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가라치
사람이름
태조 7년(1398년), 이방번의 종 박두언(朴豆彦)이 무리를 지어 난을 일으키려는데 김성부의 종 가라치(加羅赤)가 끼었다가 이숙번에게 일러바쳤다. 이로 박두언은 목이 달아났고 가라치는 상으로 옷가지와 쌀과 콩 열 섬씩 받았다.
豆彦과 豆乙彦(두을언)이 있는데 둘 다 ‘두런’을 적는다. 두런이란 이름은 사내이름으로 널리 쓰였다. 이와 비슷한 이름에 ‘두란’이 있다. 태조에게 가까운 벗이 있는데 북청에서 태어난 야인으로 ‘이지란’이다. 숨지며 태조에게 다른 나라에 와 죽은즉, 주검을 태워 도로 고향땅에 돌려보내 그곳 풍속을 따르게 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지란의 본디 이름은 ‘퉁 두란터물’이었다. 몽골말로 쌍둥이는 ‘두란’이라 적고 ‘두런’으로 소리 낸다. 표기와 표기된 내용의 이러한 모습은 중세의 사람이름에 두란과 두런이 함께 보이는 현상을 연상케 한다.
조선조에 정2품 이상 되는 벼슬아치는 중요한 공문서를 기름먹인 종이로 만든 곽에 넣고 다녔다. 이를 ‘가라치·거러치’라고 한다. ‘파일’이라는 외래어를 가라치로 바꿔 써도 좋을 듯하다. 가라치를 들고 다니는 사람(종) 또한 ‘가라치’라 불렀다. 종(隸/奴僕)은 훈몽자회에 거러치, 삼국유사에는 皆叱知(갯디)라고 했는데, 둘을 견줘 보면 같은 뜻이긴 하나 서로 이어대기 어렵다. 거지의 다른 말, ‘거러지’는 무슨 (밥)통을 들고 다니는 사람, 가라치/거러치의 비유가 얹혀 쓰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赤(붉을 적)은 ‘치’ 또는 ‘적’을 적으며 조선 후기까지 관습이 이어졌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상사화
풀꽃이름
서로 만나지 못해 애타게 그리워하는 상사는 안타깝다.
“인간 만사 이별 중에 독수공방이 상사난이란다∼”고 매화타령에도 나오지 않는가. ‘상사화’(相思花)는 잎이 모두 말라죽은 것처럼 없어졌을 때 비로소 꽃대가 올라와서 꽃이 핀다. 곧,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서로 보지 못하고 생각만 한다고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꽃말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다.
제주에서는 ‘말마농’이라 하는데, 통마늘처럼 생긴 비늘줄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터이다. 영어로는 ‘매직 릴리’(magic lily)라는데, 잎도 없이 꽃대만 훌쩍 서 있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붙은 이름이라 생각한다.
해마다 고창, 영광 등 남쪽 지방 여러 곳에서 ‘상사화 축제’를 연다. 그런데 실제로 핀 꽃은 꽃무릇(석산)이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이 마찬가지라 이름을 혼용하게 된 것인데, 제 이름을 찾아 ‘꽃무릇 잔치’라고 이르면 어떨까 싶다.
상사화는 꽃무릇보다 먼저 피고 키도 크다. 상사화가 애잔하게 생긴 데 반해 꽃무릇은 정열적인 빨간색이다. 그러고 보니 상사는 애틋함으로 말미암아 불타오르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명태와 이면수
날씨가 더워지면 생맥주 집에 손님이 늘어납니다. 그곳에서 안주로 땅콩과 함께 인기 있는 것이 노가리지요. 그런데 노가리가 어떤 물고기인지 아세요? 명태 새끼랍니다. 노가리는 속된 말로 거짓말을 뜻하기도 하지요. 명태라는 이름이 생긴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옛날 함경도 명천에 '태'씨 어부가 살았는데 그가 맛이 담백한 어떤 물고기를 잘 잡았답니다. 그 후 사람들은 명천 땅 태씨 어부가 잘 잡았다 하여 명천의 '명'과 어부의 성을 따 이 물고기를 명태라고 불렀답니다.
명태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선한 것은 생태, 얼린 것은 동태, 그냥 딱딱하게 말린 것은 북어, 추운 곳에서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말려 살이 포슬포슬하고 노랗게 된 것은 황태라고 합니다.
어부의 성명과 관계 있는 물고기가 또 있는데요. '이면수'라고 들어보셨지요? 등쪽은 암갈색이고 배쪽은 황백색이며 몇 줄의 검은 세로띠가 있는 물고기입니다. 흔히 이면수라고 쓰지만 그것은 틀린 것이고 '임연수어'가 표준어입니다. 조선 정조 때 서유구가 지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이 이 고기를 잘 낚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임연수어라고 한다고 돼 있습니다.
요즘 경기도 안 좋고 힘든 시기인데요. 기운이 없을 땐 시장에 가면 힘이 난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주말에 재래시장에 들러 어물전을 둘러보며 삶의 치열함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김형식 기자
kim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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