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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14 호
단기 4340. 12. 26 (음력 11. 1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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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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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전국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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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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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람의 야심과 반드시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돼 있지 않은 곳. / 칼 세이건 (미 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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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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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1.사물을 바로 보는 눈
부자들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
예기는 ‘소인은 가난하며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나쁜 짓을 하고, 부자가 되면 교만하고 방자하게된다'고 이르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 어렵지만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는쉽다‘고 하였지만 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소리를 내듯, 실력 없는 사람은 큰소리로 자기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떠들다가 아무런 결과를 못 내고 만다. 짖어대는 개는 물지 않듯, 말이 많은 사람은 그의 에너지가 모두 입으로 나와 버리기 때문인지 실천력이 별로 없다. 하지만 무서운 실력을 갖춘 사람일수록 말이 없다. ‘물어 뜯는 개는 짖지 않는다’는 말이나, ‘조용히 눈만 껌벅거리는 두꺼비가 나는 파리를 잡아 먹는다’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말이 많은 사람도 조심하여야 하지만 말이 전혀 없는 사람도 조심하여야 한다.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잘 까는 사람‘도 앞에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입후보자가 선거운동을 하러 유권자집을 들렀는데 그 집 개가 맹렬히 짖어댔다. 집주인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잖아요? 그러니 걱정말고 들어오세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입후보자는 “예, 그러지요.”하고 대답하면서 “그 속담, 당신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저 개도 그걸 알고 있는지 그것이 걱정되네요.”라고 말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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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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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3장 - 강박관념 또는 열등감 : 사고를 방해하는 것(I)
1. 사고를 방해하는 것
사고를 방해하는 것으로서 제일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말하자면 즉 선천적인 '무능력'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무능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무능력에 관한 문제는 이 책의 독자적인 여러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어떤 장애라도 시달리지 않는 천재에 관해서도, 실상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책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모두 다 일고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바보와 천재의 중간에 있는 우리들과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향상을 바라는 한에 있어서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이 바보도 천재도 아니라는 말은 바로 우리는 사고의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장애물로 들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의 세 가지이다.
#1 강박관념 또는 열등감 #2 남의 흉내를 내는 것과 군거성, 정신적 기생을 만들어 내는 것. #3 교육
정상적인 사고를 이따금 왜곡시키는 것으로는 정열을 빠뜨릴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사고를 창출하는 방법이지, '사고의 안내'가 아니므로 정열의 작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검토하지 않기로 하겠다.
2. 처치 곤란한 기생물
"당신은 자기 마음속으로부터 강박관념 또는 열등감 따위를 자기 스스로 없앨 수 있습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저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강박관념이나 열등감) 때문에 밤낮으로 애를 먹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뭔지 분명치는 않지만, 확실히 그 비슷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이러한 강박관념이나 열등감은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우리들이사물을 생각하고, 따지고, 검토하고 하는 이상은 이와 같은 장해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열등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자. 여기에 평범한 한 청년이 있는데 때마침 어떤 친구가 프랑스 사람과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광경은 매우 '폼 좋게' 보였다. 청년은 크게 자극을 받게 되었다. "응, 나도 하면 되겠지, 안 될 리가 없어" 집에 돌아와서 곧장 학생시절의 참고서를 끄집어내서 먼지를 털었다. 그러나 그의 학습은 낮에 잠깐 들었던 그 친구의 유창한 회화처럼 결코 수월하지는 않았다. 동사의 활용 변화를 외우려고 하니 거추장스럽고 짜증스러웠다. 전에도 동사변화를 못 외우고 내동댕이친 적이 있다. 길고 긴 기초문법을 통째로 외우려면 몹시 짜증스러운 노릇이다. 그래서 청년은 도중에서 점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기억력이 약할 뿐만 아니라 끈질긴 데도 없지. 프랑스어를 꼭 배울 필요가 정말로 있는 것일까? 더구나 해야 할 공부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않은가? 셰익스피어를 읽는 편이 낫겠어. 전에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추리소설을 다 읽으면 하룻밤에 일막씩 읽어 가도록 하자" 이 청년이 그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하는 점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청년이 어학 공부를 단념하게 되는 이유이다. '나는 기억력이 약하다' '나는 끈질긴 성질이 못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런 식으로 규정해 버리고 만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 같으면 이 청년에게 당장에 반문해 보고 싶다. "당신은 자기 스스로 기억력이 약하고, 게다가 끈기도 없다고 체념하고 말았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그는 얼굴이 발개지면서 고개를 숙이겠지. 아니면 벌컥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지. 어쨌든 이 청년은 자기 본심을 털어놓은 셈이기는 하지만 자기 평가의 방법은 틀렸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청년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열등감이란 처치가 곤란한 '기생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이 열등감이란 괴물은 곧장 공격해 온다. 이 청년의 경우, 끈기가 없다고 중얼거린 그 순간에 영락없이 열등감에 속아넘어간 것이다. 적을 알되 자기를 알지 못하면 열등감에 이기지를 못한다. 잠시라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강박관념이 집을 짓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들이 가끔 '나는 그런 것은 잘못해'라고 간단히 단념해 버리는 것도, 대개는 이 강박관념 때문이다. 열등감이 나타나는 것도 앞의 예에서 보듯이,
#1 이미지에 직접 작용해 오는 경우가 아닐 때 #2 그 때의 사고의 대상이 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무관한 이미지(목적이나 소원)를 끄집어내서, 그것으로 하여금 사고 속을 뚫고 들어오게 하는 일이 있다. #3 의 경우에는, 열등감이 보다 교묘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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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글터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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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부었다
본뜻 : 간은 한의학에서 목기에 해당한다. 이는 곧 일을 새로 추진하거나 이끌어 가는 힘을 말한다. 즉 간이 크다는 것은 힘찬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다는 말이고, 간이 부었다는 것은 추진력이나 결단력이 너무 지나쳐 무모할 때 쓰이는 말이다.
