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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65 호
단기 4340. 9. 23 (음력 8. 1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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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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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종교 그 아름다움
도올 김용옥의 기독교를 향한 토론은 거침없고 현란하다.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언젠가는 자신의 입지마저 앞뒤가 안 맞게 바뀌어버린, 듣다보면 횡설수설하기도 하는, 도대체 말씀의 현주소가 동양인지 서양인지 헷갈리기도 하는 도올이지만 그가 불러온 기독교 현실에 대한 공개토론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설교자의 목적은 신자를 지혜롭게 만들기보다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기존교단의 입장에 “그런 생각이 기독교를 망쳤다.”고 서슴없이 반박하는 도올이다. 누구의 의견이 옳건 그르건 이런 토론은 진작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만의 기독교 교단에 대한 강렬하고 안 좋은 인상(독선적이고, 음흉하고 미신적이며, 알 수 없는)은 없었을 것이며, 교회의 아웃사이더로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종교 중의 하나고, 야훼란 숭배 받았던 수많은 신 중의 하나다. 모세의 애굽탈출은 B.C 1200년 경이고, 창세기는 그 이후에 쓰여 졌으니, 기독교의 역사를 합쳐 봐야 겨우 3000여 년이다. 창세신화는 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고 청동기시대부터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중심으로 떠돌던 흔한 신화 중의 하나다.
최초의 신화지대 또는 인간지대라고 일컬어지는 60만 년 전의 유인원들이 이미 종교의 흔적을 남겼다. 그 당시의 유적에서 머리가 없는 동물의 뼈 조각들이 발견되곤 하는데, 이는 머리를 따로 떼어서 제사를 지냈던 증거라고 종교사학자들이 추론한다. 머리를 따로 떼어서 제의에 바치는 신화는 아직도 지구 곳곳에 존재한다. 우리도 굿을 할 때에 돼지머리를 따로 떼어서 상에 올린다. 더욱 확실한 인류의 종교적 흔적은 20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의 출현이다. 이들은 벽화를 남겼다. 현생인류의 직계로 보는 3만 년 전에 출현한 크로마뇽인의 동굴벽화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 모든 벽화는 원시 예술가의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베드로 성당의 천정벽화처럼 제의를 지내기 위하여 공들여 그린 종교적 상징이라고 종교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의 기원은 엄청나게 오랜 선사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원전 3200년 경에 문자가 출현하였고 오늘의 역사시대는 이로부터 시작되지만, 이미 기원전 7500년부터 종교는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에는 뼈나 돌에 새긴 여인상이 자주 나타난다. 도자기나 토기로 빗은 여인상도 발견되는데, 과장된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로 미루어 다산과, 풍요, 생산을 뜻하지만 이 여인상은 단순한 여인이 아니라 바로 신(神)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류최초의 신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이행되기 시작한 시기는 현대문명의 태초라고 보는 기원전 3500년으로 잡는다. 일부 종교사학자들은 이 때에 오랜 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모계신화가 부계신화로 변화했다고 한다. 많은 여신들이 사라지고 남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한 신화학자 조지프 켐밸은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신화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기 위하여 조작한 것이라고 추론한다.
사실 특정 종교는 인간만이 느끼는 “성스러움에 압도되는 감정의 바다”를 떠도는 하나의 조각배다. 이런 감정을 특정 교리에 모두 잡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그 교리가 협소하다. 그래서 종교는 늘 변화하고 새로운 물결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날의 정통 기독교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래의 기독교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산골짜기의 작은 종교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사도바울에 의하여 세계화되면서 필연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초대교회에는 없었던 다양한 제의와 의식이 오늘날의 정통 기독교에 많이 존재한다.
사실 내 종교 안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종교 안에도 존재하는 공통된 “그 무엇”이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예부터 적으로 삼았던 종교를 인정해줘야 할 판이다. 로마교황청은 과감하게 타종교의 신성을 인정했다. 즉 종교학자들이 주장했던 “종교의 공통적 원소”라는 개념을 인정한 것이다. 종교의 공통적 원소란 모든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동의 관념이다. 이에 상반된 개념으로 “종교의 민족적 원소”가 있는데, 이는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옷을 입은 종교를 뜻한다. 따라서 종교의 민족적 원소에 집착하면 종교끼리 적이 될 수도 있지만 공통적 원소에 관심을 기울이면 화합할 수 있다.
나의 종교적 방황은 어렸을 때에 느꼈던 부처와 예수의 대립 때문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에 집 근처에 있는 절에 자주 놀러 다녔기에 부처의 인상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다. 그러다가 집 근처에 들어선 교회에 다녔다. 목사님은 절의 부처상이나 다른 모든 것이 다 우상이며 미신이고, 그 근처에만 가도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했다. 사실 지금도 기독교가 험악하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것은 그때 받은 인상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나가세, 예수 승리, 목숨을 다해 적을 부수고,”라는 설교는 참으로 암담했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도 내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 된 것일까?
“우상을 숭배하지 마라.”
이 한 마디로 모든 종교의 교리를 다 함축할 수 있다. 언젠가 나는 목사님과 우상이라는 개념을 두고 논쟁하다가 교인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타종교의 모든 상징은 다 우상이고, 이런 우상에 고개라도 끄떡하면 죄가 된다는 목사의 말씀이다. 나는 과감하게 목사에게 손가락질 했다.
