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기독교인과 거래하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개들은 펄쩍거리며 뛰어다니거나 몸을 뻣뻣하게 치켜세운 채 자랑스럽게 걸어다녔다. 자기들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해냈다는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우쭐해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것도 위스키 만드는 기술의 일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링거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내가 휘파람도 불고 이름도 부르면서 오두막 주변을 뒤지며 다녔지만 링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개들을 풀어서 링거를 찾기로 했다. 골짜기를 지나 칼길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지만 그래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전날 밤 내려온 산꼭대기까지 길을 되짚어 올라가면서 찾아보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덤불마다 일일이 뒤져가면서 산 위로 올라갔다. 그때 블루보이와 리틀레드가 링거를 찾아냈다. 링거는 나무와 박치기를 한 것 같았다. 아마 그 나무가 링거가 부딪친 마지막 나무였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링거가 그전에도 여러번 다른 나무들에 부딪친 것 같다고 하셨다. 링거는 마치 방망이로 두들겨맞은 것처럼 머리가 온통 피투성이인 체로 옆으로 누워있었다. 또 뾰쪽한 송곳니에 혀가 찔려 있었다. 하지만 링거는 살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링거를 안고 산을 내려왔다. 우리는 개울가에서 링거의 얼굴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혀도 이에서 빼냈다. 링거의 얼굴에 난 털은 회색이었다. 나를 찾아 산꼭대기까지 올라오기에는 링거는 너무 늙었던 것이다. 우리는 개울 옆에 그를 뉘었다. 그러자 잠시 후 링거가 눈을 떴다. 힘없고 초점을 잃은 눈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숙여 링거의 얼굴에 대고 나를 찾으러 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링거가 내 얼굴을 핥았다. 신경쓰지 마라.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도 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기라고 하는 것처럼. 나는 할아버지를 도와 링거를 산 아래로 데려갔다. 할아버지가 옮기신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뒷발은 내가 잡았다. 오두막집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링거를 내려놓고 말씀하셨다.
“링거는 죽었다.”
그랬다. 오는 도중에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우리가 자기를 집으로 데려가는 줄 알고 있었을 테니 마음이 편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좀 마음이 풀렸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할아버지는 링거가 충성스럽게 제 할 일을 하고 산에서 죽었으니, 산에 사는 개라면 누구나 원하는 명예로운 최후를 맞은 것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가 삽을 쥐었다. 우리는 링거를 산골짜기의 옥수수밭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링거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지키던 밭이었다. 할머니도 따라오셨고 개들도 모두 뒤따랐다. 개들은 꼬리를 다리 사이에 사린 채 낑낑거리면서 따라왔다. 나도 그런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자그마한 떡갈나무 발치에다 링거를 묻을 자리를 팠다. 그곳은 가을이면 빨간 옻나무가 가득하고 봄이면 층층나무가 새하얀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자리였다. 할머니가 구덩이 바닥에 하얀 목면자루를 깔고 그 위에 링거를 놓았다. 그러고는 자루로 개를 감쌌다. 할아버지는 너구리가 파내지 못하도록 링거의 몸 위에다 커다란 판자 하나를 놓았다. 우리는 무덤의 흙을 덮었다. 개들이 둘러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덤이 링거의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드는 낑낑거렸다. 모드와 링거는 옥수수밭을 함께 지키던 좋은 단짝이었는데... 모자를 벗어든 할아버지가 말했다.
“링거야, 잘 가거라.”
나도 링거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떡갈나무 밑에 잠든 그를 떠났다. 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마음이 아팠다. 할아버지는 네 기분이 어떤지 잘 안다. 나도 너하고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다. 사랑했던 것을 잃었을 때는 언제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항상 텅빈 것 같은 느낌 속에 살아야 하는데 그건 더 나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링거가 그다지 충실한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루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마 기분이 더 안 좋았을 것이다.”
