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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303 호
단기 4340. 12. 13 (음력 11. 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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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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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4회 세계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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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료 1억…12월 21일 마감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갈 제4회 세계문학상 작품을 공모합니다. 시대와 인간, 삶과 사랑, 감동과 교양이 스며든 빛나는 장편소설을 고대합니다. 한국문학, 그 새로운 중심을 비워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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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 : 장편소설(200자 원고지 1200장 혹은 2400장 중 택일) |
고료 : 당선작 1편 1억원(당선작 없는 가작일 경우 50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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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자격 : 신인과 기성 작가 제한 없음 |
작품내용 : 주제와 소재 제한 없음(단,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품에 한함), 줄거리 요약 첨부(200자 원고지 20장 안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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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 2007년 12월 21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
제출처 : (140-740)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3가 63-1 세계일보 문화부 세계문학상 담당자 앞 |
문의 : (02)2000-1262, http://munhak.segy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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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 2008년 2월 1일자 세계일보 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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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작권과 당선작 및 가작의 영상물 제작 등을 위한 2차 저작권은 5년 동안 세계일보에 귀속됩니다. 단행본을 출간하여 고료를 웃도는 인세가 발생하면 당선자에게 지급합니다. 제출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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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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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열의를 가지고 하라./ 끌로딘느 꼴레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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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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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3. 퇴계 이황
참되게 익혀 실천하는 배움
나랏님의 한 마음은 온갖 정치가 나오게 되는 자리이며 온갖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뭇 욕심이 침공하고, 뭇 간사함이 갈마들며 침해하는 곳이다. 그 마음이 만일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지면서 방종해 진다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닷가 들끊는 것과 같아서, 그 누구도 막아낼 수 없다.
옛날의 성스럽고 현명한 황제나 군왕은 이러한 점을 걱정하여, 항상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삼가 지내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긴 나머지, 스승을 세우는 한편 바른 말을 올리는 직책을 두었고, 전후좌우에 보필하는 사람이 있게 하였다. 소반이라든가 밥그릇, 책상, 지팡이, 칼,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길이 닿는 곳과 몸이 머무는 곳에는 어디나 교훈 되는 문구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 마음을 유지하고 몸을 지키게끔 하는 것이 이토록 지극하였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롭고 나라살림이 날로 번창하여, 티끌만한 허물도 없게 되고, 나아가 큰 이름이 남게 되었다. 대개의 군주들이란 하늘의 명령을 받고 왕위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크고 무겁건만, 어떻게 되어서인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은 하나같이 게으르기 십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불손한 태도로 스스로 성자인 체하는가 하면 오만한 태도로 수많은 백성들 위에서 교만을 떨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
일찍이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해되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기자가 무왕을 위하여 아뢸 때에도, '생각하는 것을 예라 하는데, 예는 성인을 이룩한다'고 하였다. 무릇 마음이란 가슴 밑에 있는데 지극히 나약하고 미묘한 것이다. 이성이야말로, 지극히 확실하고 알찬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확실하고 알찬 이치를 구하면 틀림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면 이해되고 성인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오늘날이라 하여 틀린 말이겠는가? 그러나 잡념이 없이 마음이 영묘하다 할지라도 만일 마음의 주재하는 능력이 없으면 일을 앞에 당하여 놓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품은 생각이 확실하더라도 만일 찾아서 처리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위태로워진다'고 하였다. 원래 학문이란 마음을 떠나서는 어두워져 깨우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생각하여 그 미묘한 점에까지 이르러야 하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 위태로운 불안하므로 반드시 배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생각과 배움은 서로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지도자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마음과 행동을 합치시키고, 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을 한 가지 되게 하는 도리다. 정성스런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 반드시 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엄정하게 가지며, 정신을 조용히 통일시킨 상태 속에서 이에 대한 이치를 배우고 묻고 생각하며 분별하는 것이다. 항상 궁리하며, 남이 보거나 듣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 공경스럽게 하며, 혼자만 있는 은밀한 곳에서는 '성찰'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더욱더 정밀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일을 익힐 때는 그 일에만 전념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는 것은 모르는 듯이 해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변함없이 그렇게 하여야 하고 오늘과 내일, 매일매일 계속하여야 한다. 혹은 새벽녘 정신이 맑을 때에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음미하여 보기도 하고, 혹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과 상대할 경우에도 그것을 경험하면서 키워 가야 하겠다.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혹 부자유스럽고 모순되는 난점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들도 없지 않겠으나, 이러한 것은 바로 옛사람들의 이른바 '장차 크게 나아갈 기미'이며 또한 '좋은 소식의 징조'이니 절대로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더욱더 자신을 가지고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많이 쌓는 한편 오랫동안 힘을 기울이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서로 영향을 미쳐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환히 꿰뚫듯 이해하게 되고, 익히는 것과 그 익혀진 일이 서로 익숙해져 점차로 순탄하고 순조롭게 행하여지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각각 그 한 가지에만 전념하던 것이 끝내는 모두 일치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 깨닫는 경지'이며,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만두지 못할 경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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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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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인을 위한 철학논쟁 -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 / 엮은이:김창호 / 펴낸이:백석기
