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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442 호
단기 4341. 6. 5 (음력 5. 2)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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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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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해양문학상 공모요강
해양문화재단과 (사)한국문인협회는 해양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제2회 해양문학상 수상작을 공모합니다. 역량 있는 신인 작가 및 기성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접수 : 2008년 8월 1일부터 31일까지
받는 곳 : (110-780) 서울시 종로구 인의동 28-9 인의빌딩 901 (재)해양문화재단 사무국 해양문학상 담당자 앞 (전화 : 02-741-5278/9) * 겉봉투에 응모 부문과 작품 편수를 기입
발표 : 당선자는 2008년 9월 25일 개별통지 및 국토해양부(www.moct.go.kr), 한국문인협회(www.ikwa.org)홈페이지에 게시
공모 부문 및 상금(원고 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 바다를 배경으로 하거나 주제인 작품이어야 함
- 상금
부 문 |
대상 |
최우수상 |
우수상 |
장려상 |
가작 |
전 부문 |
1,000만원 |
500만원 |
300만원 |
200만원 |
100만원 |
- 공모부문
부 문 |
소설(중편) |
희곡 |
시 |
동시 |
동화 |
편수/원고량 |
120~300장내외 |
100장 내외 |
5편 이상 |
5편 이상 |
20장 내외 |
응모 요령
① 모든 응모작품은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하며, 기성작가의 경우 등단 10년 이내로 출품을 제한함 ② 동일한 원고를 타 기관의 문학공모에 중복 투고시 심사에서 제외되며, 추후 확인될 경우 무효 처리 ③ 작품 첫장에는 응모부문, 주소, 본명, 나이, 이메일, 연락처(자택 및 휴대전화)만을 기재해야 하며, 본문에는 작품 내용 외 일체의 표시를 해서는 안됨 ④ 모든 응모작품은 디스켓 1부, A4용지 복사본 3부 제출 ⑤ 마감 당일 우편 소인이 찍힌 응모작까지 유효 ⑥ 정해진 원고량을 10%이상 벗어난 경우 심사에서 제외될 수 있음 ⑦ 중편소설, 희곡 부문 응모자는 원고지 10장 안팎으로 응모작 내용을 요약한 줄거리(시놉시스)를 작성해 원고 앞에 첨부
기타
① 대상 당선작은 미등단일 경우 한국문인협회 가입을 추천함 ② 접수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으며, 입상작의 저작권은 주최 · 주관 기관에 귀속됨 ③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해양문화재단 홈페이지(www.ocf.or.kr)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주최 : (재)해양문화재단 후원 : 국토해양부, (사)한국문인협회,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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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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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는 질질 끌면서 하는 자살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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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글터 →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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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사평
땅이름
한강은 옛날 ‘사평’(沙平), ‘사리’(沙里)로 불린 적이 있다. <용비어천가> 제14장에 “한강은 옛날에 일컫기를 사평도라 불렸으며 속칭으로 사리진이라고도 했는데, 근원은 오대산에서 출발하여 영월군 서쪽에 이르러 ‘가근동’(加斤洞)에 합류하고, 충주 달천(達川)과 합쳐 연천(淵遷)을 이루며, 서로 흘러 안창수와 합치고 여흥부에서 여강이 되며, 천령현에서 ‘이포’(梨浦)를 이루고, 양근군의 ‘대탄’(大灘)과 ‘사포’(蛇浦)를 이루는 것이 하나의 줄기”라고 풀이했다. ‘가근동’은 한글로 적었고, ‘달천’은 ‘달내’, ‘연천’은 ‘쇠벼ㄹ. ’, ‘이포’는 ‘ㅂ.ㅣ애’, ‘대탄’은 ‘한여흘’, ‘사포’는 ‘ㅂ.ㅣ얌개’로 표기하여 토박이말과 한자말의 대응관계를 보였다.
