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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11 호
단기 4340. 12. 22 (음력 11. 1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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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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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작가상 작품모집
오늘의 작가상 작품모집 매년 3월 5일 응모 작품 마감/ 매년 5월 수상작 발표
모집 부문 및 분량 - 장편소설 700매 내외
응모 자격 - 신인 및 등단 10년 이내의 작가
상금 - 3,000만 원
≪세계의 문학≫ 창간과 함께 제정된 <오늘의 작가상>은 지난 30년 간 우리 문학에 근대의 그늘을 걷어내는 힘찬 동력이었다. 1977년 제1회 수상자인 한수산(『부초』)을 시작으로, 제2회 박영한(『머나먼 쏭바강』), 제3회 이문열(『사람의 아들』)로 이어지는 거장들의 출현은 문단과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김광규, 최승호, 조성기, 강석경 등 시인·소설가들의 등장은 <오늘의 작가상>의 문학적 위의를 확인시켰다.
이후 이혜경, 이치은, 고은주, 우광훈, 이만교에 이르는 젊은 작가들 또한 시대의 정신을 수렴하고 심미성의 사회적 소통을 지향하는 <오늘의 작가상>의 의지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 문학의 중심을 새롭게 이어갈 또 한 사람의 거장을 찾는다.
2007년 제31회 <오늘의 작가상>부터 모집 부문과 상금 규정에 변화가 있습니다. 2006년 하반기부터 시 부문은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선작은 ≪세계의 문학≫ 여름호와 동시에 단행본으로 출간합니다.
단행본 출간 후 판매 부수에 대한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를 드립니다.
응모 작품은 반드시 우송 또는 직접 접수시켜야 하며 원고의 반환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응모 작품의 마감은 매년 3월 5일(마감일자 소인 유효)을 원칙으로 하며 매년 5월 31일 이전에 수상자를 결정하고 계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심사 경위를 발표합니다.
보낼곳: (135-887)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번지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주)민음사 <오늘의 작가상> 담당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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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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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놀라는 사람도 많지만 반란을 만난 혁명가보다 더 놀라는 사람은 없다. / 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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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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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3. 퇴계 이황
개미까지도 밟지 말고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똑바로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공부해야 한다. 발놀림은 무겁게 할 것이며, 손가짐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야 하고, 땅은 가려서 밟아, 개미까지도 밟지 말고 돌아서 가자. 문을 나설 때는 손님을 뵙듯 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조심조심하여, 혹시라도 작은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 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하고, 잡념 막기를 성곽처럼 튼튼히 하며, 성실하고 진실하여 조금도 경솔함이 없어야 한다. 동쪽을 가야 할 때 서쪽으로 가지 말고, 북쪽을 가야 할 때 남쪽으로 가지 말며, 일을 할 때에는 오직 그 일에만 마음을 두어, 그 마음씀이 다른 데로 가지 않도록 한다. 두 가지, 세 가지 일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모아 만 가지 변화를 살피도록 한다. 이러한 것을 그치지 않고 일삼는 것을 곧 '정성을 지닌다' 하니, 움직일 때나 조용할 때나 어그러짐이 없고, 겉과 속이 서로 바로잡히도록 하라. 잠시라도 틈이 벌어지면 나쁜 욕심이 만 가지나 일어나 불꽃도 없이 뜨거워지고 얼음 없이도 차가워진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자리를 바꾸고 삼강오륜이 땅에 떨어지며 배움 또한 못 쓰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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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 / 지혜 / 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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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김재은
제1장 - 생각한다는 것
3. 개울물과 같은 마음의 움직임
지금까지 이야기한 대화와 똑같은 일이 자기 혼자서 하는 내성-활동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안쪽으로 들여다보는 것-에 의해서 밝혀지게 된다. 심리학자는 이러한 것을 '마음의 흐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정신을 따로따로 떨어진 여러 가지 기능으로 쪼개서 생각하는 잘못되기 쉬운 방법에 비해서는 정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데 커다란 진보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두뇌의 흐름은 현실적으로는 기억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정되어진 이미지· 감정, 주의, 지성 또는 부분적으로는 지적 판단을 흐릿한 혼란 상태인 채로 흘러 보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마치 강이 그 흐름을 멈추지 않듯이 잠자는 동안에도 결코 멈추는 일이 였다. 그러나 마음의 흐름이란 마치 개울물과 같은 것이어서, 그 흐름은 항상 방해를 받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고 빙빙 돌면서 혹은 굽이치면서 멋대로 흘러간다. 우리들의 내부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가 있지만, 잠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그치지 말고 유심히 잘 관찰하면 심리적인 연쇄의 변환과 재현이 거듭 되풀이되면서 순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연쇄가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미지가 생각에 따라서 연쇄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막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은 여러 가지 많은 이미지-강물의 흐름 속의 잔물결과 같이 재빨리 부서져서 잡기가 힘들 정도의 자질구레한 반사작용-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 중의 작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시골집의 창고, 홀바인이 그린 에라스무스의 초상화, 그리고 그 바보 녀석 등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것은 만화경 속의 크고도 밝은 조각과 같은 것으로서, 독서를 하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2, 3분마다 이들 이미지로 되돌아가곤 한다. 이와 같은 이미지가 그에게 주는 것은 우리들에게 다른 이미지가 작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란 점은 되풀이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그 이미지의 몇 가지에 마음이 끌리기도 하고 또 다른 몇 가지 이미지에 대해서는 반발하기도 한다. 낡은 사고 창고의 이미지는 마음을 듬뿍 채워 준다. 에라스무스의 초상화도 그렇다. 그 바보 같은 녀석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바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그 까닭은 그 사나이가 나를 몹시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기분 좋은 우월감에 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불유쾌한 광경에서 가끔 유쾌한 감정을 구할 수도 있다. 마음의 흐름은 개울물처럼 관목이 우거진 양쪽 기슭 사이를 재빨리, 또 매우 깊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물 속을 뚜렷이 들여다보기란 몹시 어려운 것이다.
