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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41 호
단기 4340. 8. 13 (음력 7. 0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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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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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광명시 전국 신인문학상 작품모집
1. 종목 및 분량 - 시 : 2편 (서정시) -수필 : 1편 (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 -단편소설 : 1편 (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희곡 : 1편 ( 200자 원고지 80매 내외)
2. 자격 - 20세이상 일반인(대학생 포함)으로 각종 문예지에 등단하지 않은 신인
3. 요령 - 원고지(또는 PC)에는 제목 이외에는 일체 기재하지 말 것 - 봉투에 제목, 주소, 성명, 전화번호, 기타 참고사항을 기재할 것 - 각종 잡지, 문예지, 기관지 등에 게재하지 않은 작품이어야 하며 시상후에라도 발견시 시상을 취소하고 상금은 회수합니다.
4. 응모일시 및 심사방법 - 2007년 7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원고 마감합니다 - 심사는 광명문인협회에서 추천한 저명한 기성문인들이 합니다 - 제출된 원고는 일체 반환치 않습니다
5. 시상내역 - 최우수상 : 1명 상금 및 상패 (장르에 관계없음) - 우수상 : 4명 상금 및 상패 (장르에 관계없음) - 장려상 : 5명 상금 및 상패 (장르에 관계없음)
6. 보낼 곳 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 222-1 시민회관 2층 예총사무실 내 한국문인협회 광명지부 전화: 02-2680-6229 (예총사무실) 016-448-9909 (문협 지부장) 011-9980-5600 (문협부지부장). kinlove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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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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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란 구두가 온통 진창에 푹푹 빠지더라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샘솟는 계절. / 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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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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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2. 율곡 이이
기둥을 바로 세우라
학문을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워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라. 털끝만큼이라도 스스로를 작게 여겨 물러서려는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본디 보통 사람과 성인의 그 본성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탁하고 순수하고 사나운 면이 없지 않겠으나, 진실로 참답게 알고 실천하여 나쁜 관습을 버리고 그 본성을 회복한다면, 온갖 착함이 고루 갖춰지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이라도 어찌 성인이 될 수 없을 것인가. 맹자가 성선설(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욕심으로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고 함)을 주장하여 말끝마다 요순(덕으로 태평성대를 다스림 중국고대의 요임금과 순임금)을 들어 '사람은 다 요순이 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우리도 그렇게 되지 못하겠는가.
항상 스스로 분발하라. 인간은 본래 착하여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구별이 없는 법, 성인은 어찌하여 성인으로 태어나고 보통 사람은 어찌하여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인가. 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밝게 알지 못하며 행동이 성실치 못한 까닭이다. 뜻을 세우고 밝게 알며, 행동이 착실할 것은 모두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말하기를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이냐. 마음만 먹으며 다 그렇게 된다' 하였으니, 나도 안연이 순임금을 바란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야겠다. 사람은 용모가 추한 것을 곱게 할 수 없다. 본래 체력이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가 짧은 것을 길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라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마음의 본 바탕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고 어질게 고칠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신령스러움이 타고난 분수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진 생각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괴로워서 어질고 지혜로움을 좇지 않으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왜 손상시킬 것인가. 사람이 이런 뜻을 간직하고 굳게 지켜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들이 스스로 입지(큰 뜻을 세우다)하였다고 말하면서도 그 뜻에 맞게힘쓰지 않고 방황하며 막연히 기다리는데 그것은 말로만 입지를 내세울 뿐, 실제로 배움의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나의 뜻이 참다운 배움에 있다면 어진 뜻을 행동으로 실천하라. 