바뀐 뜻 : 실제로 간이 부었다는 뜻이 아니라, 겁없이 어떤 일에 달려드는 것을 가리킨다.
"보기글" -자네 간이 부었나? 감히 거기가 어디라고 뛰어드는가? -너 간이 부어도 아주 단단히 부었구나 우리 대장을 너 혼자 상대해 보겠다고?
거덜이 나다
본뜻 : 거덜은 조선 시대에 가마나 말을 맡아보는 관청인 사복시에서 말을 맡아보던 하인을가리키는 말이었다. 거덜이 하는 일은 궁중의 행차가 있을 때 앞길을 틔우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말을 타고 길을 틔우는 거덜은 자연히 우쭐거리며 몸을 흔들게 되었다. 여기에서 사람이 몸을 흔드는 걸 가리켜 '거덜거린다'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
바뀐 뜻 : 살림이나 그 밖에 어떤 일의 기반이 흔들려서 결딴이 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그 집은 남편의 도박 때문에 살림이 거덜이 났다고 하더군요 -내 친구는 큰 돈 투자해서 시작한 사업이 어려워져서 회사가 거덜이 날 지경이라고 하던데 걱정이야
웃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으며 잘 웃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웃는 소리나 모습과 관련된 말에서 외국말들이 우리말을 따라올 수 없고, 또 무척 세분화돼 있다. 밝고 해맑게 웃는 모습만 해도 ‘방싯(빵싯), 방글(빵글), 방긋(빵끗), 방실(빵실), 생글(쌩글), 생긋생긋(쌩긋), 생긋방긋(쌩끗빵끗), 싱글벙글(씽글뻥글) 등 숱하고, 참으면서 웃는 소리·시늉으로 ‘키득키득, 킥, 킥킥, 비시시, 배시시’ 등 헤아리기 어렵다. 고까워하는 웃음·시늉으로 ‘샐쭉, 실쭉’ 등이, 그늘지게 웃는 ‘킬킬, 깰깰, 으흐흐, 후후’ 등 손꼽기가 숨가쁘고, ‘하하, 껄껄’ ‘호호’, ‘깔깔’ 등 남녀 구별이 있으며, 여럿이 웃는 소리로 ‘까르르, 와그르르’가 있고, 헛웃음·비웃음·눈웃음 …들도 있으니 ‘웃음’을 주제로 숱한 논문이 나올 법하다. 대소·폭소·미소 … 따위 웃음과 관련한 한자말도 적잖은데 재미가 적다.
“산만하게 보일 수 있는 씨름부원들의 요절복통 캐릭터를 깔끔한 마름질로 정리한 것도 높이 살만하다.”(ㅎ일보 2006.8.31) “그 당황하고 혼란한 꼴은 요절복통할 지경이었다.”(이병주 〈지리산〉)
‘요절복통’(腰折腹痛)은 ‘허리가 끊어질 듯하고 배가 아플 정도로 몹시 웃음’을 뜻하는데, ‘포복절도’와 비슷한 말이다. 일부 국어사전에서 ‘요절복통하다’도 보인다. 우리말에 웃음을 나타내는 말이 무척 많은데, 실제 살아가는 현실에서 자주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값과 삯
‘값’은 남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적에 내놓는 값어치다. 거꾸로,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고 받아내는 값어치기도 하다. 값을 받고 팔거나 값을 치르고 사거나 하는 노릇이 잦아지면서 때와 곳을 마련해 놓고 사람들이 모여서 팔고 샀다. 그 때가 장날이고, 그 곳이 장터다.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에는 팔려는 것을 내놓는 장수와 사려는 것을 찾는 손님들로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값을 올리려는 장수와 값을 낮추려는 손님이 흥정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내놓는 값의 말미가 ‘금’이다. 금을 미리 내놓는 노릇을 ‘금을 띄운다’ 하고, 그렇게 띄워 놓은 금이 ‘뜬금’이다. 뜬금이 있어야 흥정을 거쳐서 값을 매듭지어 거래를 하는데, 금도 띄우지 않고 거래를 매듭지으려 들면 ‘뜬금없는’ 짓이 된다.
