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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87 호
단기 4341. 3. 20 (음력 2. 1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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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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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
[글쓰기, 그리기, 표어, 포스터, 사진, 휘호, 노래, 서각, 도자기, 동영상] (기타 독도를 문화로 심는 모든 부문의 작품)
1. 대 상 : 전국 유, 초, 중, 고, 대, 일반인 2. 접 수 기 간 : 2008. 4. 5 - 2008. 6. 6 3. 시 상 : 의 병 상 (최우수상)
문무대왕상(경주시장) 세종대왕상(세종대왕얼계승추진위원회) 이 순신 장군상(덕수이씨풍암공파 회장) 거북선 최초 승전지상(사천시장) 곽 재우 의병장상(의령군수) 논개열사상 (진주시장) 안 용복 장군상(안 용복 장군 기념사업회) 광복회 회장상 백범 김 구상(백범 정신 선양회) 김 좌진 장군상(김 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도산 안 창호상(도산 안 창호 기념사업회) 윤 봉길 의사상(윤 봉길의사 기념사업회) 안 중근 의사상(안 중근 의사 숭모회) 박 차정 열사상(박 차정열사 숭모회) 홍 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상(홍 순칠 대장 유족회) 사운 이 종학상(이 종학 관장 유족회) 김 제의 열사상(김 제의 열사 유족회) 국회 도서관장상 독립기념관, 국립 진주박물관 (임진왜란전문 박물관) 관장상 서울대학교총장상, 경일대학교 총장상, 대구공대 학장상 교육감상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대전시, 인천시 충청북도, 강원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제주도, 충청남도교육청 시장상 -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도지사상 - 경상북도, 경상남도, 충청남도, 전라남도지사상 해양경찰청장상 일랑 이 종상상 (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 최초의 독도화가) 동곡 권용섭상 (독도화가) 아이 코리아 (전 새 세대 육영회) 회장상 푸른독도가꾸기회장상 독도수호전국연대의장상 대구은행장(사이버 독도지점)상 대한지적공사 부산광역시 본부장상 부산일보사장상 한국일보사장상
우수상 - 초, 중, 고, 대, 일반, 총100명 장려상 - 초, 중, 고, 대, 일반, 총100명
4. 문의사항:독도의병대 홈페이지 (www.o-dokdo.com) ( 011-513-0990) 5. 7회 대회 주제: 통일, 독도, 바다, 교육, 환경 *수상자 발표 : 2006. 7. 17 (제헌절) 독도 의병대 홈페이지 *시상식, 날짜, 장소는 수상자 발표 때 공지할 예정임
6. 본 독도의병대에서는 상이 남용되거나 이용되는 것을 막고, 진정으로 독도를 사랑하고 민족을 생각하는 인재를 발굴 격려하기 위해, 입상자가 시상식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 차점자에게 시상하고, 1인 여러 작품 응모는 허용하지만 수상작은 가장 우수한 작품 1편만 인정함을 양해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7. 인적사항-성명, 연락처(집 혹은 근무처, 학교전화, 휴대폰), 주소, 기재 8. 보낼 곳: 경북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 428-13 독도사랑작품 전시관 9. 제출된 작품의 저작권은 주최측에 있으며 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10. 주최측 사정에 의해서 위 사항은 변동 될 수 있습니다. 11. 위 시상 내역은 6회 대회 시상내역이며 앞으로 계속 추가될 예정입니다.