‘이포’와 ‘ㅂ.ㅣ애’, ‘사포’와 ‘ㅂ.ㅣ얌개’, ‘대탄’과 ‘한여흘’의 대응은 쉽게 알 수 있고, ‘연천’의 ‘연’도 ‘소’를 옮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강’의 또다른 이름인 ‘사평’과 ‘사리’는 어디서 비롯됐는지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이 ‘벌’을 뜻하는 한자말이라는 점, ‘사리’가 속칭으로 기록된 점을 고려한다면, ‘사평’과 ‘사리’는 ‘서울’의 원형인 ‘서벌’ 또는 ‘서라벌’과 같은 형태의 말임을 알게 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경주부’ 역이름 중 ‘사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을 ‘활리’(活里)라고도 했다. ‘사리’가 ‘살다’와 관련이 있음을 뜻하는 셈이다. ‘사평’, ‘사리’, ‘활리’ 등은 ‘삶’을 뜻하는 우리말을 적는 또다른 방법이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글틀
언어예절
시, 소설 같은 지은이의 정서와 개성이 담긴 글에서 표현이나 글틀을 들추어 잘잘못을 말하기는 어려운데, 공문서나 법률 등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영향이 두루 미치거니와 그 됨됨이가 여타 글의 본보기가 되는 까닭이다. 양식과 틀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런 쪽으로 걸러지긴 하지만, 틀린 것도 마냥 쓰면 기득권을 얻는 데까지 이른다. 개인은 조심하면 되지만 제도는 고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증 제1호/ 당선증/ 한나라당 이명박/ 귀하는 2007년 12월19일 실시한 제17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당선인으로 결정되었으므로 당선증을 드립니다./ 2007년 12월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이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정한, 공직선거관리규칙 별지(제58호) 서식대로 박은 대통령 선거 당선증 문안이다. 당시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박아내 널리 알려졌다.
여기서 우선 걸리는 게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다. 그냥 ‘대통령 선거에서’가 낫다. 한자 어조사 어(於)를 ‘니 오이테’로 읽는 일본말투를 그대로 뒤친 게 ‘에 있어서’인데, 이런 군더더기가 법령문에도 흔하다. 이 서식에는 “‘○○선거에 있어서’ 다음에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 … 자치구·시·군의원 선거에 있어서는 …을 각각 삽입하며 …”라는 설명을 덧붙여 지방선거·대선·총선 때 두루 활용하도록 했다.
손질하면 “귀하는 ○○○○년 ○○월○○일 치른 제○○대 ○○○선거에 후보로 나서 당선되었기에 이 증서를 드립니다” 정도다.
이런 일로 선거 뒤끝이 웃음거리가 안 됐으면 좋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제갈공명을 군사(軍師)로 맞이해 극진히 모시자, 관우와 장비는 당시 37세인 공명에게 그토록 머리를 숙일 필요가 있느냐고 반발했다. 유비는 '내가 공명과 함께 지내는 것은 물고기가 물속에 있는 것과 같으니 두 번 다시 이러쿵저러쿵하지 말아주게'라고 말했다. '임금과 신하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이'를 일컫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지금은 절친한 친구 사이를 말할 때도 쓰인다.
그런데 위의 '끊을래야'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끊으려야'가 맞다. '끊을래야'는 '끊을라고 해야'가 줄어든 말인데, 여기서 '-ㄹ라고 해야'는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려고 해야'가 바른 표기다. '-(으)려고'는 어떤 행동을 할 의향이 있음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따라서 끊겠다는 의향을 나타내려면 '끊으려고 해야'로 써야 하는데 이것이 줄어들어 '끊으려야'가 되는 것이다.
'언어와 사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나 '도저히 먹을래야 먹을 수 없는 음식'에서도 '뗄래야''먹을래야'는 '떼려야''먹으려야'로 써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우정(友情)은 영원한 것이어서 친구가 돈을 꾸러 올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마크 트웨인의 이 비아냥거림을 물리칠 만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여러분에겐 몇명이나 있는지요.
최성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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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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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삼절
삼절이라면 흔히 시서화를 말한다.
즉 선비의 점잖은 그림인 문인화에서 그림과 찬으로 쓴 글과 그것을 화면에 써 넣는 글씨 세 가지가 다 최고 수준에 있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기 때문에 이런 말로 호칭한다. 우리 나라로는 정조 때 자하 신위 같은 이가 그럴 정도다.