4장 윤리학
절대적으로 보편 타당한 윤리는 있는가 - 이인탁
규범과 가치관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충돌이 있다. 이러한 상이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보편 타당한 윤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윤리적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불교를 믿는 사람은 육식을 악으로 간주한다. 반면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육식을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동성연애를 혐오스러운 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충(충성 충)과 효(효도 효)를 가장 중요한 인간의 덕목으로 간주하는 사회도 있고, 그것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 중요시하는 사회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도덕 명령도 있고, 원수를 갚아야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명령하는 도덕도 있다. 이처럼 매우 다양하면서도 상충되는 도덕에 접해서 우리는 어느 것이 참된 도덕인가를 묻게 된다. 이 질문은 윤리나 도덕은 상대적인가 아니면 절대적인가 하는 질문과 일맥 상통한다.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음의 의미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윤리와 에티켓
우선 윤리란 무엇인가? 윤리는 '은혜를 갚아야 한다', '자식을 돌보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다', '이유 없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와 같은 일종의 명령으로 구성된 규범과, '돈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다', '관대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와 같은 가치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규범과 가치관은 전통과 관습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가정과 학교 교육을 통하여 우리의 심성 속에 깊숙이 박혀 있다. 윤리는 우리가 그것을 옳은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티켓과 구별된다. 우리와 달리 왼손으로 악수를 하는 부족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사회에 가서 오른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행동은 예의에 벗어난 행동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비도덕적이고 나쁜 인간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에티켓은 우연한 습관의 산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처신은 "로마에 가서는 로마인들이 하는 대로 하라."는 격률을 가벼운 마음으로 따르는 일이다. 그러나 윤리나 도덕의 경우에는 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따를 수 없다.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관습을 가진 그리스인 한 명에게 다리우스 왕이 어느 날 제안을 했다. "네가 죽은 부모의 시신을 먹는다면 달라는 대로 돈을 주겠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그리스인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억만금을 줘도 그런 짓은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다리우스 왕은 또 죽은 부모의 시신을 먹는 관습을 가진 칼라티안이라는 인디언 부족 한 명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네가 죽은 부모의 시신을 화장한다면 달라는 대로 돈을 주겠다." 그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죽어도 그런 짓은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역사'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도덕 규범이 우리 마음 속 깊이 각인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인은 화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으며, 칼라티안인은 화장은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고 믿고 있다. 에티켓의 경우에는 관대할 수 있지만, 우리와 다른 도덕 규범에 접했을 때 우리가 관대할 수 없고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론적 윤리설과 절대론적 윤리설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도덕이 상대적이라는 말은 도덕 규범과 가치관이 문화권마다 서로 달라 보편 타당한 규범과 가치관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도덕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도덕의 보편 타당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상대론적 윤리설(윤리적 상대주의)이라 하고, 그 반대의 입장을 절대론적 윤리설(윤리적 절대주의)이라 한다. 상대론적 윤리설에 의하면 도덕 규범은 어떤 것과 관련하여 상대적인 타당성만을 가진다. 같은 바람도 몸이 찬 노인에게는 서늘하게 느껴지고 몸이 더운 아이들에게는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바람의 시원한 정도는 몸의 상태에 관련하여 상대적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도덕 규범 R1은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 S1에서만 타당하다. R1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사회 S2에서는 R1이 타당하지 않다. 반면에 절대론적 윤리설은 보편 타당한 삶의 원리가 인생의 목적 또는 행동의 법칙으로서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본다. 이렇게 보편 타당한 윤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크게 목적론적 윤리설과 법칙론적 윤리설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암으로 진단 받은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될까 염려하여 아버지의 병명을 둘러댔다고 하자. 이 행위는 옳은가 그른가? 만일 우리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를 누구나 지켜야 할 행위의 법칙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사람의 행위는 동기야 어떻든 이 법칙에 비추어 볼 때 그른 행위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누구나 실현해야 할 삶의 궁극 목적으로 인정하고 아버지가 최소한 여생을 평안하게 사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 행위는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옳다고 할 수도 있다. 위의 예에서 거짓말을 한 행위가 그르다고 판단한 사람은 법칙론적 윤리설의 입장을 가졌고, 그 행위가 옳다고 판단한 사람은 목적론적 윤리설의 입장을 가진 것이다.
윤리는 상대적인가
앞서 말했듯이 도덕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 보편 타당한 것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각인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의 보편 타당성을 부정하는 상대론적 윤리설은 우리를 심각한 혼란 상태에 빠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과연 상대론적 윤리설이 설득력 있는 입장인지 상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론적 윤리설이 호소력을 가졌다고 보게 되는 일차적인 이유는 우리가 도덕과 관습의 문화적 다양성, 도덕 문제의 해소될 수 없는 의견 불일치 현상을 목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스키모족은 겨울 이동시 늙은 부모를 동행하지 않음으로써 죽게 한다고 한다. 뉴기니아의 도부족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을 허용한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누엘족은 기형아가 출산되면 하마가 살고 있는 강물에 던지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멜라네시아의 어느 부족은 친절과 정직함을 악덕으로 본다고 한다. 이런 예들은 규범과 가치관이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문화권 내에서도 규범과 가치관 사이의 충돌이 있다. 낙태는 허용되어야 하는가? 혼전 섹스는 나쁜 것인가? 사형 제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이런 종류의 질문에는 각자의 관점에 따른 대립된 대답이 있을 뿐이다.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의견 대립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치 문화의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일치된 견해가 없기 때문이다. 도덕이 문화권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문화권마다 다양한 성에 관한 규범 R1, R2,...R5를 상정해 보자. 규범 R1은 처녀와 총각인 갑돌이와 갑순이가 물레방앗간에서 성적 행위를 한 사건을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는 데 반하여 R2는 그 행동을 허용될 수 있다고(즉, 옳지 않은 것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이 두 판단은 서로 모순된다. 즉, 하나가 참이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거짓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가 도덕의 참과 거짓을 밝힐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 컵 속의 액체는 산성이다'라는 주장과 '이 컵 속의 액체는 산성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다고 하자. 이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되며 오직 하나만이 참일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객관적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과 가치의 문제에는 그런 초문화적인 독립된 기준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R1은 그 규범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 S1에서 참이고 R2는 그 규범이 통용되고 있는 S2에서 참이라는 것뿐이다.
