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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213 호
단기 4340. 7. 5 (음력 5.21)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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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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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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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란 개인과 개인을 결합시키고, 그 다음에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 국민과 국민, 국가와 국가를 결합시켜 하나의 커다란 통일체로, 즉 인류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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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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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 정약용, 이율곡, 이황
1. 다산 정약용
멀리 보고 꿰뚫어 생각하라
학자란 궁한 후에야 비로소 저술 활동을 할 수 있다. 매우 총명한 학자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에 놓여 종일 홀로 지내며 사람들 떠드는 소리라든가 수레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각에야 경전이나 예에 관한 비밀스런 의미를 비로소 연구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란 게 이렇듯 교묘하다.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요점을 추려 내어 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대한 주관이 뚜렷해야 그 판단 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 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 요컨대 책 한 권을 볼 때 오직 나의 학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추려 쓰고, 그렇지 않다면 눈여겨볼 필요가 없는 것이니 백권 분량의 책일지라도 열흘 정도의 공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멀리 보는 생각과 꿰뚫어 보는 눈이 없으니 탄식할 일이로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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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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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4. 근대의 사상
1. 전기/개항기-3.1 운동기
1. 척사위정 사상
의병 운동으로의 전환
의병이란 주자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충의 정신에 입각하여 외적의 침략에 자발적으로 무력 항쟁한 군사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자학적인 명분 아래 궁극적으로 국권을 회복하여 유교 사회를 재건하려던 유생층은, 민중의 강한 반외세 의식을 유교적인 입장에서 수렴하여 실질적인 전투력을 확보, 이를 통해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다. 의병 운동은 1894년 근왕적, 충군적 의병으로부터 시작해서 1915년 채응언의 의병이 붕괴될 때까지 몇 단계의 발전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전기 의병(1895-1896)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중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갑오왜란 때 처음 일어났다. 충군적, 근왕적 성격을 띤 이 의병 운동은 을미사변과 단발령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을미개혁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봉기를 시작하였다. 을미 의병의 지도층은 척사위정을 이념으로 하는 화서 학통의 유생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실제의 전투력은 동학 농민과 소작 농민 그리고 포수 등이 담당하였다.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화서 학파의 유인석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유생을 지도부로 하는 을미 의병은 1896년 농사철을 맞으면서 전투력이 약화된데다 국왕의 회유책에 맞설 논리의 미비로 말미암아 대부분 해산하고 말았다. 이처럼 을미 의병은 농민이 대거 참여하였음에도 그들이 지도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생이 지도한 의병 운동 속에서 그들의 농민적 이념을 표출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중기 의병(1904-1907)은 일제의 준식민지적 강요가 직접적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을미 의병이 해산되면서 거기에 참여했던 농민이 독자적으로 활빈당 등의 형태로 항전하다가, 1904년 러일전쟁과 함께 강요된 한일의정서와 한일 협약, 그리고 노골화된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항거하여 본격적인 의병 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이 시기에는 전기 의병 때와 달리 농민층이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면서 평민 의병장이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때의 의병은 유생들의 의병과 달리 반외세성과 아울러 반봉건성도 함께 가지게 된다. 이 중 경북 영해를 중심으로 한 신돌석의 의병 운동이 다시 전국적으로 일어나면서 합류하게 되었다. 특히 화서 학파의 최익현이 이 때 크게 활약하였다. 