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발린 소리
본뜻 : 입에만 발라져 있는 소리라는 뜻으로 진짜 마음속에는 없는 소리라는 말이다.
바뀐 뜻 : 마음에도 없는 말을 겉치레로 하는 것을 뜻한다. 거침없이 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가진 '입바른 소리'와는 다르다.
"보기글" -그 입에 발린 소리 좀 그만해라 -그 사람은 어째 그렇게 속 들여다 보이게 입에 발린 소리를 잘 한데?
입추의 여지가 없다
본뜻 : 송곳조차 세울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는 뜻이다.
바뀐 뜻 :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차서 발 들여놓을 데도 없이 매우 비좁음을 이르는 말이다. 바꿔 쓸 수 있는 말로는 '발디딜 틈이 없다'가 있다.
"보기글" -극장 안은 관람 인파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전동차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자웅을 겨루다
본뜻 : 흔히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는 자웅이 본래는 밤과 낮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자웅은 역에서 나온 말로서, 자는 밤을 나타내고 웅은 낮을 나타내는 말이다. 낮과 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 비유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바뀐 뜻 : 막상막하의 비등한 힘을 가진 상대끼리 승부를 겨루는 것을 가리킨다.
"보기글" -월드컵 본선에서 이탈리아와 브라질이 자웅을 겨루었다 -어학에서 자웅을 겨루던 박 군과 이 군이 졸업 후에는 어찌 되었나 모르겠네
깍지다리
‘깍지다리’는 보통 의자에 앉아서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포개어 앉은 자세를 일컫는다.“
최창락이 의자에 깍지다리를 하고 앉아 권연(=궐련)을 피우고 있었다.”(장편소설, <청년전위> 1)
남녘에서는 이 자세를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 혹은 ‘다리를 포개고 앉은 자세’로 표현한다. 한 낱말로는 ‘꼰다리’, ‘포갠다리’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손가락을 깍지 낀 것처럼 다리를 깍지 끼었다고 보아서 ‘깍지다리’라고 표현하는 것도 괜찮겠다.
‘깍지’는 ‘활을 쏠 때 손가락에 끼는 기구’다. ‘깍지(를) 끼다’는 ‘깍지를 손가락에 끼다’와 ‘손가락을 엇갈리게 맞잡다’의 두 가지 의미로 쓰이다가 ‘손가락을 엇갈리게 맞잡다’는 의미가 일반화되었다. ‘깍지(를) 끼다’를 북녘에서는 ‘깍지다’로도 쓴다.
“씨름판에서 동수는 학철의 뒤잔등을 량팔로 걷어안자 두손을 깍지고서는 힘껏 그러안으며 안걸이를 써서 넘어뜨렸다.”
앉은 자세를 이르는 말은 주로 ‘다리’로 끝난다. ‘평다리’는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자세’다. ‘엄마다리, 누나다리’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두 다리를 한쪽으로 가지런히 포개어 비스듬히 앉은 자세’다. ‘책상다리’는 ‘양반다리, 아빠다리’와 같은 뜻으로 ‘앉은뱅이책상’을 쓸 때 주로 하는 자세여서 붙은 이름이다. 일부 남쪽 국어사전에서는 ‘깍짓다리’로 올렸다. 북녘에서는 책상다리를 ‘올방자’라고 한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말꽃과 삶꽃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나타난 말이다. ‘문학’은 본디 ‘글의 학문’이라는 한자말이지만, 우리는 ‘글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문학’을 쓰지 않는다.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문학’이라 부른다. 놀이·노래·이야기 같은 것은 ‘말의 예술’인데, ‘글의 학문’인 문학이라 불러도 좋은가? 말의 예술은 입말의 예술, 글말의 예술, 전자말의 예술을 모두 싸잡아야 하는데, ‘글말만’을 뜻하는 문학이라 해도 좋은가? 이런 두 가지 물음에 하나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 두 가지 물음을 거뜬히 풀어줄 마땅한 말을 찾아야 했고, 드디어 ‘말꽃’이 나타났다. ‘말로써 피워낸 꽃’이니 ‘말의 예술’에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말꽃은 새말이지만 이미 이야기꽃, 웃음꽃 같이 정다운 말들이 형제처럼 곁에 있어서 외롭지 않다.
