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인을 위한 철학논쟁 -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 / 엮은이:김창호 / 펴낸이:백석기
2장 과학 철학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가 - 이봉재
오늘날 '정보 혁명'의 총아인 컴퓨터는 날로 발전하여 인간의 지적 능력을 본격적으로, 턱월하게 기계적으로 재현한다. 그렇다고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과 동일한 인공 지능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정보 처리'와 무관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술자, 항공 관제사, 관리직, 경제인, 학자, 신문 기자 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모두 정보 처리와 연관되어 있다. 정보 처리란 간단히 말해서 일련의 정보를 토대로 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것은 작게는 상점에 어떤 상품을 진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로부터, 자동차 회사에서 다음에 개발할 자동차의 형태를 결정하는 일, 그리고 한 나라의 GNP 추세를 예측하는 일 등 다양한 종류의 과정을 일컫는다. 점차 분명해지고 있지만, 정보 처리란 어떤 물건을 생산하는 것에 버금가는 대단히 가치 있는 기술임을 명심해야 한다. 효율적인 정보 처리란 천혜의 자연적 혜택들-비옥한 토지, 풍부한 광물 자원, 쾌적한 기후 등-이 주는 이익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일본이나 싱가포르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 나라들은 특별한 천연 자원을 갖지 않고서도 세계적인 기업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효율적인 정보 처리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의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세계 시장의 기회를 신속하게 포착해 내는 능력 등이 이 나라들의 특징인데, 그러한 것은 분명 탁월한 정보 처리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양질의 정보를 풍부히 수집하고 정리해 두는 것, 그리하여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재조직하여 의사 결정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 처리가 갖는 중요성이 언제나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산업 혁명 이후 19세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중요한 기술이란 전적으로 물질적 재화의 생산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우리 시대에 새롭게 부각되는 정보 처리의 문제는 우리 시대 특유의 현상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를 일컬어 사회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정보 혁명'의 시대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특징적인 기계, 컴퓨터가 갖는 의미는 바로 이와 관련되어 있다. 컴퓨터는 우리 시대의 막강한 정보 처리력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해 주는 도구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기술적 의의와는 별도로 컴퓨터는 그것의 특별한 기능 때문에 철학자들의 흥미를 끈다. 정보 처리의 일각을 담당해 냄으로써 컴퓨터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인간보다 더 탁월하게 기계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쉽게는 계산기들이 보여 주는 대단히 빠르고 정확한 계산 능력, 그리고 오목 게임, 바둑 게임 등의 프로그램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계산만이 아닌 듯한 판단 능력, 더 놀라운 것은 기후에 관한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하여 대단히 정확한 일기 예보를 하는 슈퍼 컴퓨터의 능력 등, 컴퓨터의 계산 능력과 수학적 추리력, 판단력 등은 분명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제기되는 문제가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발달된 컴퓨터는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는 듯하며, 그것은 인간과 기계, 그 차이와 같음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컴퓨터란 무엇인가
