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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404 호
단기 4341. 4. 9 (음력 3. 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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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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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공모
한국문학의 흐름을 이끌어온 창비에서 우리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장편소설을 공모합니다. 참신한 상상력과 힘찬 서사로 침체된 한국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작품을 고대합니다. 미등단 예비작가는 물론 기성작가에도 문호를 열어놓으니 많은 관심과 응모 바랍니다.
마감 2008년 9월 30일
분량 단행본 1권 분량(200자 원고지 800매 내외) 고료 3천만원 응모자격 신인 및 기성작가 제한 없음.
발표 2007년 11월 14일 본사 홈페이지(www.changbi.com) 및 계간『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 (입상자에게는 개별 통지)
시상 2008년 11월말 보낼곳 413-832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11 (주)창비 문학출판부
기타
1. 수상작은 단행본으로 출간합니다. 2. 출간후 고료를 웃도는 인세(정가의 10%)가 발생할 경우 초과분의 인세를 지급합니다. 3. 응모시 겉봉에 ‘장편소설상 응모작’이라고 명기하고, 원고에 성명, 주소, 전화번호를 꼭 써주십시오. 4. 응모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5. 마감일 소인이 찍힌 작품까지 유효하고 우편접수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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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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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더러 끔찍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혹적이고 활기에 찬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삶을 철저하게 누렸다. 한 쪽 귀에는 탄식소리가 들려 오더라도, 다른 쪽 귀에는 언제나 노랫소리가 들렸다. / 숀 오케이시(아일랜드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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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글터 →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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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주술적 용어 1 - 끼, 그 가능성의 유전자
흔히 말하기를 "바람난 여자"보다 "바람기 있는 여자"가 더 매력적이라 한다. 언뜻 보아 두 말이 서로 비슷한 것 같아도 의미상 차이는 크다. 이미 바람이 나서 김이 빠져 버린 사람과 장차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구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의 눈빛이나 걸을 때 엉덩이가 요동치는 모습까지도 다를 법하지 않은가. 어떻든 바람과 짝을 이루는 "기"의 유무가 이처럼 크게 차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연예가 일각에서 "끼가 있다", "튄다", "뜬다"는 말이 유행하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이런 말이 무대에 서서 세인의 주목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처럼 듣고 싶어하는 말로 변신한 것이다. 끼 있는 사람은 언젠가 튈 수 있기에 주변의 관심을 끌게 되고, 밀어 주고 끌어 주는 이가 없어도 언제든 뜰 수가 있다.
바람기라는 말에서 보듯 "-기"는 어떤 기질이나 낌새를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그런데 이 "-기"가 지금은 된소리화 된 "끼"로서 자립명사로 당당히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끼"를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 잠재된 능력, 또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에너지로 본다면 이는 연예계나 예술계와 같은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어 쓸 말은 아니다. 개인이나 집단 또는 한 민족에 이르기까지 이 말은 두루 적용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경제 기적을 이루어 낸 우리 민족을 일러 "끼 있는 민족"이라 불러도 좋을 터이다. "끼"로 발음되는 "기"는 기운을 뜻하는 한자어 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어 기는 딘순한 공기나 호흡만이 아닌,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총체적인 힘, 이른바 원기, 정기, 생기, 기력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좀더 멋진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살리려고 그야말로 기를 쓰면서 노력한다. 그러나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는 법, 기가 꺽이고 기가 질리고 기가 막히고 기가 죽으면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하게 된다. 기는 동양철학이나 한의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말이지만 일상어에서는 느낌이나 기운 또는 낌새를 뜻하는 접미어에 불과하다. 이럴 경우 된소리 "끼"로 발음되는데, 옛문서에도 기(긔)를 예사소리가 아닌 "ㅂ긔" 또는 "ㅅ긔"로 적었다. 