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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17 호
단기 4340. 12. 29 (음력 11. 20)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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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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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지하철ㆍ전철 에피소드 공모전
● 응모부문 - 에피소드 하나 : 지하철 전철 이용중에 일어났던 따뜻한이야기 - 에피소드 둘 : 지하철 전철 이용중에 일어났던 재미있고 황당한 이야기 - 에피소드 셋 : 지하철 전철 문화성숙을 위한 제안의 글(안전질서 의식 등)
● 응모방법 - 응모부문 중 선택하여 200자 원고지 12 ~ 20매(A4 2~3장)분량의 내용을 적어 온라인 이나 우편으로 접수
● 응모기한 - 2008년 1월 19일까지 마감 * 우편접수는 마감당일 도착분까지 유효합니다.
● 응모접수처 - 온라인 접수 : www.iscu.ac.kr(각 주최사 홈페이지 참조) - 우편접수 : 110-600 서울시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2223호''지하철 전철 에피소드 담당자 ''앞
● 심사기준 1) 지하철 이용관련 따뜻한 이야기 - 내용의 진정성(사실성과 감동) - 내용의 구성(전달력) - 내용의 독창성(주목도)
2)지하철 이용관련 재미있는 에피소드 - 내용의 독착성(주목도) - 내용의 구성(전달력) - 내용의 진정성(허구인지 아닌지)
3)지하철 문화성숙을 위한 제언 - 내용의 문제의식 - 내용의 구체성 - 내용의 대안성
● 심사방법 1) 예심 - 우편접수인 경우 - 온라인접수의 경우 2) 본심 - AM7편집국장,민족문화작가회의 추천인사 1명, 서울사이버대학 추천인사 등 총3명으로 본심위원을 구성 - 선정된 본심대상작을 대상으로 최종 수상 작품을 선정함
* 네티즌추천상은 네티즌추천 + 심사위원 심사결과를 합산하여 선정됩니다. (※ 네티즌주천상은 추천인 중 주민등록생성기 및 동일IP추천증의 인위적 추천수 조작은 수상에서 제외됩니다.) * 제출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으며 선정작의 저작권은 문화일보 AM7과 서울사이버대학에 귀속됩니다. * 수상작 및 응모작은 잡지,단행본 및 온라인상으로 게재되어 홍보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
● 시상내역 - 대상 1편(문화일보 사장상 AM7) : 상금 400만원 및 상패 - 최우수상 1편(서울사이버대학교 총장상) : 상금 300만원 및 상패 - 우수상5편(주최사 사장상) : 상금 각 100만원 및 상패 - 가작 20편 : MP3플레이어 및 화장품세트(DHC 스킨케어 세트) - 네티즌 추천상 2편 : 네비게이션(맥스스톰) * 제세공과금은 수상자 본인 부담
● 문의 및 접수처 - 문의 : 02-3272-0109(지하철 전철 에피소드 공모전) - 접수처 : 서울사이버 대학교 홈페이지(www.is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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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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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은 울리는 종을 멈추려는 것과 같다. /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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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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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1.사물을 바로 보는 눈
혁명에 대하여
혁명은 장미향수 같은 감상적이고 미적지근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혁명은 이상이나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
1789년 프랑스 외회는 국왕 루이 16세에게 의회에 출두하여 서정쇄신에 대한 공약을 하라고 촉구하였으나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는 1791년 9월 의회의 끈질긴 요구에 굴복하여, 봉건제를 철폐하고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였으나, 실질적인 개혁에 비협조적이고 오히려 의회 내의 왕정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 하였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누적된 사회문제, 부정부패, 국제적 전쟁 떼문에 도탄에 빠져 있었다. 마침내 1793년 의회는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를 수습하기 위하여 공화정을 선포하고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아네트를 길로틴이라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였고, 이로써 프랑스 혁명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길로틴과 로베스피에르 단두대인 길로틴은 프랑스 사람 길로틴이 사람의 목을 빠른 시간 내에 자를 수 있게 고안한 것으로, 그는 기계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나, 자신도 길로틴에 의해 목이 잘리는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하여간 누적된 부정과 부패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방법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권력을 잡자 서정쇄신이라는 명목으로 수천 명을 단두애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의 철권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극단적인 정치행위는 더욱 큰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와 민심의 이반을 일으켰고, 그 역시 1794년에 길로틴에 목이 잘렸다. 길로틴에 목을 대고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천명의 생명을 무참하게 죽인 자신의 잘못을 신에게 용서를 구하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고 지금 죽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되새겼을까? 프랑스는 그가 처형되고 난 후 일종의 회복기에 들어갔지만 그가 남긴 악의 씨앗은 향후 25년간 치료할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가 죽고 난 후 프랑스 정치는 음모와 중상모략이 판을 치며 더욱 부패되어 갔고 날마다 팽창하는 통화는 누구도 억제하지 못했다.
