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회 목월백일장
제41회 목월백일장이 다음과 같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0. 일 시 : 2008. 6. 8 (일) 10:00
0. 장 소 : 황성공원 내 목월노래비 앞
0. 참가부문 : 운문, 산문
0. 참가대상 : 전국 초, 중, 고, 일반(대학생 포함)
0. 참가신청 : 당일 현장에서 접수
0. 제목 및 심사위원 : 당일 현장에서 발표
0. 심사결과 발표 및 시상 : 당일 오후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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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에 대한 반성
형벌 관련 욕설 - 오라질 년과 경칠 놈
"도무지 어쩔 수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도무지"라는 부사를 앞세운다. 불가능을 일컫는 단순한 말 같지만 속뜻은 그리 가볍지 않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언급된 이 말의 어원풀이가 맞는다면 결코 함부로 쓸 말이 아닌 것 같다. "도무(모)지"는 옛날 엄한 가정에서 자식이 잘못했을 때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사형의 일종이라 한다. 도모지, 곧 한자어 도모지는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이다. 꼼짝 못하게 결박한 자식의 면상에 물이 먹은 창호지를 겹겹이 발라 놓으면 그 종이가 마르면서 자식이 서서히 질식해 죽는다는 것이다.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둬 굶겨 죽인 부왕도 있었다지만 과연 아비가 자식에게 이런 끔찍한 형벌을 내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그 옛날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지금처럼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구타까지 마다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홍명희의 "임꺽정"을 보면 형벌에 관련된 걸쭉한 욕설이 쏟아진다. "이 난장 맞을 년, 이 오라질 년, 주리를 틀 놈, 경을 칠 녀석" 등이 그런 예인데, "난장"이나 "오라', "주리", "경"도 결코 예사로운 벌이 아니다. 난장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마구 쳐대는 곤장을 이름이다. 곤장의 크기도, 맞을 대수도 미리 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뭇 사람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 그래서 맞다가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다. 여기서 난장 맞을(난장 칠)이란 말이 나왔고, "네 난장을 맞을"이 줄어 "넨장맞을"이 되고, "제기 난장을 맞을"이 줄어 지금처럼 "젠장맞을"이 되었다. 주리를 틀 놈도 난장 맞을 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주리는 주뢰가 본말로 죄인이 두 다리를 묶고 그 사이에 대를 끼워 엇비슷이 비틀어 대는 형구틀의 이름이다. 오라질의 "오라"는 죄인을 결박하던 홍줄의 이름이다. "오라를 지다"의 준말이 "오라질"인데, 여기서 지다는 맞잡거나 포개어 손 위에 얹는다는 뜻으로 오랏줄에 묶인, 요즘말로 하자면 수갑에 채인 몸을 가리킨다. "우라질"은 오라질의 모음교체에 불과하다.
"경치고 포도청 간다"는 말이 있다. 단단히 욕을 보고도 구속될 처지라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말하는 "경을" 경으로 알고 그 벌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순라꾼이 도둑을 잡아 순청(지금의 파출소 같은 곳)에 가두었다가 5경이 지나서야 풀어 주었으므로 "경을 치렀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경은 더 무서운 경으로 소급된다. 경이라 하면 죄인의 얼굴이나 몸에 살의 일부를 떼내어 홈을 파고 그 속에 먹물로 죄명을 찍는, 이를테면 낙인을 찍는 것과 같은 지독한 형벌이었다. 경을 자자 또는 묵형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벌 욕설의 최상급은 "오살할(오사랄)" 또는 "육시랄" 놈이다. 오살이나 육시는 반역을 꾀한 이들에게나 내리는 극형으로서 보통 사람과는 무관한 벌이었다. 오살은 죄인의 머리를 찍어 죽인 뒤에 시신을 다섯 토막으로 갈랐으며, 육시는 죄인의 사지를 소나 말에 묶은 채 사방으로 달리게 하여 머리, 몸통, 사지를 찢어 죽게 하는, 그야말로 가공할 형벌이었다. 요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회초리(흔히 교편이라 불리는)조차 잡지 못하게 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옛 형벌이 얼마나 잔인했는가 새삼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데 이들 형벌 관련 용어가 대부분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이런 극형이 먼저 중국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정 많기로 소문난 우리 조상들이 그런 지독한 형벌을 만들어냈을 리 만무하다. 기껏해야 곤장이나 치고 오라나 지우는 정도에 그쳤을 터이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짜증이 날 때, 또는 남에게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무심코 이와 유사한 욕설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어원을 따져 보면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에 대한 꾸지람이나 경멸 또는 몹시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일을 통틀어 욕이라 한다. 욕을 달리 칭하여 욕설이라고도 하지만 욕어나 욕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본래부터 욕으로 생성된 언어는 없었다는 이야긴데, 말은 쓰기에 따라 칭찬도 되고 욕설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상도 방언에서는 수고했다는 인사말 대신 항용 "욕 봤다"는 말을 즐겨 쓴다. 이 말은 강간이나 치욕의 뜻이 아니라 그저 어려움을 잘 이겨냈다는 격려의 인사다. 우리 조상의 고운 심성이 그대로 반영된 예라 하겠는데, 어떻든 자신의 수향을 위해서라도 욕이나 욕설은 자제해야겠다.