컴퓨터가 과연 생각하는 존재인가를 논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생각'에 대하여 보다 정확히 알아야 한다. 컴퓨터란 정확히 어떤 종류의 기계인가, 그리고 도대체 생각이란 무엇인가, 과연 인간 아닌 기계도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인가 등등. 여러 상품 광고에서 많이 사용됨으로써 우리에게 친숙해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줄여서 AI)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압축하는 전문 용어이다. 인간의 자연적 지능에 대비되는 인공으로 만들어진 지능이 과연 가능한가? 정보를 다루는 기계, 정보 처리 기계로서의 컴퓨터는 물건들을 생산하고 이동시키는 종래의 기계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기계이다. 통상 인간의 역사에서 기계란 언제나 힘든 일을 대신 해 왔다. 예컨대 물레나 돌절구, 짐수레, 지게 등은 모두 인간의 힘을 절약해 주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물체를 다루는 힘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조작하여 정보를 처리해 내는 기계도 있을 수 있는데, 시계나 컴퓨터가 바로 그에 해당한다. 요즈음은 보기 쉽지 않은 괘종시계를 예로 든다면, 그것은 종모양의 추(진자)와 톱니바퀴라는 기계적 장치를 이용하여 60분을 1시간으로 변환, 해석해 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기호 조작기계이며 정보 처리 기계이다. (사실상 계산기를 처음 공학적으로 설계했던 바비지의 아이디어는 톱니바퀴 시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20세기 후반 트랜지스터와 IC(집접 회로) 기술의 발전에 의하여 정보 처리 기계는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된다. 원래 컴퓨터는 철저히 계산기였다. 그것은 곧 숫자 기호들을 변형하여 조작하는 기계라는 뜻이다. 예컨대 '(12-4)/2'라는 기호를 '8/2', '4'라는 기호로 변환해 내는 것이 바로 계산 과정이 된다. 모든 정보 처리가 궁극적으로 정보를 담고 있는 기호의 기억, 번형, 조작 과정임을 생각하면, 계산 또한 정보 처리의 일종임에 분명하다. 컴퓨터는 기억 용량의 증대와 함께 문자들마다 고유의 숫자를 할당하여 숫자화함으로써 문자 텍스트까지 기억, 조작할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정보 처리 기계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는 정확히 어떠한 작업을 통하여 정보를 처리하는가? 내용상 컴퓨터가 하는 작업은 철저히 계산임에 유의해야 한다. 컴퓨터는 하드웨어(컴퓨터의 몸체와 입력을 위한 문자판, 화면과 출력용 인쇄기, 기타 보조 기억 장치 및 데이터 판독용 드럼 등의 장치들)와 소프트웨어(하드웨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려 주는 일련의 지시 사항들)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외장을 모두 벗겨 내고 컴퓨터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결국 자기가 자신의 단추를 누를 수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을 기억할 수 있는 계산기에 불과하다. 컴퓨터는 일련의 명령을 프로그램에 따라 수행하는데, 즉 맹렬한 속도와 정확성으로 필요한 메모리의 숫자를 호출하거나 도로 집어넣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예컨대 컴퓨터가 오목을 둔다고 할 때, 컴퓨터가 하는 일이란 자신의 가능한 다음 수와 그에 대한 상대방의 가능한 응수, 또 그에 대한 자신의 가능한 응수 등등을 모두 열거하여 그 손익을 신속히 계산하는 것뿐이다. 이때의 손익 계산 또한 프로그램에 의해 설정되어 있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는 일단 계산 이외의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오목의 가능한 수순들을 모두 검색하는 것은 컴퓨터로서도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내에 결론을 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상의 테크닉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 작용에 있어서 철저히 계산적이라는 사실은 컴퓨터란 결국 수학적 추리 과정의 기계화임을 알려 준다. 인간 역사에는 수학적 사고 과정을 기계화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항상 있어 왔다. 간단하게는 주판이라는 계산 도구가 그것이며, 라이프티츠(G. W. Leibniz), 러셀(B. Russel) 등의 논리학자들이 꿈꾸었던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컴퓨터는 수학의 기계화라는 오래 된 이념이 새로운 차원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는데, 우리는 그로부터 컴퓨터의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있다. 컴퓨터가 다루기 좋은 것은 수량화될 수 있는 데이터들이다. 컴퓨터에 의해 우리는 문제의 수량적 측면을 분명히 알게 되며 또한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수학적 추론과 기억 등의 부분에서 우리를 결정적으로 도와준다. 그러나 이러한 컴퓨터가 과연 생각하는 존재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인공 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실현한 것인가
일군의 기호를 다른 일군의 기호로 변형하는 기호 조작에 관련된 일반 법칙을 다루는 학문이 논리학, 수학이다. 따라서 정보 처리란 논리학이나 수학의 법칙에 따라 일군의 기호를 다른 일군의 기호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사실상 컴퓨터가 단순한 숫자 계산기가 아니라 숫자나 알파벳 등 모든 기호를 조작하는 기계라는 깨달음이 인공 지능이란 개념을 가능하게 했다. 맥키시(J. McCarthy), 민스키(M. Minsky), 사이먼(H. A. Simon), 뉴웰(A. Newell) 등 인공 지능 이론의 선구자들이 공유했던 통찰력이 바로 그것이다. 인공 지능이란 곧 컴퓨터의 사고 능력을 말하는데, 이러한 개념은 1950년대 중반에 앞에서 말한 일군의 학자들에 의하여 정립되었다. 