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에 관한 일곱 가지 이론 - 레즐리 스티븐스
제5장 마르크스 : 공산주의 혁명
제1장 및 제2장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가운데, 필자는 이미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사상들과 그 사상들에 대한 몇 가지 반론들을 대충 검토하였다. 이 장에서 필자는 마르크스의 생애와 저서를 소개한 뒤, 그의 역사 이론, 인간론, 그리고 인간의 잘못에 대한 진단과 그 처방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행함으로써 좀더 깊이 들어가려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와 관련되어 뒤따르게 되는 다양한 여러 이론들을 규정한다든가, 논의한다든가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필자는 칼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할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몇몇 저서를 공동으로 집필하였지만, 엥겔스의 공헌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임에 틀림없다.)
생애와 저서
칼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린네란트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로테스탄트로 교육받았지만 곧 종교를 포기하였다. 그는 일찍 지적 능력을 나타냈고, 1836년에는 법학부의 학생으로서 베를린 대학에 입학했다. 그 당시 독일의 지적 흐름의 주류는 헤겔 철학으로, 마르크스는 곧 헤겔의 사상을 읽고 검토하는 데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그는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완전히 철학에만 몰두하였다. 헤겔의 저서에서 주된 사상은 역사 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헤겔은 각 문화나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 개개의 시대는 그 전 시대에서 그 다음 시대로 이어지는 발전의 한 단계로서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헤겔에 의하면 이러한 발전은 근본적으로 지적 혹은 정신적인 법칙에 의해서 진행된다. 한 문화 혹은 국가는 그 자체가 일종의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발전은 그 자체의 성격에 의하여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인격화를 더한층 확대시켜 전세계에 대하여 그것을 적용시켰다. 그는 전세계를 그가 말하는 바 "절대자" 혹은 세계 자아 혹은 신(이것은 물론 신에 대한 기독교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범신론적이다)과 동일시했고, 전체 인간 역사를 이 절대 정신의 "자기실현"의 과정으로써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은 전역사의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정신적 발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식의 주체가 자신과 다른, 혹은 자신과 갈등 관계에 있는 객체와 맞서야 하는 상태인, 이른바 헤겔이 일컬었던 "소의"의 극복이, 자기실현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이와 같은 대립은 절대 정신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가운데 지양되어 지게 된다.
헤겔의 추종자들은 그의 이론이 정치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에 따라서 두 진영으로 나뉘어졌다. "우파" 헤겔주의자들은 역사의 발전 과정은 자동적으로 가능한 한 최선의 결과에로 이끌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프러시아 국가를, 지금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이상적인 국가의 최고봉으로서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보수적인 정치 견해를 주장했고, 헤겔의 사상에 있어서 종교적 요소들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좌파" 혹은 "진보파" 헤겔주의자들은,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아니하였다든가, 당시의 국가들은 이상에서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다든가, 구질서를 바꾸어 역사의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도우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급진적인 정치 견해를 표명하였고, 신을 인간과 동일시하려 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무실론적 견해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지적인 방향을 가진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의 하나가 포이에르바하로서 그의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책은 1841년에 출판되었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은 모든 것을 전도시켰으며, 신은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전적으로 실현시키기는커녕 사실상 종교의 이념은 유일한 현실인 이 세계의 창백한 반영으로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간들은 현실적인 생활 속에서 불만족하거나 혹은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환각적인 상상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이란 단지 "비교적인 심리학"으로서, 진리라기보다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적 감정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교란 소외의 표현이라는 것인데 그 소외로부터 인간은, 이 세계 속에서 그들의 순수한 인간적 운명을 실현함으로써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포이에르바하는 휴머니스트 사상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형성기에 있어서의 지적 분위기였다. 포이에르바하의 글을 읽고 나서 마르크스는 그를 사로잡았던 헤겔의 마력을 깨뜨려 버렸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서는, 헤겔의 저서 속에 나타나 있는 인간의 본질과 사회에 대한 진리가 일종의 도치된 형식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앞으로 보겠지만, 역사적 발전과 소외에 대한 개념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1842~3년에 헤겔의 '법철학 강요'에 대한 비판을 썼고, 동시에 '라인 신문'이라는 정치와 경제에 관한 진보적인 신문의 편집인이 되었다. 이 신문은 프러시아 정부에 의해서 탄압을 받게 되어, 마르크스는 1843년에 파리로 이주했다. 다음 두 해 동안 거기에서 그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또 다른 커다란 지적 영향을 받았고, 그 자신의 독특한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광범위한 독서는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드와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생 시몽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프루동, 바쿠닌, 그리고 엥겔스(이것이 엥겔스와 그의 일생에 걸치는 우정과 협력의 시작이었다) 등과 같은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 사상가들을 만났다. 1845년에 그는 파리에서 추방되어 브뤼셀로 옮겨갔다.
