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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13 호
단기 4340. 12. 24 (음력 11. 15)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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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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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2인극 페스티벌 창작 2인극 희곡 공모
창작 2인극 희곡 공모
2000년부터 2007년까지 7회째 “2인극 페스티벌”을 개최해 오고 있는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에서 2008년도 하반기에 개최 할 “제8회 2인극 페스티벌 - 창작 2인극 작품전”을 위한 새로운 창작 2인극 희곡을 공모합니다.
그동안 제4회, 5회, 6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는 국가별(프랑스, 러시아, 한국고전) 특색을 살려 다양한 문화의 연극을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마련해 왔으며, 2007년 “제7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는 ‘경계와 소통’이라는 컨셉으로 다양한 외국작품들을 개작, 재창작 또는 번안하여 우리시대 우리얘기를 펼쳐 보이는 페스티벌을 개최합니다. 2008년에는 “제8회 2인극 페스티벌 - 창작 2인극 작품전”을 개최할 예정이며, 2009년에는 “제9회 2인극 페스티벌 - 아시아 2인극 작품전”을, 2010년 제10회에는 “서울국제 2인극 페스티벌”을 개최 할 예정입니다. “2인극 페스티벌”은 앞으로도 참신하고 독창적인 페스티벌로 자리메김하기 위하여 발전적인 모색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입니다.
2008년 “제8회 2인극 페스티벌 - 창작 2인극 작품전”을 위하여, 새로운 창작 2인극 희곡을 공모합니다. ‘창작 2인극 희곡 공모’를 통하여 참신하고 실험적인 창작 2인극 작품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당선작 6편에 대하여 2008년 상반기에 독회 워크숍을 개회할 예정이며, 이를 통하여 “제8회 2인극 페스티벌” 공식 참가작으로 선정 할 예정입니다.(소정의 작품료 지급)
참신한 작가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기성, 신인 구분 없음)
주 최 :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접 수 기 간 : 2007년 10월22일 ~ 2008년 2월29일 접 수 방 법 : 우편 및 이메일 접수(ehtrain999@hanmail.net) 우편 접수처 : (110-530)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133-1 복지 빌딩 3층 한강아트컴퍼니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사무국 문 의 : 02 - 921 - 3110 (담당- 김 은 하)
※ 봉투 겉면이나 메일제목에 “2인극 페스티벌 창작희곡공모”라고 명기하여 주십시오.
2인극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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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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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못된 심술장이. 그러나 대담한 사람이 이 심술장이에게 대들어 그 수염을 움켜잡으면 놀랍게도 수염이 힘없이 뽑혀진다. 그것은 겁장이들을 쫓아 버리려고 살짝 붙여 놓은 가짜수염이니까. / 올리버 웬델 홈스 (미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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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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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3. 퇴계 이황
물 속의 달은 달이 아니다.
달이 여러 시냇물에 비치매 곳곳마다 둥근 달이 있다는 이야기는 옳지 않다. 하늘이든 물 속이든 비록 같은 하나의 달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것은 진짜이지만 물 속의 것은 달 그림자 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달을 가리키면 실상을 얻지만, 물 속의 달을 잡으려 하면 얻지 못한다. 대체로 물에 있는 달은 물이 고요하면 달도 고요하고, 물이 움직이면 달도 움직인다. 그 움직일 때만 하더라도 그렇다. 고요히 흐르는 물, 광경이 또렷이 드러날 정도로 맑은 물에서는 달의 움직임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아래로 급히 흐르는데 바람이 불어 물결을 일으키기도 하고 돌에 부딪혀 물을 튕기게 되면 달은 부서져 이리저리 번득이다가 심하면 마침내 없어지고 만다. 고요한 때는 정숙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야 하지만,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려서는 안된다. 독서하고 남은 사이에는 틈틈이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인격을 길러야 한다.
날이 저물고 사람이 권태로워지면 흐린 기운이 엄습하기 쉬우니, 정중히 가다듬어 밝은 정신을 떨쳐야 한다. 밤이 늦어지면 잠자리에 들되,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은다. 잡생각을일으키지 말고 심신이 돌아와 쉬게 한다. 그 심신을 양심으로써 밝게 길러 나가라. 밤은 곧 아침으로 돌아오느니 이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밤낮으로 쉬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 나가야 한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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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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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2장 - 진정한 사색
3. 감동에는 차이가 없다.
