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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39 호
단기 4340. 8. 10 (음력 6. 28)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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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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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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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하려고 벼르는 사람은 입는 상처의 치료를않는 법. / 프란시스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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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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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힘이 세어지는 법
하늘은 날짐승과 길짐승에게 발톱을 주고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과 예리한 이빨을 주었다. 여러 가지 독도 주어서 각기 하고 싶어하는 것을 얻게 하고 사람으로 인해 염려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하였는데, 사람에게는 벌거숭이로 유약하여 제 생명도 구하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어찌 하늘은 천한 짐승한테는 후하게 대접하고 귀해야 할 인간에게는 박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인간에겐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궁리가 있으므로 기예를 익혀서 제 힘으로 살아가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혜로움도 한계가 있고 교묘한 궁리로 깊이 파는 것도 차례가 있다. 그런 까닭에 비록 성인이라도 천 사람과 만 사람들이 함께 논의한 것에는 결코 당해 내지 못하며, 비록 성인이라도 하루아침에 결코 모두를 아름답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 기예는 더욱 정묘하고, 세대를 더 내려오면 그 기예는 더욱 교묘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골 사람이 읍에 있는 기술자의 솜씨와 같지 못하고, 읍 사람이 유명한성터나 큰 도시의 기교와 같지 못하며, 유명한 성터나 큰 도시의 사람이 서울에 있는 새 방식이나 묘한 기술과는 같지 못하다. 저 궁벽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자가 서울에 왔다가 완전하지 못한 방법을 우연히 듣고 기쁘게 돌아가 아는 체하며 스스로 만족하여 말하기를 '천하에 이 방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 자손에게 경계하기를 '서울기예라는 것은 내가 모두 배웠으니, 이로부터는 서울에서도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다' 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의 행동거지는 거칠고 나쁘지 않은 자가 없다. 농사짓는 기술이 좋으면 차지한 땅은 적어도 곡식 소출이 많으며, 그 힘들인 것은 가벼워도 곡식은 좋고 충실할 것이다. 무릇 황무지를 일구어서 갈고 씨뿌리고 가꾸며 낫질하고 벗기는 것은 물론 키질하고 방아찧고, 반죽하고, 밥짓는 일까지 모두 편리하도록 하여 그 노력을 덜어야 한다. 베짜는 기술이 정교하면 드는 물자는 적어도 실은 많이 남고, 힘은 적게 들여도 베는 올이 배고 결이 고울 것이다. 무릇 물에 담가서 씻고 실을 뽑고 베를 짜고, 표백하여 채색으로 물들이고 풀 먹이고 바느질하는 일까지 모두 편리하도록 하여 그 노력을 덜게 되는 것이다. 군사 기술이 정교하면 공격하고 방어하는 것과, 군량을 운반하고 성벽 따위를 수축하는 일에 그 속도를 더하여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의원이 의술이 정교하면 무릇 맥을 짚어서 증세를 살피고 약의 성질을 분별하며, 옛날 사람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그릇됨을 공박할 수 있다. 기능공의 기술이 정교하면 무릇 궁실과 기구를 제조하고 성곽과 배, 수레, 가마 따위 제도까지도 모두 편리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니, 진실로 그 방법을 다 알아서 힘껏 시행한다면 나라는 부유해지고 군사는 강성해지고 백성도 부유하면서 오래 살터인데 당장 눈여겨보면서도 도모하지 않는구나. 수레를 사용하는 데 대해 말할라치면,
"우리나라는 산천이 험악하여 이용할 수가 없다" 하며, 양치기에 대해서 말할라치면, "조선에는 양이 없다" 하며, 말은 죽을 쑤어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말할라치면, "풍토가 각각 다르다" 하는 바, 이같은 자를 난들 또한 어찌하랴.
