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빛
언어예절
몸가짐에서 공손함을 제일로 친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로서, 마냥 굽실거리거나 꼿꼿한 것과는 다르다. 어릴 적 숱한 가르침과 배움 끝에 나온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공부로 받쳐 주어야 유지된다. 튀거나 깨뜨리는 언행도 그 바탕에서 성금이 난다.
마음이 얼굴에 비쳐 드러나는 표정이 낯빛·얼굴빛인데, 말하지 않아도 이를 통해 사람 마음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 얼굴이 곧 마음의 거울인 셈이다.
굳이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어도 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이를 어른으로 친다. 살다보면 좋은 일, 궂은일이 겹치기 마련이고, 이를 제대로 건사하자면 자신을 무척 눌러야 하는 까닭이다.
이 덕목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과는 좀 차이가 난다. 솔직함은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는다는 점, 진실을 말한다는 점에서 큰 덕목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 아닌 남과 그 처지를 생각해야 하는 쪽에서는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자칫 ‘막말’로 발전하기도 한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웃는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히죽거리거나 싱겁게 웃거나 하면 실없어지고, 웃음거리가 된다. 웃으면서 뺨치기, 억지 웃음, 거짓 웃음, 비웃음들은 부정적인 쪽이다. 풍자나 우스개는 상품으로 만들어 사고파는 산업 영역이 된 지도 오래다.
언제나 웃음 띤 낯빛으로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이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 경계하기도 한다. 좋은 얼굴도 얼굴빛도 때와 곳을 가려야 함을 일깨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교복물림
북녘말
“벼수확의 10 이상이 교복물림처녀의 가느다란 팔에 실리였다.”(한웅빈·금수강산을 수놓는 처녀)
요즘 남녘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교복을 물려주는 일이 활발하다는데, 북녘에서도 그런 일이 많은 것일까? 그런데 ‘교복물림처녀’를 ‘교복을 물려받은 처녀’로 보면, 문장이 잘 해석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일과 교복을 물려받는 일이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북녘 말 ‘교복물림’은 ‘학교를 갓 졸업하여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이다. 남북에서 쓰는 ‘책상물림, 글방물림’과 같은 말이다.
‘물림’은 ‘밥상을 물리다, 책상을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곳으로 옮기다’를 뜻하는 ‘물리다’의 명사형이다. ‘책상물림’은 공부하는 책상을 물렸으니 금방 공부를 마쳤다는 뜻이고, 이는 곧 실제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글방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물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책상물림’의 영향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글방을 금방 나왔다면 역시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북녘에서는 ‘교복물림, 학생물림’도 쓰는데, 교복을 금방 벗은 것, 학생을 금방 벗어난 것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것은 남녘의 ‘교복물림’이다. ‘물리다’는 ‘재산을 아들에게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주다’의 뜻도 있는데, 남녘에서는 이 뜻으로 ‘교복물림’을 쓴다. 사실 ‘무엇을 옮기는 것’이나 ‘무엇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나 ‘대상물이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남과 북이 다르게 쓰고 있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이' '히' 거참 헷갈리네
깨끗히·깨끗이, 빽빽히·빽빽이, 다소곳히·다소곳이…. 어느 게 맞는 거야. 글을 쓰는 중에 부사어 끝음절 '이'와 '히'를 어떻게 구분해 써야 할지 한두 번 고민해 보지 않은 독자가 있을까.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소리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는 한글맞춤법 규정을 따르자니 정확한 발음을 들려줄 선생님이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만 알고 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다.
'이'로 적는 경우
①ㄱ받침으로 끝나는 순우리말 뒤-깊숙이, 촉촉이, 큼직이, 끔찍이, 그윽이 등 ②ㅂ불규칙 용언 뒤-날카로이, 너그러이, 가벼이, 새로이, 외로이 등 ③한 단어를 반복한 복합어 뒤-겹겹이, 번번이, 일일이, 틈틈이 등 ④ㅅ받침으로 끝나는 어근 뒤-깨끗이, 다소곳이, 버젓이, 산뜻이 등 ⑤'∼하다'가 붙지 않는 용언의 어간 뒤-헛되이, 실없이, 적이, 같이, 굳이 등
'히'로 적는 경우
①'하다∼'가 붙는 어간 뒤-조용히, 답답히, 과감히, 막연히 등
'이' '히'의 사용에 절대적인 규칙은 없다. '구구이(구절구절마다)' '구구히(떳떳하지 못하게)'는 뜻에 따라 두 가지 표기가 있다.'섭섭'은 한 단어가 반복됐지만 '섭섭'을 '하다'가 붙는 용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섭섭히'로 쓴다.
김준광 기자 illsank@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