파리와 브뤼셀에 있을 동안, 마르크스는 그의 이른바 "유물 사관"을 확립했다. 포이에르바하가 제시한 대로 헤겔의 관점을 뒤바꿈으로써, 마르크스는 역사 변화의 추진력을, 그 성격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 인간의 관념 속이 아니라 그리고 분명히 어떤 종류의 국가적 혹은 우주적 인격 속이 아니라, 인간 생활의 경제적 조건 속에 모든 역사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놓여 있음을 보았다. 소외는 형이상학적인 것도 종교적인 것도 아니라, 실제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노동은 노동자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외적인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즉 생산품을 사유 재산으로서 소유하는 자본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다. 소외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1844년 파리에서 쓰여졌으나 영어로 번역된 것은 1950년대에 와서야 일반에게 읽힐 수가 있게 되었다. 그의 유물 사관은 이 기간의 다른 저서들__1845년의 '신성 가족', 1846년의 '도이치 이데올로기'(엥겔스와의 공저), 그리고 1847년의 '철학의 빈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뤼셀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의 실제 조직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일은 그의 나머지 생애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행하는 일의 주요 목적을 (1845년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논문'에서 말했듯이) "단지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변혁시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자본주의로 하여금 공산주의에로 발전하게 하는 혁명을 향해서 움직여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__마르크스는 이 노동자 계급이, 곧 닥칠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__를 교육하고 조직하고자 했다. 그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목표에 대한 결정적인 선언문을 쓰도록 위임받고, 엥겔스와 함께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을 작성하였으며, 1848년 초반에 그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해 곧바로 뒤('선언'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몇몇 주요 유럽 국가에서 실패로 끝난 혁명이 일어났다. 그 혁명의 실패 후 마르크스는 벨기에와 프랑스와 독일에서 추방당하게 되었고, 1849년 런던에 망명한 뒤 여생을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가끔 있는 간행물에의 기고나 엥겔스의 도움으로 살면서 가난을 견디어 나갔다. 그는 대영 박물관에서 매일 연구하기 시작했고 국제 공산주의 운동 조직을 계속했다. 1857__8년에 그는 '강요:Grundrisse'라고 불리우는, 역사와 사회에 관한 그의 전체 이론의 계획을 스케치하는 또 하나의 시리즈를 썼다. (그런데 1973년에 되어서야 영어로 번역된 이 책의 완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859년에는 '경제학 비판'을 출판했고, 1867년에는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자본론'의 첫째 권이 나왔다. 이 마지막 두 책은 마르크스가 대영 박물관에서 연구한 노고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훨씬 더 자세한 경제적__사회적 역사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거기에는 소외와 같은 헤겔적인 철학 사상의 흔적은 눈에 덜 뛴다 해도, 마르크스는 여전히 자본주의 몰락의 필연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의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인 해석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산당 선언' 이후, 가장 잘 알려지고, 많은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의 바탕을 형성한 것은 이 후기의 저서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마르크스에게 끼쳐진 주요한 세 영향, 즉 독일 철학과 프랑스 사회주의 그리고 영국의 경제학이, 역사와 경제와 그리고 정치 이 모두를 포괄하는 이론으로 통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통합된 이론이 엥겔스가 "과학적 사회주의"로 칭하게 된 바로 그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이 역사 연구를 위한 정확한 과학적 방법을 발견했고, 그 발견을 통해서 그들 시대 사회의 현재와 미래의 발전에 