‘삶꽃’은 요즘 새로 ‘예술’을 뜻하는 토박이말로 나타났다. ‘예술’ 역시 한자말인데 두 한자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우리가 뜻으로 담아서 주고받는 바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만들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그게 무슨 뜻을 지닌 낱말인지 알지 못하고 쓴다. 예술이라는 낱말에 담아서 주고받는 뜻은 ‘온갖 사람이 갖가지 삶에서 겪고 맛보고 느끼는 바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노릇’이다. 이런 뜻을 간추리면 ‘삶으로 피워낸 꽃’이라 할 수 있으므로 ‘삶꽃’이면 아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마니산과 머리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거서간’이었다. ‘거서간’의 ‘간’은 ‘건길지’의 ‘건’과 마찬가지로 임금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신라 제2대 임금인 남해는 ‘차차웅’이었으며, 3대 임금인 유리부터는 ‘니사금’(임금)이라 불렸다. 이러한 왕의 칭호가 눌지에 이르러서는 ‘마립간’이라 불린다.
‘마립간’을 두고 “김대문이 말하기를 방언의 말뚝(궐)이요, 궐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설치하는데, 왕의 궐은 중심에 배열하고, 신하의 궐은 아래에 배열한다”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마립간’이 ‘말뚝’과 관련된다는 김대문의 주장은 토박이말 ‘머리’와 한자의 ‘말뚝’을 연상한 표현일 뿐이다. 왜냐하면 ‘마립간’의 ‘마립’은 ‘머리’를 뜻하는 토박이말인 까닭이다.
강화도 ‘마니산’은 본래 ‘마리산’이었다. ‘마리’는 머리를 뜻하는 토박이말로, 모음조화가 철저하게 지켜졌던 시대의 표기다. 이 말은 ‘마루’, ‘머리’로 소리가 조금 바뀐다. 한자 ‘宗’을 ‘마루 종’이라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리’의 음이 땅이름에서 ‘마라’나 ‘마이’ 또는 ‘마니’로 변한 경우는 진안의 ‘마이산’, 제주의 ‘마라도’가 있다. 비록 ‘마이산’(馬耳山)이나 ‘마라도’(滅島)에 들어 있는 한자의 뜻에 따라 ‘말의 귀를 닮은 산’이나 ‘파도에 갈리는 섬’처럼 풀이하기도 하나 두루 주변보다 두드러진 산과 섬이라고 할 수 있으니 ‘머리’에 해당한다. 현지 사람들이나 땅이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마니산 아닌 마리산으로 부르자는 움직임도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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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 한승원
나만의 글쓰기 비법
제3교시 읽는이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야 한다.
숫자를 셈하는 수학과 감정을 드러내는 문학의 차이.
1. 나만 아는 이야기
어느 여름날 한밤중이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다급히 누르면서 문을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시인 ㄱ씨는 깜짝놀라 맨발로 달려 나갔다. 찾아온 사람은 그의 친구 ㄴ씨였는데, 술에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친구 ㄴ씨는 ㄱ시인과 함게 문학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인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ㄴ씨는 자기의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성 문인들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 ㄴ씨는 자기가 써온 시를 주머니에서 써냈다.
"야, 이사람 꾼, 내가 오늘 내 일생 일대 최고의 아름다운 시를 써 가지고 왔네, 한번 읽어보고 자네가 관여하고 있는 잡지에 추천좀 해주게." 하고 말했다. "머리에 털이 돋은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진한 감격과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감격과 감동을 손톱만큼도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이 시 속에다 담았다네, 아마, 보나마나 자네도 깜짝 놀랄 거야." 친구 ㄴ씨는 그 시를 쓸 수 있게 한 그 감격과 감동을 새삼 되새기면서 "아아, 하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시인 ㄱ씨는 잔뜩 기대를 하면서 ㄴ씨가 건네줌 시를 읽어 보았다.