나폴레옹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섬 태생의 포병 지휘관 나폴레옹 보나파트는 이러한 혼란한 시기를 적절하게 이용하였고 1799년 쿠테타를 일으켰다. 나폴레옹은 강력한 지도력을 원하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의 질서를 회복시켰다. 하지만 조세핀을 부인으로 맞아들이고, 1804년에는 스스로 자기 머리에 황제 왕관을 올려, 프랑스에는 다시 왕정이 부활되었다. 혁명은 장밋빛 이상향 건설에 목표를 두기 때문에 이루어지기 힘들다. 혁명 공약도 혁명이 실패했을 때, ‘그래도 그 뜻이나 동기가 좋았다’는 한마디를 남기기 위한 의미 밖에는 없다. 세계 어느 나라 혁명을 보든 간에 ‘공약대로 된 혁명’은 하나도 없다. 혁명 주동자들은 구악을 없앤다고 혁명을 일으켜 구악보다 더한 신악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경의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고 있다. “더러운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귀신은 ‘내가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하고 가보니 그 집이 비고 깨끗이 소제되고 정돈되어 있었다. 그 귀신이 자기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그곳에 들어가 살자 그 사람의 상태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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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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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4장 - 흉내내기와 사교성
사고를 방해하는 것(II)
1. 흉내내기와 사교성
우리들의 의식의 안쪽을 만일 들여다볼 수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 놀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가지각색의 해로운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생충은 어느 종류를 집어내 보아도 우리들의 사고를 방해하는 백해무익한 것들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당신의 의식 속에 집을 짓고 있는 기생충을 지금 곧 없애 버리자.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 '벌레'의 생태를 조사하려면 신중하고도 세심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벌레란 때로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지도 모른다. 어떤 벌레가 있는지를 알아보자.
2. 백해무익한 것
가) 남의 흉내내기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벌레이다. 이 '남의 흉내를 낸다'고 하는 것은, '성질' 또는 '천성'이 아니다. 성질과 같이 보일지는 모르지만 벌레임에는 틀림없다. 성질은 고치기가 몹시 어렵지만 벌레 같으면 떼어버릴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사람 흉내내기가 자리잡게 되었을까? 우선 어린아이 때의 이미지가 어떻게 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는가를 보자. 그것은 마치 대도시의 새벽녘의 동틀 무렵에 비유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 맑디맑은 공기와 상쾌한 고요 속에 싸인 여명의 한때를 생각해 보자. 뭐든지 방금 '태어난 듯이' 보이는 신선함과 소란과 소용돌이, 따분한 '일상생활'이 시작된다. 어릴 때의 이미지는 이와 같은 대도시의 낮처럼 잡다한 것의 혼합물이 없기 때문에 '첫인상'이란 것이 강하게 또 선명하게 어린아이들을 사로잡는다. 매개물이라고 하는 장애물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도 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부모들은 어린이들의 관찰의 예리함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이 '흉내내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열 살 경부터이다. 이 변화는,
#1 어른 같은 '말씨나 태도' #2 틀에 박힌 발음이나 말투 #3 짐짓 무관심한 체하는 것 #4 거짓말에 대한 관심과 같은 형태를 취하면서, 대체로 갑자기 나타나게 된다.
소녀의 경우는, 이른바 '조숙'한 듯한 포즈의 대한 관심이 깊어지는 시기이다. 요컨대 어린아이들은 자연스러워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소년들은 그들대로 어른 티를 내려고 노력한다. '어른에 대한 동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에 비례해서 '티없이 맑다'든지 '귀엽다'든지 하는 성질은 두드러지게 줄어든다. 영혼의 순진함, 때묻지 않음이 상실되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아이들의 '흉내내기'의 표본은 어른들이다. 이렇게 해서 기생하기 시작한 '흉내내기 벌레'는 '숙주'의 성장에 따라 한층 더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
처음으로 바다를 보고도 놀라지를 않았다고 하는 따위의 놀랄 만한 무신경이 되는 것도 대체로 12, 13살쯤 되어서이다. 이미지를 생생하게 파악하는 힘이 시들기 시작한 것이다. 감수성이 약해지면, 자연히 행동도 '될 대로 되라'는 수동형이 되고 만다. 그는 다분히 어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될 수 있는 대로 비슷한 생활 방식을 선택하게 되겠지요. 남의 것에서 '빌어 온' 사상, 태도나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안일' 속에 평생을 바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저 '남의 흉내내는 벌레'를 물리치는 방법을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다. 어떤 방법이 시도되고 있을까? 우선 교육의 감화력을 들 수가 있다. 어린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교육할 기회를 주는 일이다. 미국의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될 수 있는 대로 속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학교도 또한 될 수 있는 대로 이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얼른 보기에도 그럴듯한 이야기 같은데, 나에게 말하게 한다면, 이것은 쓸데없는 노릇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어린아이 자신의 맹종이라는 습관에 강하게 묶여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다른 역사가 오랜 여러 나라도 같지만-흉내를 내거나 얼마간의 불성실성이 오히려 권장되고 있는 터이다. "아빠를 본받아야 된다" "애야, 넌 자기 생각만을 자꾸 고집하면 못써요..."라고 언제나 이런 식인 것이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대신에 흉내를 낼 '본'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꼭 들고나오는 것은 사람 좋은 필랑뜨(몰리에르의 극 "사람 싫어하기"의 주인공)이다. '내'가강한 아르세스뜨(같은 작품에 나오는 사람 싫어하기의 전형)는 물론 낙제이다. 과연 필랑뜨는 바보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다 깊이 통찰하고 있는 것은 아르세스뜨 쪽이다. 이렇게 벌레에서 기생 당하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딱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사교성
'사교하기 좋아한다'는 것은 끼리끼리 모이려고 하는 인간의 하나의 약점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도 모방성의 일종이다. '군거성'은 '남의 흉내내기'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 나가 '사람에게 의존하는' 기분이 있고, 이 경향은 그냥 내 버려두면 제멋대로 비대해지기 쉽다. 특히 미국인들은 이 경향이 두드러진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당면했던 저 고독한 환경이 도리어 박차를 가했다고나 할까? 어찌되었건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사교적인 국민이다. 두 사람만 모이면 싫증나는 줄 모르고 지껄여 대는 것이 미국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기회를 이용한다. 구실이 없더라도-아니 그것을 어떻게 해서라고 감쪽같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그들의 주특기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만나서 담소하는 기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친해진다'는 출발점에 던져진 물 한 방울은 같은 것 끼리를 모아서 '친구'가 되고 다시 커다란 집단으로 되고... 이렇게 물의 파문이 퍼져 가듯이 커 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들 내지 집단은,
#1 공통된 취미를 기른다. #2 공통된 이익을 가진다. #3 유연성(유사성과 비슷하나 인연도 포함됨)을 발전시키고 확대한다. #4 통일된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인 운동을 펼친다. 와 같은 순서를 좇아서 순식간에 한 개의 거대한 세력이 되어 버리곤 한다.