응모요령, 심사기준
#표어 * 길이(글자 수):자유롭게(±10자 ~ ±25자) * 글씨체: A4용지에 바탕체나 신명조 12포인트로 작성 * 입상자는 입상자 발표 후 15일 이내에 입상작품을 4절 켄트지(세로로 반쪽)에 꾸며서 독도의병대로 제출
# 글쓰기 * 지어낸 글보다 생활 속에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글 * 시나 산문 중 선택은 자유 * 원고 제한은 없으나 디스켓에 저장해서 같이 제출 * 글씨체:바탕체나 신명조 12포인트로 작성
# 그림, 포스터 * 4절지에 그리기 * 수채화,크레파스화, 유화, 모자이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기
# 사진 * 독도에 관련된 사진 및 사진 스크랩 * 크기 제한 없음 * 칼라, 흑백 불문
# 휘호, 노래 * 주제에 알맞은 내용으로 자유롭게 제출 * 노래는 악보와 녹음된 테이프 같이 제출
# 각 부문 공통 ○1인 당 응모 편수 : 제한 없음, 인적사항은 작품마다 첨부 ○각 작품마다 5가지 주제 중 하나를 선택 ○작성된 작품은 가능하면 접지 말고, 서류 봉투에 넣어서 우편 접수 그림과 포스터는 달력처럼 말아서 우편 접수
# 기타 문의사항 - 독도의병대 홈페이지(www.o-dokdo.com) 자유게시판
[7회 작품공모대회 주제 방향]
제7회 전국 독도사랑 작품 공모대회는 주제의 현안 문제 제기에 머무르는 작품 보다는 이전과 같이 앞으로 이 민족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대안을 제시하고 이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 하는 작품을 중심으로 심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응모자 여러분은 대안을 많이 응모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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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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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당장에 의견의 차이를 해소시킬 수는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다양성을 누리도록 함께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존 F.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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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글터 →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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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혼사용어 - 풀보기, 자리보기, 댕기풀이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련의 행사를 뭉뚱그려 결혼 또는 혼례라 한다. 영어의 "웨딩(Wedding)"이나 한자어의 혼인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합일의 의미로써 남녀 공히 쓰이지만 우리말에는 이처럼 남녀가 각기 달리 표현된다. 장가를 드는 일은 그 옛날 모계사회의 유습으로서 성년이 된 남자가 장인과 장모가 있는 집, 곧 장가로 들었기에 생긴 말이다. 옛날에 신랑은 일정 기간 처가에 머물렀다가 첫아이를 낳으면 비로서 독립하거나 본가로 되돌아온다. 우리말에서 장가든다는 말은 통해도 "시집든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남자가 드는 장가에 반해 시집가는 일만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여자는 일단 시집이란 데를 가면 다시는 친정에 되돌아오지 못한다. 시집이란 말은 "새(신)집"이라는 뜻이다. "새"가 변한 말 "시"를 한자로는 시로 적는데, 이는 우리가 만든 고유 한자이다. 새집에서 맞는 새 부모(시부모)는 특별히 신경 써서 모셔야 한다는 뜻으로 "계집 녀"자에 "생각 사"를 붙여 놓았다. 그러고 보면 요즘 세상에는 말 그래도 시집가고 장가드는 청춘 남녀는 매우 드물게 되었다. 대개는 분가하여 따로 살기 때문에 "독립한다"는 말이 결혼에 더 가깝다고 할까. 전통적인 혼사는 중매쟁이에 의해 남녀가 맞선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선본다"는 말의"선"은 먼저 본다는 뜻에서 "선"일 수도 있고 우선 대략을 본다는 뜻에서 "선"일 수도 있다. 중매는 고유어로 "새들다", 중매쟁이는 "새들꾼"이라 하는데 이는 두 사람 사이에 끼여든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이런 과정을 생략해 버리는 부부가 있는데, 혼례를 치르지 않고 그대로 동거해 버리는 "뜨게부부"가 그런 경우이다. "뜨게"라는 말은 "본을 뜨다"와 마찬가지로 흉내낸다는 뜻인데, 정식 부부도 아닌 남녀가 부부 행세를 하는 일종의 예비 부부를 지칭한다. "두더지 혼인"도 이와 유사하다. 정식 혼인이기는 하나 남몰래 하는 것이어서 떳떳하지는 못한 그런 혼사를 이름이다. 