오오, 나의 사랑, 나의 기쁨 오 나의 이 감격 이 감동을 누구에게 다 말할까 하늘이 알까 땅이 알까, 오호 나의 사랑이여 나에게 이 감격과 아름다운 감동을 준 그대여
그 시에는 정말로 감격과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듯 감탄사가 줄줄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시인 ㄱ씨는 친구의 가슴속에 넘쳐 흘렀다는 그 감격과 감동을 눈곱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ㄱ씨는 정말로 난감했다. 솔직하게 말을 하면 ㄴ씨가 크게 실망할 테니까. 그렇지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시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네" 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ㄴ씨가 자신이 직접 느낀 감격과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감탄사들을 연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는 왜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엇을까? 그것은 그 감격과 감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느낌이 어떠한 것이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쓴이가 말하려고 하는 생각의 덩어리(주제)가 읽는 사람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런 경울르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누가 들어도 배꼽을 잡고 까르르 넘어갈 만한 우스운 이야기 하나를 내가 알고 있다고 치자. 그 이야기를 해 주겠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는, "아이고, 나 이렇게 웃기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야아, 아이고, 내 배꼽 달아난다. 아하하하하......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래 이렇게 웃어 본 일은 정말로 처음이다. 아하하하하하...... 야 너희들 우습지 않냐 우습지 우습지 하하하하하......" 하고 깔깔 거리고 웃었다. 친구들은 과연 나를 따라 웃을까? 친구들은 "야, 참,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네"하고 투덜거릴 것이 뻔하다. 이런 실수는 글쓰기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2.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글
4월 봄이다. 학교에 가서 수업하기에는 마치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제 곧 떠날 소풍만 생각하면 힘이 부쩍 솟는다. 선생님 말씀이 귀에 절로 들어온다. 이와 같이 나에게는 소풍을 기다리는 것이 인생의 한가지 낙이다. 내 인생 15년 지금까지 소풍을 수없이 갔다가 왔다. 또 이러는 과정에서 소풍가는 장소에 대하여 많은 감정이 생겼다. 놀이공원, 고궁, 산성...... 많은 장소 가운데서 가고 싶은 장소가 있고, 그럭저럭 놀다 오는 장소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소풍가는장소 가운데서 어디가 제일 좋은가 라고 물어보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간 경복궁과 중학교 2학년때 간 드림랜드에 갔다온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경복궁은, 그냥 도착해 가지고 고궁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다음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다가 온게 전부이다. ㄱ) 드림랜드에 갔을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같이 노는 것이라도 느낌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경복궁은 재미없고 드림랜드만 재미 있다는 것은 아니다. 고궁은 나에게 있어서 공부가 되므로 거의 ㄴ) 90퍼센트 이상 재미 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것과 경복궁에서 노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렇듯 소풍도 각 장소마다 재미가 다르다. 소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옛날 누군가가 말했다. 소풍은 학생을 위한 거라고.
이 글에는 글을 쓴 사람 혼자서만 알 수 있을 뿐, 읽는 사람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석이 밑줄친 ㄱ)'드림랜드에 갔을 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같이 노는 것 이라도 느낌이 달랐다' 와 같은 말이다. 경복궁에 소풍갔을때와 드림랜드에 갔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글 쓴 사람 혼자만이 아는 일이다.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 가 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령, 이런식으로 말이다.
드림랜드에 갔을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금세라도 말을 탄 왕자님이 달려나올 것 같은 궁전, 거대한 강물 같은 하늘의 은하수 위를 달리는 공중 철도, 그뿐만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가 살던 초가집, 도깨비 불이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동굴, 간이 오그라붙을 듯 아찔하게 공중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내내 어릴적 읽은 동화 게계속을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다.
3. 수학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표현
글을 쓸 때,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수학적인 표현과 문학적인 표현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밑줄친 ㄴ)에서 처럼 '90퍼센트 이상 재미있었다' 든지 '100퍼센트 훌륭했다.' 든지 하는 표현은 쓰지 않는게 좋다. 그런 표현에 유의하면서 다음이야기를 읽어 보도록 하자.
어느 학교에 말주변이 무척 없는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그 학교에서는 운동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날 아침에는 으레 운동회를 즐겁고 안전하게 치르기 위한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아, 아' 하고 마이크 시험을 마친 뒤, 이야기의 서두를 꺼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서......"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말을 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앞산 잔등 위로 구름 한 장이 떠올랐다. 당황한 교장 선생님은 자기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즉시 그 구름장을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고쳐 말했다.
"저기, 저 구름 한 장이 떠 있기는 합니다만, ......참으로 맑고 푸르른 하늘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이렇게 막 말하고 났을 때.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서 있던 학생들이 서쪽 하늘을 손가락질 하면서 수근거렸다. 교장 선생님은 눈잎이 아찔했다. 이번에는 서쪽 하늘에 구름이 석장이나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당황한 교장 선생님은 다시 그 구름장을 가리키며 자기의 말을 수정하였다.
"저 서쪽 하늘에 또 구름 석장이 떠오고 있기는 합니다만, ......어떻습니까 그래도 참으로 맑고 푸른 하늘이기는 합니다." 운동장에 서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관중석에 모여 있는 학부모 들은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얼굴이 새빨개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웃었을까 하늘에 구름이 한두장 또는 너댓장 떠 있다고 해서 맑고 푸른 하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것을 기어이 수학적으로 따지려 하다 보니 그런 우스꽝 스런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다음 글을 한번 보도록 하자.