단순히 된소리화하여 "끼"가 된 것이 아니라 앞 음절의 어떤 모음이 생략되었거나 기라는 한자음 자체가 원래 된소리가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기(끼)와 가장 가까운 말이 "신나다", "신들다"고 할 때의 "신" 일 것이다. "신"은 어떤 일에 정신이 팔려 흥이 난 상태를 말하는데, 이 말이 한자어로 옮겨가 신명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고유어 "신"과 한자어 "신"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이는 우연의 일치인지 동일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와 "끼"도 유사한 경우로서 "끼" 역시 한자어와는 관계없이 고유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안개가 끼다"라고 할 때의 "끼"를 정의하기를 낌새가 있다고 할 때의 "낌"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앞서 "끼"를 정의하기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작은 틈새로만 엿볼 수 있는, 마치 안개가 끼듯 밑으로 퍼져서 서린 기운이 바로 낌새가 아닌가. 그렇다면 "끼"는 분명 우리 몸 속에 잠재한 무한대의 가능성, 바로 세포핵 속에 숨어 있는 유전자를 지칭하는 고유어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기"가 "끼"로 고정되는 과정에서 의미도 다분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숙과 안존을 미덕으로 여겼던 조상들이 "바람기 있는 여자"를 곱게 보아 주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들뜬 마음이나 어떤 행위를 일컫는 "바람"이라는 말 속에 한가지 일에 몰입하고 그것을 향해 끝까지 추구한다는 뜻이 포함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특히 철저한 전문가가 필요한 이 시대에는 자신의 일에 미치게 몰입하는 태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할 때는 하고 놀 때는 놀아라"라는 충고를 듣곤 했다. "논다"란 말의 "놀"도 본뜻을 캐 보면 "끼"와 유사한 면이 없지 않다. "놀"은 한 가지 일에 집착하여 온 정신을 기울인다는 뜻을 가졌다. 말하자면 "신"이나 "열" 또는 "흥"이나 "멋"과도 상통하는 말인 것이다. 흔히 윷놀이를 "놀았다"고 하며 무당이 굿을 할 때도 한판 "놀았다"고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명연주자의 표정이나 노래를 열창하는 명가수의 몸짓은 바로 굿을 할 때 신들린 무당의 모습 그대로이다. 평상시의 얼굴은 간 곳이 없이 그야말로 "놀고 있는" 바로 그 자체이다. 때로 눈을 까뒤집기도 하고 때로 일그러진 얼굴로 악기를 연주하는 정경화나 장한나의 표정에서 "끼"나 "놀"의 진정한 의미를 읽는다. 무당은 특별한 사람만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몰입할 수 있는 끼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무당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기분이 좋아지면 "신난다"고 하는데, 신이 난다는 말은 바로 무당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말하자면 신이 날 때 그 신이 몸에 내리기만 하면 걸로 무당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처럼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끼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그래서 무슨 일이든 집중하기만 하면 신들린 사람처럼 해낼 수 있다. 우리는 춤과 노래로 그 밑바닥에 숨어 있는 신명을 청하고, 신명과 끼를 풀어 냄으로써 삶의 영역과 보람을 확충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끼 있는 사람들이 펼치는 굿판, 이것이 바로 내일의 한국의 모습이다. |
밸과 마음
‘밸’은 배알의 준말로, ‘창자’를 뜻한다. 또 ‘배짱’ 혹은 ‘속마음’을 일컫는다. 같은 뜻으로 쓰지만 실제 쓰임에서는 남북 차이가 있다. ‘배짱을 속되게 혹은 낮춰서 이른다’는 점에서는 남북이 같지만, 다른 뜻에서는 쓰임에 차이가 있다. 남녘에서는 ‘밸’을 ‘창자의 비속어’, ‘속마음의 낮춤말’로 쓰는데, 북녘에서는 비속어나 낮춤말로 쓰지 않는다. 다음에서 ‘밸’은 낮춤의 뜻 없이 ‘속마음’의 뜻으로 쓰였다.
“사실 지금 둘의 밸은 서로 다르다. 리인수는 어떻게 하든지 유족한 사람들끼리만 따로 모여서 조합을 조직해보려는것이 진심이지만 서기표의 진심은 그렇지 않다.”(석개울의 새봄)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다고 조봉애가 부드러우니 이 락후분자도 속밸과는 달리 말소리가 좀 순해졌다.”(축원)
또한, 북녘에서는 ‘밸’을 ‘노엽거나 분한 마음’의 뜻으로도 쓴다. 북녘에서는 ‘밸이 곤두서다, 밸이 동하다, 밸을 삭이다, 밸을 참다’ 등으로 쓴다. 반면, 남녘에서는 ‘밸이 뒤틀리다, 밸이 꼴리다’와 같이 동사와 함께 관용 표현으로 쓰인다. 이처럼 차이가 나게 된 원인은 ‘밸’이 북녘에서 많이 쓰이다가 ‘분한 마음’을 뜻하는 낱말로 정착했고, 남녘에서는 잘 쓰이지 않아서 관용 표현으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속밸’은 ‘속에 품고 있는 비뚤어진 마음씨’를 뜻한다. ‘똥밸’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버티는 성미’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젖밸, 울뚝밸’은 남북이 같이 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눈높이
‘귀’보다는 ‘눈’에 무게를 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무엇을 정확히 알고자 확인할 때 ‘눈으로 확인한다’는 말을 쓴다. 남의 말만 듣고서는 무언가 미심쩍을 때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한다. 눈은 이렇게 매우 신뢰도가 높은 신체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해서 해맑은 눈동자를 미인의 필수 요소로 치고 있다. 대화 도중에 눈길을 피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눈은 사람의 수준을 가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KBS 드라마 눈높이를 낮춰라’,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눈높이 낮추고 적극적인 자기 PR’ 역시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눈높이’라는 말이 ‘수준’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눈이 높다’는 말은 수준이나 관심의 대상이 높다는 뜻이다. 제 수준에 맞지 않게 거만하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도 수준이라는 뜻은 살아 있다. 이런 뜻의 ‘눈’을 한자말로 옮기면 ‘안목’(眼目)이다. 눈 두 개가 겹쳐 있다.