욕설에 대한 막심 고리키의 다음과 같은 말은 되새겨 볼 만하다.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욕을 먹는 사람, 욕을 하는 사람, 욕을 전하는 사람. 여기서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설을 뱉는 바로 그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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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언어예절
혼자서 큰 소리로 좀 길게 한다는 것 말고는 한 사람 앞에서 하는 얘기든 여럿 앞에서 하는 얘기든 다를 게 없다. 잘하자면 숱한 연습이 따라야 한다. 대선·총선을 거치면서 거리 연설도 들을 터이다. 때와 곳, 청중 따라 화제야 다르겠지만 인사는 비슷하다.
말 첫머리에 다중을 아울러 부르고 시작하는 건 만국의 관례다. 인사말은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로 단순해져 간다. 한편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에서 청중이나 상대 따라 ○○○이 달라진다. 이것이 부름말이다. 아이들은 ‘예!’라고 대답하지만 어른들은 시큰둥 마음으로 답한다.
“여러 동포들/ 나의 사랑하는 삼천만 동포들이여,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북녘땅과 해외에 계시는 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6천만 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6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친애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역대 대통령들 연설에서 나온 부름말들이다.
민족·동포·국민에 사랑·친애·존경하는 등의 모자를 씌워 ‘여러분!’으로 뭉뚱그린다. 말 중간에서는 그냥 ‘국민 여러분’이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나·내’, 최규하·전두환 대통령은 ‘본인’, 노태우 대통령은 ‘저·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저’라고 일컬었으며, 두루 말끝은 ‘합쇼체’로 높였다. 치우친 보기이긴 하나 60여년 사이 형편을 짚을 수 있다.
좀더 마땅한 부름말을 찾는 것도 숙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사변
북녘말
사변(事變)은 남북이 같이 쓰는 말인데, 쓰임에서 남북 차이가 있다. 남녘에서는 ‘만주사변, 을미사변’과 같이 주로 역사적이고 부정적인 일에 쓰는데, 북녘에서도 ‘을미사변’을 쓰지만, 일상적인 일과 긍정적인 일에도 ‘사변’을 쓴다.
“‘허! 이건 굉장한 사변인데.’ 봉서는 쓰거운 웃음을 눈가에 띄우며 씨까부렸다.”(조선단편집, 3. 씨까부리다: 남의 비위를 건드리면서 놀려댄다는 뜻) “새 북부철길의 개통은 두메산간오지에서도 기관차의 기적소리 울려퍼지게 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사변이였다.”(조선말대사전)
남녘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정은 사변 때 식구들의 생사조차 서로 모를 정도로 파괴되었다.”(김승옥, 역사)와 같이 ‘육이오 사변’을 ‘사변’으로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육이오 사변’ 대신 ‘한국 전쟁’을 쓰기도 하지만, ‘사변’이라는 말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은 남아 있다고 하겠다. 그 영향인지 몰라도 남녘에서 사변은 많이 쓰이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른 ‘사변’ 다섯 개 가운데 최근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은 사변(思辨)으로 보인다. 이 사변은 주로 ‘사변적 방법, 사변적이다’와 같이 ‘-적’과 함께 쓰인다.
