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논픽션 대상 공모
조선일보는 1억원 고료를 내걸고 '2008 조선일보 논픽션 대상(大賞)'을 제정, 전 국민을 대상으로 원고를 공모합니다.
본지가 지난해부터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함께 펼쳐온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을 한 단계 발전시켜 '전 국민 책 1권 쓰기 운동'으로 펼치는 공모전입니다. 여러분의 메모수첩과 일기장에 기록된 삶의 흔적들이 곧 논픽션입니다. 형식은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분량: 200자 원고지 900장 안팎(원고지 20장 안팎 요약문 첨부)
▲고료: 당선작 1편 1억원
▲마감: 2008년 4월 30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발표: 2008년 5월 말 조선일보
▲접수: 100-756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1 조선일보사 편집국 문화부 (02)724-5364, 5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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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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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시도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인생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 빈센트 반 고호 (네 덜란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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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글터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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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주검이 되다
본뜻 : '주검'은 시체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초주검이 되다'는 초기 상태의 시체처럼 되었다는 뜻이다.
바뀐 뜻 : 몹시 다치거나 맞아서 혹은 너무 일을 심하게 해서 거의 다 죽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
"보기글" -밤중 내내 순사들에게 쫓긴 그녀는 새벽 안개가 퍼질 무렵 초주검이 되어서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사흘 동안 철야에 야근까지 하더니 아주 초주검이 되었구나
태풍의 눈
본뜻 : 강력한 태풍이 불 때는 중심에 가까울수록 원심력이 강해지는데 이때 비교적 바람이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부분을 가리켜 태풍의 눈이라 한다. 태풍 중심부의 반경 10여 킬로미터 이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바뀐 뜻 : 복잡하고 시끄러운 사건의 와중에서도 비교적 그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전하고 조용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거센 바람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바람이 없는 기상 현상인 '태풍의 눈'과 비슷한 일이 인간사에서 일어나자 그것을 자연현상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은 잠잠한 상태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는 경우가 많다.
"보기글" -정가에 불어닥친 공직자 숙정 바람에도 북한산 계는 태풍의 눈이라던데 그게 사실이야 -중동 지역에 몰아닥친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태풍의 눈은 사우디 아라비아밖에 없을걸
터무니가 없다
본뜻 : 터는 본래 집이나 건축물을 세운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을 헐어도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들이 흔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흔적조차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 집이 있었는지 어떤 구조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터의 무늬(자리)가 없다는 말은 곧 근거가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바뀐 뜻 : 내용이 허황되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보기글" -뭐? 미국하고 소련이 통합한다고?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는 언제 들었니? -엄마, 그런 터무니 없는 소문을 믿으세요? 소문이란 건 본래 한 입 건너갈 때마다 늘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아시저녁·아시잠
‘아시잠’은 ‘잠깐 드는 잠’이다. 이런 잠을 이르는 말로 ‘선잠·겉잠·어뜩잠’ 등이 있다.
“철민이 이제는 그만 하고 쉬라고 권했으나 어머니는 초저녁에 아시잠을 한숨 자고 났더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냥 일손을 놓지 않았다.”(변희근 <뜨거운 심장>) “어뜩잠이 들어 꿈속을 헤매다가 깨여난 명옥은 눈을 번쩍 뜨고서 달빛이 환히 비쳐드는 방안을 어수선한 심정으로 두리두리 살폈다.”(장편소설 <태양의 아들>)
‘아시’는 남북 두루 쓰는 토박이말로 ‘처음’을 뜻한다. ‘애’로도 쓰는데, 둘 다 ‘처음’을 뜻하는 ‘아?’에서 왔다. ‘아시’는 ‘애초’와 ‘애벌’로 구분하여 풀이하기도 하나, 애벌은 ‘애+벌(횟수)’ 짜임으로 ‘첫 번’이란 뜻이고, 애초는 ‘애+초’(-初) 짜임으로 ‘맨 처음’을 뜻하므로, ‘처음’이란 풀이로 아우를 수 있겠다.
