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1. 희망에 대하여
암은 축복이었다.
얼굴이 공포로 이그러질 정도로 힘든 경험을 겪어낼 때마다 우리는 강한 힘과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이 끔찍한 일을 겪어냈으니까 이젠 무슨 일이 닥쳐도 무섭지 않아.' 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 엘리노아 루즈벨트 -
"의사 선생님께서 이건 확실히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 유방을 잘라내지 않기 위해서 제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일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유방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유방암의 진단을 받았을 때 내가 종양 전문의에게 한 말이다.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서른여덟 살이었고, 내가 걸린 유방암은 유방암 중에서도 희귀하고 회복이 힘든 종류였다. 모든 유방암 중 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1퍼센트에서 6퍼센트밖에 안되며 재발의 확률이 아주 높았다. 화학 요법을 받으면 회복이 될 것이지만 삼년이나 오년 사이에 재발할 것이라고 의사들은 말했다. 일단 회복이 된 후 재발을 하면 어떻게 해야 이 암을 없앨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의사에게 의학계에서 가능한 최고의 치료를 받고 싶으며 그러기 위해선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보스턴에 있는 대나 화버 연구소에서 받을 수 있는 실험적 치료법에 대해 말해 주었다. 특별히 힘든 치료이지만 내가 걸린 종류의 유방암엔 권장 할 만 하다고 덨 붙였다. 그 실험적 치료는, 강한 화학요법을 격주마다 일주일에 세 번씩 네 주기 동안 받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후에야 대나 화버 연구소에 입원할 수 가 있으며, 거기서 매우 강한 화학요법과 골수 이식 수술과 유방 절제술을 받고 나서 방사선 치료를 6주 동안 받을 것이라고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쇼크를 받았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골수 이식수술이 필요하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 나는 내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과의에게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종양 전문의에게 상담을 하러 가기 전, 나는 5개월 된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끝없이 걸어다녔다. 걸으면서 손녀에게 말을 했다. 손녀를 데리고 돌아 다니는 동안에 침착하게 생각할 수가 있었고 많은 결정을 내릴 수가 있었다. 더 이상 울고만 있을 수도 없고, 매일 하나님께 '왜 나여야 하나요? 왜 지금이죠?' 라고 묻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 스스로를 동정하는 일은 매우 쉽지만 그것은 생산적이지가 못했다. 이 문제와 직접 부딪쳐서 해결해야 하며, 앞으로 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더 얻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손녀에게 이 '할미' 가 그냥 사라져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어 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손녀였다. 그래서 의사가 매우 어려운 실험적 치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나 화버 연구소에 가서 상담을 하고 실험적 치료를 받아도 괜찮겠다는 허락을 받은 후 1993년 6월 화학요법을 시작했다. 그리고 11월에 대나 화버 연구소에 입원을 해서 강한 화학요법을 끝내고 골수 이식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골수 이식수술로 인한 심한 부작용인 그다지 많지 않아서 추수 감사절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갈 수 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했던 것이다. 1994년 1월까진 웬만큼 건강을 되찾았으므로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그 후 검사에서 암 세포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보다 더 행복한 소식은 이 세상에서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육 주간의 방사선 치료를 받음으로써 4월에 실험적 치료를 다 마쳤고, 6월엔 일년간의 휴가를 끝내고 직장으로 돌아갈 수 가 있었다.
암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이 더욱 밝아졌다. 전에는 건강과 삶을 당연히 내 것으로 여겼는데 그것을 잃을 뻔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커다란 선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오늘을 주신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암에 걸리면 미래가 너무도 불분명하게 된다. 나는 내가 제대로 늙기도 전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암에 걸리기 전보다 지금 나는 삶을 더욱 고맙게 생각한다. 전에는 내가 강한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매우 강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겪은 일을 알고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척 강하고 용기 있는 여자라고 말해준다. 지금 회상해 보건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했을 뿐이다. 내가 한 일들을 용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생존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살아남아서 되돌아보면, 내가 했던 것처럼 암을 직면하는데는 상당한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던 힘과 용기 말이다. 내가 유방암과 싸워 이기는데 가장 힘이 된 것중 하나가 가족들의 사랑과 협조였다. 가족들의 사랑과 협조가 업었더라면 지금쯤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가족을 떠날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또 가족들이 내가 없는 삶을 살도록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앞으로 훨씬 더 오랫동안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이 되고 싶었다. 가족이 나를 지켜주고 응원해 준다는 사실이 어려운 치료를 견뎌내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족들은 나를 도와주었고 나에게 힘이 되었으며 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주었다. 만약 내 가족중 한 사람이 어느날 나와 같은 진단을 받게 된다면 나도 그에게 똑같이 해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좋은 본보기 되었으면 좋겠고, 살고 싶다는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내가 겪은 경험으로부터 그들이 힘과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암에 걸린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유방암에 걸린 여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치료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내가 겪은 경험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얻는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고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다. 지금 엄마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암에 걸렸나 보다고 말씀하신다. 지금은 그것이 나의 임무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암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렇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사람이 유방암에 걸렸다 살아났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암이라는 끔찍한 질병은 우리에게서 귀중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앗아갔다. 나는 할아버지 두 분의 이모와 사촌 언니 한 명을 암으로 잃었다. 그분들을 잃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이 암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보며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분들처럼 고생하다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강한 화학요법과 골수 이식 수술을 받으러 대나 화버 연구소에 입원하기 하루 전, 사촌언니를 뵈러 공동묘지에 갔다. 나보다 네 살 위인 언니는 바로 몇 주일 전에 암으로 목숨을 잃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는 언니에게 맹세했다. 언니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대나 화버에 입원할 것이며 골수 이식 수술을 받을 것이라고, 사촌언니도 내가 받을 치료를 받아서 살아남을 수만 있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았을 것이다. 언니가 죽자 모두들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힘을 얻을 것이라고. 내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언니가 어떻게 나를 격려해 주었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암은 무서운 것이지만 또한 나에게 축복이었다. 암을 겪은 후 더 강하고 튼튼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나는 이제 자신감에 충만하고 나 자신을 굳건히 믿는다. 이제는 나에게 던져진 일은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 문제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서 한번에 하나씩만 해결해 나가면 된다.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이 벌써 18개월 전이다. 지금 내 기분은 최고이다. 너무 행복해서 흡사 무엇에 도취된 기분이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다시 건강을 찾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즐겁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암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유방암은 극복할 수 있다.