소수의 의견은 어떻게 다루어지는 것일까? 무시되어지는 것이면 행복한 편이다. 나쁜 경우에는 발길로 채이고 만다. 나의 조국(프랑스)에서 미국에 이주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흑인에 대해서 거의 비슷한 '편견'을 품고 있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주하기 전에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위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에 이주해 온 이후로는 집단의 압도적인 감화력이 극히 자연스럽게 이주민들의 마음을 바꾸어 버렸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들도 '집단'의 한 사람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래서 극히 자연스럽게, 다시 말하면 자발적으로 그룹의 회원과 같은 이미지를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발성'은 겉으로만 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안이한 태도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집단에 몸을 맡겼을 때에는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데서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진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열심히 생각하지 않아도, 집단 전체로서의 사상이 만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마치 자기도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쉽다는 점이다. 이 군거성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개인주의란 것이 있다. 개인주의는 그 정도가 지나치면 민주주의의 통일성을 위협하기 쉽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러나 진실된 개인주의는 뭐니뭐니해도 민주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가 되는 것이다. '집단'의 마력에 휘말려 들어가서 결국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는 권리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우리들은 스스로 경계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군거'를 원하는 우리들의 마음의 약함에 주의를 주는 한 방법으로 '시간 분할의 관념'에 언급하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시간이란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심의 눈을 가지고 바라본 사람이 있을까? 달력이나 시계의 효용은 여기서 새삼스럽게 다시 고쳐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간분할이라는 편리한 것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들의 사회생활이 정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우리들은 시간의 노예라는 관심도 또 성립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에 매이게 되는 '집단'이라는 것도 하나의 진리인 것이다.
모파상(1850-1893, 프랑스의 작가)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매초마다 우리들의 생명은 갉아 먹히고 있다. 해마다 또 생일이 바위처럼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있고...' 오스카 와일드(1856-1900, 영국의 극작가)에 의하면, '늙은이의 비극은 자기만은 아직 젊다고 느끼고 있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관념=허구라는 공식을 털어 버리려면, 천재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쪽에서 하는 노력은 자칫하면 중단되기 쉬우나 허구는 끊임없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부터 눈과 귀를 통해서 계속해서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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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글터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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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다
본뜻 : 신체의 원동력인 기가 막혀서 잠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를 이른다.
바뀐 뜻 : 몹시 좋은 것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을 보았을 때, 또는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쓰는 말이다. 흔히 '귀가 막히다'로 알고 있는데 '귀'가 아니라 운기를 나타내는 기가 맞는 말이다. 비양거릴 때에는 '깃구멍이 막히다'란 말도 쓰는데 이때도 역시 '귀구멍'이 아니라 기가 들락날락 거리는 통로를 뜻하는 '깃구멍'으로 쓰인 것이다
"보기글" -이 집 보쌈김치는 맛이 기가 막히다니까 -집주인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쳐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으니 기가 막힐밖에
깨가 쏟아지다
본뜻 : 깨는 다른 곡물과는 달리 추수할 때 한 번 살짝 털기만 해도 우수수 잘 떨어진다. 이처럼 추수하기가 쉬운 까닭에 깨를 털 때마다 깨 쏟아지는 재미가 각별하다.
바뀐 뜻 : 오붓하고 아기자기하여 매우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흔히 재미있는 일이나 신혼 초기의 생활 등을 얘기할 때 깨가 쏟아진다는 표현을 쓴다.
"보기글" -감나무 집은 언제 봐도 깨가 쏟아진단 말이야 -김 과장 신혼 재미가 깨가 쏟아지나 보지?
개보름
음력으로 그 달의 열닷새째 되는 날을 ‘보름’ 또는 ‘보름날’이라 부른다. 일 년에 열두 보름 중 대표적인 것이 정월 대보름과 팔월대보름이다.정월 대보름에는 새벽에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물며 묵은나물과 오곡밥 따위를 먹는다. 팔월 대보름은 ‘한가위·추석’이라 부르는데,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둘 다 명절이어서 선조들은 다른 날보다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배불리 먹었다. 정월 대보름과 관련된 말로 ‘개보름’이라는 말이 있는데, 큰사전에는 아직 오르지 않았다.