빼어난 사상가의 곁에서 잠시 귀를 기울여 볼 수 있는 기회를 다행히도 갖게 되었다고 하자. 이 때에 우리들의 마음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가? 우리들은 사상가의 '생각하는 기술'의 놀라움과 뛰어남에 우선 경탄하고 찬미해 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찬미하면서 낙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부글부글 저항감을 불태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는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보였음이 틀림없어.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할 수 없지. 나에게는 자신을 좀더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기회가 없었기 않았는가?" 라고 하면서 애석해 하면서도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또 콧대가 좀 센 사람들은 좀 다른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 사람, 자기가 유명하다고 해서 그렇게 뽐낼 것까지는 없잖아. 나와 저 친구 차이는 단지 운이 좋았느냐 나빴느냐의 차이밖에 없잖은가" 한층 단순한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사람은 사물을 생각하는 방법과 요령을 잘 터득하고 있지. 그리 대단치도 않은 비결인 셈이지. 그 요령만 안다면 나들 뭐 그만큼 안될라고?" 라고 퍽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단순하고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들 같으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까? 뛰어난 재능과 자기네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차이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오히려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이 사고의 명인들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가 있을까? 그들의 '우둔함'때문에 뭔가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에게도 그들대로의 '생각하는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둔한'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술을 몸에 밸 정도로 익히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심사숙고한 끝에 말이 나오는 마음의 상태를 그들은 그들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체험'이 실마리가 되어서 그들은 사상가들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물론 결여되어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언어이다. 또 때로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조잡하고 거짓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오묘한 오르간의 연주 소리나 '출발의 노래'의 멜로디를 들었을 때에는, 마음에 찡하고 울리는 무엇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상태가 '종달새'에게서 시흥을 느끼게 되었을 때의 셸리(1792-1822, 영국의 시인)의 도취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가 있겠는가? 감동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지적인 인상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신에게로부터 공평하게 받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들, 그리고 논밭을 바라보는 눈에 담겨져 있는 애정과 감동의 깊이도 시인이나 화가의 감흥과 그 본질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같은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갚은 감동을 느껴본 경험들이 있다. 이와 같은 인상이 거친 일상생활 속에서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소중히 지키려고 한다. 우리들이 이와 같은 비길 데 없는 소중한 인상을 간직하고 키우는 태도, 즉 회상 속에 창조적인 사고의 출발점이 있으며, 스프링의 튕기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4. 생각하기 쉬운 상황
별로 의도한 것도 아닌데 문득 마음에 생기가 솟고 감수성이 맑아지는 일이 있다. 밤샘을 하면서 일을 할 때, 불면증에 걸렸을 때에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진다고 생각되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생각'이 혼자서 앞질러 달려가곤 한다. 사색가나 예술가들은 이와 같은 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택한다.
#1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심하게 소모되는 것을 알면서도 밤을 새운다. #2 식사하는 것마저 잊거나 시간을 늦춘다. #3 밤길을 혼자서 쏘다니거나 헤맨다(찰스 디킨즈). #4 조용한 여관이나 시골에 틀어박힌다. #5 종교가들처럼 때로는 은둔해 버린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물을 잘 생각할 수 있는 상태란 쉽게 말한다면
#1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다. #2 마음 그 자체가 맑다.
이 두 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다. 이 조건에 맞는 경우는-여기에 그 한 예를 들어보면-열 살 미만의 어린이의 경우이다. 이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들은 시인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놀라운 존재들이다. 어린이들은 아직은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일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고양이'처럼 스스로 만족하고 있으며, 자유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대상'을 자기의 마음을 통해서 보는 매력에 취해 있는 존재들이다. 뛰어난 화가나 시인의 외모가 어린이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공통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이 사무실에서 안락하게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방에 아홉살 난 소녀가 들어와서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름답다는 건 뭐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지, 응?" 나는 그 소녀의 아버지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소녀의 말에는 뭔가 숨기려고 하는 것이 전혀 없는 지성의 번득임을 볼 수가 있다. 어린아이들의 '지성'은 이 내·외부의 모방에 작용하기 시작해서 그 번득임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정이나 학교의 교육이 모방이라는 형태의 '훈련'을 어린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다. 대다수의 어린아이들은 거기에 저항하지 못한다. 블레이크(1757-1827, 영국의 시인, 화가)나 휘트먼(1819-1892, 미국의 시인)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만이 지닐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간직할 수 있었던 매우 특이한 예외적인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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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글터 → 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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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차사
본뜻 : 조선 시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에 얽힌 이야기다. 태조 이성계가 왕비 소생인 여섯 아들을 제쳐 놓고, 계비 소생인 두 아들을 어여삐 여겨 막내인 방석을 세자에 봉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다섯째 아들 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소생의 두 왕자를 죽여 버렸다 여기에 진노한 태조가 첫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갔다. 왕위에 오늘 정종이 간곡히 청하여 모셔 왔으나, 그 뒤에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태조는 또 다시 함흥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태종이 여러 번 차사를 보내 태조를 모셔 오려 했으나 태조는 차사가 당도하는 족족 죽여 버리거나 가두어 두었다 이렇듯 함흥에 간 차사 중에 아무도 돌아오는 이가 없자 누구도 차사로 파견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태조를 그대로 함흥에 머물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태종이 관리들을 모아 놓고 '그대들 중 누가 가겠는가'하고 간곡하게 묻자, 오직 한 사람, 당시 판승추부사였던 박순이 나설 뿐이었다. 하인도 없이 망아지가 딸린 어미 말을 타고 함흥에 내려간 박순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망아지와 어미 말에 빗대어 골육의 정을 얘기해서 태조를 감복시키고, 드디어 태조의 한양 귀환을 받아 내어 그 유명한 함흥차사의 막을 내리게 하였다.
바뀐 뜻 : 한 번 함흥에 간 차사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여, 어딜 갔다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함흥차사'라 하게 되었다.
"보기글" -술 사러 간 김 군은 함흥차사가 됐나,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그 사람 한 번 외국에 나가더니 함흥차사가 됐나, 봄에 온다던 사람이 가을이 다 됐는데도 안 들어오니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네
혈혈단신
본뜻 : 혈혈은 고단하게 외로이 서 있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혈혈단신이라 하면 의지할 곳 없는 홀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주 홀홀 단신으로 쓰이는데 홀홀 단신은 틀린 말이다. '홀홀'은 '홀홀 날린다' 할 때처럼 어떤 물체가 가볍게 날거나 날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바뀐 뜻 : 의지할 곳 없는 홀몸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김씨 아저씨는 6.25때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이렇게 자수성가를 한 거란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옥이는 졸지에 혈혈단신이 되었다
된장녀
“그 사람 참 된장처럼 구수하네”라고 하면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하다는 칭찬이다. 그런데 단지 ‘여(녀)’라는 말을 덧붙였을 뿐인데 ‘된장녀’는 젊은 여성 일부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일단 말이 퍼지기 시작하니 유행에 민감한 신문·방송이나 정치권에서도 입방아에 올린다.