“당신이 곧 우상이 아닌가요? 왜 사람들은 성서만 들먹이면 꼭 자기가 하나님이나 예수가 된 것처럼 자신 있게 떠들죠?”
사실 나는 성서를 단순한 신앙의 지침서로 본다. 그곳에는 길이 있을 뿐이지 하나님이 없다. 길을 내밀어 이것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달마대사가 면벽좌선에 몰두 할 때 경전에 통달한 스님이 찾아왔다. 경전도 모르고 어떻게 득도할 수 있냐고 달마대사에게 빈정댔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말했다.
“그림의 떡을 드시면 배부르십니까?”
지도는 지도에 불과하다. 자기 발걸음으로 찾아가지 않으면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여기에 예수님이 살고, 저쪽 길로 쭉 올라가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떠들 필요 없다. 왼뺨과 오른뺨의 비유는 끝없는 사랑뿐만 아니라 큰 겸손을 의미한다. 논리의 비약이겠지만 진정한 예수는 양보와 양보를 거듭하여 자신의 이름조차 지상에서 사라질 때 전체 예수로 다시 탄생하는지도 모른다. 이는 불멸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극대화고 성취일 수도 있다.
“뻑 하면 응답받았다고 말하지 마라. 짜증난다.”
이것이 다시는 근처에도 어른거리지 않겠다고 교회를 떠나며 십자가에게 던진 나의 말이다. 어떤 신자는 혹시 내가 지옥에 떨어 질까봐 근심까지 친절하게 해줬다. 그러나 사랑과 증오, 자비와 분노, 믿음과 질투가 죽 끓는 변덕스런 하나님이 싫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일 뿐이다. 신을 의인화시킨 결과다. 온전하고 순결하기만 했던 욥이 믿었던 하나님의 황당한 게임에 고난을 당했다. 고통 속에서 차라투스트라의 간절함으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입 다물 뿐입니다.”로 끝났다. 이는 참으로 경건하고 독실하다. 사실 욥에 관한 전설은 이미 다른 종교 안에도 존재하는 신화로서 극도의 경외감에 사로잡힌 종교적인 인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과실을 따 먹은 죄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제우스의 질책과 형벌에 프로메테우스는 굴하지 않는다. 당신 마음대로 벌을 내리라고 냉소를 퍼붓고 인간의 편을 든다. 여기서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예언자 이사야는 말했다. 하나님은 하늘에도 역사하고, 인간에게도 역사하며, 땅에서도 역사한다고, 이는 신은 초월신이요, 내재하는 신이요, 만물에 스며든 신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신이란 반드시 그 변덕스런 인간의 모습만 닮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다섯 개의 감각으로 인간은 세상을 인지한다. 그나마 일정 범위 안의 빛만 보이고, 사이클만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인 신비스런 체험도 있다. 그러나 남에게 주장될 개인적인 체험이라면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종교적 신비주의의 한계다. “너만 꿈 꿨어? 나도 꾸었어.”하면 그만이다.
도올 김용옥과 기독교 신학자들의 토론은 기독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듯 하다. “무조건 믿어라. 어허, 믿음이 부족하고 의심 많은 자야, 이단이로구나. 마귀로구나. 지옥이 두렵지 않느냐,”라며 기염을 토하던 그들의 집, 속을 알 수 없기에 음흉하게만 느껴지던 금단의 문이 열린 것이다. 성서도 그 권위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 있으며, 현재의 모든 종교지도자들도 심판대에 오를 수 있다는 신선함이다. 이미 로마교황청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다른 종교의 신성을 인정한 세상이다. 신은 하나일 수도 있고, 하나의 신이 다각면의 얼굴로 나타난 형태일 수도 있다. 둥근 태양은 분명히 태양이다. 그러나 빛에 실려 온 태양의 입자 하나 하나가 태양일 수도 있다. 즉 모든 신은 개인에게 구체화된다는 말이다. 저 태양이 내 몸에 아무런 광합성 작용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생명을 유지시켜 주지 못한다면 쓸모없다. 그래서 신은 빛의 입자로 개인에게 파고드는지 모른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기독교가 급속히 쇠퇴하는 중이다. 기독교는 늘 핍박받는 자의 편이라서 그런지 후진국에서 세를 넓히며 남반구를 향하고 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로 파고든다. 그쪽에서는 열린 종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득권층이 아니라 가장 가난하고 겸손한 자로서 말이다.
