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 에세이선
방황과 고뇌의 언덕
인내성
이제 가장 나쁘고 놀라운 특징인 참을성과 무관심, 그리고 노회함이 어떻게생겨났는지 알아보자. 이것은 문화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생긴 것으로서, 중국인의 본디의 정신구조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수천년 동안 우리가 어떤 문화적 사회적 영향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이 달라지게 된다면 그러한 병폐들도 이에 따라 없어지거나 혹은 줄어들 것이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참을성은 인구과잉과 경제적 압박 속에서 별로 움직일 여유가 없었던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특히 중국 사회의 축소인 가족제도의 결과로써 생겨난 것이다. 무관심은 주로 개인의 자유에 대해 법적 보호와 제도적 보장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노회함은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도교의 인생관에서 생긴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같은 환경에서 생겨난 성질들인데, 한 가지마다 하나씩 원인을 말한 것은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이다.
중국인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참을성이 중국인의 고상한 덕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너무나 참을성이 많아서 이것은 점점 악덕이 되어 가고 있을 정도이다. 중국인들은 서양 사람이 견딘 것보다 더 많은 전제정치, 무정부상태, 학정을 참아 와서 이런 것들을 자연의 법칙의 일부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천의 어떤 지방에서는 30년치 세금을 미리 내면서도 집안에 숨어서 투덜거리는 정도의 반항조차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청자기가 독특하듯이, 기독교인의 참을성은 중국인의 그것에 비하면 성급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참다운 개성은 모방할 수 없는 것이니만큼 세계의 여행자들은 중국에 이 청자기뿐만 아니라, 이 참을성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퍽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작은 고기가 큰 고기입 속으로 들어가듯이 폭정과 착취를 당하며 살아 왔다. 만일 우리의 이 참는 능력이 좀 더 적었다면 고생도 그만큼 적었을지 모른다. 이 모욕을 참아내는 능력이 인내라는 미명하에 고상한 것처럼 꾸며지고, 특히 공자의 윤리관에 의해 중요한 덕인 것처럼 가르쳐져 왔던 것이다. 나는 이 참을성이 중국인의 훌륭한 성품중의 하나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세상이 저희 것이로다." 라고 하셨는데, 이 중국인의 참을성은 겨우 대륙의 반쪽만을 차지하고 그것을 지켜오게밖에 하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싶다. 중국인들은 이 참을성을 아주 훌륭한 도덕인 것처럼 의식적으로 가르쳐 왔다. 우리 속담에, "조그만 고생을 참지 못하는 자는 큰 일을 이룰 수 없다(소불인즉난지대모)." 라 하고 있다. 이 참을성을 배우는 학교는 곧 대가족제인데 이곳에서는 많은 의붓딸, 배다른 형제들과, 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매일매일 서로서로 참아가면서 이 덕을 배우는 것이다. 방문을 잠그고 있는 것이 무례한 행위로 취급되는 대가족제에서는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대인관계에 있어서 서로 참고 조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매일매일 성격 형성에 미치는 이 더디면서도 깊은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대에 장공예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그의 집안은 9대가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사는 복을 받았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한 번은 당나라 고종이 그에게 그 행운을 가진 비결을 물으니, 종이와 붓을 청하여 참을인 자를 백 번이나 썼다 한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가족제도에 대한 서글픈 표현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그의 경우를 부러워하여, "백 번 참는다."는 말은 오늘날까지 도덕적인 금언으로 통하여,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붉은 종이에, "평온한 집에 복이 온다." "참는 것이 제일 좋은 가풍이다." 등을 써서 집집마다 대문에 붙여놓는 것이다. 그런 가족제도가 존재하고 사회가 이러한 원리에 입각하고 있는 한, 인간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조화되어 사는 것으로써 이루어지니만큼, 참을성이 최고의 덕으로 간주되면서 사회조직에서 계속 자라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참을성은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번역의 방법에 관하여
내가 취한 번역의 방법에 관해서 다시 더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 나의 번역은 석의와 구별이 붙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좋고 만족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정은 다음과 같다. 고전은 언어의 용법이 매우 간략화되어 있다. 이것은 물론 죽판에다 글을 쓰는 방법이 취해진 때문이다. 중요한 관념과 각종의 품격을 나타내는 특성 묘사는 대체로 철해 놓은 말에 의하여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어 문법의 일반적 성질상으로 보아 의미의 지시는 영어 통유의 접속사에 의한다기보다도 오히려 조사법 즉 어휘의 배열에 의하여 되어 있다. 두 가지의 극단적인 예를 중국어의 형으로 표시해 보려고 한다.