- 킴벌리 A. 스톨리커 -
암과 직업 선택
인생의 목적은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길과, 우리가 가도록 운명지워진 길을 찾는 것이다. 병에 시달리고 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는 그 만큼 더 빨리 길을 찾으면 된다. - 버니 S. 시겔박사-
스물일곱 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는 벌써 6년 동안이나 결혼 생활을 했고, 음식 사업에서 크게 성공했으며,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하려는 참이었고, 아름답고 훌륭한 남매의 아빠였다. 마흔 세 살이 되었을 때는 이혼한 지 2 년이 되었고, 한참 번창하는 사업체를 가졌으며, 더 큰집을 장만하려던 참이었고, 다시 한번 사랑에 빠져서 재혼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두 명의 사랑스런 아이들을 더 가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을 때 아이들은 다 자랐고 여전히 훌륭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사라졌다. 결혼 생활도, 집도, 사업체도, 지금은 나는 잘 나가는 부동산 판매업자고 앞으로 시간만 있다면 재기할 확신을 갖고 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이렇다, 계속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나에게 어울리는 여성을 찾고 새 집을 사서 다시 한번 가정을 꾸민다. 그러면 완벽할 것이다. 그럴까? 아니다! 그 동안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하나님이나를 포기하셨다. '충분하지 않아? 도대체 내가 뭘 더 해야 하지? 내 자식을 번개로 쳐야 하나? 아니야. 좋은 수가 있다. 생명이 위독한 병을 주는 거야. 그럼 올바른 길을 찾지 않을까? 그렇거나 아니면 죽어버리겠지.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암. 그렇다! 암이야! 어떤 암? 그냥 생명이 위독해서 만은 안되지. 남성의 능력을 빼앗아 버리는 거야. 난 전지전능하거든.' 내가 그 때 왜 갑자기 종합 검진을 받으려고 마음먹었는지를 이렇게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업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꾸미신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남성으로서의 능력이 건전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특히 신경을 썼었다. 검사 결과는 내 성 기관에 병이 있다는 것이었다.
좀 더 검사를 받은 후, 아직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단계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당장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암세포가 번질 것이고, 그러면 남은 수명이 수개월로 단축될 것이며, 그 수개월이나마 병원에서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보내게 될 것이라고했다. 의사들은 의학적으로 가능한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암 세포가 생긴 기관을 완전히 제거해 내는 것 같았다. 전립선에서 정액을 만들고 정액이 정자를 운반하는 것이니 이제 나는 더 이상 이이를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건 그런 대로 참을 만하다. 의사가 나열한 어느 치료 방법을 택하더라도 결국 나는 소변을 가릴 수 없게 될 것이고 심지어는 발기 불능이 될 각오를 해야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도 그런 대로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게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몇 가지씩의 특별한 재능을 타고 태어나는데, 특히 그 중 한가지에는 남들보다 특별히 뛰어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사업면에서 또 사교적인 면과 가정을 꾸미는 데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여지껏 나의 가장 뛰어난 재능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글쓰기와 영상을 통해서 나의 풍부한 상상력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참을성을 잃으신 것이다. 그래서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밀려들어가며 나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 이번만 살려주시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을 완전히 활용하겠다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자꾸만 다시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며, 내 예술적 재능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겠다고, 결국 나는 그 일을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암세포 는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수술로 완전히 제거가 되었다. 가장 최근에 받은 검사에서도 내가 다 이상 암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치명적인 병에 걸림으로써, 그렇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일을 나는 하게 되었다.
내 능력을 다해 창조하는 일. 첫 번째 소설을 끝내고, 그 소설을 영화화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지금 나는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을 '낮 직업'이라고 부른다. 그 돈으로 상위에 음식을 올려놓을 수 있고, 아늑한 지붕 밑에서 잘 수 있다. 또한 몇 가지 사치스런 일도 할 수 있다. 즉, 창작에 도움이 될 가장 좋은 장비를 구입했고, 창작을 위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최고로 행복하다. 나의 재능을 존중하고 있으며, 내 운명을 충족시킬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는 데서 스릴과 환희를 느끼고 있다. 거침없는 열정을 종이 위에 성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바로 그것이다.
- 로버트 H. 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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