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진화의 수수께끼 : 암흑 물질로 푸는 - 존 그리빈,마틴 리즈
제 1부 우주에서 일어나는 우연
제 1장 우주는 얼마나 특수한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은 자연에 대한 사실의 단순한 집합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과학은 막대한 자료에 의해 아주 옛날에 질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인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패턴과 규칙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과학은 정체나 질식하는 일 없이 지금도 전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서로 관계없다고 여겨지던 몇 가지 사실도 나중에는 서로 납득할 만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많은 자료를 토대로 차차 보편적인 법칙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이전에 비하면 얼마 안되지만 새로운 기본적인 사실을 배우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 밖의 것은 그 기본적인 사실로부터 추론하면 되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 특히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놀랄만한 성과는 자연계의 복잡 다양한 사실을 몇 가지 기본적인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우주가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리학 법칙은 인간의 지성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우리가 지상에서 실시한 실험에 의해 추론한 법칙은 우주 전체 어디서나 언제나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단순함은 과연 우주의 필연적인 특징일까? 아니면 우주가 인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증하는, 뭔가 좀더 심원한 설계도인 걸까. 이러한 문제들은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나 '인간 원리'라고 불리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과학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법칙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해 왔다. 예를 들면 달이나 행성의 운행은, 뉴턴이 이러한 것들을 지구에 유지시키는 중력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설명이 가능해졌다. 또한 연금술사를 곤혹스럽게 만든 화학의 복잡함도 멘델레프가 원소의 주기성을 깨달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한 이 주기성의 이유는 기본적인 세 종류의 소립자, 즉 양자와 중성자(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되어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다)와 전자(양자 역학의 법칙에 따라 원자핵의 바깥쪽에 분포되어 있다)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이제 물리학자는 자연을 더욱 세분하여 보고 있다. 그들은 원자는 물론이고 별이나 인간을 포함한 물질 세계는 모두 두세 개의 기본적인 물리 정수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그 '정수'란 몇 개의 소립자의 질량이며, 또한 그들 사이에 움직이는 강한 힘이다. 그러나 자연 현상에는 이러한 단순한 규칙에 의해 설명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현상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나 행성의 궤도 운동에 비하면 훨씬 설명이 어렵다. 설명을 어렵게 하는 그 복잡함이다. 우리가 지구의 내부보다도 태양의 내부를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지구 내부의 온도나 압력이, 태양 내부만큼 극단적이지 않고 더욱 미묘하기 때문이다. 지구 내부에는 복잡한 화합물이 많이 존재하는 데 비해, 태양의 내부에는 거대한 열과 압력에 의해 구성 요소는 원자핵과 전자만으로 환원되며 그 움직임은 단순한 규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우주는 몇 십 억이라는 은하를 포함하여 우리가 사는 은하계와 마찬가지로 각각 몇 십 억이라는 별은 갖고 있다. 그러한 무수한 별은 크든 작든 태양과 비슷하다. 관측에 의하면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은하계는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 서로 멀어져 간다. 물리학자의 추론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 나아가 공간과 시간도 빅 뱅이라고 불리는 초고온의 불덩이로 응축되던 시기가 있었고, 그것은 거의 150억년 전이었다. 이 원시의 불덩이는 초기에, 섭씨 100억도나 되는 '뜨거운 스프'로 분해되고 있고 1초 동안에 우주가 두 배가 될 정도의 비율로 팽창했다. 이것은 빅 뱅의 상태가 오늘날의 태양의 내부보다도 더욱 '단순'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우리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기대해도 좋다.