"Confucius Completely-cut-off four-no idea-no must-no ku-no I;Language expressive only." ('자절사. 무의, 무필, 무고, 무아', '사달이이의')
번역자에 의해 접속사가 보충되지 않으면 번역은 실제상 읽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접속사나 부연을 위한 구절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가는 어쨌든 번역자의 자유재량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번역자에게 있어서 공자의 교의에 대한 자기의 통찰 이외에는 의뢰할 만한 지도표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주석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옛날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것과 같은 말의 외연과 내포를 결정하는 일이다.
다음은 그 특수한 의미와 부여된 문장 중의 의미의 배합을 결정하는 일이다. 고라는 상술한 말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 말은 여러 가지 종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강하다' '완고한', '고집', '협량', '무교육', '지식이 한정되어 있다', '때에 또한' 이러한 상이 되기에 가능한 의미로부터 번역자는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함과 동시에 또한 중국 고전의 번역자에게 허용된 권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선택하여진 말이 다름에 따라서 구절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같은 경우에서 말한다면 나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공자는 네 가지 사실을 비난했다(또한 어디까지나 도망치려고 했다), 즉 자의, 독단, 협량 및 이기를'. 무필이라고 하는 구절을 해석하는 데는 '특정의 과정을 변명하지 말라'는 뜻을 붙일 것인가, '강정하지 말라'고 뜻을 취할 것인가, '완강하지 말라'고 뜻을 취할 것인가, 또한 '자기가 반드시 바르다고 생각하지 말라'(즉, 독단적이 되지 말라)라는 뜻을 취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물론 크게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러한 번역의 어느 것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석의가 품어 있지 않은 것은 없다.
'무의라는 문구를 번역하는 경우에는 나도 이것을 석의해서 '선입관념에서 출발하지 말라' 또는 '임의대로 하지 말라'라는 의미를 취했다. 이것은 중국어에 '의'라고 하는 말의 일반적 의미에 관한 지식과 공자행위의 전체적 성질의 통찰을 기초하여 의미의 배합 또는 뉘앙스를 살린 것이다. 그러나 '선입관념'이라든가 '자의'라고 하는 문구의 사용의 경우 중국어의 '의'속에 품고 있는 사실을 간신히 표현하는 데 머문 것뿐이다. '예, 인, 신, 충'등과 같은 비교적 기초적인 개념의 경우에 나는 이것들의 말을 임시로 머리 속에서 기정한 영어의 개념으로 번역하고, 그 다음은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일군의 텍스트를 훑어보고 최대 다수의 경우에 가장 적합한 역어를 선택해 내는 방법을 취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하나의 말이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물론 짐작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보통 '예의' 또는 '의식'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예'라는 말이 공자의 일반적인 사회철학의 경우에는 '사회적 질서의 원리'라고 해석되고, 개인의 행함을 취급하는 구절의 경우에는 '도덕적 규율'이라고 해석하지않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달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인'이란 말을 '친절', '자선', '박애'라든가 하는 말로 번역하는 것은 전혀 부적당하다고 본다. 이 말은 '참인간', '위대한 인간',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하는 공자의 이상에 맞도록 나타낼 것이라는 결론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신'은 '정직', '약속을 지킨다'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후자의 품성일수록 공자는 항상 경멸하고, 자기 자신의 행함의 경우에는 사실상 여기에 뜻을 가지지 않을 정도이다. '신'은 때로는 '국내에 있어서의 상호적 신뢰'의 상태를 의미하고 때로는 '충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번역을 실제로 하는 경우에, 번역자는 문장의 의미를 잡은 후에도 두 가지의 일에 직면했다.