맞는 말씀이었다. 또 할아버지는 내가 나이가 들면 링거 생각이 날 것이고, 또 나도 생각을 떠올리는 걸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셨다. 그래도 살아남은 우리는 계속 일을 해야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물건을 짊어지고 사거리의 젠킨슨씨 가게로 가는 지름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물건`이라는 건 할아버지가 우리 위스키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나는 지름길로 다니는 게 좋았다. 골짜기길을 내려오다가 마차들이 다니는 큰길까지 가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지름길이 나왔다. 그 길은 커다란 손가락들을 구부린 모양으로 산등성이를 타고 쭉 올라가다가 계곡으로 비스듬하게 내려오길 몇번이고 반복했다. 산등성이 사이의 계곡들은 그다지 깊지 않아서 쉽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 몇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그 길 양쪽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감나무, 인동덩굴 따위들이 즐비했다. 가을이 되어 서리가 내리고 나면 감들이 발갛게 익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것들을 호주머니 가득 주워담곤 했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를 따라잡으려면 달려야 했다. 봄에는 검은 딸기를 따느라고 같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한번은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내가 검은 딸기 따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다. 이때도 할아버지는 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계셨다. 사람들이 멍청하게 말에 내둘리고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물었다.
“작은 나무야, 검은 딸기는 `퍼럴`때 빨갛다는 걸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어리둥절했다. 할아버지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색깔로 나타낸답시고... 저것들을 검은 딸기라고 부르잖아?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 익지 않은 걸 퍼렇다고 하거든... 그런데 저 검은 딸기는 익지 않으면 빨갛잖아.?”
사실이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정색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말 많은 그 빌어먹을 놈의 자식들이 이렇게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단 말이야. 앞으로 너는 누가 다른 사람 헐뜯는 말을 하면 그 말을 가지고 판단하면 안된다. 그런 건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거니까. 그것보다 말투를 잘 들어봐, 그러면 그놈이 비열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테니.”
할아버지는 세상에 말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몹시 언짢아하셨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름길 양편에는 히코리 열매와 밤, 도토리, 호두 따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래서 사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거리 가게에서 돌아올 때면 나는 항상 뭘 줍느라고 바빴다. 물건을 사거리 가게까지 짊어지고 가는 것은 꽤 큰일이었다. 술병 세 개가 든 자루를 낑낑거리며 메고 가던 나는 할아버지보다 한참씩 뒤쳐져서 걷는 게 다반사였다. 내가 할아버지를 따라잡을 때는 할아버지가 어딘가에서 기다려주었을 때였다.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를 따라잡고 나면 우리는 그곳에서 잠깐씩 쉬었다 가곤 했다. 이렇게 한 휴식처에서 다른 휴식처로 옮겨가는 식으로 쉬엄쉬엄 걸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산등성이에 이르면 우리는 언제나 덤불 속에 앉아 쉬면서 가게 앞에 피클통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반대로 그게 문 앞에 놓여 있으면 그건 순사가 왔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 물건을 가게로 가져가서는 안되었다. 산사람들은 누구나 그곳에 오면 피클통이 있는지부터 살폈다. 그들도 하나같이 가게에 넘길 물건들을 갖고 있었으니까. 나는 가게 앞에 피클통이 있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게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위스키 제조업이란 게 보통 복잡한 직업이 아니란 건 진작부터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많고 적고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 세상에 복잡하지 않은 직업은 없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셨다.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해봐라. 허구한날 다른 사람 입속을 들여다봐야 하는 그 직업이 오죽하겠느냐, 아마 완전히 돌고 말 것이다. 그에 비하면 아무리 복잡해도 위스키 제조업쪽이 사내라면 한번 해볼 만한 직업이 아니겠느냐고 하시면서, 옳은 말씀이었다. 나는 젠킨슨씨가 좋았다. 그는 덩치가 크고 뚱뚱했으며 항상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턱에는 멜빵바지의 단추 있는 데까지 늘어지는 멋진 허연 수염을 달고 있었지만, 머리에는 머리털이 거의 없었다. 그의 머리는 소나무 옹이처럼 윤이 났다.