그렇게 하려고 들면 그렇게 되고야 만다. 그런데 어찌 남에게서 그것을 찾고 어찌 훗일만을 기다릴 것인가. 뜻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즉시 공부를 시작하되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려는 배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뜻을 따르지 못한 채 그럭저럭 날을 보낸다면 나이가 다하여 죽도록 어찌 그 뜻을 성취할 수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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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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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논쟁별로 본 한국 철학
1. 교선 논쟁
1. 교종과 선종의 대립 상황
후기신라 말기 선종이 본격적으로 수입되면서 한국 불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선종은 기존 교종의 주류를 이루던 화엄종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고, 반대로 화엄종은 선종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충격을 받고 크게 위축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불교 교단은 아직 종파를 형성할 정도는 아니었다. 화엄종은 선종은 대립하면서 공존하는 상황이었고, 이러한 대립조차도 불교 내적인 이유보다는 화엄종을 받아들이던 왕실측과 선종을 이데올로기로 삼은 지방 호족이라는 정치 세력간의 다툼으로 말미암은 측면이 더 강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은 고려의 건국 후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고려 초 중기부터 불교 내에 종파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교, 선의 대립은 훨씬 격화되어 갔으며, 이에 따라 각각 상대를 비판하기 위한 고도의 논리를 계발해 나갔다. 선종이 교종을 비판하던 초기 양상은 주로 선, 교 사이의 고하와 동이에 관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선종은 자기들이 말하는 수증의 세계가 화엄에서 말하는 내증의 세계, 즉 해인삼매보다 한 차원 더 높다고 주장하여 선종의 우위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일종의 헤게모니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기신라의 화엄 사상은 징관의 선교일치론적 화엄 사상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화엄의 선은 석가의 경전에 근거하는 여래선인 데 반해, 선종의 선은 언어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교 밖의 특별한 전통인 조사선이었다. 선종은 조사선의 입장에서 화엄에 포함되어 있는 선적인 요소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상과 같은 선종의 비판에서 영향을 받아 많은 화엄 승려들이 선종으로 전향되었고, 또 화엄 사원이 선종 사원으로 바뀌었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의 제1조에 교, 선간의 사원 쟁탈을 금하는 조항이 있을 정도였으니만큼, 이 당시 교, 선간의 사원 쟁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선종의 비판에 맞선 화엄종의 일차적 반응은 결사를 통한 자체 반성으로 나타났다. 9세기 말 경에 화엄 결사가 성행하였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선종의 비판에 대한 위기 의식의 표현이라 하겠다. 화엄에 대한 선종의 격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종이 본격 수입되는 신라 헌덕왕 이후부터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200년 동안은 교선이 병립하는 형세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비록 선종이 교종의 한계를 비판하고는 있었지만, 그 근본을 부정하는 데까지 이른 것은 아니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와 아울러 왕실에서 교종과 선종을 융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교종은 석가의 일반적 가르침인 경전의 언어문자를 분석하고 본체와 현상을 분별해서 보는 이론 불교였던 데 반해, 선종은 언어문자를 배격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좌선의 실천을 통해 사람들의 본래 성품이 아무런 차별이나 분별도 없는 부처 자체임을 직관하는 실천 불교요 수행 불교였다. 선은 "언어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교 밖에 따로 전하며, 인간의 마음을 직접 가리켜서, 본래의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것을 요체로 하는 것이다. 이로써 선종은 교종과 직접 대립하게 되었고, 더욱이 선사들 대부분은 선, 교 양립적 교판관을 가지고 있었다.
선종은 화엄의 지나친 이론주의적 경향을 비판하였다. 원래 해동 화엄종의 비조인 의상의 화엄 사상은 실천적인 신앙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런데도 이것이 점차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까닭은, 중국 화엄에서 온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는 후기신라에서 크게 유행한 또 하나의 불교, 즉 신유식 계열의 법상종으로부터 받은 영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이와 같은 교종의 이론화 경향은 신라 하대로 갈수록 더 심해져 관념화되기에 이르렀고, 이에 불교의 진면목을 찾으려는 자각이 일어나면서 선종이 대두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교종과 선종은 모두 '열반'(해탈, 즉 깨달음)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최고 깨달음의 내용과 그 수위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였다. 또 열반에 이르는 길(수단)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도 하나는 이론 중심에서 찾았고, 다른 하나는 수행 중심에서 찾았다는 차이가 있다.