(이정문, 소설가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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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때려서 지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폭력행사이지 지도력의 발휘는 아니다. / D.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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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2. 율곡 이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일곱째는 스승을 섬기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이 성심으로 옳은 것을 지향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스승 섬기는 도리를 높여야 한다. 사람은 세 가지(나라와 스승, 그리고 어버이)에서 났으므로 섬기기도 그 세 가지를 똑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않으랴. 함께 살게 되면 새벽과 저녁에 인사드리고, 따로 살게 되면 공부 배울 때에 예의를 다하여 뵈옵는다. 평상시 모셔 받듦에 존경을 다하고 가르침을 착실히 따라 믿음직스럽게 해서 복종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말씀과 행사는 일에 의심나는 점이 있을 때에는 조용히 질문하여 지식을 얻을 것이요,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스승을 비난하지 말라. 하지만 바른 도리를 따지지 않은 채 스승의 말만 무조건 믿어서도 옳지 못한 것이다. 틀린 것이 있으면 조용히 말씀드리되 받들어 모심에 대해서는 힘에 따라 성의를 다하여 제자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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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논쟁별로 본 한국 철학
6. 인물성동이 논쟁
1. 논쟁의 발단과 배경
주자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만물의 발생과 변화는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조선 초부터 인간의 성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성의 올바른 발현을 통한 주자학적 이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 주자학자들은, 인간의 성정이 우주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해 이미 깊은 탐구를 해 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성과를 사단칠정 논쟁이라 부른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회 규범을 가지고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다고 할 때, 이제 시야를 인간의 성정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로 확장시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18세기 초 이전에도 이에 관한 관심과 논의의 맹아는 여러 군데에서 찾아진다. 인간이 왜 동물과 같지 않은가에 관한 일반적 관심이라면 이황과 이이를 비롯한 주자학자 대부분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성과 물성의 차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관심이라면 김장생, 정시한, 이식, 김창협 등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은 권상하의 문하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권상하는 이이, 김장생, 송시열의 뒤를 잇는 기호 학파의 맥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 문하에는 인물성동이 논쟁의 주인공이 되는 이간과 한원진이 있었다. 이 둘은 논쟁 이전부터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토론은 1712년에 시작되었다. 이간이 스승 권상하에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상태의 심이 순선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 권상하는 이간의 설에 수긍하였으나 한원진이 자기의 의견을 설명하자 이번에는 한원진의 설을 인정하였다. 이제 이간은 스승 권상하에게 편지를 보내 스승과 한원진의 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고, 한원진은 이간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스승을 대변해서 반박을 함으로써 이들 둘 사이의 논쟁은 본격화되었다. 이들의 논쟁은 십여 년간에 걸쳐 진행된 후 마무리되었지만, 이 둘의 논쟁은 둘 사이에서 그치지 않고 집단적 논쟁의 성격을 띠면서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이간이나 한원진 모두 권상하의 문인들로서 기호 지방인 충청도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간의 설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주로 김창협, 김창흡 계열을 잇는 어유봉, 이재, 박필주 등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서울에 사는 노론, 낙론 계열이었으므로, 이들의 이론을 낙론이라고도 한다. 한편 권상하와 한원진의 이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윤봉구, 최징후, 채지홍 등 주로 충청도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호론이라고도 하다. 이 때문에 이들 사이의 논쟁은 '인물성동이 논쟁'이라는 명칭 이외에 '호락 논쟁'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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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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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극
-본뜻 : 나무의 온갖 가시를 일컫는 말이다.
바뀐 뜻 : 나무의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이 극심한 고통이나 고난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보기글" -일제 치하에서 독립 운동가의 아내로 살면서 형극의 길을 걸어온 지 어언 20년 -민주주의를 위해 그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이었다
기다 아니다
말이란 줄여서 쓸 때도 있고, 이미 줄어든 말을 쓸 때도 있다. “그것이다, 그것이야!”를 줄인다면 “그것이다, 그거야!” “그거다 그거야!”가 나오고, 나아가 “그기다 그기야~” “기다 기야~”까지 갈 수 있을 터이다. 현재 국어사전 풀이에서는 ‘기다’를 ‘그것이다’가 줄어든 말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기다 기야’가 성립하게 되고, 실제 쓰기도 한다. ‘그기다’는 무엇인가? 이는 ‘그+기다’로 나눌 수 있는데, ‘기다’는 ‘것이다’에 해당하므로 ‘기다’는 ‘것이다’가 줄어든 말로도 봐야겠다. ‘이+기다, 저+기다, 조+기다, 요+기다’ 들이 쓰이는데, 이 말들은 더 줄어들지 않는다. 국어사전에서 ‘게’를 ‘것이’의 준말로 다루듯 ‘기’ 역시 ‘것이’의 준말로 다뤄야 할 성싶다. ‘기’는 또한 ‘곳’의 뜻으로 ‘요기·조기·저기·여기·거기’에서 그 제한적인 쓰임을 찾을 수 있다.
‘기다 아니다’에서 ‘기다’는 ‘그것이다’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쓰임새는 ‘그러하다·그렇다/ 그와 같다/ 맞다’ 쪽에 더 가깝다. 여기서 ‘기다’의 뜻갈래를 ‘그렇다’와 같은 쓰임으로 하나 더 잡을 필요가 생긴다. 그래야 ‘기다’의 현실적 쓰임을 가다듬을 수 있겠다. “기다 아니다 말이 없다”면 달리는 “그렇다 그렇지 않다 ~, 그것이다 그것이 아니다 ~, 있다 없다 ~, 맞다 틀리다 ~” 정도까지 갈 수 있겠다.
흔히 “긍정도 부정도 아니하다, 시인도 부인도 아니하다, 확인도 부인도 아니하다’란 말을 쓴다. 영어 익은말(NCND/neither confirm nor deny, refused to deny or confirm, declined ether to affirm or to deny)을 뒤친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기 곤란할 때, 투명하지 못할 때를 상정하여 나온 표현이긴 하나 무척 식상해진다. 이를 대체할 말로 ‘기다 아니다 ~’를 써봄직하겠다. 물론 여기까지 가지 않아도 이런 말을 비켜갈 간략한 표현은 많다.
