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장이 무너지다
본뜻 : 억장은 본래 억장지성의 줄임 말로 성의 높이가 억 장이 될 정도로 퍽 높이 쌓은 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은 억 장이나 되는 높은 성이 무너질 정도의 엄청난 일을 말한다.
바뀐 뜻 : 그 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 몹시 허무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어렵게 유학을 보낸 아들이 학교에서 제적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춘천 댁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병들어 누워 계신 아버지를 앞에 두고 유산을 분배해 달라는 자식들의 말에 천안 댁은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맛봐야 했다
억지 춘향
본뜻 : 고대 소설(춘향전)에서 변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구스르고 얼르다가 끝내는 핍박까지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바뀐 뜻 : 안되는 일을 억지로 우겨서 겨우겨우 이루어지게끔 만든 일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보기글" -그렇게 억지 춘향으로 붙들어 앉혀 봤자 금방 다시 도망갈텐데 -일은 하고 싶은 사람을 시켜야 하는 법이야 그 일에 맞지도 않는 사람을 억지 춘향으로 시켜 봐야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다구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본뜻 : 뒤웅박이란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만 도려내어 속을 파낸 바가지를 말하는데, 부잣집에서는 뒤웅박에 쌀을 담아 두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아 둔다. 그러므로 뒤웅박이 어떤 집에서 쓰이느냐에 따라 뒤웅박의 쓰임새가 달라진다는 데서 연유했다.
바뀐 뜻 : 여자 팔자는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보기글"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더니 그 말이 천안 댁에게 딱 맞는 말이지 뭐야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은 오늘날과 같은 여권 신장의 시대엔 걸맞지 않는 말이지
형제자매
한 사회에서 널리 쓰여 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낱말들을 기초어휘라 한다. 기초어휘에서 대표적인 것이 친족을 부르는 말이다. 그 가운데 형제자매를 일컫는 말을 몇 갈래로 나눠 살펴보자.
말레이말에서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형제자매를 일컫는 말은 sudara 하나뿐이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남·여에 따라 brother와 sister로 나뉜다. 나이는 상관없다. 물론 나이의 아래 위를 나타낼 때는 앞에 elder나 younger와 같은 수식어를 붙인다. 그런데 헝가리말은 영어처럼 남녀라는 성별도 기준이 되고, 여기에다 자기보다 손위인지 손아래인지가 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헝가리말는 손위 남자, 손아래 남자, 손위 여자, 손아래 여자 넷으로 나뉘어 있어, 각각 baya(형), ocs(제), nene(자), hug(매)라 한다.
우리말은 어떤가? 헝가리말보다 한 가지 기준이 더 있다. 자기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하는 기준이 더 있다. 따라서 헝거리말에서 손위 남자를 가리키는 baya를 우리말에서는 자기가 남자면 ‘형’이라 하고, 자기가 여자면 ‘오빠’라 한다. 마찬가지로 헝거리말에서 손위 여자를 가리키는 nene를 우리말에서는 자기가 남자면 ‘누나’라 하고, 자기가 여자면 ‘언니’라 한다. 다만, 우리말에서는 손아래 사람은 묶어서 동생이라 하고 앞말을 붙여 남동생, 여동생(누이동생)으로 표현하는데, 헝거리말에서는 동생도 남녀를 구분한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자욱길
늦여름 윗대 어른들 뫼터 벌초를 할 때 사람 발길이 드문 산길을 오르다 보면 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적잖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웃자란 풀이 길을 가려 버린 까닭이다. 이런 길이 ‘자욱길’이다.
“나뭇군의 자욱길을 좇아서 산을 타고 골을 넘어 나가다가 나중에 길을 잃고서 헤매는 중에 해가 저물었다.”(홍명희, <임꺽정>)
자욱은 ‘발자국’의 ‘자국’과 같은 말이다. 자욱길은 표준어 규정을 따른다면 ‘자국길’이라 할 수 있겠다. 발자욱과 발자국은 근대 국어에서 모두 쓰이던 말인데, 1957년 발행된 한글학회 <큰사전>에서 ‘자욱, 발자욱’을 비표준어로 처리한 뒤, 지금은 남과 북의 차이로 벌어졌다. ‘자욱, 발자욱’을 남녘에서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지만, 북녘에서는 ‘자국, 발자국’의 동의어로 인정하고 있다.
