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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85 호
단기 4341. 3. 18 (음력 2. 1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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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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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예방 포스터ㆍ표어 공모
김포시는 자연ㆍ인적재난 예방의 중요성과 안전의식 고취를 위해 오는 3월19일까지 재난예방을 주제로 포스터 및 표어를 공모한다.
초ㆍ중ㆍ고등학생 및 대학ㆍ일반인을 대상으로 포스터와 표어 2개 부문으로 나누어 공모를 실시하며 초등부, 중ㆍ고등부, 대학ㆍ일반부로 나눠 접수한다. 응모작은 김포시청 재난민방위과로 직접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하면 된다.
각 부문별로 최우수상 1명, 우수상 1명, 장려상 2명 등 총 24명을 시상하게 되며 부문별 최우수작품은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재난예방 포스터 및 표어 공모전’에 출품되게 된다. 문의 재난민방위과 9802916.
대산청소년문학상 공모
대산문화재단은 전국의 중·고교 재학생과 해당 연령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16회대산청소년 문학상을 공모한다.
응모기간은 5월30일까지로 시 5편 또는 원고지 60장 안팎의 소설 1편을 학교장 추천서와 함께 우편이나 방문을 통해 제출하면 된다.
재단은 작품 공모를 통해 약 80명의 후보를 선발한 후 이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중 문예캠프와 백일장을 실시해 총 8천여만원의 장학금을 받을 최종 수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수상자들은 각 대학의 입시전형 기준에 따라 문예특기자 입학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문의는 재단 청소년문학상 담당자.(02-721-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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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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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흔히 통찰력의 결핍에서 나오는 한편, 비겁은 대개의 경우 훌륭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다. / 피터 유스티노프(영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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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글터 →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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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유아의 언어 습득 말문은 저절로 트인다
보통 아이들은 난 지 1~2년이 지나면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옹알이부터 시작된 언어 학습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제법 어른의 흉내를 내게 된다. 초기에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몇몇 단어를 반복하는데 그치지만, 이런 시행 착오기를 거치면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 된 문장을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문장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미숙하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기를 표현하려 애쓴다. 이런 시기를 가리켜 옛 어른들은 "말문이 트인다"고 했다. 말문만 트이는 게 아니라 글문도 트인다고 말한다. 글을 능숙하게 읽을 줄 알고 또 자유자재로 지을 수 있는 단계를 일컬어 문리(문리)가 트인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트이다"는 표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트이다는 "트다"의 피동형으로 "싹이 트다. 동이 트다. 움이 트다"에서 보듯 어떤 결과가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저절로, 또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을 이름이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그것도 우연히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그런 결과를 가져올 어떤 싹(원인)이 내재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어린이는 세상에 태어나 두세 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리고, 그 이후 글방에 다니면서 열심히 글을 읽으면 어느 순간 저절로 글문(문리)이 열려 자연스럽게 글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이런 필연적 현상을 두고 "트인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어린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헤엄치기나 자전거 타기처럼 오로지 학습에 따른 결과라고만 믿어왔다. 다시 말하면 말하기에 관한 한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여 언어 현상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숱한 시행 착오나 반복 훈련을 거쳐 비로소 자유롭게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최근에 와서 뒤바뀌게 되었다. "트인다"는 표현을 고려한다면 어린이에게는 말을 할 수 있는 어떤 싹, 즉 유전인자가 있었음을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트인다"가 본래 내재했던 인자가 저절로 드러나는 현상이라면 인간은 본래 언어 능력을 가졌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언어, 특히 생후 최초로 습득하는 모어에 관한 한 "배운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물고기는 태어나면서부터 헤엄을 칠 수 있고, 또 새는 알에서 깨어나면서부터 하늘을 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날 수는 없으니 새가 날 수 았고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이유는 후천적 학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선천적인 자질이기 때문이다. 언어 습득도 이와 같으니 말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인간의 선천적인 자질에 속한다.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생득설이니 합리주의 이론이니 하는 것도 이를 두고 이름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면서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고려해보면 이 생득설이 언어 습득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이론인가를 알게 된다. 우리 나라 학생들은 가장 지능이 발달한 시기, 곧 중학교 때부터 영어룰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까지 약 10여 년을 지속한다. 그것도 무질서하게 배우는 게 아니라 가장 체계적인 방법으로, 또 좋은 환경에서 수학하게 되므로 그 정도면 영어 하나는 충분히 구사할 법도 한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린이의 모어 학습의 경우는 어떠한가? 지능 계발도 덜 된 시기에, 그나마 가르치는 사람이 반드시 우수하지도 않으며 가르치는 내용도 체계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여건하에서도 모든 어린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거의 비슷한 수준의 모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런 놀라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언어가 일반적인 지적 능력과 경험만으로 습득되는 것이라면 어린이의 지능 지수나 소질, 환경 등의 차이에 따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우열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어린이에게는 환경적 여건이나 일반적 지능에 제한을 받지 않는 어떤 천부적인 언어 학습 능력, 또는 언어 구조에 대한 해석 능력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다는 언어 구조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마치 건축 설계의 청사진과도 같은 그것의 모습을 우리가 알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 청사진의 참모습을 밝히는 일이 언어학의 궁극적 목표가 되겠는데, 만약 그것이 밝혀진다면 언어학의 분야뿐 아니라 인간 정신의 해명에도 크게 공헌하리라 믿는다.
