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
본뜻 : '붉다'는 뜻을 가진 불어 'rouge'에서 온 말이다.
바뀐 뜻 :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은 입술을 주로 붉은 색으로 바르고 다녔는데, 그것을 '루즈'라고 하면서 그만 'rouge'가 입술연지를 가리키는 명사가 되어 버렸다. 요즘은 루즈 대신에 립스틱(lipstick)이란 영어를 많이 쓴다.
"보기글" -어린 나이에 너무 진하게 루즈를 칠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느니라 -만원 전철에서 와이셔츠에 루즈가 묻었는데 쉬 지워지질 않아서 애를 먹었네
마호병
본뜻 : '마호'라는 말은 '마법'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마호병이란 곧 '마법의 병'이란 뜻인데, 오랫동안 보온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여 '마법의 병'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바뀐 뜻 : 병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담을 때 액체의 온도와 거의 같은 온도를 유지하는 보온병이다. 흔히들 보온병을 따뜻한 것만 보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뜨거운 것은 뜨겁게, 찬 것은 차게 온도 유지를 해주는 것이 보온병의 역할이다.
"보기글" -얘, 건너방 그릇장에 들어 있는 마호병 좀 가져오련? -엄마, 마호병이 뭐예요? 촌스럽게 보온병이라 그러면 될텐데
노박비
‘노박비’는 ‘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줄곧 내리는 비’를 말한다. ‘노박’은 무슨 말일까? 남북이 같이 쓰는 말로 ‘노박이로’가 있는데, ‘줄곧 계속적으로’란 뜻이다. 북녘에서는 ‘노박’을 ‘노박이로’와 같은 뜻으로 쓴다.
“노박비를 맞다.”(조선말대사전) “아사녀도 팽개와 싹불이가 인제 노박이로 와 있다는 말에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현진건·무영탑) “아무리 젖은 몸이지만 비를 노박 맞는다는것은 기분 좋은 일이 못된다.”(조선말대사전)
‘노박’은 남녘에서 쓰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21세기 세종계획 ‘방언 검색 프로그램’을 보면, 강원도에서 쓰이고 있고, <우리말큰사전>에도 북녘말과 같은 뜻으로 실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노박’은 없지만 충청도 방언 ‘노박이’가 있다. ‘한곳에 붙박이로 있는 사람’의 뜻이다. ‘노박이’는 ‘노박-이’나 ‘노-박-이’로 볼 수 있다. ‘노’는 ‘노상’의 줄임말, ‘박’은 ‘박히다’의 어간, ‘-이’는 사람을 나타내는 뒷가지다. ‘노-박이’로 볼 수도 있는데, ‘-박이’는 ‘점박이’와 같이 ‘무엇(앞의 명사)이 박혀 있는 사람’의 뜻으로 쓰이기에 적절치 않다. ‘노박이’가 ‘노상이라는 것이 박힌 사람’으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퍼붓듯이 많이 내리는 비’를 나타내는 말로 남북이 같이 쓰는 ‘장대비·억수·작달비’, 북녘에서 쓰는 ‘뚝비·무더기비·억수비·줄비·채찍비’ 등이 있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돕다와 거들다
‘돕다’와 ‘거들다’ 같은 말도 요즘은 거의 뜻 가림을 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쓰인다. 국어사전들이 ‘돕다’를 찾으면 거드는 것이라 하고 ‘거들다’를 찾으면 돕는 것이라고 하니까 이런 뒤죽박죽이 바로잡힐 길조차 없다.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비슷한 뜻을 지녀서 얼마쯤 겹치는 구석이 있지만 여러 가지 잣대에서 쓰임새와 뜻이 사뭇 다르다.
우선 ‘돕다’는 사람에 쓰이는 낱말이고 ‘거들다’는 일에 쓰이는 낱말이다. 사람을 돕고 일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옳지만 일을 돕고 사람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틀렸다. 또 ‘돕다’는 몸과 마음으로 주는데, ‘거들다’는 몸으로만 주는 것이다. 돕는 것은 지니고 가진 것을 모두 다해서 주지만 거드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돕다’는 주고받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주기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돕는 것은 두고 보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서로 도움이 되기 마련이지만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는 주기만 하고 받는 쪽에서는 받기만 하면 그만이다. 넷째로 ‘돕다’는 주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지만 ‘거들다’는 받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다. 돕는 것은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고,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돕다’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지만 ‘거들다’는 지금 벌어진 일에 갇혀서 주고 나면 끝난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패랭이꽃
‘패랭이꽃’은 길가 풀밭이나 냇가 모래땅, 묏자리 근처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꽃을 뒤집으면 옛날에 역졸, 부보상들이 쓰던 패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자어로는 석죽(石竹)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위틈 같은 메마른 곳에서도 잘 자라고, 대나무처럼 줄기에 마디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패랭이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여서 자라는 곳이나 모양에 따라 이름도 많다. 바닷가에 자라는 ‘갯패랭이꽃’, 구름이 떠 있는 높은 산에서 자라는 ‘구름패랭이꽃’, 백두산에서 자라는 키가 작은 ‘난장이패랭이꽃’,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패랭이꽃’, 꽃잎이 붉은 ‘각시패랭이꽃’, 꽃잎이 술처럼 잘게 갈라진 ‘술패랭이꽃’, 꽃받침을 둘러싼 부분이 수염처럼 생긴 ‘수염패랭이꽃’ 들이 있다.
‘패랭이꽃’ 이름에서는 거추장스럽거나 거들먹거리지 않는 실용적인 모자를 쓰고, 바지런하게 생활하던 옛사람의 일상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옛날 우리의 생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풀꽃이름으로는 ‘달구지풀/ 작두콩/ 병풍나물/ 삿갓나물/ 요강나물/ 족두리풀/ 비녀골풀/ 투구꽃/ 갈퀴나물 …’ 들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며, 귀하지 않고 뽐내지 않아 친근함을 느껴서 그런지 소박한 삶과 마음을 패랭이꽃과 함께 쓴 글이 많다.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이라는 류시화의 최근 시(패랭이꽃)를 되뇌어본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패랭이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