새말을 만드는 방식도 유행한다. 최근 ‘-족(族), -녀(女), -남(男)’ 등을 붙인 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달하려는 핵심 의미를 나타내는 말 뒤에 ‘-족, -녀, -남’만 붙이면 그런 사람·여자·남자라는 말이 쉽게 만들어지니 그 방식도 유행하는 듯하다. 이런 말은 짝이 되는 말이 금방 생겨난다. ‘된장녀’와 비슷한 의미로 짝이 되는 ‘된장남’, 반대되는 의미로 짝이 되는 ‘고추장남’이 함께 돌고 있고, 몸을 격렬하게 떨면서 춤을 추는 ‘떨녀’가 등장하자 ‘떨남’도 나타났다.
쉽게 말을 만들었다고 하여 반드시 그 쓰임이나 뜻까지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몸보신족’이 건강에 좋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일컫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만 ‘면창족’이 퇴직 압력을 받으면서 별다른 업무가 없어 창밖만 바라보는 회사 임원급 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내기는 어렵다. ‘된장녀’라는 말만 보고 서양식 생활 방식을 동경하는 사치스런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추론하기 어려운 것도 그렇다. 뜻을 알기 어려운 새말보다 부려쓰기 좋은 쉬운 새말이 많은 이들에게 오래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언어 대국, 인도
우리나라처럼 한 언어만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여러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도 꽤 많다. 인도는 카스트제에 따라 계층방언이 발달된 데로 유명하지만, 민족과 지역에 따라 여러 언어가 함께 쓰인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도에서는 적어도 200~300여 언어가 쓰인다. “물은 닷새마다 바뀌고 말은 스무날마다 바뀐다”고 할 정도다. 인도에서 쓰이는 말은 대체로 인도유럽어족, 드라비다어족, 중국-티베트어족, 대양어족에 드는데, 오랜 세월 서로 접촉하며 영향을 끼쳤다. 그 중 인도유럽어족이 전체 73%를 차지하고, 드라비다어족은 24%를 차지한다. 인도의 고전어 산스크리트는 인도유럽어족의 아주 오래 된 옛말이기도 하다.
인도 헌법은 수많은 언어 중에서 18가지를 ‘인도 언어’로 지정하여 주마다 선택하여 공용어로 쓰도록 했다. 그 가운데 인도유럽어족에 드는 힌디어가 전체 국민 40%가 모어로 쓰는 가장 큰 언어다. 힌디어는 영어와 함께 국가 공용어다. 영어는 영국 식민지 때부터 지금까지 정치·문화·교육 언어 지위를 유지한다.
인도 서부 지역에서 쓰이는 구자라트말이 있는데, 간디의 고향말이기도 하다. 이 말의 글자가 우리 한글과 비슷하다 하여 한때 관심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냥 모습만 비슷할 뿐 한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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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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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5. 좋은 정치란 도덕에 있을 뿐 혹독한 법에 있지 않다(장석지, 장탕)
공자는 '정치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바로 잡는다면, 백성들이 비록 죄를 면할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고 하였고, 노자는 '큰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덕을 지닌다. 그러나 덕이 적은 사람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덕이 없어진다. 그래서 법이 많을수록 도둑이 많아진다.'고 하였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법이 정치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백성들의 선악을 다스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다. 옛날 진나라는 법망이 그렇게 치밀했건만 온갖 간사함과 거짓이 싹텄다. 그래서 관리들은 책임을 피라고 백성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뚫고 나가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당시의 관리들은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식의 정치를 했다. 도덕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 직무에만 빠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기에 공자는, '송사를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나는 송사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나라는 모난 진나라의 형법을 고쳐서 둥글게 만들었으며, 수식을 버리고 소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배를 통째로 삼키는 고기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법망이 너그러워졌다. 그런데도 관리들은 순수하여 간악한 데로 흐르지 않고, 백성들은 편안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정치하는 방법은 도덕에 있는 것이지 혹독한 법령에 있는 것이 아니다."
1)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장석지)
유창한 말솜씨에 혹한다면
장석지는 원래 호위 장교로 일했다. 그러나 10년이 되도록 승진도 되지 않고 공을 세우지도 못했다. 그러자 장석지는 한탄해 마지 않았다. "오랫동안 벼슬하면서도 집안 재산만 축냈을 뿐 이뤄 놓은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러면서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때 평소 그의 현명함을 알고 있었던 원앙이 그가 벼슬을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황제에게 부탁하여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였다. 장석지는 황제를 면담한 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의견을 말하려 했다. 그러자 황제는, "추상적인 문제보다는 구체적인 일을 말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장석지는 진나라가 왜 천하를 잃었으며, 한나라는 어떻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장시간에 걸쳐 설명해 나갔다. 황제는 그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고, 이튿날 그를 의전 장관에 임명하였다.