‘삯’은 내 것으로 만들며 치르는 ‘값’과는 달리 남 것을 얼마간 빌려 쓰는 데 내놓는 값어치다. ‘찻삯’이나 ‘뱃삯’은 차나 배를 타는 데 치르는 값어치, ‘찻값’이나 ‘뱃값’은 차나 배를 사는 데 치르는 값어치다. 삯에서 종요로운 것은 ‘품삯’이다. ‘품’이란 사람이 지닌 힘과 슬기의 값어치고, 그것을 빌려 쓰고 내는 것이 ‘품삯’이다. 품은 빌려주고 삯을 받기도 하지만 되돌려 받는 ‘품앗이’가 본디 제격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품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을 ‘품팔이’라 하는데, 품을 빌리지 않고 사려면 ‘품삯’이 아니라 ‘품값’을 치러야 한다. 요즘 세상은 거의 모든 사람이 품을 팔아야 살게 되어서 ‘품값’ 때문에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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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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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5. 좋은 정치란 도덕에 있을 뿐 혹독한 법에 있지 않다(장석지, 장탕)
2) 정치의 올바른 길이란 도덕에 있지 혹독한 법에 있지 않다(장탕)
고기를 훔친 죄로 쥐를 재판하다
장탕의 부친은 재판을 담당하던 한나라의 하급 관리였다. 어느 날인가 부친이 외출하게 되어 어린 장탕에게 집을 보라고 맡겼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쥐가 고기를 물어가 버렸지 않은가. 부친은 화가 나서 장탕을 회초리로 쳤다. 그러자 장탕은 쥐구멍을 찾아 먹다 남은 고기와 함께 쥐를 끌어냈다. 그리고 몇 대 내려친 다음 쥐를 묶어 놓고 재판을 열었다. 우선 영장을 만들고 이어서 공술서를 작성하여 논고하더니 이어 구형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마당 끝에 쥐와 증거물인 고기를 내놓고 판결문을 읽더니 찢어 죽이는 벌에 처하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낱낱이 보고 있던 부친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 판결문을 읽어 보고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숙달된 사법관이 한 것처럼 나무랄 데가 한 곳도 없는 게 아닌가. 그 이후 부친은 장탕에게 자기가 쓰던 관청의 판결문을 대신 쓰도록 했다.
법이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장탕은 커서도 법률에 밝아 정위 벼슬을 했다. 그런데 그는 원래 자신의 본심을 겉에 드러내지 않는 사나이로 사람을 교묘히 움직이는 재능이 있었다. 그가 아직 하급 관리였을 무렵 장사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장안의 부호들과도 폭넓게 사귈 기회가 있었다. 그 뒤 대신으로 승진하자 이름 있는 사대부를 가까이 했고,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자에 대해서도 겉으로는 정중한 태도로 대해 주었다. 당시 무제는 유학에 관심이 높았다. 그리하여 장탕은 재판의 기본 원리를 유교경전에 두었다. 그러기 위해서 장탕은 "상서"나 "춘추"에 정통한 자를 부관으로 임명하여 도움을 받았다. 또한 이제껏 판례가 없는 안건의 재가를 왕에게 구할 때는 미리 근거가 되는 자료를 함께 제출했다. 그리고 무제가 뜻에 따랐으며, 그럴 때는 언제나 자신의 부하 가운데서 유능한 인물의 이름을 들면서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다. "방금 꾸중하셨던 조항에 관해서 이 부하가 꼭 같은 취지의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하오나 어리석은 저는, 그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저의 책임이옵니다." 그럴 때마다 장탕의 책임은 용서되었다. 또한 판결문을 올려서 칭찬을 들을 때에도 역시 부하 이름을 들면서, "이것은 저의 판단이 아니옵니다. 이런 부하가 저에게 제안한 의견을 그대로 채용한 것이옵니다." 이같이 장탕은 항상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부하를 먼저 생각하고 추천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무제가 중죄에 처하려는 안건에 대해서는 평소에 엄격한 판결을 내리는 자에게 맡기고, 죄를 사면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가벼운 판결을 내리는 자에게 맡겼다. 그리고 재판에 회부된 자가 권세를 떨치고 있는 유력자인 경우에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으로 그 죄상을 높게 만들었다. 반대로 돈도 없고 지위도 없는 자라면, "법에는 저촉되지만 아무쪼록 배려 있으시기를 바라옵니다."하고 무제에게 아뢰어 번번이 풀려나게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용서하면 처벌할 사람이 없다
정탕이 고관이 되고 나서부터는 부쩍 인품이 좋아졌다. 손님을 정중히 대접하고 친구의 자제 중 관리로 채용된 자나 가난한 형제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았다. 또한 춥거나 덥거나 항상 중신들을 방문하여 문안을 드렸다. 이 때문에 적발은 가혹하고 법 적용이 반드시 공평하지는 않았어도 장탕에 대한 평판은 좋은 편이었다. 더구나 장탕의 수족이 되어 엄격히 법을 집행한 하급 관리 가운데는 학문을 숭상하는 자가 많았다. 그리하여 승상 공손홍도 장탕의 훌륭한 점을 자주 칭찬하곤 하였다. 그 무렵 회남왕과 형산왕 등의 모반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장탕은 사건의 관계자를 철저히 파헤쳤다. 무제는 이 사건에 대해 장탕이 매우 엄격하게 임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관련자 가운데 엄조와 오피만을 사면시키려 했다. 그러나 장탕은 단호하게 반대를 하였다.
"오피는 원래 이 반역 음모를 계획한 인간입니다. 또한 엄조는 폐하의 신뢰가 두텁고 측근에서 폐하를 보좌할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제후와 은밀히 내통한 인간입니다. 만일 이 두 사람을 용서하신다면 앞으로 처벌한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무제는 장타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고 그의 판결을 승인했다. 이처럼 특히 재판에 관한 일이라면 장탕은 중신의 간섭도 물리치고 자신의 책임으로 처리했다. 그러므로 그 공적은 거의 모두 장탕의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장탕에 대한 무제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지더니 드디어 어사대부로 승진하기에 이르렀다.