젠킨슨씨네 가게에는 없는 게 없었다. 선반 위에는 셔츠와 멜빵바지, 신발 상자들이 놓여 있었고, 비스킷이 가득 든 통들도 있었다. 카운터에는 커다란 치즈덩어리도 있었다. 또 카운터 위에는 칸을 질러 사탕을 가득 넣어둔 유리상자도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사탕이 들어 있었다. 도저히 다 팔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사탕 먹는 걸 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젠킨슨씨가 좀은 팔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진열해놓지도 않았을 테니까. 우리가 물건을 가져가면 젠킨슨씨는 내게 땔나무더미 있는 곳으로 가서 가게에 있는 커다란 난로에 넣을 장작 한묶음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하곤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면 그는 줄무늬가 그려진 커다란 막대사탕을 나에게 내밀곤 했다. 하지만 겨우 장작 한묶음 가져다 준 걸로 그런 걸 받는 건 옳지 않았다. 그 정도 일은 아주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면 젠킨슨씨는 그 막대사탕을 유리상자 속에 넣어두고 오래돼서 치워버리려 했던 사탕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도, 젠킨슨씨가 그걸 버리려고 하던 걸 알고 있었다. 그 정도면 내가 받아도 괜찮겠다고 하셨다. 그냥 버리면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나는 그 사탕을 받았다. 젠킨슨씨는 우리가 갈 때마다 또 다른 오래된 사탕을 찾아내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젠킨슨씨네 가게의 오래된 사탕은 거의 다 내가 치워주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젠킨슨씨는 내가 자신을 아주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하셨다. 내가 50센트를 사기당한 것도 이 사거리 가게에서였다. 내가 그 50센트를 모으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건을 넘겨주고 돈을 받으면 할머니는 그때마다 5센트나 10센트를 내 것으로 따로 챙겨 항아리 속에 넣어주셨다. 그건 일을 한 대가로 받은 내 몫이었다. 사거리 가게로 갈 때면 나는 그 동전들을 몽땅 호주머니에 넣어서 가져가길 좋아했다. 하지만 쓴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그 돈들은 다시 얌전히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걸 주머니에 넣어 가게로 가져가면서 그 돈들이 모두 내 거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이 마음이 뿌듯했다. 가게에 들어서면 내 눈은 사탕진열대 속에 든 빨갛고 파란 커다란 상자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값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다음 크리스마스 때면 할머니에게 사다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속에 든 것을 먹게 되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기 전에 그만 50센트를 사기당하고 만 것이다.
물건을 넘겨주고 나니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내리쬐고 있어, 할아버지와 나는 가게 벽에다 등을 대고 가게 차양 밑에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젠킨슨씨네 가게에서 할머니에게 줄 설탕 약간과 오렌지 세 개를 샀다. 사실 나도 그랬지만 오렌지는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세 개를 산 걸로 봐서 그중 하나는 내가 먹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나는 막대사탕을 열심히 빨아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치가가 와서 연설을 할 거라고 했다. 이제 할아버지는 더 이상 쉬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정치가 따위는 빌어먹을 놈들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휴식을 끝내기도 전에 그만 그 정치가가 먼저 우리 있는 곳으로 오고 말았다. 그 사람은 길에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커다란 차를 타고 왔다. 그래서 그사람이 그곳에 도착도 하기 전에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차를 모는 운전사가 따로 있어서 그는 차 뒷문을 열고 나왔다. 뒷자리에는 여자 한 명도 같이 타고 있었다. 정치가가 연설을 하는 동안 그 여자는 반밖에 안 피운 가느다란 담배를 창 밖으로 던지곤 했다. 할아버지는 저런 담배는 미리 종이에 말려서 나오는 기성복 같은 담배로, 자기 담배 마는 것도 귀찮아하는 게으른 부자들이 피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정치가는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내 손만은 잡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인디언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하셨다. 인디언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으니 그 정치가한테는 우리가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그 사람은 검은 코트와 하얀 셔츠를 입고 목을 이상한 리본으로 묶고 있었다. 검은 색의 그 리본은 밑으로 늘어져 있었다. 자주 웃는 걸 봐서 기분이 꽤 좋은 것 같았다. 사실 그가 미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상자 위에 올라선 그 사람은 워싱턴시의 상황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완전히 지옥이었다. 그 사람은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내가 듣기에도 그랬다. 그 사실을 놓고 갈수록 흥분하던 그는 드디어 목에 맨 리본까지 풀어해쳤다.
