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여성용 의상어 - 아얌과 배꼽티
귀엽게 보이려고 일부러 지어 보이는 교태를 일러 "아양"이라 한다. 작위적인 행위여서 "아양을 떤다, 아양을 부린다, 아양을 피운다"라고 표현된다. 아양을 떤다는 말은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꼬리를 친다"는 말과 동의어로 쓸 수 있다. 때로 남자에게도 이 말이 쓰이지만 본래 여성의 의상에서 나온 말이기에 여성세계에서 쓰여야 자연스럽다. 아양은 "아얌"에서 나온 말이다. 아얌은 옛날 여인들의 겨울철 나들이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쓰던, 일종의 모자였다. 남성용 모자와 차이가 있다면 위가 트였고 좌우에 있는 포근한 털끝에 아얌드림이라 하여 비단으로 만든 댕기를 길게 늘였다는 점이다. 옛 여인들의 의상에서 일종의 호사라고 할까. 현란한 무늬의 아얌드림은 걸을 때마다 흔들리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멋을 부리고 싶은 여성, 특히 바람기 있는 여성이라면 이를 더 심하게 출렁거리며 거리를 활보했으리라. 동물 세계에서도 암컷은 수컷을 호리기 위해 꼬리를 친다고 하지 않는가. 아얌은 고유어처럼 보이지만 액엄이라는 한자말에서 유래하였다. 액엄이란 이마를 가린다는 뜻인데, 남녀가 유별하던 그 시절 여인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장신구였다. 액엄과 비슷한 장신구로 이엄이란 것도 있었다. 이마가 아니라 귀를 가리는 장신구로서 이는 남성들의 관복에서 사모 밑에 받쳐 쓰는, 모피로 만든 일종의 방한구였다. 옛 여인들은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신체 전부를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 화류계 여성일지라도 발을 내보이는 것을 수치로 알았기에 한여름에도 버선을 벗지 않았다. 그러나 얼음장 밑에서도 물은 흐르는 법, 이런 엄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내보이거나 혹은 은밀한 애정표현이 없을 수는 없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얼굴을 가린 채 아양을 떨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겠지만, 어떻든 옛 여인의 교태는 이처럼 은밀하고 품위가 있었다고나 할까.
[아얌]
지금은 한복을 입는 경우에도 버선은 신지 않고 대게 서양 버선, 곧 양말을 신게 마련이다. 베로 만든 우리 고유의 신발(고어로 "보션")인 버선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까. 님이 오실 때 버선발로 달려나가던 모습도, 버선코의 그 날렵한 선도, 버선볼을 좁게 만든 "외씨버선"의 그 멋도 이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특히 "효도버선"의 아름다운 풍습이 사라진 게 못내 아쉽다. 시집 간 딸이 처음으로 친정 나들이 갈 때 문중 어른들에게 바치던 예물을 효도버선이라 한다. 친정 부모들은 그 효도버선을 신을 때마다 출가한 딸의 애틋한 심정을 되새겼으리라. 효도버선은 여느 버선과는 모양부터가 다르다. 짝이 서로 섞이지 않게 켤레마다 가운데 실을 떠서 묶는데, 거기에는 오래 사시라는 뜻에서 붉은 실로 80이란 숫자를 새겼다. 시댁으로 올 때도 똑같은 선물을 드리는데, 이 때 웃어른들이 "효도 봤다"는 인사말로 치하한 데서 효도버선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중동의 회교권 여성들은 "차도르"라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다는데, 신체를 가린다는 점에서는 한국 여성도 이에 못잖다. 중동 지역 여인들의 차도르에 해당하는 의상이 우리의 너울이나 장옷이 될 것이다. 장옷은 두루마기를 소매 옷고름까지 그대로 달아서 머리 위에서부터 뒤집어 쓴 것이고, 너울은 하녀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으로 검정 주머니 같은 천으로 몸 전체를 감싸던 겉옷이다. 뿐만 아니라 볼 게, 남바위, 풍채, 만선두리, 조바위, 친의, 가리마, 쓰개수건 등도 신체를 감추는 데 쓰인 의상들이다. 한편 여성의 속옷에 이르면 우리 의상은 자폐성은 정도가 더 심해진다. 속곳이라면 무조건 감추기만 하고 그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렸던 것 같다. 단속곳, 다리속곳, 고쟁이, 말기 등은 남에게 내보이는 것조차 수치로 알았다. 말기는 가슴을 동여매는 브래지어에 해당하고, 다리속곳이라 통칭되는 서답이나 개짐(월시)은 오늘날의 생리대에 해당한다. 부끄러움에 떨며 그나마 남아 있던 고유어도 서구어를 만나 기꺼이(?) 자리를 내 주고 자신은 꽁꽁 숨고 말았다. 속속곳이라 부르는 속잠방이는 팬티 또는 팬츠로, 치마 속이나 바지 위에 덧입는 단속곳은 슈미즈로, 이 밖에 고쟁이에 해당하는 것들은 각각 거들, 코르셋, 스타킹으로 세분해서 불린다.