△CIA의 고전적인 답변 방식으로 내가 대답하자면, 그런 시설이 존재하는지에 관해선 긍정도 부정도 않겠다 → ~ 그런 시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 줄 수는 없다.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선) 미국도 몇십년 동안 엔시엔디(NCND)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우리의 기본 입장도 엔시엔디다. → 미국도 몇 십년을 ‘모른다’(NCND)는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우리의 기본 정책도 그렇다. △홍 의원은 “그건 이야기 할 수 없다”며 당권출마에 대한 말을 회피하면서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당권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한 모습이다 → ~ 당권 도전에 대한 말을 피하면서도 기다 아니다 확인을 하지 않고 있어 ~. △지마켓은 상장 추진을 두고 “노 코멘트”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상태이지만 증권가에서는 하반기 상장 추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 지마켓 쪽은 하반기 상장 문제를 두고 ‘할말이 없다’며 확인을 하지 않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라크 납치범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그를 납치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 이라크 납치범들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그를 납치했을 가능성을 두고도 그는 기다 아니다 언급이 없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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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지은이:사마천, 옮긴이:김진연, 펴낸이:이영선
1. 오직 천명에 따를 뿐이다(강태공)
폭군의 횡포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원래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좋고 말재주도 뛰어났으며, 게다가 맹수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대규모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갈수록 자기 머리와 재주만 믿고 교만해졌다. 특히 절세의 미녀 달기를 얻고부터는 전형적인 폭군이 되어 갔다.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고 정사를 내팽개쳤으며,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비난하는 사람은 무조건 처형시켜 버렸다.
충신의 운명
당시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3공이 있었는데, 바로 구후와 악후, 그리고 서백창이라는 충신들이었다. 그런데 폭군 주왕은 구후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나 그녀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죽였으며, 이에 구후가 맹렬히 항의하자 그를 죽여 소금에 절여버렸다. 또 이를 악후가 비난하자 악후도 죽여 육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육포를 서백창에게 보내, "너도 눈밖에 나면 이 모양이 될 것이다."라고 겁을 주었다. 서백창은 그 육포를 보고 기가 막혔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해마지 않았다. 한편 육포를 가져왔던 사자가 주왕에게 돌아와 서백창이 탄식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왕은 크게 노했다. 그리고는 곧장 서백창을 붙잡아 유리라는 벽지로 유폐시켜 버렸다. 그 후에도 주왕의 폭정은 그치지 않았다. 달기와 함께 죄없는 신하들을 '포락지형'에 처해 그 타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즐겼고, 또 '주지육림'을 벌여 벌거벗은 남녀들의 집단 정사를 즐기기도 했다.(사기 1권 '경국지색의 여인들' 편 참조) 더구나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만삭의 임산부까지 찔러 죽이는 만행을 일삼았다. 이때 은나라에 비간이라는 충직한 왕자가 있었다. 그는 주왕의 계속되는 폭정을 두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해 주왕을 찾아갔다.
"폐하,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시고 나라를 지키소서, 지금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고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왕은 들은 척하지도 않았다. 비간이 몇 번에 걸쳐 호소했지만,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떠 버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비간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 꿇어앉아 일주일 동안이나 있으면서, 계속하여 호소하였다. 그러자 주왕은 드디어 크게 화를 냈다.
"네가 나를 이렇게 괴롭힐 수 있느냐. 그럼 좋다. 네가 그렇게 성인이란 말이냐. 내가 알기로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오늘 확인해 보겠다."
그러면서 비간을 죽이고 심장을 도려냈다. 한편 비간 왕자가 주왕에게 간하다가 궁궐 밖으로 쫓겨나 계속 호소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졌을 때, 현명한 선비로 이름높았던 기자가 비간을 구하기 위해 궁궐로 찾아갔다. 그러나 자기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간 왕자가 처형된 뒤였다. 기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 이 나라는 정녕 끝났는가!"
그러면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미친 사람으로 변장한 채 거리를 유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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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행운의 과학적 발견이야기 - 로이스톤 M. 로버츠
제12장. 분자도 좌수형과 우수형은 크게 다르다.
루이 파스퇴르는 화학보다도 미생물학의 업적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화학자였으나 그가 유명해진 것은 아래와 같은 세균(박테리아)에 관한 연구 때문이다. 그는 와인이나 맥주의 제조에 있어 중요한 발효와 음식물의 부패(그가 고안한 우유의 저온살균법은 파스퇴르법이라고 명명되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상처의 감염(리스터 경에 의한 수술시의 소독은 그의 연구를 응용한 것으로써 외과수술의 혁명이 되었다) 및 전염병(누에의 병에 관한 연구는 프랑스의 양잠업을 구제하고 광견병 왁친의 개발은 몇천 명이라는 인명을 죽음에서 구해냈다)등이 모두 세균의 작용임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으로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화학에서의 업적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명성에 손색이 없다. 1848년 파스퇴르가 25세 때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와인이 발효될 때 통 속에 침전하는 포도산(racemicacid)의 소금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다(라세미란 포도송이를 뜻하는 라틴어 recemus에서 유래하였다). 이미 아일하르트 미쳐리히라는 화학자가 포도산의 소금(소다와 암모니아로 처리해서 얻어지는 포도산의 암모니아 소다염)이 역시 와인의 통에서 발견된 주석산(tartaricacid)의 소금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고했다. 근소한 차이는 주석산 소금이 '광학활성'인데 반하여 라세미산의 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주석산의 칼륨산염은 주석영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물질이 편광면을 회전시키는 힘이 있을 때, 그 물질을 광학 활성이라고 한다. 파동의 원리에 의하면 보통의 빛은 모든 방향의 면 안에서 진동하는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결정은 필터작용을 하여 한 방향의 면 안에서 진동하는 빛만을 통과시키는데, 이때 나오는 빛을 편광이라고 한다. 1848년에는 수정의 결정이나 테레빈유, 또는 설탕물 등의 천연물질이 주석산의 소금처럼 편광을 회전시킨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으나 어떤 이유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편광회전을 조사, 측정하는 장치가 편광계이다. 어떤 물질이 편광면을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킬 때 이를 우선성 또는 양(+)의 선광도를 갖는다고 하며, 역으로 편광면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시키는 물질은 좌선성 또는 음(-)의 선광도를 갖는다고 한다. 파스퇴르는 고민했다. 주석산의 소금과 포도산의 소금이 화학구조와 결정구조가 동일하지만 편광에 대해서는 성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포도산의 소금은 아무런 현상도 일으키지 않는 데 반하여 주석산의 소금은 우선성이었다. 미쳐리히가 보고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실은 결정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것들은 우수와 좌수의 관계였던 것이다.
