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 사랑 2 - 부끄러움이 자랑스러움으로
오래전 읽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이어령님의 수필이 생각난다. 우리말을 공부하면서 이 제목이 바로 우리말의 생성과 발전을 한마디로 지적한 것 같아 언제나 되새기곤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 중에도 흙, 바람, 땅, 고향, 어머니 같은 단어는 항상 새로운 맛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태어나 자랐고 그 속에서 살다가 장차 묻힐 곳이기 때문에 그 정은 더욱 애틋하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일평생 살아 온 사람을 토박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말문이 트일 때 처음 배워 죽을 때까지 쓰는 토박이 말(native language)을 고유어 또는 모어(mother language)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아기의 일정 기간에 걸쳐 모어를 습득하고 사춘기에 이르러 모어에 의해 사고의 틀에 형성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이루어지는 모어의 습득하고 사춘기에 이르러 모어의 습득이나 언어 활동은 민족성의 보존이나 계승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동일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는 그 집단이 살고 있는 땅이라는 공간에서 생성되고 그 위에 바람이라는 시간에 의해 변화를 거듭한다.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한국어도 이 땅의 흙속에 , 저 세찬 바람속에서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눈에 보이지 않는 산물이다. 흔히 말하는 언어의 풍토설이나 언어 민족설도 이를 바탕으로 이론을 전개시킨 것이다. 우주의 호흡이라는 바람은 잠시라도 그칠 새가 없다. 이 땅에도 항시 크고 작은 "말의 바람", 곧 언어의 변화를 겪었다. 이른 시기에 불어닥친 대륙의 모랫바람(흔히 황사라 부름)은 작은 한반도를 온통 누렇게 물들여 놓았다. 중국에서 유입된 한자 및 한자말이 우리 토박이말위에 쏟아져 우리말을 몰아낸 것이다. 가까운 시기에는 동해에서 "곤색바람"이 몰랴왔다. 일제 식민 통치하에 강요된 일본어의 사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의 한자, 한문이 우리말속에 스며들었다면 총칼의 위협 아래 강요된 일본어, 일어식 한자어는 그 위에 덧씌움을 했다고나 할까.
토박이말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대륙의 황사나 섬나라의 곤색바람보다도 더 게센 "오렌지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와 이 땅에 소용돌이치고 있다. 일본어의 잔재를 미처 씻어내기도 전에 또다시 영어를 위시한 서구계어의 풍랑을 맞이 된 것이다. "국어사랑 나라사랑"이라는 표어가 이제 "영어사랑 세계사랑"으로 뒤바뀔만큼 영어의 기세는 등등하다. 국제화에 적응한다는 명분아래 우리 어린이들은 영어조기 교육의 장으로 내몰리고 대학생들은 영어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영어로 강의를 듣고 있다. 또한 사회 분위기는 어떠한가? 모 신문사가 벌이는 환경정화운동을 "그린스카우트"라 하고, 모 자동차 회사가 벌이는 승용차 함께 타기 운동을 "고객사랑 카 풀" 이라 광고한다. 뿐인가. LG, SK 등 대기업의 이름으로부터 최근 속출하고 있는 벤처기업은 처음부터 영어로 이름을 지어야 되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다.
