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언어예절
잘못했으니 너그러이 봐 달라고 비는 것이 사과다. 사람이 아무리 바르고 곧게 산다 해도 일이 잘못될 때가 적잖다. 마음을 어지럽히고, 손해를 끼치거나 다치게 하는 등 살다 보면 사적공적인 잘잘못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잘못했다고 말하기를 꺼린다. 체면이 상하고 책임이 따르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사과할 일은 낯을 돌보지 말고 제때 하고 넘어가야 옳다.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자세가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는 길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모른다거나 잡아떼거나 뭉개는 태도는 어질지 못한 일이다. 흔히 잘못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잘못을 인정하라는 상대를 트집 잡아 윽박지르기도 한다.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다. 용서를 빌어도 받아들일 쪽 마음인데, 이 정도면 말이 통하지 않는 단계다.
일이 잘못된 데는 무능해서, 실수로, 게을러서, 일부러, 할 수 없이, 구조적인 문제로 … 연유가 숱하며, 사과 종류도 의례적인 것, 마지못해서, 말뿐인 사과, 묵은 사과, 대국민 사과 … 등 갖가지다.
세기에 따라 안됐다·미안하다·유감이다·잘못했다·사죄한다·책임지겠다 …에다 몹시·충심으로·깊이·대단히·매우·머리숙여·무척 … 같은 꾸밈말을 쓴다. 해명과 다짐을 아울러야 제격이다.
사과는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이자 문제를 푸는 좋은 방식이다. 보상이 따라야 할 때도 있다. 그 책임이 나라에 있을 때 ‘보상법’을 꾸리기도 한다. 나라 사이에서는 ‘사과’에 더욱 인색한데, 그 세기나 용어를 두고 협상을 하기도 한다. 주고받는 말이 아이들이나 동네 장삼이사의 말싸움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금낭화
풀꽃이름
요즘 주머니는 아주 단순하여 그저 양복주머니, 청바지주머니 등 실용적인 쓸모만 남았는데, 실상 우리 고유의 주머니는 실용적인 것에 아름다움이 더해진 지극히 미적인 물건이다. 특히 한복에는 조끼 말고는 물건을 넣을 만한 호주머니가 없어, 옛날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지녔다. 예쁜 주머니는 중요한 꾸미개였다.
‘금낭화’(錦囊花)는 주머니 모양으로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색도 고와 비단주머니꽃이다. 금낭화로 더 많이 이르지만 우리말 ‘며느리주머니·며늘치’도 있다. 새로 시집온 며느리가 차는 예쁜 주머니에서 땄을 법한 이름인데, 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등 며느리가 붙은 다른 풀꽃이름은 그야말로 며느리 수난사지만 좋은 뜻이 들어간 며느리주머니는 왜 금낭화에 밀렸는지 안타깝다.
영어로는 ‘블리딩 하트’(bleeding heart)인데, 꽃잎 아래로 희고 붉은 꽃잎이 늘어져 나오는 모습을 ‘피 흘리는 심장’이라고 매우 직설적으로 나타냈다.
달력에서 많이 본 금낭화를 이제 실제로 볼 수 있는 철이 되었다. 산과 들이 아니더라도 꽃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복주머니를 차 본 마지막 세대가 금낭화를 사면서 추억을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한겨레> 자료사진
바라다 / 바래다
여러분은 '바라다'와 '바래다'의 뜻 차이를 아시나요? 이 단어들은 잘못 쓰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틀리게 쓴 것이 어색해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쓰임을 한번 살펴보죠.
'요즘은 입대할 때 개별적으로 훈련소로 가지만 예전에는 모여서 입영열차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으레 집결지까지 바래다 주었지요. 훈련소에서 흙 묻고 빛 바랜 훈련복을 입고 뒹굴다 보면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훈련을 끝내고 새 군복에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퇴소 준비를 합니다. 그때 훈련병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어서 훈련이 끝나 그들처럼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다는 것이지요. '
'바래다'의 뜻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가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배웅하는 것입니다. 군대 가는 친구를 바래다 주는 것이 한 예가 되겠지요. 둘째 뜻은 볕이나 습기를 받아 색이 흐릿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빛 바랜 훈련복'이 그런 용례입니다.
'바라다'는 생각하는 대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이뤄지거나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위 글에서는 훈련병들이 빨리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퇴소하기를 바라지요. 이제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시험 잘 보길 바래.' '그러기를 바랬다.'에서 짙은 부분을 바람, 바라, 바랐다로 고쳐 써야 한다는 걸 아셨겠지요? 그렇다면 저의 바람은 충족된 셈입니다.
김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