옛날 두더지 처녀가 더 멋진 신랑을 택하고자 온갖 부류의 동물을 전전했으나 결국 동족인 두더지 총각에게 가고 말더라는 우화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혼사를 치를 때 분수에 맞는 상대를 택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보쟁이다"라는 말도 부정한 혼례를 칭하는 고유어이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야합하여 은밀한 관계를 지속하는, 이른바 내연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예전 같으면 "보쟁이하다" 들킨 연놈은 "멍석말이"를 통해 뭇사람의 응징을 받아야 했다. 기혼 남녀를 일컬어 유부남, 유부녀라고 하는데 이 한자말은 웬지 꺼림칙한 여운이 있다. "유부녀가 어찌했다"면 남녀관계에 어떤 흑막이라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니 말이다. 이런 경우 "핫아비, 핫어미"라는 고유어로 불러 줌이 좋을 듯하다. 여기서 "핫"은 "홑(홀)"과 상반되는 말로서 핫바지와 홑바지의 차이와 같은 말로 쓰인다. 다시 말해 배우자가 있을 때는 핫아비요, 배우자 없이 혼자 살 때는 "홑아비, 홀아비"가 되는 것이다. 독신 생활을 "홀앗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홀아비, 홀어미도 다시 짝을 구하여 새 생활을 꾸릴 수가 있다. 재혼 또는 재취가 바로 그것인데, 이를 일러 "속현"이라는 멋진 표현을 쓴다. 거문고와 비파의 끊어진 현은 다시 잇는다는 뜻이니 머잖아 아름다운 선율이 집안에 가득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금실(금슬)이 좋았다면 모르겠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차선일지라도 다시 이어진 이 현이 절대 끊기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
최근 결혼식에서는 신랑 앞에 서는 "기럭아비"나 "꼭지도둑"도 없어지고, 신부를 따르는 "열두하님"이나 "쪽두리하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식이 끝난 뒤 시부모를 뵙는 "풀보기"라는 의식도, 친척이나 친구를 불러 한턱 단단히 내는 "자리보기"라는 풍습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풀보기란 거추장스러운 혼례의장을 풀어놓고 가벼운 복장으로 어른을 뵙는 일이요, 자리보기는 이웃 사람들이 첫날밤을 지낸 신랑 신부의 잠자리를 구경하는 일을 이름이다. 자리보기를 "댕기풀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신혼부부가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이웃을 초청하여 음식을 접대하고 한바탕 노는 것과 같은 행사다. 댕기풀이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대게 예쁘게 꾸민 침실을 기웃거리며 부부 생활을 빗댄 짓궂은 농담으로 신혼부부를 놀려댄다. 본래 신방은 사람의 눈으로 보아주지 않으면 귀신이 먼저 엿본다는 속신이 있다. 첫날밤에 그토록 극성스레 신방의 방문을 뚫어 대던 풍습도 이런 악귀의 침범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신혼여행지까지 따라 갈 수도 없고 또 침구멍을 낼 창호지문도 없어서 이런 장난을 칠 수 없게 되었다. 생활 환경이 변하고 풍습이 달라져서 그렇다 해도 이런 풀보기, 자리보기, 댕기풀이 같은 미풍의 용어만은 그대로 살렸으면 좋겠다. |
진고개와 긴고개
얼마 전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셨다. 그분의 말씀은 서울 중구의 ‘이현’(泥峴)이 ‘진고개’인데, 이 고개 이름은 ‘길다’에서 온 말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땅이름 변화 과정에서 우리말의 특성이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형상 변호사님 말처럼 ‘진고개’는 질척질척한 ‘진흙’(泥) 고개가 아니라 ‘기다랗다’는 ‘긴 고개’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에서 ‘ㄱ’이 ‘ㅈ’으로 변화하는 현상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기름’이 ‘지름’으로, ‘길’이 ‘질’로, ‘깁다’가 ‘집다’ 따위로 소리난다. 전남 장흥의 ‘이동’(泥洞)이 ‘진골, 진골목’으로 불리는 것이나 강원도의 여러 ‘진부령’이 구불구불한 긴 고개를 뜻하는 것은 ‘길다’가 ‘질다’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람이 지나는 길이나 고개·섬 등에 ‘길다’가 붙어 형성된 땅이름은 숱하다. 전남 영암의 ‘진섬’은 ‘긴섬’이다. 이 섬은 ‘지네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데, ‘길다’의 다른 형태일 뿐이지 동물인 ‘지네’와는 상관이 없다. 작은 마을을 뜻하는 ‘지단말’이나 ‘지뎀말’ 등도 ‘길다’의 고장말인 ‘지다랗다’, ‘지뎀하다’가 붙어 형성된 이름들이다. ‘지다랗다’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말이며, ‘지뎀하다’ 또는 ‘지덴하다’는 최학근의 <전라남도방언연구>(1962)에 나타나듯이 전라 방언이다.