그런데 여기 얘기하는 삼절은 다르다. 이조 중엽에 송도(지금의 개성)에 황진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인물도 뛰어났으려니와 글도 짓고 속류에 휘말리지 않아 스스로 높이 처하였다. 그래 그 기생이 송도에 다시 없이 뛰어난 것으로 산수 경치에 박연폭포, 남자로는 화담 서경덕 그리고 자신 이렇게 셋을 꼽았던 때문에 얘깃거리가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또 많은 소설가에 의해 윤색된 일이지만 당시에 도학 높다는 사람의 여색에 대한 태도를 시험해 봤더란다. 첫째 유학자인 퇴계 선생은 담담하려고는 하나 무척 고민하는 눈치였고, 둘째 화담선생은 자신의 요구대로 쓸어안아 주기까지 하는데 마치 물건이나 다루듯 전혀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면벽 9년의 생불 스님이라는 지족선사를 시험해 봤더니 전혀 접근도 못하게 하다가, 그만 유혹을 배기지 못하고 파계하고 놀아난다. 세상에서 이것을 망석 중이라 하고, 이것을 제재로 한 야단스런 춤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진이는 자신을 가지고 이렇게 삼절을 꼽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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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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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감의 세계 - 저 : 해롤드 셔어먼 / 역 : 안동민
제2장 마음의 신비의 탐구
1. 마음의 신비의 탐구
나는 마음의 힘에 대한 강연을 하거나 그 밖에 오찬을 같이 하는 모임에서 마음의 신비에 대해 질문을 받는 일이 자주 있다.
"만약 노상에서 차가 조그마한 고장이 생겼을 때 수리공장까지 가지않고도 고장을 고칠 수 있을 만큼 차의 내연 기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회원의 약 60% 정도는 손을 들고 자신의 기계에 대한 지식을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미끼를 준비하면 다음에는 함정을 설치한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여쭈어 볼 마씀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선 각자 퍽 훌륭한 감수성을 부여받은 기구를 머리 속에 넣고 계십니다-즉 이것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만-오늘날까지 만사를 성취하실 수 잇으셨던 것은 모두가 다 이 힘에 의존했던 셈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래의 행복이나 성공도 똑같이 오로지 이 마음의 작용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자신의 마음은 어떤 모양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여러분 가운데서 누구든지 대답하실 수 있으신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지금껏 손을 든 사람이 없었다. 어쨌든 모든 사람이 조용해졌을 때에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좀더 능률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루중 몇 분 정도는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를 깊게 해 가도록 하셔야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현재의 여러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상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또는 그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방법, 그리고 생명과 생활에서 참다운 가치가 되는 것 등을 근본적으로 결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에는 언제나 주목해야 될 만한 것이 있다. 자기에 대한 그러한 지식을 얻고 싶다고 하는 생각이 확실히 전달되어 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서 확실히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지식을 알기 쉽고 응용하기 쉬운 형태로는 손쉽게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원에 나무를 심는 법, 어린이를 기르는 법, 시어머니와 사이 좋게 지내는 법, 카드 놀이를 하는 방법 등 모든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한 지도서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작용시키는 기법은 어찌된 영문이지 시행착오식으로 혼자서만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초감각적 사실이 뜻밖에 나타날 때는, 언제나 사람들은 그러한 일을 우연 아니면 실제와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여기거나 혹은 그 현상을 기분 나쁜 것으로 생각하여, 경외하여 신비화 시키든가 그 어느 한 쪽이었다. 당신의 반응이 어떤 것이든 간에 특수한 능력이라든가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강한 감수성이 없으면, 이런 종류의 '초상적'사건은 대개 숨겨 두거나, 알아 주리라고 믿는 친구 혹은 친척에게만 이야기하게 된다. 또 이 능력의 취급방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거나 초감각력을 의식적으로 제어하기도 하고, 지시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법을 소개하려고 시도한, 초감각적 지각 문제에 대해서 쓴 저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유용한 효능을 갖고 있는 면이 있는가 하면, 똑같이 그 함정까지도 명백하게 지적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중대한 책임이 뒤따르게 되는데, 명백한 잘못에 의해서 잘못 전달됨으로써,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여 정신이상자가 되어 진실된 현상을 포착할 수가 없게 되어 자기 기만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일도 흔히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초감각적 능력의 사용 방법에 대한 믿을 수 있는 기초적인 교육이 절실하게 요망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이 초감각력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많이 있다. 주의를 기울이면서 미지의 세계에 들어감에 따라 이 탐구가 그처럼 주의를 요하기도 하지만 매우 뜻깊은 결과를 약속해 준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쓴 방법이나 내가 얻은 체험은 당신에게 안전한 길잡이가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자신의 연구와 실지 연습으로 증명할 수 없었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솔직하게 인정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제안하는 방법을 충실히 실행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도 좋다고 말했을 때에는 그런대로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반드시 여러분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청년의 몸으로 실험 연습을 시작했을 때 될 수 있는 대로 같은 또래 사람들과 같이 하려고 결심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와 같은 실험법을 제안해 보아도 그 무렵의 나이 먹은 사람들은 거의 곧이듣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의 이유는 젊은 사람은 보통 마음이 맑고 새로운 사상을 잘 받아 들이며, 육체적 혹은 정신적 모험이라면 무슨 일이든 개의치 않고 기꺼이 해본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공동 실험자를 신중히 선정할 필요가 있었다.
