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에 대한 반성
된소리 현상 - 꿍따리 싸바라 빠빠빠
어찌 들으면 태국어나 아랍어 같은, 또는 고약한 욕설과도 같은 이 노래가 한때 유행한적이 있었다. 현란한 조명과 화려한 율동을 동반한 이 요란스런 노래에 젊은 세대는 물론 중년층에 이르기까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꿍따리 싸바라 - 우리말을 공부하는 필자로서 세간에 풍미하는 이 노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노래말은 별 의미 없이 그저 "해 보는 소리"라고. 그렇다면 심심해서 내지르는 헛소리를 그토록 목청 돋우어 따라하고 온 몸을 뒤흔들어 대는 이런 풍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말이든 비록 무의미하다 할지라도 그 말이 유행하는 연유나 배경은 있을 것이다. "얼러리 껄러리"도 비슷한 유형으로 보인다. 한 아이를 "왕따"시킬 때 노래로 불러대는 이 말은 굳이 따진다면 남녀관계를 뜻하는 "얼다(통정하다)"가 어원이다. 앞에 놓이는 "누구누구는 누구누구와 뭐뭐 했대요"라는 미지칭 대명사의 반복이 이를 대변해준다. 여기서 "껄러리"는 별 의미 없이 "얼러리"에 짝을 맞추는 뒷가지에 불과하다. "싸바라"의 경우도 "꿍따리"에 달라붙는 뒷가지로 본다면 꿍따리의 의미 파악이 핵심이 된다. 우선 비슷한 어형을 찾아보기로 한다. "궁따다"란 말이 있다. 모르는 척 시침을 떼고 딴소리 할 때 쓰는 말인데, 꿍따리와는 무관한 것 같다. 궁상을 떠는 짓을 일러 "궁떨다"라고 하는데, 이 역시 거리가 멀어 보인다. 궁둥이를 지역에 따라 궁딩이 또는 궁뎅이라 하고, 구멍을 옛말로 궁기라 한다. 꿍따리 싸바라가 궁둥이로 무엇을 싼다는 이야기는 아닐 듯하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꿍따리는 "딴따라"와 같은 의성어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옛말에 풍각쟁이라 부르던 딴따라는 "탄타라 타"라는 북소리를 흉내낸 소리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꿍따리도 반주에서의 악기 소리, 곧 꿍꽝, 쿵쾅 따위를 흉내낸 말은 아닐는지. 꿍따리와 짝하는 "싸바라"는 더 모호하다. 대소변을 마구 배설한다는 "싸다"에서 온 말인지, 아니면 "싹수머리"가 없다는 "싸가지" 또는 이곳저곳을 배회한다는 "싸다니다", "싸지르다"에서 온 말인지 도시 종잡을 수가 없다.
결국 이런 결론에 미친다. 숨가쁜 템포의 반주음에 맞춘 현란한 조명과 발작에 가까운 율동, 그 속에서 현대인들은 목까지 차오른 불안과 울분을 토해 내는 것이라고.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용인 노래에 제대로 된 의미가 담길 필요는 없다. 이런 노래말에는 된소리(경음)나 거센소리(탁음)가 제격일 터이니 문제는 된소리의 연속음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된소리, 거센소리가 현대인의 감정과 영합된 지는 이미 오래다. 사랑도 싸랑이요, 작은 것도 짝은 것이며, 사모님도 싸모님이라 해야 요즘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다. "끄 쌔끼 떵친 짝아도 썽깔은 꽤 싸납던데..." "쐬주를 깡쑬로 들이켰더니 속이 알딸딸하고 간뗑이가 찡한데..." "쯩도 없고 껀도 없어 못 나가고 그저 집꾸석 틀어박혀 쩜 천짜리 고스톱이나 쳤지 뭐냐."
된소리가 안 들어가면 말이 안 될 정도로 온통 경음 일색이다. 뿐인가. 골때린다, 쪽 팔린다, 쪽을 못쓴다, 빼도박도 못한다, 찍싸다, 야리꾸리하다, 뽕을 뺀다, 똥줄이 탄다, 뿅갔다, 띨띨하다, 싹쓸이하다, 찍소리 못한다, 똥창이 맞다, 똥줄이 탄다 등등 된소리투성이의 예를 다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종류의 말을 뱉을 때 현대인들은 정신적 쾌감을 느끼는지 모르지만 그 통에 우리말은 너무 살벌해지고 말았다. 본래 예사소리(평음)뿐이었던 한국어의 말소리는 전쟁을 비롯한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점차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거칠게 변해 왔다. 그런데 요즘처럼 전쟁도, 가난도 없는 세상에서 말소리만은 왜 이렇게 고약하게 되었을까? 이는 아마도 상대적 빈곤감이나 복잡한 사회생활로 인한 갈등이나 불안 등의 심리 요인에서 기인한 것 같다. 좋은 것도 "좋아 죽겠다"고 하고 기분이 좋은 것도 "기분 째진다"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뿐인가. "기가 막히게" 좋다에서 기똥차다, 죽여 준다, 끝내 준다에 이르러 그 표현법은 더 이상 갈 곳을 잃는다. 언어 도단이란 바로 이런 상태를 두고 이른 게 아닌가 한다. 말도 안 되는, 곧 언어의 길이 끊어진 상태 말이다. 무의미한 언사 "꿍따리 싸바라"가 유행하는 현상이 바로 이런 단계에 이른 것이라 진단하고 싶다.