파스퇴르는 현미경을 보면서 핀셋으로 우수형의 결정과 좌수형의 결정으로 나누었다. 양쪽 형을 적당한 양만큼씩 나눈 파스퇴르가 다음에 한 것은 단순한 육감이었는지 아니면 천재의 번뜩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양쪽의 결정을 조금씩 따로따로 물에 녹여서 편광계의 편광경로로 차례차례 넣어 보았다. 그러자 좌수형 결정의 용액은 편광을 좌로 회전시키고 우수형 결정의 용액은 편광을 우로 회전시켰던 것이었다. '파스퇴르의 생애'(1902년 간)의 저자 르네 발레리 라도에 따르면 젊은 과학자 파스퇴르는 자신의 발견에 흥분한 나머지 아르키케데스처럼 실험실을 뛰어나와 "해냈다!"고 외쳤다고 한다. 용액을 만들 때처럼 양쪽 형의 결정량을 측정해 보면 양쪽이 같은 양이면 정확하게 같은 각도만큼 회전시키고, 다만 그 방향만이 정반대였다. 또 우수형 결정의 회전각도는 주석산염과 같이 용액의 회전각도도 같았다. 즉, 파스퇴르는 그의 우수형 포도산의 소금이 사실은 우선성의 주석산염과 같은 것이라는 것과 그 좌수형 포도산염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주석산염의 경상체(거울에 비쳐 반전된 형상)이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스퇴르는 두 종류의 결정을 같은 분량씩 혼합하여 그 용액이 예상했던 대로 광학 불활성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파스퇴르는 포도산염이 지닌 두 종류의 결정을 선별함으로써 화학자들이 현재 '라세미체의 분리'라고 부르는 유명한 실험을 최초로 했던 것이다[파스퇴르가 연구한 포도산(라세미산)에 연유하여 경상체끼리의 혼합물을 라세미체라고 한다]. 파스퇴르의 이 진귀한 결정학적 실험은 파리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고, 곧이어 이 뉴스는 당시 매우 존경받고 있던 물리학자 잔 뱁티스트 비오에게도 전해졌다. 결정에 의한 편광회전의 근본적인 발견자이며 과학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했던 74세의 비오는 파스퇴르의 실험을 신용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보고하기 전에 비오는 파스퇴르에게 자기 눈앞에서 실험을 되풀이 해보도록 했다. 파스퇴는 이 요청에 따라 실험을 되풀이하고 비오는 결정을 만들기 위한 용액을 스스로 조제하기도 했다. 비오는 좌수형 결정이 편광을 좌로 회전시키는 것을 확인하자 더 이상 측정하는 것을 멈추고 젊은 파스퇴르의 팔을 잡고 감격하면서 "나는 평생 과학으로 살아왔지만 이토록 감격한 적은 없었네"라고 말했다. 다른 형의 결정을 분류하여 그것들의 용액이 편광면을 반대쪽으로 회전시키는 이론은 재치있기는 하지만 사소한 실험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물질이 편광계 속에서 편광면을 우나 좌로 회전시키는 데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로 볼 때, 파스퇴르의 실험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유기 화합물이 분자의 레벨로 거울 형상(mirror-image)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즉 분자에는 좌.우수성 또는 키랄리티라는 성질이 있음을 최초로 증명한 셈이다. 키랄리티란 희랍어로 '손'에서 나온 말이며 손이야말로 경상체의 가장 가까운 예라는 점에서 납득이 된다. 분자뿐만이 아니고 일반적인 물체도 키랄(chiral)인지 아키랄(키랄이 아닌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장갑은 키랄이지만 양말은 아키랄이다. 왜냐하면 양말은 좌우 어는 쪽이나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의 결정은 용해되면 과학 활성이 없어지므로 파스퇴르의 실험 이전에는 과학자들이 수정의 결정형을 이용하여 편광에 대한 효과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테레빈유나 설탕수와 같은 액체의 광학 활성의 설명은 할 수 없었다. 파스퇴르는 포도산염의 결정형의 차이가 이 소금분자의 형과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것들의 결정을 물에 녹이면 수정결정이 녹아서 결정구조가 파괴되는데도 불구하고 파스퇴르의 2종류의 소금결정 용액에서는 그래도 광학 활성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후에 파스퇴르는 포도산에서 분리된 소금을 각각 산의 형으로 바꾸고 그것들이 서로 이성질체의 관계인 좌수형(-)인 주석산과 우수형(+)의 주석산이라는 것을 밝혔다.
