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성이 풀리다
본뜻 : 직성이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 보는 별을 말하는데, 그 종류에는 9가지가 있다 제웅직성, 토직성, 수직성, 금직성, 일직성, 화직성, 계도직성, 월직성, 목직성의 아홉 별이 차례로 도는데, 남자는 열 살에 제웅직성이 들기 시작하여 차례로 돌고, 여자는열한 살에 목직성이 들기 시작한다. 민간 습속에서는 이 직성의 변화에 따라 운명의 길흉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흉한 직성의 때가 끝나고 길한 직성이 찾아오면 운수가 잘 풀려 만사가 뜻대로 잘 된다고 믿었다.
바뀐 뜻 : 소원이나 욕망 따위가 제 뜻대로 이루어져 마음이 흡족하고 편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보기글" -할 말을 다 하고 나니 이제 좀 직성이 풀리는가? -배고프다 그랬으니 직성이 풀리도록 먹어 보거라
진이 빠지다
본뜻 : 식물의 줄기나 나무 껍질 등에서 분비되는 끈끈한 물질을 진이라고 한다. 진이 다 빠져나가면 식물이나 나무는 말라서 죽게 된다. 그러므로 진이 빠진다는 것은 곧 거의 죽을 정도로 기력이나 힘이 없다는 뜻이다.
바뀐 뜻 : 어떤 일에 지쳤거나 맥을 못 출 정도로 기운이 빠진 상태, 싫증이 나거나 실망해서, 혹은 지쳐서 더 이상 일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보기글" -그 일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더니 진이 빠지더라 -밀고 당기기를 그렇게 오래 하면 상대방이 진이 빠지지 않겠니?
짬이 나다
본뜻 : 물건과 물건 사이에 틈이 생긴 것을 말한다.
바뀐 뜻 : 한 가지 일을 마치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사이를 가리킨다. 원래는 물건 사이에 벌어진 틈을 이르던 말이 바쁜 일 사이에 낼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보기글" -야, 너 오전에 잠깐 짬 좀 낼 수 있냐? 아주 급한 일이라 그래 -시골에 계신 어머님 뵈러 한 번 다녀와야 할텐데 도대체 짬이 나야 말이지
개불알꽃
풀꽃이름 가운데서 사람들이 그런 풀이 정말 있을까 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것으로 ‘개불알꽃’이 있다. 이름은 거칠지만, 실제 모습은 붉은 보랏빛 예쁜 야생란이다. 개불알꽃은 꽃 모양이 마치 음낭처럼 생긴 데서 유래하는데, 사람 것에다 붙이기는 그렇고, 아마 가장 친숙한 개를 들먹인 것 같다. 주머니같이 생긴 것은 마찬가지니, 좀 점잖게 ‘복주머니난’이라고 부르자는 학자도 있지만, 민중에서 일컫는 이름은 역시 개불알꽃이다.
개불알꽃은 풀 전체에서 지린내가 나서 ‘요강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양과 냄새를 두루 고려한 본보기가 될 만한 이름이다. 경상도에서는 ‘까마귀오줌통’이라고도 부른다.
영어 이름은 ‘아가씨 슬리퍼’(lady’s slipper), ‘모카신 꽃’(moccasin flower), 별명은 ‘노아의 방주’(Noah’s ark)인데, 우리는 불알로 인지한 것을 서양에서는 신발 또는 최소한의 물건을 넣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개불알풀’도 있는데, 이는 ‘개불알꽃’과는 전혀 다르다. 봄소식을 전해주는 까치와 같다고 하여 ‘봄까치꽃’으로도 부르는, 푸른 보라색을 띤 어여쁜 야생화다. 개불알풀은 꽃 모양이 아닌, 열매 모양이 개 불알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고, 한자말로는 ‘땅비단’(地錦)이다.