이상과 같은 교, 선의 대립은 고려 불교가 안은 최대의 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나 이 과제를 풀어 가는 방식에서도 역사적으로 실천을 이론에 종속시키려는 교주선종의 경향과, 실천을 중시하고 이론을 부차적으로 보려는 선주교종의 경향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다. 이것은 교, 선 대립의 극복이 동일한 차원에서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 가치의 문제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신라 시대에는 화엄, 유식, 반야, 정토 등 대승 불교 전반이 신앙되고 연구되었으며, 하대에 선종이 들어와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런 반면 고려 시대에는 교종과 선종이 공존하면서 대립을 격화시켜 나가다가 결국에는 유학자들에게 배불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런가 하면 조선 시대는 국가 권력에 의해 정책적으로 교종과 선종이 통폐합되어 초종파적인 종합 불교의 양상을 띠었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불교는 비록 종파의 갈등은 없었으나, 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는 데서 오는 갈등, 다시 말해 선과 교의 기본적 차이가 무엇이며, 선과 교를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결과 선사가 직접 경을 주석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함허 기화와 설잠 김시습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는 고려의 지눌과 보우의 선교일원론이나 선교원융 사상에서 받은 영향이었다. 이것은 뒤에 휴정의 선교회통설로 발전하여 사실상 선종으로의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백파 긍선의 의리선, 여래선, 조사선이라는 3종선론과 초의 의순의 조사선, 여래선 또는 격외선, 의리선이라는 2종선론 사이의 논쟁은 조선 불교 최대의 논쟁이었다. 현대의 한국 불교는 여전히 선종이 중심이 되어 돈오점수 논쟁을 재연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 불교사의 문제 의식은 거의 전적으로 고려 불교가 안았던 교선 논쟁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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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본뜻 : 돈을 취급하는 주요 기관인 은행의 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기 문화 이후화폐의 대중을 이루던 것은 은이었다 이 때문에 은본위 제도가 널리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은 자체가 화폐와 동일시되었다. 그래서 돈을 다루는 기관을 돈행이라 하지 않고 은행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돈을 가리키는 말인 은 뒤에 왜 갈 행이라는 글자가 붙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행은 예로부터 두 가지 뜻과 두 가지 발음으로 쓰였는데, 직접 이리저리 다닌다는 뜻의 '다닐 행'과, 길 양쪽을 따라 쭉 늘어서 있는 가게들을 가리키는 '차례 항' '항렬 항'으로 쓰인 것이 그것이다. 중국에서도 쓰기는 은행이라 쓰고, 가게를 나타내는 뜻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은항'으로 읽는다. 청조 말엽에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에서 재정 개혁을 부르짖는 표어가 "은행을 부흥시키자"였는데 이것이 바로 '은행'이란 단어가 처음 쓰이게 된 기원이다. 이 말이 그대로 우리 나라와 일본에 흘러 들어와 쓰이게 된 것이다.
바뀐 뜻 : 신용을 기초로 돈은 맡거나 빌려줘서 자본의 수요와 공급의 매개 구실을 하는 공식적이고 대표적인 금융기관을 가리킨다.
"보기글"
-성경에 나오는 환전상이 별 건 줄 아니? 요새로 말하면 은행 출장소 같은 거지 뭐 -은행 업무가 24시간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자문
본뜻 : 원래 이 말은 '아랫사람에게 묻는다' 또는 '하급관청에 묻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 말과 짝을 이루는 말이 '답신'이다.
바뀐 뜻 : 오늘날에 와서는 전문가나 또는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권위 있는 기관이나 단체에 의견을 묻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문은 아랫사람이나 하급 행정기관에 물을 때 쓰는 말이다. 굳이 윗사람을 공대하는 뜻으로 자문이란 말을 쓰고 싶으면 고문이란 말을 쓰면 된다.
