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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35 호
단기 4341. 1. 18 (음력 12. 1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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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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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광주 특강 시민문화회의 내일 '문화 미적 술어' 주제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광주에서 특강을 갖는다. 오는 18일 오후 7시 광주 상무지구 시민문화회의 회의실에서 `우리 문화의 새로운 미적 술어'라는 주제로 갖는 이 공개 특강은 문화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주최하고 (사)시민문화회의가 주관한다.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로 지난 1980년 문단에 등단한 황 총장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그동안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 대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편 `아시아문화컨듀서 양성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특강은 지난해 12월 영화배우 문성근씨 강연에 이은 두번째 순서로 오는 4월까지 이창동, 김지하, 유홍준, 차승재씨 등 문화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사들의 강연으로 이뤄진다.
박혜리 기자 hr1003@gwangnam.co.kr
http://www.gwangnam.co.kr/view.htm?Key_code=4&Sub_code=22&Key_name=%EB%AC%B8%ED%99%94&Sub_name=%EB%AC%B8%ED%95%99/%EC%B6%9C%ED%8C%90&No=158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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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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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위한 것은아니다. 사람들에게 약을 올려 그 사태에 관해 어떤행동을 하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들어야 한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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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글터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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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를 떼다
본뜻 : 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 시대 때 매사냥이 성행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냥매를 사육하는 응방이란 직소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당시 궁궐에서부터 시작된 매사냥은 귀족 사회로까지 번져 나가 많은 이들이 매사냥을 즐겼다. 이렇게 매사냥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이 잦아졌다. 이 때문에 서로 자기 매에게 특별한 꼬리표를 달아 표시했는데 그것을 '시치미'라고 했다. 이처럼 누구의 소유임을 알려주는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는 데서 '시치미를 뗀다'는 말이 나왔다.
바뀐 뜻 : 알고도 모르는 체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또는 자신이 어떤 일을 벌여 놓고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치미를 딱 잡아뗀다'가 줄여서 '시치미를 떼다' 또는 '딱 잡아떼다'로 줄어들었다.
"보기글" -아 글쎄, 아랫집 김 서방이 옆집 이 서방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이 서방네 씨암탉을 잡아먹고시치미를 딱 잡아뗐다지 뭐유 -넌 옥이가 김 대리를 사귄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시치미를 뗄수가 있는 거니?
신물이 나다
본뜻 : 과식을 했거나 먹은 음식이 체했을 때 넘어오는 시큼한 물을 신물이라 한다. 한 번체한 음식은 잘 먹게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쳐다보기조차 싫어지게 되는데, 여기에서신물이란 말의 의미가 확장되어 쳐다보기도 싫은 지긋지긋한 일을 가리키게 되었다.
바뀐 뜻 : 마음에 없는 일을 오래 계속하여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뜻이다.
"보기글" -인형에 눈알 붙이는 일이라면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일도 이젠 신물이 나서 못하겠는데 뭐 좀 할 만한 일이 없을까?
압록강과 마자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 연경(북경)을 거쳐 황제의 행궁이 있었던 열하까지 여행한 기행문이다. 이 책에서 압록강은 ‘마자수’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 근원이 말갈의 백산(백두산)으로부터 출발하며, 물빛이 오리의 머리빛깔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압록강은 분명 물빛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런데 압록강을 왜 ‘마자수’(馬紫水)라 불렀던 것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마자’가 용(龍)을 뜻하는 토박이말 ‘미르’와 관련이 있다는 황윤석의 해석이다. 황윤석은 영조 때의 실학자로〈이제속고〉라는 문집으로 유명하다. 이 책의 잡저에는 ‘화음방언자의해’라는 글이 실려 있다. 말 그대로 중국의 한자음이 우리말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글이다. 여기서 곧 ‘마자’와 ‘미르’는 같은 소리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압록강을 ‘마자수’ 또는 ‘용만’(龍灣)이라 불렀고, 또 압록강 가까이 있는 ‘의주’를 ‘용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땅이름 가운데 미르 ‘용’자가 들어간 곳도 비교적 많다. 유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연변에는 ‘용정’(龍井)이 있고, 서울에서 ‘용산’이 있다. 서울의 용산은 백제 기루왕 때 한강에서 두 마리 용이 나타났던 까닭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처럼 땅이름은 어원보다는 설화 속에서 전승되는 경우가 많지만, ‘마자수’에 ‘미르’가 남아 있듯이 풍요로운 우리말의 창고 구실을 한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성별 문법
말소리는 성별 따라 남성은 굵고 탁하며, 여성은 가늘고 맑다. 여자는 상승어조를 많이 낸다. 이는 친밀감·부드러움·공손함을 나타낸다. 말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남자들이 쓰는 낱말과 여자들이 쓰는 낱말이 서로 다른 때일 것이다.