언어 학습 과정에서 유난히 말을 빨리 배우는 어린이가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똑똑한 자식이 태어났다고 좋아들 하지만 사실 일찍 말문이 트인다 하여 꼭 지능이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천재 아인슈타인은 여섯 살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늦게 말을 배웠느냐고 묻자 그는 남들이 말을 배울 때 자신은 상대성 원리를 구상했노라 했다. 말하자면 그 나이에 아인슈타인은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말을 안 한 것이다. 말은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문이 트여서 행하게 되는 것이니 아인슈타인은 단지 시간적으로 말문이 늦게 트인 경우에 불과하다고 할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자녀들을 많이 낳아 길렀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왜 그렇게 자식을 많이 나았냐고 물으면 사람은 생기는 족족 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온다고 답하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갖고 나오는 그것, 그 재산 목록 가운데 가장 귀한 보물이 바로 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한다. |
빌레와 바위
제주의 땅이름 형태는 뭍과 다른 점이 많다. ‘빌레’는 제주말로 ‘너럭바위’를 뜻한다. 남제주 대정 지역의 ‘넙은빌레·빌레못·답단빌레’ 등은 너럭바위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 ‘빌레’의 표준형은 ‘별내’다. 별내는 비탈을 뜻하는 ‘별’에 ‘장소’ 또는 ‘물’을 뜻하는 ‘내’가 합쳐 된 말이다. 제주에서만 ‘빌레’가 나타나 낯선 땅이름처럼 보인다.
땅이름 변화에는 지역에 따른 말소리 차이가 큰 영향을 끼친다. 고개를 뜻하는 ‘모르’나 ‘머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뭍을 뜻하는 ‘고지·코지’와 같은 말들도 받침이 없는 형태인데, 이는 제주말의 소리마디에 받침을 잘 안 쓰거나 유성음을 많이 쓰는 경향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제주 방언에는 ‘르·앙·엉’으로 끝나는 명사가 많다. 또 뭍과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탓에 이 지역 말에는 옛말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특징이다.
비탈의 ‘별’과 낭떠러지의 ‘낭’이 합쳐져 ‘벼랑’을 이루듯, 비탈진 곳의 바위만을 별도로 ‘빌레’라고 부른 것은 땅이름의 지리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셈이다. 제주에서 빌레와 바위는 유의어로 쓰이는데, 바위는 간혹 ‘방구·방귀’로 불리기도 한다. 바위가 많은 마을인 남원읍 신흥리는 ‘방구령’이라고 불렸다. 이 말은 생리현상인 방귀를 연상하게 하므로, 한자 표기에 거북 구를 쓰다가, 아예 신흥리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바꿨다. 마을 서남쪽에 앞빌레가 서 있는데도 생소한 땅이름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보여준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집
‘집’은 사는 집, 가족이란 뜻에다, 지아비·지어미(집아비·집어미)처럼 부부, 집사람·안사람처럼 아내를 일컫는 말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집안이나 그 집 사람을 부르는 말에 택호·가호가 있다. 흔히 안주인의 친정 마을 이름을 따 ○○댁·○○양반처럼 안·바깥 주인을 일컫고 불렀다. 삼대가 사는 집이라면 택호만도 셋은 된다. ‘마실댁·싹실댁·한들댁’이 그런데, 새댁·새사람 시절을 지나야 택호가 붙는다. 나아가 월남댁·태국댁·연변댁·새터댁 …으로도 부를 만한데, 공동체나 두레가 사라지고 아파트살이, 맞벌이 부부가 많아진 요즘엔 마냥 사람 이름이나 멋없는 직업·직책 이름만 나돈다.
‘집안’이 곧 가문인데, 이를 이르는 말이 숱하다. 본디 자신이 놓인 처지 따라 쓸 말이 달라지는 까닭에 생긴 이름들이다.
본집, 작은집, 큰집, 친정집, 시집·시갓집, 사돈집/사가, 처갓집/가시집, 외갓집, 고모집, 이모집들이 그것이다. 집은 무리(黨)를 이루므로 본당·친당·모당·시당·처당·척당·취객당으로 일컫기도 한다. 여기서 척당(戚黨)은 성이 다른 가까운 핏줄을 이른다. 척당·척속에는 모당, 곧 외갓집·이모집은 물론 고모집과 진외가·증외가(할머니 쪽 친정)처럼 외척·내척을 싸잡는 까닭에 무리가 많게 된다. ‘사돈의 팔촌’이란 따지고 보면 남이 없다는 얘긴데, 전날 무척 번성한 집안이어도 두루 삼백을, 요즘엔 백 사람을 넘기기도 어렵다. 친척이라면 같은 성 곧 일가(친)와 성이 다른 피붙이(척)를 아우르고, 인척(姻戚)은 혼인으로 맺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입뇌리·물퉁게
몸이 피곤하면 입술 주위에 물집이 생길 때가 있다. 이 물집을 ‘구순포진’(口脣疱疹)이라고 한다. 참 어려운 말인데, 바로 ‘입술 물집’이다. 한 낱말로 붙여서 쓸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입술 물집’에 해당되는 남녘말로 ‘입치리’, 북녘말로 ‘입뇌리·물퉁게’가 있다. ‘입술물집’은 두 낱말이 연결되어 한 낱말로 쓰기에 좀 이상하다면, 이들 말을 써 보면 어떨까?