고개숙인 백면서생
그 뒤 장탕이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거나 국가의 재정 문제를 언급하면, 무제는 날이 저물도록 식사하는 것까지 잊어가며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승상은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고 중요 사항은 거의 다 장탕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정부가 계획을 세워 지시를 하여도 그 성과가 오르기 전에 각 지방의 악덕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여 모처럼의 계획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러한 관리에 대해서는 엄벌로 다스렸지만 그 역시 별 효과가 없었다. 그 결과, 위로는 정부 고관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들이 모두 장탕의 책임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탕이 앓아 누우면 무제가 손수 병 문안을 갈 만큼 무제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 무렵, 흉노가 화평을 청해 왔다. 그것을 수락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신하들을 소집해서 어전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때 박사인 적산이 입을 열었다. "수락함이 마땅할까 아뢰옵니다." 무제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적산은, "예로부터 무기는 불길한 도구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함부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일찍이 고조(유방)께서는 흉노 토벌을 위해 군대를 일으키셨지만 평성에서 고전에 빠져 결국은 협정을 맺고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혜제, 여태후의 시대에는 싸움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은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시대에는 흉노와 자주 싸움을 벌여 그 때문에 북방의 땅은 또다시 황폐해졌던 것입니다. 또한 경제의 시대에는 오, 초 7국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그 대책에 부심하여 황태후의 지시를 받기 위해 수개월 동안이나 황태후가 살고 계신 곳으로 매일 왕래해야만 했습니다. 가까스로 오, 초 7국의 난을 진압하자 지쳐 버리신 경제는 그 후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은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떻습니까? 폐하께서는 흉노 토벌군을 일으키고 계시지만 그 결과 나라의 재원은 바닥이 드러나고 변경의 백성들은 몹시 빈궁해졌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화평을 수락하시는 것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무제는 다음으로 장탕의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장탕은, "적산은 학문을 겉핥기로 배웠기 때문에 세상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하며 적산을 반박했다. 이 말에 발끈한 적산은, "말씀대로 저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장탕은 어떻습니까. 그의 충성심이야말로 겉치레가 아닙니까? 가령 전에 회남왕의 반란 사건을 취급했을 때 장탕은 어떻게 했습니까? 법을 뒤흔들어서 무리하게 제후들 다스린 결과 육친 사이에도 의심하게 되었고 중신들은 불안에 휩싸여 소신껏 정치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장탕이야말로 거짓 충신입니다."하며 장탕을 몰아부쳤다. 이 말에 무제는 기분이 나빠져서 적산에게 물었다.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대를 태수로 임명할 테니 흉노의 침략을 철저하게 저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적산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것은 못하옵니다." 현령이라면 어떤가?" "그것도 무리하옵니다." "그럼 요새의 수비대장이라면 어떤가?" 여기서 적산은 생각하였다. '이 이상 피하다간 옥리의 손에 인계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제는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적산을 어느 요새의 수비대장으로 전출해 버렸다. 이렇게 한 달쯤이 지났을 때 흉노는 그 요새에 침입하여 적산을 살해해 버렸다. 이 사건 이후 모든 신하들이 장탕의 권세에 겁을 먹게 되었다.
부하를 잘 써라
하동 사람 이문은 옛날에 장탕과 옥신각신하며 다툰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후에 그의 벼슬이 높아지자 옛 원한을 갚기 위해 장탕을 탄핵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모두 모아 계속 장탕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장탕에게는 평소부터 아끼던 노알거라는 부하가 있었다. 알거는 장탕이 이문에 대해 심상치 않은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고 이문의 약점을 잡아 이문을 고발하게 했다. 그러자 장탕은 죄상을 심리하여 사형 판결을 내렸다. 물론 장탕은 그 고발 사건이 알거의 공작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제가 장탕에게 물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드러나게 되었는가." 그러자 장탕은 이렇게 시치미를 뗐다. "이문의 패거리가 개인적인 원한을 풀려고 한 짓이겠지요." 그후 얼마 지나서였다. 알거가 여행 도중에 앓아 눕게 되어 어느 시골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러자 장탕은 일부러 그곳에 내려가 문병을 하고 다리까지 주물러 주었다.
사면초가
당시 한나라의 제후국인 조나라에서는 제철업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나라 왕은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감독관의 행동에 대해 몇 차례나 고소했으나, 그때마다 장탕에 의해 기각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조왕은 장탕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의 부정을 캐내고 있었다. 또한 조왕은 알거에 의해 취조받은 일도 있어서 알거에게도 원한을 품고 있었다. 조왕은 장탕이 알거의 문병을 하러 간 사실이 있다는 걸 알자 때를 놓치지 않고 무제에게 일러 바쳤다. "장탕은 중신의 몸으로 일개 말단 관리에 불과한 알거를 문병했을 뿐 아니라 다리까지 주물러 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이 공모하여 도리에 벗어난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정위 앞으로 회부되었다. 그때 알거는 병사하였기 때문에, 그 아우가 공범자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장탕은 그 권세가 너무 컸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 후 얼마가 지나 장탕이 어떤 사건의 범인 취조 때문에 감옥으로 왔다가 여기서 알거의 아우를 만나게 되었다. 깜짝 놀란 장탕은 어떻게든 그를 풀어 주려고 생각했지만, 일단 그 자리에서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알거의 아우는 장탕이 자기를 버린 것이라 착각하고 성이 나서 사람을 시켜 장탕을 고발했다. "장탕은 형과 공모하여 이문을 끌어넣은 장본인입니다." 그리하여 이 문제가 비화되었고, 이 사건은 감선이라는 자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감선은 전에 장탕과 충돌한 적이 있는 대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기회에 사건의 배후 관계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장탕을 얽어 넣으려 했다. 