하루는 장석지가 황제를 수행하여 동물원에 갔다. 황제가 관리들에게 동물에 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하지만 10여 명이나 되는 관리들 중에서 대답을 확실히 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그곳을 마침 지나가던 동물원 잡역부가 황제의 질문을 듣더니 막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마치 메아리가 울려퍼지듯 그의 답변은 청산유수였다. 황제가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관리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장석지를 시켜 그 잡역부를 동물원 책임자로 임명하려 했다. 잠시 생각해 보던 장석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폐하께서는 주발 대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덕이 있는 사람이지." 그러자 장석지는 다시 물었다. "그럼 동양후 장상여는 어떤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그도 역시 덕이 있지." "폐하께서는 주발 대감과 동양후를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그 두 분은 말을 할 때면 구변이 없어서 조리있게 이야기 하지 못하십니다. 그 잡역부처럼 수다스럽고 척척 대답하는 것은 그 분들은 결코 하실 수 없습니다. 또 진나라는 하급 서기관에게 정치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밀한 점을 파헤쳐 내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형식을 보기 좋게 갖췄을 뿐 백성을 위한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황제는 스스로의 잘못을 들을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나라가 날로 기울어 2세 황제에 드디어 무너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잡역부의 영리한 대답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를 중용하려 하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천하는 바람에 휩쓸리듯 앞을 다투어 말재주만 일삼으며 실질이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은 그림자가 주인 모양을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대답하는 것보다 빠른 법입니다. 인사 문제는 신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고, "과연 맞는 말이오."하면서 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법이 잘못되면 백성들이 믿고 살 데가 없다
어느 날 태자가 동생과 함께 수레를 타고 어전 회의에 나가면서 궁궐 문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이에 장석지는 뒤쫓아가서 수레를 멈추게 한 다음, "대궐문에서 내리지 않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됩니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황제에게 고발했다. 이 소식이 태후에게 알려지자 황제는 태후에게 찾아가 관을 벗고 정중히 사과했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태후는 사람을 시켜 황제의 명령에 의해 태자를 용서받도록 시켰다. 태자와 동생은 그런 다음에야 대궐을 들어갈 수 있었다. 언젠가는 만조백관들이 황제를 수행하여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황제는 북쪽 절벽 위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신 부인에게 가야금을 타게 하고 황제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곡조가 매우 처량하였다. 이윽고 황제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슬프다. 나 역시 죽게 될텐데...." 저 암산의 아름답고 단단한 돌로 바깥 널을 만들고 모시와 솜을 썰어 틈을 막아 그 위를 옻으로 칠해 두면, 누구도 관을 열어 보지 못 할 것이다." 그러자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일제히,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장석지만은 앞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관 안에 값나가는 보물을 넣어 둔다면 저 앞산 그대로를 바깥 널로 하고 쇠를 녹여 이를 굳혀 두더라도 꺼낼 틈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욕심낼 물건이 없다면 비록 돌로 만든 광이 없더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더니, "과연 그대의 말이 옳소."라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 얼마 후 황제가 나들이 행차를 나가며 다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 사나이가 다리 밑에서 급히 나와 황제가 탄 수레를 끄는 말이 놀라 껑충 뛰었다. 호위병들이 즉시 그 사나이를 잡아 장석지에게 넘겼다. 장석지가 그를 취조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장안에 살고 있사온데, 오늘 이 거리를 지나다가 행차소리가 들리기에 얼른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얼마나 지나 이제는 지나가셨겠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직 수레와 말이 보여 급히 달아났던 것입니다." 잠시 후 장석지는 판결을 내렸다. 그것은 혼자 행차를 범한 것이므로 벌금형에 해당된다는 판결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황제는 매우 화가 났다. "그 놈은 내 말을 크게 놀라게 했던 놈이다. 다행히 내 말이 순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까지 부상당할 뻔했다. 그런 놈을 겨우 벌금형에 그치다니 말이 되는가!" 이에 장석지는 황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법이란 황제께서 천하의 백성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을 적용하는 데 지나치게 되면, 그 법은 백성들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이번 사건만 해도 폐하께서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이셨다면, 모르되, 법을 적용시키려 신에게 넘기셨으면 법에만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법 적용이 한번 잘못되면 법을 다스리는 관리들 모두가 제 멋대로 가볍고 무거운 것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편안하게 믿고 살 곳이 없어집니다. 깊이 살피옵소서." 황제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그대 말이 옳소."하는 것이었다.
그 뒤 종묘 제각에 있는 옥가락지를 훔친 자가 잡혔다. 황제는 크게 노하여 그 자를 장석지에게 넘겨 엄히 다스리도록 명령했다. 장석지는 '종묘에 차려 놓은 물건을 훔친 자'에 관한 법 조항을 적용시켜 '처형시킨 다음 시체를 시장 바닥에 버리는 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자 황제는 펄쩍 뛰었다. "그 놈은 무도하게도 선제(유방)의 사당에 있는 물건을 훔친 놈이다. 나는 그대가 그 놈의 삼족까지 멸해 주길 바랬다. 그런데 법률대로만 적용시키겠다니." 이에 장석지는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황공하오나 법률로서는 이 이상 더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상이 같더라도 그 죄질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고조의 묘에 있는 흙을 한 줌 파가는 어리석은 백성이 있다면 폐하께서는 그 자도 삼족을 멸하시겠습니까?" 황제는 한참 생각하더니 태후와 상의한 뒤 장석지의 견해를 승인하기로 했다. 이 일로 장석지의 명성은 천하에 드날리게 되었다.