북녘에서 ‘자욱, 발자욱’을 수용한 것은 아마도 현실적으로 많이 쓰인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남녘에서도 ‘발자욱’은 현실에서 ‘발자국’과 함께 쓰이고 있다. 이 점에서 ‘자욱’과 ‘발자욱’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욱, 자국과 관련이 있는 낱말로 ‘자국걸음, 자국눈, 자국물, 자욱포수’ 등이 있다. 자국걸음은 ‘조심스럽게 디디는 걸음’, 자국눈은 ‘발자국이 겨우 생길 만큼 조금 내린 눈’, 자국물은 ‘발자국에 괸 물’이나 ‘아주 적은 물’, 자욱포수는 ‘동물의 발자국을 잘 쫓는 포수’를 일컫는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뽑다와 캐다
‘뽑다’는 박힌 것을 잡아당겨서 빼내는 노릇이다. 여기서 ‘박힌 것’이란 온갖 풀이나 나무, 갖가지 남새나 곡식, 짐승이나 사람의 이빨 같이 자연이 박은 것을 비롯해서 못이나 말뚝 같이 사람이 박은 것까지 싸잡아 뜻한다. 이제는 뜻 넓이가 더욱 번져나가 몸속에서 피를 뽑고 거미 꽁무니에서 줄을 뽑고 노래 한 가락을 뽑고 나쁜 버릇을 뽑듯이 속에 있는 것을 나오게 한다는 뜻, 반장이나 대표를 뽑듯이 골라잡는다는 뜻, 장사에서 밑천을 뽑듯이 거둬들인다는 뜻까지 넓혀서 쓴다.
‘뽑다’를 본디 제 뜻, 곧 푸나무와 남새와 곡식 같이 땅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빼낸다는 뜻으로 쓸 적에는 비슷한 낱말이 여럿 있다. ‘캐다·속다·찌다·매다’가 그런 낱말이다. ‘캐다’는 쓸모가 있으나 흔하게 널려 있지 않은 것을 찾고 가려서 빼내는 것이다. 맨손이 아니라 칼이나 호미나 괭이 같은 연모의 도움을 받아서 빼내는 노릇이다. ‘속다’는 남새나 곡식이나 과일 같이 사람이 씨앗을 뿌리고 심어 일부러 키우는 것에서 잘못 자란 것을 빼내는 것이다. 잘난 것을 끝까지 더욱 잘 키우려고 못난 것을 가려서 빼내 버리는 노릇이다. ‘찌다’는 씨앗을 모판에 뿌려 키우다가 알맞게 자라면 옮겨 심어야 하는 남새나 곡식의 모종을 옮겨 심으려고 빼내는 것이다. ‘매다’는 남새나 과일이나 곡식을 키우는 논밭에 자라나서 남새나 곡식이나 과일을 못살게 구는 풀, 곧 김을 빼내는 것이다. ‘찌다’는 행여 다칠세라 정성을 다하고 ‘매다’는 살아날까봐 걱정을 다하면서 빼낸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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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 한승원
나만의 글쓰기 비법
딱딱한 이론을 앞세우지 않은 글쓰기 강의
글을 쓰는 데에는 왕도가 없다. 이것은, 글이란 것은 반드시 이러 이러한 방법으로 써야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뜻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이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내가 소설가에 뜻을 두고 글쓰기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에 참고했던 글쓰기 공부에 관한 몇 가지 책들은 한결같이 딱딱한 이론을 앞세우는 것들뿐이었다. 나는 열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문학병이 들었고, 그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그 어느 누구의 강의나 저서를 통해서도 글쓰기의 비법다운 비법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지금 나의 문장쓰기, 구성하기, 글 속에 주제담기 비법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된 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글쓰기 공부 강의는 나의 그러한 많은 시행착오의 일화와 그것을 통해 얻어진 나만의 비법을 후배들에게 전해주려는 것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준 <문학사상사> 여러분에게, 이 책을 위해 여라가지로 도와준 제자 박창희에게 깊이 감사한다.
제1교시 - 자기만이 쓸 수 있는 글이란 어떤 것인가, 생명이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1. 엿장수 이야기
옛날에 장사하는 수법이 탁월하여 돈을 많이 번 엿장수 한 사람이 있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까 하고 궁리하던 한 청년이 그 엿장수를 찾아갔다.