(해설) 파스퇴르는 자기의 발견이 분자구조와 광학 활성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편광면을 어는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분자와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분자하고의 관계는 물체와 그 경상체와의 관계와 같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원자가 모여서 어떻게 이같은 분자구조를 형성하게 되는가를 정확하게 살명할 수 있게 되는 데어는 25년 후, 두 사람의 젊은 화학자 환트 호프와 요셉 레벨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동안에 파스퇴르의 관심은 생물학적인 문제로 바뀌었으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포도산의 분석이라는 그의 선구적인 일은 분자구조의 키랄리티와 생물학적 활성과의 관계를 설명하여 다른 화학자들에게 연구에 관한 길을 열어 주었으며, 이는 그가 해낸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좌수형의 포도산[(-)주석산]이 평광면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 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지만 우수형의 비타민C[(+)아스코르빅산]가 비타민이라는 데에 대하여 (-)아스코르빅산은 생물학적인 작용이 없어 비타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글루코오스(덱스트로즈)가 음식물인데 반해 (-)글루코오스는 영양분이 없다든가, (-)클로로마이세틴이 강력한 항생물질인데 (+)클로로마이세틴은 그렇지가 않다거나, (-)아드레날린은 (+)아드레날린에 비해서 홀몬의 활성이 몇 배나 높다든가 하는 문제도 모두 같은 의미가 있다.
분자의 키랄리티의 중요성을 보인 비극적인 예가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다. 이 분자의 (+)형은 안전하고도 효과적인 입덧방지제로서 1950년대에 많은 임산부가 이 약제를 복용했는데 그 후, (-)형의 활성돌연변이 유도물이라는 것이 화학자에 의해 밝혀졌다. 약제는 양쪽형의 분자를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태아에게 심각한 패해를 미쳤다. 파스퇴르가 결정형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이를 선별하여 편광의 반대효과에 대한 의미에 관해서 추론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그의 천재성이 인정되지만 이 발견에도 세렌디피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발견을 함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우연이 두 가지나 겹쳤던 것이다. 첫째로 파스퇴르는 포도산의 나트륨암모늄염을 사용하였는데, 이 산의 수많은 염 중에서 경상형으로 결정되어 눈으로 볼 수 있거나 기계적으로 선별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유일하게 이 염뿐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두 가지 형으로 나누어져 결정화되는 것은 섭씨 26도 이하인 때 뿐이어서 26도 이상이면 모두 한 가지 형이 되어 광학 활성은 일어나지 않는다. 파스퇴르는 소금용액이 들어있는 플라스크 병을 썰렁한 파리의 그의 실험실 창가에다 두고 결정화가 충분히 진행되도록 이튿날까지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이것이다'라고 포도산염을 운좋게 선택한 것과 썰렁한 파리의 기후가 아니었던들 파스퇴르의 이 위대한 발견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파스퇴르는 세렌디피티의 은혜를 받은 다른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우연'과 '우연적 발견'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감명깊게 말했다. "관찰의 세계에서 행운이란 오직 준비하고 기다리는 마음에 호의를 베푸는 법이다." 위대한 미국인 물리학자 조셉 헨리가 그보다도 이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도 같은 근본원리가 염두에 있었을 것이다. "위대한 발견의 씨는 언제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뿌리를 내리는 것은 그것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마음에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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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고양이 덕분에 죽음을 면한 장순손
장순손(1457-1534)의 본관은 인동이고 자는 자호이다. 성종 16년(1485)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였다. 젊을 때에 얼굴 모양이 돼지 머리와 닮아서 동류들이 그를 '저두'라고 놀렸다. 연산군이 성주 기생을 귀여워하였는데, 하루는 종묘 제사를 마치고, 궁중에 음복을 올릴 적에 돼지 머리를 바쳤다. 성주 기생이 보고 피식 웃자, 연산군이 그 웃는 까닭을 물었다.
"성주에 사는 장순손은 얼굴 모양이 돼지 머리 같아서 사람들이 모두 장저두라고 부릅니다. 그 생각이 나서 웃었던 것입니다" 연산군은 벌컥 화를 냈다. "장순손은 반드시 네 사랑하는 지아비였을 것이다. 속히 '저두(장순손)'를 목베어 바쳐라" 장순손은 그때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서 쉬고 있었다. 잡아오라는 임금의 명을 받아 길을 떠나 함창 공검지 아래에 이르자 갈림길에서 한 고양이가 길 앞을 뛰어넘었다. 장순손이 자기를 잡아가는 의금부 도사에게 청하였다.
"내가 평소 과거에 응시하러 갈 적에 고양이가 길 앞을 건너가면 반드시 과거시험에 합격하였소. 오늘 또 갈림길에서 고양이를 보았는데, 이 길로 해서 가면 매우 빠른 길이니 이 길로 가겠소" 도사가 그 청을 들어주었다.