어려운 때는 몸을 굽혀라
그 뒤 황제가 죽고 태자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장석지는 태자를 예전에 '대궐문 통행 사건'으로 탄핵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장석지는 처벌받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병을 핑계삼아 사직할까, 아니면 황제를 찾아 뵙고 사죄를 할까 하며 이생각 저생각 다 했으나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왕생이라는 현명한 선비의 의견을 듣고 황제를 찾아가 사죄하였다. 이때 황제는 조금도 그를 문책하지 않았다. 왕생은 노자의 학문에 정통한 처사였다. 하루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궁궐로 들어갔는데 그는 '내 버선이 풀어졌군'하고 중얼거리더니 장석지를 돌아다보고 말했다. "내 버선 좀 매어주게." 이에 장석지는 바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버선끈을 매어주었다. 궁궐을 나와서 누군가 왕생에게 물었다. "왜 조정에서 장석지에게 욕을 보이셨습니까." 그러자 왕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나이도 늙고 재주도 없는 사람이오. 그래서 그런 방법으로 장석지를 도울 수밖에 없었소." 그 사람은 지금 천하의 쟁쟁한 대신이요. 그래서 내가 그를 욕보여 무릎을 꿇고 버선끈을 매게 함으로써 그가 겸허하고 덕이 높은 선비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이오." 나라 안의 지사들은 이 사실을 알고 왕생을 칭찬하였고 또 장석지를 존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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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2부 활성산소가 주범인 수많은 질병
활성산소 피해를 최소화한다
공장을 가동하고나서 생기는 폐수를 처리하지 못하고 내보내면 하천이 오염된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대기오염의 원인이지만, 만일 그 배기가스를 차 밖으로나마 내보내지 못한다면 엔진의 수명은 대푹 줄어들 것이다. 사람이 음식으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들을 적절히 배설-처리하지 못한다면 몸 안에는 해로운 독물질들이 나날이 쌓여만 갈 것이다. 인간의 세포도 마찬가지이다. 에너지를 만들면서 생기는 해로운 프리라디칼을 제거하지 못하면 세포는 오래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지구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생물체는 산소가 없어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차차 대기 중에 산소량이 증가하면서부터는 산소의 독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했다. 그 능력이 바로 항산화 방어능력이다. 여러분들은 이 말이 생소하겠지만 과학자들이 항산화제에 대해 연구를 해 온 것은 수십년이 넘는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노화와 질병의문제를 푸는 열쇠의 하나인 것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대중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일간지에도 간간이 소개되고 있다.
과거에는 적당한 운동이 건강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몇 년 안에 항산화제란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항산화 방어벽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은 건강상식이 될 것이다. 단순히 오래 사는 차원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항산화제는 가장 중요한 물질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단지 조금 먼저 그에 대한 지식을 손에 넣는 것 뿐이다.
항산화제란 무엇인가?
단어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산화에 대항하는 물질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길게 풀어보면 산소를 사용하는 생명체에서 산소로부터 생기는 프리라디칼에 의한 손상과 프리라디칼이 아닌 산소(예: 단일산소, 오존)에 의한 지질, 단백질, 핵산, 탄수화물의 손상들을 차단, 억제하거나 지연시키는 물질로 정의할 수 있다. 여러분은 그저 간단하게 프리라디칼은 건강을 해치는데 이걸 막아주는 항산화제라고 한다더라,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된다. 물론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보면 어제의 진리가 오늘의 진리가 아니며, 상식으로 알려진 것도 찬반양론이 존재하듯이 현재 항산화제의 효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알고 있는 지식 범위에서는 효과가 있는 쪽이 큰 흐름이며, 그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는 얼마든지 댈 수가 있다.
'A라고 하는 어떤 물질이 훌륭한 항산화 효과가 있다'라고 하려면 프리라디칼에 의한 피해가 항산화제를 준 후에 줄어드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현재의 의학 수준으로는 프리라디칼 피해 정도를 완벽하고 정확하게 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측정이 가능하다. 내가 있는 병원에서도 전문클리닉을 운영하는데, 실제로 찾아온 환자들의 혈액을 가지고 그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피해 정도에 따라 항산화제를 처방하는데, 만일 처방 후 다시 검사한 피해 정도가 줄어들었다면 이것이 하나의 객관적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항산화제의 효과에 관한 증거는 동물 실험연구에서 훨씬 더 많다. 인위적으로 동물에게 항산화 영양소가 없는 먹이만 준 후에 조직이나 혈액을 가지고 프리라디칼 피해를 조사하면 손상이 증가된다. 항산화제를 풍부하게 먹인 동물은 훨씬 그 피해가 덜하다. 사람을 동물처럼 인위적으로 틀에 맞추어 실험을 할 수는 없지만, 역시 동물의 경우와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이제까지 알려진 사람에서의 항산화제의 효과를 정리해 보면
첫째, 산소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생기는 해로운 프리라디칼이 덜생기도록 하고 둘째, 이미 생긴 프리라디칼에 의해 망가진 부위를 수리하며 셋째, 수리가 힘들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곳은 새로운 물질로 교체시키기도 한다.
이제부터 우리 몸 안에서 단순히 프리라디칼 피해를 줄이는 역할뿐 아니라 이미 망가진 것을 고치기도 하는 항산화제의 종류를 하나씩 알아보기로 하자.