‘아시빨래·애빨래’는 ‘애벌빨래, 처음 하는 빨래’다. ‘아시갈이·애갈이’는 ‘논밭을 처음 가는 것’, ‘아시논·애논’은 ‘처음 김을 매는 논’이다. ‘아시당초·애당초’는 ‘당초’와 비슷한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애당초’를 ‘애초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로 풀이했는데, ‘당초를 강조하는 말’로 보는 것이 옳겠다. ‘애초’에 ‘당(當)’이 곁들인 게 아니라 ‘당초’(當初)에 ‘애’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북녘말 ‘아시저녁’은 초저녁이고, ‘애저녁’으로도 쓴다. 이 ‘아시’는 ‘초가을·초어스름·초이튿날’ 등의 ‘초’ 자리에 쓸 수도 있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까닭과 때문
요즘 ‘까닭’과 ‘때문’은 뜻이나 쓰임새가 한결같다. 국어사전을 보면 ‘까닭’은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이라 하고, ‘때문’은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이라 한다. 뜻이 같다는 풀이다. 쓰임새도 마찬가지다. “소 살 돈을 노름해서 잃은 까닭으로 벼를 찧어 팔아서 ….”(이기영 <서화>) “장수 한 명이 갈린 때문으로 해서 이렇게 참패가 될 줄은 ….”(박종화 <임진왜란>) 예시한 ‘까닭’과 ‘때문’은 쓰임새에서도 아주 같다.
그러나 ‘까닭’은 이름씨고, ‘때문’은 매인이름씨(의존명사)다. 매인이름씨 ‘때문’은 이름씨 ‘까닭’처럼 아무데나 쓰지 못하고 이름씨·대이름씨·이름꼴 ‘~기’ 뒤에만 매어서 쓴다. ‘감기 때문에’는 이름씨 뒤, ‘너 때문에’는 대이름씨 뒤, ‘어둡기 때문에’는 이름꼴 ‘~기’ 뒤에 썼다. 이름씨·대이름씨·이름꼴 ‘~기’ 뒤에만 매어서 쓴다는 것은 ‘때문’이 본디 토씨였다는 뜻이다. 토씨가 뒤에다 토씨를 붙이며 이름씨 노릇까지 해서 매인이름씨가 되었는데, 육이오 즈음부터는 아예 이름씨 노릇을 하려고 나섰다. 일테면 앞에 보인 ‘갈린 때문으로’는 ‘ㄴ’ 뒤, ‘먹은 때문에’는 ‘~은’ 뒤, ‘아는 때문에’는 ‘~는’ 뒤, ‘가던 때문에’는 ‘~던’ 뒤에 썼다. 이처럼 ‘ㄴ’, ‘~은’, ‘~는’, ‘~던’ 같은 매김꼴 뒤에 쓰면 매어서 쓴 것이 아니라 아예 이름씨로 쓴 것이다. 하지만 ‘때문’을 매김꼴 뒤에 이름씨로 써보면 아직도 어설프고, 이름씨·대이름씨·이름꼴 ‘~기’ 뒤에 매인이름씨로 써야 제격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으악새
오래된 유행가 가운데 가을이 되면 애절하게 가슴을 적시는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짝사랑’) 하는 노랫말에서 ‘으악새’가 나온다. 이를 ‘새’(鳥)로 아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2절에서 ‘뜸북새’도 슬피 운다 하니 더욱 그럴싸하다. 실제로 정재도님은 그것이 물과 관계가 있으며, 봄에 우리나라에 와 논·강·호숫가에서 살다가 가을에 돌아가며 슬피 우는 ‘왜가리’를 일컫는다고 밝힌 바 있다.