모름지기 효도와 우애는 타고난 성품에 근거하고, 성현의 글에도 밝혀져 있듯이 진실로 넓혀서 충실하게 닦아 밝히면 이 예의가 풍속을 이루게 될 터인즉, 이는 진실로 외부의 것을 기다릴 것이 없으며, 또한 후세에 오는 사람에게 의뢰할 것도 없다. 그러나 백성이 사용하는 기구를 쓰임에 편리하게 하고 삶을 넉넉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온갖 기능은 뒤에 나오는 제도를 배우지 않으면 결코 어리석고 고루한 것을 깨뜨리거나 이익을 일으킬 수가 없다. 이것은 나랏일을 도모하는 자가 마땅히 강구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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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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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 시대별로 본 한국 철학
5. 현대의 사상/해방 이후-현재
4. 북한의 주체 철학
과도기의 주체 사상
사회주의 북한의 역사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시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부까지이다. 1950년대 이래 진행되어 온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결과, 이 시기 동안 지도 사상과 권력 구조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주체 사상이 당의 지도 사상으로 분명하게 천명되었고, 이른바 '수령의 유일 영도'가 법적으로 제도화되고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주체 사상은 이 시기 이후 단순히 실천적 지침의 차원을 넘어 세계관적이고 역사 철학적인 차원으로 격상되었고, 레닌주의적 당 운영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 집중제와 집단 지도 체제가 수령의 유일 영도 체계에 흡수 변모되어 버렸다. 주체 사상은 최초로 정식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정확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이론적 지위가 격상되었으며, 마침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세계관'으로까지 주장되었다. 주체 사상은 이처럼 보편화와 체계화 과정을 거친 결과 오늘날의 주체 사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주체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사상으로 규정되었고, 따라서 주체 사상의 적용 범위는 북한 현실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러나 1967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1차 대회에서 주체 사상은 '가장 적확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지도 사상'으로 규정되는 것을 계기로 일국 수준의 지도 사상에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올바른 노선으로 주장되기에 이른다. 이 대회 이후 북한 이론가들은 주체 사상을 진수로 하는 '김일성의 혁명 사상'을 다방면에 걸쳐 확장하고 종합적 체계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북한 이론가들이 경주한 노력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주체 사상의 보편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주체 사상의 보편화란 주체 사상의 적용 범위가 북한이라는 일국적 수준을 넘어 세계 혁명의 전략 노선으로 확장됨으로써 이론적 지위가 상승한 것을 말한다. 주체 사상은 단순히 창조적 적용의 수준이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반영하는 사상이 된 것이다.
주체 사상이 보편화된 시기는 북한 현대사에서 유일 사상 체계 확립을 핵심으로 하는 심각한 상부 구조의 변화가 일어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주체 사상은 김일성 유일 사상 체계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기초로 등장하면서 보편화되었고, 이 점은 1970년대 이후 주체 사상이 전면적으로 체계화되는 과정을 제약하는 이론 형성의 근원적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주체 사상의 보편화에 영향을 미친 대외적 요인으로 특히 중소 분쟁을 들 수 있다. 중소 분쟁은 이념적 측면에서 보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제반 원칙들에서 누가 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념에 충실한가를 놓고 벌인 '가장 정확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경쟁이었다. 1966년 중국의 문화 혁명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중국과 적대 관계에 돌입하고 이념적 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주체 사상의 보편화는 중소 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직접적으로는 문화 혁명 당시 모택동 사상과 이념적 대결을 벌이는 과정에서 더욱더 추진력을 얻었다. 보편화 시기(1968__1972)의 주체 사상은 '현시대의 혁명과 건설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원칙과 입장'으로 규정되느니만큼, 결국 여기에는 철학적 세계관으로서 기능이 부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주체 사상은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보편적 진리를 구현한다고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주체 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관계가 모호하게 남아 있었다. 주체 사상의 이론적 지위가 철학적 세계관 수준으로 격상되면서, 주체 사상의 원리에 대한 철학적 천착은 그 이론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북한 철학자들은 주체 사상을 방법론적 지침으로 삼아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을 새롭게 체계화하는 과제를 부여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문제들과 이론적 대결을 펼쳐야 했다. 1973년 본격화되는 주체 사상의 체계화는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체계 구성과 내용을 갖는다. 주체 사상을 체계화하는 작업에서 핵심은 '주체 철학'의 확립이었다. 1970년에 전개된 주체 철학의 확립 노력은 그 체계화 정도에 따라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기존의 세계관이 갖는 실천적 한계의 근원이 철학적 세계간에 있다는 판단 아래 철학의 근본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 단계이다. 