2. 오전 2시의 기적
토마슨 허드슨의 저서에서 발췌한 것을 호우머라는 이름의 고등학교 친구에게 읽어 주고 전등가설 배선공에 대한 내 체험을 이야기했더니, 바로 나와 텔레파시 실험을 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잠을 자고 있어서 의식이 작용하지 않을 때에 염사를 보내는 편이 쉽다고 허드슨이 기술하고 있었으므로 호우머는 이렇게 제안했다.
"어느 날 밤에 내가 잠자고 있을 때 염사를 보내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나를 깨우면 어떻겠나? 나는 잠들면 좀처럼 잠이 깨는 일이 없지."
나는 아주 손쉬운 이 실험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예상하고 있으면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 염려스러워서 호우머에게는 곧 바로 실행에 옮길 마음은 없다고 말해 두었다.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이에 그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호우머는 말했다. 그는 내 편에서 보았을 때 시내 반대쪽에 살고 있었으며, 학교는 같았으나 실험이 끝날 때까지는 만나지 않기로 했다. 이야기가 있은 후 3일째 되던 날 밤에, 보통이면 집에서 잠자고 있다고 호우머가 말한 시간에(밤 10시경) 나는 침실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창 밖의 밤하늘을 바라 보기도 하고 2백 미터 전방에 있는 법원의 둥근 지붕에 달린 시계를 보기도 하면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호우머의 사진이 실려 있는 고등학교 연대기를 놓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와 똑같이 소리로도 내어 이야기를 걸어 봄으로써 호우머의 용모를 심안에 그리고, 그것을 상념 전달에 도움이 되게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착상이다. 두 눈을 꼭 감고도 그의 모습이 마음 속에 떠 오를 때까지 호우머의 사진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에게 주의를 집중한 후 될 수 있는대로 감정을 말에 담아서 이야기해 보았다.
"호우머군, 나는 해롤드일세. 새벽 2시 정각에 눈을 뜨고 거리의 시계가 2시를 알리는 순간에 나를 상기해 다오!"
15분 정도 이 말을 되풀이 하고 때로는 눈을 뜨고 창 너머로 거리의 시계를 노려보고, 바늘이 오전 2시를 가리키는 것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그 후에는 눈을 감고 마음 속에 그린 지금의 모습을 기억했으며, 이번에는 호우머에게 의지의 힘을 담아서 보냈다. 그러자 어떤 에너지가 나 자신으로부터 사라녀 가는 것을 느꼈다. 더구나 그것은 그 무엇에도 받아 들여지지 않은 듯한, 꽤 감정적으로 긴장되고 약간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호우머의 잠재 의식과 접촉했다가 바로 딱 거절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좀 더 강하게 하여 그에게 통신을 전달하려고 했다. 보내고 있었던 통신이 마침내 호우머의 마음에 발판을 발견한 듯 갑자기 기분이 아주 편안해졌다. 그래서 그 실험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았다.