이처럼 땅이름의 이형태를 살피면 우리말 땅이름이 한자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의미가 엉뚱한 말로 변한 것들이 많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어버이
자신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들딸을 둔 ‘어미·아비’가 얼마나 될까? 글말로는 흔히 쓰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들 말로 ‘엄마!’ ‘아빠!’로 불리고, 그 아들딸들이 어른이 되고서야 ‘아버지·어머니’ 하는 호칭을 이따금 듣는 형편이다. 요즘 들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어른들끼리 이야기할 때도 자신과 상대를 ‘아빠·엄마’로 일컫거나 부르기까지 하는데, 이는 아이말을 따르는 꼴인데다 제 어미·아비를 욕먹이는 셈이 된다.
할아버지·할머니도 ‘할배·할매’가 아이 말, 친근한 말로 쓰인다. 손주 앞에서는 자신을 ‘할아비·할미’라고 하는데, 할아버지·할머니, 할배·할매는 부르는 쪽의 말인 까닭이다. 아비/애비·아범, 어미/에미·어멈, 할아비/할애비·할아범, 할미·할멈을 보면 사람 따라 경우 따라 마땅한 말을 골라 쓰도록 우리말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어머니를 ‘아바쌔·아바씨·아바이·아배·아버니·아버이·아베·아부니·아부씨·아부이·아부재·아부제·아부지·아브이 …/ 어마·어마니·어마씨·어마에·어마이·어매·어머이·어메·어메이·어멤·어무니·어무이·오만·오매·오메·옴마 …’들로 부르는데, 고장이나 집안·사람 따라 조금씩 다른 게 재미있다.
‘아버지·어머니’는 인류 공통어에 가깝기도 해서, 부탄·몽골·중국·스리랑카 등에서도 아빠를 ‘아빠/아버/아바’처럼 말한다. 아람말(옛히브리어)로도 아버지를 ‘아바’로 불렀다는데, 이는 하느님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 아버지’나 ‘어버이 수령’이 그렇게 낯선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단고기
초복·중복·말복이 되면 삼계탕이나 개장국을 먹는다. 삼계탕은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으로 자리잡았으나 개장국은 아직 공인되지 않은 음식이다. 북녘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 개장국을 ‘단고기국’이라 한다. 단고기라는 말은 ‘고기 맛이 달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 낙랑구역 통일거리에는 ‘평양단고기집’이 있는데 1992년에 개장했다. 남녘에서 단고기는 공인된 식재료가 아니어서 규모가 큰 개장국 식당이 드문데, ‘평양단고기집’은 630석의 식사홀과 80석의 연회장, 7개의 방을 갖추고 있다니 무척 큰 규모다. ‘평양단고기집’에서는 다양한 단고기 요리를 코스요리로 맛볼 수 있다. 등뼈찜·갈비찜·가죽볶음·뒷다리토막찜·황구신이 차례로 나오고, 마지막으로 밥과 단고기국이 나온다. 밑반찬으로는 양배추말이김치와 우엉김치가 나온다.
남녘에서는 개장국을 보신탕·영양탕·사철탕이라고도 하는데, 재료 종류를 드러내지 않고 쓰는 말이다. 몸보신이 되고, 영양이 많고, 사철 먹어도 좋을 음식이 ‘단고기국’만은 아닐텐데도 이들 말은 ‘단고기국’을 가리킨다.
최근 중국에 평양단고기집 지점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가 아직 마음대로 평양에 갈 수 없는 형편이지만 한편으로는 남녘 단고기 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인되지 않은 개고기를 먹고자 밀도살, 밀수, 식당 편법 운영 등이 동원되는 남녘 현실과 단고기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외국 지점까지 개설한 ‘평양단고기집’의 상황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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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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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면피
창피한 줄을 모르는 마음씨 혹은 그 사람을 말한다.