기존 세계관의 한계에 대한 자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진원지였던 소련은 여전히 수정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고 있었고, 중국은 북한이 제일의 공적으로 간주하는 미국과 외교 관계에 돌입하는 등 이러한 중소의 부정적 현실은 김일성 지도부로 하여금 중소의 사상적 기반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대적 제약성'에 대한 인식을 부채질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북한 주민에게 직접적인 호소력을 띠고 실천적인 힘을 이끌어 내는 새로운 철학적 세계관의 필요성이 고조되었다. 그에 따라 객관적 법칙을 강조하는 기존 세계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 실천적 힘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그러나 1970년대 전반기에 경주된 주체 철학의 확립 노력은 철학의 근본 문제만 변화시켰을 뿐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구성 체계와 기본 개념의 흔적을 강하게 남기고 있었다. 이 단계에서 아직까지 인간론이나 사회 역사적 원리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주체 철학은 독자적인 내용과 구성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른바 '사람 위주의 철학적 세계간'을 인간의 본질적 속성에 의해 정당화하고 사회, 역사적 영역에 적용하는 단계이다. 이 두 번째 단계에 이르러 주체 철학의 핵심 주제들이 광범위하게 다루어진다. 첫째 단계에서 주체 철학이 철학의 근본 문제만 변화시킨 채 변증법적 유물론의 체계 구성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 1978년에 들어서면 인간론과 사회, 역사 원리를 포함한 주체 철학의 독자적 내용과 체계가 시도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의식성은 빠진 채 자주성과 창조성이 인간의 본질적 속성으로 제시되거나, 북한 철학자들 사이에 새로운 역사 법칙에 대한 견해가 통일되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간론에 대한 좀더 진전된 규정, 역사 법칙에 대한 논의의 여지 없는 규정은 김정일의 1982년 논문 '주체 사상에 대하여'에서 이루어진다. 여하튼 이러한 주체 철학의 정립 노력이 1970년대 후반에 집중된 데에는, 당내에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한 김정일이 후계자로서 공식화될 시기를 불과 2년 앞두고, 본격적인 체계화를 독려했을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권, 특히 소련을 중심으로 개혁주의 이론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개혁주의적 과장은 철학 부문에도 미쳤는데, 소련 과학아카데미 철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철학의 제문제"지에 대담한 개혁 이론이 발표되고 있었다. 철학 부문에서 제기된 개혁 이론의 중심 주제는 인간론과 역사적 유물론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주의권의 이론적 동향은 주체 철학의 체계화를 촉진시키는 변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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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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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육부
본뜻 : 사람 뱃속에 있는 다섯 가지 내장을 오장이라 하는데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을 가리킨다. 육부는 뱃속에 있는 여섯 가지 기관으로, 담, 위, 대장, 소장, 삼초, 방광을 가리킨다.
바뀐 뜻 : 뱃속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신적인 속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보기글" -그렇게 매일 저녁 폭음을 하다간 오장육부가 남아나질 않겠다 -자식들 때문에 오장육부가 썩어 나는 것 같아요
와중
본뜻 :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물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뀐 뜻 : 소용돌이치는 물의 한가운데처럼 분잡스럽고 떠들썩한 사건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우연히 붉은 벽돌집 옆을 지나가다가 살인 사건의 와중에 휘말리게 되었다 -첫애를 분만하는 와중에 갑자기 남편이 분만실로 뛰어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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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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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음지에서 일하며 권력을 지향한다 - 마피아
미국 마피아의 쇠락
알 카포네와 러키 루치아노는 일개 깡패로 시작하여 마피아 보스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들이 세상의 일부를 지배할 즈음부터 미국 마피아는 또 다른 권력으로 군림해 왔다. 마피아가 사회적으로 권력을 쥐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마피아는 주류 밀매나 매춘.도박 이외의 사업으로 눈을 돌려, 노조를 장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알 카포네 시절 시카고에만도 거대 노조 10여 개가 마피아의 수하에 있었는데, 노조의 파업 위협은 거대 기업들을 움츠러들게 했고 사회 전체에도 효과적인 경고였다. 공식적으로 사업체를 인수하는 방법과 더불어 노조에 대한 통제력을 갖춤으로써 마피아는 미국 경제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덩치가 커지면서 마피아는 공식적인 사회 제도와 화해하는 법도 배운다. 마피아들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매일같이 경찰이나 공무원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들에게 떡값 정도를 쥐여 주는 옛 수법을 포기하고 아예 경찰이나 정부 기관을 일괄 매수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각 기관의 수장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하거나 마피아 커넥션의 일부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정부 조직을 마피아에 우호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마피아와 공직자의 거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빈번했다. 1930년대부터 뉴어크, 시카고, 뉴저지, 보스턴 등의 고위층 공직자들이 마피아와 거래를 나누었다는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러키 루치아노의 정치 권력의 힘은 더욱 놀랍다. 