과연 보편적 윤리는 존재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결국 상대론적 윤리설이 입증된 셈인가? 상대론적 윤리설이 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도덕 규범이 문화적으로 다양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즉, 언뜻 보기에는 규범들이 서로 다르고 모순되는 것 같지만,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모두가 똑같은 원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던커(K. Duncker)라는 독일의 심리학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든다. 아프리카의 호텐톳족은 늙고 병든 부모를 죽이는 행동을 옳다고 규정하는 규범을 받아들이는 반면, 우리는 그것을 옳지 않다고 규정하는 규범 속에 산다. 이 사례는 똑같은 행동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평가를 하는 규범들 사이의 충돌 현상을 보여 주는 경우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던커는 외견과는 달리 충돌 현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의견 대립이 있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똑같은 대상에 대해 모순된 주장을 해야 한다. 갑돌이는 '티코는 작다'고 주장하는데 갑순이가 '티코는 크다'고 말한다면 두 사이에는 분명히 의견 대립이 있다. 그러나 갑돌이가 '티코는 작다'고 말할 때 갑순이가 '그랜저는 크다'고 말한다면 두 사람 사이의 의견 대립은 없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것에 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늙고 병든 부모를 죽이는 호텐톳족의 동기는 병들어 신음하는 부모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동정심, 효, 자선의 마음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또 행복한 세상인 내세를 확신한다. 하루라도 빨리 병든 부모를 행복한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의 행동은 '부모를 위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도덕 원리에 따른 것이다. 이렇다고 봤을 때 이들의 행동은 '부모 살해'로 표현될 수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부모의 행복을 위하여 보다 일찍 행복한 내세에 보내 드리기'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그들과 우리 사이의 대립은 없다. 오히려 그들과 우리는 '부모를 위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도덕 원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사후 세계에 관한 믿음의 차이뿐이다. 같은 효의 원리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상반된 행동과 관습이 생겨난 것이다. 이상이 던커의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늙은 부모를 죽이는 호텐톳족의 동기가 우리와 똑같은 효의 도덕 원리에서 유래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그들의 동기를 우리의 기호에 맞춰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남편이 죽었을 때 부인에게 같이 죽을 것을 요구하는 인도의 관습이 우리와 똑같은 사랑의 도덕 원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듯이, 호텐톳족의 동기가 우리와 똑같은 효의 원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문화권들이 매우 일반적인 도덕 원리를 공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이 문화권 사이의 충돌, 대립을 해결해 주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근친 상간을 금하는 일반적 도덕 규범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를 근친으로 볼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문화권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이 근친 상간으로 간주되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다.
객관적 기준으로 도덕의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상대적 윤리설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또 인간 본성의 공통성에 호소하여 보편 타당한 도덕 원리를 수립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유사한 욕구와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들은 도덕의 본질적인 기능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두 손이 앞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등이 지독하게 가려운 증세를 보인다. 천당에 있는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천당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이들이 채택한 규칙의 차이다. 이기주의자들만이 지옥에 가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돕지 않고 자기 일만 챙기는 것을 삶의 규칙으로 채택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등을 긁으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되풀이하면서 고통 속에 신음한다. 천당에 있는 사람들은 이타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돕고 사는 것을 삶의 규칙으로 채택한다. 이들은 동그랗게 앉아 서로 앞사람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 준다. 그래서 이들은 행복하다. 이 두 종류의 규칙들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 규칙일까?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이타주의 규칙이 타당한 규칙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유사한 욕구와 필요를 가졌고, 이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도덕 규칙이 타당한 도독 규칙이라면 우리는 여러 도덕들의 객관적 우열을 가질 수 있는 기준을 얻은 셈이다. 여성의 행복을 억압하는 도덕은 남녀 평등의 도덕과 비교할 때 객관적으로 부적절한 도덕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인 기준에 의거해서 우리는 보편 타당한 도덕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살인은 옳지 않다', '거짓말은 옳지 않다' 등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몇몇 종류의 도덕률의 보편 타당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상대론적 윤리설을 포기해야 하는가? 모든 종류의 규범과 가치관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강한 상대주의는 분명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몇몇의 자명한 도덕 원리를 제외한 도덕 규범과 가치관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완화된 상대주의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용기, 절제, 충성, 효 등의 덕목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찬양되는 공유된 가치이다. 그러나 이 가치들 사이의 서열과 해석은 서로 다르다. 용기 있게 적과 싸워야 하느냐, 아니면 집에 남아 병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느냐 식의 딜레머는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살인은 옳지 않다'류의 일반적 규칙과 과년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살인으로 볼 것인가의 구체적인 해석의 문제는 계속 의견 대립을 낳고 있다. 사형 집행관은 살인자인가? 죄 없는 자기 가족을 몰살한 자를 죽이는 행동은 정당한 보복인가, 아니면 살인인가? 각자의 종교, 세계관, 인생관에 따라 그 대답은 달라진다. 일반적인 규칙을 공유한다는 것이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윤리적 상대주의는 실천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가 상충하는 다원적 가치들을 인정하는 상대론적 윤리설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우리가 받아들인 가치가 보편 타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이 세상에는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다는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도덕적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면 도덕 문제에 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도덕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 임신 중절을 허용해도 좋고 허용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임신 중절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정답은 없으니까. 이런 방관주의적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런 태도는 도덕적 무정부 상태, 가치의 혼란 상태를 유도한다. 우리가 가진 도덕적 신념과 가치들의 일부가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그것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없어지게 될까?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여러 색깔 중에서 빨간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자. 빨간색이 객관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색깔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계속 빨간색을 좋아할 수 있다. 빨간색이 나에게 상대적으로 좋은 색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파란색도 좋고 노란색도 좋고 다 좋다 하는 식의 방관주의적 태도를 내가 가지게 되지는 않는다. 가치관도 이와 유사하리라 생각된다. 우리의 효 개념이 모든 사람에 의해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 그 효 개념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윤리적 상대주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도덕과 가치가 보편 타당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우리가 가지게 되는 태도는 우리와 다른 가치와 도덕을 가진 사회를 우리의 기준에 비추어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기 중심주의적인 폐쇄적, 독선적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해, 관용하는 개방적인 태도일 것이다. 상대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장점이 있다. 내가 믿는 가치에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폐쇄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어느 힌두교 소년이 쇠고기를 먹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자. 그 소년이 자기가 믿는 가치가 보편 타당한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더라면 과연 어떠했을까?