"보기글" -대통령은 국정자문위원회에 통일에 관한 자문을 했다 -국무총리는 환경처에 환경 운동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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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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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음지에서 일하며 권력을 지향한다 - 마피아
낭만적 악당 벅시와 비즈니스맨 랜스키
본명이 벤저민 시걸(Benjamin `Bugsy` Siegel, 1906~1947)인 벅시 시걸은 거칠고 무분별한 깡패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경멸의 의미가 담긴 벌레(bug)의 변화형이다. 1937년 그는 러키 루치아노와 마이어 랜스키의 지시에 따라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서부 지역의 경쟁 세력을 제압하고 도박시장과 암거래망을 장악하는 것이 벅시의 임무였다. 그런데 벅시는 돌출행위로 동부의 보스들을 불안하게 한다. 신분 노출의 위험에 아랑곳없이 유명인 행세를 하고 다녔으며 몇몇 연예인과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벅시는 포악하기는 했지만 낭만적인 호사가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북부의 황량한 사막에 플라밍고 호텔을 세우기로 결심하고 이 황당한 사업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꿈은 실현되고, 벅시가 지은 호텔은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의 기원이 되었다. 하지만 건축비가 애초의 예산 150만 달러를 넘어서 600만 달러에 이르렀고 완공 직후에 호텔의 영업 실적은 기대 이하였다. 게다가 벅시의 연인 버지니아 힐이 조직의 자금을 유용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자 랜스키와 루치아노는 우정보다는 조직의 보존을 택한다. 벅시는 1947년 비벌리 힐스 자택에서 살해되었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랜스키(Meyer Lansky, 1902~1983)는 돈벌이와 조직 관리에 능란한 비즈니스맨이었다. 1902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그는 4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거부이자 막강한 악당으로 성장하였고, 1983년 마이애미에서 폐암으로 사망한다. 루치아노에게 마피아의 전국적인 신디케이트 결성을 제안한 사람이 바로 마이어 랜스키이다. 그리고 렌스키는 루치아노의 투옥 기간 동안 조직을 유지했으며 그의 석방에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조직에 해를 미칠 경우에는 죽마고우인 벅시마저 살해할 만큼 랜스키는 비정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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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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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6. 일하는 여성에게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
위인의 부류에 들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낙오자가 되고 싶다고 시인 존 키츠는 편지에 쓰고 있다. 키츠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키츠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키츠는 후에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 위대해지든지 낙오되든지 어느 한쪽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극단적이지만 어쨌든 키츠는 운이 좋았다. 실패는 분명 불유쾌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실패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어떤 일이나 타인과의 교제를 하려 하지 않고 단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려고 한다. 실패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그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패하면 스스로 자신에게 낙오자의 꼬리표를 붙이는 여성이 있다. 나는 실패했다. 그러므로 낙오자다 라고 그녀들은 말한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실패담이 뒤 따르게 마련이다. 실업, 파산 경영의 어려움등... 하지만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일 없이 그것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그런데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 실패에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린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대부분 노력 또한 하지 않는다. 뭔가를 해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면 성공도 없지만 실패할 염려도 없다.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 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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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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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4대에 걸쳐 정려문이 여섯 번이나 세워진 정성근
정성근(?-1504)의 본관은 진주이고, 자는 군부이다. 성종 5년(147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부모가 돌아가시자 무덤 근처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마쳤으며 몸이 야윌 정도로 슬퍼하였다. 또 성종의 상을 당하여서는 상기가 끝난 뒤에도 슬퍼서 마음으로 상복을 입는 심상삼년을 입으니, 사람들이 모두 충효를 모두 갖추었다고 칭송하였다.