그가 투옥되어 있던 1942년 뉴욕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자 해군 수뇌부가 루치아노에게 호소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은 2차 대전 중에 연합군과 러키 루치아노가 거래를 나누었다고 믿고 있다. 즉 연합군은 시칠리아 침공을 위해 러키 루치아노에게 협력을 구했으며 시칠리아 마피아의 도움으로 연합군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스케일이 방대한 이 설명이 루머에 불과하다 해도 러키 루치아노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피아의 정치적 영향력을 설명할 때 곧잘 거론되는 인물이 에드거 후버이다. FBI의 창설자이자 1972년까지 수십 년간 FBI를 지휘한 그는 마피아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마피아의 악해을 잘 알고 있었는데, 정작 정보 기관인 FBI의 국장 후버는 마피아의 존재조차 부정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후버는 마피아 문제 때문에 케네디 대통령과 심각하게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케네디가 마피아에 대한 수사를 명령했던 것이 두 권력자의 불화의 원인었다는 것이다 도박광이던 에드거 후버가 어떤 형식으로든 마피아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검은 거래를 나누었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마피아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통령이나 FBI의 수장에게까지 미칠 정도였다. 최근 공개된 미국 CIA의 비밀 문서도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 준다. 1962년 미국 정부는 마피아에게 15만 달러를 제공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제게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미국 앞마당에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 카스트로를 제거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간절한 소망이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하필이면 범죄 집단과 손을 잡은 사실은 분명 깨름직하다. 아무튼 이 사례는 마피아의 미국 내 위상을 잘 설명해 준다. 국제적인 이념 전쟁에 동원될 만큼 미국 마피아는 능력과 공신력을 두루 갖춘 집단이었던 것이다.
일상 생활과 국가 경제 및 정치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별개로 하더라도, 모양새에 있어서도 미국 마피아는 권력체를 상당히 닮았다. 마피아들은 전체 미국을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어 점유하고 자율적인 지배권을 행사했는데 이는 국가나 국경을 연상시킨다. 마피아가 있는 지역에서는 법률만큼이나 마피아의 규범도 존중되어야 했고, 세금을 내듯 마피아에게 금품을 제공해야 했다. 그렇게 마피아는 언더 그라운드에 숨어서 좀체 몸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미국을 지배해 왔던 것이다. 이렇듯 숨은 권력 마피아가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시기가 있었기에 알 카포네나 러키 루치아노와 같은 마피아 영웅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 영웅들은 스크린에서도 맹활약하며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살아 있다. 그런데 최근의 마피아 영화에서는 영웅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영화는 서로 배신하거나 외롭게 죽어 가는 마피아 그리고 와해되는 마피아 조직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단순한 영화 유행의 변화에서 연유하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 마피아의 쇠락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추세인 것이다. 뉴욕의 5대 마피아 패밀리의 경우 1970년에 3,000명이던 조직원 수가 현재 1,200명 정도로 줄었다는 객관적 지표만으로도 마피아 쇠락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미국 마피아는 실족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피아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있다. 1990년대 뉴욕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 존 고티가 재판을 받았을 때 미국 사회는 떠들썩했다. 하수인이 오메르타를 깨고 옛 보스 존 고티를 배신했던 것이다. 재판장에서 그는 고티의 죄상을 낱낱이 밝혔고, 고티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많은 연구자들은 미국 마피아가 1970년대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는데,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설명 방식은 사회 규범의 `미국화`를 마피아 쇠락의 원인으로 꼽는다. 충성이나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마피아의 규범이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화에 따라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정이나 연줄 대신에 건조한 계약 관계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마피아의 내부 결속력이 약화된 것이다. 그보다는 좀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있다. 무엇보다 미국사회가 투명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정부가 반마피아 정책을 강도 높게 진행한 것이 마피아 몰락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관리나 경찰이 마피아와 거래하는 일은 쉽지 않고 그래서 마피아는 비즈니스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마피아의 자금 조달원이던 고리 대금업, 강탈, 마약 거래 등을 연방법으로 강하게 제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메르타의 규약을 깨뜨리기 위한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증인 보호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 마피아의 수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1995년 현재 미국 정부는 100명 이상의 마피아 단원을 보호 중이다. 그런데 마피아를 향한 탄압이 없었던 사회나 시기는 없었다. 