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
본뜻 : 말 그대로 '개의 털'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털은 다른 짐승의 털과는 달리 요긴하게 쓰일 데가 없는 물건이다.
바뀐 뜻 : 어떤 일에 시시하고 오죽잖은 사람이 한몫 낄 때 그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감옥에 잡범으로 수감중인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로도 쓰인다. 거물급 죄수는 범털이라고 부른다.
"보기글" -이번 일에는 김 대리가 완전히 개털이야 -야, 요번에 우리 감방에 범털이 들어온다며? 그 덕에 우리 같은 개털들 팔자 좀 피지 않을까?
넨장맞을
본뜻 : 이 말은 본래 '네 난장을 맞을'이 줄어서 된 말이다. 난장이란 조선 시대 형벌로써 정해진 형량이나 규칙 없이 닥치는 대로 마구 때리는 형벌을 말한다.
바뀐 뜻 : 불평을 하거나 불만스러울 때 험악하게 내뱉는 상말이다. 흔히 어떤 일이나 상황이 자기 뜻에 어긋나서 마땅찮을 때 쓰는 말이다. '젠장' '젠장맞을'이라고도 하는데, '젠장맞을'은 '제기, 난장을 맞을'의 줄임 말이다.
"보기글" -젠장맞을! 일이 이렇게 꼬이는 거야! -젠장, 이거 돈버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장사하겠나!
노가리 까다
본뜻 : 노가리는 본래 명태 새끼를 가리키는 말이다. 명태는 한꺼번에 많은 새끼를 까는데,노가리가 알을 까듯이 말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속된 표현이다.
바뀐 뜻 : 말이 많거나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말이 많아지면 자연히 허풍을 떨게되거나 진실이 아닌 얘기도 끼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노가리'가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는 뜻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흔히 속된 표현으로 '노가리 푼다' '노가리 깐다'라고도 한다.
"보기글" -그 자식은 노가리가 너무 심해 그 자식 말은 더도 말고 딱 반만 믿으면 돼 -노가라 풀지 마 네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그래도 못 믿겠다
큰 바위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은 산골짜기 어느 마을에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인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소년과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을 한 위인은 장군도 아니었고 시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바위를 닮아 살아온 주인공 자신이었던 셈이다.
사람은 자신이 놓인 자연을 닮아가면서 살아간다. 경기도 두물머리(양수리) 사람들의 삶을 그린 시인 권대응은 “양수리 사람들은 강을 닮으며 살아간다”고 하였다. 땅이름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 <금강산 기행>을 쓴 이광수는 구름과 안개가 걷힌 금강산 비로봉에 지극히 평범한 덕을 지닌 ‘배바위’를 보고는 소설가다운 상상을 자연스럽게 펼쳐낸다. 배바위는 뱃사람들이 바위를 기준으로 삼아 배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바위라는 뜻이다. 만장봉두에 말없이 앉아 있다가 푸른 바닷길을 열어주니 얼마나 큰 덕을 쌓는 일인가. 성인도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한 덕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평범한 덕이다.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큰 바위 이름은 모양이나 기능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우뚝 선 모습의 ‘선바위’, 병풍처럼 펼쳐 있는 ‘병풍바위’, 칼날처럼 날카로운 ‘칼바위’ 등이 그러하다. 특히 강원 산간 마을에는 이런 이름이 더 많다. 이런 이름들에는 큰 바위 얼굴처럼 자연을 닮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배어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오스트로네시아 말겨레
태평양 넓은 지역에 흩어져 쓰이고 있는 일천여 언어들은 오스트로네시아 말겨레에 든다.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에 있는 마다가스카르섬에서부터 남태평양의 동쪽 끝 이스터섬에 이르는 지역에 2억7천만 명 정도가 쓰고 있다. 한때는 말레이-폴리네시아 말겨레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말겨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말이 말레이말인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 등 네 나라와 그 이웃지역에서 2억 명 이상이 사용한다. 말레이시아말과 인도네시아말은 물론 같은 말레이말이지만, 요즘 들어 낱말이나 문법구조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오스트로네시아 말겨레에 드는 몇몇 말을 살펴보자. 필리핀은 지금 영어를 주로 쓰지만, 그들의 토박이말은 오스트로네시아 말겨레에 든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타갈로그말인데, 영어와 함께 필리핀의 공용어이며, 현재 필리핀 학교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다. 뉴질랜드 하면 우리는 마오리족을 떠올린다. 이들이 쓰는 마오리말은 뉴질랜드의 토박이말로서 지금도 십만 명 가까이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바람이 치던 바다’로 시작하는〈연가〉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po karekare ana’는 바로 마오리말로 된 노래다.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하와이섬에서 쓰이는 토박이말이 하와이말이다. 이천 명 정도가 영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 하와이말은 다른 오스트로네시아말처럼 말소리가 매우 단순하다. 홀소리는 다섯 가지만 있고, 닿소리는 h, k, l, m, n, p, w만 있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누겁다/ 서겁다
‘누겁다’는 ‘눅눅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고, ‘서겁다’는 ‘섭섭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장마철이여서인지 방안이 누거웠다.”(조선말대사전) “오뉴월 겨불도 쬐다나면 서겁다, 짚불도 쬐다나면 서겁다.(우리말글쓰기 연관어대사전)
‘누겁다’와 ‘서겁다’는 ‘눅눅하다’와 ‘섭섭하다’에서 왔다. ‘눅눅하다’에서 ‘눅-’을 취하고, ‘어떤 느낌이 있다’는 뜻을 더하는 ‘-겁’을 결합한 것이다. ‘섭섭하다’도 마찬가지다. ‘눅겁다’에서 ‘누겁다’로, ‘섭겁다’에서 ‘서겁다’로 변한 것은 소리를 쉽게 내고자 함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같이 쓰는 ‘차갑다/ 헐겁다’를 보면 보통 ‘차다/ 헐다’처럼 한 음절의 형용사에 ‘-겁’이 결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누겁다/ 서겁다’는 두 음절 형용사의 음절 하나만 취했다. 또 ‘누겁다/ 서겁다’는 남녘의 사전은 물론, 방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누겁다/ 서겁다’는 북녘에서 만든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겁’이 형용사 어간에 결합되고, 하나의 음절에만 결합된다는 규칙을 찾을 수 있고, 그 규칙에 맞게 말을 만들었다는 점과 이 말의 뜻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서 볼 때 잘 만든 말로 여겨진다.
같은 방식으로 ‘~겁다’붙이 형용사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분분하다’에서 ‘분겁하다’를 만들고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는 뜻으로 쓰고, ‘딱딱하다’에서 ‘딱갑다’를 만들고 ‘딱딱한 느낌이 있다’의 뜻으로 쓸 수도 있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