관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출판된 초기의 저서들, 특히 1844년의 파리 원고는 마르크스 사상의 근원 중 많은 것이 헤겔 철학에 있었음을 보여주며, 그리고 그의 초기 사상의 보다 철학적인 본질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에는 두 가지 뚜렷한 시기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즉, 휴머니스트 혹은 실존주의자로서까지 불려지게 되는 단계와 나중에 한결 엄격한 "과학적 사실주의"로 변모하는 단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 두 단계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든가, 소외의 주제는 밖으로 노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후기의 저서에 존재하고 있다든가 - 1857~8년의 '강요'의 내용이 이를 확증하는 것같이 보인다 - 하는 주장에 많은 학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고 무리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에 대한 필자의 논의는 그의 사상이 비연속적이 아니라는 가정을 할 것이다. 이후의 페이지 참조는 펠리칸 북 '칼 마르크스:사회학 및 사회 철학 선집'에 따를 것이다. 이 책은 아마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편선한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유용한 것으로, 전기와 후기 양쪽을 다 포함하고 있다. 아메리칸 문고본에 대한 페이지 참조는 이 장의 마지막에 있다.
우주론
이제 마르크스의 주요 이론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시작하자. 그는 물론 무신론자였지만 이것이 그의 사상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가 세계 전체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특유한 점이 있다면 그의 역사 해석이다. 그는 인간 사회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했고, 자연 과학과 인간 과학을 함께 포함하는 하나의 과학이 존재할 때를 기대하였다(p.85). 마르크스는 역사적 변화의 이면에는 보편적 법칙이 있으며, 앞으로의 역사의 큰 발전은 이 법칙을 앎으로써 예언될 수 있다고 (천문학이 일월식을 예언하듯이) 주장하였다. '자본론'의 초판 서문에서, 마르크스는 그의 방법을 물리학(자)의 방법에 비유하면서 "이 저서의 궁극적 목표는 현대 사회 활동의 경제적 법칙을 밝히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자본주의 생산의 자연 법칙에 관해서, "철석같은 필연성을 안고 불가피한 결과를 향해서 작용해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각 문화에 있어서 개개의 시대는 그 자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여가에 있어서 단 하나 있을 수 있는 진정한 보편적 법칙은 반드시 한 단계에서부터 그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발전의 과정에 연관된 것이어야 한다는 데 있어서 헤겔에 동조하였다. 그는 역사를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그리고 "부르즈와적" 혹은 자본주의적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는 여러 조건들이 성숙했을 때 그 다음 단계에로 피할 수 없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p.68). 자본주의도, 이와 마찬가지로 불가피하게, 공산주의에로 발전하는 것으로 예견되었던 것이다(pp.150-1). 그러나 역사 법칙이라는 개념을 문제삼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확실히 역사는 검증될 수 있고 또 검증되어야 하는, 하나의 경험적 연구에 속한다. 그러나 이렇기 때문에 역사가 과학의 다른 주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법칙, 말하자면 무제한의 보편성을 가진 귀납적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결국 시간적으로 한정된 기간에, 한 특정한 혹성 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내용은 광범위하지만, 그것도 사건들의 한 특정한 연속이다. 우리는 이 세계의 어디에서도 똑같은 사건의 연속을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 역사는 일회적인 것이다. 그런데 사건들의 어떤 특수한 연속에도,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같이 겉보기에는 간단한 사건에서조차도, 거기에 어떠어떠한 과학적 법칙들이 연루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그 수효를 한정하여 밝힐 수는 없다. 중력과 역학의 법칙, 풍력과 나뭇가지의 탄성, 나무의 조락에 대한 법칙 등등. 만일에 사과가 떨어지는 데도 한 가지 법칙만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 역사 전체의 이면에 있는 발전의 보편적 법칙을 가정한다는 것은 더군다나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겠는가.