사변에 대한 미묘한 차이는 초기 북녘 사전에서도 확인된다. 1961년에 나온 <조선말사전>에서는 ‘변스러운 사건’, ‘비상한 사건’ 외에 ‘중대한 일’이라는 풀이가 있다. 남녘 사전에서는 최근 사전까지도 부정적인 뜻으로만 풀이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북녘에서는 오래전부터 긍정적인 뜻으로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세금과 요금
경제가 다시 어렵다고 한다. 가정경제도 예외는 아니어서 생활비와 관련한 대화가 종종 눈에 띈다.
'영희 엄마, 이번 달 수도세 얼마 나왔어.' '말도 마. 그렇게 아꼈는데도 수도세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세까지 합하니 지난달보다 10만원이 훌쩍 넘게 나왔어.'
알뜰 주부들의 대화에서 보듯 우리가 언어생활 중에 습관적으로 잘못 쓰는 말 중의 하나가 수도세·전기세란 용어다. 국세청이 세금에 대한 상식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기요금'을 세금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응답자의 4분의 1이나 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세금과 요금은 성질이 전혀 다른 말이다. '요금'은 이발 요금·택시 요금·목욕 요금·공항 이용 요금 등 '물건이나 시설을 개인적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그 대가로 내는 비용'을 뜻한다. 따라서 전기나 수돗물을 '쓴 만큼, 개인이 대가로 내야 하는' 전기 요금·수도 요금은 세금이 아니다. '세금'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말이 있듯이 '경제 행위로 이익을 본 당사자에게 국가가 그 일부분을 내도록 하는 강제적인 비용'이다.
부가가치세·근로소득세 등은 '번 만큼, 나라에(일정 부분)내야만 하는'세금이다. 굳은 땅에 물이 괸다고 했다. 이번에야말로 검소·절약을 생활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준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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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영웅의 어머니
'내가 만약 내 아이들에게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너희들 각자가 한 인간으로서 또 하나의 개체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대담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나가 달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하기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세상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성공을 이루게 된 배경에는 그들로 하여금 그 자리에 오르도록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바로 아들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도록 한 릴리안 고오디 카터 여사입니다. 1898 년 리치랜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1917 년 19살의 어린 몸으로 전쟁터에서 종군 간호사로 일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휴전조약이 체결되어 보람있는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는 간호사 면허증을 따기로 결정하고 프레인즈 주의 조그만 도시에서 간호사 양성을 위한 훈련의 지도 아래 간호교육을 받았고 제임스 얼 커터를 만나 결혼해 아들 지미를 낳습니다. 지미는 책을 즐겨 읽었는데 그의 독서 영역을 넓히는 데 있어서 어머니 릴리안의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릴리안이 아들 지미에게 준 가르침은 단순한 모성애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생활방식에 따라 살았고 이 점이 아들 지미가 훗날 대통령이 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릴리안은 주위사람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을 위한 치료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녀의 남편 얼도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그녀를 적극 후원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1953 년 얼이 복부암으로 숨지자 릴리안은 생의 의미를 상실하지만, 7 년간 오오번대학의 기숙사에서 보모 생활을 하면서 삶의 보람을 되찾았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그녀는 블래이클리의 요양원을 2 년간 운영했으며 그 후에는 '평화봉사단'에 지원하여 인도에 건너가 일흔의 나이로 젊은이들도 견디기 힘든 간호보조사의 역할을 거뜬히 해냅니다. 한 어머니로서의 릴리안이 지미의 성공에 공헌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손녀딸을 보살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신문에 한 흑인이 의회 의원에 출마한다고 하자 격려하는 의미로 소액의 수표를 보냈는데 그가 바로 앤드루 영이었고 그는 지미를 위해 흑인 유권자들에게 영향력을 과시했던 사람입니다. 마침내 지미는 미국의 제38 대 대통령이 되어 세계를 이끄는 인물이 됐습니다.
그녀가 인도에서 고향에 있는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써 있습니다.
'내가 만약 내 아이들에게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너희들 각자가 한 인간으로서 또 하나의 개체로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인생의 목표를 향해 대담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나가 달리는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하기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가장 높은 지성은 산꼭대기와 같이 여명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고 반사시킨다. (머콜리 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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