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족에게 고함 - 봉우 권태훈
1. 나에게서 구하라
대자연의 삶
인간으로 탄생한 것을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가장 무의미한 우연의 산물인 듯 여겨지고, 탄생 후의 주위 환경과 교육여하에 따라 그 삶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졌기 때문에 흔히들 인생을 부생, 뜬구름처럼 떠도는 삶이라고 말한다. 또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가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반해 가난과 병으로 일생을 보내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인간살이를 고해라고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인간으로 탄생한 것이 맹목적인 우연에 있는 것은 아니며, 삶 자체가부생이나 고해인 것은 더욱이 아니다. 단지 이 우주 대자연의 크나큰 수레바퀴 속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따라 돌고 도는 가운데, 각자가 무의미한 우연에 의해서 이 지상에 나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뿐이다. 세상에 나와서 남과, 또 사물과 맺어지는 인연이라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판단과 결정으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무 관계도 없는 우연으로 그 인연이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삶은 반드시 그 뜻이 있는 것이지 뜬구름 같은 부생이 아니다. 또한 무수한 세월을 두고 전전하던 잘못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어 나온 것이니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수도 있는 이 자리가 어찌 고해라고만 단정할 것이겠는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천지의 대자연은 변함이 없으나, 인간의 행위는 여러모로 그 대자연을 위반하고 대자연에 역행하는 방향으로만 달려간다. 하늘은 어느 때고 그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하지만, 인간들이 스스로 끊임없는 윤회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한 이래, 이것을 자각하신 성자들이 세상사람들에게 그 윤회의 고통을 스스로 택하지 말고, 그 사슬에서 벗어나(해탈하여) 극락을 얻으라고 수없이 일깨워 왔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젼히 술취한 듯, 꿈꾸는 듯 그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옛사람들이 이 현상을 보다못하여 현실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이 삶을 부생이라하고, 극락을 만들 수 있는 낙토를 고해라고 오해하였다. 또 마음 속과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수 있는 이곳을 지옥이라고 생각하여 죽어서 갈 천당을 희구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것은 비단 현 인류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태초 이래 인류가 시작된 뒤부터 계속되어온 문제다. 그리하여 이처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잘못을 되풀이하여 윤회하는 삶이 마치 정상적인 대자연의 삶인양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으라. 피와 살과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이 몸안에 불멸의 대생명력이 무한히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자각하라. 이 몸이 가장 뜻깊은 몸이요, 이삶이 가장 즐거운 삶이요, 지금의 이 세계가 바로 극락세계이다. 이 세계 외에 또다른 극락세계가 있지않다. 이 삶보다 더 의미있는 삶이 있지 않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부르짖는 인류로 태어나서 이 현실세계를 극락으로 생각하고, 지상 극락건설을 크게 외치면서 자기 자신과 남을 자각시키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윤회라는 피동적 삶의 형태를 극복하는 사람의 자세다. 또다른 삶과 또다른 세상을 꿈꾸지 말라. 그대가 선 바로 그 자리에서 천국을 느끼고, 진리를 찾으라. 이것이 바로 옛 현자들의 깨우침이며, 대자연계에서 쉬지 않고 흘러 나오는 소식이다.
내가 나를 안즉 능히 남을 알고 윈래 밝은 것을 다시 밝히니 도가 이루어진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일을 알고 주변을 돌보면 덕이 세워진다. 이것이 바로 생의 최고의 목표라, 뜻을 세움이 낮으면 그 배움이 보통의 수준을 넘지 못하니 반드시 이러한 최고의 것으로 뜻을 세워서 비상한 힘을 내어 쉬지 않고 나아가라. 그리하면 미록 타고난 재주와 성질이 크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히 지혜로운 자의 대열에 서게 될 것이나 모든 배우는 이들은 마땅히 힘쓰고 힘쓸지어다.
내가 나를 생각해 보면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만사에 거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강태공이 병서에서, 힘이 같으면 지혜로써 판가름이 나고 지혜가 같으면 덕으로써 판가름이 난다고 말한 뜻이다. 비록 내가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도 그 역량의 차이가 있을 때는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하나 남을 물리치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 그 차이가 자신을 지킬수도 없을 만큼 크다면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때를 기다리는 일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만 가지 조건이 모두 불리한 줄 알고 내 자신이 남을 물리치려는 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불의를 품고 공격해 온 다면 비록 지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지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덕이다. 남을 알고 나를 안다고 해서 만사가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남을 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남을 알기전에 우선 자신을 알지 못해서 실패가 많은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래서 옛사람의 말대로 지나침과 부족함이 다 중용을 벗어나는 일일지니,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맞지 않는 일이요, 그렇다고 과대평가하는 것도 역시 옳지 못한 일이다. 한 치도 빗나감이 없이 정확히 나의 위치를 알아야 비로소 그 분수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 보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붓을 들고 이 글을 쓰면서도 나를 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내가 지난 90년간 걸어온 현실의 위치가 과연 무엇이며, 또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상과 실력이 어느 정도의 범위를 갖고 있는 것인지 조금도 덧보태거나 빼지 않고 평가해보자는 것이다.