역사의 진행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따라서 역사 연구가 주로 하는 일이 대규모의 역사를 예언하는 것이라는 사상은 적어도 의심스러운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 이후의 인구 성장과 같은, 확실히 장기간에 걸친, 큰 규모의 흐름들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흐름은 법칙이 아니다. 즉, 그 지속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조건에 따라 지속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구가 무한정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 그 성장이 핵전쟁이나 혹은 광범위한 기근으로 갑자기 역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역사관의 또 다른 주요 특성은 이른바 유물 사관이다. 이 사관은 역사의 법칙은 그 본질에 있어 경제적이며, "물질 생활의 생산 방식이 생활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과정의 일반적 성격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p.67, pp.70, 90,111-1 등을 참조할 것). 경제적 구조가 진정한 기초로서 이 경제적 구조에 의해서 사회의 다른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경제적 요인들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과 역사 혹은 사회 과학의 진지한 연구는 이 요소들을 무시해서 안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기꺼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신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가 그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한층 수상쩍은 주장을 하고 만 것이다. 이 명제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하부 구조와 상부 구조를 가르는 선이 어디에 놓여 있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의 물질적 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p.67), 그가 말하는 이 힘은 생각컨대 토지와 광물 자원, 도구와 기계, 게다가 인간의 지식과 기술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한편 그는 경제적 구조가 "생산 관계"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생산 관계는 아마도 작업이 조직화되는 방식 (예를 들어 노동의 분업화와 어떤 직권 위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을 설명하는 데는 소유라든가 금전과 같은 개념들이 꼭 사용되어져야 하는데, 이 개념들은 마르크스가 상부 구조에다 집어 넣고 싶어하는 법률상의 개념인 것같이 보인다. 만일 하부 구조가 생산의 물질적 힘만을 포함한다면, 마르크스는 한층 용납하기 어려운 "기계적 결정론"에 빠지게 되는 셈이 된다. 그러나 하부 구조가 또한 생산 관계를 포함한다면, 하부 구조와 상부 구조 사이의 구별은 모호해지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그의 일반적 이론으로부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그의 일반적 상세한 예언을 끌어내었다. 이제 사회는 경제적으로 더욱더 불안정하게 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동시에 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부르즈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계급 투쟁은 증대할 것이며, 드디어 사회적 대혁명에 의해서 노동자는 권력을 얻고, 역사의 새로운 공산주의 단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확신에 찬 예언을 하였던 것이다.(pp.79-80, 147-52, 194, 207, 236-8). 그러나 정말 엄청난 사실은 이와 같은 일이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 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더욱 안정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생활 조건은 마르크스의 시대보다 훨씬 향상되었고, 또한 계급간의 구별도 강화되기보다는 불분명해졌다.(산업 노동자도 아니고 산업 소유자도 아닌 많은 "화이트 칼라"'정신 노동자'들 - 회사원, 공무원, 선생 등 - 을 생각해 보라.)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곳은, 1917년의 러시아 1945년의 유고슬라비아, 1949년의 중국처럼, 그 당시 자본주의 발달이 미약했거나 혹은 거의 없었던 나라였다. 이 사실이 마르크스 이론에 중요한 반증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프롤레타리아가 높은 임금을 양도받음으로써 "돈으로 무마되었다"고 말한다 해서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그들의 운명이 더욱더 비참해 질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또한 식민지가 산업 국가에 있어서의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하였다고 말하는 것도 그럴 듯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스칸디나비아 같은 몇몇 나라들은 식민지를 갖지 않고 있었으며, 그리고 심지어 식민지 자체에서도, 생활 조건들이, 별로 대수롭지는 않았지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증을 앞에 두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가 말한 그대로 고수한다면 그의 이론을, 그가 주장했던 바의 과학적 이론이기보다는 맹신, 즉 하나의 폐쇄적인 체제로 만드는 꼴이 된다.