우주 탄생의 물리학을 이해하려는 것은 결코 불손한 일이 아니다. 아마 우리는 팽창하는 우주가운데 별과 은하가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인간 자신의 기원을 연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싫든 좋든 간에 우주에서 일어나는 '우연의 일치'라는 새로운 수수께끼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 원리의 입장에서 본 우주론
우주는 단순하지만 인간은 복잡한 생물이다. 이 복잡한 이유의 하나로, 우리가 우주의 '전형적인' 장소에는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주의 대부분은 텅 빈 공간이고 약한 전자파로 가득 찬 절대온도 3도(섭씨 영하 270도)라는 공간이다. 한편 우리는 하나의 안정된 별, 즉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에 살고 있다. 태양은 인간을 비롯한 생명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또한 지구 표면의 환경은 생명에는 빼놓을 수 없는 복잡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는 우주 가운데서 유일하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더라도 특별한 장소임은 확실하다. 우리는 또한 우주의 특별한 '시간'에 위치하고 있다. 빅 뱅 초기의 상황은 너무나 가혹하여 인간의 생명을 존재하게 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현재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적어도 하나의 은하계에서 하나의 별 주위를 도는 행성으로서는 그렇다. 아마 앞으로는 다시 생명에는 맞지 않는 환경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현재 이곳에 생존해 있는 것은 기본적인 힘과 소립자 사이의 다양한 관계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많은 의문이 생긴다. 예를 들면 왜 별은 그렇게 큰가? 두 개의 양자(적, 수소 분자) 사이의 강한 전기력과 같은 두 개의 소립자 사이의 중력을 비교해 보자. 전기력은 중력의 1036배나 강하고 따라서 원자의 크기로서는 중력도 전체적으로 커진다. 원자의 전하는, 양자의 양전하와 전자의 부전하가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실제로 제로다. 이 전자와 양자의 전하가 일치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우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큰 질량의 물체는 전혀 전하를 띠지 않으며 전기력을 다른데 미치는 일이 없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지구의 전기력이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막대한 수의 원자가 합산된 중력 때문이다. 실제로 사과가 나무에서 완성되는 것은 그 구성요소인 분자와 분자의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에 의해서다. 그 똑같은 힘이 사과가 매달려 있는 사과나무 가지의 원자나 분자를 하나로 일치시키고 있다. 그리고 사과는 전 지구의 중력이 사과나무 가지의 전기력보다 셀 때야 비로소, 나무에서 떠나 지상으로 떨어진다. 그때 지구의 중력은 사과나무 가지에 있는 비교적 소수의 원자가 가지는 전기력을 능가하는 것이다.
별을 쳐다본 사람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 별은 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렇게 별과 그 일생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언제나 관측에 의해서 자극되어 왔다. 유쾌하게도 언제나 구름에 싸여 있는 행성 위에 사는 물리학자도 별의 성질을 추론할 수 있다. 이때 물리학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별이 중력으로 닫힌 핵융합로를 갖는 일은 과연 가능한가. 또한 구체적으로 그것은 어떤 것일까? 나아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즉, 충분히 원자의 수를 늘려가다 보면 반드시 중력은 전기력을 능가할 것이 틀림없다고.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원자를 모으면 중력이 이길까? 원자를 열 개, 백 개, 천 개, 만 개.... 이렇게 10배씩은 모은 물체를 차례로 연상해 보라. 그러면 24번째의 물체는 각설탕, 즉 1 입방센티 정도의 크기가 된다. 또한 39번째는 직경 1킬로미터 정도 크기의 바위가 될 것이다. 중력은 처음엔 1036의 '핸디캡'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차츰 10의 3분의 2제곱씩 늘어간다(단위 질량 당 중력 에너지는 전 질량에 비례하고 반경에 반비례한다. 한편 밀도가 일정하면 반경은 질량의 3분의 1제곱에 비례하므로, 중력 에너지는 3분의 2제곱에 비례하게 된다). 따라서 54번째의 물체가 되었을 때는, 54의 3분의 2가 36이니까, 중력은 전기력과 같아지게 된다. 54번째의 물체라면 목성의 무게다. 물체가 목성보다도 무거워지면 이번에는 중력에 눌려 찌그러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물체가 중력에 의해 압축되어 핵융합이 시작되는 시점까지 뜨겁게 되기 위해서 물체는, 1054개 이상의 원자를 가져야 한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중력 자체는 매우 약한 힘이다. 이 때문에 중력으로 속박된 핵융합로, 즉 항성은 충분히 커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설령 별을 관측할 수 없더라도 별의 일생은 완전히 계산할 수가 있다. 아서 에딩턴 경은 1920년대 이러한 이치를 밝힌 첫 인물이었다. '머리 위를 덮고 있는 구름의 베일을 걷어내면 천문학자는 이 범위의 질량을 가진 10억 개나 되는 빛나는 가스 덩어리를 발견할 것이다'라고 그는 발하고 있다. 원자의 합계 질량이 양자의 질량이 1057배에 가까워졌을 때, 중력은 전기력을 능가하고 원자는 눌려서 찌그러져 버린다. 지구 내부에서는 중력의 압력에 저항하면서도 원자는 아직 확실한 실체로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질량이 이 임계치를 넘으면 원자의 구조는 완전히 파괴된다. 그 결과 원자핵과 전자가 어수선하게 뒤섞인 상태가 된다.