‘입치리·입뇌리·물퉁게’의 원인은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알려졌다. ‘헤르페스’(herpes)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온 영어인데 ‘포진, 물집’을 뜻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물집균’이라고 하겠다. ‘바이러스’는 워낙 익숙하기 때문에 ‘균’으로 바꾸기 곤란하다면, ‘물집 바이러스’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집균’은 치료된 뒤에도 감각 신경에 남아 있다가 몸의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 활동을 시작해 물집을 만든다고 한다.
입술 주변이 아닌 가슴이나 등에 물집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대상포진’이라고 한다. ‘대상’(帶狀)은 ‘띠 모양’을 뜻한다. 그러니 ‘대상포진’은 ‘띠처럼 물집이 여럿 난 것’을 말한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지석묘’(支石墓)를 ‘고인돌’로 바꾸었는데, 고인돌이 ‘돌로 돌을 고였다’는 뜻으로 ‘고이다, 괴다’와 관계가 있다는 것만 알면, 욀 필요도 없고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익숙지 않은 말을 쉬운 말로 고쳐서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와 외국어를 섞어서 씀으로써 얻는 이득이 적은 까닭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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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멀리 꿰뚫어 보는 눈.
북위 말엽, 양일이라는 청년이 광주(하남성 한용현)의 장관으로 부임되어 왔다. 명문 출신으로서 나이는 29세. 고을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낮에는 음식을 잊고 밤에는 잠도 안 자며 일한다고 하였다. 난리에다 흉년이 겹쳐서 굶어 죽는 백성이 많자 그는 창고를 열어 나누어주었다. 담당자가 군주의 노여움을 염려하자 그는 말하였다.
"나라의 근본은 사람이요 사람의 목숨을 잇는 건 식량이다. 창고를 열어 헤친 것이 죄라면 달게 받자꾸나"
그가 부임되어 온 이래로 이 고장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 현상이 생겼다. 예전에는 중앙에서 관료나 병사가 오면 반드시 주연이 베풀어지고 노자도 요구 당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이때에는 스스로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생색을 내어 깊숙한 술자리를 차려 놓아도 그들은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묻자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였다.
"양 장관은 '천리안'을 지녔어. 눈가림이 안되거든"
그는 고을 안에다 샅샅이 염탐꾼을 두어 관료나 병사들의 동태를 살피게 했던 것이다. 군벌의 싸움에 말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 33세, 시민과 농민이 관리보다도 더욱 슬퍼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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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팔이 닿질 않아요
우체통 앞에서 어린 꼬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글을 깨우칠 나이가 되었음직한 꼬마는 서툴게 씌어진 편지봉투를 우체통 입구에 넣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팔이 닿지 않아 끙끙거리고 있는 꼬마의 귀여운 모습을 어른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그런 정겨운 광경을 즐기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때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쓴 청소부가 우체통 부근을 지나가다 꼬마를 보고 웃음을 지었습니다. 청소부는 청소를 멈추고 꼬마에게 다가갔습니다. 꼬마는 청소부에게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대신 넣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청소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마침내 꼬마는 울음을 터뜨렸고 청소부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꼬마를 가볍게 안았습니다. 청소부가 우체통 가까이로 허리를 숙이자 꼬마가 편지 투입구에 편지를 넣었습니다. 어느새 꼬마는 청소부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 멀리서 한 여인이 급하게 뛰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꼬마의 더러워진 옷을 털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냥 편지를 받아 넣어 주시지 왜 안아 주셨어요? 좀 보세요. 이렇게 더러워졌잖아요. 새로 산 옷인데."
청소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편지를 대신 넣어 주었더라면 이 꼬마는 우체통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편지도 다시는 쓰지 않을 거^36^예요. 앞으로는 아이가 직접 편지를 넣을 수 있도록 부인께서 안아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결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말라.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라. 그러면 그들의 재간으로 그대를 놀라게 할 것이다.
Never tell people 'how' to do thing. Tell them 'what' to do and they will surprise you with their ingenuity. (G. S.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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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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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홍운 - 설태수
- 봉황, 그리고 무릉원을 가다
어두컴컴한 골목. 낡은 외짝문 기둥에 새겨진 붉은 글. 天賜鴻運. '하늘이 크나큰 행운을 내려주다'는 뜻의 네 글자가 언제 찌그러질지 모를 빈궁한 그 집을 받쳐주고 있다. 인근에 번듯한 빌딩이 올라가고 화려한 주점에서 밤늦도록 노래 소리 울려 퍼져도 초연한 듯이 박혀있는 글자. 天賜鴻運.
숨쉬며 살아있다는 것.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눈빛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이 모두가 하늘이 준 크나큰 행운. 멀리 안 가도 천하를 주유하지 않아도 밤하늘 반짝거리는 별을 보고 사람들 소리 들리니. 天賜鴻運.