유생 의병은 비록 인적으로나 학통으로나 전기 의병과 동일하였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유생 의병장들의 의식에 전환이 일어났음을 볼 수 있다. 곧 주자학적 척사 의식과 화이관, 신분관이 바뀌면서 국권 회복 쪽으로 운동의 방향이 모아졌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기정 사실화된 국제 질서와 평민 의병장들의 출현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의병 운동 자체의 질적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이제 의병 운동은 반외세적 성격뿐 아니라 반봉건적 성격도 함께 띠게 되었다. 후기 의병(1907-1909)은 해산된 병사들의 참전과 평민 의병진의 확대로 국민 전쟁 규모의 의병전이 전개되었다. 이 단계는 1907년 8월의 군대해산에서 1909년 10월의 이른바 남한 대토벌까지의 시기가 포함되는데, 이 시기에 오면 일제의 매판 정부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의병 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교전 상대로 부각되기에 이르다. 해산 군대가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의병 부대의 전투력이 강화되었으며, 이들은 의병 부대의 핵심 전력으로 활동하였다. 그 반면 유생 출신 의병장은 그 수가 줄고, 해산 군대 출신 및 평민 출신 의병장이 다수 등장하면서 의병 운동의 대중적 성격이 한층 강화되었다. 전환기 의병(1909-1915)은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이 끝난 1909년 11월부터 1915년 7월 채응언의 의병 진영이 붕괴될 때까지 활동한 의병을 말한다. 의병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시기는 쇠퇴기이지만, 독립 운동의 연속상에서 보면 이 시기는 독립군으로 전화해 간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분적이긴 하지만 독립군 기지가 개척되면서 계몽 운동과의 연합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의병이 독립군으로 전화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술국치 무렵이나 그 후 홍범도 등 의병장들이 서북간도로 망명하여 독립군의 지도자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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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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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외한
본뜻 : 문의 바깥 성 바깥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 바깥에 있으므로 문 안의 사정을 모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바뀐 뜻 : 어떤 일에 대한 지식이나 조예가 없는 사람, 또는 어떤 일과 전혀 관계가 없거나익숙치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나는 컴퓨터나 전자 기기에는 문외한입니다 -그는 음악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문외한이야
미망인
본뜻 : 옛날 가부장제도 아래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미망인은 그렇게 해서 생겨난 말로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못한 여인네라는 뜻이다. 본래는 과부를 낮춰 부르던 이 말이 오늘날에는 대단한 높임말처럼 사용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여성의 정절과 희생만을 강조하는 이 말에는 은근하고 무시무시한 사회적 강요가 들어 있다고 하겠다.
바뀐 뜻 : 오늘날에는 남편을 여위고 혼자 된 여인들을 높여 부르거나 점잖게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꿔 쓸 수 있는 말이 마땅치 않으나, 굳이 미망인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말이 될 수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쓰지 않아야 한다.
"보기글" -김 장관 미망인께서는 네 자녀를 훌륭히 키워 내셨다(김 장관 부인께서는 홀로 되신 후에도 네 자녀를 훌륭히 키워 내셨다) -저기 계신 분은 김 장관 미망인이십니다(저기 계신 분은 돌아가신 김 장관 부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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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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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9가지 오해와 편견 - 이영재
가해자와 피해자의 풀리지 않는 송사 - 아랍인과 유태인
라빈과 아라파트
이츠하크 라빈(1922~1995)과 야세르 아라파트(1929~)는 중동 평화의 전기를 마련한 공으로 1994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하였다(이스라엘 정치가 시몬 페레스도 공동 수상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에는 각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을 대표하면서, 극단적인 무력 투쟁을 진두 지휘하며 평화를 위협했던 인물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 아라파트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고 이집트의 카이로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그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투쟁에 투신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폭력적인 게릴라 전술이었다. 1959년 알파라라는 게릴라 단체를 조직하고 지휘함으로써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1969년에는 PLO의 의장직을 맡게 된다. 뮌헨 올림픽에서 자행된 검은 구월단의 테러로 대표되는 60년대 말 이후의 무력 저항을 지휘한 사람이 바로 아라파트이다. 그러나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70년대 중반 아라파트는 PLO가 이스라엘 이외 지역에서의 테러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많은 국가들과 국제기구가 PLO를 인정하게 된다. PLO는 1988년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는 등 온건한 모습을 띠게 된다. 