그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이번에는 효문제의 능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서 승상 청책은 장탕과 같이 입궐하여 두 사람의 연대 책임으로 감독이 불충분한 데 대한 사과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장탕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고도 막상 어전에 들어가 고하게 되자 능을 경호하는 것은 승상의 책임이므로 자기는 관계가 없다고 발뺌을 하면서 사죄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승상이 혼자서 사죄했고 이에 무제는 어사대부 장탕에게 사건의 조사를 명했다. 장탕은 이 명령을 기화로 책임자인 승상을 옭아 넣으려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승상은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러자 승상의 부관들은 장탕을 원망하면서 어떻게든 장탕을 실각시킬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주매신은 "춘추"에 정통해 있었다. 일찍이 엄조가 그 점을 높이 사서 무제에게 추천했던 것이다. 원래 주매신은 "초사"에도 조예가 깊었으므로, 엄조와 함께 무제의 주목을 끌어 무제를 측근에서 섬기게 되었다. 그 무렵에 장탕은 아직 하급 관리였는데 주매신 등의 앞에 나오면 엎드려서 명령을 받는 처지였다. 그러나 장탕이 정위로 승진하면서 회남왕 사건을 담당하여 엄조를 실각시켰을 때 엄조의 은혜를 입고 있던 주매신은 마음속으로 장탕의 처사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 뒤 장탕이 어사대부가 되었을 때 주매신도 회계군 태수에 발탁되었다가 몇 년 후 주매신은 법에 저촉되어 부관으로 좌천되었다. 그 무렵에 어떤 일 때문에 주매신이 장탕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장탕은 의자에 몸을 뒤로 젖히고 앉은 채 부하를 대하는 것과 같은 태도로 주매신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주매신은 혈기 왕성한 초나라 사람으로 이런 대접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기회가 오면 장탕을 혼내 주려 벼르게 되었다. 또한 같은 부관 중 한 사람인 왕조는 법에 정통하고 우내사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또 한 명의 부관인 변통도 유세술을 배웠고 남에게 자기 싫어했다.
이 세 사람은 모두가 전에는 장탕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부관으로 좌천되어 장탕 밑에 있었던 것이다. 장탕은 이 세 사람의 부관이 일찍이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보란 듯이 모욕을 주었던 것이다.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던 세 사람은 상의 끝에 승상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장탕은 승상 어른과 같이 무제에게 사죄할 것을 약속했으면서도 어전에서 승상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즘에는 승상 어른께 죄를 씌우려 벼르고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어른 대신 승상 지위에 오르려는 음모로 보입니다. 지금 그를 실각시키지 않으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어집니다. 실은 저희가 장탕을 실각시킬 만한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승상은 즉각 관리에게 명하여 장탕의 죄를 알고 있는 전신 등을 잡아들여 취조했다. 그러자 전신은 이렇게 증언했다. "장탕은 재정 문제에 대해 보고할 때는 미리 그 정보를 저희들에게 알려 주시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물건을 매점해 놓았다가 값이 뛸 때 팔아서 이윤을 올리고는 그것을 장탕 대감과 반씩 나누었던 것입니다." 취조가 계속되는 동안 전신 등의 증언이 하나도 남김 없이 무제의 귀에 들어갔다. 궁금하던 무제가 직접 장탕에게 하문했다. "재정 정책이 실시되기도 전에 상인들 귀에 들어가 물건을 매점한다 하니 계획을 밖에다 누설하는 자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탕은 직책상의 해명은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럴 수 있을 듯합니다."
죽어서 무죄를 증명하다
그 후 감선이 한술 더 떠서 알거에 관한 일을 무제에게 소상히 주상했다. 무제는 장탕이 이제껏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해 차례로 8명씩이나 검찰관을 보내어 죄상을 추궁했다. 그런데 장탕은 그때마다 증거를 제시하면 반론하면서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무제는 장탕의 옛 동료였던 조우에게 취조를 명했다. 조우는 장탕을 나무랐다. "너무도 최후가 더럽지 않은가. 자네가 일가 몰살의 판결을 내린 자가 얼마나 많은 지 생각이나 해 보게. 증거도 이미 충분할 만큼 갖춰져 있지만 폐하는 자네를 차마 처형하지 못하고 자결하기를 원하고 계시네. 이제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는 게 좋겠네." 이에 장탕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황제에게 보내는 상주문을 썼다. "장탕은 아무런 공도 없이 하급 관리의 몸으로 폐하의 은총을 입고 삼공에 이르렀습니다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저의 죄는 억울하옵게도 세 명의 부관들이 날조한 것이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제가 장탕이 죽고 나서 유산을 조사시켜 보니 고작 5백 금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도 모두 봉록이나 하사품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장탕의 형제와 자식들은 의논 끝에 장례만은 성대히 치르자고 했으나 모친이 반대했다. "그 아이는 중신의 몸으로 불명예스러운 죄록으로 죽은 것이다. 성대한 장례라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그 시체는 서민과 같이 허름한 관에 넣어 손수레로 운반되었다. 무제는 이 말을 듣고 감동했다.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장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무제는 다시금 철저한 조사를 한 끝에 세 사람의 부관이 무고했음을 밝혀내고 그들을 벌하여 주살했다. 승상 정책도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다. 무제는 장탕을 잃은 것을 크게 후회하고는, 그의 아들 안세를 높은 자리에 앉혔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장탕은 지혜를 다해 황제의 뜻을 살피며 자신의 말과 행동을 맞추는 한편, 옳고 그른 것을 따져 옳은 것을 굳게 지켰다. 그래서 그로 인해 나라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장탕이 죽은 후 법망은 더욱 치밀해져서 관리들은 억지로 법을 냉혹하게 적용시켰기 때문에 정사가 차츰 쇠퇴해 갔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다만 실수없이 자리 지키기에 급급할 뿐 일체의 창조적인 논의를 할 겨를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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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3부 활성산소 피해를 최소화한다 제 1근위병, 수퍼옥시드 디스뮤타제(SOD)
세포 깊은 곳에서 방어벽 역할을 하는 수퍼옥시드 디스뮤타제(SuperOxide Dismutase, 이후부터는 SOD로 표시함)라는 하산화제가 처음 기술된 것은 1968년이다. 그리고 이후 많은 연구에서 산소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생명체들이 SOD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을 포함한 일부 고등식물과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SOD를 가지고 있으며, 만일 이것이 없으면 제대로 성장이 안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장균에 SOD가 없으면 세포 손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여, 돌연변이도 잘 일어나게 된다. 인체에서도 SOD가 매우 중요한 하산화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학적 연구들은 매우 많다.