"잘 있었나 호우머! 어때 잘 됐나?" 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정말 효과가 굉장한데!" 하면서 호우머는 흥분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몇 시에 깨우려고 했는가!" "거리의 시계가 꼭 2시를 알렸을 때야!" "바로 그것이다!" 라고 호우머는 외쳤다. "그러나 절대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해 주지 말아 주게! 완전히 잠이 깨어 버려 밤새 뜬눈이었네. 자네가 방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 이마에 손을 댄 것 같았네. 꼭 그때에 거리의 시계가 2시 정각을 알리고 있었네. 무시무시하기도 했지. 일어나서 전등을 켰을 때까지는 자네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응! 거기에는 무엇인가 뚜렷한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야!"
호우머가 이 실험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현상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오후 11시 쯤에 호우머에게 정신을 집중했으니까 이쪽 상념을 틀림없이 그때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정한 시간에 호우머가 눈을 떴다고 한다면 '후기성 텔레파시'라고나 할까. 거리의 시계가 치고 있을 때에는 나도 자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잠재의식이 약속한 2시라고 하는 시간에 호우머를 깨운 것일까. 실제로 호우머의 몸에 손을 대고, 더구나 아마도 그의 방에 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에너지가 2시라고 하는 시각에 나의 몸으로부터 빠져 나갔단 말인가? 나는 그 무렵에는 유체이탈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혹은 그러한 사건을 의식적으로 조금도 자각하지 않고 육체를 떠나 그를 방문했을 가능성도 생각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올바른 해석이 어떤 것이든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근래에는 꽤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나는 통신을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보내는 쪽 사람의 영상을 마음 속에 그려 둔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정면을 향한 호우머의 사진을 응시하면서 나는 직접 그와 접촉하고 있었으며, 시간과 거리가 제거된 느낌이 되었다. 그의 눈을 들여다 보고 통신을 몇 번이나 되풀이 하고 있을 때 우리들 사이에 회로가 이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호우머가 깨어 있었다면 나의 상념을 잠재의식으로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의식이 무엇인가 다른것에 집중하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잘 되었을지는 의심스럽다.
배선공의 의식에서 '전등을 켜지 마셔요'라는 인상을 받았을 때 나의 전 신경은 불빛이라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것을 받아 들이기 위한 조건은 이상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위에 배선공의 감정도 자극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송신을 성공하게 한 강력한 요소였다고 나는 그때 확신했다. 호우머와의 경우는 분명히 대지급이라는 느낌을 나에게 환기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이쪽 통신을 받으라고 하는 강한 희망을 송신하는 배후에 작용시키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결과로 용기를 얻었고, 마음으로부터 함께 실험을 하는 피실험자를 또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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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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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어당 에세이선
나의 명상록
공자의 유우머
쾌락과 거리가 먼 송대의 공론가들은 공자가 여유있는 모습에 유쾌한 생활을 했다는 나의견해와는 다른 입장에 서 있다. 공자는 소박하고 위대하므로 이를 인식시키는데 도움을 주기위하여 나는 이 글을 쓴다. 공자는 값싼 재사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재치있는 말을 곧잘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스스로 탐구하지 않는 사람은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아는 자의 특징이다(이것을 직역해서 말하면 아는 것을 알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곧 아는 것이다)."라든가, "잘못된 일을 범했음을 알면서 이 잘못을 바로잡지 않는 자는 또다시 한 번 잘못을 범하는것이다."등등.
가끔 공자는 시적인 유우머와 파격적인 언사를 썼다. <시경>에 어떤 여인이 부른 노래가운데,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사모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남자의 집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이라고 불평을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공자는 이 구절에 대하여 평하기를, "그 여자는 사실상 애인을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간절히 생각했다면 남자의 집을 어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꼈으랴?"라고 했다.
우리가 공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유우머는 전체적으로 최고급에 속하는유우머이다. 즉 자기를 희생시켜 가며 웃길 수 있는 유우머이다. 공자는 자기 자신의 외모에 나타난결함을 다른 사람이 비웃거나 다른 사람의 비판이 정당하다고 자인할 기회는 얼마든지있었다. 이런 유우머 가운데는 더러는 공자와 제자들이 가벼운 말로 나눈 야유적인 것도 있었다. 한번은 어떤 마을 사람이 "공자는 참말로 위대하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는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같은 평을 듣고 공자는 말했다. "내 무엇을 전공할까? 활쏘기를 전공할까, 마차 몰이를 전공할까?"