이 모든 죄악의 배후에는 가톨릭교도들이 있다. 사실 가톨릭교도들이야 말로 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교황을 백악관에 앉히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리고 있다. 가톨릭은 지금가지 있었던 것 중에서 가장 썩고 가장 추악한 종교이다. 그 사람들은 성직자라고 하는 남자들과 수녀라는 여자들이 짝짓기를 한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애들은 증거를 없애려고 들개에게 던져준다. 일찍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끔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 정치가는 이렇게 떠들어댔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워싱턴시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가 그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자기가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워싱턴시는 완전히 가톨릭교도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며, 우리가 사는 이곳까지 악의 씨를 퍼뜨릴 것이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정말 오싹한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은 젊은 여자들은 몽당 수도원 같은데 집어넣을 것이고... 태어난 아기들은 몽땅 없애버릴 것이다. 가톨릭교도들을 쓸어 버리려면 모두가 힘을 합쳐 그 남자를 워싱턴시로 보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해도 아주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교도들은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는 돈 따위는 한푼도 받지 않는다. 자기는 돈을 쓸 줄도 모르고 또 돈이라면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다 때려치우고 우리 같은 사람들처럼 그냥 속편하게 살아갈 생각도 가끔씩 한다고 했다. 편하게 살겠다니, 나로서는 그 말이 무척 섭섭했다. 하지만 연설을 마치고 상자에서 내려온 그 남자는 다시 웃으면서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그 정치가가 포기하지 않고 워싱턴시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리란 걸 알 수 있었다. 또 충분히 그럴 자신도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내 기분도 좀 나아졌다. 저 사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가톨릭 무리들을 싹 휩쓸어버릴 것이다. 정치가가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한 남자가 조그만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왓다. 그는 그곳에서 서서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다가 정치가가 곁을 지나칠 때마다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송아지는 그 남자 뒤에서 머리를 떨어뜨린 채 엉거주춤 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송아지한테로 갔다. 내가 등을 두드려 주었지만 송아지는 머리를 들지 않았다. 그 남자는 커다란 모자 밑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남자는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쭉 째진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웃었다.
“얘야. 송아지가 마음에 드니?” “예.”
나는 송아지한테서 한발 물러섰다. 내가 송아지를 괴롭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괜찮아. 괜찮아. 두드려주렴. 넌 송아지를 괴롭힐 것 같지 않구나.”
그 남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송아지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남자는 송아지 등 위로 담뱃진을 찍 하고 뱉어냈다.
“난 알 수 있어. 이 송아지는 네가 마음어 들었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최고로... 송아지가 너와 함께 가고 싶어하는구나.”
나로서는 송아지가 정말 그 남자가 말한 대로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저 사람 송아지이니 저 남자는 잘 알 것이다. 그 사람이 내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 돈 가진 것 있니?” “예, 50센트요.”
그 사람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보자 나는 그게 별로 큰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가진 게 그것뿐이라서 미안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웃음을 띄고 말했다.
“음, 여기 이 송아지는 그것보다 백배는 더 비싼 거야.”
나도 그 송아지에게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예, 저도 송아지를 사려는 생각은 안했어요.” 그 남자가 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음. 말이지. 나는 기독교야. 그래서 말인데, 여기 있는 이 송아지가 아무리 비싼 거라 해도 네가 저놈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송아지를 네가 갖는 방법이 없을까?”
그 남자는 잠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람은 송아지와 헤어지는게 무척 마음 아픈 것 같았다.
“아, 아니에요. 아저씨. 나는 송아지를 데려갈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
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그 사람은 손을 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애야, 나는 50센트만 받고 저 송아지를 너에게 주겠다. 그게 기독교도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아, 아니야. 네 대답을 듣고 있을 새가 없구나. 그냥 50센트를 다오. 그러면 송아지를 줄 테니.”
