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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26 호
단기 4341. 1. 8 (음력 12. 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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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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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2007년 한국문학을 빛낸 7대 작가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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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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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 각자가 가진 고유의 재산이요, 유일한재산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 지 결정할 수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결코 그 재산을 남이 우리 대신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 칼 샌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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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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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1.사물을 바로 보는 눈
작은 냄비
“참새가 숲속에 둥지를 튼다 한들 나무 한 가지면 족하고, 생쥐가 큰 강의 물을 마신다고 해도 작은 배 하나 채우는데 불과하다.“ 장자가 한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없이 욕심을 내고 또 제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촉새’와 같이 화를 낸다. 그래서 공자는 ‘그릇이 작은 사람들을 어찌 다 셀 수 있을 것인가’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편협하고 못난이들이다. 작은 냄비가 빨리 뜨거워지듯 이런 자들은 당장 분노를 터뜨리며 쉽게 다툼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이 좁은 자를 상대할 때는 살얼음 밟듯 조심해야 한다. 이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것마냥 길길이 더 뛰기 때문이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은 불을 끄는 방법이 아니지 않는가?
견문발검
지혜로운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 음을 쉽게 나타낸다. 견문발검이란 앵앵거리는 모기에 노하여 칼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새 대가리 같이 생각이 좁고 쓸데없는 일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을 풍자한 말이다. 속이 좁은 사람은 사람을 후하게 대할 때 박하게 대하고, 인정을 베풀어야 할 때 베풀지 못하고, 자신의 형제나 부모까지 박하게 대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는다. 세익스피어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아량이 적지도 않고 조그만 일에 불꽃같이 성질을 내지 않는다. 나의 이빨은 나의 입술로 꼭 덮여 있기 때문이다. 작은 냄비가 빨리 뜨거워진다. (A little pot is soon hot.)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 수 있듯이, 무슨 일이나 그 일을 시행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무슨 일이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하면 일이 이루어지나, 쉬운 일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 될 거라는 약한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해보면 자신의 능력에 놀라게 될 것이다.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자신감’을 높이 산다. 한국 사람은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자체가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으로 더 크게 작용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오늘과 같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된 원동력이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향해 ‘여기 저기로 옮겨 가라‘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못 할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하여 우리에게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나 해보기도 전에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자신감을 잃지 말고, 목표를 세워 하나 둘 실천하여 보자. 마라톤 선수는 전 코스를 달릴 때 처음부터 최종 목표 지점까지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힘이 들어 중간에 포기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저기 저 지점까지 10km, 저기 큰 다리까지 20km, 저기 빌딩까지 30km 등의 단계별 목표로 ‘거기까지만’하는 주법으로 달린다. 이렇듯 목표를 설정하되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을 정하고 나면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목표가 설정되어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
서경에는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다하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 자신을 갖고 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종교는 기적이 있어 난치병을 고치기도 하고 물 위로 걷기도 하고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으며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일은 기적이 없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일은 모두 진취적인 생각, 개척 정신, 열정적인 노력을 계속해서 쏟아부어야 이루어진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 (You never know whatyou can do till you try.)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부딪쳐 보자.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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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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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9장 - 시간을 만들어라 (2/2)
4. 낭비를 없게 하는 방법
앞에서 필자는 시간을 절약하게 위해서 당신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필요한 듯이 보여도 실상 필요 없는 시간이 더 이상 당신을 속박하는 일은 이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하면 아직도 '쓸데없는 시간'은 당신 주변에 널려 있음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아! 잊고 있었구나' 한다던가,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라고 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는가? 만일 '있었다'하는 대답이 나왔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시간의 낭비를 증명해 주는 것이 된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줄 안다. 한번이면 끝날 일을 두세 번 되풀이하는 것은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잊어버리기 쉬운 것은 성격 탓이니 할 수가 없지 하고 체념해 버린다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당신에게 만일,
#1 앞을 내다본다 #2 일을 잘 정돈한다
라는 두 가지 습관이 있다고 하면, 결코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실수도 안하게 될 것이다. 선견과 질서-이 두 가지 습관은 누구나 쉽게 몸에 익힐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선견이란 미리부터 상상하는 일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순서에 맞추어 잘 정리해서 트렁크에 넣어 두면, 일단 여행 중에 필요하게 될 때 그건 어디에 있더라, 그것을 가지고 왔는지 어떤지를 당황해서 황급히 찾거나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찾아낼 수가 있다. 이런 정도의 주의로도 시간의 낭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앞을 내다보는 힘이란 것을 조금 과장해서 생각해 보자. 인생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가 몇 가지 있다. 결혼, 늙는 것, 질병, 죽음, 정신이상 등등,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선견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도 말하자면 이 선견지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유비무환'이란 교훈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선견지명을 당신의 습관으로 몸에 익히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노트를 하는 것, 즉 기록을 하는 일일 것이다. 당신의 상상력의 작용에 맡겨 보라. 상상이 가는 대로 주의 깊게 노트를 해 보자. 간단하게 노트 해도 무방하다. 당신은 싫더라도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면 그것을 알고 있어야 되며, 그렇게 기록을 해두면 행동의 지침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안전과 독립의 지침, 이것이야말로 당신의 귀중한 재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질서는 마치 선견지명과 형제 같은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에게는, 질서는 자연스러이 갖추어져 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질서는 잘 정돈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부인, 단정하게 하고 계신다는 것과 질서가 있다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당신의 화장실은 잘 손질이 되어 있으며, 또 닦고 문질러서 깨끗하게 되어 있군요. 그러나 토요일에 변호사에게 온 중요한 편지는 어디에 두셨지요?" "네? 참 그걸 어디에 두었더라?"
