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를 달다
본뜻 : 흔히 한자에 토를 달았다고 하면 천지라는 한자에 우리말로 '천지'라고 쓴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자의 우리말 소리는 '독음'이지 '토'가 아니다 '토'라 함은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을 쉽게 알기 위하여 한문 구절 끝에 붙여 읽는 우리말로서 우리말의 조사에 해당한다. '토시'라고 쓰기도 한다. -하야, -하고, -더니, -하사, -로, -면, -에 등이 토에 해당한다.
바뀐 뜻 : 오늘날에 와서는 위에서 설명한 본래의 뜻보다는 얘기 중에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경우에 뒤에 덧붙여 하는 얘기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인다.
"보기글" -이 한시의 해석이 까다로운데 토만 좀 달아 주시겠습니까? -넌 어른의 말씀 뒤에 무슨 토를 그렇게 장황하게 다느냐?
학을 떼다
본뜻 : 모기가 옮기는 여름 전염병인 말라리아를 '학질'이라고 한다. 학을 뗀다는 것은 죽을 뻔했던 '학질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무시무시한 열병인 학질은 높은 열에 시달리는 것이 특징인데 높은 열이 나면 자연히 땀을 많이 흘리게 되므로,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진땀을 빼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바뀐 뜻 : 괴로운 일이나 진땀 나는 일을 간신히 모면하거나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보기글" -선을 보는데 신랑 어머니가 어찌나 꼬치꼬치 묻던지 학을 떼겠더라구 -전화 걸지 말라는데도 낮이고 밤이고 없이 전화를 하는데 아주 학을 떼겠어!
한풀 꺾이다
본뜻 : 이불 호청이나 옷에 갓 풀을 먹여 빳빳하던 풀 기운이 어느 정도 가신 상태를 말한다.
바뀐 뜻 : 한창이던 기세나 투지가 어느 정도 수그러든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꿔 쓸 수 있는 말에는 '한풀 죽다'가 있다.
"보기글" -그 사람 사업 시작할 때는 기세가 등등하더니 실명제 이후로 완전히 한풀 꺾였더구만 -스타 소리 듣던 작년까지만 해도 안하무인이더니만 올해 들어와서 인기가 주춤하니까 완전히 한풀 꺾였던데
별내와 비달홀
뜻이 같은 한자말과 토박이말이 합친 말이 많다. ‘역전앞’이나 ‘처가집’이 대표적인 경우다. 언어학자들은 같은 뜻을 합쳐 이룬 낱말은 말의 경제적인 차원에서 불합리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적절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역전’이나 ‘처가’로 써야 바른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자말과 토박이말의 합성어가 전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족발’은 ‘족’(足)이나 ‘발’만으로는 뜻을 전할 수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비록 ‘족’과 ‘발’이 같은 뜻일지라도 두 말이 합치어 새로운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말 가운데는 ‘별’과 ‘낭’이 그런 보기에 해당한다. 전남 승주군에 있었던 ‘별량(별애)부곡’이나 <삼국사기>에 보이는 ‘압록수 이북의 미수복 지역’ 땅이름인 ‘비달홀’(비탈골)에 들어 있는 ‘별애’와 ‘비탈’은 비스듬한 모양의 지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우리 옛말에는 ‘별’과 ‘낭’은 비슷하지만 다른 뜻의 말이었다. <동국신속 삼강행실도>의 “ㅈ.식을 업고 낭의 떨어져 죽으니라”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낭’은 ‘절벽’을 뜻하며, <동동>의 “6월 보름에 별헤 ㅂ.룐 빗 다호라”에 나오는 ‘별’은 절벽보다는 덜 가파른 비스듬한 지역을 나타낸다. 이 두 말이 합쳐서 ‘벼랑’이라는 말이 된 것이다. 특히 ‘별’은 물을 뜻하는 ‘내’나 ‘고개’를 뜻하는 ‘재’와 어울려 땅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깅기 남양주의 ‘별내’나 강원 통천의 ‘별재’는 이런 땅이름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아랍말과 히브리말
아시아 서쪽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북부지역에 걸쳐 널리 퍼진 말겨레가 셈말겨레라 한다. 셈말겨레는 다시 북서부와 중남부로 나뉘는데 북서부의 대표적인 말이 히브리말이며, 중남부의 대표적인 말이 아랍말이다. 히브리말은 본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사용된 성경 언어로서 오랫동안 유대교의 문자언어로 유지해 오다가 19세기 말에 일상언어로 부활했으며, 1948년 이스라엘이 서면서 이스라엘의 공용어가 되었다.
아랍말은 이슬람의 성전 코란 언어로 확립된 7세기부터 종교적 발전과 더불어 분포지역을 크게 확대하였으며,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나라와 이집트·수단·리비아·알제리·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인다.
같은 말겨레에 딸린 까닭에 아랍말과 히브리말은 공통점이 많다. 이들 말은 대체로 세 자음이 한 형태소를 이루고, 그 안에 들어 가는 모음에 따라 여러 낱말로 파생되기도 하며 문법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아랍말에 ‘k-t-b’라는 어근이 있는데, 여기에 ‘-i-a-’가 들어간 ‘kitab’는 책이고, ‘a-i-’가 들어간 ‘katib’는 서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쓰는 특징도 두 언어가 같다.
종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대립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인 이스라엘과 아라비아권의 언어가 같은 계통인 셈말겨레에 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무릎노리
남북의 표기가 다른 낱말 가운데 ‘관자놀이/관자노리’, ‘가슴놀이/가슴노리’가 있다. ‘놀이’와 ‘노리’로 표기가 다른 것은 낱말 짜임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남녘말 ‘관자놀이’는 ‘맥박이 뛰는 곳, 맥박이 노는 곳’, 곧 ‘놀다’로 본 것이다. 북녘말 ‘관자노리’는 ‘관자의 언저리 부위’로 보아서 ‘복판의 언저리’를 뜻하는 접미사 ‘-노리’로 본 것이다. ‘가슴놀이/가슴노리’도 마찬가지다. 남북의 견해는 둘 다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무릎노리’는 <조선말대사전>에서 ‘다리에서 무릎 마디가 있는 자리’로 풀이했는데, ‘무릎의 언저리’로 이해할 수 있다. ‘마디’가 ‘길쭉한 물체에서 잘록하게 들어가거나 불룩하게 도드라진 곳’을 뜻하므로 ‘무릎노리’는 무릎과 무릎 뒷부분을 아울러 가리키게 된다. 북녘말 ‘어깨노리’는 ‘어깨의 언저리’, ‘허리노리’는 ‘허리의 언저리’다. 남북에서 같이 쓰는 ‘배꼽노리’는 ‘배꼽의 언저리’다.
“무릎노리까지 눈이 쌓이다.”(조선말대사전) “최덕삼은 견장을 뗀 군복외투 어깨노리를 서운한 눈길로 더듬어보더니 …”(중편소설 <호수에 노을 비낀다>) “강물은 얕아져서 허리노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조선말대사전)
어깨·허리·배꼽은 맥박이 뛰는 부위가 아니므로 ‘어깨놀이, 허리놀이, 배꼽놀이’로 쓸 수는 없겠다. ‘무릎놀이’라는 말은 없지만, 무릎의 뒷부분만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무릎 뒷부분에서도 맥박이 뛰기 때문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