무질서, 과소비, 퇴폐 풍조, 폭력 사태로 얼룩지는 사회 병리 현상은 이런 거친 언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어 순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름다운 심성을 가지기 위해서도, 고운 우리말을 되살리기 위해서도 우선 된소리부터 자제해야겠다. "꿍따리 싸바라"라는 말은 제발 "꿍따리는 사라지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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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풀꽃이름
날씨가 쌀쌀한데, 생각해 보니 난로 위에서 끓는 주전자의 따뜻한 김을 본 지도 꽤 오래된 듯하다. 주전자에 넣어 끓이던 차들도 이제 간단한 티백으로 바뀌고 정수기 물을 부어 마신다. 요즘 사람들에게 ‘우려내는’ 일은 답답하고 지루할지도 모른다.
‘둥굴레’는 요즘 차로도 많이 마시는데, 뿌리줄기를 우려내면 땅콩같이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신속이 지은 <신간구황촬요>(1660)는 기근 구제법에 관한 책인데, 콩을 물에 불렸다가 짓씹어 먹으라는 내용 등을 보면 무척 마음이 아프다. ‘둥굴레’는 ‘둥구레’로 적었고 무릇과 송피와 함께 고아 먹으라고 썼다. 그래서인지 ‘죽네풀’이라는 별명도 있다.
‘둥굴레’는 말맛과 같이 모양을 본받은 말일 터인데, 잎도 모나지 않고, 동그란 열매가 줄줄이 달려서 ‘둥굴레’라고 이름 붙인 듯하다. 그러나 꽃 모양으로 말미암아 ‘괴불꽃’이라고도 했다. ‘괴불’은 어린아이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 모양의 조그만 노리개다.
옛사람들이 ‘살고자’ 마셨던 둥굴레의 차맛이 오늘날 ‘별다방’(스타벅스)이나 ‘콩다방’(커피빈스)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은냇골 이야기
땅이름
땅이름도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 놓은 것인 만큼 삶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는 전설적인 마을인 은냇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후손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은냇골 전설을 배경으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조카딸과 눈이 맞아 아이를 갖게 된 김 노인, 형의 노름빚을 갚고자 자신도 노름에 끼어든 뒤 줄행랑을 친 박 생원처럼 숨어살게 된 사람들의 삶이 애절하게 그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땅이름에 남아 있는 ‘은냇골’ 전설은 대체로 지사적인 면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조선 때 이름난 선비가 사화(士禍)를 피해 은둔하면서 생긴 이름이 ‘은냇골’이며 ‘은천동’이라는 식이다. ‘은냇골’은 ‘숨다’를 뜻하는 한자어 ‘은’과 토박이말 ‘내’, 그리고 마을을 뜻하는 ‘골’(고을)이 합쳐진 말이다. ‘고을’ 대신에 ‘골짜기’를 뜻하는 ‘골’이 합쳐질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은냇골은 ‘은천동’이나 ‘은천곡’으로 변화한다. 문헌에 나타나는 은천동으로는 <삼국유사> 권5의 혜통 설화가 있다. 혜통은 신라 신문왕 때 스님으로, 사람을 해치는 교룡을 쫓아냈다는 설화의 주인공이다. 그가 살았던 곳이 경주 남산의 은천동이다. 또한 지금의 경상북도 황간면에 합쳐진 ‘청산현’의 ‘은천소’도 이 유형의 땅이름이다. 혜통이 수도하던 땅이 은천이었으며, 백운정을 짓고 은둔하던 땅이 청산현의 은천이다.
은둔하는 선비 이야기든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이야기든 도처에서 발견되는 ‘은내’에는 사람들의 삶과 혼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겹말을 피하자(下)
⑫사전에 예방하다 :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한 성인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예방하기) <예방(豫防)이 '질병·재해 따위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처해 막는 일'이란 뜻. '미리 예고(豫告)하다'도 마찬가지다.>
⑬먼저 선취점을 얻다 : '원주 TG가 먼저 선취점을 얻었다.'(→선취점을 올렸다, 먼저 점수를 얻었다) <선취점(先取點)이 '먼저 딴 점수'라는 뜻.>
⑭수많은 관객들 : '그 가수는 수많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수많은 관객을) <'수많은'에 복수 개념이 들어 있으므로 '들'은 필요 없다. '많은 사람들''여러분들'도 마찬가지다.>
⑮간단히 요약하다:(→요약하다) <요약(要約)이 '말이나 글의 요점을 잡아서 간추림'이란 뜻.>
# 기타 : 역전 앞:(→역전(驛前), 역 앞) 계약을 맺다(→계약(契約)하다) 그때 당시(→당시(當時), 그때) 매 시간마다(→매시간, 시간마다) 해변가(→해변) 따뜻한 온정(→온정)등…
처갓집(=妻家), 고목나무(=古木, 枯木), 단발머리(=斷髮) 등은 겹말이지만 관용으로 허용되며, 국어사전에도 표제어로 올라 있다.
겹말은 한자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거나 그 뜻을 생각하지 않고 쓰는 데에서, 또는 그 의미를 한번 더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간결하고 명료한 글이 설득력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해두고 싶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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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거문고 선율에 실린 믿음
복자천은 춘추시대 때의 사람입니다. 복자천은 단부라는 마을을 다스렸는데 그는 관내 순시나 행정에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고 거문고만 뜯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은 거문고소리만큼이나 평화로운 분위기가 늘 유지됐기에 복자천은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그 뒤 무마기란 사람이 후임으로 와서 단부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마기는 선정을 베풀려는 욕심에 쉴새없이 마을을 돌아다녔고 행정 하나하나에 신경쓰고 일일이 관리들을 지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전임이었던 복자천이 거문고만 뜯으며 지냈어도 마을이 평화로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무마기는 복자천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복자천은 말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믿기 때문에 각자가 맡아서 하는 일에 그저 맡겨 두고 간섭을 하지 않았소."
아버지가 되는 것은 힘들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다운 것이 힘들다. To become a father is not hard, To be a father is, however. (W.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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