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 에세이선
나의 명상록
조오지 황제의 기도문
영국의 조오지 5세는 그의 침실에 한폭의 기도문을 걸어 놓았다. 나는 이 기도문의내용에서 곧 영국인의 성격을 알아낼 수 있었다. 기도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여, 나로 하여금 행사의 규칙에 복종하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정서'와 '과잉감정'을 바로 판단하여 취사선택케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남의 칭송을 받아 분별없이 들뜨게 하지 마시고 또 가볍게 남을 칭찬하지도 말게 하소서. 만약에 고난을 당했을 때, 주여, 나로 하여금 선한 짐승과 동행하게 할지언정 무인지경에 가서 홀로 곤욕을 참게 하지는 마옵소서. 만약 내가 승리를 얻어야 한다면, 주여, 나로 하여금 꼭 승리를 하게 하여 주시고 패하여굶주리지 않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케 하지 마시고 또 공연히 눈물을 흘리지 말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영국황제의 한 가닥 심경이다. 만약 중국에 국왕이 있다면 틀림없이 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조오지 5세는 매일밤 이렇게 기도했을까에 대하여 더 묻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버나드쇼오가 말했듯이, 영국 사람이 조오지 5세를 경애하는 이유는 그가 현대의 도덕을 갖춘 군자파의 대표적 인물이며, 남과 교제하기를 좋아하기는 하나 그것이 지식과 도덕면에서 과대망상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오지 5세는 이 기도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은 정서를 좋아했기 때문에 기도문을 정중히 걸어 놓고 밤마다 중얼거리며 기도했을 것이다. 이 짤막한 기도문이야말로 영국 사람의 특성을 잘 나타낸 것이며, 공정무사하여 어떤 감정이나 내재의 힘에 편중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잠언이나 격언 따위가 중국 사람의 생리에 맞지 않는 까닭은, 중국 군왕의 좌우명은 영국의 황제가 기도문을 외는 심경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의 군왕은 첫째로 <복종>이란 두 글자를 보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덮어두고 다시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통치자가 '행사의 규칙'을 소홀히 할 바가 아님을 해석하기에 장황한 시간을 보낼까 두려울 뿐이다.
그에게 '정서'와 '과잉감정'의 구별에 대하여 입이 닳도록 설명했댔자, 그는 알 리가 만무하므로 차라리 설명하지 않는 것이 묘방이겠다. 당신이,"사람의 칭송을 함부로 받지 말라"는 말의 뜻을 해석하려 한다면 그는 도리어 한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게 도로 묻기를 "왜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오?" 할 터이니 당신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해 낼 길이 없어서 원문의 뜻을 아래와 같이 고쳐 그의 뜻에 적합하도록 할 것이다.
"만약 내가 고난을 당하게 되면 나는 곧, 요도가 불통하니 양위하고 은퇴하겠다고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승리를 하게 되면, 주여! 나로 하여금 승리를 하게 하시고 만약 승리를 못하게되면, 주여! 나로 하여금 적당한 시기에 외국 조계지로 피신해서 고서를 읽게 해 주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케 말고, 헛되이 눈물을 흘리지 말게 하소서. 그러나 그러지 못할 때에는 나로 하여금 이렇게 노래부르게 하소서, <아들이 있으면 만사가 족하고 무관하면몸이 가볍다>라고."
사회학자들은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각국에는 같지 않은 풍속이 있다고. 때문에 각국의 성공의 길은 이로 인하여 달라지는 것이다. 영국황제 침실의 기도문을 중국의 집권자가 본다면, 이는 완전히 무용한 것이며 중국 국왕의 좌우명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만약 비굴한 수단으로 정권을 쟁취한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Machiavelli 1469-1527)가 이때 출생했다면 중국의 국왕을 대신하여, 일편의 좌우명을 쓸 것이다. 그 취지는 아래와 같을 것이다.