왕광원이라는 자가 있었다. 학문도 재능도 상당하여 진사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는 대단한 출세주의자로서 웃사람이나 권세가를 찾아다니며 아첨하기에 바빴다. 누가 보건 말건 낮 간지러운 칭찬을 늘어놓기가 일쑤요, 상대방이 취중이라서 무례한 짓을 해도 노여워 하기는커녕 도리어 웃음을 지었다. 한 번은 취한 상대자가 매를 휘두르며
"어때? 그대를 때려 볼까?" "네, 각하의 매질이라면 오히려 영광이올시다" 하고 등을 내밀자 상대방은 실지로 매질을 했다.
한 자리에 있던 친구가 나중에 "자네는 창피한 줄도 모르나? 여러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그런 망신을 당하고 나서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거 모르는 소릴세. 그이한테 잘 보이면 얼마나 이로운지 알기나 아나?"
이렇게 대답하는 바람에 친구도 어안이 벙벙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그 사람의 낯가죽이 두껍기란 마치 열 겁으로 된 철갑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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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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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새장처럼 부서진 사랑
늙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평생 감옥을 전전했기에 그에게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으며 고독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늙은 죄수는 감옥 창 밖에 날아온 참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참새는 매일 죄수가 주는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죄수로서 70 평생 처음 느끼는 행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참새에게 정을 쏟은 죄수는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뜹니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의 여신은 질투의 비수를 꽂기 위해 죄수를 바다 깊숙한 섬으로 이감시킵니다. 참새를 두고 떠날 수 없는 늙은 죄수는 철사 부스러기를 주워다 조그만 조롱을 만들었습니다. 노인은 허술한 조롱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의 밀고 당기는 혼잡 속에 아차 하는 순간 노인의 허술한 조롱이 부숴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참새는 푸르르 날아올라갔으나 이내 수면으로 푹 떨어졌습니다. 참새가 조롱에서 빠져나와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염려한 노인이 새의 꼬리를 잘랐기에 그 새는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새를 건져 달라는 부르짖음은 뱃고동소리에 삼켜지고 애타게 울부짖는 노인의 처절한 사연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낙조가 어려 붉게 출렁이는 수면에 팽개쳐져 파닥거리는 작은 새를 늙은 죄수는 난간에 기댄 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로티의 "늙은 죄수의 사랑"이란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노죄수의 쓰라린 고통을 목격한 간수가 친구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친구는 "좋은 새를 구해서 그 가엾은 죄수에게 줘야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간수는 "소용없는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갖다 주더라도 늙은 죄수의 슬픔은 달랠 길이 없어"라고 단언합니다.
늙은 죄수에게는 그 참새가 아름다운 새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고 오직 사랑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성질의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 마셔 버린 깡통처럼 언제든지 획 던져 버릴 수 있게 편리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늙은 죄수에게 있어서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참새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아름다운 새를 준다 해도 그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울 수도 치료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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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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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딸에 관한 위험한 독법 - 김륭
그러니까, 나는 딸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다 아파트 베란다 마른 빨래처럼 널린 여자들에게 꽃을 안기고 물을 주었지만 쑥쑥 키 자라고 젖무덤 솟아오르는 딸에겐 그저 엉덩이나 두들겨주고 발갛게 달아오른 볼에 입을 맞춰주었을 뿐
딸을 꽃으로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너를 만나기도 전에 사랑해버린 것이다 고백컨대 내가 꾸역꾸역 삼킨 밥알에 관한 탐욕적인 묘사와 단 한 톨도 똥 덩어리로 밀려나지 않을 거란 눈물겨운 진술로 낳은 단 하나의 문장을 사랑니처럼 뽑아낸 것이다
