 형태(물론 최고의 것은 아니다)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도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인들이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다양한 태도에는 한결같이 '삶을 지속하려는 끈질간 욕망'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정신의 의심할 수 없는 근원들과, 인간 정신이 실현할 수는 없었지만, 구상해 볼 수 있었던 불멸의 다양한 형태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부록(용어 해설)
각성(Evil) : 산스크리트어로는 보디bodbi, 일본어로는 사토리라고 한다. 불교, 특히 선종에서 최상의 경험을 뜻한다. 깨달음. 간다르바(Gandbarva) : '향기를 먹고 사는 존재'라는 뜻. 불교에서 이 용어는 죽은 후에 새로운 육체를 입고 다시 환생하기까지 의식체의 상태로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금강불교 : 탄트라교를 볼 것. 노자 : 도교의 전설적인 창시자. 도덕경을 볼 것. 다르마(Dbarma) : 힌두교에서는 우주적, 사회적, 종교적 질서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대문자로 쓰였을 때는 불법, 붓다의 교리, 우주적 질서를 의미한다. 소문자로 쓰였을 때는 현상이나 사물,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데바(Deva) : 힌두교의 신화에 나오는 천상의 존재들. 뷸교에서는 데바들의 길이 윤회의 다섯 가지(또는 여섯 가지) 기리 중 하나이다. 도 : '길'이라는 뜻. 만물이 그러부터 운행되는 우주의 제 1원리로서, 음양이 교차하여 우주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원리이다. 도덕경 : 도와 덕에 관한 책. 전설적인 철학자 노자가 편찬했다고 하는 책. 라마(lama) : 티베트어로는 블라마bla-ma라고 함. 산스크리트어로 '영적 지도자'라는 뜻이다. 티베트 불교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달라이 라마라 부른다. 마니교 : 페르시아인 마니(216-277)에 의해 창시된 통합 종교. 주교 교리는 선과 악이라는 근본적인 두 원리의 대립이다. 그리하여 이 말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적 개념을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마라 : 붓다를 시험한 존재로서, 죽음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미륵불 : 미래에 올 것이라고 믿어지는 붓다. 베다교 : 베다에 근거해 세워진 인도의 매우 오래 된 종교. 보디다르마 : 보리달마. 반 전설적인 선종의 창시자. 인도 태생인 그는 6세기 초에 중국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디사트바 : 보리살타. 보살.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으로, 열반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로 마음먹은 자를 말한다. 본교Bon : 티베트의 대중종교.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붓다이Budai : 이 산스크리트어는 중성으로 표현될 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절대자이며, 모든 중생들의 아트만(자아)과 동일시되는 만물의 정수를 가리킨다. 남성으로 표현될 때는 우주의 창조자로서 비슈누, 시바와 함께 힌두교의 세 신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킨다. 브라만Brahmane : 브라만Braman 에서 나온 파생어로서, 인도 종교에서 성직자 계급의 일원을 가리킨다. 브라만교는 힌두교의 원형이다. 비슈누Vishunu : 힌두교의 위대한 세 신 중 하나로서, 비슈누신은 우주가 해체되는 위험에서 지켜주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나 동물로 현신한다고 한다. 사리 : 산스크리트어로는 육체를 뜻하는 사리라라고 한다. 육체의 일부나 유골을 뜻하며, 더 정확하게는 불교의 성인들을 화장했을 때 나오는 반짝이는 조각들을 가리킨다. 사마디 : 삼매. 집중. 명상에 의해 얻어진 영적 상태를 지칭하는 산스크리느어. 불교에서 '삼매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명상의 앉은 자세로 죽는 것을 가리킨다. 사망학(Thanatologie ) : 그리스 죽음의 신인 타나토소느에서 비롯된 용어.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이며 사회학적인 다양한 양상을 연구하는 학문. 삼사라 : 카르마에 따라서 환생하는 사이클, 즉 윤회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로부터의 해방은 열반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불교는 '삼사라와 열반의 일치'를 설파하기에 이르렀다. 석가모니 : '샤카의 고행자'라는 뜻. 붓다가 샤카족의 왕자였다는 사실에서 붙여진 이름. 선종(Chan) : 중국 불교의 한 종파. 전통을 따라가 보면 인도의 지도자인 보디 다르마에 이른다. 성체변환 : 한 물질이 다른 물질로 완전히 변하는 것을 일컫는다. 카톨릭 교리에서는 특히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세부쿠 : 일본어에서 온 용어는 '하라키리'라 읽을 수도 있으며, 무사들이 배를 가르는 의식을 일컫는다. 소승불교 : 대승불교와 함께 불교의 양축을 이루는 초기의 불교. 정통불교인 대승불교를 고집하는 자들이 약간 비하하는 어조로 일컫는 용어이다. 슈겐도 : '눙력의 길'이라는 뜻. 불교와 신도교가 통합된 일본 종교. 야마부시라고 불리는 슈겐도 신자들은 산에 올라가 고행을 함으로써 비상한 능력을 얻고자 한다. 스투파(Sutupa) : 불교의 장례 기념물. 