저 산모퉁이를 돌아 고개 하나 넘으면 무릉원이 펼쳐져 있어 바람 타고 종종 꽃잎 날려 오고 구름 따라 비를 뿌려주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이 몸 병들어 집밖을 못 보고 님 먼저 떠나 혼자 남아 있어도 님의 수저를 곁에 둘 수 있으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때 되어 나 홀로 떠날 적에 붉은 노을 속에 새소리 들려 온기 남은 두 귀가 적적하질 않으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마침내 구름 너머에서 마중 오는 님. 두 팔 벌려 달려오는 님께 눈물이 먼저 길을 내니. 천사홍운. 천사홍운.
오, 눈물의 세계가 天賜鴻運. 슬픔의 바다가 天賜鴻運.
*봉황, 무릉원은 중국 호남성에 있는 지명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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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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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는 지혜로 이긴다 - 이필연
주정뱅이의 공헌
술에 만취한 주정꾼을 보면 길을 걸으면서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나중엔 다리도 채 가누지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고꾸라져 잠들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주정뱅이가 어떤 공헌을 하였을까? 천 칠백여 년 전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자.
그때 유명한 의사 화타는 사시사철 안휘, 산동, 하남, 강소 일대를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병을 치료해 주었는데 그 의술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보고 신선 같은 의사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신선 같은 의사에게도 단 한 가지 만큼은 풀어내지 못할 고민으로 남아 있었다. 고민이란 당시 마취약이 없었으므로 수술받는 환자를 마취시키지 못해 환자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어느 하루, 화타는 팔에 종기가 난 어린아이를 치료하게 되었다. 종기가 난 부위는 벌써 곪아서 살이 썩어가고 있어 그 부위를 빨리 도려내지 않으면 팔을 절단해야만 될 위기까지 처해 있었다. 화타는 곧 수술을 시작했는데 아이는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에 마구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고 어른들이 아이를 꽉 누르고 또 끈으로 아이를 꽁꽁 묶어놓고 나서야 비로소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모진 고통 속에서 수술을 끝낸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화타의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으로 꽉 찼다.
"수술도 잘 할 수 있고 또 환자가 아픔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있어야 할텐데."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일은 참으로 공교로운데서 실마리가 찾아졌다. 어느날 몇몇 사람들이 한 환자를 업고 화타를 찾아왔다. 그 환자는 교각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화타가 그 환자의 다리를 수술하는데 그 환자는 이상하게도 전혀 비명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었다. 이윽고 수술이 다 끝났는데도 그 환자는 여전히 혼미상태였다. 그의 표정으로 봐선 그가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환자가 나무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닌 이상 어찌 저토록 고통을 모른단 말인가? 순간, 그 원인이 환자가 지금 만취된 상태라는 것을 알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가령 약을 만들어 환자가 먹으면 술에 취한 듯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수술받는 환자도 고통에서 해방되고 의사인 나도 수술하기가 훨씬 편하지 않을까?"
이 일이 있은 후부터 화타는 매일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끝내 마취약인 마불산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어느날 한 뱃사공이 맹장염에 걸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화타는 수술하기에 앞서 그에게 마불산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그는 이내 잠에 스르르 빠지더니 감각을 잃었다. 화타는 뱃사공의 배를 가르고 맹장수술을 하였으며 수술부위는 물론 가른 배를 실로 봉합하였다. 뱃사공은 수술을 마쳤을 때까지 아픔은 조금도 느끼질 못했다. 마취제의 발명은 온 인류의 '복음'이다. 화타는 세계에서 최초로 마취제를 발견한 자로 영원히 인류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거기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술주정뱅이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다름아닌 주정뱅이의 의외의 공헌이다.
날으는 새를 잡다
한 새잡이꾼이 큰 그물을 늪가에 살그머니 쳐놓고 그 그물 밑에다간 먹이를 뿌려놓은 후 몸을 갈대 숲속에 숨겼다. 늪에는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났고 여러 가지 곤충들이 많아서 기러기, 들오리 등 갖가지 새들이 즐겨 찾아왔다. 이윽고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먹이를 쪼아댔다. 새들이 그물 밑에서 정신없이 모이를 쪼아대자 새잡이꾼은 이때다 싶어 그물끈을 지체없이 낚아채었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새들은 모두 갇히었다. 헌데 새잡이꾼이 막 끈을 거머쥐려고 할 때 갑자기 그물이 고무풍선처럼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하였다. 새잡이꾼이 재빨리 앞으로 몇 발자국을 뛰어나갔으나 그때는 벌써 그물이 공중으로 떠오른 후였다. 새잡이꾼은 깜짝 놀랐다. 원래 그물 속에 한 마리 큰 새가 갇혀 있었는데 큰 새가 날개를 퍼덕이자 작은 새들도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어서 그물채로 하늘로 날아올라 갔던 것이었다. 새잡이꾼은 아무리 평생을 새잡는 일로 보냈지만 이런 광경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훨훨 날아가는 그물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든 사람처럼 그물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 냅다 뛰어갔다. 그리곤 계속 뛰어가면서 그물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새잡이꾼을 말렸다.
"쓸데없이 기운일랑 빼지 말게. 자네가 어찌 날아가는 새를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새잡이꾼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또 한 사람이 새잡이꾼을 쳐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빈정거렸다.
"정말 어리석은 친구로구먼. 새가 하늘에서 날아가는데 다리가 끊어지도록 아무리 뛰어보게나!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한 번 보시오.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새들이 제각기 둥지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 스스로 떨어질 테니 한번 두고 보시오."