참고 문헌
김태길, '윤리학', 박영사, 1988. P.테일러, 김영진 옮김, '윤리학의 기본 원리' 2장 '윤리적 상대주의', 서광사, 1988. J.호스퍼스, 최용철 옮김, '도덕 행위론' 1장 '윤리학의 여러 문제들', 지성의 샘, 994. J.L.멕키, 진교훈 옮김, '윤리학' 1장 '가치의 주관성', 서광사, 1990. W.S.사하키만, 송희절, 황경식 옮김, '윤리학의 이론과 역사' 7장 '고전적 직관주의'1, 8장 '의무론적 직관주의'9장 '윤리적 주관주의와 상대주의', 박영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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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
본뜻 : 손을 묶여 도무지 일할 방도가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 어찌할 도리가 없이 꼼짝 못할 상황일 때 쓰는 말이다.
"보기글" -늘어가는 10대 흡연 인구에 대해 당국은 속수무책으로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다 -한밤중에 갑자기 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철수는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기만 했다
수렴 청정
본뜻 : 본래는 왕대비가 신하를 대할 때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기 위해서 그 앞에 발을 늘이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바뀐 뜻 :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정치를 대신하던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시대 고종이 12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당시의 대왕대비였던 조대비가 수렴 청정을 했다.
"보기글" -조대비의 수렴 청정이 가져온 폐해는 이루 다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라네 -중국 역사에서 수렴 청정의 예를 들자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우고 수렴 청정을 한 서태후를 들 수 있을 것이야
부추?
‘부추’는 백합과에 드는 여러해살이풀인데, 한 자 남짓 되는 줄 모양으로 약간 두툼한 잎이 무더기로 모여나는 남새다. 김치를 담글 때나 반찬을 만들 때 양념으로 넣는다. 여름에는 ‘부추’를 많이 넣고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다. ‘부추’는 역사적으로 ‘부초〈부〈부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부추’는 경기도와 강원도 지역에서는 ‘부추, 분추’라 부른다.
부추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분명하게 다르다. 전라 남북도에서는 ‘솔’이라 부르는데, ‘솔’로 ‘전’을 부쳐서 간식으로 먹는다. 충남에서는 ‘졸’이라 부른다. 경북을 중심으로 ‘정구지’라고 한다. 경남을 중심으로는 ‘소풀·소불’이라 하고, 그 동해안 쪽에서는 ‘정구지’라고도 한다. 이쪽에서는 ‘소풀·정구지’로 ‘찌짐’(부침개)을 해서 먹는다. 제주도에서는 ‘세우리, 쉐우리’라 불러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다.
북쪽에서도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평안도에서는 주로 ‘푸초’로, 함경도에서는 ‘불기·섯쿠레·염주·염지’로 부른다. ‘솔’과 ‘정구지’도 쓴다. 만주 쪽에 사는 동포들도 조상들의 출신지에 따라서 ‘부추·솔·소풀·염지·정구지·졸파·푸초·서쿨레이’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고장에 따라 한 사물의 이름이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고장말은 행정구역을 따라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방언권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지역에 따라 말을 확인할 수 있는 고장말 지도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뒷담화
얼마 전 “‘뒷담화’가 맞아요? ‘뒷다마’가 맞아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뒷담화’(-談話)가, 다른 사람은 ‘뒷다마’(-たま)가 맞다고 하는 바람에 말싸움이 붙었단다. 주로 ‘뒷담화/뒷다마를 까다’와 같이 비속하게 쓰이다 보니 국어사전에도 오르지 않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정착되었기에 ‘뒷다마를 까다’라는 표현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밝히기는 어렵다. 일본말 ‘아다마’(아타마)에서 ‘뒤통수를 치다’라는 뜻의 ‘뒷다마를 까다’라는 표현이 만들어졌다는 주장, 당구대를 맞고 돌던 공이 우연히 다른 공을 맞혔을 때 쓰는 당구말 ‘뒷다마’(-たま)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다. 당구장에서 ‘뒷다마’라는 말이 흔히 쓰이고 생성 과정이 단순하다는 점에서 뒤쪽이 그럴듯하다. 그런데 왜 ‘뒷다마를 치다’가 아니고 ‘뒷다마를 까다’일까? 부정적인 뜻을 강조하고자 ‘치다’를 ‘남의 결함을 들추어 비난하다’라는 뜻의 ‘까다’로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뒷담화’는 ‘뒷다마’라는 말이 일본어에서 온 것이고 비속한 느낌이 강해 ‘다마’(-たま) 대신 발음이 비슷한 ‘담화’를 붙여 새로 만든 말이다. 일단 ‘뒷담화’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나니 ‘이야기’라는 뜻이 반영돼 ‘영화 촬영 뒷담화, 공연 뒷담화’처럼 ‘뒷이야기’ 뜻으로도 쓰인다.
‘뒷다마’나 ‘뒷담화’란 말보다는 ‘일이 끝난 뒤 뒷공론으로 하는 말’이라는 뜻의 ‘뒷말’이나 ‘뒷이야기’와 같이 쉬운 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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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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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1. 돌아오지 않은 장군(경포, 팽월, 난포)
2) 황야의 이리(팽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와는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팽월은 호숫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실제로는 청년들을 작당해 도적질을 일삼고 있었다. 진승과 항량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 소식을 들은 젊은이들이 팽월을 찾아왔다.
"지금 천하의 호걸들이 모두 일어서고 있소. 우리도 이 기회에 일을 벌입시다." 그러나 팽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두 마리 용이 싸우는 셈이네. 좀더 두고 봐야지. 아직은 때가 안됐어." 1년쯤 지나자 이번에는 백여 명이 찾아와서, "제발 두목이 되어 주십시오." 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팽월은, "안돼, 자네들과는 일할 수 없네."라며 거절했다. 그렇지만 청년들이 한사코 권유하자, 팽월은 마지 못해 승낙했다.