그 형태가 차츰 변하여서 오늘날의 탑 모양을 이루게 되었다. 스투파는 일반적으로 유골이나 경전을 보관한다. 붓다의 상징. 혹은 대체물이다. 시바(Shiva) : 힌두교의 중요한 세 신 가운데 하나. 그의 우주적인 춤으로 세계의 창조와 파괴가 반복된다. 신곤파 : 일본의 승려인 구카이(774-835)가 창시한 일본의 밀도교로 불교, 유교, 신도가 융합된 것이다. 그의 교리는 비의적인 주술(산스크리트어로 만트라)의 사용에 근거를 둔다. 신도교 : 가미, 혹은 일본 토착종교의 만신전의 신들의 길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의 신도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일본에서 비롯된 종교가 아니고, 후에 일본에서 이념화된 종교이다. 아고리Agorias : 인도 고행자들의 한 종파. 그들의 고행이 화장터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시체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끔찍한 소문이 나돌게 되었다. 아라트(Arbat) : 불교 수행에서 최종 단계에 이른 수행자. 특별히 붓다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을 가리킨다. 아르주나 : '바가바드기타(신의 축복을 받은 자의 노래)' 의 주인공. 사촌과의 전쟁을 앞두고 괴오워하는 그에게 크리슈나 신이 나타나 성스러운 의무를 다하라고 설득한다. 아미타불 : 서방정토의 붓다. 아수라(Asura) : 힌두교의 신화적 존재들. 천상의 존재들인 '데바'의 적이다. 불교에서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인으로 구성된 육도중의 하나를 가리킨다. 아트만(Atman) : 힌두교에서는 절대자, 혹은 바라만과 동일시되는 생명의 원리로서 모든 소아를 포함하는 진정한 자아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환영에 불과한 개인의자아를 뜻한다. 아힘사 : 일반적으로 '비폭력 교리'로 번역되며, 다른 생명들을 해치지 않으려는 사고를 지칭한다. 유교 : 공자(BC 551~BC 479)의 가르침에 기초한 도덕적, 종교적 교리. 윤회 : 일반적으로는 영혼이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하는 전생의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영혼은 없고, 단지 카르마로 인해 영혼들 사이에 서로 이어지는 존재들의 연결이라는 뜻을 갖는다. 음양 : 여성적 요소에 남성적 요소로서, 중국 사고의 주축을 이루는 두 상징이다. 자발적 미이라화(Automonomification) : 죽은 뒤에 자신의 시신이 썩지 않도록 고행자들에 의해 시도되는 방법. 자이나교(Jainisme) : 비폭력, 혹은 비살생을 주장한 마하비라Mahavira(BC. 6C)에 의해 세워진 종교. 전생 : 하나의 같은 영혼이 계속해서 여러 육체를 입으며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신조. 이 용어는 때로 불교의 윤회를 지칭하기 위해 부적절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정토 : 아미타불이 주관하는 극락. 제관 : 신이나 정령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자. 젠Zen : 중국의 선종이 9세기부터 일본에 도입되어 세워진 일본의 종파. 13세기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종파를 이루었다. 지장보살 : 산스크리트어로는 Ksitigarbba.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보살. 육도의 중생을 덕으로써 교화한다. 카르마(Karma) : 중성으로 표현되어 Karma, 힌두교에서는 모든 행위, 특히 대가가 따르게 되는 행위를 뜻한다. 소위 카르마를 구성하는 행위들에 대한 보상으로, 연속적인 환생으 ㄹ뜻하는 윤회(삼사라)의 법칙을 따른다. 윤회를 믿는 힌두교와 불교 신자들은 속세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선한 행위를 통해 이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카시야파 : 붓다의 계승자. 크리슈나(Krishna) : 힌두교의 신으로, 비슈누 신의 여덟 번째 화신. (바가바드 기타와 아르주나를 볼 것.) 탄트라교Thantrisme :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경전들인 탄트라 연구에 근거하고 있는 불교와 힌두교의 한 흐름. 탑돌이 : 산스크리트어인 pradaksbin를 번역한 것이다. 스투파나 불상 등과 같이 신성하게 받들어지는 물체에 오른손을 얹은 채, 그 주위를 계속해서 빙빙 도는 의식을 말한다. 테라바다 : 선인들의 길. 소승불교에서 나온 불교의 한 흐름. 붓다의 본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프라자파티 : 원초적인 우주적 존재. 힌두교와 베다교에서는 그의 희생제사로 인해 이 세상이 태어났다고 한다. 프레타(Preta) : 힌두교에서는 아직 조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그들의 카르마로 인해 '아귀'의 형태로 다시 환생하게 된 존재를 말한다. 혼과 백 : 중국의 전통적 개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두가지 그룹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상급에 속하는 세 영혼은 혼에 속하며 하급에 속하는 일곱 영혼은 백에 속한다. 인간이 죽으면, 정신적이며 양의 성격을 지닌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반면 물질적이며 음의 성격을 지닌 백은 무덤 안에 있는 육체 곁에 머무른다. 혼돈Chaos : 중국 신화에서 원초적인 카오스를 일컫는 말. 반인반수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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