이런 일은 실상 매우 흔한 일이다. 어쨌든 그 부인은 편지를 찾는 데 야단법석을 떨겠지요. 여기도 없다, 저기도 없다, 중요한 것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 부인은 드디어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참다 못해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부인, 당신은 분명히 깨끗한 것을 좋아하시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정리하는 것이 부족한 것 같군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이 부인은 이 손님의 도움을 받아들여 화장대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아이구, 이제야 깨끗해졌군요. 30분이 걸렸군요.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끝난 셈이군요"
불과 30분만에 정리가 끝났다고 하자. 그러나 이 부인이 낭비한 시간은 30분뿐이었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는 안된다. 왜냐하면 어수선한 화장대에 못지 않은 혼란이 그녀의 마음 속에도 있었을 터이고, 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스며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5. 주저하는 버릇을 없애라
질서가 없다는 것 다음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서도 망설이는 것도 시간의 낭비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좋지 못한 습관은 사람들의 생활에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하겠다. 필자의 친구 중에 독일에서 4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불행하게도 '의지상실'이라 불리는 신경증에 걸려 있었다. 어느 날 이런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꼬박 10분 동안이나 모자걸이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뭘 하느라고 그러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자기의 장교 모자를 어느 못에 걸 것인가를 결정짓지 못해서, 망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경우는 확실히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체념해도 좋겠다. 그러나 병 때문이 아니라 박력이나 지성, 요령이 없어서 어떤 일에나 우물쭈물하면서 주저하는 것을 볼 때 정말로 안타까울 뿐이다. 당신이 만일 다른 사람을 한 시간 반이나 걸림 몸치장을 40분 안에 끝낼 수가 있다면, '망설이는 버릇'고는 인연이 없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의 당신은,베르그송이 추천하는 무의식행동(즉 별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하게 되는 자동적 행동을 말함)을 터득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대체로 인간에 있어서 '주저'하기 쉬운 성향이 만성화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주저'는 끝없는 악순환이다. 언제나 시작만 있을 뿐 끝이 없는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발전이 있게 마련이라는 이론대로 본다면 이러한 악순환에는 '시작'조차도 없다고 하겠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그 무엇하나 시작도 하지 않고, 자기의 일평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한 장의 원고지와 연필을 준비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고 하자. 그 원고지의 첫머리에 포쉬 원수(1851-1929, 1차대전 때의 연합군총사령관)의 유명한 명제 즉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인가?'를 적었다고 하자. 당신 같으면 이 문제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때까지 5분 동안은 충분히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력한 집중에의 시도도 주저하는 습관에 푹 젖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효험도 없다. 일단 일에 부딪쳐서 손을 쓰기 시작하면, '내가 이기지' 하는 배짱도 '주저'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에게만은 별도리 없이 당하게 되는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러한 하나의 습관이 이처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과 사물에는 주저 없이 '덤벼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우리들은 다같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속담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들은 이것을 격려의 말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당신은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공부하려고 생각해 본 일은 없습니까?"
전에는 한 번 해 본 일이 있다는 분은 상당히 많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러나 결코 해서는 안된다. 실험은 한 번만으로 충분하다. '주저하는 악마'는 사람에게 외국어를 배우라고 충동질을 해 놓고는 속으로는 매우 기뻐하고 있다. 당장 착수할 수도 없는 일을 이런저런 생각만을 거듭하면서 주저하기보다는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을 착수하라.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라. 무조건 시작해야 한다. 선견과 질서 있는 준비만 있으면 그 무엇하나 우물쭈물하면서 차일피일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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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를 내다
본뜻 : 죄인을 죽인다, 사형에 처한다는 뜻을 가진 옛말이다.
바뀐 뜻 : 죽인다, 혹은 죽을 정도로 다그친다는 뜻으로 쓰는 속된 표현이다.
"보기글" -아비를 때리다니, 저런 물고를 낼 놈 같으니라구! -아니, 자기 의견에 반대한다고 물고를 내다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전근대적인 발상을 한단 말이야
바가지를 긁다
본뜻 : 옛날에 콜레라가 돌 때 전염병 귀신을 쫓는다고 바가지를 득득 문질러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남의 잘못을 듣기 싫을 정도로귀찮게 나무라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바뀐 뜻 : 평소 생활 속에서 갖게 되는 불평, 불만을 아내가 남편에게 듣기 싫도록 쫑알거리며 늘어놓는 것을 말한다.