“어허, 까딱했더라면 농민군들 보름이 개보름이 될 뻔했는디, 충청도 큰애기 덕분에 보름 한 번 걸게 쇠어 보겄네.”(송기숙 〈녹두장군〉) “게다가 농촌에까지 신정을 쇠어 봐라. 그야말로 대보름이 개보름이지?”(이문구 〈산 너머 남촌〉) “당신 안 가면 개보름 쇨까 싶어 그래?”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한승원 〈해신의 늪〉)
‘개보름’은 ‘남들이 다 잘 먹고 지내는 날에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지내게 된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지난날, 정월 대보름날에 개한테 음식을 먹이면 그해에 파리가 끓는다고 여겨 개를 매어 두고 음식을 먹이지 않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팔월대보름은 윤칠월로 늦들어 햇곡식 햇과일이 풍성한 한가위였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다르다와 틀리다
사뭇 다른 말인데 요즘 너나없이 헷갈려 쓴다. 이는 국어사전 탓이 아니다. 사전들은 헷갈리게 풀이하지 않았다. 이것을 헷갈리도록 한 것은 내것을 팽개치고 남것만 좇아서 살아온 우리네 삶이지만, 국어교육 탓도 들추지 않을 수 없다. 국어교육이 줄곧 우리말의 노른자위인 토박이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드러나는 모습을 서로 견주어 풀이하는 그림씨 낱말이고, ‘틀리다’는 해놓은 일을 과녁에 맞추어 가늠하는 움직씨 낱말이다. “한 가지에서도 아롱이 조롱이가 열린다더니 같은 부모한테 난 언니 아우가 어찌 저리 다를까?” “아니, 어제 내가 다시 해놓은 계산에서도 틀린 데가 있었습니까?” 보다시피 ‘다르다’는 언니와 아우의 모습을 서로 견주면서 쓰고, ‘틀리다’는 해놓은 셈을 사실이라는 과녁에 맞추면서 썼다.
두 낱말이 헷갈리는 데는 까닭이 있다. 둘 다 견주기를 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도 견주기를 해서 나타나고, ‘틀리다’도 견주기를 해서 가려낸다. 그러나 ‘다르다’는 두 가지를 서로 견주어 나타나고, ‘틀리다’는 과녁이나 잣대와 견주어 드러난다. 아무런 잣대도 없이 두 가지를 나란히 견주면 ‘다르다’와 ‘같다’로 갈라지고, 어떤 과녁이나 잣대를 세워놓고 거기에 견주면 ‘틀리다’와 ‘맞다’로 가려진다. 이런 뜻가림을 내버리고 요즘은 덮어놓고 ‘틀리다’고만 한다. 그만큼 마음은 무뎌지고 삶도 거칠어진 것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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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6. 기러기의 큰 날개를 가졌어도 때를 만나지 못한다면(공손홍, 원고생, 동중서)
3) 3년 동안 집안 뜰조차 쳐다보지 않다(동중서)
동중서는 "춘추"에 정통하여 경제 때 박사에 임명되었다. 그는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속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제자를 가르칠 때는 선배가 새로 들어온 학생을 가르치는 식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동중서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동중서는 3년 동안이나 장막 속에 들어앉아 자기 집 정원조차 못 볼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였다. 그는 모든 행동거지에 있어 예의에 맞지 않는 일은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문을 하는 선비들은 모두 그를 스승으로 존경했다. 그 후 무제가 즉위하자, 동중서는 강도 지방의 재상이 되었다. 이때 그는 천재지변에 관심이 많아 "춘추"의 원리에 따라 음과 양, 두 기운이 서로 운행하는 이치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비를 오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양기를 닫아 버리고 음기를 발산시켰으며, 비를 그치게 하는 데는 그 반대로 하였다. 이런 식으로 강도 지방 전역에서 시행해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무렵 우연히 요동 지방에 있는 고조의 사당이 불탄 적이 있었다. 이때 동중서를 평소 미워하고 있던 주보언이 그의 책을 훔쳐 황제에게 올렸다. 이에 황제는 여러 학자들을 불러 검토하게 하였는데 맹렬히 비난하는 자가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동중서의 제자였다. 그는 그 책이 스승이 쓴 것인 줄도 모르고 저속하고 어리석은 내용으로 가득 찼다고 비난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황제는 동중서를 옥리의 손에 넘겨 처형시키려 했지만, 얼마 후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 뒤부터 동중서는 다시는 천재지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동중서는 사람됨이 청렴하고 정직했다. 그리고 학문에 뛰어났다. 공손홍조차도 "춘추"의 연구에 있어 동중서를 따르지 못했다. 그런데 공손홍은 세상의 흐름에 맞춰 처신함으로써 벼슬이 승상까지 올랐다. 그래서 동중서는 공손홍을 아첨배라고 생각했으며, 공손홍 역시 동중서를 미워했다. 어느 날 공손홍은, "동중서만이 교서왕의 재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황제에게 아뢰었다. 교서왕은 포악하기로 이름난 제후로 많은 신하를 죽였다. 즉 공손홍은 동중서를 교서왕에게 보내 죽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서왕은 평소부터 동중서가 덕행이 높은 학자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그를 잘 대접하였다. 동중서는 몇 년간 교서왕 밑에서 일하다가 무사히 그만두고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동중서는 죽는 날까지 집에서 오직 글쓰는 작업에만 몰두했다. 