SOD들은 세포 안에서 세포를 지키는 항산화제이지만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SOD가 항산화작용을 제대로 하려면 철이나 구리, 아연같은 금속이온이 필요하며, 어떤 금속이온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근무 장소가 조금씩 다르다. 즉 어떤 SOD는 미토콘드리아내에서 생긴 프리라디칼을 제거한다. 또 다른 SOD는 세포질의 내형질망(대부분의 세포에 존재하는 막으로 이루어진 연결 통로로, 이를 통해 세포에서 만들어진 각종 단백질이 세포 밖으로 이동되며, 또 세포 바깥에서 들어온 각종 이물질을 해독하는 일을 하는 기관 이름)에서 생긴 프리라디칼을 제거한다. 또 일부 SOD는 세포내의 핵속과 페록시좀(단일막에 둘러싸인 세포 내 작은 기관으로 여러 산화 효소와 인체 내에서 지방산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여러 효소들을 가지고 있음) 소기관에도 존재하여 여기서 생기는 프리라디칼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SOD를 외래어 식으로 표기하면 수퍼옥시드 디스뮤타제이다. 산소로부터 생긴 대표적인 프리라디칼 중에 수퍼옥시드라디칼이라는 게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수퍼옥시드 디스뮤타제는 모든 프리라디칼을 제거하는 게 아니고, 그 중 수퍼옥시드 라디칼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대체 SOD는 어떻게 해서 이 프리라디칼을 제거하는 것일까? 다름 아닌 2개의 수퍼옥시드라디칼을 붙잡아서 프리라디칼이 아닌 과산화수소라는 물질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2개의 수퍼옥시드 라디칼이 1개의 과산화수소로 바뀌는 반응속도는 SOD가 있을 때 무려 1만배 정도로 빨라지게 된다.
세계사나 우리 역사를 보면 한 시대의 정권을 바꾸는 혁명을 최고 권력자를 가까이 보좌하는 친위 집단에서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절대 권력자라 하더라도 직계 부하들간에 세력이 균형되도록 잘 다스리지 않으면 내부 갈등과 암투가 싹트는 것이다. SOD는 세포의 핵심기관을 가까이서 지키는 항산화근위병의 하나이다. 그러나 SOD의 힘이 너무 강해도 문제가 된다. 사람에서 흔한 염색체이상 질환 중 다운증후군은 대표적인 선천성 기형질환이다. 이 환자의 염색체에는 SOD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더 많이 있어서 정상적인 경우보다 SOD의 활동이 50%정도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SOD를 쥐에게 주입한 후 거기서 태어난 새끼들을 관찰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이 새끼쥐들은 다른 쥐보다 산소나 여러 독소에 더 잘 견딘다. 아마 항산화제인 SOD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쥐에서는 안 생기는 혀와 신경, 근육의 이상이 나타났다. 이것 역시 SOD 기능이 너무 강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결과를 보건대 우리 몸에 이롭다는 항산화제도 서로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좋은 것이지, 너무 과하게 많으면 좋지 않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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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제멋대로 권세를 휘둘렀던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
윤원형(?-1565)의 본관은 파평이고, 자는 언평인데 문정왕후의 오라버니이다. 중종 23년(1528) 생원시에 합격하고 5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종 6년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윤임은 인종의 모후인 장경왕 후의 동생이었으니, 여기서 대윤(윤임), 소윤(윤원형)이란 칭호가 있었다. 윤원형이 병조 판서로 있을 때에 어느 무인을 함경도의 권관으로 임명되도록 해주었는데, 그 무인이 부임하여 화살통을 선물로 보냈다. "나는 활쏘는 것을 배우지 않았는데 화살통을 어디다 쓸 것인가?" 윤원형이 화를 내며 그 화살통을 다락 안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 무인을 파직시켰는데, 그 무인이 파직되어 돌아와 윤원형을 찾아보고 물었다. "앞서 보내드린 화살통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윤원형이 불현듯 의심이 생겨 다락에 던져둔 화살통을 가져다 잠가 놓은 화살촉을 뽑자 담비 가죽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것을 본 윤원형이 좋아하면서 그 무인을 다시 살기 좋은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또 이조 판서로 있을 적에 어떤 사람이 고치 수백 근을 바치고 참봉에 임명되기를 소원하였는데, 마침 윤원형이 피곤해서 졸고 있느라 장시간 임명 대상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므로 교지를 쓰던 이조 낭관이 붓을 쥐고 재촉하였더니 윤원형이 낭관의 재촉하는 소리에 맞추어 졸면서 "고치"라고 대답하였다. 고치란 견을 세속에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최종 임명 결재를 받음에 이르러 이조의 서리가 고치 바친 사람을 아무리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먼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선비의 이름이 고치였으므로 그 사람을 임명하기는 하였지만 윤원형은 감히 분변하지 못하였다.