#1 우리들 심적 작용의 거의 전부는 이미지라는 것과 끊을 수가 없으며, 이미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 접에서는 주위의 동물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개의 뇌 속에는 이미지· 소리, 냄새가 백과사전만큼이나 대량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면 개의 행동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2 이들 이미지는 욕구나 혐오, 바라는 것과 바라지 않는 것들에 밀접하게 대응(對應)하고 있다. 따라서 이 바란다,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과 결부되어 우리들 심리의 궁극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3 사람들의 생각이나 주고받는 대화, 생활방식이나 생활 그 자체로 미루어 보아 어떤 이미지가 그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 주고 잇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알아내어 평가하면, 그것은 우리들의 기호의 조사나 평가와 상호 보완되어 행동에서 미루어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우리들의 값어치를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행동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겠다.
4. 이미지야말로 사색의 첫걸음
지금까지 말한 것은 사상과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하겠다. 분명히 우리들의 머리는 가끔 이미지나 기호, 바라는 것 또는 바라지 않는 것에서 떠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뭔가 틀림없이 가장 정도가 높은 마음의 작용, 형태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수학이나 철학의 체계 같은 것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른바 논리란 어떤 것일까? 이와 같은 연구는 '과학 사상'의 분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기술'만을 문제로 삼는 우리들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분야이긴 하지만, 그런 점에 관해서 여기서 부연해 둔다는 것도 우리의 목적에 전혀 무익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사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수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것, 이미지를 중개하지 않고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지의 도움을 빌지 않고도, 실용적, 또 때로는 이론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미 마음의 움직임의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 '사상'이라고 할 때, 사람의 머리, 또 때로는 두뇌의 내부를 시각화해서, 그것도 흐물흐물한 기분이 좋지 않는 뇌로서가 아니고, 아마도 받아들인 데이터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복잡하게 마치 전선을 배선한 듯한 것, 혹은 최고로 정밀한 기계 장치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까? 정신작용 또는 기능이라는 말은 그리 특이한 말은 아니다. '보다' '알다'는 말은 희랍어로는 같은 말로 쓴다 '숙고'라고 하는 말은 매우 지적인 냄새가 풍기는 말로 들리지만, 이것은 원래 '무게를 달라'는 뜻이다. '생각하다'는 것은 이런 것들보다는 한결 거친 '...인 듯하다'를 의미하는 말에서 온 것이다. '논리'와 '연설'은 같은 말이고 또 '관념'과 '이미지'도 결국은 같은 말이다. 우리들은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회전하는 이미지의 필름은 의식할 수가 있지만, 좀처럼 쉽게는 보여지지 않는 그 밖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을 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세트의 이미지는 스피드를 바꾸어서 시종 서로 겹쳐지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일들에 마음을 팔고 있는데, 예기치도 않던 결론이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이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메인 주에 있는 집의 기억에 정신이 사로잡혀 있던 아까 그 신사는, "읽을 필요가 없을 때 읽는다는 것은 좋지 않는 일입니다"라고 하는 내부로부터의 소리를 갑자기 듣고는 당황해서 책을 덮어 버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 까닭은 앞에서 말했듯이 메인 주의 집에 관한 필름 밑에 겹쳐져서, 얼마 전에 진찰을 받고 난 후에 잠재의식에서 거의 한 순간도 떠난 일이 없는 안과의사의 이미지가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의식 속에 세 개의 층(아마도 그 이상일지도 모를 일이지만)이 겹쳐진 것이다.
생각의 기술이라는 책 - 메인 주의 집 - 안과의사
자, 여기서 아까 그 신사는 예상도 하지 못할 결론을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나는 뉴저지 주의 그 집을 사기로 하자' 이와 같은 결론은 너무도 갑작스러운 것처럼 보여서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에서 본 그 겹쳐지고 또 겹쳐지고 한 이미지에서 분명히 기인하고 있다.