단순히 외부의 조건이 나빠졌다고 해서 쇠락하고 만다면 마피아답지 않다. 사실 미국 마피아 쇠락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피아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마피아는 1970년대부터 경제력을 상실함으로써, 특히 마약 시장에서 밀려나면서 내공을 잃고 사회적 위상도 심각하게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1970년대부터 아시아 갱들이 북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홍콩에 근거지를 둔 중국계 범죄 단체 삼합회(Triad)의 활약은 눈부신 것이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의 일치를 의미하는 삼합회는 도박, 탈취, 절도 등 전통적인 분야뿐 아니라 미국 내 헤로인 시장에서도 대성공을 거둔다. 헤로인용 아편은 쿤사가 지배했던 동남 아시아의 황금의 삼각 지대에서 생산된다. 애초에는 헤로인의 수입을 미국 마피아가 담당했다. 시칠리아를 거쳐 미국 동부 해안으로 밀반입되는 경로가 일반적이었는데 이제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 아시아 출신인 삼합회가 밀반입에는 더욱 유리하다. 아시아 국가에서 가격 절충을 하거나 거래선을 트는 일이 용이하고 해당 국가의 기관을 매수하는 데도 아시아인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제 헤로인 반입 경로도 바꾸어 놓았다. 헤로인은 삼합회에 의해 미국 서부 해안으로 직접 수송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합회에 의해 거래되는 헤로인의 양은 엄청난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요한 지표는 헤로인의 가격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내 헤로인의 가격은 그램당 500달러인데 이는 10년 전 가격의 4분의 1을 밑도는 수준이다. 공급량이 크게 늘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마피아는 헤로인뿐 아니라 코카인 거래에서도 완전히 밀려났다. 코카인 시장은 미국 내 비합법 단일 시장에서는 최대 규모로서 연간 400억 달러가 오간다. 그런데 대표적인 어깨인 마피아가 이 시장에서는 좀체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출신의 신흥 갱 집단들이 직접 배급을 맡으면서 마피아의 입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범죄 조직들의 거센 도전에 마약 시장은 엄두도 못 내게 된 마피아는 합법적 영역을 통해 활로를 개척하려는 자구책을 동원한다. 하지만 이 역시 범죄 조직의 생리상 쉬운 일은 아니었고, 또 수익성에서도 마약 거래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이는 곧 범죄 조직의 생명줄과도 같은 경제력의 상실을 의미했다. 경제력이 없는 청빈하고 가난한 권력자를 상상하는 일은 힘들다. 마찬가지로 한때 눈부신 위용으로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마피아도 경제력을 상실하면서 정치적 권력까지 잃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덩치를 키워 가는 여러 경제 범죄 집단에 비해서도 왜소해짐에 따라 마피아는 사회적 의미도 상당히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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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서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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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6. 일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일을 발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바른 판단력을 갖고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대개의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몇 가지 일에 손을 대본다. 최근에는 사회에서 자신을 어떻게 키워가면 좋을지 모르고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기 발견 강좌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우선은 그러한 강좌에 참여해 보고 어느 정도의 지침으 얻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또 자기의 나이, 가정에서의 입장, 경제 상태등의 여러 가지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 30대 후반의 어느 여성은 22살에 결혼한 이후로 한번도 일을 한 적이 없었는데, 뒤늦게 법률학교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 그일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무척 고민했습니다. 지금 당장 이야기를 해서 반년 후 학교를 다니게 될 무렵에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도록 해야 할지, 학교가 시작 되기 몇 주일 전에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는 편이 좋을지...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남편의 경제적 원조가 필요하다는 사시이었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남겨준 돈이 조금 있었지만 겨우 1년분 수업료 정도였고.. 어쨌든 나중으로 미루기보다 지금 당장 말해 버리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은 이렇게 나를 비웃었습니다. 속도 위반에 대한 변명조차 할 수 없는 주제에 다른 사람의 변호를 할 수 있겠어? 라고요. 나는 한층 마음을 가다듬어 대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만약 합격을 못하면 분명히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 거예요. 그러면 두 번 다시 이런 말을 꺼내지 않겠어요. 하지만 만일 합격한다면 2년분의 수업료를 내주겠어요? 결국 남편은 승낙해 주었습니다. 덕택에 그 공부가 이제 곧 끝나려고 합니다. 지금 까지 아이들도 남편도 기분 좋게 협력해 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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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폐비 사건에 말려들지 않은 허종
허종(1434-1494)의 본관은 양천이고, 자는 종경, 호는 상우당이다. 세조 3년(1457)에 문과에 급제하고 동왕 13년에 북병사로서 이시애를 토벌하여 적개공신 일등에 책록되었다. 그때 나이 34세였다. 소싯적에 벗과 같이 산중의 절에 기숙하며 글을 읽었는데, 밤에 도둑이 들어 옷과 신발을 훔쳐 가 버렸다. 도둑맞은 사실을 알고, 사람들은 모두 애를 태우며 한탄을 하는데 허종은 태연히 붓을 가져다가 벽에다 이렇게 적었다.