명종이 당시 권세를 믿고 횡포가 심했던 윤원형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어느 날 경연에 나아가 중신들에게 한나라 문제가 그의 외삼촌인 박소를 죽인 일에 대하여 물었다. 여러 신하들이 그제야 임금의 뜻을 알고 마침내 윤원형을 탄핵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도성의 사대문 밖으로 내쫓기를 주청하니, 명종이 그대로 시행하게 하였다. 윤원형이 쫓겨나자 백성들이 기왓장과 돌을 던지며 심지어 활로 쏘아 죽이려는 자도 있었다. 윤원형이 몰래 강음으로 가서 그의첩 난정과 날마다 마주 앉아 울었다. 이때에 윤원형의 전처 김씨의 계모 강씨가 난정이 김씨를 독살한 사실을 고발하였다. 조정에서 관련자를 잡아다 처결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자 난정과 윤원형이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지은 죄가 하늘에 사무치면 저절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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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린(同病相隣)
같은 비운에 처한 사람은 서로 애처롭게 여긴다는 말이다.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의 신하 오자서와 백비 얘기다. 오자서와 백비는 본래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왕에게 죽고 백비는 또한 할아버지가 초왕의 손에 죽었으므로 두 사람이 한 가지로 초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초나라와 적대관계에 있는 오나라에 기탁한 터려니와 하루는 오나라의 대부인 피리가 자서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찌하여 백비를 사용하는고?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은 신용할 수 없어 뵈던데" "그건 나으리의 자나친 생각이십니다. 그 사람의 초나라에 대한 원한은 저와 마찬가지로 심합니다. 나으리께선 하상가를 못들어 보셨나요?" '병환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애처로와하고 근심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돕는다. 놀라서 날아가는 새는 서로 모여들고 여울 밑의 물도 그렇듯이 흐른다...' 고 했습니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만 그 사람은 거동이 거칠고 음험하니 과히 친숙하게 지내지 않는게 좋을텐데..." "아니올시다. 나으리! 저는 근심을 같이 하는 그를 믿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합려를 도와 노력하기를 9년, 마침내 초나라의 소왕의 군병을 무찔러 오랜 원한을 풀었다. 그런데 훗날 피리가 염려하던 일이 생겼다. 오나라가 월나라와 싸우게 되자, 두 사람은 합려의 아들인 부차를 섬겼는데 월나라의 뇌물을 먹은 백비가 부차에게 자서를 모함하여 죽이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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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2. 관음보살상 앞에서
행각기 1
길이 있다. 길의 끝에는 하천의 물이 흐르고 그 건너에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이쪽 길과 저쪽 길을 잇는 다리가 있다. 나는 그 다리 같은 스님이 되고 싶다. 그 강의 나룻배가 되고 싶다. 그 파도를 헤치고 가는 어부이고 싶다.
벽에 못이 박혀 있다. 언제부터 박혀 있었을까. 망치로 박았겠지. 그 몸으로 수많은 세월, 사람들의 옷이며 가방, 수건, 거울 따위를 걸어 주었겠지. 나는 왜 벽에 박혀 있지 못할까.
눈에 별이 보인다. 외딴 바다의 섬과 같다. 바람 부는 하늘의 눈물인가. 부처님의 진신사리인가. 너무 반짝인다. 생사의 밤을 앓는 운수납자의 친구인가 보다.
들판에 서면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 둥근 지구에 내가 어떻게 서 있을까. 심혈을 기울여 부처님의 명호를 찾는다.
내 머리카락은 잡초다. 뽑아도 뽑아도, 잘라도 잘라도 자라나는 내 허무의 여린 풀이다.
수박을 보면 오르가슴을 느낀다. (밀교주의자가 되어 마침내 수박을 탐닉하고 나는 껍질과 씨앗을 손에 들고 잠시 버리지 못한다)
헌식대 위의 산비둘기는 뻔뻔스럽다. 구구구구.... 나 같은 중은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붕어빵을 보면 붕어빵 속에 붕어가 없다. 붕어빵을 물 속에 놓아 줘도 붕어빵들은 헤엄을 딱 한 번밖에 치지 못한다. 붕어빵은 바보다. 낚싯대로 다시 잡아 올려 확 먹어 버리고 싶다.
객승들끼리 만나면 반갑다. 비록 나의 앞에 길을 막는 행인은 개구락지이지만.
내 몸 속에 펄럭이는 나비. 나비는 날개가 네 장이다. 희한하게도 날개가 다섯 장이나 열두 장의 날개를 가진 나비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흘러가는 물을 보면 얄밉다.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고 그러나 썩지 못하는 물이다.