현재 PLO는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사람들과 그 자손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표한다. 영토는 없지만 명실상부한 국가 조직으로서 전세계 팔레스타인인들은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라빈도 아라파트처럼 대단히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건국 당시 이슬람 국가들과의 전쟁에 참여하였고 1964년에 참모 총장이 되어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데 기여한다. 그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강경 진압할 것은 주장하는 등 매파에 속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지만 모든 아랍 민족의 적이었다. 1992년 두 번째로 총리직에 오른 라빈은 훨씬 온건해졌다. 취임 직후부터 비밀 협상을 통해 PLO와 접촉하고 1993년 역사적인 평화 협정 체결을 선도했다. 그는 최초로 PLO를 대화를 파트너로 수용하고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를 인정함으로써 중동 평화의 길을 마련한다. 그러나 그는 1995년 11월 영토를 이민족에 넘긴다고 비난하는 이스라엘 청년 이갈 이마르가 쏜 3발의 총탄에 숨을 거둔다. 이스라엘 전역이 비통에 빠져들었지만 `배신자`의 죽음을 축하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묘소에 침을 뱉고 방뇨한 젊은이들도 있었고 라빈의 죽음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인터넷에 띄웠다가 퇴학당한 대학생도 있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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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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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4.남자의 마음을 도마 위에 놓고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응석받이의 성인아이
그러면 의존형의 남성은 어떨까 대개의 경우 막내, 즉 과보호로 양육된 남성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혼자 힘으로 해본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은연중에 자기에게는 자립능력이 없다고 믿고 있다. 어머니까지 덩달아 너는 지금까지 일을 스스로 하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았었다. 면서 아들의 나약함을 부추긴다. 아들이 자립심을 기르게 되면 자신으로부터 떠나 버릴 것 같아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들이 남자다운 행동을 취하더라도 그다지 칭찬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편 아들은 소년답고 천진난만하게 굴기만 하면 무슨 일을 해도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여성의 모성본능에 호소하는 버릇이 생기게 된다. 단추 다는 법 알아? 나를 위해 요리해 줄래? 당신이 집에서 만든 유리는 맛있을 거야. 천진하고 귀여운 남자아이처럼 보이려 하고 여성에게 호감을 살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은, 실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받고 싶다는 본심을 숨기기 위한 방편이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 데 익숙한 남자는 스스로 결단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만일 잘못되어 책임을 추궁받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강한 여인은 그럴 경우 앞에 서서 지시해준다. 그에게는 스스로 판단을 내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어느 여성이 우유부단한 남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은 도로 한가운데서 곧잘 차를 세우기 때문에 심한 교통체증을 일으킵니다. 어느 쪽에서 돌아야 할지 몰라서 멈춰 버렸다나요. 내가 옆에서 지시해 주지 않았다면 도로 한복판에서 갈팡질팡했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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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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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평생을 괴물과 함께 살았던 신숙주
신숙주(1417-1475)의 본관은 고령, 자는 범옹, 호는 보한재이다. 세종 20년(1438)에 진사시에 장원하고, 그 이듬해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 29년 중시에 합격한 뒤 서장관으로서 일본에 갔다. 일본사람들은 신숙주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시를 지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신숙주의 시에 대하여 경탄해 마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일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신이 일본에 갈 적마다 반드시 신숙주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세조 6년(1460)에 강원, 함길도 절도사가 되어 국경 지방에 깊이 들어간 적이 있는데 오랑캐들이 밤에 공격해 와서 영내가 매우 소란하였다. 그러나 신숙주는 꼼짝도 않고 누워서 막료를 불러 자기가 지은 시를 받아 쓰게 하였다. 병사들은 그때서야 안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가 있었다. 신숙주가 젊었을 적에 경복궁 정시에 응시하러 갔는데 이른 새벽에 커다란 괴물이 입을 쩍 벌리고 대궐 문 앞에 있어서 모든 응시생들이 다 그 입을 통해 들어갔다. 이때 신숙주는 눈을 부릅뜨고 당당히 서서 그 괴물을 응시하였다. 그때 푸른 옷을 입은 동자 하나가 신숙주의 옷소매를 잡고 물었다.