이미 내 옷을 훔쳐 갔으면 내 신은 훔쳐 가지 말아야 할 것이지, 옷도 가져가고 또 신발마저 훔쳐 가니 이는 도선생의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것을 보고 식자들은 그의 도량에 감복하였다. 2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4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그때 가뭄이 심하여 조야가 비를 애타게 기다렸다. 방방(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합격증서를 주는 일)을 하는 날 갑과 1등을 부르자마자 비가 쏟아지니 그때 모두 '상나라 장마비처럼 태평성대가 올 징조'라고들 하였다. 하루는 임금이 그의 지조를 시험해 보기 위해 갑자기 대로하여 시신에게 머리를 꺼둘러 끌어내리게 하고 칼을 가져다가 무릎 위에 가로 걸쳐놓고 당대의 역사 최적에게 명령하였다.
"내가 이 칼을 뽑는데 갑에서 다 나오거든 곧바로 그의 목을 베어 버려라"
날카로운 칼날의 끄트머리가 나오자 이를 본 시자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런데도 허종은 두려워하지 않고 묻는 대로 대답하는데 말소리가 또록또록 하고 힘찼다. 세조가 참된 장사라고 칭찬하며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하고 술을 마시게 하였다. 허종은 천천히 술상 앞에 나아가서 술을 마시고 물러났는데 그 태도가 참으로 안온하였다. 성종 5년에 공혜왕후 한씨(한명회의 딸)가 승하하고 후궁인 윤씨가 원자를 낳자, 윤씨를 책립하여 왕비로 삼았다. 윤씨는 여러 후궁들을 질투하여 임금에게까지 불손한 일을 자행했다. 임금이 대로하여 폐하여 내쫓았으며, 사사하려고 신하들을 불러 전정에서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임금의 노여움이대단하여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허종은 영상이었는데, 이른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다가 그의 누이 집 앞을 지나게 되어 들어가 뵈었다. 그 누이가 폐비 윤씨를 사사하는 일에 대해 부당함을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민가에서 늙은 종이 집주인의 명령을 거역하기 어려워서 함께 주인 마님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 후일에 그 아들이 가통을 계승할 때에 어찌 화환이 없겠는가"
허종이 크게 깨닫고 돌다리를 지나가다가 고의로 말에서 떨어져 발을 다쳤다고 핑계하고,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뒤에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왕이 되어 어머니 윤씨를 위해 복수를 할 적에 당시 회의에 참석한 사람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잡아 죽였으나, 허종은 홀로 화를 면하였다. 후인들이 그 다리를 가리켜 '허종이 빠진 다리'라 혀여 '종침교'라 하였으니, 지금 사직동에 있다. 허종 대감은 난시에는 싸움터에 나가 장군이 되고 평시에는 내직에 들어와 재상이 되었는데, 풍채가 늠름하고 기개가 헌걸 찼으며, 신장이 12척 5촌이나 되었다. 문장도 잘 하고 활을 잘 쏘아, 조정에서 그에게 의지한 바가 매우 켰다. 일찍이 이조 판서로 있을 적에 문장과 인물로 세상을 울리던 명나라의 동월과 왕창이 사신으로 왔다가, 12척 장신에 옥처럼 깨끗한 풍채와 의젓한 의관의 허종을 보고 감탄하여 자신들도 모르게 무릎을 꿇어 절하고 경서와 사서를 토론하였다. 동월, 왕창 두 사신이 귀국할 적에 압록강에 이르러서도 허종 대감을 사모하여 차마 헤어지지 못하였다. 폐비 윤씨가 폐위되기 전에 친히 베틀에 올라가서 비단을 짜는데, 임금이 찾아왔다. 왕비가 베틀에서 내려와 말하였다.