남아프리카 주루족 말에서 남자말 [z] 소리는 여자말에서 규칙적으로 없어진다. 물을 뜻하는 남자말 amanzi에는 [z]가 들었는데, 여자말에는 amandabi처럼 [z]가 사라진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성별에 따라 문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인도의 어떤 말에서는, 여자가 여자에게 말을 할 때 특이한 문법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남자가 남자, 남자가 여자, 여자가 남자에게 말할 때와 대립된다. 주어가 1인칭일 때 그렇다. ‘내가 간다’를 보통 bardan이라 하지만, 여자가 여자에게 말할 때는 baren이라 한다. bardam(우리가 간다)은 여자가 여자에게 말할 때 barem으로, barckan(내가 갔다)은 barcan으로, barckam(우리가 갔다)은 barcam이라 한다.
주어가 2인칭 단수면 더 독특한데, ‘네가 간다’를 보통 때는 barday라 하지만, 여자가 여자에게 말할 때는 bardin, 남자가 여자에게 말할 때는 bardi로 말한다. barckay(네가 갔다)는 barckin(여자가 여자에게), barcki(남자가 여자에게)로 표현한다. 우리말은 이런 구별은 물론, 남·여·중성 따위 성별에 큰 비중이 없는 말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윽박
남을 심하게 을러대고 짓눌러 기를 꺾는 행위를 ‘윽박지르다’ ‘윽박질’ ‘윽박질하다’라고 한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말이 ‘윽박’인데, 국어사전에 따로 잡아 올리지 않았다.
“… 윽박을 주어 건넌방에 들어앉히고, 초조해 할 모친에게 알리러 자기가 나서기로 하였다.”(염상섭 <취우>) “남의 무남독녀 외딸을 그저 윽박 주고 구박하고 못 살게 굴고, 그래도 좋다는 말이냐?”(박태원 <천변 풍경>) “의사를 묻는 게 아니고 반대하는 놈이 있기만 있으면 때려 죽이겠다는 윽박이었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내 윽박에 주춤거리던 계집애는 어깨를 들먹거리다가 다리를 쭉 뻗고 까무러쳐 버렸다.”(신경숙 <겨울 우화>)
여기서 ‘윽박’은 ‘남을 심하게 을러대고 짓눌러 기를 꺾음’의 뜻으로 쓰였다. 비슷한 말로 ‘욱박’과 ‘윽박다’가 있다. ‘욱박’은 ‘억지를 부려서 마음대로 하려는 짓’이고, ‘윽박다’는 ‘을러대어 몹시 억누르다’의 뜻으로 쓰이는 동사다. ‘윽박’이 ‘윽박다’와 상관이 있을 법한데, ‘윽박다’의 ‘윽박-’은 동사의 어간이어서 명사로 쓰이는 ‘윽박’과 관련짓기 어려운 점이 있다. 동사 어간이 어미와 결합되지 않은 채 명사로 쓰이거나 명사가 동사 어간으로 변한 보기는 드물기 때문이다.