"보기글" -우리 마누라 바가지 긁는 거 듣기 싫어서라도 집에 일찍 들어가야 되겠어 -마누라가 바가지 긁는 재미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
말소리의 높낮이
우리는 같은 말소리라도 높은소리로 낼 수도 있고 낮은소리로 발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계 언어 가운데는 같은 소리를 높은소리로 내는 말과 낮은소리로 내는 말이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아프리카 가나말에는 높은소리와 낮은소리가 구별되어 쓰인다. [papa]라는 말을 살펴보자. 앞의 [pa]를 높게 내면 ‘훌륭한’이라는 뜻이 된다. 뒤의 [pa]를 높게 내면 ‘아버지’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두 소리 모두 낮게 내면 ‘종려나뭇잎 부채’를 뜻한다. 이처럼 말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서로 다른 낱말이 된다.
이번에는 높은소리, 낮은소리에다 가운뎃소리까지 구별되어 세 단계로 쓰이는 말을 살펴보자. 나이지리아말에서 [kan]을 높은소리로 내면 ‘깨뜨리다’, 가운뎃소리로 내면 ‘맛이 시다’, 낮은소리로 내면 ‘도착하다’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높낮이가 낱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말이 바로 이웃 중국말이다. 중국말에는 무려 네 가지 높낮이가 구별된다. 따라서 중국말로 대화할 때는 높낮이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말은 어떨까? 옛말에는 이런 높낮이 구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 고장말을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15세기에 ‘꽃’은 낮은소리였고, ‘풀’은 높은소리였고, ‘별’은 낮았다가 높아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요즘은 ‘꽃·풀’은 짧은소리로, ‘별’은 긴소리로 바뀌었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헛이름
우리말에서 ‘헛’은 일부 명사·동사 앞에 붙어 새 말을 만드는 접두사로 쓰인다. ‘헛걸음·헛고생·헛소문’은 명사 앞에, ‘헛디디다·헛보다·헛살다’는 동사 앞에 ‘헛’이 결합된 말이다. 여기서 ‘헛’은 ‘허’(虛)에 사이시옷이 결합된 꼴인데, 뒷말에 ‘이유 없는’, ‘보람 없는’, ‘잘못된’ 등의 뜻을 더한다. 따라서 ‘헛걱정’은 ‘쓸데없이 하는 걱정’, ‘헛고생’은 ‘보람없이 하는 고생’이며, ‘헛소문’은 ‘근거없이 떠도는 잘못된 소문’이란 뜻이 된다. 이런 ‘헛’이 결합된 말이면서 큰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로 ‘헛이름’이 있다.
“그는 헛이름만 높았지 훌륭한 장수라 할 수 없다.”(박종화 〈임진왜란〉) “나는 ○○학파라는 것이 헛이름은 아니라고 봅니다.”(한경, 2004.1.) “거룩하다는 이름도 구하지 말고 재물도 구하지 말고 영화스러운 것도 구하지 말고 그렁저렁 인연을 따라 한세상을 지내다가 옷이 해지거든 거듭거듭 기워 입고 양식이 없거든 가끔가끔 구하여 먹을지로다. 턱 밑에 세 마디 기운이 끊어지면 문득 송장이요 죽은 후에 헛이름뿐이다. 한낱 허황된 몸이 며칠이나 살 것인데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고 내 마음을 깜깜하게 하여 공부하기를 잊어버리리요.”(경허 법어, 석명정 역 〈무심〉)
‘헛이름’은 ‘알려진 명성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이름’을 뜻한다. 허명(虛名)과 같은 말이다. 경허 법어는 ‘헛이름’을 들추어 사전적인 뜻 외의 가르침을 준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먹거리와 먹을거리
‘먹거리’는 세계식량기구에서 일하던 분이 1970년대에 영어 ‘food’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싸잡는 우리말이 없어 애태우다 찾아낸 낱말이다. 곡절을 거쳐 꽤 널리 쓰였는데, 90년대 우리말을 남달리 사랑하며 깨끗한 우리말을 살리려 애쓰던 분이 마땅찮다고 하자 ‘먹을거리’가 나타나 요즘은 두 말이 겨루고 있는 듯하다.