꽃은 늙지 않는다 그러니까, 딸은 바람의 문체로 완성한 꽃이다 딸이 꽃의 뿌리에 발을 담근 것인지 꽃이 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인지 햇살의 입을 열어 확인할 길 없지만 바람은 언제나 꽁꽁 꽃과 딸을 한데 묶어 피를 돌린다
나는 내 품을 떠난 딸이 보고픈 날이면 꽃이 미워진다 한없이 미워져 복사뼈 걷어차며 딸에게 떠먹인 살이라도 찾아오고 싶은 것인데 그건 곧 깨진 화분 같은 내 몸에서 끓고 있는 피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나는 널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듯 할 수 있는 것인데 꽃나무 발등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주절주절 흩뜨려놓고 사는 것인데 그럴 때면 눈이 빨간 산토끼처럼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는 내 성기를 발견하곤 한다
바람이 위험해질 때 새들은 구름을 물어온다 그러니까, 구름은 딸과 꽃이 심겨진 아주 오래된 꽃밭이거나 딸과 내가 함께 덮고 자는 이불이다 갈라선 아내가 키우고 있는 딸에게 모처럼 넣어본 전화를 꽃이 받는 순간 후닥닥 딸은 시든다
그러니까, 나는 딸과 꽃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못 다한 사랑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턱밑에 붉은 밑줄을 긋고 잘못 살았다, 나는 제대로 늙기도 전에 미치거나 시드는 꽃을 눈물로 읽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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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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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마리 고양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 - 조 쿠터트
고양이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
고양이들은 대개 기품이 있다. 그들은 넓은 세상의 주변에서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작은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간다. 강은 훌륭한 친구다. 원류가 가까운 이 곳에서 바위 틈새를 지날 때면 경쾌한 소리를 내는 강은 강이라기보다는 정감이 가는 시냇물 같다. 햇볕이 뜨겁던 어느 고요한 여름날, 나는 강둑 위에 앉아서 물결을 타고 천천히 하류로 흘러가는 나뭇잎새 하나를 눈길로 좇았다. 로빈새가 얕은 물을 골라 아이스 티 빛깔의 물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목욕을 하고는 강 저편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비티(고양이들 중 하나)가 집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몸을 웅크리고 앉더니 나풀거리는 작은 흰 나비를 무섭게 노려 보았다. 꼬리가 긴장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비티는 살금살금 앞으로 기어나갔다. 녀석에게는 바로 그 순간이 전부인양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중에 없었다. 그 몰입이 부러웠다. 현재라는 좁은 발판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자꾸만 발을 헛딛고 과거와 미래의 생각 속으로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그날따라 강물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칵테일 파티의 소란스런 웃음 소리 같아 얼마 전까지 내가 살던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갓 목욕을 마친 로빈새가 머리 위 나뭇가지로 날아오길래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너머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위에 터키수리 한 마리가 기류를 타고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한순간 나는 다음 생애에 무엇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자유의 희열을 만끽하는 대가로 추한 대머리수리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비티가 뛰어올랐다. 그러나 나비도 비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훌쩍 날아올라 버렸다. 다음에 뭘 할까 고민하며 사방을 둘러보던 비티가 나를 발견했다. 반가움이 넘치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비티는 정신없이 잔디밭을 가로지르고 수호초 덤불을 뛰어넘어 내 무릎 위로 뛰어올랐다. 반갑다고 머리를 내 뺨에 비비대는 비티에게 말을 건네면 목구멍을 올리며 가르릉가르릉 대답을 한다. 손가락으로 귀 뒤쪽의 황갈색 털을 쓰다듬어 주며 나는 새삼스럽게 이 고양이의 장점을 헤아려 보았다. 고양이들 중 가장 어리고 신참인 비티는 그다지 특이하지 않은 얼룩고양이다. 고양이들이 깔끔하고 우아해서 저마다 나름대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비해 예쁘다고도 할 수 없는 외모였다. 그러나 비티는 많은 재능으로 삶을 풍요롭게 가꿀 줄 알았다. 정 많고, 지적이며, 수다스럽고, 생기 있고, 성격 좋고, 장난기 있고, 친절하고 또 너그러웠다. 가끔씩 농담삼아 비티에게 말해 주곤 했듯, 비티는 고양이 노릇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다. 문득 사람 노릇에도 그런 소질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삶의 한 자락도 놓치지 않고 살면서, 매사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처하고, 인간 관계를 풍요롭게 가꿀 수 있을 텐데, 그 순간 오래 전에 앤 브리지의 소설에서 읽었던 한 대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생각했다. 