실로 동중서만이 "춘추"에 정통했던 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학문은 "공양전"에 전해오고 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가 일어난 지 80여 년, 천자의 마음은 바야흐로 학문에 쏠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훌륭한 인재를 모아 유가의 학문을 넓히려 하였다. 그 인재들은 모두 기러기와 같은 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새나 제비 따위에게 시달림을 받아 돼지나 양을 치면서 살아야 했다. 만약 그들이 때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높은 지위에 오르며 그 이름을 만세에 드날릴 수 있었겠는가. 공손홍도 "춘추" 하나를 가지고 한낱 돼지 치는 평민에서 제후가 되었던 것이며, 이를 계기로 한나라에는 커다란 학문의 바람이 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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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3부 활성산소 피해를 최소화한다 제 2의 항산화벽
토코페롤의 보좌관, 비타민C와 조효소 큐
프리라디칼이 공격하는 세포막지질 성분은 다가불포화지방산이다. 그런데 우리 세포막에는 1천개 정도의 다가불포화 지방산마다 이를 지켜 주는 토코페롤은 1개밖에 없다. 때문에 1천개의 다가불포화지방산이 프리라디칼의 융단폭격을 받는 것을 막으려면 다른 항산화제가 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비타민C와 조효소 큐이다.
비타민C는 한번 써 먹은 토코페롤을 다시 재생시켜서 세포막의 항산화 방어벽이 계속 유지되도록 한다. 탈진된 토코페롤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수비대장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주고난 후에 비타민C는 자기들끼리 만나서 다시 원기를 회복하기도 한다.
세포막에서 연쇄사슬반응 분쇄작용을 하는 또 다른 항산화제가 조효소 큐라는 물질이다. 이것은 원래 세포내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에너지를 만들 때 필요한 단계인 전자전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이외에 또 항산화제 작용도 한다.
아직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조효소 큐는 두가지 방법, 즉 세포막에서 생긴 프리라디칼을 직접 제거하는 일을 하든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하는 토코페롤을 도와 줌으로써 항산화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조효소 큐가 풍부한 식품에는 대두기름, 정어리, 고등어, 밀배아, 시금치, 양파 등이다.
세포막의 수리공들
스리라디칼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하는 세포막은 영영 원상 복구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몸은 망가진 세포막을 고치고 새것으로 바꾸는 일을 할 수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과산화지질로 변질, 손상된 세포막 부분을 수리하는 것이다. 프리라디칼의 공격에 의해 이미 변질이 되어 버린 부분은 썩은 환부와도 같다. 때문에 완전히 도려내어 없애야 한다. 세포막에서는 지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하여 과산화변질이 된 부분을 도려낸다. 동시에 제거가 되어 떨어져 나온 과산화지질을 글루타치온 페록시다제의 작용으로 분해시킨다. 그 후 도려낸 환부 부위를 정상적인 물질로 메꾸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것이다. 인체의 세포는 한번 생기고 난 뒤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헌 것은 끊임없이 제거되고 새것으로 교체되므로 이런 과정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과산화지질을 제거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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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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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임진왜란을 예고한 남사고
남사고(1508-1571)의 본관은 영양이며, 호는 격암이다. 그는 풍수, 천문, 복서, 상법에 있어서 유전되지 않은 비결까지 모두 터득하였다. 그가 젊었을 때에 울진에 있는 불영사로 가다가 길에서 전대를 짊어지고 서 있는 어떤 중을 만났다. 그 중이 지고 있는 짐을 남사고가 타고 있는 말에다 얹어 달라고 애원하므로 남사고가 허락하여 얹어 주었다. 함께 불영사에 이르러 부용봉에서 놀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는데 중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크게 지르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 지나자 그의 코 끝부분이 처음으로 드러나더니 점차로 온 몸이 드러나면서 말하였다.
"두렵지 않은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소" "그대가 겁을 내지 않으니 가르칠 만하다" 중이 그에게 비결을 주며 말하였다. "그대는 비범한 골격을 지녔으니 힘쓸지어다" 중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어디론지 떠나 버렸다. 남사고가 이때부터 천지 조화의 심오한 비밀을 환히 보게 되었다. 만년에는 천문학 교수로 서울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태사성 주위에 테를 두른 모양의 빛이 보여 불길한 징조를 예고하였다. 관상감 정 이번신이 모든 일을 자신이 떠맡겠다고 하였다. 남사고가 웃으면서, "떠맡을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하고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손곡 이달이 통곡하며 시를 썼다.