이때 선전관이 또 연산군의 명령을 받들고 저두 장순손의 목베는 것을 재촉하기 위한 일로 내려왔는데, 선전관은 큰길로 내려오고, 도사와 장순손은 갈림길로 가서 상주에 이르렀다. 도사가 상주에서 비밀히 중종반정 소식을 듣고 천천히 길을 가서 조령에 이르렀을 때, 이미 중종이 즉위하였다. 장순손은 죽음을 면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병조 판서까지 되었다. 이후,감안로와 같은 동아리가 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아 벼슬이 삭탈되었다가 얼마 뒤에 다시 우상에 등용되어 영상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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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놋사의 굴욕
유럽에서는 중세 봉건사회의 확립과 함께 기독교가 서구일대를 교화하여 로마 카톨릭교회의 권위는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세속적인 것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와 함께 교회는 차츰 부패하고 속되게 되었으며 교황의 권위를 위협하게 되었다. 특히 962년 독일황제 '오토' 1세가 이탈리아을 병합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후로는 교회의 임명권까지 갖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교회내부에서도 개혁운동이 차츰 적극성을 띠게 되었는데 1073 년 '그레고리' 7세가 교황의 위에 오르자 속인, 즉 황제에 의한 사교임명을 금한다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로 말미암아 당시의 로마황제 '하인리히' 4세와 정면 충돌을 하게 되었다. '하인리히' 4세는 자기의 힘만 믿고 교황의 폐위를 선언하자 교황은 이에 맞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해 버리고 말았다. 이 파문 조치의 효과는 놀라운 것이어서 교회는 물론 제후와 신하들까지도 황제를 등지고 교황에게 섰다. 당황한 '하인리히'는 굴복을 자인하고 '카놋사' 에 있는 교황을 찾아갔다. 때마침 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교황의 성 앞에 몇 시간 동안이나 서서 용서를 빈 끝에 간신히 뜻을 이루었다. 이 사건이 사상 유명한 '카놋사의 굴욕'으로 교회의 권위가 세속의 최고 권위까지 굴복시켰음을 보여주는 특정적인 보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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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2 - 후안 마누엘
열아홉번째 이야기 아랍인을 향애 바다로 뛰어든 영국의 왕 리차드
하루는 루까노르 백작이 그의 조언자인 빠뜨로니오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나는 그대의 지혜로움을 익히 알고 있소. 그대가 이해할 수 없거나 조언할 수 없는 문제라면 세상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듣고 가능한 한 제일 좋은 방도를 알려주기 바라오. 그대는 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소. 태어나서 오늘날까지 난 언제나 전쟁의 와중에서 자라고 살아왔소. 그때마다 난 항상 다른 왕들이나 나의 신하들, 백성들과 힘을 합쳤었소. 그러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을 해치곤 했소.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나이인지라 필연적으로 맞게 될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상의 그 누구도,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안심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언젠가 우리의 심판관이신 신 앞에 나아가게 되겠지만 그 앞에서 난 어떤 말,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를 구할 수가 없을 것이오. 난 더도 덜도 말고 내가 행한 선행이나 악행만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오. 불행하게도 내게 악행이 더 많다는 신은 필시 나를 처벌하실 것이오. 그런데 내겐 지옥의 고통 속으로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용서를 구할 만한 어떤 구실도 없고, 내가 영원히 그 지옥 속에 머무리게 된다면 이승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만약 신이 내게 은혜를 배풀어 나를 당신의 종들 중 하나로 선택하거나 내가 천국의 희락을 누릴 만한 선행을 쌓게 하신다면 세상의 어떤 즐거움도 그 행운, 그 즐거움, 그 영광에 비길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소. 행운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불행에 빠질 것인지 하는 이런 중대한 문제가 다 나의 행실에 달렸으니, 내 처지와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그대가 알고 있는 최고의 조언을 해주기를 부탁하는 바요. 내 죄를 회개하고 신의 은총을 받을 방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오." 빠뜨로니오가 말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의 말씀을 들으니 대단히 기쁘군요. 특히 백작님께서 처한 상황에 따라 조언을 해달라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다른 방식으로 조언을 부탁하셨더라면 일전에 말씀드린 왕과 그 측근의 이야기처럼 나를 시험하시는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외에도 대단히 기쁜 것은 백작님께서 그 왕처럼 백작님의 나라와 명망을 버리시지 않은 채 신께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 싶어하시니 더욱 그러합니다. 만약 백작님께서 백작님의 나라를 버리고 물러나버리신다면 백작님에 대한 평판이 대단히 나빠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백작님께서 분별력이 없어서 자기들처럼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을 싫어한 탓이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들려드릴 얘기를 신께서 어떤 고매한 은자 앞에 나타나셔서 그와 영국의 왕 리차드에게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이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은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선을 행하며 훌륭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은총을 얻기 위해 힘든 고행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정성이 그렇게 지극했으므로 신께서 그에게 천국의 영관을 누리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은자는 신께 감사를 드리고는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고 생각하고 천국에서 누가 자기의 동료가 될 것인지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신께서는 천사 한 명을 보내서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잘하는 짓이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자꾸만 간청하자 신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천사를 보내 천국에서 그의 동료가 될 사람은 영국의 왕 리차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은자는 그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리차드 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왕은 엄청난 싸움꾼에다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하면서 그들의 대를 끊어놓은 자였습니다. 은자는 그 왕이 언제나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지켜보아온 탓에 구원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여겨왔으므로 대단히 기분이 상해 있었습니다. 신께서는 다시 천사를 보내어 은자에게 그 사실에 대해 놀라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라고 전했습니다. 리차드 왕은 한번의 싸움을 통해 은자가 평생 쌓아온 선행에 의한 것보다도 신을 잘 섬겼으며, 따라서 은자보다 더 많은 은총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은자는 깜짝 놀라서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프랑스 왕과 영국 왕 그리고 나바라의 왕이 울트라마르 지방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항구에 도착한 그들은 모두들 무기를 챙긴 후 배에서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엄청난 수의 아랍인이 해안에 모여서 그들이 배에서 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왕이 영국의 왕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 배로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을 하자고 청했습니다. 