#1 메인 주의 집+속도가 느린 열차+두 군데의 갈아타는 곳+존스 씨 집이 가깝다=고맙지 않다. #2 래이크드 씨 댁(부동산업자에게서 사도록 권유를 받은 집)+쾌적한 열차=가깝다+모기가 없다=잠이 잘 온다. #3 잠+가깝다+소나무숲+모래땅=매력적=미소=산다
이 모든 이미지들은 마치 번개처럼 빠르게 하나하나 이어지면서 사고라는 것을 형성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가지의 연속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때에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들이 어쩐지 자꾸 파고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우리들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보다 말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고급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실상 그런 것이 아니고, 언어나 글귀로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돈을 계산할 때 '더하기 일흔 다섯'이라고 중얼거리거나, 아니면 '두번 다시 이런난처한 일을 당해서는 안되지'라고 혼잣말로 자기에게 말하는 습관에서 오는 착각이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느 쪽을 바라보더라도 온통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상이라고 하는 조작도 이미지의 산물로서 반드시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역사를 생각할 때에는, 거의 위대한 인물이나 그 위대한 시대를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또 유일한 실험을 상기하지 않고 과학을 말할 수는 없다.
'진리'라고 하는 정신적인 말도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진리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인식시키는 어떤 특정한 연구 따위와 결부시켜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미지는 또다시 모습을 나타내 보이게 된다. 기하학에서조차도 도형과 이미지가 얼마나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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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편달
본뜻 : 편달이란 채찍으로 때리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바뀐 뜻 : 흔히 지도 편달이란 네 글자로 묶어 쓰는 이 말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면서 길이 아닌 곳으로 가거나 비뚜로 나가는 것을 경계하고 격려해 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보기글" -어리석은 저희 아들을 맡기며, 선생님의 자상하신 지도 편달을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지도 편달을 기대하며 감히 이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천편일률
본뜻 : 천 편이나 되는 글이 오로지 한 가지 운율로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시문들이 모두 비슷한 글귀나 형식으로만 되어 있어 참신한 맛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 사물이 모두 판에 박은 듯이 똑 같아서 새롭거나 독특한 개성이 없고 재미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보기글" -이번 도깨비 문학상에 응모한 소설들은 어쩌면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신세대 얘기를 썼는지 모르겠어 -유행이란 게 뭐냐?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은 옷에 똑 같은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게 유해이라면 나는 아예 유행을 따르지 않고 말겠다
주머니차
신문을 읽다가 ‘뽕잎 주머니차’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다. ‘주머니차’라는 말을 처음 쓴다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주머니차’(tea bag)와 같이 영어 표현을 친절하게 밝혀 주었다. 순우리말 표현을 보고 반가워하다가 ‘티백’을 그대로 번역하면 ‘차주머니’인데 왜 앞뒤를 바꿔 ‘주머니차’라고 했는지 궁금했다.
생각해 보니 ‘차주머니’는 ‘티백’보다 의미 영역이 넓다. “차주머니를 만들어 장롱 속에 매달아 놓으면 냄새 제거와 방충 효과를 함께 볼 수 있다”, “차 도구에는 차주머니, 다기 바구니, 수저 등이 있다” 등에 나오는 ‘차주머니’가 종이나 천으로 만들어 차를 넣어 두는 주머니이기는 하지만 모든 ‘차주머니’에 ‘티백’처럼 1인분씩 차를 나누어 넣는 것은 아니다. ‘주머니차’라면 ‘차주머니’와 구분해서 ‘1인분의 차를 넣은 주머니’란 뜻으로 쓸만하겠다. ‘티백’이라는 외래어보다는 이왕이면 쉬운 우리말 ‘주머니차’를 살려 쓰는 것도 좋겠다.
물건이나 개념을 새로 들여올 때 말도 함께 들어온다. 그래서 외래어가 하나 늘어나기도 하고 그에 맞는 우리말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베이스볼’을 야구로, ‘바스켓볼’을 농구로 바꾸듯 풀밭에서 친다는 의미를 살려 골프(golf)를 ‘초구’(草球)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가 “타자가 초구(初球)를 쳤습니다”처럼 쓰이는 ‘초구’와 겹쳐 실현되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다. 억지스럽지 않고 원래 쓰던 다른 말과도 겹치지 않는 쉬운 우리말 표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우리말 계통
세계의 여러 언어들은 뿌리를 어디 두는지에 따라 몇 가지 말겨레(어족)로 나뉜다. 우리말은 어느 말겨레에 들며, 뿌리는 어디일까?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랄-알타이어족이다, 알타이어족이다 등 여러 주장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알타이어족이 있다면, 우리말은 알타이어족에 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아직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
여기엔 세 가지 사실이 들어 있다. 먼저 ‘알타이어족이 있다면’이라는 전제다. 알타이어족에 드는 말무리(어파)로는 몽골어파, 튀르크어파, 만주-퉁구스어파 셋이 있지만, 이들을 한뿌리에서 갈라진 것이라고 보는 쪽과 이에 동의하지 않는 쪽이 팽팽하다. 그래서 이들을 묶어 알타이어족이란 말 대신 ‘알타이언어’라고도 일컫는다. 다음은 ‘알타이어족에 들 가능성이 높다’라는 표현이다. 우리말과 알타이언어들의 말소리와 문법을 견줘보면 비슷한 점이 꽤 많다. 그래서 알타이어족에 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뿌리임을 증명할 체계적인 비슷함이 잘 찾아지지가 않아 ‘과학적으로 아직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 출판된 여러 언어학책에서는 ‘한국어족’이라는 것을 따로 제시하고 거기에 우리말을 넣는다.