인간론
마르크스는 아마도 청년 시절에 헤겔의 철학을 읽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순수한" 혹은 아카데믹한 철학의 문제에 흥미를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러한 철학을, 세계를 변혁하려는 불가결한 과업에 비교해 보았을 때 단지 공론에 불과한 것으로써 무시했던 것이다(p.82). 그런데 그가 유물론자로 불리울 때, 이것은 그의 유물 사관을 두고 말하는 것이지, 육체와 정신의 관계에 관한 이론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는 죽은 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종교의 환각적인 상상의 하나로서 무시하고자 했고, 개인(그 개인의 의식을 포함해서)에 대한 모든 것은 그의 생활의 물질적인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pp.69, 85). 그러나 그의 이러한 관점은 의식 그 자체가 물질적이라는 엄격한 유물론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의식 그 자체는 비물질적이지만 물질적인 것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하나의 "부대현상적(epiphenomenalist)" 관점인 것이다.
결정론의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그의 관점도 또한 모호하다. 물론 그의 일반적 관점은, 그의 경제적 단계를 통해 진행되는 역사의 필연적 발전 이론과 모든 변화를 경제적 원인으로 귀착시키는 그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결정론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기독교 내부에서의 아우구스티누스 파와 펠라기우스 파의 논쟁에서처럼, 거기에도 역시 다른 것으로 돌릴 수 없는 자유 의지라는 요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항상 그들의 독자와 청중들에게 역사가 움직여 가고 있는 방향을 인식하여 그 방향에 따라서 행동할 것을, 즉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도록 협조할 것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는 혁명을 기대하기 이전에 역사 발전의 적당한 단계를 기다릴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혁명을 일으키도록 행동할 필요를 강조하는 사람들 사이에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양자간에 궁극적인 모순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혁명은 필연적으로 이르건 늦건 간에 일어날 것이지만, 개인과 단체로서는 그 혁명의 도래를 돕고, 역사의 산파역을 행함으로써 그 산고를 덜어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론과 자유 의지를 더 이상 문제삼는 것은 아마도 쓸데없는 공론이라는 힐난을 받을 수 있으리라.
마르크스의 인간 개념에서 가장 독특한 관점은, 우리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즉 "인간의 진정한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성"(p.83)이라는 관점이다. 먹어야 할 필요성 같은 뚜렷한 몇몇 생물학적인 사실 말고는, 마르크스는 개인적인 인간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즉, 한 사회 혹은 한 시대에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심지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다른 장소 혹은 다른 시대의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행동으로, 그 행동은 어떤 형식이든 간에 그와 관련을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pp.91__2, 251)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자라고, 성교를 하고, 배설하는 방식조차도 사회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무엇보다도 모든 생산 활동에 적용되는데, 왜냐하면 생업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은 어떤 방식이든 간에 인간의 협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사회적 활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77). 이 말은 사회가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하나의 추상적인 실체라는 것이 아니라(p.91), 그 개인이 어떤 종류의 개인이며, 어떤 종류의 일을 행하고 있는가는 그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성격의 사회인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한 사회에서 본능적인 것으로 보여지는 것 - 예를 들어 여자의 어떤 역할 - 이 다른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대표적인 잠언 하나를 보자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p.67)." 현대 용어로 말하면 이 결정적인 요점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 사회학은 심리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즉, 개인에 관계되는 사실만 가지고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없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성격 역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방법론적인 논점이 마르크스의 가장 뛰어난 공헌 중의 하나이며 가장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는 사회학을 창시한 시조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방법은 물론 마르크스가 정치학과 경제학에 관해 도달한 특정한 결론에 우리가 동의하건 안 하건 간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도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규정했음 직한 보편적인 개념이 적어도 하나는 있는 것 같다. 이 개념은 인간은 활동적인, 생산적 존재로서, 생업에 필요한 도구를 생산하는 사실로 해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이다(p.69).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는 경험적인 진리가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마르크스는 또한 이 사실로부터 가치 판단을 끌어내고 있다. 즉, 인간에게 있어서 올바른 종류의 생활이란 생산 활동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소외를 산업 노동에 있어서의 성취의 결핍으로 보는 그의 진단 속에(p.177), 그리고 모든 사람이 어느 방향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자유롭게 계발할 수 있는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처방 속에도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p.253). 마르크스가 휴머니스트로 불려져 왔던 것은 그의 초기 저서 속에 드러난 이 논점 때문임이 틀림없다.