제 1의 항산화벽
세포 안을 지키는 항산화 근위병들
세포 안에는 에너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임금같은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공장이 있다. 또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도록 하는 유전자 공장이라는 중앙통제 센터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가동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프리라디칼과 산소생성물이 같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당연히 프리라디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항산화 방어벽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체의 항산화 방어벽 중 가장 1단계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성안의 궁궐을 지키는 근위부대 같은 역할을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항산화제들을 피를 뽑아서 측정할 수가 있다. 근위병들이라고 해서 전부 같은 자리를 지키고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각기 임무가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이름도 서로 다르다. 내 몸을 지켜 주는 믿음직하고 충성스러운 다음의 4인방 항산화제들만큼은 주인 입장에서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제 1근위병: 수퍼옥시드 디스뮤타제 제 2근위병: 카타라제 제 3근위병: 환원형글루타치온과 글루타치온 페록시다제 제 4근위병: 셀레니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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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은 상진
상진(1493-1565)의 본관은 목천이고, 자는 기부, 호는 범허정이다. 중종 11년(1516)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3년 뒤 문과에 급제하였다. 검열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어떤 농부가두 마리의 소를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두 마리 중 어느 놈이 일을 더 잘 합니까?" 그 농부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상진의 귀에다 입을 바짝 대고 나직하게 말하였다. "저 짐승의 마음도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평가하는 말을 듣게 될 경우 잘한다고 하면 좋아하고 못한다고 하면 화를 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놈이 낫습니다" "귀하는 숨은 군자입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상진은 농부에게 사죄하고 이때부터 남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한쪽 다리가 짧아 절뚝거리자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절뚝발이라고 하였지만 상진은 다르게 말했다. "그 사람의 짧은 다리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지만 한쪽 다리가 길어서 그렇다" 이와 같이 그는 평생토록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젊었을 적에 점을 잘 치는 홍계관에게 점을 친 일이 있었다. 홍계관이 그때 그의 일생 동안의 길흉화복과 죽는 연월까지 알려 주었는데, 상진이 지나간 세월 속에 벌어졌던 일들이 홍계관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으므로 홍계관이 죽는다고 말한 그 해에 이르러 미리 수의를 준비하고 죽기를 기다렸지만 한 해가 지나도 죽지 않고 아무런 탈이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홍계관이 매우 이상히 여겨 상진을 찾아 뵙고 인사를 하니, 상진이 물었다.
"내가 자네의 점을 믿고 스스로 금년에 명이 다할 줄 알았는데 맞지 않는 것은 무슨 조화요?" "예전 사람이 남모르게 적선한 탓으로 수명을 연장한 이가 더러 있었는데 대감께서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겠는가마는 내가 수찬으로 있을 적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바닥에 붉은 보자기가 하나 있기에 주워 보니 순금으로 된 술잔 한 쌍이었네. 그래서 그 보자기를 가만히 보관해 두고 방을 붙여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주인에게 돌려준일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전의 수랏간 별감이 마침 자질의 혼인이 있어 몰래 대궐 주방에 있는 금잔을 빌려 내왔다가 공교롭게도 길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수없이 사죄하고 간 일이 있었네" "대감의 수면이 연장된 것은 바로 그런 일들 때문입니다"
상진은 15년 뒤에 죽었는데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는 성안이다. 그는 타고난 기품이 넓고 커서 남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판서 오상이 시를 지었다.
복희와 황제의 음악과 풍속 이제 쓴 듯이 없어지고 단지 봄바람만 술잔 사이에 있도다
상진이 그 글을 보고서 어찌 말을 이렇게 각박하게 할까 하며 다시 고쳐 지었다.
복희와 황제의 음악과 풍속 아직도 남아 있으니 봄바람을 술잔 사이에서 얻어 볼 수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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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탄
도는 흙탕물이요, 탄은 숯불이니 마치 흙탕물이나 숯불에 빠진 것 같은 백성들의 고난을 말한다.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은 주지육림에 홀려 백성들의 고통을 등진 왕으로서 알려져 온다. 그 걸왕의 학정에 반항하여 군사를 일으켜 걸왕의 대군을 무찌르고 스스로 처자가 된 이가 은나라의 탕왕이다. 탕왕이 군사를 일으킴에 있어 군중들 앞에서 출진의 서약을 한 말이 서경에 남아 있다. "오라, 그대들 백성들이여 다들 내 말을 들으라, 나는 구태여 난리를 일으킴이 아니요 하나라의 죄가 많기에 천명이 이를 무찌름이니라," 탕왕은 또한 개선한 연후에도 여러 군주들에게 걸왕의 무도함을 열렬히 공격했다. 또한 탕왕의 신하인 중훼는 말하기를 " 하나라의 덕망이 혼미하니 백성이 도탄에 빠지도다."
이로부터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는 말이 오늘날까지 상용되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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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2. 관음보살상 앞에서
덧없다 흘러가는 생멸법(나고 죽는 법) 다하면 고요한 열반이다.