‘욱박’과 ‘윽박다’는 거의 쓰이지 않는데도 큰사전에 오른 반면, ‘윽박’은 문헌이나 입말에서 널리 쓰이는데도 수록되지 않았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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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부마란 본래 부마, 즉 주마에게 딸린 말이라는 뜻이었는데 그것이 천자의 사위라는 뜻으로 바뀐 데에는 까닭이 있다. 한나라 무제 때 부마도위라는 벼슬을 두어 부마를 관장하게 했는데 공주의 남편으로 하여금 그 벼슬을 맡게 하였던 까닭이다.
옛날 농서에 신도도라는 사내가 있었다. 지방으로 유학을 갔다가 돈이 궁하여 굶주리며 옹주 서쪽 50리까지 왔을 때 웬 커다란 저택이 있고 그 문전에 하녀인 듯한 여자가 서 있었다. 신도도는 사정 얘기를 하고 밥을 청했더니 하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서는 안주인의 방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말하였다.
"나는 진 나라 민왕의 공주였는데, 조나라로 출가했다가 남편을 여의고 그로부터 22년 동안을 홀로 지낸다오. 손님께서 모처럼 와주셨으니 제발 부부가 돼주어요."
신도도는 그렇듯 고귀한 여인이라서 사양했으나 간청에 못 이겨 인연을 맺기를 사흘 밤, 여인은 처량하게 신도도에게 말하였다.
"당신하고 더 지내고 싶지만 사흘 밤 밖에 안된다오. 더 지내다가는 화를 입을테니 헤어져야겠는데 헤어지고나면 나의 정성을 드릴 수 없겠구려, 다만 정표로서 이걸 받아줘요."
여인은 신도도에게 금베개를 주고 하녀더러 대문까지 배웅케 하였다. 그런데 대문을 나와서 돌아보니 저택은 온데간데없고 잡초가 우거진 벌판에 무덤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하나 금베개는 어김없이 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그 베개를 팔아 음식을 사먹었다.
훗날 진나라의 황비가 장터에서 그 베개를 발견하고 조사해보니 신도도라는 사내가 나타났다. 황비는 이상히 여겨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 봤더니 장례 때 넣어준 물건들은 다 있건만은 오직 베개가 없었다. 딸의 몸을 살펴 보니 정사를 치른 흔적이 완연했다. 황비는 비로소 신 도도의 말을 곧이 여기고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사위라고 '부마도위' 벼슬을 주어 금마차를 베풀어서 본국으로 보내 주었다는 데서 부마라는 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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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 고시조/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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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柳詩
권필(權?; 1569-1612)
滿城冠蓋媚春輝하니 宮柳靑靑鶯亂飛라
고관들의 수레는 성중에 가득 차고, 미색의 봄 빛 무르익고,궁중의 버들 청청하고 꾀꼬리 어지러이 나는데,
朝家共賀昇平樂하니 誰遣危言出布衣리오
조정의 대신들 모두 다투어 태평과 안락을 경하하니, 누구를 보내어 바른 말하여 포의로 쫓겨나게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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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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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의 기억
그해 뉴욕시의 겨울은 4월이 돼도 추위가 누그러들 줄 몰랐다. 혼자 사는데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냈다. 마침내 추위가 가시고 봄이 성큼 다가온 어느날. 나는 지팡이를 들고 산책을 나왔다. 얼굴에 내리쬐는 햇볕이 한없이 따사로웠다.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날 불렀다. 그는 내가 가는 곳까지 차로 태워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혼자 걸었다. 모퉁이에 도착하자 습관대로 걸음을 멈췄다. 파란 신호등이 들어올때 사람들과 같이 길을 건너기 위해서였다. 차 소리가 멈춘지 꽤 오래됐는데도 주위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봄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강하면서도 듣기 좋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히 쾌활한 분이신 것 같군요. 제가 함께 길을 건너도 될까요?"
그의 정중한 물음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내팔을 가볍게 잡았다. 우리는 함께 천천히 길을 건너면서 날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날씨를 즐길 수있어 얼마나 좋으냐는 얘기도 했다. 길을 거의 다 건넜을 때쯤 자동차 경적이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분명 신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우리는 간신히 길을 건널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쪽으로 돌아서서 감사 인사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내가 말하기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께선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실 겁니다. 저 같은 장님을 도와길을 건너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봄날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는 작은 기적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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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자살 사건도 있을까?