그래서 다음날 해뜨는 시간에 모여 거사하기로 하고 늦는 자는 목을 베기로 약속했다. 다음날 막상 모여 보니 지각하는 자가 10여 명도 넘고, 심지어 어떤 자는 점심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는 것이었다. 팽월이 호통을 쳤다.
"나는 나이가 많아 거절했는데, 너희들이 하도 권하는 바람에 두목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약속을 하고도 어기는 자가 이렇게 많으니 무얼 한단 말인가! 할 수 없다. 제일 마지막에 온 자만 처형시키겠다."
팽월은 맨 나중에 온 자를 목 베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모두들 피식피식 웃으며,
"아니,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안 그럴께요."라며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팽월은 자기가 나서서 맨 나중에 온 자를 끌어내고는 단칼에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제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 모두 간담이 서늘해져 팽월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 뒤 팽월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면서 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게 되었다.
유격전의 명수
유방이 북상하여 창읍을 공격할 때, 팽월도 유방을 도왔다. 그러나 유방이 공격에 실패하고 서쪽으로 군사를 돌리자, 팽월도 고향으로 돌아가 세력을 키웠다. 그 뒤 유방은 팽월에게 장군의 벼슬을 내리고 초나라를 공격하도록 요청했다. 그래서 팽월은 초나라의 소공각이 이끄는 토벌 군대와 마주쳐 크게 이겼다. 이듬 해에 팽월은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며, 유방은 그를 위나라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그때부터 팽월은 각지에 신출귀몰하게 출몰하면서 유격전을 벌여 항우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유방이 형양에서 항우와 싸울 때도 팽월은 항우의 배후에서 유격전을 펼쳐 위기에 몰렸던 유방이 간신히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화가 난 항우가 팽월을 대대적으로 추격해 팽월의 부대를 크게 격파했지만, 팽월은 재빨리 후퇴해 버렸고 또다시 인근의 20개 성을 빼앗고 곡물 10여만 섬을 노획해 유방 군대의 군량미로 쓰게 했다.
여후의 꾀
천하 통일 후 팽월은 공로를 인정받아 양나라 왕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10년이 지나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방은 팽월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팽월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부하 장군에게 군사를 내 주어 나서도록 했다. 이에 유방이 노해서 사자를 파견해 팽월을 문책하자 팽월은 몸소 사과하러 낙양으로 가려 했다. 이때 장군 호첩이 말했다.
"대왕께서 처음부터 가시지 않고 문책을 받고서야 가시면 포로가 될 뿐입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팽월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칭병하며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팽월이 한 부하를 크게 꾸짖고 처형하려 하자, 그는 도망쳐 장안으로 갔다. 그리고 팽월이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고발했다. 유방은 몰래 군사들을 보내 팽월을 체포했다. 팽월은 장안에 끌려와 취조를 받았는데, 취조관은 이렇게 보고했다.
"반란 혐의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팽월의 과거 공적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유방은 그의 목숨만은 살려주고 서민으로 격하시켜 유배보내도록 했다. 팽월이 유배지로 가던 도중 마침 장안에서 낙양으로 행차하던 여후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팽월은 여후 앞에 끓어 엎드려 눈물로 호소하면서 자기 고향에서 살게 해 달라고 탄원했다. 여후는 그의 호소를 받아들여 그를 데리고 낙양으로 가더니 유방에게 말했다.
"팽월은 명장인데 지금 귀양 보내 살려 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죽이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팽월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한편 여후는 또 다른 사람을 시켜 팽월이 아직도 반란을 꾸미고 있다고 상소하도록 했다. 드디어 유방도 죽이기로 결심했다. 결국 팽월은 그렇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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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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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안의 활성산소를 제거하라 - 이영진
제1부 산소
너무 좋아하지 말라
항산화 건강법을 실천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지식
이번 장은 산소가 해로운 이유와 그 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지식에 관한 것들이다. 인간은 호흡으로 들이마신 산소가 있어야 섭취한 음식을 산화시켜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우리 몸에 손상을 주는 유독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프리라디칼' 또는 '활성산소'라고 한다. 음식을 제대로 저장하지 않고 밖에 놔두면 산소가 닿아서 썩는다. 쇠도 산소가 닿으면 부식되고 녹이 슨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도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프리라디칼이 만등러져서 조직이 상하고 녹이 슨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산소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이 산소는 두 얼굴을 가진 존재로 불가피하게 몸에 해로운 프리라디칼이 동시에 만들어지게 된다.