그들은 컴퓨터가 기호 조작 체계이며 인간 지성이 하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지능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능이란 결국 물리적 기호 조작의 능력일 뿐이며, 그것은 어떠한 생물학적 웨트웨어(wetware)나 물리적 하드웨어와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 두뇌 위에서건 컴퓨터의 실리콘칩 위에서건 간에 기호 조작 능력을 구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지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호 조작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충분한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이 우리 인간 지능의 모두인가? 기호를 조작한다고 해서 모두 지능을 갖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호를 어느 정도 잘 조작하는가가 중요한데, 그와 관련된 유력한 기준은 이렇다. 만일 그 모습을 감춰 놓고 서면으로 대화해서 상대방이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대화 솜씨를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 과학의 선구적 이론가였던 튜링(A. Turing)이라는 수학자가 제시한 기준으로서(그래서 '튜링 테스트'라고 불린다) 많은 인공 지능 학자들이 수긍하는 일리 있는 기준이다. 이 기준이 제시된 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인공 지능 연구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능에 대한 충분한 기준인지는 결코 확실치 않다. 기계가 사람과 유창하게 대화한다고 해서 결코 그 기계가 말을 이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러한 대화가 가능한 것은 기계의 지능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지능 때문이다.
1970년에 MIT의 인공 지능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바이젠바움(J. Weizenbaum)이라는 과학자가 만든 ELIZA라는 프로그램은 튜링 테스트에 멋지게 합격한 프로그램이다. 바이젠바움이 정신 분석의의 대화 방식을 연구하여 만든 이 프로그램을 자신이 근무하는 연구소 컴퓨터에 입력하여 아무나 사용하게 만든 결과(물론 그것이 프로그램인지 진짜 의사인지는 모르게 하고), ELIZA는 그 연구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담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정말 정신과 의사입니까? ELIZA:왜, 정신과 의사에 대해 흥미 있습니까? 별로 흥미 없어요. ELIZA:당신은 정신과 의사에게 흥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정신과 의사에게 신세진 일이 없으니까요. ELIZA:가족에 대해 말씀해 보세요. ...
이 예에서 느껴지겠지만, ELIZA라는 프로그램은 상대방의 말을 변형시키는 여러 테크닉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중심 개념 또는 새로운 개념에 대해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말의 문법적 변형(전문적으로는 '구문론적 변형'이라고 한다)에 불과하며, 따라서 숫자화된 기호에 대한 조작 즉 계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외형적으로 아무리 유창한 대화처럼 보인다 해도 이를 말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또는 지능을 가진 상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설(J. Searle)이라는 유명한 철학자는 인간의 지능, 이해는 단순한 기호의 변형만이 아닌 '의미'를 다룬다는 점에서 결코 컴퓨터와 같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바로 그런 점에서 ELIZA는 지능을 갖는다고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한편 ELIZA가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은 ELIZA의 구문론적 변형 테크닉이 탁월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부분은 질문자인 인간의 지능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즉, 인간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보완하여 의미를 만들어 가는 능력-그것이 인간 지능의 독특한 부분인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단순한 말의 반복도 인간에게는 의미 있는 질문으로 해석된다. ELIZA의 반복, 의문문화 등이 대화로서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컴퓨터의 지능이 아니라 인간 지능의 특수함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인간 지능은 컴퓨터의 계산적 지능과는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듯하며, 그런 점에서 컴퓨터가 생각한다는 말은 비유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듯하다. 계산도 생각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컴퓨터는 생각하며, 마치 생각하는 인간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하는 존재일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 지능과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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