과연 노을이 지면서 얼마쯤 더 날아가던 새들은 그물 속에서 어떤 놈은 동쪽으로 날아가려는 놈이 있고 어떤 놈은 서쪽으로 날아가려는 놈이 있어 방향을 잃고 그만 그물채로 땅에 떨어졌다. 새들이 그물 속에서 아무리 날아가려고 날개를 퍼덕여도 그때는 다시는 날아갈 수가 없었다. 새잡이꾼은 얼른 달려가 새를 모조리 잡아 집으로 돌아갔다.
금을 찍어내는 손가락
아주 오래된 옛날, 깊은 산속에 황금이 가득 쌓여 있다는 소문을 들은 한 청년은 그 황금을 가져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가 황금을 찾아 숲속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환상을 쫓아가고 있구만. 그렇게 쉽게 찾아질 황금이라면 벌써 사람들이 찾았지." "여지껏 그 황금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모두 헛탕을 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야지."
그러나 사람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던 상관없이 청년의 결심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어느날 아침, 날이 희뿌연하게 밝아왔다. 대지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황금을 찾아 첫발자욱을 내디뎠다. 처음 그는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발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 일대에는 황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느덧 청년은 49일을 걸어 어느 심심산골에 이르자 고개를 쳐들고 앞을 쳐다보니 산이 첩첩치 싸여 있었고 집채만한 바위들이 덧놓여져 산봉우리를 이루었는데 그나마 이제 오솔길도 보이질 않았다. 청년은 그래도 굳은 결심을 굽히지 않고 가파른 산을 기어올라 갔다. 허리에 찬 보자기엔 식량도 벌써 떨어진 지가 오래였고 그래서 야생과일로 허기를 채우고 풀뿌리를 캐먹고 샘물을 마시면서 기운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얼마를 더 걸었는지 날이 얼마나 더 지났는지 모른다. 꽃봉오리가 맺고 피어난데서부터 단풍이 들고 눈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고 이내 파아란 새싹이 돋아날 때까지 걷고 또 걸었을 뿐이었다.
어느날 몹시 지친 청년은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머리를 쳐들고 앞을 굽어보았을 때 느닷없이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청년은 이 깊은 산속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보자 흠칫 놀랐다. "내가 이 산속에서 신선을 만난 것인가?" 청년은 진짜로 신선을 만난 것이다. 이 백발 노인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8 대 신선 중의 한 신선인 여동빈이었다.
"이보게 젊은이, 이렇게 깊은 산속까지 뭣하러 왔소?" "예, 황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청년은 침착을 잃지 않고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여기까지 사람의 발길이 닿은 것은 젊은이가 처음이오." 백발노인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위엄이 있었다. "뜻이 있는 자에겐 길이 있소.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만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물건을 얻을 자격이 있는 법이오."
그리곤 백발노인이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 돌멩이는 급기야 황금으로 변하여 찬란한 빛을 뿌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젊은이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황금인가? 자, 받게!"
백발노인은 황금덩어리를 청년에게 불쑥 내밀었다. 청년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황금덩어리를 보자 너무 기쁜 나머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백발노인과 황금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동안 넋을 잃고 있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뜻밖에도 황금을 놓으며 이런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싫습니다. 저는 싫습니다."
그러자 백발노인은 황금덩어리가 작아서 그런 줄 알고 이번엔 큰 돌덩어리를 주워 손가락으로 가리켜 황금으로 만든 후 청년에게 내밀었다.
"이제는 만족하는가?"
그래도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발노인이 손가락으로 여러 번 가리키자 온 산봉우리가 그대로 황금산으로 변하여 저녁노을처럼 눈부신 빛을 뿌렸다. 그래도 청년은 여전히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백발노인은 저토록 엄청난 황금을 주어도 가지려 하지 않다니 도대체 청년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젊은이는 분명히 황금을 찾아 여기까지 모진 고생을 해가며 찾아왔던 것 아니오? 그런데 저 많은 황금이 싫다니 그건 또 무슨 이유요." "분명히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갖고 싶은 것은 바로 돌을 가리켜 황금을 만드는 바로 그 손가락이예요!"
청년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죽지 않는 약
이 이야기는 전국시대 초나라에서 발생한 실화이다. 초나라 국왕은 어느날 문득,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모든 부귀영화도 누릴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약을 어떻게 해서든 구해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국왕의 주위에는 아첨에 아주 능한 신하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국왕의 말을 듣더니 그런 약초가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구선 자신이 꼭 구해오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조정의 경호대인 한 사수에게까지 전해졌다. 이 사수는 원래 성미가 대나무쪽 같은 바른 사람이었다. 그는 국왕의 그런 어리석은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고 그 아첨쟁이 신하는 언젠가 자신이 한번 혼찌검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때마침 한 손님이 초나라 수도 영성엘 찾아와 죽지 않는 약을 국왕께 바치라고 했다. 그 약은 이미 아첨쟁이 신하가 꾸민 각본에 의해서 가져온 것이었다. 신하는 재빨리 달려와 국왕이 자신을 보내 약을 가지러 왔다하고는 약을 들고 궁정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때 그 사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당신, 그 손에 든 것이 무엇이오?" "죽지 않는 약이오! 국왕께서 잡수실 죽지 않는 약이란 말이오?" "먹을 수 있는 것이오?" "그렇지 않구? 먹어야 죽질 않지?"