산 계곡의 얼음을 밟고 지나간다. 미끄러지지 않고 얼음이 깨져 풍덩 빠졌다. 오른쪽 발이 얼어 온다. (독한 술이라도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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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19. 언어를 잃어버린 겨레 2/2
말을 잃어버린 나라
근래에는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는지 코미디 극에서도 바른 우리말을 소재로 삼기도 했다. 나름대로 뜻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문화적 어설픔과 천박함에 보기가 민망스럽기조차 했다. 더구나 일본말에 대한 감정적 배척과 한자어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는 편견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예컨대 '복지리'라는 말이 나오자 '지리'는 싱겁게 끓인 음식을 뜻하는 일본말이므로 써서는 안 되고, 그 대신 '복싱건탕'이라고 써야 한다고 했다. 또 '다라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라'는 둥근 그릇을 가리키는 일본말이므로 쓰지 말고 '함지박'이란 말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리라는 말은 일본말이면서도 우리말 '질펀하다', '질다'와 뿌리가 같은 말이므로 소금을 조금 넣었다는 뜻의 싱겁다와 뜨거운 음식을 가리키는 탕이라는 한자어를 어설프게 붙일 까닭이 없다. 또 일본말 다라는 '달'이나 '담'(담울 또는 다물)이라는 우리말에서 생겨난 표현인데, 일본에서도 담이 둥글게 쌓인 것을 일러 '다라'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은 성도 다라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며, 이런 표현은 원래 성을 둘러쌓인 백제시대의 자치구역 '다물'(담로 또는 다라)에서 생겨난 것이다. 또 밑바닥이 평평한 다라는 밑바닥이 둥근 함지박과 다른 것이며, 그러므로 적당한 말이 없을 때에는 그대로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역사적 은원관계가 깊다고 해서 같은 기마종족계의 표현을 무조건 배척하는 행위는 언어생활의 주체성 상실을 상징할 뿐이다. 오히려 굳이 쓸 필요가 없는 경우에까지 한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틀린 말을 바로잡으면서 생긴 이런 사례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부끄러움은 정서적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다. 언어가 바르게 사용되지 않을 때 커다란 문제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사람의 힘이고, 그 말과 글에 함축된 의미와 뜻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예컨대 '나쁘다'는 말은 '나뿐이다'라는 말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기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그 뜻을 잃고 영어의 bad처럼 받아들일 때 그 말은 끝내 '해롭다'는 말과 섞이게 될 것이며, 나아가 이기적인 행위에 대한 경계심이 알게 모르게 줄어들고 말 것이다. '바른 정치'라는 말도 가끔 보이는데, 이때 '바른'이라는 말도 참뜻을 잃어버린 채 사용되고 있다. 즉 영어의 good이나 right처럼 받아들이면서 어설픈 개념이 따라 다니는 것이다. 본래 '바른'은 '왼'의 반대말이며, '여이다'(해를 떠나보내다)에서 온 '왼'이 음을 가리킨다면, '밝다'(해를 받다)에서 본 '바른'은 양을 가리킨다. '왼'이 '그르다'와 다르듯이 '바른'도 '옳다'와 다르다. 즉 '옳다'와 '그르다'는 수직운동과 수평운동을 가리키는 말로서 찬성과 반대를 나타내기 때문에, 각각 '지지받다'와 '지지받지 못하다'의 뜻으로 쓰여야 한다. 이에 비해 '바른'과 '왼'은 각각 '밝히다'(또는 드러내다)와 '가무리다'의 뜻으로 쓰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개념이 아무렇게나 쓰인다면 그 사회의 정신문화는 이미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개념의 혼돈으로 말미암아 문화적 발전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즉 말들이 뜻을 잃은 채 사회를 요설의 잔치판으로 타락시키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그런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권에 의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해체, 그로 말미암은 한반도의 분단과 주체성 상실이 아마 그런 역사의 바탕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국가를 되찾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잃어버린 말을 되찾는 일이다. 말이 없으면 문화가 없는 것이고, 우리말이 없으면 우리 문화가 없는 것이다. 얼핏 보면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을 쓰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말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우리말은 사실상 미국말이나 일본말 및 중국말의 한반도 사투리나 다름없는 탓이다. 말은 남아 있으나 그 말에 담긴 원래의 개념이 사라지고 다른 개념이 거기에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은 주체성 없이 흘러 다니는 우리 겨레의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한글과 외래어
우리말을 아끼는 사람들은 무분별한 외래어의 사용을 안타까워한다. 어떤 사람은 한자어의 비행기를 '날틀'로 옮기자는 주장까지 할 정도로 우리말 오로지쓰기를 고집하기도 한다. 비교적 친숙한 한자어에 대한 거부감이 이 정도니, 서양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외래어에 대해서는 그 거부감이 어떠할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물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외래어는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우리말의 말뜻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서야 한다. 문화적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미국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 오늘날, '배우다'는 말의 말뜻을 모르면 '배우다'는 결국 'learn'이나 다름없으며, '나라'는 같은 식으로 nation이 되고 만다. 그런 현상이 반복되면 짝을 이룰 적당한 영어가 없는 우리말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예컨대 '겨레'란 말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겨레'는 '물결'이라는 말의 '결'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같은 흐름을 가지는 어떤 단위라는 말과 '누에'(누워 있는 생명체)나 '게'('기에'의 줄임말로 기어다니는 생명체)의 '에'처럼 생명을 뜻하는 명사인 '에'(애)가 결합된 말이다. 즉 겨레는 '생명공동체'라는 말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적합한 미국 문화권의 말이 없으므로 차츰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말뜻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문화적 주체성도 없을 뿐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을 잘 드러낼 수도 없다. 뛰어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모방을 잘할지는 모르지만, 창조적 능력은 밑바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연구하면서도 자신의 역사가 만들어 놓은 뛰어난 개념을 사용하지 못하고, 철학을 공부하더라도 남의 이론을 남의 말뜻에 따라 이해하기 바쁠 뿐이며,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더라도 남의 나라 흉내를 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말뜻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말까지 잃어가는 근현대의 우리 겨레를 작은 겨레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문화권이 타율적으로 해체되어 생긴 현상이라는 점에서 한반도의 분단과 뿌리를 함께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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