"주여, 나로 하여금 왕후의 생신과 왕후 모친의 생신을 기억케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많은 중요한 예물을 그에게 보내되 장수하라는 국수사리만은 보내지 말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인정 관계는 모두 정치적 도구이며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국가를 위주로 하도록 인식시켜 주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소박하게 하고 거동을 적당케 하며 다른 어떤 사람에게든지 불법한 접촉을 말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임기응변의 다재로 만나는 사람에게 도를 말하여 모든 사람이 나를 호인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외국 친구에게 예절바르게 대하게 하고 나로 하여금 강인한 사람이 되어 인민의 항의에 굴하지 않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학생의 유흥과 파업풍조에 대처하는 데 용감케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강연을 잘하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서법에 능케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혀끝을 날카롭게 하여 말끝에 꽃을 피워 주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주고받는 것을 골고루하여 굳이 촉수의 예물을 거절케 말고 답례로 예물을 보내는 데 인색케 마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인생이란 곧잘 사라지며 빗줄기가 얽힌 듯한 것임을 알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유우머 감을 갖게 하고 나로 하여금 정치생활의 허식을 인식하여 어떠한 진실을 등진 일에든지 관계하지 말게 하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동료의 경망스런 잘못을 관용케 해 주소서, 나의 동료가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듯이. 주여, 나로 하여금 뭇사람의 이목의 감시를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무슨 일이 발생하든지 함부로 쉽게 다른 사람의 소견에 쏠리지 말게 하소서."
임어당 금혼식 밀월
서로 공경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생활로 일관된 나와 아내는 벌써 반세기 동안 단란한 생활을 보냈다. 서로 이해하고 양해하는 심정으로 점철된 우리의 생활은 고난과 환난속에서 끝없는 사랑으로 이어 갔다. 7월 9일의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금혼식 밀월을 맞이했다. 밀월이란 두 사람에게 속한 일이기 때문에 외계의 사람을 초청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 우리 두 사람의 밀월에 적지 않은 사람이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것은 장장 50년의 아름다운 풍경의 축소도로도 볼 수 있고, 행복한 혼인의 신랑과 신부의 즐거움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기념일을 이름지어 <금옥연>이라 한다. 나는 이 세 글자를 브로우치에 새겨서 아내의 가슴에 달아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50년 동안을 잘 다듬어 온 사랑의 심볼로도 볼 수 있다. 응접실에 달린 촛불은 우리가 살아 온 50년 동안의 추억을 회상시켜 주듯 유난히 빛났다. 이상하게도 우리 머리를 스쳐 가는 추억의 물결 속에서는 굶주림과 고난과 모든 뜻하지 않았던 일들은 망각의 바다에 자취를 감추어버린 듯했다. 우리는 가난하여 극장에 가서 영화를 구경할 수 없을 때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어다가 밤을 새워가며 등불 밑에서 읽었다. 내가 아내 요취여사와 결혼을 하게 된 동기는, 요취는 나의 동창일 뿐 아니라 요취의 오빠와 나와는 죽마지우였고, 나의 누님은 요취의 둘째 언니와 동급 동창이었던 관계로, 우리편에서 먼저 청혼을 하자 신부 편에서도 곧 허락해 줘서 약혼이 성립된 것이다.