따라서 이를 과학적으로 분명히 밝히는 일은 우리 학계가 풀어야 할 큰 과제다. 폭넓고 깊은 현지 조사를 통해 우리말과 알타이언어의 특성을 더욱 정밀하게 비교해야 할 것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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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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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3. 복은 화가 들어오는 문이다(원앙, 조착)
3)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명예 때문에 망한다
앞날이란 장담할 수 없다
조착이 죽은 후 원앙은 반란이 일어난 오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오왕은 자기 밑에서 일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원앙은 거절했다. 그러자 오왕은 군대 안에 원앙을 가둬놓고 죽이고자 했다. 그런데 전에 원앙이 오나라에서 벼슬하고 있을 때 어떤 호위병이 하녀와 통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원앙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그 호위병을 평상시와 똑같이 대우해 주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그 호위병에게, '나으리께서 너의 통정 사실을 알고 계신다'고 귀뜸해 주자, 그는 곧바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원앙은 말을 타고 쫓아가 하녀를 그에게 주고 다시 호위병으로 일하도록 했다. 그런데 바로 그 호위병이 이제 원앙을 감시하는 책임을 맡은 지위에 있게 되었다. 그는 옷가지 등을 팔아 2천 말의 독한 술을 사놓았다. 그때 날씨는 매우 추웠고, 병사들은 목이 말라 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술을 먹이고, 모두 술에 취해 잠이 들자 원앙을 깨웠다.
"나으리께서는 지금 탈출하셔야 합니다. 오왕은 내일 아침에 나으리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원앙이 이 말을 믿지 못하며 물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만, 당신은 누구인가요?" "예, 바로 옛날 나으리의 하녀를 가로챘던 호위병입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이에 원앙이 놀라 일어나 인사하였다. "기억이 나오. 그런데 당신께는 부모와 처자가 있는데 이런 일로 피해를 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저는 이미 망명하려고 부모와 처자를 피신시켜 놓았습니다. 안심하시고 얼른 저를 따르십시오." 그리고는 원앙을 인도하여 잠든 병사들 사이를 헤치며 도망쳤다.
반란이 진압된 후 원앙은 병을 얻어 고향에 머물렀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고, 닭싸움이나 개달리기 등의 놀이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극맹이라는 협객이 원앙을 방문했는데, 원앙은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자 어떤 부자가 원앙을 비난했다. "극맹이란 자는 도박꾼이라는데, 왜 그런 자를 대우하는 것입니까?" 이에 원앙이 대답했다. "극맹이 도박꾼인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그의 모친이 죽었을 때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이 타고 왔던 수레만도 천 대가 넘었소. 그는 다른 사람이 급하게 그이 대문을 두드리면 그 부탁을 거절하거나, 있으면서도 없다면서 되돌아가도록 만든 적이 없었소. 그래서 천하 사람들이 지금 우러러보고 있는 사람은 의리있는 협객으로 소문난 계심(계포의 동생으로 용감하고 의협심이 강해 선비들이 앞을 다투어 그와 사귀기를 원했다)과 극맹뿐이오. 지금 당신은 항상 몇 명의 호위병을 데리고 다니지만, 만약 위급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그들만 믿을 수 있겠소? 사람이란 언제 위급한 일이 터질지 모르는 법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크게 꾸짖고는 절교해 버렸다. 사람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모두 원앙을 칭송하였다.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명예 때문에 망한다
원앙은 비록 고향에 내려와 묻혀 살았지만, 황제는 자주 사자를 보내 국정에 관하여 그의 자문을 구하곤 했다. 한편 전에 경제의 아우인 양왕이 자기에게 제위를 물려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때 원앙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는데, 이후 양왕은 원앙에 양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자객을 원앙에게 보냈다. 자객이 서울에 들어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원앙을 칭찬하고 있었다. 자객은 원앙을 찾아갔다. "저는 나으리를 죽이기 위해 양왕이 보낸 자객입니다. 하지만 저는 나으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겠습니다. 나으리만한 인물을 죽일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마십시오. 아직 10여 명의 자객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부디 몸조심 하십시오." 그 뒤 원앙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느 날 원앙은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미행하던 자객에게 칼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했다.
"원앙은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뛰어난 생각에 의해 여러 가지를 종합함으로써 체계적인 이론을 세웠다. 그는 어진 마음을 바탕으로 정의감에 비추어 세상을 개탄했다. 하지만 효문제가 즉위하자, 그의 재능은 때를 만났다. 그 후 시대는 변하고 바뀌어 오, 초의 반란이 일어나고 효경제를 한번 설득시킴으로써 그의 주장이 관철되었으나, 반란을 평정시키지는 못하였다. 그는 명예를 중시하고 재주를 뽐냈으나 결국 그 때문에 죽었다. 한편 조착은 젊을 때 자주 조정에 건의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드디어 권력을 얻어 마음대로 행사하면서 법령을 많이 뜯어 고쳤다. 그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 당연히 나라의 위급함을 구하는 데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갚는 데에 몰두하다가 오히려 스스로 망치고 말았다. 옛말에 '옛부터 내려오던 법을 바꾸고 상식을 어지럽히는 자는 죽거나 망한다'고 했는데, 이는 바로 조착의 경우를 가리키던 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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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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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2부 활성산소가 주범인 수많은 질병
프리라디칼이 일으키는 질병들
백내장을 유발하는 프리라디칼
노인에게 가장 중요한 2가지 시력장애의 원인이 혹시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백내장과 황반퇴화란 병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 병의 중요성을 아직 잘 모르겠지만, 노인들은 이 병들이 얼마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멀쩡하던 눈이 흐리멍텅하고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빠른 경우는 40대부터도 생기기 시작한다.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2가지 병은 아직 예방법이 없으며, 치료법도 단점이 있다.