별은 양자의 질량이 실제로 1057배나 되는 질량을 갖고 있다. 그것은 중력에 의해 속박되어 있고 원자핵끼리 중력으로 거세게 압축되면 새로운 원자핵을 만드는 핵융합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융합 과정이야말로 별을 뜨겁게 하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령 중력이 현재보다도 약한 것이라면 별은 지금보다 더 커야한다. 또한 만약에 현재보다도 강했다고 하면 별은 더 작아야 하고 별의 주위를 도는 행성 위에 지적 생명을 진화시킬 여유가 없을 정도로 단시간에 그 일생을 마칠 것이다.
인간의 몸도 정해진 것이다
기본적인 힘의 세기는 또한 인간의 몸이 어느 정도까지 커질 수 있는가도 결정한다. 우리의 몸도 다른 화학 물질과 마찬가지로 전기력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한편 인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 다시 말해 우리의 체중은 신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총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몸이 크면 중력도 커진다. 우리의 조상들이 살던 삶의 형태를 생각해 보면 인간의 신체는 지금의 크기가 한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래는 체중이 바다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에 커도 되지만 나무 위에 사는 영장류였던 우리 조상은 추락했다간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에 너무 크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들 기본력과 중력이 우연히도 일치하는 것, 혹은 다른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는 제 3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있게 만드는 기본적인 힘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미묘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알아보자. 예를 들어, 원자핵 내의 양자와 중성자를 묶고 있는 핵력이 전기력에 비해 지금보다도 조금 강했다고 하면, 두 개의 양자(플로톤)로 이루어진 원자핵, 즉 다이 플로톤이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다. 우주에는 두 개의 양전하 사이의 전기적인 반발력이 서로 끄는 핵력을 능가하기 때문에 다이 플로톤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두 개의 양자는 한 개나 두 개의 중성자가 있을 때에만 원자핵 가운데 머물 수가 있는 것이다. 중성자라는 전하가 없는 입자는 인력은 강하지만 반발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별은 양자와 중성자를 융합시켜 원자핵을 만듦으로써 에너지를 얻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두 개의 양자를 융합시켜 다이 플로톤으로 만들 수가 있다면 별의 진화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것이 될 것이고 우주의 모습도 매우 달랐을 것이다.
한편, 만약에 우리의 우주에서 핵력이 좀더 약했다면 복잡한 원자핵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 전체는 가장 단순한 원소, 즉 한 개의 양자와 한 개의 전자로 이루어진 수소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원시적인 수소와 헬륨 원소를 제외하고, 보통 화학 원소들은 모두 우리의 태양계가 생기기 이전에 폭발한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철, 탄소, 산소 등의 원소는 모두 별에서의 원소 합성의 산물인 것이다. 이것은 몇 개의 물리 과정의 조합의 결과라는 것을 1950년대에 프레드 호일이 지적하였다. 이들 우연의 일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 흥미 있는 것은, 우주가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도록 생겼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조를 알면 좀더 다른 우주, 즉 생명을 탄생시키지 않는 우주를 상상하는 것도 간단하다. 예를 들어, 중력의 세기를 바꾼 우주를 상상해 보자. 중력이 전기력 보다도 1036배만큼이 아니라, 1026배만큼 약해졌다고 하자. 그러면 우주는 현재보다 작은 것이 되고 별은 더욱 빠르게 진화한다. 왜냐하면 중력으로 갇힌 핵융합로, 즉 별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겨우 10-16배면 되기 때문이다. 이때 별은 1조톤의 무게가 되는데, 이것은 지금의 달무게의 1천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이러한 별은 정확히 1년 정도면 다 타버린다. 이래가지고는 복잡한 생명을 진화시키기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어쨌거나 복잡한 구조의 것이 창조되기 이전에 모두 중력에 의해 찌그러져 버릴 것이다. 중력이 조금만 달라도 우주의 모습은 크게 변한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별의 내부나 우주의 상태를 대충 말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를 현재 '인간 원리적 사고'라고 일컫는다. 우리가 태양(소위 G형 별)의 행성 위에서 서서히 진화하는, 탄소를 주된 소재로 하는 생명 형태라는 냉엄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우주에는 몇 가지 확실한 특징이 보이기 시작하고 물리 정수의 값에는 몇 가지의 제약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견해는 나아가 우주 공간의 휘어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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