"상감께서는 어찌하여 옥체가 이다지도 크십니까?"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또 있다. 불러들일 터이니 그를 한번 보아라"
임금은 곧 명령을 내려 허종을 불러들였다. 성종 24년(1493) 61세에 죽었다. 공훈으로 양천부원군에 봉해지고 시호는 충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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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찾아라
강변 3로의 '정 여인 살해사건'은 여자가 사건 정면 뒤에 튀어나오고 그 뒤에 무수한 사나이들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이색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대개는 사건 이면에 여자가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여자를 찾아라'라는 말도 나오게 된 것. 이 말은 16세기의 파리 경찰총감 '아르티느'가 했다고 하는데 1864년 파리에서 '알렉산드르 듀마'의 극 '파리의 모하칸족'이 상연됨으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이 극의 제3막에서 유괴사건을 수사중인 경관 '쟈켈'이 하숙집 안주인을 심문한다
쟈켈-어떤 사건에도 여자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건의 보고를 받으면 "여자를 찾아라"하지요. 그래서 그래서 여자가 발견되면... 안주인-여자가 발견되면? 쟈켈-남자는 곧 발견됩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말은 그 이전에도 있었으며 로마의 '유베나리스' (65-128)도 '풍자시'에서 "여자가 주요역할을 하지 않는 사건은 거의 없다"고 간파하고 있다. 아무튼 옛부터 여자의 간교한 힘은 여간 아니었던 모양이다. 프랑스의 속담에 "여자의 뇌는 원숭이의 크림과 치즈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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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3장 삶의 여백을 비추는 지혜
무슨 일이 났습니까?
제 1회 문화 훈장을 받은 천문학자인 기무라 히사시는 1900년 스물 아홉 살 때 이와테 현 미즈자와에 있는 위도 관측소장으로 부임하여 1943년경까지 그 자리에서 천문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한 일로 관측소를 나와 시내로 나가보니 온 거리가 제등 행렬로 대단히 소란스러웠다. 기무라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옆 사람에게 살짝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당신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요? 오늘은 일본 해군이 동해에서 러시아 함대를 침몰시킨 것을 축하하는 경축일입니다." "허어,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했다는 겁니까. 그런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실제로 기무라는 관측소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뿐 연구 이외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온 나라를 뒤흔든 러일 전쟁 같은 사건도 전혀 몰라서 옆에 있던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러일 전쟁이라고 하면 당시 일본이 세계 굴지의 대국이었던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쟁이어서, 일본에게는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릴 판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연구가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으로서 그것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난받을 만하다. 언론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도가 지나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겠지만, 설사 그것이 메이지 시대라 해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무관심한 태도이다. 따라서 그런 태도 자체를 학자답다고 덮어 줄 수만은 없다. 그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이 일화에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자신까지 잊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취약성은 모든 것을 이해타산으로 따지려는데 있다. 사람들은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냉담하게 외면하고, 이득이 되는 것에만 모여든다. 자연히 사람들의 움직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예상되는 일에만 집중되고 따라서 오로지 약삭빠른 계산의 지배를 받는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런 마음가짐에서 결코 진실이 나올 리가 없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정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하고 있다. 이 일화는 그 가장 중요한 것을 아주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시해 주지 않는가. 무엇을 하든 진실은 역시 이해 득실을 뛰어넘은 곳이 있고, 그에 접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잊고 그것에 몰두하는 길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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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1 - 후안 마누엘
열한번째 이야기 위험한 혀
루까노르 백작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인간의 삶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이들은 반란자가 가장 나쁘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폭력배 혹은 불량배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가장 피해를 주는 사람은 말을 잘못 전달하는 중상모략자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백작이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빠뜨로니오에게 들려주자 빠뜨로니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뒤, 악마와 결탁한 위선자 중의 위선자였던 어떤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마을에 매우 선량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한 것과는 상극인 악마는 그 사이좋은 부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둘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를 했죠. 악마는 아무리 해도 그 부부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자 풀이 죽어 어느날 한 사악한 여자를 찾아갔습니다. 악마가 인사를 하자마자 여자는 왜 그렇게 슬픈 기색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악마는 행복한 부부 사이를 방해하려다가 실패만 하여 이미 이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대장이, 만일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악마와 대장 간의 관계도 끝날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는 아는 것이 그렇게 많은 악마가 실패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만일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 부부 사이에 불화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즉시 악마와 여자는 계약을 맺었고, 여자는 부부가 사는 곳으로 갔습니다. 여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 선량한 아내와 가까워지려고 했습니다. 사악한 여자는 과거에 그 부인 어머니의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은혜를 갚기 위해 부인을 도우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착한 여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그녀를 집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뒤, 사악한 여자는 부부의 사적인 조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자는 자기를 신뢰하게 된 부인에게 와서 무천 슬픈 표정을 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방금 전에 들었던 말 때문에 기분이 몹시 언짢아요. 글쎄 당신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지 뭐예요. 당신 남편이 당신 외에는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그를 존경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에게는 이번 일보다 더 괴로운 일은 없겠지요.”