공자가 정치적으로 한참 불우할 때 제자인 자공이 물었다.
"여기에 한 개의 아름다운 옥이 있습니다. 이를 상자 속에 넣어 깊이 간직할 것입니까, 비싼값으로 팔아버릴 작정이십니까?" 이윽고 공자가 하는 말이,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비싼 값으로 팔리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라고 대답했다.
공자에게서 유우머를 제외하려는 비평가나 주석가들은 이같은 귀절에 대하여 해석을 달기에 난처해한다. 사실상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자주 농담을 주고받았다. 공자가 여행 도중에 한번은 고난을 당했다. 인민을 학대한 포악한 사나이로 사람에게 오해를 받은 그가 뜻밖에 군대에게 포위를 당했다. 하지만 공자는 기어코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몹시 사랑하는 제자 안회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그가 나타나 하는 말이, "스승이 살아계신데 제가 어찌 감히 죽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했다.
한번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길이 서로 어긋나서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사람들에게서, "이마가 널찍하고 키가 큼직한, 고대의 임금 같은 사람이 동문에 서 있는데 마치 집없이 떠돌아다니는 개처럼 보이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후에 공자는 이말을 전해 듣고,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야! 참말 정확한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공자의 최고급의 유우머이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매력을 주는 공자 생애의 한토막이다. 이런 곤경에서도 공자는 도리어 빗속에서 노래를 불렀다.
3년 동안이나 진나라와 제나라 사이에서 광야를 방황하다가 겨우 난을 피하기는 했지만 그처럼 박학이면서 갈곳 없는 이들 유랑학자 집단에는 한량없는 비애가 새어들었다. 이 마지막 몇 년 동안의 방랑생활은 공자의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공자는 정치활동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고향에 돌아가 저술에 전념했다. 공자는 그 자신과 제자들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들소도 호랑이도 아닌" 정체 모를 짐승의 무리에 비유하고, 제자를 향해 자기에게 대한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세 번째 물음에 답변을 들은 뒤, 공자는 이 답변에 찬동하고 올바른 답변을 한 제자를 향하여 웃으면서, "그런가, 안씨집의 제자여? 만일 자네가 부자였다면 나는 자네의 집 청지기가 되었을 걸세."라고 했다.
이 귀절은 완전히 나를 매료시킨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귀절은 명랑한 말로 끝난다는 것을 빼어 놓으면, 예수의 생애중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던 장면에 비교할 만한 아름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나체는 미국에서 이미 유행했다고 한다. 나체가 유행했다고해서 별반 지장을 느끼는 일은 없다. 우리가 이승에 태어날 때 나체였으나 그것을 내 자신이 미처 발견치 못했던 것뿐이다. 우선 우리가 분명히 알아둬야 할 일은 우리는 거의 빠짐없이 이성의 나체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종교광적인 나체주의자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합리적 채식주의자가 광적인 종교 채식주의자와 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중국 사람과 매일반으로 한 옛날의 중용의 도에 근거하여 살아오며 나 자신도 어떤 시간과 어떤 환경 아래에서는 곧잘 나의 나체주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목욕탕 물 속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내게 준 평복을 입고 뉴우요오크의 브로오드웨이로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허심탄회하게 말한다면, 목욕탕의 나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목욕탕 창 밖에서 몇 마리 참새가 날아가고 나뭇가지가 으늑히 사람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찬 공기에 피부를 접촉시키는 일이 얼마나 좋은가. 피부는 싸늘한 바람에 닭처럼 토실토실하게 되어지리라. 차츰 살결이 느름해졌다가는 원상으로 돌아온후 햇빛을 받고 윤기가 돌기 시작한다. 나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이같은 감각은 대단히 유쾌한 것이다. 나는 목욕탕 속에 잠겨 있는 기분으로 말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방사작용"이다-즉, 이 글자에 대한 뜻은 잘 모르나 해석할 줄만은 안다-햇빛이 내 피부 위에서 일으키는 작용을 말한다.