"저에게 장사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청년이 그 엿장수에게 간곡히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엿판을 하나 만들어 짊어지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장사하는 법을 배우시오."
청년은 그 엿장수가 시키는 대로했다. 탁월한 엿장수가 엿판을 짊어진 채 앞장서 가고, 청년은 제자가 되어 뒤를 따랐다. 앞장을 선 스승 엿장수는 가위질 소리를 멋들어지게 내고, 엉덩이춤에다 어깨춤까지 추면서, "둘이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 사시요오" 하고 노랫가락을 섞어 가며 외쳤다. 뒤따라가는 제자 엿장수는 그 소리를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목구멍 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앞장서 가는 스승 엿장수가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조금 전에 스승 엿장수가 소리친 말을 열심히 따라 외웠다. 한데 앞장선 스승 엿장수가, "첫사랑의 맛같이 새콤달콤한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 사시요오" 하고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는 또 그말을 열심히 외웠다. 그러자 스승 엿장수는 또 말을 바꾸었다. "장가 못 간 총각은 장가가게 하고, 시집 못 간 처녀는 시집가게 하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그러고는 제자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또다시 조금 전에 스승이 한 말을 머릿 속에 외워 담았다. 그런데 스승 엿장수는 곯리기라도 하듯이 또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시어머니가 이 엿을 먹으면 주름살이 펴지고, 며느리가 먹으면 나온 입이 들어가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사시요오" 그 때까지 제자 엿장수는 한마디도 외치지를 못했다. 스승 엿장수가 제자 엿장수를 향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얼른 따라 외쳐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그 재촉에 못이겨, 앞장선 스승 엿장수가 소리를 지른 다음에 기껏, "내 것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다니는 스승 엿장수의 엿은 사는데, 뒤따라 다니며 "내것도" 하고 외치는 제자 엿장수의 엿은 사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 엿장수는 사람들이 왜 자기의 엿을 사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덨다. 그는 슬픈 목소리로, 스승이 외친 다음에 곧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내 것도오"
이 세상에는 그 스승과 같은 엿장수가 한 사람만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은 필요하지 않다. 제자 엿장수는스승 엿장수를 따라서 "내것도오" 하고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말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기의 호박엿을 먹어보고 또 먹어 본 다음에 그것의 맛과 향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혼자서만 외칠 수 있는 독특한 말(상업적인 기술 혹은 상업적인 구호)을 연구해 내야 한다. 그것을 연구하려고 자기의 호박엿을 맛보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자. 자기의 혓바닥마저도 달크무레한 그 호박엿물을 따라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리려 할 만큼, 그맛이 달고 구수하고 새콤하게 느껴 졌다. 그리고 그것을 삼키고 나자 뱃속이 개운해 지고, 머릿 속이 환해 지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얼굴 살결 또한 희어지는 것 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 말을 외치면 디는 것이다.
"혓바닥까지 넘어가는 훌륭한 호박엿이요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인 아들 딸한테 먹이면 지능지수가 높아지고, 중학생인 아들 딸들판테 먹이면 국어, 수학, 영어 시험에 모두모도 백점만 맞게 되는 호박엿이요오 고등학생인 아들딸한테 먹이면 대학에 누워서 들어가게 되는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처녀가 먹으면 피부가 고와지고 총각들이 먹으면 힘이 세어지는 호박엿이요오" 제자 엿장수가 이렇게 자식들의 교육문제와 피부미용에 대한 소리를 곁들어 외친다면, 기껏 사랑놀음의 말만 앞세우고 외치는 스승 엿장수 보다 훨씬 많은 엿을 팔 수 있지 않을까?
2.누가 써도 마찬가지인 글
글을쓸 때, 우리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첫째, 누가써도 마찬가지인 글을 써서는 안된다.
(1) 까마귀과에 속한는 종으로, 우리나라의 외딴 섬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이다. 몸길이는 약 45센티미터이며, 암수의 깃털은 동일하다. 머리, 등, 가슴, 꽁지는 광택 있는 검은색이며 배는 흰색이다. 날개의 일부분은 흰색이며 나머지 부분은 진한 청록색이고, 부리와 다리는 검은색이다. 주로 시골, 인가 주변, 들판, 야산 도시의 공원 등에서 무리를 지어 산다. 둥우리는 소나무, 아카시아, 밤나무, 미루나무, 버드나무 가지위에 짓고, 여섯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개구리, 곤충, 보리, 쌀, 콩 등을 먹는다.