‘짝사랑’에 나오는 ‘으악새’와 상관없이 풀이름 ‘억새’의 경기 사투리로 ‘으악새’가 있고, 억새의 옛말에 ‘어웍새’가 있는 것을 보면, 풀이름과 ‘으악새’의 인연도 깊은 듯하다.
‘새’는 우리가 흔히 동물 이름 ‘○○새’를 떠올리지만, 식물 이름 ‘○○새’도 꽤 있다. 그냥 ‘새’라는 풀도 있고, ‘억새’의 준말이 ‘새’이기도 하다. 또한 볏과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기름새/ 나래새/ 드렁새/ 들묵새/ 물뚝새/ 쌀새/ 솔새/ 수수새/ 장고새 …들이 있다. ‘방울새’는 새이름이기도 하지만 풀이름이기도 하고, ‘오리새/ 꼬리새/ 호오리새’ 역시 새이름 아닌 풀이름이다.
주변에 19세기 프랑스 폴 베를렌의 시 〈가을의 노래〉 중 “가을날 비올롱의 긴 흐느낌은 ~”에서 ‘비올롱’을 바이올린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슬피 우는 새로 잘못 알고 그 감정에 푹 빠져서 불문학을 전공해 교수가 되셨다는 분이 있다. 착각에 힘입은 감동이라도 가끔씩은 개입하는 게 삶의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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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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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비겁한 자를 비웃는 말로써 전법에는 여러 가지 방책이 있긴 하지만 냉큼 도망쳐서 자기 한 몸의 안전을 꾀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이다.
이른바 남북조시대 북녘에는 위가 세력을 펴고 남쪽은 제나라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나라건 내분이 얽혀 있던 시절이다. 제나라의 장수 왕경측은 반란군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의 황제와 오랜 분란이 계속되어 자식들도 황제에게 피살된 터였다. 그런데 황실에서는 엉뚱한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으니 왕경측이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측은 진격 도중에 그 뜬 소문을 듣고 분연히 뇌까렸다.
"송 나라의 단도제 장군이야말로, 갖은 계략 중에서도 도주를 으뜸으로 삼았다더군. 제기랄, 저희들이나 도망치지!"
당장군이 위나라 군병을 피했던 사실을 경측은 이 판국에 생각해낸 것이었다. 경측은 마침내 제나라 군병에게 포위되어 도망도 못 쳐보고 목이 잘렸는데 그가 뇌까린 말은 오늘날가지도 전해진다. 그런데 애꿎게 경측의 구설에 오른 단도제란 어떤 인물이었던가? 송 나라 명장으로서 북방의 대적인 위나라 군사와 여러 번 싸워 공을 세웠다. 용병에 능하여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토도 과히 빼앗기지 않았는데 모함으로 인해서 처형되었다. 전국시대의 왕들은 자기 장군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다. 명장 단도제가 죽자 위나라 군사 백만이 쳐들어와 송나라 천지는 쑥밭이 되었다. 위병들은 창끝에다 갓난애를 꽂아 가지고 날뛰었다 한다. 황제는 그제서야 명장을 잃은 것을 애통해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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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현대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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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가는 길 - 김남구
골목 길 한 녘에서 지새워 입초(立哨)하며 시간을 셈하면서 세사을 지키는 외등(外燈) 가슴팍 저미어 오는 못 자국의 아픔이
흑암의 강물 넘치어 흘러도 부끄러운 속살 드러나는 아침을 찾아 당신의 피 한 톨로 온몸 적신 새벽길
달 지는 새벽 무거운 깃을 털고 찬란한 슬픔에 젖는 작은 새 한 마리 파아란 샛별로 박힌 당신의 못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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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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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길
진정한 길은 공중 드높이 쳐진 게 아니라 땅바닥에 닿을 듯 말듯 쳐진 줄 위로 나있다. 그것은 지나가 위해서라기보다는 걸려 넘어 지게 하기 위해서 있는 길인 듯 보인다.