‘먹거리’가 못마땅하다는 까닭은 이름없는 백성이 널리 쓰는 낱말이 아니라는 것인데, 한때 전문 학회에서도 우리 조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이름없는 백성이 널리 쓰느냐 아니냐와 우리 조어법에 맞느냐 아니냐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름없는 백성이 두루 쓰면 조어법에 맞는 것이고 이름없는 백성이 두루 쓰지 않으면 조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먹거리’는 움직씨 ‘먹다’의 몸통 ‘먹’에 이름씨 ‘거리’가 붙은 말인데, 이런 조어법은 백성이 즐겨 써 왔다. ‘먹다’의 몸통 ‘먹’에 이름씨가 붙은 낱말로도 ‘먹보·먹새·먹성·먹쇠 …’ 들이 있다. ‘썩다’의 몸통 ‘썩’에 이름씨가 붙은 ‘썩돌·썩바가지·썩바람·썩살·썩새 …’가 있고, ‘꺾다’의 몸통 ‘꺾’에 이름씨가 붙은 ‘꺾낫·꺾쇠·꺾자·꺾창’도 있고, ‘막다’의 몸통 ‘막’에 이름씨가 붙은 ‘막내·막둥이·막말·막매듭·막물·막손·막차·막참·막창·막판’도 있다. 이 밖에도 널리 쓰이는 낱말로 ‘덮개·덮밥·솟대’, 마침내 ‘막가파’ 같은 낱말도 있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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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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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 속에 숨어 있는 역사의 비밀(근, 현대편) - 박영수
1.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디로 수학여행을 갔나
로코코란 무엇인가
로코코는 18세기 초 파리에서 시작되어 곧바로 프랑스 전역과 독일, 오스트리아에까지 퍼진 실내 장식, 장식 예술, 회화, 건축 양식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1715∼1745년의 장식 예술에서는 로코코풍이 강세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이 양식이 가구, 벽걸이, 자기 등과 금은 세공품에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로코코라는 말은 조가비로 장식된 바위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로카유'에서 따 온 말이다. 로카유는 원래 궁전이나 귀족의 야외 향연을 주제로 한 공예품과 장식 양식에만 적용되던 조개 껍질형의 정원 장식물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미술 일반에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로코코 양식은 베르사유 궁전의 웅장함과 루이 14세 치세 동안 유행한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발로 생겨 났으며, 프랑스 조각가들이 파리 귀족의 새로운 주택을 보다 경쾌하고 아늑하게 장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미술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로코코는 바로크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바로크의 호장함이 우아함과 섬세함으로 이행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로코코 취미로 정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크의 생기 있고 장중한 멋이 세련된 감각과 개인적인 살롱 취미로 바뀌었다는 차이 때문에 새로운 유행 스타일로 여겨졌다. 로코코의 대상은 18세기 프랑스 풍속 그 자체이며, '우아한 연회' 라는 말이 상징하듯, 루이 15세 때 경쾌하고 감각적인 것을 즐기는 풍조가 팽배했다. 이 양식은 가볍고 정교하며 우아하고 고상하나 곡선과 자연 형상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건축물에 있어서 로코코 양식은 벽면과 천장, 소조 등을 조개나 자연물 형상 뿐 아니라 'C' 자나 'S' 자 같은 기본 형태 위에 교차 곡선과 역곡선을 그린 문양으로 장식한 것이었는데, 대칭보다는 비대칭을 기본으로 삼았다. 색상은 밝은 파스텔색, 상앗빛 흰색, 황금색이 주로 쓰였으며 이 양식의 장식가들은 유리도 자주 사용했다. 회화에서는 지적인 간지러움, 하염없는 사랑, 천진함 등 사람들의 해방된 감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프랑스에서 로코코 회화는 앙투안 바토(1684∼1721)의 우아하거나 약간 우울한 분위기에서 시작되어, 프랑수아 부셰(1703∼1770)의 쾌활하고 육감적인 나신 그림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자유 분방하고 화려하게 채색된 풍속화로 끝을 맺었다. 프랑스풍의 로코코 회화는 대체로 가벼운 색조, 육감적인 채색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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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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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 4부 항산화벽이 무너지면 건강도 무너진다
방어진지-항산화벽이 하는 일
우리 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쁜 환경이나 생활 습관의 영향으로, 혹은 몸에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의 부산물로 끊임없이 프리라디칼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체내의 항산화제 탱크가 작동하여 해로운 프리라디칼을 제거한다. 만일 정상적인 속도로 활성산소물이 생길 때에는 체내의 방어벽 만으로도 충분히 처리가 된다. 하지만 흡연을 과하게 한다거나 과로하고 나쁜 음식(육가공류,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과자, 설탕 등의 과다한 섭취)들을 계속 먹을 때에는 유해물이 너무 많이 생기므로 체내 방어탱크가 허물어지면서 세포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는데, 이를 전문용어로 산소적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럼, 세포들이 산소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전부 제 기능을 못하고 노화되거나 병들어 버리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몸은 산소적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이것을 견뎌낼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프리라디칼 중에서도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이 히드록시라디칼이다. 이것은 공격성이 매우 강하여 항산화제가 출동하기도 전에 전광석화처럼 조직을 손상시킨다. 따라서 이럴 때에는 손상된 조직을 복구 수리하는 체내 수리공이 나서게 된다.