우선 백내장의 경우는 수술 방법이 매우 발달되어 있으며 안전하고 효과도 있다. 하지만 수술받기 전까지는 상당 기간을 불편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 황반퇴화는 레이저치료법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몇몇 소수에서만 할 수 있다. 레이저치료가 있지만 시력감소 시기를 늦추어 주는 것에 불과한 실정이다. 물론 치료법이 점점 발달할 것만은 틀림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2가지 병은 앞으로도 점점 증가할 것이므로 그 예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프리라디칼의 피해를 막는 항산화제 투여에 의한 예방효과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을 찍을 때 빛이 강할 때에는 렌즈를 좁게 해서 빛이 조금만 들어오게 하고, 반대로 실내에서는 렌즈를 활짝 열어서 찍어야 빛이 제대로 들어와 사진이 잘 나온다. 눈에서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수정체이다. 즉 수정체는 투명해서 눈으로 들어온 빛이 잘 통과하도록 하면서 그 강도와 굴절 정도를 조절해 준다. 탄력성이 좋은 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두께가 자유자재로 조절되기 때문이다. 백내장이란 수정체가 뿌옇게 탁해지는 병이다. 마치 눈앞에 창호지 같은 종이를 대고 보는 것처럼 시력이 떨어진다. 백내장이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엄마가 풍진에 걸리면 태어난 아이에서 선천성 백내장이 생긴다. 또 염증이나 눈의 상처, 당뇨의 합병증으로도 올 수 있다. 하지만 노화에 의한 노인성 백내장이 가장 많다. 이 노인성 백내장의 원인으로 꼽는 것이 프리라디칼 손상에 의한 수정체의 노화이다. 자외선을 쪼이면 수정체에 산화가 일어나며 그 과정에서 생긴 과산화수소, 히드록시라디칼, 수퍼옥시드라디칼들이 수정체 조직에 손상을 주는 것이다.
가장 흔한 시력장애의 두 번째 원인질환, 황반변성과 프리라디칼
어린아이와 젊은이의 맑고 투명한 눈과 노인의 눈을 비교해 보라. 탄력이 없고 거칠어 보이며 탁해 보인다. 40세 전후부터 눈의 노화가 빨리 진행된 결과이다. 이런 눈의 노화 중에 황반부변성증이란 병이 있다. 카메라로 찍은 물체를 사진으로 보려면 필름에 상이 맺혀져야 한다. 눈에서 필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망막이며, 눈으로 들어온 빛이 수정체를 지나 이곳에서 상이 맺혀진다. 망막의 중심부에는 다른 부분에 비해서 황색으로 보이는 황반부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추상체라는 시각세포가 밀집되어 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황반부에 퇴화가 일어나게 되어 시각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상이 맺히는 망막의 중심부에 이상이 온 것이므로 중심 시야가 어둡게 보이며, 물체가 작아 보이기도 하고 구부러져 보이기도 한다. 황반부의 퇴화가 오는 이유도 프리라디칼과 관련이 있다. 동물에게 자외선이나 방사선을 쬐어 주면 프리라디칼이 생기고, 다가불포화지방산이 많은 광수용체막의 지질에 과산화변질이 생기는데, 이런 변화가 인간에서 생기는 황반퇴화라는 병에서도 관찰되는 것이다.
프리라디칼을 처리 못하면 면역기능이 약해진다
외부로부터 해로운 물질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내로 들어와도 우리 몸은 이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면역기능이라는 방어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왔다고 치자. 그러면 가장 1차로 식세포(이물질을 잡아먹는 작용을 하는 세포)라는 방어기능이 발동하여 세균들과 전쟁을 벌인다. 이때 식세포가 사용하는 무기 중의 하나가 활성산소이다. 활성산소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인체조직이 아닌 세균들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이 경우는 활성산소가 이로운 역할을 하게 된다. 식세포 작용만으로 방어기능이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임파구라는 2차 방어 세포가 후방에서 자체 살상기능과 항체를 만들어 확실하게 세균들을 제압하게 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정상세포가 어떤 원인에 의해 암세포로 일단 바뀌게 되면 빨리 이를 알아차려서 암세포를 초기에 무력화시켜야 한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바로 임파구라는 세포이다. 그런데 2차 면역기능을 하는 임파구라는 세포는 활성산소 처리능력이 약한 사람에서는 그 기능도 약해진다. 반대로 활성산소 처리능력이 강한 사람에서는 그 면역기능도 강해지게 된다. 흡연을 하면 활성산소가 많이 생기며 또한 활성산소 방어벽도 약해진다. 이런 사람의 임파구 기능을 측정해 보면 정상시보다 감소되어 있다.