1. 들이마신 산소가 몸 구석구석 전해지려면 혈관 속을 지나가야 된다. 이때 혈관 속에서 프리라디칼이 생긴다. 2. 만일 오염된 공기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호흡기에서도 프리라디칼이 생긴다. 3. 에너지가 만들어지려면 세포 속으로 산소가 들어가야 하므로 세포 속에서도 프리라디칼이 만들어진다. 4. 우리 몸에 필요한 각종 호르몬을 만들 때에도 산소가 쓰이므로 이때도 프리라디칼이 생긴다. 5. 몸에 해로운 독물질을 처리할 때에도 산소가 쓰이므로 이때도 프리라디칼이 생긴다. 6. 몸을 구성하는 조직을 만들 때나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여러 대사 반응시에 산소가 쓰이므로 이때도 부산물로 프리라디칼이 만들어진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몸에서는 프리라디칼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 프리라디칼은 세포 안팎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손상이 아주 커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이상을 느낄 수 없다. 프리라디칼이 산소로부터 만들어지면 이것을 산소라디칼 혹은 활성산소라고 부른다. 활성산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수퍼옥시드 라디칼과 히드록시 라디칼이다(이들 구조를 보면 산소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산소가 아닌 다른 물질로부터도 프리라디칼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프리라디칼은 A라디칼이라고 부른다(설파라디칼, 지질라디칼), 본래는 프리라디칼이 아니지만, 언제든지 여건만 성숙되면 프리라디칼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만응산소종(반응력이 강한 산소 종류란 뜻)이라고 한다. 이 중 대표적인 물질이 과산화수소, 오존이다.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산소
지금으로부터 약 5백만년 전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출현했다. 그리고 그 옛날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잇도록 해 주는 원동력은 누가 뭐라해도 산소가 일등공신이다. 지금 나의 심장이 힘차게 박동질을 하고 손가락을 움직여서 원고를 쓸 수 있는 것도 바로 산소의 도움을 받아 생긴 에너지 덕분이다. 독자들이 눈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역시 산소의 덕분이다. 이렇게 중요한 산소는 양이 많건 적건 간에 관계없이 있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지금 지구 공기 중에 산소량은 21%이다. 만일 이보다 적거나 많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저산소증이나 고산소증이 생기고, 공기 중에 산소 아닌 다른 오염물질이 많아지면 우리는 병들어 죽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대기권을 보면 낮은 높이에서는 좀 무거운 분자들인 산소, 질소, 물이 많다.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좀더 가벼운 분자들인 수소원자나 수소이온들이 많고 대기권 밖의 우주공간에는 헬륨이라는 물질이 많다. 어쨌든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는 산소를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행성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공기 중에는 산소가 약 21%정도 있으며, 이 양은 78%를 차지하는 질소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그러나 태초부터 지구에 이 고마운 산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35억년 전의 지구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강력한 태양광선이 지구 표면을 뜨겁게 달구고 산소 없이도 살 수 있는 유기체가 나타나고, 그리고 이들에 의해 질소나 황 같은 물질이 생성되었다. 대기 중에는 산소가 없으니 당연히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산소가 없는 달이나 화성에 인간이 살고 있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그 어딘가에 현재 지구와 같은 21% 정도의 산소를 갖고 있는 혹성이 있다면,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10억년 정도가 흘러 지금으로부터 약 25억년 전이 되면서부터 비로소 지구에는 산소가 생겨났으며, 그 주역은 광합성(햇빛을 받아서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과정)을 하는 조류식물이다. 이들 조류과 식물은 살아가기 위해서 수소원자가 필요한 생명체인데, 이 수소는 물을 분해해서 얻는다. 바로 이 물분해 과정 중에 산소가 발생되므로 그 당시 지구상에 존재한 몇 톤의 산소들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다. 따라서 이전에 산소가 없어야만 살 수 있는 유기체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 중에 산소가 점점 늘어만 가는 것은 심각한 대기오염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요즘 우리가 환경문제를 말하면서 대기오염으로 지구가 위협받고 있다고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대기오염으로 위협을 받는 것은 지구 자체가 아니고 대기 중 21%의 산소로 적응해 살고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산소가 적을수록 번식을 잘하는 유기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시대가 온 것이다. 어쨌든 지구상에 산소가 차차 늘어나면서부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조류식물이 만들어내는 산소가 점점 증가되면서 지구의 상층권에는 오존층이 생겨나게 되고 강력한 자외선이 오존층의 작용으로 걸러져서 지구표면에 직접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전에 살던 생명체들은 죽거나 혹은 더 적응하여 산소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세포체들이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들로부터 푸른 잎을 가진 식물이 생겨나고 이어서 산소를 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물이 생겨났다. 점차 산소량이 늘어나 대기 중에 10%에 이르면서부터 생명체들이 바다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드디어 6천5백 만년 전에 영장류가 출현하고, 5백만년 전에 인간이 나타나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지구에 대기오염이 더 심각해지고 이산화탄소 양이 늘어나며, 지구 상층권의 오존층이 뚫리는 일이 일어나면 인간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멸종이 될까? 아니면 새로운 환경에 맞게 적응할 수 있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될까? 산소가 아닌 질소나 이산화탄소로 숨을 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까? 무슨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거리에서는 특수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실내에서는 인공적으로 이전의 대기상태와 비슷한 상태로 만들어 주는 기능을 가진 거대한 건물을 만들어서 살게 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예전에 조류식물로 인하여 처음으로 지구에 산소가 나타났을 때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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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직제학이 아니라 곡제학"이라고 준열하게 풍자한 주세붕
주세붕(1495-1554)의 본관은 상주이고, 자는 경유, 호는 신재이다. 중종 17년(1522)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하였다.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가 독서당에 들어갔으며,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3년 뒤에는 헌납으로 김안로를 탄핵하였다. 주세붕이 그의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흰 실 여덟 타래를 주면서 병이 곧 나을 것이라고 했다. 그 뒤 정말 어머니의 병이 낫고 80일을 더 살다가 죽었는데, 그제야 그 여덟 타래가 80일 동안 목숨을 연장시켜 준 징조였음을 알았다. 주세붕이 일곱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석에 있어 빗질을 못하자 자신의 머리를 감고서 기름을 바른 뒤 그의 어머니 머리카락에다 갖다 대어 이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건너오게 하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의 효성을 기특하게 여겼다. 그 뒤 그의 아버지상을 당하여 산소 앞에 여막을 짓고 그곳에서 거처하였는데 3일에 한번씩 내려와서 어머니를 뵈면서도 자기 방에는 한 차례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집에 개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주세붕이 출입할 때마다 따라다녔다. 그런데 주세붕이 상주가 된 뒤로는 그 개에게 고기를 주어도 먹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주세붕의 효성이 짐승까지 감동시켜 그렇다고들 여겼다.
주세붕이 홍문관에 있을 때에 직제학이 바르지 못한 의논을 하므로 주세붕이 면대하여 공박하기를, "귀하는 직제학이 아니라 곡제학이오" 하니, 그 사람이 매우 부끄러워하였다.