진실은... 사랑이 충만하고, 완전에 가까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진실들은 모두, 바로 우리 주위에 흩뿌려져 있다고... ”라는 구절이었다. 유일한 조건은 “그 진실들을 포착해야 한다. 즉 힘을 정복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쓸모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이 고양이가 바로 손 닿는 곳 어디에나 널려 있어서 눈길만 주면 내 것이 되는 진실들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은 대개 기품이 있다. 넓은 세상의 주변에서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작은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간다. 사랑과 인정을 비굴하게 구걸하지 않는다. 고양이에게는 신도 없다.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그들에게 신은 필요하지 않다. 고양이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단순함, 평온하고, 침착하다. 또 당장 처해있는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줄도 안다. 인간에게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느껴지는 소원함 대 친밀함, 혹은 융합 대 개별의 문제를 고양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풀어 버린 것 같다. 자아를 지킬 만큼의 거리는 유지하면서 고독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지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목구멍을 만족스럽게 가르릉거리는 재주를 보면, 삶의 한적한 여유를 한껏 만끽할 줄 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항상 발로 땅을 딛는 그 독특한 능력을 보면, 정말이지 가치 있는 삶의 지혜를 고양이한테서 충분히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가 달릴 염려는 없었다. 그때 고우웰(저자의 자택이름)에는 고양이가 일곱 마리나 살고 있었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기르며 기쁨을 느꼈던 건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이렇게 많은 고양이에 둘러싸여 살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고양이가 한 마리라면 내게 정을 붙이겠지만 두 마리 이상이면 저희들끼리 친하게 지내느라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논리였지만, 주말마다 도시의 아파트와 뉴저지서편 언덕에 자리한 이 낡은 집을 분주하게 오가며 살아가던 당시에는 그 논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때는 골든리트리버종 한 마리도 키우고 있었는데, 내 자동차는 작았지만 개 헥터와 고양이 케이트는 물론이고 가끔씩 동승하는 주말 손님들 정도는 거뜬히 태울 수 있었다. 종종 우리와 주말을 같이 보냈던 콘스턴스 캐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강아지 타입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케이트의 강한 개성에 매료되는 바람에 코네티컷에 갔을 때 영하의 날씨에 지하실 문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던 새끼 고양이를 주워다가 뉴욕까지 데리고 와 버렸다. 그 후 코니가 고우웰에 주말을 보내러 놀러 올 때면 피클스도 따라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주말 저녁 코니와 나는 이웃 마을 체스터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난 뒤 한밤중의 차가운 어둠 속으로 걸어 나온 우리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자기 자동차를 찾아가는 커플들을 차례로 쫓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 헤매듯 열심히도 야옹거리면서, 우리는 고양이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아 어두 컴컴했다. 밤공기는 싸늘 하기만 했다. 치렁치렁한 긴 털에 버터스카치 빛깔의 고양이는, 어루만져 주려고 허리를 굽힌 우리에게 수심 가득한 목소리로 애처롭게 말을 걸어 왔다. 안아 올렸더니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고양이를 자동차 안에 태우고 나서 혹시 나가고 싶어하지 않을까 해서 잠시 기다렸다. 시동을 걸고 나서도 또 기다렸다. 고양이는 조금은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고, 제 나름대로는 길고 힘든 여행 끝에 도착한 휴식처가 그런대로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속에서, 내가 더 이상의 고양이는 원치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코니가 먼저, 만약 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이 놈은 자기가 맡아도 괜찮겠다고 말했다. 고양이가 착해 보이는데다 잘 씻겨서 배불리 먹여 놓으면 어떤 고양이 못지않게 아름다울 거라고 하면서, 다음날 우리는 동물애호협회와 경찰에 전화를 해서 도시와 시골에 있는 집 전화번호를 둘 다 남겨 놓았지만, 잃어버린 버터스카치빛 고양이 건으로 전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코니는 두 번째 고양이를 갖게 되었고, 발견된 마을의 이름을 따서 그 고양이에게 체스터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다음 번에 또 집 없는 고양이가 나타났을 때는 나밖에 아무도 떠맡을 사람이 없었다. 