개인의 이름도 예외는 아니다. 모 그룹에 다니는 김모과장의 외국 이름은 "키스 김"인데 영어 이니셜이 "KS"인 점에 착안하여 누구나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을 이름을 지었다고 자랑한다. 영어식 이름뿐만이 아니다. 멕시코에 파견된 상사 주재원은 "로베르또", 러시아에 파견된 이는 "소냐, 타냐, 블라디미르" 등등 별별 희한한 이름을 짓고 있다. 개 이름 정도나 유별난 연예인 쯤 되어야 외국어 이름을 가지는 줄 알았더니 세계화를 부르짖는 요즘은 그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수년 전 서울이 정도 6백년을 맞았을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남산 자락에 "타임 캡슐"을 묻었다. 4백년 후, 곧 1천 주년이었을 때 후손들이 이를 열어보라는 의도에서다. 이 시대의 문화 유산을 그때의 후손들은 어떤 느낌으로 보게 될지 궁금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용기에 적힌 "타임캡슐"이라는 표기는 반드시 읽게 될 것이고, 이를 봄으로써 4백년 전에도 우리말이 외래어에 오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용기속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최신의 산물과 가장 정확한 역사 기록물을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우리의 정신적 문화 유산인 고유어는 빼먹지 않았나 싶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 시대의 정신문화는 그 시대의 언어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 용기속에 고유어를 쓰지 않았다는 건 이런 정신 문화의 핵을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한국 사람으로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리랑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라는 외국인의 질문에 자신있게 답변해 줄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잘 모르는 말이 어디 아리랑뿐일까마는 어떻든 우리는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의 그 말뜻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필자 역시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국어학을 전공하면서, 게다가 어원에 관심을 두면서도 그 말뜻을 모른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1994년에 펴낸 "부끄러운 아리랑"(현암사 간)은 이런 사실을 고백하는 글을 모은 책이다. 우리 것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줄 알고, 또 우리말에 전보다 더한 관심과 애착을 보일때만 이 부끄러움이 머잖아 자랑스러움으로 변하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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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진
땅이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공민왕 때 공암진에서 평민 두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이를 주워서 형에게 하나를 주었는데, 동생이 갑자기 남은 금을 물에 던지므로 형이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제가 평소 형을 우애하였는데, 금을 나누어 가진 뒤 형님을 꺼리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니 강에 던지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하므로, 형도 아우에게 받은 금을 물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공암진은 지금의 서울 강서구로 옛날 이름은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다. 이 이름에서 ‘파의’는 ‘바위’를 뜻하는 말인데, 한자를 빌려 쓸 때는 ‘파의’ 또는 ‘파혜’(波兮)로 표기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별사파의’, ‘구사파의’, ‘밀파의’ 등의 땅이름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이름들은 대체로 ‘고개’를 뜻하는 ‘현’(峴)이나 ‘바위’를 뜻하는 ‘암’(巖)으로 바뀌었다.
‘바위’의 옛말은 ‘바회’다. <감산사미륵보살광배명>에는 ‘동해유반변’(東海攸反邊)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때의 ‘유반’도 ‘바회’다. 유(攸)는 ‘바 유’로 ‘소’(所)와 같은 뜻이며, 외(外)는 한자의 음을 표기한 것이다. ‘마음’을 ‘심음’(心音), ‘가을’을 ‘추찰’(秋察)로 표기하듯이, 한자를 빌려 우리말 단어를 표기할 때 뜻을 중심으로 하고 음을 덧붙이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사람의 심성이 땅을 닮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강산이 변하여 공암진의 바위와 형제투금 전설을 다시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모시는 글
언어예절
청첩이 곧 ‘모시는 글, 모시는 말씀’이다. 초대장·초청장·청첩장으로 많이 쓰고, 청장·청찰이라고도 한다. ‘청첩장’은 ‘청첩’에 ‘장’이 붙어 겹친 말이 되었다. ‘첩’이나 ‘장’이나 공문서를 뜻하던 말이다.
삶에서 큰 일로 치는 성년(冠), 혼인(婚), 초상(喪), 제사(祭)를 두고도 두루 생각과 격식이 무척 바뀌고 흐려졌다. 허례허식 추방을 외치며 만든 ‘가정의례준칙’(대통령령)이 오히려 빛좋은 개살구가 될 지경이다. 전화·인터넷 따위 온갖 전달·소통 매체의 발달로 글발 양식이 달라져 간다. 한마디로 가볍고 어지럽다.
종이에 적어 주고받는 청첩장도 글틀이 어지럽다. 혼례 청첩은 집안 어른(부모) 쪽에서 내는 게 이치에 맞다. 상황 따라 혼인 당사자, 친구·친지·주례 등 제3자, 신랑 또는 신부 부모 쪽에서 따로, 양가에서 아울러 청첩할 때 등에 따라 글틀이 다른 게 마땅하다.