첫째는 다수의 동의어 속에서 그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정확한 말을 선택하여 놓으면 말해 놓은 그 뜻이 명료하게 전해진다는 것이 극히 어렵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덕'이라는 말은 항상 '덕조' 또는 '인격'이라고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도 전혀 무슨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기불칭 기력, 칭 기덕야'라고 공자가 말했는데,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뜻이 명확하다. '준마를 설명할 때는 그 역량을 상찬하는 것보다 그 기질을 상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격'에 대한 이같은 말이 다른 문장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고 있다. '자왈, 덕유자필유언. 유언자불필유덕.' 여기에서는 '인격'이라든가 '덕조'에대한 말을 영어의 '혼(soul)'이라는 말로 번역한 다음에야 그 의미가 명료하게 된다. 즉 "공자가 말했다 - 아름다운 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말하는 데 가치있는 사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아름다운 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또한 다른데서는 같은 말이 '덕음'이라는 구절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을 '덕 있는 음'이라고 번역한다면, 어느 정도 학자다운 충실한 인상을 줄지는 모르나 사실은 '성락'을 의미하는 것에 관한 학자선생측의 이해의 결핍으로 인하여 뜻이 가리우는 것밖에 안 된다.
또 공자가 말했다. "사즉(칙)불손. 검즉고. 여기불손야. 영고." 사치와 겸양 간의 관련은 전혀 애매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것을 석의하여, 사치하게 사는 사람은 스스로 정신을 빼앗기기 쉽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이 관련이 명료하게 된다. 구석진 데 없이 명료한, 적합한 번역은 이러므로 말의 확실한 선택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될 줄로 믿는다.
공자가 말했다. "사치하게 사는 사람은 치우치는(정신을 빼앗기는) 성격인 것이다. 간소하게 사는 사람은 완고하기 쉽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치우치는 편보다 완고한 편을 취하겠다(또한 치우치는 사람보다 완고한 사람을 취하겠다)."
번역자의 두 번째 할 일은 비교적 정밀한 근대어의 개념을 사용하여 사상을 나타낼 일이다. 번역자는 접속사를 보충할 뿐 아니라, 관념보다 한층 더 월등한 정의를 보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문이 매우 무미건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술의 실례 '사달이이의'에 관해서 말하자면, 현대의 역사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달의는 언어의 유일의 원칙이다.' 또는 '달의는 수사학의 유일한 관심사 또는 목표 또는 원칙이다." 하여튼 이 구절의 해석방법이 적어도 10개 이상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번역자가 <원칙>이라든가 <목표>라든가 <관심사>라든가 <표준>이라는 말에 미끄러져 들어갈 것만은 필정한 일이다. 번역이 읽기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 이것은 전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괄호의 사용 - 본역서 중에는, 상술한 모든 곤란을 빠져나간 후에도 나는 괄호의 사용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괄호는 두 가지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된다. 제1은 대신하는 역문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것은 보통 "(또는...)"으로 표시된다. 특성의 해석이 유일한 바른 해석이라는 것은, 누구도 보증할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제2는 후주를 참조하지 않고 텍스트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설명사항을 위하여. 이런 공부가 없으면, 이러한 증명적 조합이 한이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경우의 괄호는 독자가 어떤 구절을 시작하여 읽고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도의 설명을 보충하기 위할 때만 사용된다. 그리고 후주는 나 자신의 주해와 다른 참고자료를 위하여 주어져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