그 당시 처가에서 나를 평하기를, "이 아이는 인품이 대단히 좋다, 그러나 목사 가정이어서돈 없는 게 흠이다."라고 하였다. 임씨 집안에 돈 없는 것을 잘 안 처가에서는 내가 약혼을 하고 4년을 지난 후에야 결혼식을 올리게 한 사실로 보아 얼마나 구제도에 가까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할 때 아내는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돈은 완전히 떨어지고, 아내의 물건까지 다 내다 팔아 이제는 끼니조차 잃게 되었다. 나는 로울빵을 사다 먹는데 그것도 한 주일 동안을 아껴 가며 먹었다. 지금에 와서도 빵을 보면 속이 느긋거려질정도이다. 나의 처가는 상당히 이름있는 부자였으며 마카오 고랑포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명문이었다. 50년 전 약혼할 때에 아내는 자기 어머니에게, "임씨 집안은 돈이 없지만 그런 건관계없어요."라고 했다. 이 말에 처가에서는 지체없이 약혼을 허락했다. 아내는 그때, "임씨에게 일단 출가하면 나는 임씨 집안 사람이다. 결혼 후에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로 친정에 가서 돈을 빌려 달라고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50년 동안 아내는 이 결심을 그대로 지켜, 병고로 이역에서 고생할 때도 친구에게 돈을 빌지언정 친정집에 전보를 쳐서 도움을 구하거나 한 적은 없었다. 말하자면 아내는 결단력과 주장이 센 여자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을 결론적으로 말하면, 옛 것에서 새것을 찾는 것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약혼하기 전에 아내는 문뒤에 몰래 숨어서, 내가 상하이의 세인트 존스대학의 배지를 달고 지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뒤 그녀는 내가 밥을 몇 공기씩 먹는가도 알아냈으며, 때로는 나의 옷을 빨아다 주기도 했다. 나는 아내의 모습을 관심 깊게 보고 두호했으나, 남이 물으면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다. 이렇게 4년 동안을 기다리면서 우리들은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보내고 받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오랜 사랑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 처가의 활짝 열린 대청에 앉아서 서로 얼굴을 마주 대보며 감개무량해진다. 이때 나의 아내가 하는 말이, "50년 전 약혼한 신랑과 마주 앉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흐뭇하군요." 한다. 사실 나는 평온한 가정생활을 해 왔다. 부잣집 딸이라고 해서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받은 일은 없으며 나는 모든 일에 자신을 가지고 나섰다. 말하자면 아내는 돈있는 집 딸이었으나 여느 돈있는 집 딸처럼 교만하거나 으스대는 버릇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그녀가 아주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은 미덕의 보람인 줄 안다. 우리 두 사람이 50년 동안 아름다운 결혼생활의 비결을 지켜 왔다면 그것은 주고받는 일이었다. 도합 1만 8천여 일 동안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주기만 하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낫다는 성경의 말 그대로였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아내는 친구들 앞에서 남편의 나쁜 습관이나 지혜롭지 못한 일에 대하여 말한 적이 없었다. 평상시에는 큰소리치다가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모르는 척하는 그런 일도 전혀 없었다. 자기 자신이 그런 생활을 했으니만큼 딸들에게 대해서도 아내는 그같은 교육을 시켜 왔다.
나는 딸 셋뿐이다. 맏딸과 둘째딸은 문학을 하고 있는데 영국문학과 중국문학에 능하다. 세째딸은 과학을 공부했다. 나는 아들이 없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지 않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다. 친구들이 아내더러 아들이 없는 것이 유감이 아니냐고 물으면, "나는 참으로 유감으로는 생각해요."를 연발한다. 옆에 앉아 듣고 있던 나로서는 너무 민망해서, "당신은 모든 것이 다 행복하다고 하니 아들을 낳지 않은 것도 행복이 아니오?"라고 반문한다. 사실상 다른 사람이 아들을 많이 거느린 것보다도 내가 딸 셋을 거느린 것이 나에게는 더 이상 비길데 없는 기쁨으로 생각된다.
마카오에는 외국선이 많이 드나든다. 꽃으로 둘러싸인 길을 지나 미국으로 가는 배의 갑판 위에 오르면 퍽 마음이 가벼워진다. 키를 젓는 사공 같은 우리 가정은 결혼의 배를 타고 세상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황혼의 으스름이 고요히 수평선 위에 내려앉듯이 우리 50년 결혼의 장막은 황혼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듯하다.