입에 담기 민망할지라도 인지한 그대로를 용기있게 ‘개불알’로 표현한 것은 ‘복주머니’보다 ‘땅비단’보다 훨씬 담백한 느낌을 준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개불알꽃]
[개불알풀]
한뫼-노고산
우리나라 땅이름에 ‘할미’가 들어간 것이 비교적 많이 발견된다. 할미는 한자로 표기하면 ‘노고’(老姑)가 된다. 이러한 땅이름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덧붙어 있다. 예를 들어 지리산 노고단은 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의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런데 ‘노고산’은 충남 공주, 경북 성주를 비롯하여 거의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더욱이 ‘노고’의 토박이말인 ‘할미봉’이나 ‘할미산’을 합친다면, 할머니와 관련된 땅이름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할미’가 들어간 땅이름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나 할머니는 모계사회에서 여성을 중시하여 붙은 이름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할미’는 반드시 산에 붙은 땅이름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할미’의 ‘미’는 산의 토박이말인 ‘뫼’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곧 ‘할미’의 ‘할’은 ‘크다’의 뜻을 갖는 ‘한’이었으며, ‘미’는 ‘뫼’였다. ‘큰산’을 뜻하는 ‘한뫼’는 ‘할뫼’, 또는 ‘할미’로 불리었으며, 이 ‘할미’라는 낱말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이 덧붙게 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할미봉이나 할미산이 생겨나면, 이와 대응되는 할아비봉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양양 서면의 할아비봉은 할미봉 맞은편에 있다. 할미와 할아비의 정겨운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중앙아시아 언어들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인도 북서쪽 너머 펼쳐진 고산지대에서 초원지대에 이르는 드넓은 땅이 중앙아시아다. 이곳에는 ‘스탄’이라 이름붙은 나라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타지키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스탄’은 땅을 뜻하는 말이라는데, 그 어원은 분명치 않다. 이들 나라의 말겨레를 살펴보자.
먼저 파키스탄에는 인도말겨레에 드는 우르드말이 공식어이며, 그 밖에 펀자브말을 비롯한 여러 말이 함께 쓰인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말은 이란말겨레에 딸린다. 타지키스탄에는 타지크말이, 아프가니스탄에는 파슈토말이 주로 쓰인다. 파슈토말의 글자는 아랍글자에서 나왔으며, 타지크말은 1940년부터 러시아말처럼 키릴글자로 적는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말은 알타이말겨레 가운데서도 튀르크말겨레에 든다. 튀르크말겨레의 대표적인 말은 터키말인데, 투르크멘말은 특히 터키말에 가깝다. 물론 카자흐말·우즈베크말·키르기스말 모두 터키말과 아주 비슷하다. 이들 말은 옛날에는 아랍글자를 빌려 쓰다가 1920년대에 로마글자로 바꾸었으나 이들 나라가 모두 옛소련에 속했던 까닭에 1940년에 들어서부터 키릴글자로 바꾸었다. 이들 말들은 우리말과 말차례가 같고 씨끝도 발달하였으며, 갖가지 문법 현상들도 매우 비슷하다. 우리말 계통이 알타이말겨레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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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 한승원
나만의 글쓰기 비법
5교시 비유, 글쓴이의 느낌을 그대로 나타내라
- 비유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생생한 글을 만든다.
1. 배 타고 강 건너가기
여러분들은 매일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곤한다. 만약 여러분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드넓은 강을 건너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무작정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볼 것인가? 그랬다가는 학교가는건 고사하고 물에빠져죽기에 꼭 알맞다. 그럴때는 강 너머로 안전한게 건너갈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야 한다. 배나 뗏목같은 것 말이다. 아니면 다리라도 놓아야 한다. 이 때 강을 건너는데에 사용하는 배나 뗏목, 다리 같은 것이 문장에서의 비유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비유란 주제(학교)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장치이다.