중종 36년(1541)에 풍기군수가 되어 문성공 안유가 살던 옛 터에다 사우를 지어 봄가을로 제향을 지내며 백운서원이라고 불렀다. 백운서원은 좌우의 질서가 정연하였다. 주민들 가운데 준수한 자를 모아서 학문을 강론하며 연습하게 하였고, 곡식을 저축하고 남은 것을 가져다 학생들의 숙식 자료로 제공하였으며, 녹봉에서 얼마를 떼어 경전과 사기 등의 서적을 구입하여 강독하는 데 대비하도록 하였다. 서원 터를 처음 닦을 때에 그 터에서 구리로 된 그릇 3백여 근을 얻게 되어 그것을 팔아 경비로 썼다. 그 뒤 명종 5년(1550)에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백성의 교화는 임금을 경유라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퇴폐한다는 취지로 감사에게 편지를 보내어 임금에게 보고를 드리되, 송나라 백록동 서원 학규에 의거하여 임금이 서원 이름을 짓고 편액을 써 주며 겸해서 전토와 노비를 내려 주어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도록 하였다. 감사 심통원이 그의 말대로 임금에게 보고하여 소수서원이란 이름을 지어 내려 주고, 대제학 신광한에게 서원 기문을 짓도록 명하였다. 또한 그 일로 인하여 사서와 오경 '성리대전' 등의 책을 내려 주었으니, 사원에 임금이 이름을 지어 주고 편액을 써서 내려 주는 일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명종 5년에 대사성으로서 불교를 배척하는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주세붕은 조정에서 벼슬한 30년 동안을 한결같이 가난한 선비처럼 지내며 산과 못가에서 노니는 것을 좋아하여 지금까지 경치가 좋기로 이룸난 곳에는 가끔 그가 남긴 자취가 있다.
60세에 죽었으며, 벼슬은 호조 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죽계지'와 '무릉지'가 있고 합천에 그를 제향하는 서원이 있다. 형의 아들 주박을 후사로 삼았는데,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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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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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야행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들 누가 알아주랴 한 항우의 말로써. 입신출세하여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서는 옛 친구에게 알릴 수 없다는 인간 심리의 약점을 나타내는 말이다. 금의 귀향이니 금의 주행이란 말이 '삼국지'에 보인다.
진 나라의 서울 함양을 향하여 유방과 항우가 앞을 다투어서 침공했을 때였다. 두 호걸의 대조적인 성격이 여실히 나타났다. 먼저 항우는 진왕의 자식인 영을 죽이고 진 나라 궁전을 불태웠다. 사흘 동안이나 타올랐다는 그 불길을 술안주 삼아 여자를 껴안고 승전을 축하했다. 또한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쳤으며 재보와 미녀를 차지하였다. 제왕이 될 첫걸음을 스스로 무너뜨리는거나 같은 이같은 행실을 지장이 충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약탈한 재보와 미녀를 모조리 거두어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려하자, 한생이란 자가 그를 만류했다. "관중은 4면이 산하에 에워싸여 있어 지세가 견고할뿐더러 토질도 비옥하오니 이곳에다 도읍을 정하시어 촌사를 제패하소서."
한편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불타버린 궁전과 황폐한 전적 뿐이었다. 하루 속히 고향에 돌아가 자개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은 터였기에 한생에게 '금의 야행 얘기를 했던 것이다. 한생은 항우에게서 물러나와
"초나라 사람이란 마치 원숭이가 관대를 갖추어봐도 오래 못 견디는거나 같거든."
이렇게 이루어진 말이 항우의 귀에 들어가 한생은 당장 쪄죽임을 당했다. 결국 항우는 한때의 성공에 취한 나머지 천하를 유방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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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김영웅
1. 보리수를 닮은 사람들
도인(道人)의 말
"잘살고 못 사는 건 사주팔자에 달린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그 운명이 딱 결정된 것이다."
운명론자가 말하자, 마침 지나가던 운수납자(雲水衲子 : 행각하며 다니는 스님)가 딱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습니다. 사주 팔자, 손금이 아무리 좋아도 얼굴 좋은 것만 못하고, 얼굴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의 바탕이 튼튼한 것만 같지 못하며, 마음 바탕이 아무리 좋아도 그 마음씀씀이를 잘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수상(手相)이 불여관상(不如觀相)이요 관상이 불여심상(不如心相)이지만 심상이 불여용심(不如用心)이라
운수납자의 말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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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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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13. 훈민정음이 몰고 온 파도 (한글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2/2
한글의 구성원리
우리는 훈민정음이 성리학적인 원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일반론적인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근조선이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었고, 수입사상인 성리학 속에 다양한 사상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성리학을 만병통치약처럼 이곳저곳에 적용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예컨대 훈민정음의 문자체계에 역학적 원리가 있다거나 음양오행의 원리가 적용되었다고 해서 성리학과 관련짓는 것은 너무나 편의적이다. 물론 성리학에도 역학적인 원리가 있고 음양오행적인 원리가 있지만, 그것은 결코 성리학의 독자적인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문자체계를 이해할 때 그 민족의 고유한 독자성을 고려하지 않고 당시에 유행하던 사상으로 그 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편협한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어떤 사회를 자본주의 문화나 사회주의 문화로써만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훈민정음은 근조선의 순수한 창작품도 아니고 예로부터 내려오던 문자를 재정비하여 반포한 것이므로, 성리학과의 상관관계는 상당히 부차적이다. 고려시대의 자료를 가지고 고려시대를 연구할 경우, 그 연구자가 비록 현대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미 고려시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것이언어체계일 경우 그 영향력을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훈민정음에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삼재상생'의 원리가 들어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융합 원리가 한글의 모음구조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모음의 구성요소인 'ㅣ'는 하늘을 상징하고, 'ㅡ'는 땅을 상징하며, '.'는 사람을 상징한다. (라는 이론도 재검토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은 주로 전통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 전통사상에서는 사람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글자의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을 사람으로 보는 게 옳다.) 모음에는 삼재상생의 원리뿐만 아니라 '음양조화'의 원리도 포함되어 있다. 하늘을 상징하는 (임,하늘)는 양을 상징하고 땅을 상징하는 (뉘, 땅)는 음을 상징하며(알, 사람, 변화의 주체)는 그 위치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상징한다. 예컨대 는 하늘의 밝은 기운을 받아 생성하는 기세를 나타내며, 땅의 어두운 기운을 받아 소멸하는 기세를 나타낸다. 훈민정음의 자음에는 오행의 원리가 적용하고 있는데, 어금닛소리와 혓소리, 입술소리와 잇소리 및 목소리는 각각 오행의 기운과 연결된다. 물론 오행의 각 성격과 이 소리를 어떻게 연관시키느냐 하는 방법에는 상당한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몸공부의 차원에서 소리를 배워온 선교의 수련자들과 학술적인 차원에서 소리를 연구해온 학자들 사이에서 오행과 소리의 함수관계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자음을 오행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다.