난새와 봉새 같은 인물이 저승으로 훌쩍 떠났는데 그대가 다듬어 놓은 장막 아래 다시 누가 있는가 사위와 제자들 유고를 수습하니 옥골의 복숭아꽃은 만세토록 봄이구려
격암이 일찍이 새벽에 동쪽을 향하여 주문을 외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살기가 등등하다. 임진년에 왜적이 반드시 크게 이를 터인데 나는 미처 보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서울의 지형을 이렇게 논하였다. "동쪽에는 낙봉이 있고 서쪽에는 안현이 있어 서로 다투는 형상이니 틀림없이 동쪽, 서쪽의 다툼이 있을 것이다. '낙'자를 풀어 보면 '각마'가 되니 반드시 분열되어 제각기 설 것이고, '안'자를 풀어 보면 '혁안'이 되어 위태로웠다가 편안해지니 서인은 처음에는 위태롭다가 나중에는 편안해질 것이다" 뒤에 그 말이 과연 들어맞았다. 격암이 또 예언했다. "사직동에 왕기가 있어 종묘사직을 중흥시킬 임금이 반드시 그 구역에서 나올 것이다" 그 말대로 선조가 그곳에서 살다가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임진왜란을 평정하여 종묘사직을 중흥시킨 임금이 되었다.
남사고가 자기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명당을 구해서 장사를 지낸 뒤에 그 묘터를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묘자리를 여러 번 옮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한 묘터를 얻게 되었는데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는 용이 날아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비룡상천의 형국이었다. 남사고는 너무 좋아 그의 아버지 유해를 그곳으로 옮겨다 장사를 지내며 흙을 퍼다가 봉분을 쌓았다. 이때 일을 거들던 한 일꾼이 노래를 불렀다.
"아홉 번을 옮기고 열 번 장사지내는 남사고야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만 생각하지 마라. 말라 죽은 뱀이 나뭇가지에 걸린 형국이 여기가 아닌가"
남사고가 듣고서 놀랍고 이상하여 산 형세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과연 죽은 내룡이었다. 급히 그 일꾼을 따라나섰지만 갑자기 보이지 않고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당이란 제각기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어서 억지로 차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제야 남사고가 탄식하고, 겨우 피해가 없는 정도의 묘터를 가려 다시 옮겨 장사지냈다.
남사고가 젊었을 적에 여러 번 향시에는 합격하고서도 회시에는 낙방을 하므로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자네는 왜 남의 운명은 잘 맞히면서 자신의 운명을 잘 맞히지 못하여 부질없이 해마다 헛걸음을 하는가?" "개인적인 욕심이 발동하면 술수가 도리어 어두워지는 법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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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동풍
남의 의견이나 비평이나 충고를 전혀 개의치 않음을 말한다.
이태백의 친구에 왕십이라는 이가 있어 '차가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껴움이 있노라'는 시를 지어 보냈다. 이태백은 그에 답하는 장시를 지어 보냈거니와, 자네처럼 고결하고 뛰어난 인물이 지금 세상에 용납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위로하며 세대를 개탄해마지 않았다. "시속을 보아하니 닭싸움 솜씨가 뛰어나야지만 천자의 총애를 받아 대로를 활보하며 오랑캐의 침공을 막는데 사소한 공이라도 세워야지만 최고의 충신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자네나 나나 그런 짓은 못하며 북창에 기대어서 시를 읊을 뿐이니 제 아무리 걸작을 서본들 한 잔의 물만도 못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듣고 모두 머리를 저으며
"마치 동풍이 말의 귀에 불어치는 격이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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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2. 관음보살상 앞에서
행각기 1
거품이다. 나는 거품이다. 당신도 그리움도 거품이다.
입춘대길이라고 써 붙인 주택가의 대문을 본다.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이미 그 글을 썼을 때 대길(大吉)했노라고.
나는 산 속에 산다. 산짐승처럼 웃는다. 왜이리 배가 고플까. 먹어도 허기진 나의 신성한 배고픔.
홀수로 산다. 위험하게 산자락을 배경으로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모양을 하고.
악. 활구(活句)를 꿈꾸는 나의 사구(死句)들.
눈이 내린다. 토사들의 낙법은 특이하다.
시인에게 편지를 받았다. 주소가 없는 나에게 주소 있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 사진 속의 나는 피골이 상접하다. 편지 속에는 승복을 입은 사내 하나뿐 아무 말도 없다.
나는 콧구멍 없는 소. 나는 눈없는 벙어리. 정신없이 걷다 보니 깨닫고자 하는 마음조차 잊어버렸다.
날이 흐리다. 찢겨진 바람이 불고 느닷없이 자탄에 빠진다. 저 철거민들의 아우성. 나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자조감(自嘲感). 우리들 이웃의 좌절과 절망은 공업(共業)이다. 포크레인의 손을 본다. 힘있는 사람들의 손이다. 내 이웃의 가슴을 찍어누르는.
코피가 묻는 휴지를 쓰레기통 안에 던지고 코앞에 있는 겨울을 본다. 겨울이다. 살자고 살자고 무명을 끌어 안는다.
등잔불, 호야불. 삶은 끝없는 물음표. 나와 달과 별은 아무래도 길이 같은가 보다.
칼장수가 할끔 나를 본다. "스님 빤스줄도 단 한 번에 잘라져. 칼 사시오. 칼을 사." 각목을 칼로 친다. "또 이거 봐." 각목에 박힌 칼을 뽑아 신문지를 말아 썰자 떡국처럼 신문지가 썰린다. 나는 힘없이 돌아선다.
