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2. 용기와 결심에 대하여
닌텐도 도사
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생각했어. 닌텐도 도사라고, 너에겐 그런 집요함이 있었어. 찌를 듯이 쏘아보는 파란 눈과 조종판 위를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손을 보고 네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았지. 겉으로 보기에 너는 비디오게임에 미쳐 버린 다른 열살박이 아이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단연코 달랐지, 여름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둘 모두 종양과 병동에 쳐 박혀 있다는 사실 때문일까? 네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어. 잔인한 일이야. 우리 둘 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너무 일찍 빼앗겨 버렸기 때문일까? 나랑 비슷한 아이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내 기분이 편안해진 것일까? 추측을 해보는 수밖에, 정확히 알 수는 없을 테니까.
아무튼, 삶을 향해 솟아나는 너의 에너지와 열정에 나는 푹 빨려들고 말았어. 암 치료가 끝나고 첫 번째 수술을 한 여름이었어. 의사들은 내 엉덩이뼈를 도로 맞추느라 낑낑댔지. 강한 도수의 화학요법을 받는 동안 부서져 버리고 말았거든. 그리고 부서진 것은 엉덩이 뼈뿐만이 아니야.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도 어디에선가 잃어버렸어. 그리고 내가 그렇게 못된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지. 그래선 친구를 사귈 수가 없거든. 의사들은 수술 결과가 '좋다' 고 말했어. 내 온 몸은 고통으로 찢기고 있는데 말이야(의사와 환자가 한 가지 일을 얼마나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지 신기하지 않아?). 물리 치료실에서 너를 다시 보았어. 암이란게 너를 얼마나 깊이 파먹고 있는지 거기서 깨달았지. 나는 소리치고 싶었어. '이 바보 멍청이들아. 그 아이를 놔둬! 자기 침실로 돌아가서 비디오게임을 하도록 놔두란 말이야! 대신에 난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지. 네가 평행봉을 붙들고 걷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야.
네가 이 방에 들어오기 전 난 내 자신이 너무도 불쌍해서 꼼짝할 수 가 없었어. '암으론 부족했어? 이젠 엉덩이뼈야? 나더러 일어서란 말야? 할 수 없어. 일어서기만 하면 난 죽고 말거야.' 넌 절대 나를 알지 못할 거야. 하지만 넌 내 영웅이야. 닌텐도 도사. 용기 있게, 침착하게, 넌 하나 남은 다리로 일어섰지. 어떤 사람들은 너를 불구니 장애인이니 하고 부를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누구보다도 완벽해. 지정된 시간만큼 있는 힘을 다해 걷고 너는 다시 침대에 누웠지.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을 시작했어. 이제는 내 차례라고 나는 생각했어. 알겠어, 닌텐도 도사? 보통 사람들이 평생 걸려서 겨우 알아내는 진실을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삶은 게임이라는 진실 말이야. 다 이길 수는 없어. 하지만 게임은 계속 된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게임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어. 닌텐도 도사. 너는 누구보다도 게임을 잘 하고 있어!
- 케이티 길 -
뇌종양과 벌린 한판 승부
로프의 끝까지 갔으면(서양 격언으로 갈 때까지 갔다는 뜻) 매듭을 지어서 걸어, 그리고 그네를 타는 거야!
- 리오 버스카글리오 -
그는 왼손에 드릴을 들고, 다리를 조금 움직여서 자리를 잡은 다음, 스위치를 켜고, 일을 시작했다. 첫 번째 구멍, 두 번째 구멍, 그리고 세 번째 ... , 선반을 달거나 지하실을 뜯어고치는 게 아니다. 평범한 막일꾼이 아니니까. 뇌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 의사이고 지금 내 머리에다 구멍을 뚫는 중이다.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한 채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수술을 위한 장비가 완전히 갖추워졌고 내 앞에는 천이 드리워져 있다. 나는 드릴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는 중이다. 고통은 전혀 없고 약간 불편할 뿐이다. 드릴이 듀라(뇌를 싸고 있는 두꺼운 막)를 뚫을 때마다 '팍' 소리가 들린다. 의사가 드릴을 끝냈다. 그리고 각 구멍마다 다섯 개의 방사선 씨앗이 들은 카테타를 넣었다. 강력한 씨앗을 심은 다음엔 엑스레이를 찍어서 씨앗의 위치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의사는 머리의 상처를 꿰멘다. 이제 '프로젝트' 가 끝났다. 악성의 뇌종양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악몽은 내가 막 마흔이 되기 사개월 전에 시작되었다. 나는 일리노이주 페오리아 시에 있는 감리교 의료 센터에서 수술 담당 목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수술이 시작되기 전과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또 수술이 끝나고 난 후 환자 및 환자의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수술실과 대기실을 오가며 환자의 상태를 가족들에게 알리는 일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의 긴장과 고통을 훨씬 덜어 줄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매우 보람은 있었지만 무척 힘들었다. 나와 내 동료들은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대기 상태였고, 심장 수술과 같은 대 수술이 있는 날엔 20 시간이나 어떤 땐 그보다도 더 긴 시간동안 수술실과 대기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두통이 좀 지나치게 심하다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대부분 아스피린 두 알을 삼키는 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1987년 봄 부터는 아스피린도 듣지 않았다. 앞이 뿌였게 보이기 시작했고 가끔 철자법도 틀렸고 여기저기 쾅쾅 부딪치기도 했다. 그래서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주치의를 만나 정기 검진을 받아 보기로 했다. 4월 21일, 정기 검진과 함께 몇 차례의 피 검사를 받았지만 별 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5월 7일엔 자기공명 영상촬영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두통이 다른 증상들의 원인이 드러났다. 골프공 크기만한 검은 반점이 뇌의 왼쪽에 있었다. 주치의는 이 소식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그리고 자상하게 전했다. 그는 뇌의 그림을 재빨리 그린 후 종양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다음 주엔 조직 검사를 해야 겠어요." 의사가 설명했다.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겠으니까요. 우선은 경련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을 써 들릴 테니까 당장 약을 드시기 시작하세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무 질문도 못하고 병원을 나와 사무실로 돌아갔다. 비서에게 대강 얘기를 해주고 차를 몰아 집으로 갔다. 쇼크 때문에 온 몸이 마비 된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 팻트는 그 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러 가고 없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소용돌이치는 감정 때문에 운전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구를 담당하는 목사회의 회장과 그의 아내가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자청해서 그 날 밤늦게 우리는 아내의 친정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현관문 앞에서 내 얼굴을 보고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다음부터는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월요일이 되었다. 외과 의사와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의사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었다. "종양은 이미 악성의 암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의사가 질문을 하라고 했지만 그 순간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무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조직 검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날 오후에 입원을 했다. 내가 그 병원에서 일 한지 벌써 칠 년이 되었고, 따라서 이제는 친구가 된 대부분의 직원들이 더욱 친절하고 자상하게 돌봐주었다.