이와 같이 인체의 항산화벽은 돌만 쌓아 놓은 것 같은 단순한 방어막이 아니다. 방어벽에 금이 가면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리라디칼의 공격으로 DNA가 파괴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정찰대가 나서서 파괴된 부분을 잽싸게 찾아낸다. 동시에 공병들이 출동하여 찾아낸 부분을 잘라내고 새 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다. 프리라디칼에 의해 단백질이나 지질에 망가진 부분이 생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망가진 부분을 새것으로 갈아치우는 것은 아니다. 항산화벽을 이전보다 더 튼튼하게 만들어 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쥐를 보통 공기처럼 산소량이 20% 정도인 공기가 아니라 100%인 공기에서 살게 하면 며칠밖에 못 살고 죽는다. 당연히 지나친 산소의 해로운 때문이다. 하지만 산소량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적응할 시간을 주면 항산화 방어능력도 차차 증가가 되어서 마침내는 100%산소에서도 견딜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즉 프리라디칼이 많이 생기는 상황이 계속되면 거기에 맞게 전투력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 이토록 눈물겹도록 끈질긴 세포들의 노력을 주인인 인간이 몰라 주고 계속 스트레스를 가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죽어가게 된다.
항산화벽이 무너지기 쉬운 사람들
우리 몸 안에서는 프리라디칼에 의한 스트레스와 이에 대한 방어벽이 다음 그림처럼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잘못된 식습관으로 체내 항산화제 저장탱크가 남보다 빈약하거나 흡연이나 대기오염, 각종 약물이나 독소, 과로 누적, 혹은 질병으로 활성산소물이 남보다 많이 생기든가 하면 위 그림의 균형이 깨진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무방비상태로 프리라디칼의 무차별 융단폭격을 피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이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한다.
항산화제 저장탱크가 빈약해지는 경우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항산화 저장고는 마구 낭비해도 저절로 채워지는 마술금고가 아니다. 꺼내어 썼으면 쓴만큼, 또 앞으로 많이 쓸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넉넉하게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행이 거덜나서 부도가 나듯이 우리의 건강도 부도가 나는 것이다. 항산화 탱크에 항상 채워져 있어야 하는 항산화 영양소는 비타민E, 비타민C, 베타카로텐, 비타민B 일부(리보플라빈, 너코티나마이드), 비타민A, 셀레니움, 라이코펜, 아연, 구리, 마그네슘, 철, 각종 단백질(알부민, 트랜스훼린, 락토훼린, 세룰로플라스민 등) 등이다. 이들 영양소를 채워 넣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병원에 가서 자신의 항산화 방어벽 상태를 검사한 다음에 부족한 방어물질을 집중적으로 채워넣는 것이다.
앞으로 항산화 상태를 점검해 주는 병-의원이 늘어나겠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음식을 통해서이다. 또 다른 손쉬운 방법으로는 항산화제를 매일 복용하는 것이다. 만일 항산화제가 풍부한 음식을 매일 꾸준히 섭취하지 못하면 저장탱크가 금방 바닥이 나서 활성산소의 공격을 당해낼 힘이 없어지게 되며 그러다가 결국 질병이 생길 수가 있다.
활성산소물 생산량이 남보다 많은 경우
실제 항산화 방어의 균형이 깨지는 이유는 항산화제 저장탱크가 고갈되어서 그런 경우보다는 활성산소물이 너무 많이 생겨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 활성산소물이 많이 생기는 경우는 대략 3가지 경우이다.
첫째, 산소 농도가 높아진 환경에 노출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저산소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대기보다 높은 산소가 포함된 공기를 주는 경우를 빼고는 일상 생활에서 높은 산소농도의 공기에 노출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맑고 깨끗한 공기하면 산소를 떠올리는데, 이는 잘못된 지식이다. 우리가 숨쉬는공기 중의 산소량은 20%정도로 항상 거의 같으며, 오염물의 농도가 낮아야 맑은 공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만성염증같은 병에 걸려 있는 경우다. 이때는 체내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식세포가 이 염증을 처리하느라고 과하게 활성이 되어서 활성산소물을 많이 만들어 내게 된다. 셋째로 우리가 먹는 각종 약물이나 음식 등으로부터의 독소가 체내에서 대사되어 해독되는 과정 중에서 프리라디칼이 많이 생기게 된다.
입이나 호흡을 통해 우리 몸 안에 들어온 약이나 독소는 간의 시토크롬 p450이라는 효소에 의해서 해독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물에 잘 녹는 물질로 변하면서 소변으로 배설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토크롬 p450은 체내로 들어온 독소를 해독시켜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효소인 것이다. 실제 약이나 술을 먹으면 이것들을 분해하느라고 시토크롬 p450 수치가 증가된다. 그런데 일부 약이나 독소는 해독과정에서 처음보다 더 해로운 물질이 생겨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암 유발인자로 유명한 수산화탄소 벤즈파아렌은 고기를 굽거나 담배를 피울 때 생기는 물질인데, 이것이 체내로 들어오면 시토크롬 p450에 의해 보다 더 확실하게 DNA를 파괴하는 발암물질로 변한다. 해독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 원래보다 더 해로운 중간 부산물이 생기는 것이다. 또 유기용매인 탄소 사염화물은 시토크롬 p450에 의해 탄소3염화물-산소라디칼을 만들고, 이것은 세포막의 과산화변질을 유발하게 된다. 이때 만일 비타민E 같은 항산화제가 충분치 않다면 더욱 그 독성이 커지게 된다.