(2) 남아메리카 원산지인 식물로 우리나라에 오래 전에 들어와 전국의 산과 들에 자라고 있는 바늘꽃과의 두해살이 풀이다. 높이는 50-90센티미터쯤 자라고, 굵고 곧은 뿌리가 나는데 한 개 혹은 여러개의 대가 곧게 자란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사방으로 둥글게 퍼지며, 줄기에서 나온 잎은 끝이 뾰족한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7월과 9월 사이에 노란 꽃이 피고, 잎 겨드랑이에 한 개씩 달린다. 저녁 때에 노란색으로 피었다가 아침에 햇빛이 비치면 곧 시드는데, 약간 붉은 빛이 돈다. 꽃받침은 네 개로 두 개씩 함쳐지며, 꽃이 피면 뒤로 젖혀진다.
(3)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남한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은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나라이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립니다. 대한 민국은 면적이 좁으며 사람들이 많이 살아 인구밀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춘하추동이 뚜렷합니다. 봄은 따듯하고 온갖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납니다. 여름은 매우 덥고, 8월은 1년중 가장 더운 달입니다.
(4) 우리나라의 국기는 태극기로, 태극은 우주 만물의 근원을 나타내는데, 네 귀에는 건(하늘), 곤(땅), 감(물), 이(불)를 나타내는 검은색의 네 괴가 있다. 우리나라 꽃은 무궁화 이며, 국가는 안익태님께서지으신 애국가이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의 70퍼센트가 산지 인데, 대부분 복쪽과 동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이 낮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 사이에 있어 계절풍기후를 이룬다. 겨울에는 삼한 사온 현상이 아타나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위애 든 보기 (1)은 '까치'에 관한 글의 일부이고, (2)는 '달맞이꽃'에 대한 글의 한 대목인데, 백과사전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3)과 (4)는 ;우리나라'라는 제목의 글로서, 독자들이 보내온 글 중에서 두편을 골라 앞부분을 인용했다. 이 글들은 모두 누가 써도 마찬가지인 내용의 글이다. 내용과 문투가 이미 어떤 생각의 틀 속에 들어가 있는 상식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주어진 어떤 제목을 앞에 놓고, 그 제목이 주는 고정 관념에 얽매이게 되면 이렇게 백과사전 투의 상식적인 글을 쓰게 되니, 이런 글을 '기술하는 문장의 글' 이라고 말하는데, 아무리 매끄럽게 다듬고 수식어들을 동원하여 치장을 하고 엄살을 피우더라도 절대로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읽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곧 생명이 없는, 죽은 글이라는 뜻이다.
3. 살아 있는 글
우리들은 각기 얼굴이 다르고, 혈액형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다. 눈과 귀의 모양새와 코의 생김새와 손바닥에 있는 손금도 다르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버릇도 다르다. 그것은 성질이 각기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글 또한 다르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생명이 있는 글이고,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일까?
(5) 사실 나는 우리 나라에 대해 늘 부정적인 시각만 가지고 있었다. 세계 지도에서 겨울 찾을 수 있을만큼 작은 영토, 30여 년 간의 식민지였던 역사, 선진국 대열에도 끼지 못하고, 미국의 놀잇감 같은 줏대없는 나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시각은 이렇게 부정적이었다. 그러던 중에 신선한 충격을 준 글을 어느 신문에서 읽게 되었다.
(6) 저는 우리 나라의 제일 큰 문제가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외할아버지 때문입니다. 가끔씩 명절 때 찾아뵈면 낮에는 안그러시다가 밤이 되면, "아버지, 어머니"하며 우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보아 왔으니, 이젠 참 불쌍하게 보입니다. 할아버지 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으시겠어요, 할아버지께서는 6.25전쟁, 그 난리통에 북에서 혼자 남으로 내려 오셔서 이 곳에서 지금의 외할머니와 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위에 보기로 든 (5)와 (6)의 글은, 위의 (3)과 (4)처럼 '우리 나라'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이 써 보낸 글의 첫 대목들이다. 하지만 앞의 글과는 달리, (5)와 (6)은 그 글을 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글을 쓴 사람의 숨결이 들어있고, 글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아픔이 배어 있다.. 죽어가는 글이 아니고 살아있는 글이다. 그래서 읽는 이에세 진한 감동돠 여운을 남겨 준다.