조직 검사가 있기 전날, 한 병원 직원이 기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며 나를 데리러 왔다. 엑스레이실 까지 함께 걸으며 우리는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병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직원은 나와 함께 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작은 사랑의 행동에 감동되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밤새 뒤척이다 일찍 일어나서 기도를 드렸다. "사랑하는 하나님이시여,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겨낼 수 있도록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시옵소서.' 정말 힘든 날이었다. 의사는 뇌에 있는 종양이 추측했던 대로 애스트로시토마 삼 단계라고 설명했다. 즉, 암은 이미 커질 대로 커졌고 따라서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내 마음속의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의사는 가만히 앉아서 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어디선가, 알지 못할 곳에서 목소리가 나와 침묵을 깼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 얼마나 남았죠?" "육 개월에서 구 개월입니다." 의사가 대답했다. "잘하면 일년이죠." 다시 침묵이 흘렀다. ... 그리고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어떻게? "어느날 그냥 잠이 들 거예요." 의사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의사의 말이 가슴속에 가라앉을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렸다. 죽음이 어느새 수평선 이쪽으로 다가왔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의사가 나갔다. 아내와 부모님과 여자 동생과 매제가 나와 함께 있었다. 모두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며 애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팻트와 나는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주말을 함께 보내며 얘기하고, 울고, 기도하고, 또 이 모든 일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채 이루지 못한 우리의 꿈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팻트가 고뇌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없이 어떻게 살아가요? 너무 무서워요." 순간 나는 팻트의 눈에 반사된 나의 절망을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깨달았다. 하나님의 힘에 의지해서 이 악몽을 즐거운 마음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나의 부름을 받은 나의 일꾼이다. 네가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자, 이제 너를 위해서, 그리고 팻트를 위해서, 내 힘에 의존해라, 네가 지금껏 다른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힘차게 말했다. "난 싸울거야. 팻트, 방사선 치료를 받고 화학요법도 받을 거야.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말한 것은 알아,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 가능한 오래 일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 목사로서 일하는 것은 나의 신성한 임무이고 나의 삶이야! 계속 일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셔. 그걸 느낄 수 있어. 하나님께서 내게 사명을 주셨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야가 좁아져서 양옆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말도 더듬게 되었다. 천처럼 나의 생각을 똑바로 전달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살아있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팔년 이라는 기적의 선물을 내게 주셨고 나는 그 선물을 감사하게 받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며 목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선물이 계속 연장되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수술이 끝나고 나는 뇌종양을 앓았던 사람들과 또 뇌종양 환자들을 치료하는 전문가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제 환자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뿐만 아니라 환자로서의 경험도 했고, 그 결과 , 이 무서운 병과 잘 싸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는 마음 가짐이다.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욕망이다.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고 선택을 하기는 무척 힘들다. 하지만 초기부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환자들은 공포로 후퇴하는 환자들보다 생존할 확률이 훨씬 높다. 싸우겠다는 것은 내가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절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치명적인 병과 싸워 주도권을 잡으려면 이 병보다 머리를 잘 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이 병에 대해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한다. 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책을 많이 읽고 많은 질문을 함으로써 자기가 앓고 있는 질병의 전문가가 되라고 충고한다. 또한 그 병에 대한 후원회가 있으면 가입을 하도록 한다. 남아서 넘칠 만큼의 정보를 모아야한다. 더 이상은 알아볼 정보가 없다고 생각될 때까지 알아보아야 한다. 도전할 상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그것을 정복할 수 있는 기회는 커진다. 환자 자신이 자신의 병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 힘든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은 별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족, 친지, 성직자,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또 아마 가장 중요한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같은 병을 앓았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그러면 믿지 못할 만큼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힘은, 말 그대로, 당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은 '한번에 하루씩만' 살라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하루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빨리 감기로 짚어보는 것은 너무 무섭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다. 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사실인즉 나는 지금도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미래를 구하고 싶다면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지난 6년을 되돌아보면 긍정적인 추억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두 개골 구멍 뚫기' 도 있었고 '팍' 소리도 있었고, 발작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다. 정말 힘들고 어두운 시간에 그들은 나와 내 가족을 사랑해 주었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우리를 돌봐주었다. 그 중에는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분 들게, 그리고 최전선에서 나를 위해 싸워준 병원 직원들게 깊은 감사를 들린다. 나는 정말 축복 받은 사람이다. 내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나는 아직도 뇌종양을 앓는 사람들과 가족들을 위해 일한다. 환자의 방에 들어가면 우선 이렇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크레이그 목사입니다. 당신과 저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 로버트 크레이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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