탄소 사염화물은 일반 독자에게는 생소한 물질이니 좀 익숙한 물질로 예를 들어보자. 진통해열제로 유명한 아세트아미노펜(일명 타이레놀)은 누구나 몇 번은 복용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약은 시토크롬 p450에 의해 대사가 되며, 그 과정에서 생긴 물질이 체내 항산화물질인 글루타치온을 소모시킨다. 적당량을 먹을 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과량을 먹거나 간이 나쁜 사람이 먹을 때에는 체내 글루타치온이 고갈이 되면서 간이 급속도로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의사들은 간기능이 나쁜 사람에게 타이레놀 사용을 주의시킨다. 그외에 흡연이나 석면, 대기오염물들도 모두 프리라디칼 생성으로 조직을 손상시킨다. 항생제로 유명한 퀴논이라는 몰질은 수퍼옥시드라디칼을 만들며, 백혈병 치료제로 쓰는 항암제인 독소루비신(일명 아드리아마이신)도 프리라디칼을 생성하여 심장에 해로움을 주는 부작용이 있다. 그밖에 제초제이면서 잘못 마시면 폐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어서 사망하게 되는 농약들도 마찬가지이다.
항산화벽이 무너지면 건강도 무너진다
어떤 노화학자가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활성산소의 융단폭격을 받고 산다'고 했다. 예를 들어 세포 속에 있는 DNA에 하루에 퍼부어지는 활성산소의 폭탄 수는 1만개쯤 된다는 말도 했다. 여러분들 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이 폭격이 느껴지는가? 아마 전혀 못 느낄 것이다. 50조가 넘는 세포를 갖고 있는데 이 중 하나둘 정도가 죽는다고 해서 당장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게 점점 쌓이면 그때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활성산소의 공격 방식에는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무차별로 폭격하는 방식과 장기간에 걸친 끊임없는 공격의 2가지 방식이 있다.
먼저 단기간 폭격 방식은 기계적 손상, 감염, 열, 방사선, 독소, 심한 운동, 허혈증같은 것이 있을 때 일어난다. 이때는 조직에서 각종 라디칼생성 효소가 생기고, 식세포가 활성화되며, 구리나 철이온이 유리되고, 미토콘드리아의 전자전달 기능에 이상이 오면서 한꺼번에 많은 활성산소가 만들어진다. 이런 단기 폭격과 관련된 병에는 류마티스관절염, 호흡부전증, 뇌졸중같은 것이 있다. 장기간 폭격 방식과 관련된 병은 아무래도 만성병, 성인병들이다. 예를 들어 동맥경화증, 심혈관 질환, 백내장, 암, 신경퇴화같은 것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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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묘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던 허엽
허엽(1517-1580)의 본관은 양천이고, 자는 태휘, 호는 초당이다. 중종 35년(1540)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명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을 지냈다. 광해군 15년에 아들 허균이 반란을 계획하다가 잡혀 죽음을 당하자, 그 화가 죽은 허엽의 시체를 톱으로 자르는 데 이르렀다. 그 뒤에 사간 심대부가 그 산을 지나다가 울음소리를 듣고 이상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대답하였다.
"허엽의 무덤에서 시체가 톱으로 잘리는 화를 당한 뒤에 밤마다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심대부가 그 이야기를 듣고 돌 위에다 시를 썼다.
못난 자식 두기보다는 차라리 없는 것이 나으니 빈 산 속에 백골이 쓸쓸하구려 밝은 영혼이여 밤에 울지를 마소 순장 때 쓰는 기물 역시 인간이 만들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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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마땅히 덩달아 죽을 도리이건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니 과부가 자신을 업신여겨서 일컫는 말이다.
춘추시대 노 나라 성공의 사촌 누이가 송공에게로 출가하게 되어 계문자라는 이가 신부를 모시고 송나라에 갔다 돌아왔다. 그리하여 위로의 술자리가 베풀어 졌는데, 계문자는 그 자리에서 송나라는 좋은 곳이니 신부는 미상불 행복하게 살 거라고 노래하였다.
신부의 어머니 목강은 매우 기뻐하며 "그대는 선왕 때부터 충직하더니 이 미망인에게도 극진하구려."
하고 자신을 미망인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나 위나라는 정공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정공이 몸져 눕자 서자인 간이 태자가 되었다. 그런데 정공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태자는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정공의 아내 강씨는 이미 사흘 동안이나 음식을 끊은 터였는데 태자의 기색에 분개하여 말하였다.
"저 사람은 필시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요 먼저 이 미망인을 못살게 학대할테지. 아, 하늘은 어찌하여 위 나라를 져 버리고 나의 소생을 왕위에 올리지 못하였을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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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3. 비로자나부처님의 외출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어라
한 스님이 석두 스님에게 물었다.
"해탈이 무엇입니까?" "누가 너를 묶어 구속하기라도 했느냐?" "정토란 무엇입니까?" "네가 언제 더럽혀 놓기라도 했단 말이냐?" "열반이 무엇이옵니까?" "너는 누구 때문에 나고 죽느냐?"