(5)와 (6)의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왜 그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든지 지금 자기가 살고있는 삶보다 훨씬 나은 삶을 건설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글도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긍정적으로 쓰지 않으면 안된다. 글을 긍정적으로 쓴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낙관적으로 본다는 걸 의미한다. 이처럼 글을 씅 때는 이 세상을 살가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보고,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는 쪽으로 논리를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
(7) 곧 21세기 이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우리 젊은이, 소위 신세대 들이다. 젊은이 들이여, 21세기를 위하여 더욱 노력하자.
이것은 (5)의 글의 결론이다. 이 글을 보면 앞에서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 보기로 든 (5)와 (6)의 글은 독자들이 보내 온 것들 가운데서 개성이 가장 뚜렷한 글들이다. 그렇지만 문장이 아주 잘 쓰여진 글은 아니다. 그 문장 쓰기에 대한 것은 다음 장에서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어떤 것이 좋은 문장인지, 그러한 문장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자, 그러면 끝으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 즉 그 나름의 독특함을 잘 살려내고 있는 글 한편을 감상해 보고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우리 동네는 장터 바로 윗동네였다. 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정도였지만, 나는 우리집 앞에 장이 서지 않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터에 사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했고, 그 아이들과 사귀려고 애를 썼다. 장터는 이웃 마을에 비해 크지는 않았지만 포목전, 잡화전, 고무신 가게, 주막, 석유집, 양조장, 푸줏간이 고루 있었고, 무싯날에도 밤늦도록 전짓불이 휘황했다. 산골이지만 바로 우리 마을 뒷산에 일찍 광산이 개발되어 있어, 이미 오래전에 전기도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밤중에 담배 심부름을 시켜도 싫다 하지 않았다. 담뱃집 옆집이 술집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광부들의 구성진 유행가 소리가 밤늦도록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잠들었던 내 동무애들까지 깨어 일어나 눈을 비비며 구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학교도 논길로 가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장터로 빙 돌아가는 s길로 다녔다. 장터의 가겟집이며 술집들은 언제보아도 새롭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또 그 집들은 종종 주인이 바뀌기도 했는데, 새 주인에 대한 여러 소문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언제나 충분한 것들이었다. 장날이면 나는 전날 저녁부터 들떳다. 길에 나가 용당재를 넘어서 오는 장 트럭들과 장꾼들의 자전거를 세었는데, 전장(지난번장)에 비해 늘었으면 신이 났지만, 줄었으면 크게 실망을 했다. 어쩌다 구경 가 본 이웃 장에 비해 우리 고장 장의 규모가 작은 것이 도무지 속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장날에는 다른 날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장은 언제나 아직 서기 전이었고, 장바닥은 말끔히 쓸렸는데도 장꾼들은 공연히 해장군집에서 늑장을 부리곤 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장이 서는 것을 보려는 꿈은 허사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니 교실에 들어가 앉아도 좀이 쑤셔 제대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장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나 하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는 떼를 지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바햐흐로 장이 어우러져 있는 참이었다. 싸구려를 외치는 소리가 높고 여기저기서 술 취한 장꾼들의 싸움질도 곧잘 벌어졌다. 우리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수는 책장수였다. 그는 파수거리(장날 임시로 물건을 벌여놓고 파는 거리)로 와서 학교앞 종대 옆에 책전을 벌였는데, 이야기책과유행가책 사이에 몇권씩 아이들 책이 끼여 있고는 했다. 대개 아이들은 사지도 않으면서 뒤적거리기만 했다. 그래도 마음씨 착한 책장수는 탓 한번 하지 않았다. 책을 사는 아이라도 있으면 그 아이는 그 날의 영웅이 되는 편이었는데, 내가 그 영웅이 되는 날이 가장 많았다. 나는 어려서만 장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커서도 장을 좋아했으며, 장날이면 들떠서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 장날은 꽤 오랫동안 내게는 유일한 즐거움이요 위안이었던 셈이다.
- 신경림의 (길, 장터, 강) 중에서
생각해 봅시다.
1. "엿장수 이야기'에서 장사 비결을 배우려고 찾아온 청년이 끝끝내 엿을 팔지 못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글쓰기에 빗대어 설명해 보자.
2. 생명이 없는 글은 아무리 온갖 수식어를 갖다가 치장해도 읽는 이에게 감동을 안겨 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생명이 없는 글을 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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