"어머니, 어머니, 굉장해요! 정말정말 굉장해요!" 하고 창길이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감격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가 굉장하다는 말이냐? 차근차근 말해봐라." 어머니는 여느 때 덜렁대는 버릇이 있는 창길이를 꾸짓으며 말씀하셨다. "정말이야 무지무지 굉장하다구요!" 하지만 창길이는 여전히 흥분된 목소리로 외쳐댔다.
위의 글을 쓴 사람은 자기의 글에 비유를 동원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감격어린', '굉장해', '정말정말', '무지무지하게' 이런말들로는 그 글을 쓴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턱대고 물 속에 뛰어든 다음,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겠다는 사람과 똑같이 어리석은 것이다. 앞의 글에서 '창길이는 현관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감격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고 하는 부분을 함께 고쳐보도록 하자.
창길이는 현관안으로 들어서면서, 난생처음 쌍무지개를 보고 돌아온 소년처럼 상기되어 소리쳤다.
이렇게 비유를 해 놓고 보니까, 어머니 앞에서 감격적으로 말하고 있는 창길이의 모습이 요술처럼 강한 영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이번에는 다음의 글들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1) 진짜로 무더운 날씨였다. 할아버지께서 "아이고, 그 날씨 한번 무지무지하게 덥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도 "굉장히 덥구나" 하셨고, 형도 "아이고 더워서 그냥 미치고 환장하겠네 하였다." 잠시 후에는 어머니께서도 "나, 이렇게 더운날씨는 생전 처음보겠네 휴우 덥다"하고 말씀하셨다. (2) 섭씨 40도가 넘는 한증막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3)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마당에는 하얀 불볕이 쏟아졌다. 밖에 나갔던 바둑이가 혀를 길레 빼늘이고 헐떡 거리며 들어와 담벽 그늘에 주저 앉았다. 돌담벽에 기어올라가는 호박덩굴의 입사귀들이 바둑이의 혀처럼 늘어져 있었다. 담벽에 둘러선 감나무에 매달린 잎사귀 하나 움직거리지 않았다. 선풍기를 틀고 얼굴을 그 앞에 들이밀어 보지만 그 바람마저 후끈거렸다. 등줄기에는 벌레가 기어가는 것 처럼 땀방울이 스멀스멀 기어 내렸다.
(1)은 비유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의 글이므로, 공연히 엄살과 허풍만 떨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2)는 단 한마디의 비유를 통해서 그 무더움의 정도를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매우 차분하고 여유가 있다. (3)은 무더위를 아주 차근차근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작가가 설명을 하려 애쓰지 않고 그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 주어(형상화시켜) 읽는이가 저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속의 무더위는 읽는이의 가슴마저도 답답하게 할 만큼 절실하다.
2. 나의 느낌을 읽는이에게 그대로
우리는 다름 사람의 마음속에 나의 인상을 뚜렷이 심어주고 싶을 때,옷차림을 돋보이게 하든가 액서사리를 하든가 해서 시선을 끌려고 한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읽는이에게 나의 감정이나 기분을 보다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갖가지 비유들을 사용한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읽는이의 가슴에 고스란히 옮겨주고 싶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비유의 글을 쓰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비유가 잘 드러나 있는 글을 한 편 소개할까 한다.