단속곳과 속속곳으로 나뉘는 속곳 또는 속것(각종 내의류)의 고유이름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새롭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외래어에 비해 고쟁이, 꼬장주, 꼬장바지라고 하면 웬지 꼬장꼬장 때라도 묻어 무슨 고약한 냄새라도 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외래어의 힘을 빌려 고유어의 그 부끄러웅을 떨쳐 버리려는 심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젊은 여성들은 허벅지나 발은 물론 배꼽까지 드러낸 채 당당히 대로를 활보한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그 마지막 보루인 배꼽까지 내보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잃어버린 고유어와 함께 그 옛날 "모시 적삼 안섶 안에 연적 같은 그 무엇..."하던 그 은은한 멋과 매력은 이제 옛말이 되고 만 것 같다. |
좋은 아침!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 말 사용 빈도가 높다. ‘좋은 아침’은 ‘굿모닝’이라는 영어권 사람들의 인사말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영어권 사람들은 오전·오후·저녁·밤 인사말이 다르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 우리도 때에 따라 인사말이 달랐다. 어른을 만났을 때 그 시간이 아침 이른 때이면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아침 식사시간 이후에는 ‘아침 드셨습니까’라고 했다. 또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맞추어서 ‘점심 잡수셨습니까’, ‘저녁 잡수셨습니까’라고 했다. 아침·점심·저녁을 가리지 않고 쓸 때에는 ‘진지 잡수셨습니까’라고 했다. 인사말이 상대방의 먹고 자고 하는 일을 묻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잠은 편안히 잤는지, 밥은 제때 찾아 먹었는지를 묻는 것이 인사였다.
영국은 활짝 갠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안개가 낀 우중충한 날씨가 보통이다. 날씨가 좋지 않으니까 ‘굿모닝’은 서로의 바람이면서 상대방에 대한 축복의 의미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먹고 살기가 항상 빠듯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듯이 봄이면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밥을 먹었는지를 묻는 말이 인사가 되었다.
이젠 우리도 먹고 사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인사말에도 먹고 사는 이야기는 빼고 포괄적으로 ‘안녕하세요’라거나, 요즘 와서는 아예 인사말을 날씨로 바꿔 ‘좋은 아침’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우재욱/우리말 순화인·작가
범꼬리
우리가 예부터 가장 무서워하면서도 친근하게 느끼는 동물이 호랑이 곧 범 아닐까? 곶감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떡을 먹기도 하고, 동아줄을 타고 오르다 떨어져 버린 호랑이. 강아지풀이 강아지 꼬리를 닮아 붙은 이름이고 동네 길가에 흔하다면, ‘범꼬리’는 범처럼 1000미터 정도는 되는 높고 깊은 산 풀밭에서 자란다. 그 이름은 범 꼬리를 닮아 붙었고, 북부지역에서 만주지역에 많아 ‘만주범의 꼬리’라고도 한다. 약이름으로는 뿌리를 ‘권삼’(拳蔘)이라 하여 설사를 멎게 하거나 피를 멎게 하는 데 쓴다.
높은 산에서 자라 산꼭대기까지 간 사람들만이 군락지 장관을 맛볼 수 있는데, 지금이 한창이다. 하늘로 빳빳하게 치켜세운 두꺼운 꽃이삭에 호랑이 기상이 살아있는 듯하다.
‘호범꼬리’는 범꼬리보다 꽃이삭이 가늘고 긴데, 함경도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그런데, 이름이 ‘역전앞/새신랑’ 구조다. ‘씨범꼬리’는 포기가 작고 꽃은 더욱 작다. 특히 백두산 분화구 바로 아래에 자라는데,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한다. 범 대신 범꼬리만 남은 땅이지만 그래도 구경할 것 많은 우리 산천이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사진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소태와 소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진(晉)의 진수가 우리 옛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마한과 관련된 기록에는 “나라마다 별도의 고을(읍)이 있어 이름하여 소도(蘇塗)라 했으며, 큰 나무를 세우고 큰 북을 매달아 신에게 제사 지냈다. 그 안으로 도망한 자는 모두 잡아가지 못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민속학자들은 ‘솟대’의 어원이 이 ‘소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양주동은 <국사 고어휘고>에서 ‘솟대’가 ‘소도’에서 왔다는 견해는 한문 해석을 잘못한 것뿐만 아니라 ‘솟대’의 ‘솟다’와 ‘소도’의 음을 유추한 결과라고 짚었다. ‘소도’는 마한 각 고을의 별읍 명칭일 뿐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단 것’과는 무관하다. 그는 ‘소도’의 ‘소’를 ‘수컷’의 ‘수’, ‘도’를 ‘터’로 보아 ‘수터’ 곧 ‘남성신을 제사하는 곳’으로 풀이한다. 민속학자들의 풀이보다는 훨씬 과학적이다.
그런데 ‘소도’와 유사한 땅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충주 소태면은 ‘소탱이골’이었다. 솔탱이골·소태양면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다. 소태면 구룡리에서 원주 귀래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소탱이고개’이며, 그 아랫마을은 솔밭말 또는 송전(松田)이라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소태현’이 나타나는데, 지금의 태안 지역을 가리킨다. 태안의 상징이 소나무이듯, 소태현과 소나무는 깊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솔잎혹파리에다 재선충 피해가 전국을 휩쓰는 지금 벌레가 들지 못하도록 ‘소도’를 만들어 소나무를 보호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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