카프카의 '진정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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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우리나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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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자사(哭子詞) - 이상화
웅희야! 너는 갔구나 엄마가 뉜지 아비가 뉜지 너는 모르고 어디로 갔구나!
불쌍한 어미를 가졌기 때문에 가난한 아비를 두었기 때문에 오자마자 네가 갔구나.
달보다 잘났던 우리 웅희야 부처님보다도 착하던 웅희야 너를 언제나 안아나 줄고
그러께 팔월에 네가 간 뒤 그 해 시월에 내가 갇히어 네 어미 간장을 태웠더니라. 지나간 오월에 너를 얻고서 네 어미가 정신도 못 차린 첫 칠날 네 아비는 또 다시 갇히었더니라.
그런 뒤 오은 한해도 못 되어 갖은 꿈 온갖 힘 다 쓰려던 이 아비를 버리고 너는 갔구나.
불쌍한 속에서 네가 태어나 불쌍한 한숨에 휩쌔고 말 것 어미 아비 두 가슴에 못이 박힌다.
말 못하던 너일망정 잘 웃기따에 장차는 어려움 없이 잘 지내다가 사내답게 한평생을 마칠 줄 알았지.
귀여운 네 발에 흙도 못 묻혀 몹쓸 이런 변이 우리에게 온 것 아, 마른 하늘 벼락에다 어이 견주랴.
너 위해 얽던 꿈 어디 쓰고 네게만 쏟던 사랑 뉘게다 줄고 웅희야 제발 다시 숨쉬어다오
하루해를 네 곁에서 못 지내 본 것 한가지도 속시원히 못 해준 것 감옥방 판자벽이 얼마나 울었던지.
웅희야! 너는 갔구나 웃지도 울지도 꼼짝도 않고,
불쌍한 선물로 설움을 끼고 가난한 선물로 몹쓸 병 안고 오자마자 네가 갔구나.
하늘보다 더 미덥던 우리 웅희야 이 세상엔 하나밖에 없던 웅희야 너를 언제나 안아나 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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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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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10가지 결심 - 오그만디노 / 역 - 황인환
제 1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 하피드
제 1장 호화궁전
하피드는 거울 앞에 서서 황금색 황동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생기를 잃지 않은 것은 눈 뿐이군?" 그는 돌아서서 대리석이 깔린 넓은 마루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금과 은으로 장식된 천장과 검은 색의 얼룩마노 기둥이 그 천장을 받치고 세워져 있다. 하피드는 그 기둥 사이를 지나 윤이나는 나무와 상아로 된 식탁에 가서앉았다. 응접실에는 거북이 가죽을 씌운 안락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환상적인 모야의 비단처럼 하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희고 매끄러운 청동 화분에는 종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하피드의 궁전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화려한 그의 저택을 보고 그만 놀라서 입을 벌리며 그가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하피드의 나이 칠십세이다. 그가 낙타지기 소년이었을 때 주인에게서 신비한 열개의 두루마리를 물려받은지 만 오십년이 지났다. 그는 식탁에 앉아서 잠시동안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신비한 10개의 두루마리를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했다. 하피드는 돌담 정원을 지나 그의 저택에서 50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로 갔다. 그의 창고지기이며 충실한 하인인 에라스무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고문 밖에서 그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주인 어르신."
하피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오는 에라스무스의 얼굴에는 주인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어 몹시 의아해하는 빛이 역력히 나타났다. 하피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보물들 앞에 멈추어 서서 방금 마차에서 내려놓은 듯한 그 보물들을 어림잡아 계산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창고 안에는 서아시아에서 나는 양모, 아마포, 양피지, 꿀, 양탄자, 향유와 도자기, 호두, 딸기, 그리고 팔메라에서 가져온 피륙과 약초, 아라비아 산의 생강, 이집트에서 가져온 곡물, 그리이스에서 가져온 동상 등등 진귀한 것이 수 없이많았다. 이윽고 하피드는 에라스무스를 돌아보았다.