몇 년 전에 관응 큰스님을 뵈었을 때의 일이다. "화엄의 바다"라는 노장님의 법어집이 출판되어, 그 책을 스님께 갖다 드리려고 출판사의 편집장과 직지사를 찾았었다. 그러나 나는 가사장삼을 수하지 못하고 삼배를 넙죽 올리고는 '스님, 가사장삼을 수하지도 못하고 왔습니다' 하자 노스님이 그윽한 얼굴로 나를 건너다보셨다. 사실은 스님 방에 가기 전에 시봉 스님이 가사를 빌려 주었으나 내가 입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소인배들의 쑥덕공론을 하자고 왔으면 나가. 오래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 노장님은 다과 쟁반을 내미시며 '이거나 먹어'하시는 거였다. 그때 스님, 한 방 먹으셨군요 하듯 옆에 앉아 계시던 도진 스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염화실에서 나와 도진 스님의 방에서 차와 함께 환담을 나누다 나는 방을 나와 먼 산을 내다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실, 가사장삼을 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회오의 한숨과 직지사의 산세와 딱 어우러져 산인이 되신 노스님의 미소를 생각하며 서 있었는데 노장이 직접 주전자를 들고 방을 나오시는 거였다. "스님, 제가 물을 떠다 드릴께요." 나는 죄송스런 마음도 있고 해서 진심으로 합장배례하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스님이 오랜만에 찾아온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기가 뭐해서 그러나 하고 다시 손을 내밀자 스님이 걸음을 딱 멈추시더니 인자하게 웃으시는 거였다. "이보게. 목이 마른 건 나니까 내 우물은 내가 파겠네. 수좌는 어서 저기 먼 산에다 우물이나 파시게." 스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단구의 걸음으로 허적허적 약수터로 걸어가시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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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19. 언어를 잃어버린 겨레 1/2
한자와 한글
나라말을 바로 표현하기 위해서 한글만을 쓸 것인지 한글에 한자를 섞어 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쓸 경우 한자를 괄호 안에 넣어 쓸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한자를 중심으로 괄호 안에 한글을 달아줄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한글과 한자를 혼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한자가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어떤 사람은 한자가 여전히 중국 한족의 문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한자가 원래부터 우리 글자였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도 한글이 우리 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한자를 오늘날의 문자로 발전시킨 것이 중국 한족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자는 은나라를 비롯한 중국계 기마종족의 문자였으며, 기자계의 이주(제2장 참조)를 통해 우리 겨레의 문자로 자리잡았다. 물론 우리 겨레를 비롯한 동아시아 기마종족은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독자적인 문자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며, 한글의 원형인 훈민정음은 그런 문자를 재정리(제13장 참조)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 한족의 손에서 다시 다듬어진 뒤에도 한자에 우리 겨레의 말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성을 가리키는 또다른 표현인 씨는 오늘날의 중국 발음으로 '스'이지만 옛 발음은 '씨'였고, 지금도 중국 북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런 발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성이 모계혈통을 가리키던 말인 데 비해 씨는 부계혈통을 가리켰지만, 어쨌든 씨라는 글자는 우리말의 씨와 같아서 씨앗의 의미로 쓰인다.
한자에서 사람을 나타내는 신자의 현대 중국어 음가는 '렌' 또는 '르언' 이지만, 옛 발음은 역시 '인' 또는 '닌'이었다. 그런데 '인'이라는 글자의 발음은 왜 인일까? 이것은 우리말의 '임'과 같은 뜻을 가진 글자로 임을 음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리를 가리키는 '?'의 발음이 '도'(현대 중국어 음가는 '투')인 것도 복수형을 나타내는 우리말의 '∼들' 또는 '둘'(두레)과 관련되어 있으며, '한'과 '한'의 발음이 '한'(현대 중국어 음가는 '한')인 것도 크다는 뜻의 '한'과 관계가 있고, '여'의 발음이 '녀'(현대 중국어 음가는 '뉘')인 것도 여성을 나타내는 우리말의 '뉘'(누이)와 관련되어 있다.
기마종족의 주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말은 한자의 '마'(마, 현대 중국어 음가는 '마')로 나타났으며, 사냥대상이었던 '돗'(돼지)은 '돈'(돈, 현대 중국어 음가는 '툰')이 되었고, 개는 '구'(구, 현대 중국어 음가는 '거우')가 되었다. 또 우리말의 '알'(아이 또는 얼이, 얼라)은 '아'(아, 현대 중국언 음가는 '알')와 같으며, 신을 나타내는 우리말의 '검'(가마, 고마, 개마)은 '금'(금, 현대 중국어 음가는 '진')과 같아서 검줄이나 금줄이 섞여 쓰이기도 하고, 우리말의 '참'은 '진'(진, 현대 중국어 음가는 '쩐)과 같으며, 우리말의 '풀'은 시(불, 현대 중국어 음가는 '푸')와 통한다. 한자에서 '수'(화, 현대 중국어 음가는 '후아')의 발음은 우리말 해와 관련이 있고, '백'(백,현대 중국어 음가는 '바')의 발음은 '밝다'와 관련이 있으며, '막'(막, 또는 '막'이나 '막', 현대 중국어 음가는 '머')의 발음은 '막다'와 관련이 있다. 옷과 '의'(의, 현대 중국어 음가는 '이')의 관계나 갖(가죽)과 '혁'(혁, 현대 중국어 음가는 '거')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밖에도 이런 관련성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중국 한족이 남방계 농경종족과 혼혈되는 과정에서 문법체계와 함께 문자의 발음체계가 크게 바뀌었고, 그 결과 오늘날 한자와 우리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자를 뜻으로 읽는 일본인의 발음이 한자의 중국 발음과 매우 거리가 멀 듯, 한자도 혼혈 한족의 문화 속에서 그 발음체계가 크게 바뀌었을 뿐 아니라 문법체계마저 바뀌었던 것이다. 설령 이런 이야기가 한낱 재미있는 낭설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한자는 중국 한족만의 문자가 아니며, 최소한 은나라 멸망 이후 기마종족과 한족이 함께 사용한 문자였다. 즉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한자가 들어왔느냐는 따위의 의문은 그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날까지 한자를 그대로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한자를 영어와 같은 차원의 외국어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한자어 가운데는 우리 역사와 함께 남아야 할 것들도 있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것들도 많다. 