스스로 내가 나를 평가할 때 흔히 겸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나, 나는 지금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살펴보고, 그리고 옛사람들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나 되는지, 또 나아가 때를 만났을 때 내가 어느 정도까지 될 것인가를 스스로 평가해 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학자라면 으레껏 갖고 있어야 하는 뛰어난 문장력과 여러 재능에는 아주 문외한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선비될 자질은 없다. 다만 역학을 좀 연구하고 각 철학사상을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어서 약간의 지식은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학문의 탐구에 있어서도 여러 고매한 성현들의 해박한 문장보다는, 종일토록 어리석은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있던 공자의 제자 안자를 사모한 나머지 문자를 가지고 논하는 일을 피하고 다만 그 근본을 밝히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따라서 쟁쟁한 학자의 대열에는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내지만 가끔 진지한 토론석상에 참여하여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은 안다. 정통 교리에 밝지도 못하면서 가끔 경전의 근본 뜻을 나름대로 피력해보거나 통속적인 학설은 대충 말할 수 있으나, 그것도 말뿐이지 전문가가 못된다. 다만 유불도의 사상서를 비롯한 온갖 학문서적을 좀 취미 가져서 읽어 보았기 때문에 비록 충분하진 못하나 아주 문외한은 아니라는 평을 들을 따름이다. 종교관에 있어서도 나 자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어느 종교든 신앙을 피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의 믿음이라는 것이 약하기 때문에 따히 확고한 철학을 지녔다고도 할 수 없다. 또 법률 지식을 약간 주워들은 관계로 남의 시시비비를 잘 가리다가 구설수에 오르곤 하는 것이 바로 나다. 쓸데없이 의협심을 갖고 있어서, 비록 세상 처세하는 데에는 내 분수나 지키고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강자보다는 약자편을 드는 일이 많아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두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고 좋지 않게 평한다. 또 비록 분수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욕심이 많아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백일몽을 꾸는 것이 바로 나다. 뿐만 아니라 세상일의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여 간간이 호언장담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군사학에는 남이야 무엇이라든지 나대로는 예나 지금이나 군사를 전부 통솔할 자신은 없어도 아무 지방이고 한쪽의 임무만은 맡을 자신이 있다. 내가 나대로 수십년을 두고 여러 곳에서 일어난 전쟁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예측해 보면 별로 빗나가는 일이 없었다. 이것만은 비록 전문가는 아니나, 내가 예나 지금이나 때를 만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스스로 자신한다. 그것도 그냥 자신이 있을 뿐이다. 경제쪽에는 정말 문외한이요, 외교에도 자신이 없고, 그 밖의 다른 부분에는 걸리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 쓸모가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사람을 모아 어떤 일을 도모하는 능력이 없다. 또 포용력이 많지 않아서 남의 상관이 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누구의 아래에 머물러서 윗사람을 섬기고 더 아랫사람을 교육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 실권 없는 구경꾼으로는 적절할지 모르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군대 외에는 실권 있는 일이면 모두 자신 없다. 다만 부정부패한 일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기강을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는 데에 좀 엄정하게 하는 성격일 따름이다. 옛날에 살았다고 해도 나라에 아무일이 없을 때에는 별필요가 없는 인물이요, 괜히 위태로운 말을 하다가 권력가진 자에게 미움만 받기 십상이였을 것이다. 나라가 위급할 때라면 약간의 공을 세울 소질이 좀 있지 않을까 생각들 뿐이다. 또 현세상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쓸모가 없다. 과학적으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정신적으로 미천한 실력이 있으나 아직 말로 표현할 시기가 못되고 더구나 민족정신을 일깨울 실력도 어느 모로 보든지 부족하다. 마음만은 있으나 일을 해보면 현실적인 계산이 따르지 못해서 '뜻은 있으나 일을 이루지는 못한다' 라는 말이 나에게 어울린다.
이렇듯 내가 스스로 아는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때, 지금의 나는 현실 속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최상은 내가 바라지 않고, 그 다음은 내가 적당하지 않고, 그 다음의 실질적인 업무분야에는 내가 자신이 없고, 이 이상 그 이하가 모두 부적격이다. 경제적으로도 아주 문외한이요, 정신적으로도 그저 주변에서 맴도는 일개 학인에 불과하다. 단계를 밟는 자리가 아닌,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면 일시적으로 필요한 인물일 모르나, 그 밖에는 아무 용도가 없는 인물이다. 따라서 나는 위도 아니고, 아래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그러한 위치에 처해있다. 세상사람들은 다 제각기 자신의 위치가 있으나 나는 어리석어서 그러한 위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세상사람들은 다 약간의 힘과 지혜와 덕을 자랑하나, 나는 어리석어서 자랑할 만한 힘과 지혜와 덕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