이처럼 삼재와 음양 및 오행의 융합으로 구성된 훈민정음은 성리학 사상의 창조물이 아니라, 동아시아 기마종족들의 오랜 문화적 전통과 관련된 것이다. 모든 생명은 '알'에서 시작하며, 하늘의 세우는(ㅣ) 기운과 땅의 눕히는(ㅡ) 기운의 조화에 의해 변화를 겪게 되고, 나아가 끌어올리고(불) 끌어내리고(물) 오르내리고(나무) 오므리고(쇠) 퍼지는(흙) 각 기운이 그 변화에 결합함으로써 숱한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훈민정음과 성리학
그러나 훈민정음이 성리학의 성장과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성리학과 훈민정음 사이에는 떨어질 수 없는 함수관계가 있다. 이 두 가지는 근조선을 상징하는 문화적인 두 개의 기본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전문가들에게 냉대를 받은 역사가 토인비는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단위'(intelligible field of study)를 설정한 바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단위란 나름대로 독자적이고 독립적으로 문화를 누려온 문명권을 가리킨다. 그는 그런 단위를 24개의 문화권으로 설정하고, "역사의 연구"(Study of History)라는 방대한 저작물을 내놓았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단위가 만들어진 시기를 찾는다면(미련한 토인비는 한국을 그런 단위로 보지 못했지만), 고려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이런 단위가 만들어지는 엉성한 출발점이었으며, 이런 단위는 근조선에 이르러 나름대로 완성되었다. 고려시대 이전까지 우리 역사는 우리 겨레만의 독립적인 역사가 아니라 동아시아 기마종족 전체의 역사였다. 고조선을 이어받은 고구려와 백제 및 대진 등에서 우리는 우리 역사가 바로 동아시아 기마종족의 역사이며, 단일민족의 독립적 역사는 거짓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이르러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 겨레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다른 기마종족과 분리되어 독립적인(그러나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독립성이 완성되지 않은 단계였다. 정치경제적으로는 독립적인 역사를 꾸리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직 독립성보다 기마종족으로서의 공통성이 훨씬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비극적 독립성이 완성된 것은 근조선에 들어와서였다. 성리학이 그런 독립성의 근거로 작용했으며, 훈민정음이 독립성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졌다. 즉 성리학을 수입해서 기마종족적 문화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훈민정음을 반포해서 중국 문화로부터도 자신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문화적 독립단위가 되는 데는 물론 더 많은 요소들이 작용했지만, 이 두 가지만큼 두드러진 것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역사는 사실 이때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성리학은 많은 문화적 변화를 몰고 왔다. 남녀평등을 남존여비로 바꾸었고, 청자를 백자로 바꾸었으며, 합의 중심의 활동적인 문화를 권위 중심의 소극적인 문화로 바꾸었다.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던 여성은 장옷을 입고도 눈치를 보며 바깥 출입을 해야 했고, 더 이상 부모로부터 재산권을 상속받을 수 없게 되었고, 조상의 제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푸른색을 좋아하던 문화(송나라로부터 영향받은 것이 아님은 고구려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흰색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뀌어, 마침내 푸른 옷을 천한 사람의 옷으로 돌렸으며, 옷의 생김새마저 활동을 제한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소박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던 모자조차 크고 직선적이며 권위적인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를 탈 기마종족화라고 한다면, 훈민정음은 그 기세에 제동을 걸면서 근조선을 중국과 독립된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므로 성리학과 훈민정음은 우리 역사를 단일민족의 독립된 울타리에 가두는 역할을 분담하면서도 그 역사적 성격은 전혀 달랐다. 성리학이 기마종족적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었다면, 훈민정음은 기마종족적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근조선의 역사에서 공존과 대립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성리학자들은 훈민정음을 성리학 전파의 대중적 수단으로만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언서라 부르면서 천시했고, 근조선의 공식 문서에서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성리학자들은 오로지 '진서'라고 부르는 한자만을 썼으며, 한글은 일부 여성이나 아동 및 평민이 사용했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은 서서히 언어적으로 발전해갔다. 훈민정음으로 된 문학작품이 여성이나 일부 문인들에 의해 빛을 보기 시작했으며, 훈민정음의 의의를 이해하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어문학적 연구가 거듭되었을 뿐 아니라 '실학'이라는장을 열어갔던 것이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근조선의 세종은 매우 뛰어난 지도자로서 다양한 사상을 익혔을 뿐 아니라, 현실적 재능을 존중하는 개방성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리학자들은 훈민정음의 반포를 반대했으며, 그것이 대중화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중들이 글 읽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으며, 한자 이외에 특별한 글자가 필요하다고 보지도 않았다. '역사적 만약'이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만약 훈민정음이 없었고 성리학자들에 의해 한자가 점차 널리 사용되면서 오늘날까지 고유의 문자를 가지지 못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그런 뜻에서 훈민정음이 비록 작은 겨레를 기정사실화한 측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 고유의 역사를 지켜온 주춧돌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을 거부한 사람들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늘 작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작은 겨레를 살피면서 굳이 훈민정음의 원리와 뿌리를 들먹인 것도 그 반대자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글전용을 주장하면서 한자를 중국 글자라고 배척하는 사람들이나, 한자에 대해 어설픈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 외국어의 조기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언어가 한 겨레역사의 크고 작음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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