어떤 면에서 이웃나라 일본은 그런 생활을 잘 발전시켜온 셈이다. 만약 한자를 모두 버린다면 우리말 가운데 임금의 옛말이 임검이고, 임검은 사람(임, 인)과 신(검 또는 가마, 금)의 합성어로서 '사람 신' 또는 '신 같은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게 된다. 즉 임금은 찰나 사이에 영어의 king이 되거나 최고와 권력자라는 정치경제적 개념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자를 사용한다고 해서 말뜻이 제대로 담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말 그 자체에 이미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무엇보다 그 의미를 바르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풍요 속의 빈곤
오늘날 우리들의 언어생활은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매우 많은 말을 인용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나라 밖에서 들어온 말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처럼 많은 말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제대로 담긴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어떤 경우 적절하게 사용되는 듯한 말도 사실 매우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푸른 하늘'은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틀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언어가 조금만 제대로 교육되었더라도 '푸른 하늘'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푸르다'는 '풀'에서 온 말이므로, 푸른 하늘을 영어로 옮길 경우 blue sky가 되는 것이 아니라 green sky가 되는 탓이다. 물론 엄밀하게 살펴보면 하늘도 sky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또 '알'이라는 말도 닭이나 오리의 알처럼 둥근 모양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는데, 그것도 잘못된 경우이다. 알이란 완성된 생물에 의해 재생산된 그 생물의 씨앗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람이 낳은 사람 씨도 '아이'(baby) 또는 '알라'(얼라)라고 부른다. 즉 알이란 어떤 모양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생명의 원초적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며, '얼(알) 빠진 사람'은 바로 인간의 원초적인 상태마저 잃어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셈이다. 소의 새끼를 송아지라 부르고 개의 새끼를 강아지라 부르며 말의 새끼를 망아지라 부르는 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이때 '아'는 알이 발음 편의상 줄어서 된 것이고, 지(또는 치)는 중성적 생물을 나타내는 명사형어미로서 '그치', '저치' 등도 사용되고 있다. '우리'라는 말도 나의 복수형으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원래 '울'(울타리 또는 우리)을 함께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즉 우리는 작은 우리들이 모여서 큰 우리가 된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쓰는 경우도 있다. 복수형을 나타내는 '-들' 이라는 말은 원래 '두레'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살아 있는 사물에만 쓰일 수 있지만, 우리는 '나무들', '돌들'처럼 삶이 없는 사물에도 '들'자를 붙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말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역사책에서 '선돌'과 '고인돌'이 나오는데, 고인돌이란 말도 잘못지어낸 말이다. 옛 시대의 돌무덤(묻은 다음 돌로 덮은 것)인 고인돌에서 중요한 돌은 괴어놓은 돌이 아니라 덮어놓은 돌이다. 즉 고인돌이 아니라 '덮은돌'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선돌은 '세운돌'이라 하지 않고 선돌이라 했으므로 덮은돌도 '누운돌'이라 불러야 그 사물이 바른 우리말 이름을 얻는 셈이다.
문자의 체계를 표의문자와 표음문자로 구분하면서, 우리 글은 표음문자로 구분한다. 그러나 표음문자라고 해서 글자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글에도 나름대로 뜻이 있으며, 이 뜻이야말로 우리의 문화와 사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숫자를 표시하는 말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것이 숫자를 나타내는 약속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발음조차 임의로 바뀌면서 허망한 표준말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하나는 으뜸이고 크다는 뜻의 '한'에서 왔으며, 둘(두리)은 단수형 복수를 가리키는 '두레'에서 왔고,셋(서이)은 삶을 뜻하는 '서다'에서 왔으며, 넷(너이)은 죽음을 뜻하는 '넣다' 도는 '눕다'에서 왔다. 또 다섯(닫서)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닫고 서다'에서 왔으며, 여섯(엿서)은 한걸음 나감을 뜻하는 '열고 서다'에서 왔고, 일곱(일굽)은 '일구다'에서 왔으며, 여덟(엿덜)은 자유로움을 뜻하는 '열고 닫다'에서 왔고, 아홉(아ㅎ)은 '아우르다'에서 온 말이다. 이처럼 우리말에도 우리 문화와 사상이 꿈틀대고 있으며, 그런 꿈틀거림을 알아야 참으로 우리말을 쓰고 가꾸는 것이다. 또 그래야만 우리말은 살아 있는 우리들의 말이 되며, 나아가 우리의 정신적 바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언어생활은 우리말의 껍데기만 보살피는 꼴이다. 한자를 섞어 쓰든 한글만 쓰든 중요한 것은 바로 말의 뿌리를 스스로의 문화적,정신적 능력으로 삼는 일이다. 예컨대 '먹다'라는 말이 '막다'라는 말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뜻이 '백'(넋)이 몸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준다는 의미라는 것을 모를 경우, 먹는 행위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조상들이 먹는 행위를 한자로 표현할 경우 '요기하다'라는 말을 즐겨 썼는데, 먹다의 말뜻을 모르면 이 또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요기라는 말은 '기운에다 재료를 대주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먹다'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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