그 사람이 하도 일사천리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바람에 나로서는 말릴 재간이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몽땅 꺼내 그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 사람은 송아지 목을 맨 줄을 나에게 넘겨준 다음 잽싸게 가버렸다. 어느 길로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잽싸게. 하지만 나는 내 송아지가 자랑스러웠다. 비록 그 사람한테 좀 손해를 입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자기 입으로 말했듯이 기독교니까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송아지를 끌고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 곳으로 갔다. 할아버지에게 송아지를 보여드렸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 송아지에 대해서 나만큼 자랑스럽지 않으신 것 같았다. 아마 할아버지 송아지가 아니고 내 송아지라서 그런가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린 위스키 제조업에서도 동업자나 다름없으니 송아지의 반도 할아버지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조금도 달갑지 않으신지 뭐라고 툴툴거리기만 하셨다. 정치가 둘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들 그 정치가를 한시바삐 워싱턴시로 보내서 가톨릭교도들과 싸우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얼굴들이었다. 정치가가종이를 나눠주었다. 나는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서 보았다. 종이에는 그 사람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워싱턴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듯 웃고 있는 사진이. 사진 속의 정치가는 정말 젊어 보였다. 우리도 집으로 갈 채비를 하자는 듯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정치가의 사진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내 송아지를 끌면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걷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송아지가 좀체 걸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송아지는 엉거주춤, 비틀비틀하면서 간신히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줄을 당겼다. 너무 세게 당겨서 송아지가 쓰러질까봐 겁이 날 정도로. 이제 나는 송아지가 과연 우리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픈 건지도 몰라... 그래도 내가 산 것보다 백배는 더 비싼 송아지일 거야...
첫번째 능선 꼭대기까지 간신히 올라가보니 할아버지는 벌써 저 아래쪽 골짜기를 가로질러 건너고 계셨다. 이대로 가다간 완전히 뒤처지고 말 거이다. 나는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할아버지, 가톨릭교도를 본 적이 있으세요?”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셨다. 나는 송아지를 더 세게 잡아끌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할아버지는 송아지와 내가 다가갈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개척촌에서 한번 본 적이 있어. 딱 한 사람.”
할아버지 대답하셨다. 드디어 할아버지를 따라잡은 송아지와 나는 헥헥거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 사람은 특별히 추잡해 보이지는 않던데... 좀 곤란한 상황에 빠진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칼라는 엉망으로 구겨지고,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아주 순한 얼굴이었어.”
할아버지는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서 눈썹을 찡그리며 그 당시 일을 더듬으셨다. 잘됐구나 싶었다. 내 송아지는 할아버지 앞에 앞다리를 엉거주춤 벌리고 서서 괴로운 듯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시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다. 네가 칼을 쥐고 한나절 내내 그 정치가놈의 뱃속을 뒤져봐라. 눈곱자기만큼이라도 진실을 찾을 수 있나. 너도 들었지? 아무리 들어봐도 그 후레자식은 위스키세라든가... 옥수수값이라든가... 그 비슷한 것들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잖아.”
맞는 말씀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 후레자식이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걸 나도 알고 있었노라고 맞장구쳤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후레자식`이란 말은 새 욕설이니까 할머니가 계실 때는 절대로 써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고는, 그 정치가는 신부와 수녀들이 정말로 날마다 짝짓기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수사슴과 암사슴이 얼마나 자주 짝짓기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쓰지 않았다. 게다가 어쨌든 짝짓기는 그 사람들 일이라고 하셨다. 또 할아버지는, 갓난애들을 개한테 준다고 했지만, 수사슴이 자기 새끼를 개한테 주는 일은 절대없다. 그건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그러자 가톨릭교도들에 대한 나쁜 감정이 좀 걷히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당신 생각에도 가톨릭교도들이 권력을 쥐고 흔드려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네가 돼지 한 마리를 갖고 있다고 하자. 그것을 도둑맞고 싶지 않아서 열 명의 사람들더러 그 돼지를 지키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돼지를 훔치려 들 것이 아니겠느냐,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돼지를 자기집 부엌에 나두는 게 제일안전하지 않겠느냐, 워싱턴시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심보가 비뚤어진 놈들이라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느라 잠 한숨 못 잘 것이라고 하셨다.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하도 많으니 닭싸움이 내내 끊이지를 않는 거야. 뭐니뭐니해도 워싱턴시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정치가들이 그곳에 산다는 데 있어.“
또 할아버지는 우리가 설사 비타협파 침례교회에 다닌다 하더라도 당신은 비타협파 침례교도들이 권력을 잡는 건 반대한다고 하셨다. “그 교파는 자기네들 종교의식에서 쓰이는 약간의 술을 빼고는 술 마시는 걸 절대 금지하기 때문에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술을 깡그리 말려버릴 거야.” 라고 하시면서. 그래서 나는 가톨릭교도말고도 또 다른 위험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만일 비타협파가 권력을 잡으면 나와 할아버지는 위스키 만드는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굶어죽게 될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그 통냄새 나는 위스키를 만드는 부자들은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을지, 그래서 우리를 함정에 빠뜨려 우리 일거리를 몽땅 빼앗아가지 않을지 물어보았다. 틀림없이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쓰고 있을 것이며, 날마다 워싱턴시의 정치가들에게 뇌물을 갖다바치고 있을 거라는 게 할아버지의 대답이셨다. 할아버지는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고 말씀하셨다. 인디언들만은 절대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 과연 그럴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이야기하시는 동안 내 송아지가 넘어졌다. 송아지는 옆으로 넘어진 채 그냥 그대로 누워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서서 줄을 잡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내 뒤쪽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네 송아지가 죽었구나.”
