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 에세이선
방황과 고뇌의 언덕
진실한 자기
세상에는 오직 진실한 사람만이 자기의 천성을 이룰 수가 있다. 자기의 천성을 이루는 사람만이 남의 천성도 이루어 줄 수 있고, 남의 천성을 이루어 주는 사람만이 사물의 성품을 이해할 수 있으며, 사물의 성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자연을 돕고 만물을 화육할 수 있다. 대자연을 도와 만물을 화육하는 사람은 천지에 참여하여 천지와 어깨를 겨누는 사람이다. 그 다음 위치의 사람은 특수한 부문을 연구하여 그것을 터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연구에 의하여 사람은 역시 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한 자기는 반드시 외부에 나타나는 것이다. 외부에 나타나면 뚜렷하게 된다. 뚜렷해지면 지식이 확실해지고 또는 빛을 발한다. 명료하고 빛을 발하는 지식은 활용된다. 활용되는 지식은 세력이 될 뿐 아니라, 그 세력은 감화력을 보급하게 된다. 세상에는 참 진실한 자기만이 감화력을 보급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진실한 자기를 소유하였다는 것의 한 속성이다. 국민이나 가족이 만약 어떤 흥할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길조가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망할 적에도 반드시 나쁜 징조가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것은 복점의 도구나 인체의 움직임에서 나타난다. 가령 행복이나 재화가 닥쳐오려 할 때에는 그것은 반드시 미리 알려진다. 좋은 일도 예지되고 나쁜 일도 예지된다. 그러므로 진실한 자기를 실현시킨 사람은 신과 같다. 진실이란 것은 자기를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률이란 인간 본체의 규율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은 물질적 존재의 시종(즉 실체)이다. 진실이 없으면 물질적 존재는 없다. 도덕인이 진실을 존중하는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진실은 자기 본체를 충족시킬뿐 아니라 외계의 사물이 그 진실로 인하여 하나의 존재를 얻기도 한다. 자기의 본체를 충족시키는 것은 도덕감이며, 외계의 사물의 성질을 충족시키는 것은 지성이다. 말하자면 도덕감도 지성도 우리들의 본체의 힘과 능력이 된다. 이것들은 정신력의 내적 또는 주관적 사용과, 외적 또는 객관적 사용을 결합시킨다. 그러므로 진실을 가지고 행하는 모든 일은 다 올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즉 절대적 진실은 불멸한다. 불멸하기 때문에 영원하다. 영원하기 때문에 자립적이요, 자립적이기 때문에 무한하다. 무한하기 때문에 광대심원한 것이며, 광대심원하기 때문에 초월적이고 이성적이다. 그것이 모든 존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광대심원한 것이다. 그것이 모든 존재를 포섭하는 것은 그것이 초월적이요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도든 존재를 충족시키고 완성시키는 것은 그것이 무한하며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광대심원함은 마치 땅과 같다. 그것이 초월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마치 하늘과 같다. 무한과 영원, 그것은 신 그 자체이다. 절대적 진실한 성질은 이와 같은 것이므로, 그것은 보이지 않으면서 나타나고,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효과가 있고, 작용을 하지 않으면서도 일의 종말을 맺는다. 자연적인 진로와 활동 속에 존재하고 있는 법칙은, 한마디로 그것은 그 자신의 변함없는 규율에 따르고 있으므로 만물을 낳는 법칙은 가히 측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은 넓고 깊고 높고 밝고 무한하며 영원하다. 우리 앞에 전개되어 있는 하늘은 다만 빛을 비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측량할 수 없이 넓게 퍼진 것에는 태양, 달, 별 및 성좌들이 걸려 있고 만물이 그 밑에 놓여 있다.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땅은 흙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넓고 깊은 땅은 거대한 산들을 지탱하여 무겁다 하지 않고, 하해의 물을 이끌어 흘려버리지 않는다. 우리 앞에 펼쳐진 산은 다만 돌바위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커다란 품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새와 짐승이 깃들어 살며 귀금속의 보화가 그 속에서 발견된다.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물은 다만 한방울의 액체에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측량할 수 없는 깊음 속에서는 용이나 거북이나 온갖 물고기가 살며 여러 가지 유용한 산물이 거기에서 나온다.
<시경>에 말하고 있다. "하늘의 명령은 그 얼마나 심원하고 영원한 것인가." 이것은 신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경>은 말하고 있다. "문왕의 도덕적 완성은 그 얼마나 훌륭했던 것인가." 이것은 문왕의 고귀성의 본질을 말한 것이다. 도덕적 완성도 또한 불멸의 것이다.
공자에 대한 찬사
성인의 도덕은 얼마나 위대한가. 한없이 흘러서 모든 조화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 높은 것이 하늘에 닿을 것만 같다. 그것은 얼마나 웅대한 것인가! 행위에 관한 3백의 대강과 3천의 세칙은 얼마나 당당한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최고의 도덕적 인격이 아니면 최고의 도덕률은 실현될 수 없다. * 구약성서의 <신명기>와 비교해 보라.
그러므로 도덕인은 자신이 지닌 덕성의 크고 강함을 존중하면서도 더욱 지식을 구명하고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식의 범위를 확대하면서도 더한층 세밀하게 인간의 지혜로써 헤아릴 수 없는 것까지 밝히려고 노력한다. 최고의 이해에 다다를 것을 구하는 동시에 더우기 중용에 따라서 자기의 행실을 바로잡는다. 이미 배운 것을 다시 조사하여 그 무슨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 낸다. 진실하고 소박하여 사회생활의 규율과 관습[예]을 잘 지킨다. 그러므로 그는 웃자리에 있어도 오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서도 반항하지 않는다. 가령 그 나라에 도덕적인 사회질서가 잡혀 있으면 그의 주장은 국민생활을 번영시킬 것이다. 그 나라에 도덕적인 사회질서가 잡혀 있지 않으면 그는 침묵을 지키면서 그 사회에 참여할 것이다.