승지로 있을 적에 강직하여 뜻을 굽히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사명을 받들고 대마도에 들어가자, 대마도주가 그림, 부채, 호초, 향조각 따위를 예물로 바쳤다. 정성근은 일행이 대마도주에게 받은 것을 다 거두어서 한 그릇에 봉해 두었다가 귀국할 때에 접대하던 왜관 편으로 그 물건들을 도주에게 돌려보냈다. 이에 대마도주가 그 물건을 우리 나라 임금에게 보내어 정성근에게 주도록 청하였다. 임금이 대마도주의 청을 들어주려 하니, 정성근은 극구 사양하였다.
"신이 저 대마도에 있을 적에 받지 않다가 이곳 우리나라에 와서 받으면 전후 마음이 다른 것이니 참으로 원치 않습니다"
주상은 정성근에게 억지로 권할 수 없어 도로 대마도로 보냈다. 그의 청백함은 대체로 이와 같았다. 성종이 승하하자 정성근이 삼년상을 행하였는데, 연산군이 갑자사화 때에 괴이한 행동을 한다 하여 그를 죽여 버렸다. 아들 주신. 매신 및 매신의 아들 원린, 원기, 원린의 아들 효성이 모두 효행으로 이름나 정려문이 여섯 번이나 세워졌다. 이는 옛날에도 없었던 바이므로 세상에서 정씨 가문을 '효문'이라 하였다. 이안눌의 시에,
한 가문에 충신 효자 여섯 정려문이네 라는 것이 바로 이를 두고 읊은 것이다. 벼슬이 직제학에 이르고, 중종반정 뒤에 이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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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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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옛부터 노래나 시에 수없이 등장한 이 글귀는 희랍의 의성 '히포크라테스' (BC460생)의 말로써 그의 '잠언집' 첫머리에 나온다. 흔히 "예술가의 인생은 짧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오랜 생명을 지닌다"는 뜻으로 사용되나 '히포크라테스'의 경우 '기술' 특히 '의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람의 일생은 극히 짧은데 의술을 닦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니 이에 종사하려는 자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의 가르침이었다. '히포크라테스'가 살았던 다도해 중의 작은 섬 '코스'는 옛날부터 의료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으며 특히 '히포크라테스'는 뛰어난 의술로 일세에 명성을 떨렸다. 그가 제자들을 위해 지은 소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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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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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내 이름을 걸고
닛다 요시사다가 하코네 전투에서 아시카가에게 패하고 교토로 퇴각할 때의 일이다. 덴류가와를 다 건너자 군사들이 조금이라도 적의추격을 늦추기 위해 다리를 끊으려고 했다.
"잠깐!"
요시사다가 황급하게 그것을 막았다.
"패군인 우리가 건널 정도의 강이라면 다리를 끊는다 해도 기세가 오른 아시카가 군대가 건너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요시사다가 다리를 끊고 허둥지둥 도망쳤다는 말을 들었다가는 후세에까지 수치스럽게 될 것이다. 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일부러 그 고장 사람에게 다리를 온전하게 지키도록 한 다음 퇴각했다. 요시사다를 추격해 온 아시카가 군대는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탄했다.
"과연 무사 집안에 태어난 자답다."