사전들은 ‘눈이 높다’를 대부분 관용구로 설명하고 있지만, ‘눈높다’를 독립된 형용사로 올려놓은 사전도 있다. 그러나 ‘눈높이’를 독립된 명사로 인정하는 사전은 하나밖에 찾아보지 못했다. 이 말을 처음 쓴 것은 ‘눈높이 수학’이라는 학습 교재로 생각되는데, 이제 차츰 일반화되고 있다. ‘수준’이나 ‘안목’ 대신에 ‘눈높이’를 써도 좋을 성싶다.
우재욱/우리말 순화인·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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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두풍
이씨 왕조를 이룬 전주 이씨의 처음 발상지는 그의 본관대로 전주요 그 주산이 건지산이다. 그런데 그 후손 가운데서 이 태조 같은 이가 나서 왕조를 열고보니 얘기는 달라진다. 본시 북망산 모양 많은 무덤이 있던 산인데 풍수설을 믿는다면 반드시 어떤 명당 산소의 정기를 타서 이런 후손이 났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역사가 오래되어 과연 이씨 선조의 산소일지 징험할 도리가 없는지라 일등 지관을 동원하여 이것을 감정하는 도리 밖에 없다. 그래서 뽑힌 것이 두씨라는 풍수였다는 것이다.
그래 그 많던 산소를 일제히 이장시켜 다른 산으로 보내고 오직 한 분의 산소 정혈에 든 산소만을 남겼는데, 이것을 능으로 봉하거나 또는 선조 산소라고 확정짓기에는 그래도 자신이 없었든지 그런데로 봉분만 크게 하여 놓고 조경단을 모아 제향은 거기서 받들게 하였다는 것이 현지 사람의 전하는 얘기다.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되지 않게 아는 체 하든지 할 경우 '건지두풍이지'하는 식으로 놀리는 어투로 많이 사용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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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따끈따끈한 인정
전국을 구름처럼 떠도는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그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자 하룻밤 묵어 가기 위해 한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마침 흉년이 들었던 때라 마을은 썰렁하고 무척 곤궁해 보였습니다. 나그네는 지친 발걸음을 쉬어 가기 위해 일부러 마을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리 오너라."
곧이어 하인인 듯한 사람이 나왔고 나그네는 곧 사랑채로 안내되었습니다. 그는 널찍한 방에 앉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깨끗한 의복을 입은 한 선비가 나타나 미소를 띠우며 인사를 청했습니다. 나그네는 하룻밤 잠자리를 얻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터에 저녁까지 봐주려는 주인의 마음씨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밥상은 주인과 겸상이었지만 아무 반찬도 없었습니다. 덩그러니 뚜껑이 덮인 놋주발 두 개만이 상 위에 놓여 나온 것입니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뜨거울 때 조금이라도 드십시오."
주인은 나그네에게 저녁 들기를 권유하며 수저를 들고 밥주발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나그네도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주인이 하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뚜껑을 연 나그네는 순간 두 눈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놋그릇 속에는 뜨겁게 끓인 백비탕이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때가 흉년인지라 나그네에게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가난한 주인이 손님을 위해 맹물이나마 정성껏 끓여온 것입니다. 나그네는 주인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뜨거운 백비탕 한 그릇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배불리 먹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빈곤은 아니다. (미르티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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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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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는 순간 -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어두워지는 순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 그 모든 게 달려 있어서 나 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늑대처럼 오래 울고, 멧새는 여울처럼 울고, 아카시아 흰 꽃은 쌀밥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고, 호미는 밭에서 돌아와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마당에 선 나는 죽은 갈치처럼 어디에라도 영원히 눕고 싶고……. 그 모든 게 달려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다른 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개이고, 멧새는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멧새이고, 아카시아 흰 꽃은 여러 날 찬밥을 푹 쪄서 흰 천에 쏟아 놓은 아카시아 흰 꽃이고……. 그 모든 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베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이상하지, 오늘은 어머니가 이것들을 다 버무려서 서당골에서 내려오면서 개도 멧새도 아카시아 흰 꽃도 호미도 마당에 선 나도 한사발에 넣고 다 버무려서, 그 모든 시간들도 한꺼번에 다 버무려서 어머니가 옆구리에 산미나리를 쪄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다 어두워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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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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