착한 여인은 이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몹시 괴롭고도 슬펐습니다. 사악한 여자는 부인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자, 이번에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사악한 여자는, 그 남편이 부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부인이 남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주는 남자를 찾겠다고 말했다며 착한 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말했다는 것을 알면 부인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며 부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남편은 이 말을 믿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고통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비탄에 잠긴 남편을 보고난 후, 못된 여자는 남편을 앞질러 부인에게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인, 어떤 불행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 남편이 점차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 당신 남편이 전에 없이 슬프고 화난 얼굴로 집에 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그녀의 남편에게 가서 부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남편도 집에 돌아와서 부인의 슬픈 얼굴을 보자, 전과 같이 함께 있는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고 둘은 모두 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나가자, 그 여자는 부인에게 남편의 나쁜 버릇과 화를 없애는 마법을 알고 있는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슬쩍 부인을 떠보았습니다. 부인은 어떤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예전의 남편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에 희망을 갖게 되어 매우 기뻐하고 고마워했습니다. 마침내 사악한 여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 남자를 만나보았다며, 남편의 목덜미 부분의 머리카락 한줌이 있으면 그의 분노와 화를 없앨 수 있고 예전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도록 가능하면 그를 그를 무릎 위에 재우라고 말하고 칼을 건네주었습니다. 가련한 여인은 남편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전과 같이 행복한 삶을 바라면서 칼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사악한 여자는 남편에게 가서 부인이 새 애인과 함께 도망가기 위해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죽음을 걱정해주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면 부인은 당신에게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라고 청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잠들게 되면, 숨겨놓았던 칼을 꺼내서 목을 벨 거예요.”
남편은 이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에는 그저 우려에 그쳤지만, 이제는 너무 고통스러워 여자가 말한 것이 사실인가를 확인해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자 부인은 그를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맞이했으며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일만 했으니 이제 자기 무릎을 베고 잠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남편은 그 사악한 여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남편이 부인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척하자 부인은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칼을 꺼냈습니다. 자는 척 하던 남편은 부인이 칼을 쥐고 자신의 목부분에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보자 그 여자의 말이 맞다고 믿고 부인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서 부인의 목을 찔러 죽였습니다. 울음소리와 비명에 놀란 부인의 부모와 형제들이 부부가 있는 곳으로 왔을 때 그들은 목이 찔려 죽은 부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부인이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남편도 죽였습니다. 이번에는 남편의 비명소리가 그의 부모에게 들리자, 부모는 자식을 죽인 살인자들이라며 부인의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날은 이 마을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은 날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그 사악한 여자의 거짓말과 중상모략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이 못된 여인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모든 일들이 자신의 중상모략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일깨워주고, 자신 때문에 부부가 잘못 판단하게 되어 끝내 비참한 살육을 초래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백작님,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과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선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위장한 위선자나 중상모략자 혹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는 대부분 사악하며 거짓을 감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람은 그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는 교훈을 기억하십시오. 백작님, 어떤 사람도 마음 속에 품은 악한 뜻을 오랫동안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악한 꼬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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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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