(4) 우리 집 현관 앞 마당에는 붉은 모란나무가 세 그루 있다. 나무의 키가 내 가슴께에 이르는데, 그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현관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길을 늘 비좁게 한다. 여름철에 비가 올 때면 그 잎들은 물을 품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흩뿌리곤 해서, 나는 그 가지들을 끈으로 묶어 뒤쪽으로 잡아당겨 놓곤 한다. 몇 해 전에 이미 나이가 많은 것을 사다가 심어두었기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해마다 5월 초순쯤이면 벌어지곤 하는 진홍에 보랏빛이 섞인 모란 이삼십 송이씩을 볼 수 있다. 그 꽃송이들이 하루쯤의 시차를 두고 모두 벌어질때면 온 집안이 불을 밝힌 듯 훤해 진다. 그때마다 그 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웃음과 가슴 두근거리는 환희의 말들을 가볍게 내지르곤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식구들은 마당 가득히 모란이 피는 여름철이면 내내 넉넉해 지고 또 들뜨게 된다. 모란나무에 사슴뿔처럼 생긴 갈색 움이 트는 것은 4월 초순이다. 나는 이 때쯤이면 이미 5월에 피어날 꽃송이들의 수를 알아차린다. 모란의 살색 움은 처음부터 꽃송이의 모양새를 갖추고 나오므로, 이때부터 나는 날마다 그것들의 수를 헤아리며, 찬란한 5월의 대기 속에서 흐드러지게 벌어질 꽃송이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면서 그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지난 4월에 나는 모란나무가 틔운 음을 보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갈색 움 속에서 솟아올라야 할 꽃송이 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세 그루의 나무 가운데 오직 하나의 가지만 꽃 모양새를 갖춘 움을 밀어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만에야 나는 '아차, 그렇구나'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는 모란나무들이 너무 무성하여 귀찮다는 생각을 한 나머지, 지난해 늦은 가을 잎사귀들이 다 떨어졌을 때 모란나무 가지들의 가운데 부분을 모두 끊어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다음해에 나오는 새 움들은 별일 없이 꽃들을 만들어 내리라는 생각을 하며.
(5) 꽃 모양새를 갖춘 움을 밀어 올린 그 가지는 다른 가지들에 비해 길이가 짧은 까닭으로 유일하게 잘려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미련한 사람인가, 모란나무가 늦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면서 다음해에 피울 꽃을 미리 준비해 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나는, 이 글을 쓴 사람은 (4)에서 모란나무의 가지를 자른 일화 하나를 그저 담담하게 말하고 난 뒤, (5)에서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주제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자기의 편의에 따라 자연의 순리를 무너뜨려 놓고는 자연에게서 거저 얻으려고만 하는 인간의 심리를 경계하고 있다. 그러한 주제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글쓴이는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3. 비유가 돋보이는 글
이번에는 '이성친구의 모순성' 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독자의 글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성친구란 무엇일까. 사전에도 나오지 않은 이 별 것 아닌 존재는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한 번도 사귀어 보지 못한 나조차도 말이다. 남녀간의 강한 본능일까. 남자만 보면 좋아지고 여자만 보면 부끄러워지는., 하느님께서 주신 하나의 혜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녀가 만나서 하나의 결실을 맺고...... 그런 위험한 일들, 왜 이리도 하고 싶은지 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중학교라는 곳에 와 보니까 더욱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다. 가정책에 노오란 별표를 몇 개씩 쳐 놓은 곳엔 '사춘기의 이성교제는 성관계나 건전하지 못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어야 한다.' 라는 것...... 나도 모르게 웃음을 토했다. 길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좋아하는 중.고등학생, 남의 눈은 의식하지도 않은채 길거리에서 진한 포옹을 나누는 나의 선배들...... 그들이 왠지 미워 보인다. 그들이 왠지 나빠보인다. 난 이런 교과서에서 나올 듯한 딱딱한 모순만을 가지다 이렇게 용기없는 사람이 된 것일까, 내가 그들을 이토록 미워하는 건 아마 내가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성친구란 결코 나쁜것만은 아니다. 난 물론 서로를 존중하고......뭐 이런말은 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시기가 너무 빨랐을 뿐...... 어른이 아니기 때문...... 이 말 말고는 달리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다. 마음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남녀의 이성 교제는 위험한 모험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 그리고 그것은 다음 세대에게도 적용될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마음의 성숙'이란 표현은 재미있는 비유이다. 우리들의 몸이 성숙해 가는 것은 쉽게 눈에 보인다. 사춘기 시절의 남성과 여성은 한 해가 다르게 키가 크고 어른스럽게 변해 간다. 여성은 살갗이 하얘지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머릿결이 고와진다. 또 남성은 수염이 나고 변성기가 되면서 가슴이 떡 벌어진다. 그런데 마음의 성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리광을 부리지 않게 되어가는 것,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자제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부러움 없는 박수를 보낼 줄 알게 되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의 성숙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결실', '교과서에 나올듯한'과 같은 표현도 모두 비유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결실'이란 말은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내린 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처럼, 남녀도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열매로 서로 아이를 낳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교과서에나 나올 듯한' 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실제로 교과서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읽는 이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이 글을 함께 다듬어 보도록 하자.