건전하면서도 정상적인 사람이 옷을 벗어버리고 일광을 쬐이기를 매일 15분씩 하고 통풍되지 않고 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방속에 파묻혀 있다면 장담코 말이지 이것이야말로 건강에 가장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와 매일반으로 그들 자신이 진실하고 민첩하며 이성을 가진 나체주의자라고 할 것이다. 어떤 시간과 환경에 국한해서 말해 보자. 진실한 나체주의자와 폭로광의 사이에는 분명히 정당한 구별의 차가 있는 것이다. 산 위에서 홀로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종교 부흥회 석상에서 회중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사이에는 참된 구별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은 나체를 위한 나체, 말하자면 자기 개인의 향락을 위한 나체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체가 아닌 것을 표시하려고 함이다. 자기가 벌거숭이가 되어 선전해서 말하기를, "당신, 여기를 좀 보시오. 나는 의젓이 벗었소." 하는 것과 같다. 이같은 구별은 인생의 어느 곳에나 있다고 보는데, 예컨대 어떤 사람이 집에서 그의 아내를 사랑하거나 또는 커다란 뜰안에서 자기 남편을 불러 마음의 보배라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자기 방에서 자기 잘못을 깨닫는 일이나, 옥스퍼드 학파의 초청으로 10년 전에 어린애 버릇으로 소매치기를 했다거나(물론 그같이 불행한 5천원의 사깃군 노릇을 했다손 치더라도), 또는 황혼의 길모퉁이에서 2백원의 돈을 거지에게 줬다거나 자선 음악회에 출연했다거나, 또는 자기의 향락을 위하여 말타고 화려한 모습을 한 연극배우의 변장을 보듯 귀고리,목걸이를한 것은 각양각색 다르게 보이지만 나 보기에는 이 모든 모양이 자연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성실한 신도, 애처가, 자비로운 사람, 진정한 기만인, 그 밖의 모든 인간을 폭로광이라 부르고 싶다. 다시 말하면 나는 성실한 나체주의자다. 왜냐하면 나체를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좋은 점을 죄다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인간은 분명히 하나의동물이라는 점이다. 틀림없는 동물이다. 만약에 곰곰 당신의 심장의 고동을 들어본다면 당신은 당신의 혈액이 흐르고 있음을 알 것이요, 인류의 생명의 목적이란 천만 권의 철학책 보다 이런 오묘한 인식에서 옴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 모든 일은 이 신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 이 오묘한 기계야말로 우리들이 소중히 다룰 바이다. 나체는 마음대로 동작할 수 있다. 옷을 입으면 육체의 활동이 방해된다. 당신이 나체로 있을 때의 꾸불퉁한 다리 무릎은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한 인간이 온전히 나체로 되어 있을 때 그가 방안에서 빙빙 돌아가며 뜀질하는 것은 얼마나 자 유롭고 경쾌한가! 미학상으로도 나체에서 인간의 활동의 리듬을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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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외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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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방 한칸 - 최금진
다이얼을 돌리다 말고 땡그랑, 백원짜리 동전처럼 떨어지는 사람들 이름을 그는 잃어버린다
시간도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자정 길 위의 모든 전화부스엔 손님이 끊겼을 것이나 머리통에 환하게 불 켜진 채 갈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칸칸이 유리문 닫고 담배를 피운다
하늘 꼭대기에서 보면 어둠속 전화부스는 이름 없는 사내들의 별자리 담뱃불처럼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얼굴을 마침내 제 품속에 문질러 꺼버리고는 그는 쭈그리고 앉는다 수화기에 대고 텅 빈 노래를 불러본다 이따금 술취한 이들과 눈 마주치지만 교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밤이면 길은 저절로 끊어진다 나 여기 다녀간다, 여기서 하룻밤 살았다, 중얼거리며 그는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는다 수화기를 꼭 붙들고 그는 혼자 통화중이다 아무도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한다
어둠이 끌고 올라가는 지상의 방 한칸 속에 그가 환하게 불 켜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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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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