"여보게 에라스무스, 이 보물이 값으로 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에라스무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모두 다 말입니까? 주인 어르신?" "그래." "글쎄요? 요즘은 계산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아마 황금 칠백만 달라는 될걸요?" "그러면 다른 창고와 가계에 있는 내 모든 상품들을 모두 금으로 환상하면 얼마나 될까?" "글쎄요. 아직 계산 목록을 정리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삼백만 달란트는 되겠죠."
하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품은 더이상 구입하지 말게. 그리고 즉시 이 상품들을 전부 금으로 바꾸려고 하니 알아서 처리해 주게."
에라스무스는 뭔가 말하려고 하였으나 소릴가 입에서 나오지 못하고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는 한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주춤 뒤로 물러서서 겨우 입을 열었다. 한마디 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저는 주인 어르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올해는 가장 수익이 많은 해 입니다. 모든 대리점은 지난 분기보다 훨씬 매산고가 올라가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로마 군대까지도 우리가계 단골이 되었고 예루살렘 대리점에서는 이백마리나 되는 종마를 불과 2주일만에 팔아치웠습니다.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주인 어르신. 주인님의 분부에 거역한 것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만 그지시만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피드는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에라스무스의 손을 잡았다.
"친구같이 믿음직스러운 하인이여. 그러니까 벌서 몇년이 지났나? 자네가 처음 고용되었을 때 내가 자네에게 첫번째로 한 지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겠나?"
에라스무스는 약간 얼굴을 찌푸리더니 곧 웃었다.
"예 기억하다마다요. 저는 우리 주인어르신 지시대로 우리들의 1년치 양식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지요. 그 일은 정말 즐거웠습니다요." "그때도 자네는 내가 어리석은 장사꾼이라고만 생각을 했지?" "예 분명히 그랬습니다 주인 어르신."
하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산더미같은 보물을 향하여 두팔을 크게 벌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때 자네의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시인하겠는가?" "예 주인 어르신." "그러면 이번 내 결정도 믿어주게. 나의 계획을 설명해 주지. 나는 이제 너무 늙었어. 지금 무엇이 필요하겠나? 그 행복했던 시절도 다 사라졌고 그렇게 사랑했던 나의 리샤도 내 곁을 떠나버렸지. 이제 소원이 있다면 나의 모든 재산을 이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 뿐일세. 나는 단지 생활에 불편이 없을 정도면 족해. 나의 재산을 전부 처분한 다음에 모든 대리점을 현재의 주인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필요한 법적 절차를 갖춰주기를 바라네. 그리고 지배인들에게 금 오천달란트 씩을 나누어 주게. 그들이 오랫동안 나를 위해서 충성을 다한 보상일쎄."
에라스무스는 뭔가 말하려고 했으나 하피드가 손을 들어 가로막았다.
"여보게. 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않은가?"
창고지기는 머리를 힘차게 옆으로 저으면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닙니다. 주인어르신. 다만 그 까닭을 알지 못해서요. 주인님의 말씀은 마치 임종을 앞둔 사람같군요." "에라스무스, 자네는 정말 좋은 나의 충복이야. 자네의 걱정은 하지 않고 내걱정부터 해주니 말일세. 그러나 자네도 실속을 차릴 줄 알아야지. 만일에 우리 장사가 실패했을 때 자네의 장래 문제를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사업을 해 왓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이제와서 제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하피드는 그의 다정한 친구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자네의 생각이 갸륵하군. 금 오만달란트를 즉시 자네가 가지도록 하게나.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나와 함게 있어주길 바라네. 그 약속이 지켜지면 그때 이 궁전과 창고를 모두 자네에게 물려주겠네."
늙은 창고지기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지 의아한 눈빛으로 하피드를 바라보았다.
"금 오만달란트? 금전, 거기에다 창고? 전 그만한 재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요."