개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짖는다. 뭐라고 하는 걸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언뜻 지나가며 보자 금빛 잉어다. 잉어는 사내가 가지고 온 네모난 강에서 꿈틀거린다.
동네 꼬마들이 환호를 내지른다. 연이다. 고달픈 방랑객의 노독을 풀어 준다. 나를 연줄에 매달아 한 번 하늘에 날려 볼까.
탁발승이다. 목을 타고 나오는 염불가락 처량맞은 영혼. 화엄의 세계다.
만장이 참 많다. 한 노승의 과거를 팔아 장엄하는 한국 불교.
어린 시절 누이가 벗어 던진 살색 스타킹 두 짝, 몰래 손바닥을 넣어 보던 호기심. 찢어진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앞에 간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니다.
잠 못 드는 이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 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길은 길고 멀어라.
불등(佛燈) 아래서 믿음은 공덕의 어머니다. 모든 불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관세음보살을 일념염송할 일이다. 법회에 참석하고 무주상보시하며 계를 지킬 일이다.
'수저는 그릇에 닿아도 음식맛을 모른다.' 법구경에 있는 말이다. 수저는 주인공의 심부름으로 밥과 반찬 온갖 요리를 실어 나르지만 정작 그 맛을 모른다.
가을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저마다 한 소리씩 '나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다. 물소리 바람소리 귀뚜라미 여치. 홀로 몸을 떨며 피어 오르고 있는 촛불. 얼마동안 나는 그렇게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유서라도 쓰려는 듯한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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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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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21. 작은 겨레를 고백하는 까닭 1/2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일
작은 겨레를 고백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답답한 일로서, 때로 삶의 의욕을 줄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관론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런데도 나는 앞에서 우리 겨레가 작아진 역사적 사건들과 우리 역사를 뒤틀리게 만든 역사적 관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독일의 거리를 짓밟고 지나갈 때, 독일의 많은 젊은이들이 비참함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거리로 뛰쳐나와 고함을 지르며 돌팔매를 휘둘렀다. 그러나 한 청년은 그의 다락방에서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낡은 문헌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뒷날 독일 관념론을 집대성하여 유럽정신의 탯줄이 된 헤겔이다. 그는 조국의 현실을 비참함과 결코 외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독일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옛 정신세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마침내 '유럽정신'을 밝혔고, 나아가 '작은 독일'이 '큰 독일'로 발돋움하게 만드는 초석을 닦았던 것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작은 겨레를 고백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에서다. 그러기에 우리는 작은 겨레를 고백하는 것이 비관론과 패배주의를 부추긴다고 보지 않으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조상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우리 처지를 비관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그것은 다만 오늘날 우리 겨레가 놓여 있는 좌표를 바르게 읽어내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설계도를 짜보려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미래를 위한 훌륭한 설계도가 나올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잘못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일까지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겨레의 역사를 되짚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는 참으로 흠집투성이다. 차마 글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았기에, 갈등이 일기도 했다. 어쩌면 그 누구도 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덮어두기를 바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를 앞장서서 외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글을 집필하는 기간이 길어진 데는 아마 그런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역사고백은 이제 우리들에게 너무나 절실하다. 우리는 이제 충분히 좌절하고 충분히 비관하여 충분히 비참해질 시기에 도달한 것이다. 좌절이 패배주의를 낳는 것은 그 속에서 큰 믿음거리를 찾아내지 못한 탓이며, 비관이 의욕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그 속에서 큰 의심거리를 찾아내지 못한 탓이고, 비참함이 굴욕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 속에서 큰 분노를 일으키지 못한 탓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고백은 결코 패배주의나 의욕상실이나 굴욕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고백에는 이미 그런 것을 넘어설 대안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작은 겨레를 고백하게 된 것이다.
작은 눈은 작은 세계를 본다
작은 겨레에 대한 우리의 고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먼저 우리 겨레가 자신의 역사를 얼마나 보잘것없이 누렸던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 역사가 작아진 실제 사건들을 살펴보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물론 실제 사건들에 대한 선택은 매우 제한되었으며,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건들까지 같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역사고백의 길눈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앞에서 살펴본 주제들에는 대부분 두 가지 측면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주제는 우리의 비뚤어진 역사관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치우와 왕검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뿌리를 밝힌 첫 번째 주제와 기자를 빌미삼아 단일민족 사관의 편협함을 밝힌 두 번째 주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먼저 우리는 첫 번째 주제를 통해서 역사의 뿌리가 오늘날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야기하려고 했다. '탄생기와 성장기가 없는 생명체가 어디 있으며, 배꼽 없는 역사를 가진 겨레가 어찌 제대로 커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겨레의 알을 잃어버린 채 끊임없이 작아져 온 것은 뿌리를 잃어버린 겨레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터져나온 처절한 울부짖음이었다. 그리고 이 울부짖음은 좌절이나 비참함에 빠질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희망을 되찾아야 한다는 호소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날을 일러 흔히 세계화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계화의 필수적인 앞단계로서 문화권을 바탕으로 한 지역공동체의 형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두 번째 주제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우리들의 미래를 과거 역사, 특히 기자시대의 역사 속에서 설계해보려는 것이었다. '단일민족의 좁은 울타리를 깨고, 함께 고조선의 구성원이었으며 문화와 혈통 등에서 비슷한 전통을 가진 기마종족 형제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것은 바로 그런 차원에서 더듬어본 우리의 자주적 역사구도였다. 그리고 이 구도는 서구문화의 홍수에 휩쓸리고 중국문화의 잔재에 매달리며 일본 문화의 독침에 허덕이느라 얼이 빠져버린 서글픈 세계화 구도에 대한 도전장이며, 큰 우리를 모르고 작은 우리만 아는 편협한 단일민족 사관에 대한 엄중한 경고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가지 주제를 살펴보면서 찰나라도 잊지 못한 점은 우리 문화의 특징이 다투거나 억누르는 데 있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우리 문화의 정통이 세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우리들의 현실은 분명 밝지 않다. 어떤 이는 아무런 대안이나 근거도 없이 우리의 현실이 밝다고 하거나, 최소한 우리의 현실이 동트기 직전의 어둠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새벽은 그것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들의 몫이다. 스스로 빛을 밝히지 않으면 어둠은 언제까지든 계속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들의 역사적 뿌리가 바로 어둠을 밝히는 참된 횃불이 되리라고 믿으며, 이 횃불이 이미 고조선 시대에 높이 솟았음을 알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 횃불의 정체에 대해서도 약간이나마 밝혀서 우리들의 '역사숙제'로 삼고 싶었다.