임파구라는 세포가 활발히 움직여 주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면역기능이 감소하면 우리 몸은 항상 외부 침입자와의 힘겨운 전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다가 아예 그 기능이 없어지면 각종 잡균이나 세균들은 우리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마구 들어와서는 활개를 치며 살게 된다. 또한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데도 그 활동을 저지하지 못하게 된다. 한번 걸렸다 하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에이즈란 병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병이 왜 무서운가? 에이즈균은 면역기능에 중요한 임파구의 천적이다. 임파구는 다른 때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면서도 에이즈균 앞에서는 무기력하게 파괴된다. 바로 이런 면역세포들이 제 기능을 하려면 인체 내에서 생성되는 프리라디칼과 그것을 처리하는 항산화 방어벽간에 적절한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즉, 어린이건 젊은이건 노인이건간에 항산화 방어벽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만 면역기능 장치가 제대로 가동된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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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임권이 언제인가 경연에 나아가 아뢰었다. "김안로가 조정에 있게 되자 소인으로서 일정한 주관이 없는 자들이 붕당을 만들어서 못된짓을 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전하께서 붕당을 만들게 하여 그들에게 못된 짓을 마음대로 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중종의 대답하였다. "내가 그 책임을 핑계댈 수 없다" 임권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융성하도다 임금의 말씀이여! 참으로 만세 제왕의 본보기이다. 신하의 바른 말을 수용하고 과실을 자신에게 돌리니 한 가지를 거론하여 두 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춘 격이다. 만일 임금이 자신이 옳다고 하면서 바른 논의를 듣기 싫어한다면 누가 기꺼이 바른말을 발설하여 화의 함정으로 빠져들려고 하겠는가?"
김안로가 나라를 그르칠 줄 미리 알고 걱정하였던 이언적
이언적(1491-1553)의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복고, 호는 회재, 자계옹, 자옥산인이라고 하였다. 처음 이름은 이적이었는데, 중종이 언자를 더하도록 명하였다. 중종 8년(151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당시 나이 24세였다. 사간이 되었을 때에 김안로는 유배된 상태에 있은 지 오래였다. 어느 날 심언광이 이언적에게 물었다.
"김안로가 소인임을 어떻게 알았소?" "김안로가 경주부윤으로 있을 적에 본인이 마침 경주 훈도가 되었소. 그의 마음가짐과 하는 일을 꼼꼼히 관찰하니 정말 소인의 마음과 모습이었소.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면 반드시 나라를 그르칠 것이오" 심언광이 화를 내며 조정에서 정식으로 표명하였다. "이 아무개가 조정에 있으면 김안로가 조정에 들어올 수 없다" 얼마 뒤 이언적이 마침내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김안로는 조정으로 다시 돌아와 이언적이 자신을 공격하였다는 사실을 듣고도 심하게 화를 내지 않았다. 또 경주 사람으로서 김안로에게 뇌물을 주면서 벼슬을 구한 자가 있었는데, 김안로가 그 사람에게 말했다. "이언적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라" 이언적의 친구로 경주에 살았던 진해현감 김세량이 꿈에 이언적을 보았는데, 그가 시를 지어 주었다.
신발을 평상 아래에다 던지고 떠나니 정기는 하늘과 통하네 그려 담담히 한 초가 속에 있다가 혼자 신선봉에서 노니도다
놀라 깨어 그의 아들에게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말하였는데, 뒤에 들으니 정말로 선생이 죽은 날이었다. 그의 아들 이전인이 귀양지에서 관을 가마에다 얹어 고향으로 모시고 오는데, 관 앞의 길가에 엎드려 있으므로 보는 이들마다 눈물을 흘렸다. 마침 한겨울이라 얼음과 눈이 산에 가득하여 길이 막혔는데 나무꾼들이 흙을 져다가 길에 뿌려 주어 편안히 떠나게 하였다 한다. 시호는 문원이며, 문묘에 종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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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경
선경 혹은 이상향을 말한다. 진 나라 태원 시절 무릉에 한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종선을 타고 물고기를 찾아 골짜기의 냇물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난생 처음 보는 곳에 이르렀다. 잡목 한 그루도 없는 복숭아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감미로운 향기가 자욱한 가운데 예쁜 꽃잎이 화려하게 춤추고 있는 것이다. 어부는 그 황홀한 경치에 홀려 더욱 더 노 저어 올라갔더니 산이 가로막혔다. 그 산에는 조그마한 굴이 있고 그 안이 아련히 밝기에 배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굴 속은 눈부시게 밝아지면서 평화로운 농촌의 정경이 펼쳐졌다. 마을 사람들은 정녕 저마다 어부를 청해다가 술과 닭고기를 대접하면서 어부네 세상 얘기들을 물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네 조상도 진나라 적 전란을 피하여 이 절경에 온 이래로 한 번도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오. 그래, 대체 어떤 세상이 되어 있나요?"