사수가 그 말을 듣더니 손을 내밀어 그 약을 집고선 입에 넣고 꿀꺽 삼켜버렸다. 신하는 자기 간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 놀라며 말했다.
"죽고 싶어서 그래!"
아첨쟁이 신하는 그 길로 국왕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낱낱히 고했다. 국왕은 벼락같이 화를 내더니 당장 그 사수를 끌어들여 몰매를 안긴 후 끌어내 목을 자르라는 어명을 내렸다. 이 위태로운 찰나에 그러나 사수는 아주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폐하, 제가 신하에게 분명 '먹을 수 있는 것이오?'하고 물으니 신하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서 제가 먹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잘못이 아니라 이건 신하의 잘못입니다. 폐하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신하께 물어 보십시오."
한쪽에 서 있던 신하는 이 말을 듣더니 우물쭈물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수의 어조는 더욱 높아갔다. "신하가 가져온 약은 죽지 않는 약이라 해서 제가 이미 삼켰는데 만약 페하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이 약은 죽지 않는 약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폐하를 회롱한 것 아닙니까? 가령 폐하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백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원성을 면치 못하시게 되옵니다."
국왕은 사수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과연 그 말에 일리가 있고, 정말 사수를 죽인다면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될 것 같았다. 국왕은 하는 수 없이 사수를 풀어주고 신하를 물매 50 대를 쳐서 궁정 밖으로 내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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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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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백 - 박이문
1. 고향
산
"지자낙수(알 지, 놈 자, 즐길 낙, 물 수) 인자낙산(어질 인, 놈 자, 즐길 낙, 뫼 산)," 공자의 말이다. "지혜로운 이는 바다를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나는 지자인 동시에 인자가 되고 싶다. 지자도 아니며 인자도 못 되지만 나는 바다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중 꼭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산을 택할 것이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특히 녹음이 짙은 산을 좋아한다. 나는 벽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지금 돌아가 보면 야산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어려서 산과 가까이 살았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산을 각별히 좋아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산이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소년 시절 고향 산천을 떠나 줄곧 서울, 파리,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보스턴 같은 대도시에 살면서 나는 산을 잊고 있었고 산에 대한 향수를 새삼 느끼지도 않았다. 항상 각박하게 닥쳐오는 눈앞의 문제에 가려 멀리 산을 바라보고 감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나는 산을 새삼 발견하고 그것에 마음이 끌리게 됐다. 석조(돌 석, 지을 조)의 숲과 같은 파리에서 몇 년, 그리고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로스앤젤레스에서 몇 년을 보낸 다음, 내가 처음으로 객지에서 교편을 잡게 된 직장을 좋아했던 이유의 하나는 그 대학이 녹음이 울창한 북부 뉴욕 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주말이면 한두 명의 친구와 내가 오래 살고 있던 보스턴 근처의 짙은 숲과 높은 산 속에서 별 목적도 없이 시간을 보내며 그저 흐뭇함을 느꼈다.
얼마 전 3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교편을 잡게 된 지금 이 고장이 아담하고 푸른 산들로 둘러싸인 시골이라는 점에서 나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을 느낀다. 처량하리만큼 헐벗었던 조국의 산들도 이제는 제법 푸른 숲에 덮여 있음을 확인하면서 한없이 흐뭇함을 느낀다. 일요일 오후면 아무 계획도 없이 어울리게 되는 이곳 대학의 동료들과 기분 내키는 대로 이 주변의 토함산, 남산, 운제산, 보경사, 오어사 등을 몇 시간 오르고 내리면 그저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산은 푸르다. 아니 꼭 푸르러야만 한다. 푸르지 않은 산은 생각할 수 없다. 산은 푸르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푸르름은 생명을 상징한다. 그저 생명이 아니라 삶의 풍요를 뜻한다. 나날이 도시화되고, 기계화되며 그만큼 건조한, 이른바 문명 생활에 찌들고 피로한 현대인에게 푸른 산은 생명과의 재회를 마련해주고 정서의 휴식처를 마련해준다. 산의 푸르름은 그냥 푸르름이 아니다. 크고 작은 나무, 잡목, 다양한 풀들이 서로 엉키고 의존하며 붉은 흙에서, 바위틈에서 다투어 솟아나고 다 같이 하늘을 향하여 자란다. 나뭇가지와 풀잎들을 헤치고 오솔길을 따라 그늘진 숲속을 거닐거나, 산언덕을 올라가면 바위틈으로 흐르는 시냇물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있다. 인간이 그 동안 그렇게도 짓밟아왔던 자연과 다시 만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푸른 산은 자연과의 재회를 의미하며 그러한 재회는 오로지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고향임을 일깨워준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며,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원천이며, 인간은 자연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으로서 인간은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고, 자연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참다운 휴식과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산의 유혹은 원천적 고향에 대한 향수에 기인한다. 힘에 겨운 다리를 격려하고 가쁜 숨을 내쉬며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우리는 다 같이 시지푸스가 된다. 있는 힘을 다해 산정에 올려놓은 바위가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내려오면 다시 그 작업을 되풀이해야 했던 시지푸스처럼 어렵게 올라간 산정에서 우리는 산 밑 판판하고 시시한 마을로 다시 내려와야만 한다. 그러나 시지푸스가 자신의 노고가 허사로 되고 마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어려운 노력을 하는 행위 자체에 무한한 보람을 느꼈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절정에 오르려는 노력 자체에서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삶의 충족감을 체험할 수 있다. 산꼭대기에 다리를 디디고 섰을 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에 가슴이 흐뭇하다. 오르기가 험난했던 등산일 경우 더 그렇고 산정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그러하다.