커지는 문화, 작아지는 영토
삼국시대로부터 나진남북국시대를 살피는 과정에서 등장한 주제들은 다섯 가지였다. 먼저 우리는 세계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운 기나긴 삼국분열의 시대를 살피면서, 그 시대가 겨레 문화의 체계화 시기임을 밝히려고 했다. 즉 '하늘사상'이라고 표현한 겨레 문화가 어떻게 성숙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 삼국을 비교하기도 하고, 오행사상과 같은 이론적 요소도 살펴보았다. 우리가 이 주제를 살피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이 시대가 고조선의 발전적 복원을 위한 '기마종족 내부 재편성기'였다는 관점이다. 고구려와 신라 및 백제를 기본축으로 경쟁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고 기마종족연맹체의 영역을 확장해갔던 것을 이 시기의 특징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길었던 분열의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외래문화의 수입과 문화 주체성의 변질이었다. 두 번째 주제인 제4장은 바로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이 주제 속에서, 수입문화(특히 불교문화)와 전통문화의 지나친 대립을 고구려의 비극과 연결시킬 수 있었으며, 수입문화가 전통문화를 대체해버린 현상을 백제의 비극과 연결시킬 수 있었고,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수입문화를 소화해낸 저력에서 신라의 생존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시적 관점에서 지나치게 불안정한 문화대립이나 지나치게 안정된(따라서 침체된) 독점문화가 역사발전의 독소가 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지나친 중앙집중화는 결국 겨레 문화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나 백제가 신라에게 무너진 것은 문화적 관점에서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것은 겨레 역사의 또 다른 비극과 연결되었다. 삼국 사이의 경쟁에서 신라의 승리는 먼저 겨레 영토를 좁혀놓았으며, 나아가 고구려와 백제의 주민이었던 여러 기마종족을 겨레 역사의 변두리로 내어쫓았던 것이다. 세 번째 주제인 제5장은 바로 그런 이중적 관점에서 남조신라의 등장과정을 평가하려고 했다. 겨레 영토는 뭍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륙과 반도를 연결시키는 주요한 교통로이며 영토적 안정을 보장해주는 해상지배권도 영토 개념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작은 승리에 도취한 남조신라는 해상 지배권을 지키고 가꾸기는커녕 자신들의 보잘것없는 권력에 집착한 나머지 독자성을 추구하는 장보고의 해상세력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네 번째 주제인 제6장은 그런 관점에서 해상지배권의 중국 한족에게 넘어가는 비극을 되짚어본 것이다. 삼국 사이의 경쟁은 신라의 불완전한 승리로 매듭지어졌으며, 그 결과 새로운 경쟁구도가 등장했다. 신라의 세력이 대동강을 넘지 못하자 그 북쪽에서 고구려의 옛 주민들이 대진국(발해)을 세웠고, 마침내 대진국은 고구려의 옛땅을 어느 정도 되찾음으로써,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대진국이 대립하면서 고조선의 발전적 부활을 위한 제2차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진남북국시대였다.
그러나 대진국도 결국 백제와 같은 문화적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권력의 지나친 중앙집권화, 수입문화(불교문화)에 의한 전통문화의 대체, 나아가 형제종족 사이의 지나친 적대감 조장 등이 대진국의 운명을 낭떠러지로 몰고 갔다. 그 결과 대진국은 같은 기마종족의 한 갈래였던 거란 겨레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다. 대진국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조 신라도 마찬가지여서 마침내 새로운 왕조인 고려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던 바, 제7장은 바로 그런 과정을 다루고 있었다.
어쨌든 삼국시대에서 나진남북국시대에 이르는 시기는 우리 겨레들이 문화적으로 성숙해가는 시기였다. 그러나 해상지배권을 중국 한족에게 빼앗긴 것도 결국 이 시기의 일이었으며, 대륙지배권을 놓고 벌여온 중국 한족과의 대립에서 수세로 몰린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는 한편 문화적 성숙기였으며, 다른 한편 영토적 축소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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