그들은 한나라를 모르고 있을뿐더러 위나 진나라도 몰랐다. 어부는 4,5일 후에야 집에 돌아와 그 희한한 체험담을 마을의 태수에게 들려주었다. 태수는 어부의 안내로 그 선경을 찾아 갔으나 웬일인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선경이 곧 '도원경' 혹은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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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2. 관음보살상 앞에서
바람 몹시 부는 날, 말 많은 건 중생이지 산이 아니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내 발에 밟히는 우수. 처덕처덕 비 내리는 산을 타고 올라가니 절이 있다. 운수납자로 만나는 절이다. 딱히 나는 하룻밤 머물고 갈 생각도 아니고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산을 오르다 보니 명산에 대찰이 있듯 그렇게 산에 절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도량에 들어서면서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허리를 펴는데 나의 눈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관세음보살이었다.
'그 어느 곳에 나의 족적(발자취)을 남길꼬.' 그렇게 혼자 망상을 굴리며 나는 행각을 저지르며 다니고 있었다. 내리는 빗속에서도 꼼짝 않고 서서 그 은빛 미소를 쏟아 부으시는 장엄함. 관음보살상 앞에서 나는 눈이 머는 듯했다. 마치 이글거리는 태양같았고 폭포 같았다. 비가 와도 젖지 않는 그 큰 은혜. 누추한 옷 여미고 일면불식(一面不識)의 스님의 안내로 객실로 들어서 나는 문을 열어 놓고 도량 한쪽에서 서 계시는 관음보살상 앞에서 고개를 수그렸다.
"스님, 이 옷이라도 갈아 입으시고." 생면부지의 스님이 츄리닝 한 벌을 내민다. 눈물겹도록 고마움에 나는 합장을 하고 옷을 받아든 채 멍하니 겨울비 쏟아지는 사바(중생이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 이 세상)에 홀로 서 계시는 관음보살상을 향해 다시 합장했다.
범패 스님
내가 아는 일각 스님은 범패하는 스님이다. 범패란 부처님의 높고 큰 덕을 찬탄하는 염불이나 구도의 춤을 일컫는다.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던 춤, 하늘을 향해 휘감아 뿌리는 손이 마음을 닦고 번뇌를 씻어 내는 춤. 스님은 그 승무를 기가 막히게 추는 것이다. 나는 같은 승려지만 그 스님의 요잡이나 바라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지곤 한다. 솟구치는 장삼자락의 움직임과 고깔 속에 감추어진 표정의 단아함, 고요함이 어우러진 정중중(靜中重). 원래 승무는 사찰에서 스님들이 추는 춤을 통칭해서 말하는 것으로 불교의식 무용설이라 하여 득도의 기쁨을 나타낸 춤이라기도 하고, 명기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파계시키려고 춘 춤이라거나, 파계승이 번뇌를 잊으려고 춘 춤이라는 민속무용설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유래야 어쨌건 절에서 대소 행사가 있을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승무인 것이다. 염불장단으로 시작해서 법당 중앙 뒤쪽에 있는 북을 향해 엎드려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합장하고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 나면서 장삼을 뿌리는 것이 첫동작이다. 염불가락이 느린 춤이 끝난 다음에 목탁, 북이나 태징의 가락이 바뀌고 잦은 어깨춤과 함께 도드리 장단이 춤으로 이어진다. 굿거리 가락으로 바뀌면 동작이 복잡해지고 본격적인 북의 자진모리 연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북가락에 정신을 놓고 법고 앞에 혹은 떨어져 사위를 어르는데 맺고 풀음이 절묘한 북가락과 염불에 맞추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악(풍류 악)의 순으로 장단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것이 승무다.
그중 나를 사로잡는 것은 장삼자락으로 흩어지지 않는 겹까치 걸음인 것이다. 상단에 오롯이 향이 한 줄로 피어 오르고 촛불이 흔들릴 때 나는 염불하시는 법주 스님의 굴곡승강하는 염불조에 부르르부르르 떨며 시방세존의 상호(相호)가 구족하고 모든 근(근심 근)이 열락( 悅樂)하여 큰 공덕을 이루는 것을 볼 때 두 손 모아 합장 배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스님이시여, 길이 보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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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17. 일본 군국주의의 한반도 강점 (뒤틀린 대동아공영권의 잔혹한 여파) 2/2
대동아공영권
'대동아공영권'은 우리 역사의 비극을 말해주는 대명사나 다름없다. 그것은 일본이 동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 했을 때, 그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간판구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단순한 정치구호가 아니며,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그 표현을 어떻게 바꾼다 해도 우리 역사에서 다시 되살아날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대동아공영권의 순수한 말뜻은 '동아시아는 더불어 발전해나가야 할 역사적인 단일주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함축을 담고 있다. 물론 세계가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이 말은 이제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유럽이 종교와 종족을 넘어서서 유럽공동체를 만들고, 아랍 지역이 종교와 종족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그런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동아공영권도 그런 차원에서 아직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공영권이 어떻게 구성되며, 그 공영권에 어떤 세력이 포함되느냐 하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원래 그런 공영권의 역사였다. 중국 한족 중심의 공영권과 기마종족 중심의 공영권이 공존하면서 서로 경쟁해온 것이 동아시아의 역사인 셈이다. 우리 역사도 기마종족 공영권의 역사 가운데 일부이며, 몽고족이나 만주족의 역사 및 일본인의 역사도 그 가운데 일부이다. 그들은 모두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역사(각 나라마다 구체적인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를 가지고 있고, 그 뒤에도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으며 문화적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들은 혈통이란 측면에서도 매우 가까우며, 언어나 문화에서도 공통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물론 중국 한족은 이들을 자신들의 주변 민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주변 역사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들은 대진의 역사까지 자신들의 주변 역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오늘날 자신들의 영토에서 발굴된 모든 유물이 자신들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믿으며, 그런 차원에서 은나라의 역사까지 한족의 역사로 둔갑시키려고 노력해왔다.