산정에 서면 마치 하늘에 올라온 듯하다. 내 눈앞에 시야가 한없이 넓게 퍼진다. 나의 세계가 그만큼 커진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몇십 리 멀리 작은 마을은 물론 큰 도시들도 무릎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산정에 올라와서 나는 지금까지 살고 있는 마을에서의 나의 삶의 위상을 더 넓은 테두리에서 파악하고 그 올바른 의미에 눈을 뜰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겸허해질 수 있다. 자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지금까지 내가 갇혀 있던 좁은 세계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더 넓은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산이 내 마음을 끄는 무엇보다도 더 큰 이유는 그곳이 명상적 고장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숲이 짙고 계곡이 깊은 산에서 우리는 비로소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산에서는 누구나 명상가가 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대부분 옛날 절들이 도시나 마을에 있지 않고 깊은 산 속에 있게 된 사실은 그 이유나 원인이 어디에 있든간에 퍽 다행이다. 그것을 우연한 역사적 결과로 친다 해도 퍽 적절하다. 명상적이 아닌 불교의 세계는 진정한 불교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간은 자신의 원래적 고향인 자연을 버렸다. 이제서야 인간은 그 결과로 견딜 수 없는 삭막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산은 자연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산이 그리워지게 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산에 가고 싶어진다. 산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발견하고 산에서 삶의 풍요를 느끼며 산속에서 잃어버린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다시 찾는다. 산은 맑고 깊고 의젓하고 조용한 삶의 뿌리를 상징한다. 그곳은 이른바 문명의 오염에 시달린 생명의 마지막 휴식처이며, 인간의 맹목적인 욕망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생명의 마지막 피신처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소멸해가는 많은 생명체들의 마지막 남은 삶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산에 대한 향수는 그만큼 진지하고 절실하다. 지구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으로는 산만이 남았다는 느낌이다. 나는 산을 정말 좋아하게 됐다. 내가 시골에서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월의 불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녹음을 기다리는 마음이며, 녹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춥고 지루하기에 길기만 한 겨울이었기에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마땅하다. 들은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한결같이 누렇고 메말라 죽은 듯이 쓸쓸하다. 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겨울 산은 쓸쓸하다. 잎사귀 없이 엉성하게 서 있는 죽은 듯 누런 빛 낙엽수들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들과 산을 우아하고 밝은 맑고 생생하고 아름다운 인상파 그림으로 바꿔놓는 봄이 그만큼 더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절실한 만큼 그 마음은 더 조바심스러워진다. 논두렁이나 그늘진 담 밑에 남아 있던 얼음 조각이 따뜻한 4월의 햇살에 녹아 없어지고 검은 땅에서 솟아나온 수선화 싹은 그만큼 더 정갈하고도 경이롭다. 죽은 줄만 알았던 개나리꽃의 나뭇가지에서 솟아나는 노란 꽃봉오리는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깊은 감동을 준다. 나는 이곳 포항공대에 온 후 두 번째의 봄을 맞았다. 이곳 주변엔 산이 많아 좋다. 형산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 산뜻하고 깨끗한 새 건물들로 조화 있게 꾸며진 이 대학 캠퍼스에서 둘러보는 주위의 전망도 어느 휴양지 못지 않게 곱다. 퍽 공들여 조경된 캠퍼스를 틈틈이 거니는 즐거움이 흡족스럽다. 겨울을 빼놓은 세 계절이 나름대로 다 그렇다. 겨울에 지칠 무렵부터 내가 왜 그렇게도 남달리 초조하게 이곳 캠퍼스의 봄을 기다리게 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봄을 나는 더욱 그렇게 보냈다.
상록수가 아닌 낙엽수들의 생사는 새싹을 내밀 때까지 그냥 봐선 알 수 없다. 봄을 맞을 때마다 겨울 동안 잎 하나 없이 뼈대만 남은 채 서 있는 저 나무들이 혹시 죽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새싹이 나올 때까지는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겨울 동안 추위를 견디지 못하거나 못된 병으로 죽는 나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풀이나 나무에서 새싹이 나는 시기는 그 풀이나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수선화나 개나리 같은 나무의 꽃이 빠르게 피는가 하면 느티나무나 팽나무의 싹은 늦게야 튼다. 그렇지만 4월말이 가까워지면 예외 없이 모든 나무에서 싹이 튼다. 5월에 들어서면 모든 나무가 꽃을 피우거나 이미 무성하다 할 만큼 잎으로 덮인다.