하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항상 자네의 충성심을 내가 가진 최대의 재산으로 생각해 왔네. 내가 지금 주는 것은 자네의 변함없는 충성심에 비할 바가 못되지. 자네는 자신보다도 항상 우리들 모두가 어떻게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지. 그렇잖은가? 그러한 마음가짐이 자네를 으뜸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네. 자, 나의 재산 처분에 관한 계획을 서둘러 주게나. 시간이란 가장 소중한 상품이야. 내 육신의 생명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네."
에라스무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마음 속에 남은 그 약속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여태껏 형제처럼 지내왔는데도 주인 어르신께서 내게 들려주시지 않은 것이 아직도 남아있었던가요?"
하피드는 팔장을 꼈다. 그리고 미소띈 얼굴로 말했다.
"내가 아까 지신한 명령이 이행된 후에 다시만나세. 그때가 되면 내가 삼십년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중요한 나의 비밀을 알려주겠네.
제 2장 재산 분배
이렇게 해서 에라스무스는 주인 어른의 지시대로 엄청난 인원의 대상을 이끌고 엄중한 경호 속에 다마스커스를 출발했다. 금과 대리점 소유권 인계소를 하피드의대리점으로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요파에 있는 오베드 대리점으로부터 테트라의 로이엘 대리점에 이으기까지 열명의 대리점 지배인들에게는 하피드가 은퇴한다는 소식과 함께 하피드의 선물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지배인들은 놀라서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선물을 받았다. 마침내 아람의 맨 끄트머리에 있는 안티파트리스 대리점에서 이 긴 대상의 행렬은 끝났다. 물론 에라스무스의 임무도 함께 끝났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가장 거대했던 상업왕국은 종말을 고한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슬펐다. 그는 이제 창고는 텅텅 비었고 대리점마다 나부끼던 하피드이 자랑스러운 깃발이 사라졌다고 주인어른께 전했다. 주인은 즉시 기둥 으로 둘러싸인 우물 옆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하피드는 하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다 끝났겠지?" "분부대로 했습니다. 주인 어르신." "슬퍼하지 말게나 친구. 그럼 나를 따라오게나."
에라스무스는 하피드의 뒤를 따라서 대리석 계단을 오라갔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고요히 울릴 뿐이었다. 그들은 커다란 감귤 나무가 서있다. 화분 앞에서 걸음을 잠깐 멈추고는 햇살을 받아 화분의 유리가 흰 색에서 연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피드의 주름진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두 늙은이는 궁전 지붕으로 통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항상 무장한 채 계단 밑에 서서 지키고 있던 경비병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계단 끝까지 올라간 그들은 잠시 발을 멈췄다. 왜냐하면 그곳까지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두번째 계단에 올라선 후 하피드는 허리춤에서 조그마한 열쇠를 꺼냈다. 그는 커다란 참남 문을 열고 몸으로 문을 밀쳤다.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열렀다. 에라스무스는 주인이 안에서 부를 때까지 밖에서 머뭇거리다가 방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 방은 지난 30년 동안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 방이었다. 뽀오얀 먼지가 창틈으로 스며들었다. 에라스무스는 어둠 속에서 눈이 밝아질때까지 하피드의 팔을 꽉 붙잡고 있었다. 하피드는 얼굴에 시종 엷은 미소를 띈 채 에라스부스가 천천히 방 안을 둘러 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는 한줄기 햇살을 받고 있는 편백 나무 상자가 하나 놓여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했는가 에라스무스?"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인 어르신?" "이 방에 아무런 가구도 없어 놀랐겠지? 틀림없이 이 속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많이 궁금해 했을거야. 이 방을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엄중하게 경비를 했으니까 분명히 귀중한 보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자네도 몹시 이상하게생각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에라스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 여기 이 탑 속에 무엇을 감추어 두었을까 하고 몇년동안 말도 많았고 사람들의 끊임없는 화제가 되었었지요." "알아. 나도 대부분은 듣고 있었네. 다이아몬드가 있을 것이다. 혹은 금괴, 혹은 야생동물들, 또는 진귀한 새가 있을 거라는 둥.. 페르시아 양탄자 장사꾼 한사람은 내가 아마 아름다운 후궁을 여기에 감추어 두었을 거라고 넌즈시 물어 온 적도 있었지. 내 마누라 리샤는 첩을 숨겨두었지 않느냐고 나에게 따지기도 했고, 자 보는 바와 같이 조그마한 상자 밖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이제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게나."