진단
인간과 사회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소외의 개념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 개념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헤겔과 포이에르바하가 사용한 개념을 이어받은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소외는 자본주의의 병폐가 무엇인가를 요약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외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의 몇 가지 병폐의 특징들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그 근본적인 병폐에 대한 가치 판단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소외 개념에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개념이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본주의의 어떤 특징을 마르크스가 비난하고 있는지를 거의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소외는 하나의 관계이다. 즉, 소외는 어떤 사람 혹은 어떤 것으로부터 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일 대상이 없이는 살인할 수 없듯이 그냥 소외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는 인간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p.177). 그러나 이 말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로부터 소외될 수 있는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 포함된 자연이라는 개념은, 주체와 이 주체와의 갈등 관계에 있는 객체 사이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헤겔적인 개념을 이어받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자연은 인간이 창조한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인간들이 그들이 창조한 대상과 사회적 관계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마땅한 인간다운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소 신비스러운 전문 용어에서 드러나는 일반적 사상은, 자본주의 사회가 몇 가지 면에 있어서 기본적인 인간의 본질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몇 가지 면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때때로 마르크스가 소외의 원인으로서 비난하고 있는 것은 사유 재산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사유 재산의 소멸이 곧 소외의 소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p.250). 그러나 그는 다른 데서는, "사유 재산이, 노동으로부터 인간이 소외되는 것의 기본 요인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유 재산은 오히려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에서 온 결과"(p.176)라고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노동자의 본질적 부분이 되지 못하며, 자신의 노동 속에서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반대로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모멸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서, 노동의 소외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일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서 그에게 강요되고, 일을 할 때면 그는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예속된다. 그가 생산해 내는 물건조차도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되기 때문에 그에게 소외적인 것이 된다(pp.177__8)는 것이다. 때때로 마르크스는 소외를, 사회 관계를 상업적인 공통 분모에로 축소시키는 교환 수단으로서의 화폐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pp.179-81). 또 다른 데서는, 분업 때문에 노동은 노동자의 창조적 행위와 적대되는 소원한 힘이 되며, 그리고 이 분업 때문에 노동자는 마음대로 노동 행위를 바꿀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같지 않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노동 행위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다.)(pp.110-11) 또 다른 글을 보면, 마르크스는 사회악의 원인이 되고, 그 악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은 국가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다(p.223).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소외의 근본적인 원인을 무엇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것인가? 화폐 제도의 폐기(물물 교환 체제로 환원?)와 노동에 있어서 모든 전문화의 소멸, 그리고 모든 재산의 국유화(칫솔과 셔츠와 책까지도?)를 진지하게 옹호할 사람이 대체 있을 수 있겠는가? 필자는 없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의 뚜렷한 특성으로 보통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산업 - 생산과 교환 수단 - 의 사유화다. 