할아버지는 송아지의 반을 끝까지 당신 걸로 하지 않으셨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송아지의 머리를 들어올려 제 발로 서도록 만들어 보려 했다. 하지만 송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머리를 흔들었다.
“송아지는 죽었단다. 작은 나무야, 뭔가가 죽었다는 거 말이야... 그건 죽은 거야.”
송아지도 그랬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죽은 송아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기억할수 있는 한 최악의 순간이 눈앞에 닥치고 있었다. 50센트와 빨갛고 파란 사탕상자는 이미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내가 준 돈보다 백배는 더 비싼 송아지까지 사라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모카신에 꽂혀 있던 긴 칼로 송아지의 배를 갈라 간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간을 가리켰다.
“얼룩덜룩한 걸 보니 병에 걸린 거야. 먹을 수도 없어.”
먹지도 못하다니! 죽은 송아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할아버지는 쭈그리고 앉아서 송아지 가죽을 벗겼다.
“이걸 할머니한테 갖다드리면 가죽값으로 10센트는 줄 게다. 가죽은 쓸모가 있거든.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개들을 이리로 보내자... 개들이라면 이 송아지를 먹을 거야.”
내가 생각해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나는 송아지가죽을 짊어진 채 할아버지 뒤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갔다. 할머니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할머니에게 50센트를 병에 도로 넣을 수 없다는 것과 그 돈을 송아지 사는데 썼다는 것, 그런데 그 송아지는 죽어버렸다는 것을 고백했다. 할머니가 가죽값으로 10센트를 주셨다. 나는 그 돈을 받아 항아리 속에 넣었다. 그날 저녁식사는 내가 좋아하는 완두콩과 옥수수빵이었지만 나는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저녁을 먹으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자, 봐라, 작은 나무야. 너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탓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그래요. 할아버지.” “자, 그런데 너는 뭘 깨달았니?” 할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물으셨다. “음, 제 생각에는요, 기독교도와 거래를 해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할머니가 갑자기 웃기 시작하셨다. 내 말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 계시던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똑같이 웃기 시작하셨다. 얼마나 심하게 웃으셨는지 옥수수빵이 목에 걸리기까지 하셨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게 뭔가 재미있는 거라는 건 알겠는데 왜 그런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웃음을 그치고 말씀하셨다.
“작은 나무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제 입으로 자기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떠벌리는 사람한테는 조심하겠다는 뜻이지?” “예, 할머니, 그래요.”
하지만 확실히 이해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50센트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말고는.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저녁식탁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얼굴을 접시에 박았다. 할머니가 내 얼굴에 묻은 완두콩을 닦아주셨다. 그날 밤 나는 비타협파 침례교도들과 가톨릭교도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는 꿈을 구었다. 비타협파는 우리 증류기를 두들겨 부수고, 가톨릭교도들은 송아지를 통째로 잡아먹었다. 그 자리에는 덩치 큰 기독교도 한 사람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빨갛고 파란 사탕상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백배나 더 비싼 것이지만 50센트만 주면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50센트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탕상자를 사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