두 사람은 상자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하피드는 상자를 감고있는 가죽끈을 조심 스럽게 풀기 시작하였다. `하피드는 나무상자에서 나오는 향기를 들이마시고나서 이윽고 뚜껑을 열었다. 상자뚜껑이 사뿐이 열렸다. 허리를 구부리고 주인의 어깨 너머로 상자에 들어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쳐다보던 에라스무스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상자 안에는 단지 두루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낡은 두루마리가..
하피드는 상자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한장의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고는 그 두루마리를 가슴에 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요한 긴장감이 그의 얼굴에 깔리면서 주름투성이인 그 얼굴이 마침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이 방 안 가득히 다이아몬드가 쌓여있다 하여도 지금 자네가 보는 이 보잘 것 없는 나무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보다는 못할 걸세. 나의 성공과 행복, 마음에 위안을 준 재산은 모두 이 두루마리 속에 들어있다네. 나는 이 두루마리에게 어떻게 감사를 들려야할지 모르겠어. 이것을 나에게 주신 분은 물론이고.. "
하피드이 음성이 떨렸다. 에라스무스는 하피드의 어조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물었다.
"이것이 전에 말씀하신 비밀이십니까요? 이 상자가 주인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그 약속과도 관련이 있습니까요?" "맞았어. 관련이 있다네."
에라스무스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면서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주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이아몬드 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구요? 도대체 이 속에 무엇이 적혀 있길래더 가치가 있다는 겁니까?" "이들 중 한장의 두루마리만 빼고는 모두가 읽는 사람이 쉽사리 그 뜻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독특한 형태로 씌어져 있는데 하나같이 부를 얻는 방법과 진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네. 상업에 대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두루마리의 비결을 배우고 실천해야만 하는거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씌여진 원칙을 터득한 사람이라면 그가 원하는 만큼 재산을 모울 수 있다네."
에라스무스는 실망했다는 듯이 그 낡은 두루마리를 쳐다보았다.
"주인 어르신만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원하기만 한다면 나보다도 더 큰 부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네." "이들 중 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이 씌여져 있다고 하셨지요? 그럼 그 나머지 한장에는 무엇이 적혀있는 건가요?" "사실은 자네가 말하는 바로 그것을 맨 처음에 읽어야하는 걸쎄. 두루마리가 모두 긴요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첫번째 것부터 읽어야하는 걸세. 그리고 첫 두루마리에는 역사상 몇 안되는 현자들의 비결이 씌어져 있다네. 사실 그 첫 번 째의 것이 다른 것들에 적혀있는 것들의 내용을 깨닫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지." "아무나 읽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요?" "암 그렇고말고. 그 모든 원칙을 하나하나 이해해서 그것이 그 사람 성격에 일부가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습관으로 나타나도록 주의하여 열심히 읽는다면 이해하다 뿐인가?"
에라스무스는 상자속에서 두루마리 한장을 꺼냈다. 그리고 정중하게 손으로 받쳐들고 하피드는 향하여 펴들었다.