우리학교 운동장 가에는 느티나무가 열다섯 그루 서 있는데, 그 수천개나 되는 가지들에서 바야흐로 새싹 수만개가 트고 있다. 또 그 옆에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눍운 벚나무들과 스물아홉 그루의 진달래 나무들은 꽃이 떨어진 뒤 녹색의 잎사귀들 수십만개를 피워 내고 있다.
이런 표현은 어떨까 만일 이런 식으로 남산의 숲을 표현해야 한다면 어떡할까? 그 산에 서 있는 수없이 많은 나무들의 수를 모두 다 헤아려 보아야 할까 우리 느낌이나 생각은 이렇게 수학적으로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 그러면 앞에 인용했던 글을, 앞에서 이야기한 부분에 주의하면서 함께 고쳐보도록 하자.
4월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교정에 피어난 붉고 노란 꽃들을 보면 봄이 왔음을 절로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새 학년 새 학기 공부가 시작된 지도어느덧 두 달 째 이다. 하지만 아직 새 학년의 공부에 적응이 잘 되질 않아서 일까 후업이 마치 전쟁을 치르기 위한 준비인 듯 무섭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예습도 해야 하고, 복습도 해야 하고, 거기다 영어.수학 과외 수업까지...... 그렇지만 이제 머지않아 있을 소풍을 생각하면 힘이 부쩍 솟는다. 답답한 학교 교정안에서 하는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야외로 나가 한바탕 뛰어 놀 수 있다니 생각만해도 신이 난다. 그럴 때만은 선생님의 말씀이 절로 귀에 들어오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해마다 두 번 씩 가는 소풍은 학교 공부에 찌든 나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인 셈이다. 소풍 날짜를 헤아리며 기다리는 동안, 내 삶은 알 수 없는 기대로 한없이 설레고 들뜨게 된다. 내가 살아온 15년의 세월동안, 나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해서 꽤 여러번 소풍을 다녀온 셈이다. 그런만큼 소풍 장소도 여러 곳이다. 각기 특색이 있는 그 여러 장소들에 대해 많은 추억과 느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놀이공원, 고궁, 산성...... 그 많은 장소들 가운데는 , 우리들이 반드시 가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될 장소가 있고, 그럭저럭 즐겁게 뛰어 놀다가 오면 되는 장소 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곳이 소풍 장소로서 가장 적당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초등학교 4학년때 다녀온 경복궁과 중학교 2학년때 다녀온 드림랜드를 권하겠다. 경복궁은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서 속속들이 둘러보아야 할 고궁이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한 바퀴 휘둘러본 다음, 잔디 밭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즐겁게 뛰어놀다가 온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조선 시대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의 예스러운 분위기가 아직도 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곳은 나의 마음 속에 우리 민족의 오랜 뿌리를 소리 없이 심어 주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드림랜드에 갔을 때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꿈이 깃들어 있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를 구하러 가기 위해 금세라도 말을 탄 왕자님이 달려나올 것 같은 궁전, 거대한 강줄기처럼 하늘의 은하수 위를 내닫는 공중 철도,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무꾼과 선녀가 살던 초가집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는 무시무시한 동굴, 간이 오그라 붙을 듯 아찔아찔하게 공중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등 눈길 닿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드림랜드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내내 어릴적 읽은 동화 세계속을 헤엄쳐 다니는 기분이었다. 경복궁에서 노는 것과 드림랜드에서 노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렇듯 소풍은 가는 장소에 따라서 얻고 느끼는 맛과 재미가 각기 다르다. 학교 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바람을 쐬러가되, 그 특이한 소풍장소가 말없이 가르쳐 주는 것을 가슴에 빨아들이고 온다면 꿩먹고 알먹기가 아닐까.소풍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답답한 학교 공부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 풋풋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이 고마운 소풍을 이번 기회에는 더욱 잘 이용하도록 해야겠다.
생각해 봅시다.
1. 우리는 흔히 자신의 가슴속으로 밀려든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어 감탄사를 연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와 닿지 않는게 사실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설명해 보자.
2. 숫자를 정확하게 세고 셈해야 하는 수학과 자신의 감정을 글로써 솔직하게 그려 내 보이는 문학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그것을 혼동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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