<시경>에 말하고 있다. "총명과 양식에 의하여 그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에서 지킨다." 이것은 도덕자의 처세를 말하는 것이다.
* 우리들은 여기에서 '진실한 자기'를 실현하려면 외계적으로 융합하여야 하며 '중립'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천하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완전하게 하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필요하다. * 세 가지 중요한 일-지위, 인격, 역사에 호소하는 일.
가령 권위있는 지위를 차지하였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 직무에 적당한 도덕적 성질을 갖추지 않으면 이미 기성 종교제도와 예술제도(문자대로 예절과 음악)를 감히 변혁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 직무에 적당한 도덕적 성질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권위가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면 기성 종교제도와 예술제도를 감히 변혁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말했다.
"나는 하나라의 도덕적 종교적 제도[예]를 이해하려고 연구해 보았다. 그러나 그 제도들 중에 현재 기나라에 남아 있는 문헌이 충분하지 못하다. 나는 상(상-은)나라 왕조의 도덕적, 종교적 제도를 연구해 보았다. 그 제도는 현재까지도 송나라에 보존되고 있다. 나는 현재 주조의 도덕적, 종교적 제도를 연구했다. 그런데 현재 이것이 실시되고 있으므로 나는 실제로 이것을 따르는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의 수단과 방식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권위(역사적 증거)를 갖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적 권위가 결핍되면 신용을 얻을 수 없다. 신용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국민은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아래 있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방식은 아무리 그것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존경을 얻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존경을 얻지 못하면 따라서 신용을 얻지 못한다. 신용을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 국민은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에 관한 모든 방식은 자기 자신의 자각에다 기초를 두고, 모든 사람의 공통된 경험에 의해서 증명되며,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착오가 없고, 자연계의 움직임에 적응하여 모순되는 점이 없고, 신 앞에 내놓아도 의심스러움이나 두려움이 없고, 오랜 시대를 걸쳐서 후대의 성인의 눈으로 보아도 의문이 없다는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도덕률을 이해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움직이면 그것이 천하의 양식이 되고, 행하면 그것이 천하의 모범이 되며, 말하면 그것이 표준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도덕인의 경우에 나타나는 진실이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
<시경>은 말하고 있다. "저곳에 있어도 비난받는 점이 없고, 이곳에 있어도 미움받는 점이 없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그에 대한 찬사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이 찬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널리 세상에 인정을 받은 사람은 아직 하나도 없다. 공자는 원래 요임금과 순임금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문왕과 무왕에 의해서 수립된 사회적 종교적 법칙의 체계로 이를 완성시켰다. 그 모든 율법은 하늘에 있어서는 4계절의 변화를 다스리는 섭리에 조화하고, 땅 위에 있어서는 물질 자연의 속에 나타나는 도덕적 상징에 적합한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그 도덕률은 천지에 의해서 만물을 지배하는 법칙과 더불어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도덕률은 사철이 순서대로 잇따르고 해와 달이 밤낮으로 교대해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체계를 이루고 있다. 온갖 조화가 각자의 체계와 질서에 의하여 생장 발전하여 서로 손상을 끼치는 일이 없으며, 자연의 모든 활동이 그 정해진 길로 나가면서 갈등 또는 혼란이 없이, 작은 정력은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르는 곳마다 침투하는 한편 큰 조화력은 묵묵히 착실하게 나아가는 것은 모두 다 이같은 법칙의 체계에 의한다. 우주에 이렇게 위대한 현상을 주는 것은 유일의 체계이다.
총명, 예지, 관찰, 이해-즉 명령을 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품성, 대도, 관용, 인자, 온화-즉 참고 너그럽게 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품성, 독창성 정력 강건 결단-즉 꾸준하게 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품성, 경건 엄숙 정제 준칙-즉 위엄을 나타낼 때 필요한 여러 가지 품성, 문아 이법 명민 예리-즉 비판적 판단을 할 때 필요한 여러 가지 품성, 이 모든 품성을 한몸에 결합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완전한 도덕적 천성을 지닌 사람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의 천성은 전체가 포괄적이요 광대한 것이다. 생명의 활동력으로써 끊임없이 용솟음쳐 나온다. 뿜어나오는 샘처럼 속깊이 다함이 없다. 전 포괄적이고 광대함이 하늘과 같고, 그 속의 깊이가 다함이 없는 것이 못[연]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인물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숭경할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모두가 그대로 믿을 것이다. 그가 행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모두가 기뻐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명성은 문화의 개국 전체에 널리 퍼지고 미개국에까지 널리 퍼져서 주차의 이르는 곳, 사람의 힘이 미치는 곳, 하늘이 덮이는 곳, 땅이 지탱하는 곳, 해와 달이 비치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 이 세상 어디든지 이를 것이다. 생명과 호흡을 지닌 모든 생류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마땅히 하늘에 비교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기본관계를 정돈, 조절하고 도덕의 근본적인 모든 법칙을 정하며, 우주의 성장과 뭇 재생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진실한 자기"를 실현한 그 한사람뿐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은 그 자신 이외의 어디에서 그런 힘과 지식이 솟아나는 것일까. 그의 참 인간성은 얼마나 소박하고 자제적인가. 그의 마음의 깊이를 어떻게 측량하여 알 수 있을까. 그의 천성의 도덕적 높이는 얼마나 무한한 높은 차원을 가졌는가. 가장 완전한 예지를 입어, 가장 높은 천덕을 받아 그 도덕적 발달이 신의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누가 이같은 인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 진례는 이 구절을 인-참다운 인간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