버너드 쇼오와의 대화
나는 본디 요인을 마중하거나 부두에 서서 전각 앞에 있는 섬들을 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이같은 일들은 너무나 각박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사람들에게 이끌려 앞장서서 버나드 쇼오를 환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앞장선 곳은 다름 아닌 많은 젊은 남녀가 정사한 황포강이었다. 내가 강 언덕에 약 두어 시간 서성거리고 있는 동안, 세상에는 물이 매우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아마 지금 쇼오도, "물이여! 물이여..."하며 감탄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우리 공자님 "물이여, 물이여..."하며 감탄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때는 바로 정오, 손무인의 객실이다. 쇼오는 바로 난로 옆의 큰 의자에 기대앉아서 난로 불빛에 때로는 눈빛을 번쩍이며 흠씬한 태도여서 매우 정정해 보였다. 그것은 대개 영국 사람들이 스토우브 옆에 앉아 있을 때와 같은 모습인데 쇼오도 역시 그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빛은 마치 무언가 깃들어 있는 듯 신비하게 보였다. 그 자리에는 채선생과 손무인도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아직도 몇몇 초청한 친구들이 오지 않아 우리는 자유로이한담을 늘어놓았다. 우리들의 화제가 버나드 쇼오의 전기 작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을 때 내가 후리스 버허드슨의 문장이 좋더라고 말하니까, 쇼오는 "문장은 좋지요."하고 내 말에 대답해 주고는,
"하지만 후리스는 맹랑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무척 가난한 사람으로 예수 전기를 쓰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이를 딱 거절해 버리며 나의 전기를 쓰라고 했지요. 이것이그가 나의 전기를 쓴 동기랍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일생 내력을 모르지요. 그는 사실과는 달리 써 버렸어요. 거의 원고가 탈고될 무렵에 불행하게도 그는 죽고 말았는데 나더러 그 원고를 출판해 달라고 했었답니다. 근 3개월 동안 그가 쓴 원고를 정정하고 증보하는 데 애를 썼으나 그의 뜻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대개는 그대로 두었어요. 후리스가 살았을 때 하는 말이, 예수 전기를 쓰려고 막상 붓을 드니까 너무 감격되어서 도저히 써 내려갈 수 없다고 했어요."라고 하면서 쇼오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요, 후리스는 미친 사람 옆에 앉아서도 예수의 고상한 인격에 대하여 신나게 이야기 하다가도 알리찬 같은 목사와 자리를 같이해 앉으면 시를 읽듯이 큰 소리로 읊는단 말이예요.마치 파리의 가장 음탕한 여인들과 지껄이듯이-그가 죽을 때 그의 아내에게 남겨준 것이란아무것도 없이 그저 이따위 허풍선뿐이었죠." 그는 이어서 하는 말이, "그의 아내가 지금 책에 대한 인세를 받기를 바랄 뿐인데..." 하면서 그는 별로 신통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요. 우스운 것은, 어떤 사람은 편지로 나에게 묻기를 이러이러한 부분은 삭제되었어야할 것인데 후리스가 쓸데없는 말을 썼다고 항의까지 했지만, 나는 그런 것까지 쓰기를 희망했다고 대꾸했어요. 사실은 그들이 지적한 그 몇 군데는 실제로 내가 쓴 것이지요."
쇼오는 말할 때, 연한 푸른색 눈을 유달리 번쩍이며, 그야말로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것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 정도이다. 때로는 외람된 감을 갖게 하는 매력도 가졌다. 더구나 그가 무엇인가를 착상했을 때는 이마의 주름살이 두 줄로 선명히 나타나고 더구나 초월적인 정기를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것이 풍자적인 쇼오의 그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이마 주름살의 특색일 것이다. 몸매가 다소 홀쭉한 이 아일랜드 문호는, 고금을 통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는 종횡무진의 이론을 내어놓은 분으로, 아마도 이 분의 책을 읽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경외심이 일어날 것이요, 결코 홀홀히 넘겨버릴 수 없는 작가임을 즉시 알아차릴 것이다. 우선 그 사람의 됨됨이는 소박무치한 문인이며 역시 사람과 친해지기 쉬운, 그러면서도 예절을 잘 지키는 문호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는 실화를 웃음거리의 명언으로 만드는 솜씨를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쇼오의 유우머는 이상야릇한 데서 출발하는 줄로만 알았지, 우스꽝스러워도그것이 방종이나 맹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요, 공상이면서도 인정에 통하고 케케묵은 추를벗어나서 진실된 실화로 됨을 아는 이는 적다. 인정을 돋우는 실화는 커다란 용기가 없어서는아니 된다.