말을 타고 있던 영국 왕은 이 말을 듣고 프랑스 왕의 사신을 불러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살 만한 짓을 여러 차례 저지렀으며 그 외에도 이 세상에서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온몸을 바쳐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빌어왔는데 신의 은총으로 마침내 그렇게도 원하던 그날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죽는다면 자신이 고국을 떠나기 전에 그렇게도 빌어왔던 참회를 하는 셈이 되어 신께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실 것이요 자기가 만약 아랍인들을 쳐부순다면 신은 그것을 대단한 선행으로 여겨주실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모험을 감행해 볼 생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영국 왕은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신의 뜻에 맡기고 가호를 빌면서 부하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해변에 있는 아랍인들을 향해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비록 항구에서 가까운 곳이긴 했지만 바다는 그다지 얕지가 않아서 왕과 왕의 말은 물 밑으로 가라앉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그가 '신이시여, 당신은 이 죄인의 죽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살아남기를 원하십니다'라고 기도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그를 구해서 육신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물에서 빠져나와 아랍인들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영국 병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왕의 뒤를 따라 모두 바다로 뛰어들어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프랑스 병사들도 용기를 얻고 바다로 뛰어들어 모로족을 공격했습니다. 모로족들은 그들이 죽음도 무릅쓴 체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돌격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구 뒤편으로 물러나더니 급기야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육지에 도착하자 닥치는 대로 아랍인들을 무찔렀습니다. 이 일이 바로 영국 왕 리차드가 전쟁을 통해서 쌓은 선행이었습니다. 은자는 이 말을 듣고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루까노르 백작님. 만약 백작님의 죄를 참회하고 싶으시다면 백작님이 조그마한 해라도 입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십시오. 백작님은 백작님의 죄를 회개하셨으니 차후라도 이승의 헛된 영화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익을 따져 행동하라고 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는 반드시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지, 결말이 어떨지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따져본 연후에 믿으셔야 합니다. 루까노르 백작님, 백작님께서는 자신의 잘못들을 회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헛된 영화는 쫓지는 마십시오. 신께서 백작님께 이 땅을 주셨으니 백작님은 이 땅에 살면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그날까지 바다와 육지에서 아랍인들과 싸우는 것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백작님께서는 훌륭한 삶을 사시는 것이옵니다. 이것이 바로 백작님의 영혼을 구원하고 나라를 보전하는 최고의 방법이며 명예를 지키는 길입니다. 신을 섬기기 위해서는 일찍 돌아가셔서도 안 되고 백작님의 영토를 떠나셔도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그렇게 신을 섬기다가 돌아가신다면 백작님은 순교자가 될 것이요 행복한 생을 누리신 분이 될 것입니다. 비록 전쟁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백작님의 그 뜻과 선행만으로도 충분한 순교자가 되셔서 설령 사람들이 백작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싶더라도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백작님이 나쁜 악마의 꾐에 빠져 허황된 속세의 광명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신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조금도 태만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제게 조언을 청하신 바대로 백작님의 처지에 가장 적합하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 이제 저는 백작님이 청하신 조언을 해드렸습니다. 백작님의 처지에 알맞으면서도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추천하건대 그 싸움에서 영국 왕 리차드가 했던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행동하셔서 훌륭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 신의 종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특정 교단에 들어가거나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영국의 왕이 보여준 행동이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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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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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 - 박현
1. 출발점을 잃어버린 역사 - (우리 겨레가 작아지게 된 첫 출발점)
겨레의 뿌리
우리 겨레의 혈통적 뿌리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가지 학술적 견해가 제시되었다. 예컨대 어떤 이는 고아시아족(Paleo-Asiatics)의 후예라고 했으며, 어떤 이는 알타이족의 한 갈래라 말했고, 다른 어떤 이는 스키토 시베리안(Scytho-Siberian)의 한 갈래라고 주장했다. 물론 옛 문헌에 따라 예족이나 맥족 또는 예맥족 등으로 겨레의 뿌리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지만유감스럽게도 확정된 견해는 아직 없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교통혁명의 혜택을 누렸던 기마종족이라는 점이다. 겨레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 혼란은 우리 민족 자체가 한 갈래의 종족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유사한 종족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말해준다. 즉 여러 종족들이 오랫동안 어우러져 살다가 마침내 하나의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말이다. 작은 연맹을 맺고 있던 여러 기마종족들이 점차 큰 연맹관계 속으로 얽혀들면서 기마종족 대연맹을 이루어낸 과정이 있었다면, 이와 아울러 그 대연맹이 분열되는 과정도 있었다. 고조선의 형성과 붕괴는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처럼 고대세계의 기마종족들은 이런저런 여건에 따라 연맹과 분열이라는 두 과정을 거듭했다. 이런 분열과정, 특히 고조선의 붕괴과정에서 일부 종족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생활무대를 찾아나섰고, 그 과정에서 선택된 주요한 개척지가 바로 만주벌판과한반도였다. 그리고 이 개척지를 찾아온 기마종족은 한 갈래만이 아니었으며, 바로 이들이 공존과 갈등, 발전과 도태 등을 반복하면서 마침내 이 땅에서 하나의 새로운 종족으로 융합되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겨레의 뿌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은 융합을 통해 단일화된 이후의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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