결국 한 마리로 끝이라는 내 결심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마침내 나는 고양이 네마리에다 개 한 마리를 끌고 도시와 시골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되었는데, 이게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어서 아예 시골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내 결심을 부추긴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자기 자신을 통계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이 도시를 떠나고 있는 추세라는 인구통계학자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내가 그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백분율에 한몫을 했다는 실감이 든다. 난 항상 뉴욕을 사랑했고, 뉴욕을 떠나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도시의 인구가 치명적인 한계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 마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거리의 군중이 되는 바람에 퍽퍽 쳐대는 팔꿈치들과 뻔뻔스런 무례함의 대폭발이 일어나 버린 것 같은 느낌에 사로 잡혔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일을 마치자마자 헥터의 목걸이를 잡아끌고 허드슨 강변으로 가서 일몰을 바라보았다.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공기는 공기가 아니라 배기 가스 덩어리일 뿐이었다. 경적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댔다. 나는 전원의 푸르른 평화를 떠올렸다. 그립기만 했다. 바로 그 주말에, 일요일 저녁이 돌아왔을 때, 나는 자동차에 몸을 싣지 않고 그대로 고우웰의 침대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밤도, 그 다음날도. 도시 생활이 아쉽지 않았다. 시골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냈다. 낡은 양계장 2층에 못으로 목조 계단을 두들겨 박아 뾰족지붕 아래에 작은 작업실을 꾸몄다. 이제는 글을 쓰다가 책상에서 눈길을 들면, 차가운 돌벽이 아니라 푸른 나무 꼭대기와 떠다니는 구름이 보인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걸어나가면, 빡빡한 인심과 조급한 안달로 가득한 도시가 아니라 자연의 세계가 나를 맞이한다. 나는 고독을 시험하면서 여름 내내 이곳에서 지냈고, 그러다가 가을을 보냈고, 또 겨울도 지났다. 그러다 보니 고우웰에서 친구들도 사귀었고 제법 그럴싸한 삶을 꾸려 가게 되었다. 고우웰에 눌러 앉아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이듬해 코니는 뉴욕의 콘도미니엄 생활이 으레 겪기 마련인 어려움에 부딪쳐 힘들어 했다. 나는 코니에게 이 참에 시골에서 한번 살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피클스와 체스터도 살림살이를 꾸려 따라왔다. 함께 살며 1년 정도 뉴욕으로 출퇴근을 한 결과, 코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시골 생활이 행복하다고 판단했고, 아예 직장인 심리 치료클리닉까지 근처의 교외 도시로 옮겨 개업함으로써 도시 탈출자의 통계 수치에 일조를 했다. 고양이들은 훌륭한 친구들이긴 해도 멀리 산책을 나가는 데엔 영 쓸모가 없는 동물인지라, 헥터가 열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 뒤 우리는 가까운 동물보호소에서 중간 크기에 보드라운 털을 가진 검정, 갈색, 흰색이 섞인 강아지 프리빌르 얻어 왔다. 프리비는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전 주인의 메모가 딸려 있었는데, 아닌게아니라 녀석은 정말 고양이들을 좋아했다. 정작 고양이들은 프리비의 애정을 시험해 볼 열의가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비티가 올 때까지는 프리비를 철저히 무시하고 지냈는데도 말이다. 비티는 일곱 번째 고양이였다. 녀석 덕분에 내가 세상에서 단 하나의 진실로 가치 있는 질문을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수십년이 지났다. 바로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 인가?”라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해답을 찾아 머나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거나 높디높은 히말리아산맥 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 못 되기 때문에 바로 여기, 래리턴 강 남쪽 지류의 강둑에 앉아 그 답을 찾으려 애써 왔다. 그리고 나의 눈길은 고양이들에게 줄곧 머물렀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며 해답을 억지로 쥐어짜내기보다 단순한 고양이들에게서 무엇이 옳고 그른 행동인지 알아내는게 훨씬 낫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행동만 따른다면 인간도 잘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칼 밴 벡튼 의 말에 무조건 동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 훌륭한 동물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만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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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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