신약 성경에 있는 십계명 가운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훈계를 이행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결혼도 하나의 일이요, 연애도 하나의 일일진대 이같은 일들이 일반 사회에서 미친 듯이 인식되어지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쇼오가 독자에게 괴상하다는 평을 받게 되는 원인의 하나일는지도 모른다. 식탁에서 쇼오는 식사에 대하여 말하는 가운데 중국의 가족제도와, 세계대전 때 영국 대학교수의 희곡을 가르치는 광경, 또는 중국차와 아울러 박사들이 마시는 차등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방법을 배우면서 자유스럽게 말을 계속했고, 또 자유자재의 우스운 해학의 말들을 늘어놓아 듣는 우리들로 하여금 마치 처녀가 꽃씨를 뿌리듯이 눈을 다른 곳에 팔지 못하도록 했다. 쇼오의 말에 의하면, 영국 대학의 교수가 희곡을 가르치는 방법은 우선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주석이나 달고 그 말의 출처는 어디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려줄 따름이다. 어느 누구는 어느 때에 낳았다고 하면 학생들은 노우트에 분주히 받아쓰고, 또 시간중에 시험을 치게 되면 전체 문장을 죽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취미를 찾아내려고 애쓸 정도에 그치고 만다. 때문에 이같은 학생들은 셰익스피어라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플 정도란다. 그는 또 계속해서 하는 말이, 영국 군인과 독일 군인의 사이에는 전쟁 중에 별다른 악감이 없었다고 한다. 영국 사람과 독일 사람은 본래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전쟁중에 칼을 빼어들고,"네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너를 죽일 테다."라고 말한 정도이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을 몹시 싫어한다. 또 프랑스 사람은 미국 사람을 싫어하는데 그 원인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연합군이 프랑스에 대하여 지나친 배상을 부과시킨데서 극도로 악감정을 가진 까닭이다.
"우리가 이왕에는 습관적으로 영웅적 군인이라는 말을 많이 써 왔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웅이라는 말은 역사에서 벌써 과거로 흘러가버린 사실이 되고 만 것이다. 대전 당시에 자기의 용기에 대하여 말하는 이는 없었고 다만 자신의 공포를 언급할 따름이었다. 지금 전쟁은 참혹의 극치에 이르러, 다소라도 머리가 똑똑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이미 전쟁 예찬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전쟁은 인간성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용맹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정신 같은 것은 도리어 전쟁을 소멸시키는 방법이라고 제의하는 것이다. 매년 가을의 운동회 때면 열병식을 제외해버린다. 왜냐하면 열병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못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주전론자들에게 전장에 나가라고 제의하고 싶다. 실제로 총탄을 들고 나가 사람을 죽여야만 그들 마음이 만족해질 터이니 이런 심리야말로 식인의 야수성을 가진 자들이다.
식사가 끝난 후 우리들은 화원으로 나갔다. 그때 시원한 하늘빛은 희뜩희뜩한 노옹의 백발을 반사했는데, 그럴수록 쇼오의 고아한 풍격과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풍채는 더욱 빛나보였다. 요즘 며칠을 두고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그래서 우리는 쇼오에게 상해의 인상이좋지 못할 줄 알고 상해의 날씨가 좋지 못하다는 말을 꺼냈다.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상해에서 태양을 보게 되었으니......"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기지에 찬 이 유명한 아일랜드 문호가 하는 말이,
"아니오, 이 태양이야말로 행복합니다. 상해에서 버나드 쇼오를 보게 되니까 말이오."
나는 이 말에서 마호메트의 이같은 말을 생각했다.
"마호메트가 산으로 갈 것이 아니라 산으로 하여금 마호메트에게 오게 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