1994년 3월 23일, 미국 샌디애고에서 로널드 오퍼스라는 남자가 10층 빌딩 아래로 투신해 자살했다. 기이하게도 그의 시체는 바닥에 떨어진게 아니라 8층에 쳐진 안전망에 걸쳐진 채로 발견되었는데, 경찰에 의한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머리를 관통한 라이플 총탄이었다. 즉, 그가 투신할 즈음에는 이미 라이플총탄이 그의 두개골을 관통해서 그는 죽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혹시 자살을 가장한 살인이 아닐까 의심한 경찰은 주변 수색에 나섰지만, 그가 투신한 지점에는 아무런 핏자국도 발견할 수 없었고, 오히려 자살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그의 자필로 된 유서만이 놓여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머리에 난 총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자살하기 전에 라이플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고 떨어졌다면, 그 주변에 핏자국이나 흔적, 혹은 라이플 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것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해 주변 탐색을 해가던 경찰은 놀라운 데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10층에서 자살 투신한 직후 9층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9층에서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은 것이었다. 9층에는 노부부가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그 부부가 심한 말다툼을 하다 격분한 남편이 총을 들고와 부인에게 총을 쏘았는데 총알은 부인을 빗겨나가, 정말 우연히 마침 그리로 떨어지던 오퍼스를 맞힌 것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기가 막힌 우연히고, 어짜피 자살할려고 투신 하던 오퍼스가 총에 먼저 맞아 죽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으므로 그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른지도 모르지만, 경찰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8층에는 안전망이 쳐져 있었으므로, 만약에 오퍼스가 머리에 총탄을 맞지 않았을 경우, 그는 안전망에 걸쳐져 살아 남았을런지도 모른다. 즉 자살 미수로 살수도 있었는데, 그 총탄으로 사망했으므로 9층 노부부중 남편은 과실치사 혐의가 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남편은 부인을 겨냥해 총을 쏘았더라도, 만약 그게 부인에게 맞았을 경우는 일급 살인이 되지만, 부인을빗나가 그 옆의 다른 사람이 맞았을 경우는 이급 살인, 즉 과실치사가 되며, 이 경우로서 9층에 사는 노인은 과실 치사 혐의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경찰의 혐의 적용이 이렇게 풀려가자, 그 노부부는 곧 자신들은 항상 그 총에 총탄을 넣어두지 않으며, 어떻게 그 총이 장전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그들은 평소, 부부싸움에는 항상 남편이 빈총을 들고 나와 부인에게 쏘는 시늉을 하면서 위협하는 등의 습관이 있었는데, 분명한건 자신들이 결코 그 총에 탄환을 장전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총탄이 장전된지 모르고 총을 발사했으므로 살해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일급 살인죄를 면함), 또 마침 오퍼스가 그 와중에 총탄을 맞았으므로 오퍼스는 사고사로 처리 되야지 자신이 살인죄를 적용받는 건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의 핵심은 누가 과연 그 총탄을 장전했다는 것인가?
그 총탄을 장전한 사람이 이번 사건의 유죄가 될 것이었다. 경찰은 수사 끝에 그 노부부의 아들 중 한 명이 사건 6주 전 총탄을 장전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아들은 직장에서 해고되고 어머니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외면 당하게 되자, 아버지의 습관(어머니를 향해 빈총을 발사하는습관)을 떠올리고 어머니를 살해하기 위해 몰래 총탄을 집어 넣은 것이다. 그 아들은 총탄을 장전한지 6주가 지나도록 자신의 부모가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바람에,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될 희망이 점점 없어지자 결국 절망한 채로 10층에서 자살하기로 한 것이다. 즉 다시 말하자면 그 아들이 바로 자살한 로널드 오퍼스였던 것이다. 이런 기가 막힌 경우가 있을까? 사건은 결국 오퍼스의 자살사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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