그리고 '공산당 선언'의 강령 속에 나타나 있는 주안점은 토지와 공장과, 운송 기관과 은행의 국유화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변혁이 노동의 소외 - 윗글에서 언급한 초기 저서에서 마르크스는 이 소외를 심리학적 용어로서 설명하고 있다 - 를 치료할 수 있는지 전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만일 국가가 사회악의 근본이라면, 국유화는 국가의 권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초기 저서들에서 마르크스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즉, 소외는 공동체(community)정신의 결여에 있으며, 국가는 진정한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노동이 그들이 속한 집단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고(p.226). 이러한 진단에서, 국유화가 아닌 진정한 공동체 혹은 "코뮌"으로의 분산 (여기에서야, 화폐와 전문화와 사유 재산의 폐기가 좀더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이라는 처방이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에 이 소외의 문제가 논란이 된다면, 아마도 보편적인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좀더 일반적인 진단이 마르크스의 사상 속에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 진단은 어떠한 인간이라도, 그를 경제적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가 19세기 초반의 이윤 추구에 물불을 가리지 아니한 자본주의에서 실제 일어났던 것으로, 그때 어린아이들은 불결한 조건에서 장시간 일하다가 비참한 생활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죽곤 했다. 기업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기업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 그리고 여기서 "사람"이란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와 같은 매우 일반적인 가치 판단을 어떻게 실행하는가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하기란 더더구나 어려운 일이다.
처방
"인간이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면, 이 환경은 인간적으로 형성되어져야 한다(p.249)." 소외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바로 그 본질에 의해서 생긴 사회 문제라면, 그 해결은 그 체제를 폐기하고, 더 나은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생각에는 이러한 일이 어떻게 하든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내부의 갈등으로 해서 산산히 폭발해 버리기 때문이고, 공산주의 혁명은 소외가 사라지고 인간은 그의 진정한 본질 속에 재생하는 새로운 질서의 세계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구원은 벌써 우리를 위해 역사 되고 있다고 주장하듯이, 마르크스도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이미 역사의 움직임 속에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완전한 경제 체제의 혁명만이 해결을 가져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높은 임금이나 시간 단축과 같은 한정된 개혁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뜻이 없다. 왜냐하면 이 한정된 개혁들은 기본 체제의 나쁜 본질을 바꾸지 않고, 기본 체제를 타도해야 하는 진정한 과업으로부터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할 따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산당의 강령과 대부분의 노동 조합과 사회 민주당의 강령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생긴다. 이 "정치의 무력"이라는 논리는 마르크스 유물 사관의 전제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법률 제도와 정치 제도들이 진정 그 제도들의 기초가 되는 경제 체제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제도들은 경제 체제를 바꾸는 데 이용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마르크스 시대 이후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사실에 정면으로 부닥친다. 법률 제도와 다른 제도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상당히 수정하여 왔다. 즉, 19세기에 노동자에 대한 아주 지나친 착취를 제한한 "공장 조령"으로부터 시작해서, 국가 보험 제도와 실업 수당, 국가 보건 사업에 걸쳐, 실질 임금 상승과 조업 시간 단축을 시키는 가운데 노동 조합에 의해 점차적인 향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공산당 선언'에 제시된 특정 항목 중 많은 것이 이른바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즉, 누진 소득세, 경제 운영권의 다수의 국가 귀속에 의한 중앙 집권화, 운송 시설을 포함한 몇몇 주요 산업의 국유화, 국립 학교에서의 무차별 무료 교육 등이 그렇다.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알고 있었던 이윤 추구에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였던 자본주의 체제는 어디서나 종식되었고, 또한 이것은 단 한 번의 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현존의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다. 완전에서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점진적인 개혁에 대한 어떤 사상이라도 배척하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오류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혁명에 수반될 고통과 폭력에 대해 생각한다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기독교처럼, 마르크스는 인간의 전면적인 재생을 노리고 있지만, 그는 그 재생을 이 속세에서 기대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다"(p.250)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유 재산의 폐기는 소외의 소멸과 진정으로 계급 없는 사회의 도래를 보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서 매우 막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러나 그는 과도기가 생기는 어떤 중간 시기가 있을 것이며, 이 시기는 그 완성을 위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p.261).