짧은 문답이지만 마음, 자성, 불성, 부처에 대한 극명한 문답이다. 경전 밖에 따로 법이 있으니(교외별전: 가르칠 교, 바깥 외, 다를 별, 전할 전), 이는 문자에 의지 하지 않고(불입문자: 아닐 불, 설 입, 글월 문, 글자 자), 중생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서(직지인심: 곧을 직, 손가락 지, 사람 인, 마음 심), 자성을 깨우쳐 성불케 한다(견성성불: 볼 견, 성품 성, 이룰 성, 부처 불).
마음은 무엇이고 자성은 무엇이며 성불은 무엇인가. 한 물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마음은 사고와 감정의 밑바닥에 고요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건 유심(오직 유, 마음 심)이고 자성(스스로 자, 성품 성)인 것이다. 부처는 마음, 자성의 완전함이다. 분별을 끊어낸 각성, 반야를 이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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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을 죽였는가 - 이덕일
누가 왕을 죽였는가 - 이덕일
2장 제14대 선조
주상의 뜻
선조는 왜란이 막바지에 다다른 1596년 명나라가 자신을 폐하고 광해군을 국왕으로 책봉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전위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광해군과 대신들이 무려 아홉 번이나 청한 후에야 뜻을 거두었을 정도로 선조는 의심 많은 부왕이었다. 정유재란이 끝난후인 1600년 의인왕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선조는 그2년 뒤 쉰한 살 되던 해 김제남의 열아홉 살짜리 딸을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녀가 바로 인목왕후이다. 그런데 국혼4년 후에 인목왕후가 왕자를 낳으면서 조정엔 세자를 둘러싼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이때 태어난 영창대군은 선조가 바라 마지않던 정비 소생이었던 것이다.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영의정 유영경은 백관이 하례한다고 주장했다. 좌의정 허욱과 우의정 한응인이 "대군 한 명을 낳았다고 반드시 하례할 것까지야 있겠소?"라고 반대해 하례는 중지되었으나 유영경의 이 행위는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갓 태어난 대군에게 백관이 하례하는 것은 광해군의 지위를 흔드는 행위였다. 유영경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과 임영대군이 태어났을 때 백관들이 하례한 전례를 근거로 들었지만, 세종 때는 세자나 광평대군이 모두 정비 심씨의 소생이었으므로 후궁 소생의 광해군이 세자로 있는 지금과는 경우가 달랐다. "유영경이 주상의 뜻에 따라 대군의 지위를 튼튼히 하려고 한 것이다." 시중에 이런 소문이 떠돌았다. 갓 태어난 대군과 이미 성인인 세자 사이에 갈들이 싹틀 때 관건은 '주상의 뜻'에 있었다. 그러나 나라가 백척간두에 놓였을 때 "오직 바라는 바는 세자가 옛 판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면 "종이를 대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말할 바를 아지 못하겠다"던 선조의 마음은, '도루목'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던 그 입맛처럼 평화를 만나니 다시 바뀌고 말았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선조가 광해군을 흔든 표면적인 명분은 명나라가 세자 책봉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서울로 환도한 이후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광해군의 세자책봉을 청하는 사신을 보냈으나 명나라는 번번이 거부했다. 그 이유는 임해군을 제치고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은 차례를 뛰어넘은 예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진짜 이유는 명나라 내부의 권력 투쟁에 있었다. 명의 신종(재위 1572-1620)이 둘째 아들 복왕 상에게 뜻을 두고 맏아들인 광종을 세우려 하지 않자, 명의 예부에서 신종의 맏아들 광종을 위해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선조의 속마음은 맏아들 임해군이 아니라 갓 태어난 영창대군에 있다는 점에서 명나라의 책봉 거부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의인왕후가 사망한 후, 예관이 다시 사신을 보내 세자 책봉을 청하자고 주청하자, 선조는 "왕비 책봉은 청하지 않고 세자 책봉만 청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며 벌컥 화를 냈다. 이를 본 신료들은 선조의 마음이 광해군에게 떠난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광해군측에서 마음이 급해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광해군이 폐세자되고 정비의 아들이 세자가 되면 광해군은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없었다. 인목왕후측에서 기록한 <계축일기>는 이때 광해군의 장인 유자신이 인목왕후를 낙태시키기위해 대궐 안에 돌팔매질도 하고 나인측간에 구멍을 뚫고 나무로 쑤시는 등 수많은 방해공작을 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방해 공작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쨋든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났다. 만일 영창대군이 장성할 때까지 선조가 생존했다면 비극의 주인공은 광해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젯밤에 편히 잤다
재위 40년 가을 들어 선조의 병세가 갑자기 심해졌다. 약방의 온작 처방에도 효험이 없자 가망이 없음을 알아차린 선조는 전위 전교를 내리기 위해 세 정승을 불렀다. 그때 영창대군의 나이 겨우 두 살이었다. 서른네 살의 장성한 세자를 폐하고 강보에 싸인 두 살의 아이에게 왕위를 넘길 수는 없었다. 결국 선조는 광해군에게 왕위를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영창대군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영의정 유영경의 소북세력은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유영경은 선조가 세 정승 모두가 아니라 자신만 불렀다며 선조와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선조는 비망기를 내린다.