실제로 오늘날의 거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다양한 기마종족들까지 자신들의 주민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세계화의 무대로 참여하려고 한다. 그러나 중국 한족의 이런 소망은 실현되기 어려우며, 설령 실현된다고 할지라도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중화인민공화국에 참여하고 있는 대륙 동북부의 주민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문화적 색채에 따라 한족과 다른 독자적 세력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주장한 대동아공영권은 그런 의미에서 재검토할 만하다. 바로 거기에는 한족이 주도하는 아시아 질서가 아닌 또 다른 아시아 질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진행된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노선은 '근대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아울러 중국적 아시아 질서에 대한 기마종족적 아시아 질서의 도전이라는 관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대동아공영권은 원칙적으로 중국적 아시아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새로운 아시아 질서에 대한 가능성 탐색이었지만, 제국주의라는 근,현대적 야수성과 결탁되어 매우 일그러진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중국 한족이 아닌 기마종족이 주도하는 아시아 질서를 모색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타당한 일이지만, 그 방식이 폭력적이고 독점자본주의적이며 (소)종족우월주의적이었으므로, 마침내 그 개념은 동아시아 주민들 스스로에 의해 죄악의 개념으로 버려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거대한 뒤틀림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주장한 대동아공영권은 어떤 면에서 미륵불교를 내세운 백제의 패권주의를 닮은 듯하다. 그리고 다른 형제종족을 무시하고 부여족의 권력독점을 추구했던 대진의 후기를 닮은 듯도 하다. 비록 시대의 차이가 있고 사회경제적인 배경이 서로 다르지만,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요하며, 창씨개명까지 강요했던 그들의 황민화정책은 본질적으로 형제종족들 사이의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한 종족에 의한 권력독점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마종족의 오랜 내부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주도권을 쥐어보지 못한 일본족이 다른 종족들보다 먼저 자본주의의 물질적 혜택을 받았으므로, 그들이 주도하는 대동아공영권은 뒤틀린 모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즉 식민지 확보라는 제국주의적 속성과 맞물린 그들의 대동아공영권에는 한 번도 주도권을 잡아보지 못한 일본족의 한풀이까지 스며들어 있었던 셈이다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통치에서 발견할 수 없는 역사왜곡과 창씨개명 등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식민지 통치에서 나타난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중국적 아시아 질서와 다른 기마종족 중심의 아시아 질서에 대한 가능성을 오히려 회의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공영권을 이루며 독자적인 세계화를 추구해야 마땅할 여러 기마종족들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뒤틀린 대동아공영권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한족 중심의 아시아 질서를 옹호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대동아공영권은 충분히 제기될 만한 주제였다. 그러나 그런 공영권은 동아시아 기마종족들이 자율과 평등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이루어내야 할 주제였다. 그리고 중국 한족과도 평등과 상호공존의 원칙에 따라 제2차 공영권을 설정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공격적 성격과 확대재생산의 생리에 따라 일본족이 추진한 대동아공영권은 그런 가능성을 짓밟아버렸을 뿐 아니라, 그런 가능성에 대한 역사적 이미지마저 부정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와 함께 사회주의의 국제화가 이루어지면서, 대동아공영권이 끼친 부정적 이미지는 우리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뒤틀어 놓았다.
사회주의가 소비에트연방을 중심으로 국제화될 때에도 자기 중심의 전통적 질서와 문화를 고집하던 중국 한족은 독자적인 사회주의 문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잘못된 대동아공영권으로 자기 중심의 질서와 문화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된 기마종족은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분해되었다. 일부 종족은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질서 속으로, 또 일부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 속으로 줏대 없이 끌려 들어갔고, 다른 일부 종족은 중국 중심의 사회주의 질서 속으로 깊이 끌려 들어갔다. 물론 우리나라가 분단된 후 독일 등과 다르게 양 진영이 점점 더 적대화되어간 것도 이처럼 자기 중심의 질서를 잃고 줏대 없이 다른 축으로 각각 깊이 휩쓸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마종족이 자기 중심을 잃고 독자적인 국가마저 세우지 못한 채, 중화인민공화국의 충실한 주민이 되어버린 것도 바로 잘못된 대동아공영권의 부정적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그릇된 대동아공영권은 참다운 동아시아공영권의 수립을 늦추고 그 구성원의 문화적 침체를 몰고 온 주요한 요인이다. '만약' 일본이 아닌 다른 제국주의자들이 기마종족들을 식민지 주민으로 삼았더라면, 이런 정도까지의 해체현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일본이 지배했다 할지라도 왜곡된 대동아공영권의 수립을 목표로 하지 않고 '순수한' 제국주의적 착취만 했더라면,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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