이성친구란 무엇일까.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이 별스럽지 않은 이성간의 사귐이란 말은 지금 우리의 가슴속에 매우 버거운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남자 친구를 한 번도 사귀어 보지 못한 나조차도 이성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하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남녀 모두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일까. 여성은 훤칠하고 씩식한 남자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지고, 남성은 얼굴이 예쁜 여자만 보면 접근해 보고 싶어지는 심리, 그것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주신 하나의 혜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소유하고 그런 다음 하나의 결실을 맺는 것....., 그런 것들은 우리처럼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학생들에게는 아직 엄두도 낼 수 없는 위험스런 일들이다. 그렇다는 것을 아고 있으면서도 남성과 여성은 왜 이다지도 서로의 신비한 세계를 알고 싶어지는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니까, 가까운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 친구 문제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옷차림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머리모양을 예쁘게 만들려 하고, 의젓하게 행동하려 하고. 이성친구를 의식해서 호들갑스럽게 소리쳐 웃기도 하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가정책에 노오란 별표를 몇 개씩이나 쳐 놓은 곳엔, '사춘기의 이성교제는 성관계나 건전하지 못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어야 한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곤 한다. 길거리에서 이성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다니는 중.고등학생들, 남의 눈을 의식하지도 않은채 아무데서나 진한 포옹을 나누는 선배 오빠 언니들...... 나는 왠지 그들이 미워 보인다. 어쩐지 부도덕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마저도 이성 친구에게 관시이 많은 것이 사실이면서도 그들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오히려 모순된 것일까. 아니면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듯한 케케묵은 생각을 가지고 살다 보니 진짜로 용기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걸까. 아니, 내가 글들을 이토록 미워하고 부도덕하게 보는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질투와 시기심이 생겨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자라면 이성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은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이성친구와 사귀는 것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 집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는 그분들의 금슬 좋은 삶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 아닌가, 하늘이 있으니 바다가 있고, 산이 있으니 강물이 있듯이, 나는 물론 이성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아직 중학생인 우리로서는 더 깊은 것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우리가 이성친구 문제에 신경을 쓰기에는 지금 시기가 너무 이르다. 어른이 될 때까지 당분간 보류해 놓고 지금은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 마음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 있는 우리 사춘기 시절의 이성 교제는 위험한 모험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이말은 다음 세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4. 맺음말
이럿듯 비유는 나타내려고 하는 대상이나 내용을, 읽는이가 알기 쉬운 다른 대상이나 내용에 빗대어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청잣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릿듯이 곱고 연못 창포앞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 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기인 담을 끼고 외따른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은 무지개처럼 핀다.
풀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혼닢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이 모양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솟는다.
오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노천명의 <푸른오월>
이 시는 시인의 자유분방한 상상을 상징적 수법으로 포착한 시이다. 화창한 초여름날 산책을 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슬픔을 느낀다. 화사한 오월의 아름다움이 시인의 초라함과 대비되면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던 어린 날이 그리워 지는 것이다. 시인을 서러움으로 물들인 그 화사한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시인은 '오월'을 '여왕'에 빗댐으로써 계절중에서 오월이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오월은 무한히 아름답다고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그 느낌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비유의 참맛이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린는 글을 쓸 때, 여러 가지 비유를 동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 강나루 건너서/밀밭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를 감상해 보고, 대표적으로 쓰인 비유법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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