저마다 귀하디 귀한 혼례식을 올리면서 손님을 모신다며 하는 말이 조리가 서지 않고 청하는 주체가 흐릿하다면 정작 예식에 참례할 마음이 날 턱이 없다. 봉투에 모시는 이도 모심을 받는 이도 밝히지 않은 청첩장까지 나돈다. 큰일에 판박이 청첩이라니.
한 보기로 ‘주례’가 혼례 청첩을 한다면, 혼인 당자 어버이 이름, 신랑신부 이름을 밝히고서 “두 집안 어른이 가리시고 본인들 두루 백년을 함께할 뜻이 서서 여러 어른과 벗을 모신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자 하오니, 부디 오시어 빛을 베푸시옵고 보잘것없는 다과나마 즐겨 드소서” 정도로 모시는 글을 쓸 수 있을 터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하늘말라리아?
'하늘말나리'는 나리의 한 종류다. 보통 나리꽃은 옆이나 아래를 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반점 찍힌 붉은 색 꽃이 하늘을 보고 핀다. 그래서 꼿꼿해 보인다. 이 꽃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린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동화가 있다. 어떤 분이 이 동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너도 하늘말라리아'라고 적었다. '말라리아'는 며칠 간격을 두고 아팠다 안 아팠다 해서 도둑놈병이라고도 불리는 질환이다. 예쁜 제 이름을 고약한 병 이름으로 바꿔놓았으니 하늘말나리가 알았다면 기함을 했을 일이다.
위의 사례는 단순한 실수지만 이와 비슷하게 발음에 이끌려 잘못 사용하는 단어들이 있다. '눈 속에 개나리가 피다니 희안하다' '누가 먼저 제비를 뽑을까. 복골복이니까 너부터 해' 와 같이 쓰는 것이 그 예다. '희안하다' 는 '희한하다'로, '복골복'은 '복불복'으로 써야 바르다. 한자어 '희한(稀罕)' 은 드물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발전해 신기하다는 의미도 있다. 복불복(福不福)은 똑같은 환경에서 운에 따라 복을 받는 사람도 있고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기초가 단단하면 그 위의 건물도 튼튼하다. 말이란 것도 이와 비슷하다. 평소에 단어의 근원을 잘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자.
김형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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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조센징은 틀린 말입니다
일제 말엽 일본의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던 한 학생이 자그마한 약속을 지켜 줌으로 해서 우리 민족의 신의를 인식시켜 준 실화입니다. 김군은 동경의 모 전문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고향으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인 목사가 경영하는 기숙사에 묵고 있었는데 짐을 쌀 때 그 목사에게 배낭 하나를 빌려서 대충 필요한 생필품과 책자 몇 권만을 넣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태평양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폭격을 받게 되고 관부 연락선도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내왕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집안 사정과 차편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만 그가 걱정한 것은 일본의 기숙사에 두고 온 많은 자기 물건보다도 목사의 배낭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군은 기차 안에서 동경으로 건너가는 상업학교 학생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그 학생을 믿고 목사에게 배낭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한두 달 뒤에 그는 모 중학교 교사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배낭을 부탁했던 그 학생이 돌아왔습니다. 배낭을 잘 전달했음은 물론 그의 졸업장까지도 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엔 일본인 목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기차 안에서 만난 초면인 사람을 믿고 배낭을 부친 그대나 그것을 이 전란 중에 가지고 온 사람이나 모두 나를 감탄케 했습니다. 이런 신의 있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우리 일본 사람들은 당신들을 '조센징'이라고 나쁘게 평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 일본 사람들이 섬사람이라서 마음이 좁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인 목사는 그 얼마 되지 않는 고물 배낭이지만 잊지 않고 돌려보낸 김군이나, 그것을 먼 곳까지 찾아가 전달한 상업학교 학생의 태도에 탄복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작은 신의가 온 민족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길 원한다. 이웃인 대한 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닐 것이다. 원한 품은 이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하는 것보다 우정있는 이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원하는 것이다.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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