그러나 봄을 기다리는 내 초조함과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목백일홍과 낙우송이라고 후에 정원사가 일러준 이름 몰랐던 나무에서는 이때까지도 잎도 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본다. 메마르지 않았으니 희망이 있다. 다음날 손톱으로 나뭇가지를 긁어본다. 거기 도는 연한 연둣빛이 나무가 살아 있다는 신호를 하니 마음이 높인다. 그래도 너무 늦기는 마찬가지다. 며칠 후 먼저 목백일홍에 튼 싹을 보고 나는 조용한 환호를 지른다. 그 뒤 또 며칠 후 낙우송의 작은 가지에서 마침내 색실 같은 푸른 잎을 확인한다. 내 5월의 불안은 그때서야 비로소 완전히 가신다. 모든 나무가 겨울의 시련을 이기고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감의 미학
나는 감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설날이면 단감을 즐겨먹던 생각이 난다. 입에 닿는 딱딱한 단감의 감촉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자란 시골은 감나무도 없는 삭막한 시골이었다. 단 한 그루의 감나무나마 우리집 뒤뜰에 서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나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그 나무를 즐겨 타고 놀던 기억도 나지만 지금 더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은 고운 색깔의 감이 매달린 감나무를 즐겨 바라보곤 했던 일이다.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의 무의식적이나마 감의 미학에 이미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30년을 지냈지만 나는 감나무는 물론 마치 등불 같은 붉은 감들을 달고 있는 감나무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래간만에 한국, 그것도 감나무가 많은 영남 지방에 돌아와 살게 되면서 감을 많이 먹고 감나무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나는 운이 좋다. 감나무를 마음껏 보면서 자란 이곳 시골 사람들은 얼마만큼 행복한가!
감나무, 감잎 그리고 감은 한결같이 소박하며 산뜻하다. 감나무는 가시도 없고 감나무 껍질은 깔끔하다. 버러지를 타지 않는 감잎은 완전하고 그 촉감은 따끔하면서도 정갈하다. 둥근 감의 선은 단순하면서도 그리스의 조각처럼 점잖고, 주홍빛 감의 색채는 청아하면서도 강렬하다. 감은 은근히 관능적이면서도 귀족적이다. 이처럼 한 그루의 감나무, 한 개의 감은 그것만으로도 곱지만 감나무는 자신의 가지에 색채를 띤 감들을 달고 있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내고, 감은 감나무 가지에 달려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빛을 낸다.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의 모습이나 그 나뭇가지마다 각기 홀로 매달려 있는 하나하나의 감들의 모습에서 본질로 환원된 사물의 진실미가 동반하는 감동을 느끼며, 다양한 선으로 환원된 회색빛 나뭇가지와 수많은 원으로 환원된 주홍빛 감들에서 선과 원의 조형적 조화와 회색과 주홍색의 색조로 어울린 조화미를 만끽한다. 주홍빛 감들이 달린 감나무는 그 자체가 자연이라는 이름의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조각이며 한 폭의 그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감의 참다운 미는 아직도 더 깊고 넓은 맥락에서 발견된다. 나무에 달린 감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의 더 깊은 미는 늦가을 한국의 조용한 시골을 떠나서는 발견도 감상도 할 수 없다.
한국의 늦가을의 하늘은 무한히 푸르고 높고 넓다. 그러한 때 작은 계곡 건너편 혹은 돌담 너머 보이는 감나무 가지에 보이는 감들은 감나무가 아니라 차라리 하늘에 매달려 있다 할 것이며, 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푸른 하늘에 조화롭게 칠해진 화가의 채색이다. 푸른 하늘과 대조되면서 주홍빛 감이 생명력으로 늦가을의 생명을 불어 넣고, 낙엽으로 헐벗은 산과 황토색으로 초라해진 들에 삶의 화려한 관능성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감나무가 있는 늦가을 한국의 시골은 어느덧 하나의 살아 약동하는 예술품으로 바뀐다. 늦가을 한국의 시골에서 익어가는 감은 자연의 예술인 동시에 자연이라는 예술 작품 바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원래 무의미한 혼돈이었던 자연이 예술 작품으로 화신함으로 질서를 갖추고 의미를 띠게 된다. 의미는 필연적으로 무엇인가를 의미/표상한다.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자연 전부가 무엇인가를 의미/표상한다면, 예술 작품으로서의 자연의 의미/표상하는 것은 인간의 지각과 사고가 미칠 수 없는 영역, 즉 어떤 초월적 영역의 실체를 암시한다. 감, 감나무에 달린 둥근 감, 맑고 산뜻하고 정갈한 한국의 늦가을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에 열린 주홍빛감이 내 마음을 흔드는 미적 감동은 어쩌면 쉽게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실체, 즉 형이상학적 세계에 뿌리를 박고 있는지 모른다. 일상적 삶의 무의미와 철학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 위와 같은 우주의 초월적 본질은 접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과 통로는 여럿 있을 수 있다. 종교적 명상 혹은 철학적 추구로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감에 대한 위와 같은 나의 미학에 다소의 근거가 있다면, 감에 대한 미적 경험은 분명히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초월적 의미에 대한 근원적 소망의 한 표현일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소망의 세계에 접하는 통로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감을 좋아한다.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손에 느껴지는 촉감으로도 그렇다. 그 선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그 색깔은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적나라하게 벗은 가지에 주홍빛 감들을 매달고 있는 벌거벗은 회색빛 소박한 감나무가 내 눈을 매료한다. 그러한 감나무를 가꾸어놓은 늦가을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깔끔하게 산뜻한 시골 마을의 공기를 마시면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나마 행복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시를, 특히 감에 대한 멋진 시를 쓰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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