"지금 병에 걸린 지 1년이 다되어가는데 차도는 없고 더욱 침중하다. 세자가 장성했으니 고사에 의해 전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전위가 어렵다면 섭정도 가하다. 군국의 중대사는 이처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거행하는 것이 좋겠다."
'장성한 세자', 즉 광해군에게 전위나 대리청정을 시키겠다는 비망기였다. 죽음을 눈앞에 둔 선조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유영경은 이 전교를 받기를 거부했다.
"오늘의 전교는 실로 여러 사람의 뜻 밖에 나왔으니 감히 받들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영경은 같은 소북인 병조판서 박승종과 공모해 대궐을 에워싸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날 뜻밖에도 중전 인목왕후가 한글로 내지를 내려 저위를 지지하고 나선다.
"상께서 병중에 계신 지 거의 1년이 되어가니 심기 불편함이 배나더하다. 지금 이 전교를 따르지 않는다면 심기가 더욱 손상되어 환후가 더욱 위중하실까 염려된다. 대신은 상의 명을 순순히 따르라 이것을 바랄 뿐이다."
유영경, 허욱, 한응인 등 세 정승은 전교 받기를 거부하고 나섰다. 광해군과 대신 사이에 전운이 감돌았으나 세자가 명을 받겠다고 스스로 나설 수는 없었다. 이때 대북에서 소북 유영경을 공력하고 나선 인물은 전 공조참판 정인홍이었다.
"신이 삼가 길에서 듣건대 지난 10월 상께서 전섭한다는 전교를 내리자 영의정 유영경이 원임대신을 다 내쫓아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유독 시임대신과 공모하였으며, 중전께서 언서의 전지를 내리자 '금일 전교는 실로 여러 사람의 뜻 밖에 나온 거사이니 명령을 받지 못하겠다'고 즉시 회계하여 대간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유영경은 무슨 음모와 흉계가 있어서 이토록 중대한 일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세자를 동요시키고 종사를 위태롭게 한 영경의 죄를 빨리 정당한 형벌로 다스리소서."
그러나 선조는 오히려 정인홍을 꾸짖었다.
"정인홍이 세자로 하여금 속히 전위를 받게 하려고 하였으니 그 스스로 모의한 것이 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실은 불충함이 극심하다. 제후의 세자는 반드시 천자의 명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세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세자는 책명을 받지 못했으니 이는 천자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고 천하도 알지 못한다. 지금 인홍의 상소 때문에 위로는 내 마음이 불안하여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는 밥을 먹지 못한다."
병세가 조금 나아지자 선조의 마음이 또다시 변한 것이다. 정인홍은 이 일로 귀양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이 선조의 성격이자 통치술이었다. 선조는 동.서인은 물론이고 아들 광해군도 믿지 못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에 발생한 정여립 옥사사건(기축옥사)을 살펴보면 선조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기축옥사는 흔히 반란 사건으로 불리지만 사실 그 증거도 불분명한 사건이었다. 허목은 이 사건으로 무려 1천여명의 호남사대부들이 화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6세기 중반의 조선 인구가 채 5백만이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어머어마한 규모였다. 이렇게 많은 사대부들을 명확한 증거도 없이 죽인 선조는 훗날 이런 말로써 자기 부정을 한다. "내가 흉한 성혼과 악독한 정철에게 속어 어진 신하들을 죽였구나." 그러나 선조는 이른바 흉혼독철에게 속아 무고한 신하들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선조는 이이의 제자로서 서인이었다가 동인으로 당적을 옮긴 정여립의 전력을 이용해 당시의 집권당인 동인을 약화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옥사를 확대한 것이었다. 정여립 사건때 화를 입은 사람들은 선조를 "시기심이 많고 고집이 세며 모질어서 같이 일을 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거나 "과팍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선조는 이렇듯 남이 예측할 수 없는 괴팍성을 왕권 강화에 기용한 인물이었다. 정인홍의 상소 이후 선조는 광해군이 문안할 때마다 "명의 책봉도 받지 못했는데 왜 세자라고 칭하는가? 너는 권봉한 것일 뿐이니 앞으로는 문안하지 말라"고 꾸짖었다. 꾸중을 들은 광해군은 땅에 엎드려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광해군을 쫓아내기에는 선조의 병세가 너무 깊었다. 드디어 재위 41년 1월 선조의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그해 2월1일에는 "어젯밤엔 편히 잠을 잤다"고 말해 병세가 호전되는 줄 알았으나 오후부터 갑자기 악화되어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날 선조의 임종을 지민 유일한 인물이 인목왕후라는 점이다. 그녀는 영의정 유영경등이 "전례에 따르면 부인은 임종을 볼 수 없다"고 말하는 데도 선조 곁을 떠나지 않았다. 왕비와 대신이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으므로 대신들이 밖에서 기다리는데, 잠시 후 곡성이 밖에까지 들렸다. 다사다난하고 파란만장했던 선조 시대는 이처럼 후계 문제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른다섯 살의 세자 광해군이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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