그 순간에만 편리하다면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어쩌든 나중에 주변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든 알 바 아니라는 억척스러운 생각이 새로운 사고 방식인 양 당당하게 횡행하는 현실에 가끔 아연해지곤 한다. '이름을 중시한다'고 하는 것이 무사도나 기사도의 핵심적인 정신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명예는 어떻게 되는 순간순간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이기적인 일 처리를 하다 보면 어느덧 비열한 겁쟁이가 된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중시한다'는 것은 성실한 인간성을 지켜 간다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이런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야 할 정도로 세상에서 지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일화가 빛을 발하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인간의 진실한 생활 태도는 뜻밖에도 낡았다고 외면 받는 것 속에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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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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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 후안 마누엘
열세번째 이야기 홍등가에 들어간 철학자
어느날 루까노르 백작이 빠뜨로니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뜨로니오, 세상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도 알 것입니다. 항상 그랬듯이 나에게 당신보다 더 좋은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명성을 유지하고 키울 또 다른 방법이 없겠는지 말해주시겠소?" "백작님께서 저에게 충고를 부탁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경우 어느 늙은 철학자가 겪은 이야기를 아시면 저를 더 믿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모로코 왕국의 어느 도시에 위대한 철학자 하나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심한 변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배설을 미루지 말고, 필요할 때마다 배설하라고 충고했습니다. 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 도시의 어느 거리를 지나던날, 이 늙은 철학자는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의사들이 충고한 대로 바로 일을 치르기 위해 그는 어느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 일로 인해 그 철학자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엔 거리에서 육체를 팔며 사는 여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그곳에 그런 여자들이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변비환자인지라 대변을 보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고 기분좋은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나오자, 사람들은 평소 안 그렇게 보이던 그 철학자가 홍등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나쁜 일은 입에서 입으로 와전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어떤 중요한 인물이 그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비록 그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나쁜 일을 저지른 것보다 더 비판하는 법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존경받는 노스승이 자신의 영혼은 물론 육체와 명성에 금이 가게 하는 그런 곳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철학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제자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승에게 그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잘못에 대해 말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은 사람들로 여기게 될 것이며 애써 지켜왔던 명예도 다 무너졌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는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도대체 자신이 어디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온 도시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반문할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노스승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제자들에게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말도록 요청했고, 그날부터 8일째 되는 날까지 해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서재에 칩거해서 매우 유용하고 좋은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 책을 제자들을 등장시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썼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불행과 행복이 찾아오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느니라. 우선 행복의 경우 그것은 추구해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연히 얻어질 수도 있다. 불행도 마찬가지로 화를 자초해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연찮게 당할 수도 있다. 열심히 선행을 하면 그로 인해 행복이 찾아오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불행이 닥친다. 이것이 스스로 만든 행복과 불행인데, 다시 말해 선행과 악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행복과 불행인 것이다. 또 행복을 추구하진 않았지만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이익을 얻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돈이 가득 든 지갑을 줍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불행의 경우는,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새에게 던진 돌이 머리 위로 떨어져 다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은 모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노력이나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가오는 행운과 불행이다. 더불어 자네들이 추구한 행복과 자초한 불행에 있어서 항상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잇다. 그것은 선행은 좋은 결과를, 악행은 나쁜 경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또 우연히 얻은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도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나쁜 일을 행하거나 의심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더라도 그 일이 불행을 초래하거나 불명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는 우연히 겪은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그날 건강상의 이유로 그 골목 안으로 들어갔을 뿐 나쁜 평판을 만들어낼 만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곳에 거리의 여자들이 산다는 이유로 나를 헐뜯어 내 명예가 실추된 것이다.
"백작님, 백작님께서 명성을 드높여 유지하기 원하시면 세 가지 일에 애쓰셔야 합니다. 첫째, 항상 좋은 일을 하십시오. 백작님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면서 가능한 한 이웃들에게도 선행을 베푸십시오. 그러나 만약 선행을 베풀지 않거나 나쁜 일을 하면 명성을 잃게 됩니다. 비록 어느 한순간 좋은 일을 했더라도 그것이 계속되지 못하면, 그간 얻었던 모든 것을 잃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둘째, 지금 백작님께서 누리고 계신 명성을 확실히 유지할 수 있도록 그 명성에 해가 될만한 언행이나 사람들의 의심을 살 만한 어떠한 행동도 삼가십시오. 셋째, 자주 좋은 일을 하되 보이기 위해 일부러 행동하지는 마십시오. 오직 백작님의 영혼을 위해 선행을 실천하십시오."
* 항상 착한 일을 하라. 그리고 변함없이 좋은 명성을 유지하려면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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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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