"주인 어르신, 황송한 말씀을 한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주인님께선 왜 그렇게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사람들에게 그 원칙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다른 면에서는 그렇게도 너그러우신 주인 어르신께서 왜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그 원칙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좋은 방법을 알았다면 적어도 훨씬 더 많은 매상고가 올랐을 것입니다요. 왜 여지껏 혼자서만 알고 계셨는지요?"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네. 몇십년 전 내가 그분에게서 이것을 물려받았을 때 그 비밀을 어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했거든. 왜 그랬는지 그 이유만은 지금도 모르겠네. 다만 이 두루마리에 적힌 원칙들을 나의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언젠가 내가 젊었을 때 그랬든 이것들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이셨어. 어떤 정표를 통해서 내가 두루마리를 넘겨주어야 할 사람을 알아보게 될 거라고 말씀 하시더군. 그 당사자가 자기가 두루마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말일세. 그리고 그동안 나는 여기에 적혀잇는 그 모든 비결을 적용해 왔다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내게 주신 분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부가 되어있었던걸세. 자, 에라스무스, 이제 그동안 나의 행동이 왜 그렇게 이상하고 괴이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걸세. 나의 행동과 결단은 항상 이 두루마리에서 나온거라네. 많은 보물도 결코나의 지혜로서 얻은 것은 아니네. 오로지 나는 두루마리의 지시대로 충실히따랐을 것이라네." "그럼 주인 어르신께선 누군가 이것을 물려받을 사람이 나타나리라고 아직도 믿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하피드는 정중하게 두루마리를 집어넣고는 상자 뚜껑을 닫았다.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 말했다.
"에라스무스, 그날까지 나와 함께 있어주게나."
에라스무스는 창문으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을 방으면서 주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이 주인에게서 중대한 명령이라고 받은 듯이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탑 밖으로 나갔다. 하피드는 가죽 끈으로 조심스럽게 상자를 쌌다. 그리고나서 좁은 탑에서 나와 옥상에 올라섰다. 옥상은 커다란 지붕들에 둘러쌓여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저 멀리 호수에서 풍기는 신선한 냄새가 늙은이의 얼굴을 뒤덮었다. 다마스커의 저택들이 내려다 보이는 지붕 위에 올라서자 훈훈한 미소와 함께 문득 지난날 파란만장했던 시절의 일들이 뇌리 속에서 되살아 났다. 그는 곧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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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물박사 도우미
"연탄 보일러는 이 연통이 중요해요, 할머니, 잘 묶어 고정 시키지 않으면 낭패보기 십상이라니까요," "그려, 그려, 어서하고 들어와서 이 단감이나 한 조각 드시구랴."
감을 깎던 박숙자 할머니는 비록 한평 반이 채 못 되는 집이지만 '이제야 사람 사는 모양이 갖춰진 것 같다'며 입가에 웃음을 며금는다. 유순녀(50세)씨가 가정도우미로 활동한 지 어느새 2년이 넘어서고 있다. 그간 돌봐 온 독거노인만 해도 스무 명 가까이 되고 친척이 없어 자신이 직접 장례를 치러낸 적도 세 번이나 있다. 그가 날마다 찾아가 돌보는 관내 독거노인은 대부분이 관절염, 신경통, 내과질환 등을 앓고 있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 모시는 일이 유씨의 주된 임무 중 하나다. 하지만 유씨는 병원에 가는 일 말고도 부피가 큰 빨래를 집에 가져와 하거나 김치를 담가다 주는 일, 집안 청소 등 필요한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 보통 여자들이 할 수 없는 일까지 너끈히 해 내니 할머니, 할어버지들은 유씨를 척척박사, 만물박사로 부른다. 이밖에도 유씨는 할머니에게 뜻밖의 사고가 생길 것을 대비해 집집마다 알림장을 만들었다. 이 알림장에는 할머니의 평소 습관이나 지병, 주의사항이 세세히 적혀 있고 유씨의 연락처를 비롯해 먼 친척의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유씨의 마음엔 늘 한 가지 계획이 있다. 바로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니들이 편안히 여생을 즐길 수 있는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집을 지어 이들과 함께 사록 싶은데 그러자면 제가 복권에라도 당첨돼야겠지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이 없는 좋은 세상을 꿈꾸며 한껏 부풀어 오른다.
행동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中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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