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의 보다 높은 단계에서는, 국가는 소멸하고, 진정한 자유의 왕국이 비롯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면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은 그 자신을 위해서 발전할 수 있고(p.260), 그 주도 원리는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p.263)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유토피아적 비젼의 얼마는 비현실적인 것으로서 심히 비판을 당해도 마땅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진정으로 계급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든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혁명 후의 러시아 역사가 분명히 보여 주듯, 기회가 온통 주어지면 그들의 권력을 남용할 새로운 지배 계급을 형성하지 않으리라든가 하는 것을 믿게 할 충분한 이유를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변혁의 어떤 기틀이 모든 이해 갈등을 영원히 제거하리라고 기대할 만한 근거도 없다. 국가는 소멸하기는커녕, 공산주의 국가에서 점차로 권력화 되어 간다.(아마도 바로 현대 산업과 기술의 본질이 이를 불가피하게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마르크스의 비젼의 다른 요소들에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분산된 사회에 대한 사상 - 그 사회에서는 인간은 공동체에서 공익을 위해 협동하며, 과학과 기술은 만인을 위해 충분히 생산하며, 노동 시간을 단축함으로써,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점차로 그들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전시키는 데 사용하게 된다 -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사회에 대한 사상, 이 모든 것이, 서로 양립할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상인 것이다. 분명히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충성을 얻고 그 충성을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비젼을 제시하기 때문인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에서 생활한다는 것의 분명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모습을 이미 바꾸어 놓고 있는 개혁에도 불구하고,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__경제 체제의 더 나은 변화의 필요성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를 위한 인스피레이션을 마르크스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처럼, 마르크스주의는 이론 그 이상의 것이며, 그 이론적 주장이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이 상이 권위를 잃고 사멸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적 구원의 처방을 포함하고 있고,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을 제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회적__경제적 요소에 대한 강조는 우리의 주의를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에서 단 한 가지에로만 향하게 한다. 우리는 인간 개인의 본질과 문제점을 더 알기 위해서, 그 밖의 다른 사람, 예를 들어 프로이트를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충 참고 문헌
기초 텍스트:'칼 마르크스:사회학과 사회 철학 전서(Selected Writings in Socialogy and Social Philosophy)', T. B. Bottomore역, T. B. Bottomore와 M. Rubel 편집 (Penguin, London, 1963; Mc Graw__Hill 문고, New York 1964). 이 책은 아마도 마르크스 저작의 전 시대에서 뽑은 가장 좋은 편집일 것이다. 끝에는 마르크스의 주요 저서의 목록이 있다.
마르크스 저작에 대한 탐구는 '펠리칸 마르크스 전집'으로 계속될 수 있다. 그것은 '강요(Grundrisse)'의 완역을 처음으로 싣고 있다. David McLellan의 '칼 마르크스의 사상(The Thought of Karl Marx)', (Macmillan, London, 1971; Harper & Row, New York, 1972)은 유용한 안내서이다.
많은 비판적 연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로는 Karl Popper의 '열린 사회와 그의 적(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ume 2)', (Routledge & Kegan Paul, London, 5th edn. 1966; Princeton University Press 문고, Princeton, N.J.)이 있다. 독자들은 그 속에서 나의 논점들 중 많은 것의 원천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읽을 만한 전기로서, 그의 사상 발전에 가장 역점을 주고 있는 것으로서는, Isaiah Berlin경의 '칼 마르크스:그의 생애와 환경(Karl Marx:His Life and Environment)'(Oxford Uiversity Press, London, 3rd edn. 1963; Oxford University Press Galaxy Books 문고, New York)을 볼 것. 이 책은 또한 참고 목록도 포함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후기 형태에 대한 안내로는, C. Wright Mills의 '마르크스주의자들(The Marxists)'(Penguin, London, 1963; Dell 문고, New York)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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