"공은 저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을 보았소? 그것은 내가 조화로써 만들어낸 괴물이니 공은 잘 간직하시오" "너는 누구냐?" "나도 사람이오. 공이 앞으로 귀한 재상이 될 것을 알고 평생토록 따라다니면서 행동을 함께 하려고 하오"
신숙주는 그 괴물과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그 괴물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신숙주가 앉으나 누우나 항상 함께 하고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그에게 자기의 밥을 나누어주면 씹는 소리는 들렸지만 밥그릇은 줄지 않았다. 그 괴물은 신숙주의 집안에 일어날 모든 일과 과거의 합격 여부를 신숙주에게 미리 다 알려주었다. 신숙주가 사신으로 일본에 갈 적에 이 괴물을 시켜서 먼저 뱃길의 깊고 얕음과 거리를 알아 오도록 시켰기 때문에 신숙주는 먼 뱃길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신숙주는 죽기 전에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겨 부탁하였다.
"내가 죽더라도 이 괴물에게 따로 제사를 차려 주어라"
그 자손들은 신숙주의 유언에 따라 신숙주의 제삿날이면 반드시 따로 한 상을 차려서 괴물에게 제사지냈다고 한다. 신숙주 생시에 세조는 늘 말하였다.
"환공과 관중, 한고조와 장량, 당태종과 위징의 관계는 나와 숙주의 관계와 같다"
세조 3년에 영의정에 이르고 시호는 문충이다. 성종묘에 배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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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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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상 없다
독일의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작품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29)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데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서부전선이란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선이 말하며 치열한 공방전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숨져갔다. 그러나 전선은 이상 없이 건재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 않으나 그래도 제목만은 곧잘 인용되어 '취직 전선에 이상 있다' '결혼 전선 이상 없다' 등 애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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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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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제2장 내가달라져야 하는 이유
신의 아들 콜럼부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인 콜럼부스가 탐험을 도와준 에스파냐로 돌아오자 이사벨라 여왕이 친히 앞장서 성대한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그 자리에서 성공을 시기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배를 몰기만 하면 콜럼부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을 거라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때 콜럼부스가 달걀 한 귀퉁이를 깨뜨려서 그것을 식탁 위에 세워 보임으로써 무엇이든지 일단 알려지고 나면 그 다음은 쉽게 느껴진다는 것을 보여 준, 이른바 '콜럼부스의 달걀'이라고 하는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콜럼부스는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대서양을 건너갔다. 네 번째 탐험에서는 함께 항해했던 네 척의 배 중에 두 척이 침몰하고, 게다가 자메이카 섬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나누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비참한 상태로 내몰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문득 묘안을 떠올린 콜럼부스는 재빨리 그 고장의 추장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섬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하여 신께서 노하셨다. 그래서 신께서는 앞으로 이 섬에 달빛을 비춰 주지 않겠다고 계시를 하셨다."
천문학에 조예가 깊은 콜럼부스는 마침 그때가 월식 때인 것을 알고 시간을 가늠하여 사람들을 모은 것이다. 달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주위가 어둠으로 덮이자 추장들은 완전히 겁에 질렸다. 그들은 간청했다.
"필요한 것은 뭐든지 드리겠으니 도와주십시오."
콜럼부스는 잠시 주저하는 태도를 보아다가 곧 열심히 기도하고 나서 말했다.
"신께서 간청을 들어 주셨다."
달이 다시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추장들은 콜럼부스를 신의 아들이라고 우러러보고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하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의 사막을 무대로 하여 무한한 상상력으로 기괴한 사건을 전개하는 소설 솔로몬의 동굴. 19세기 영국 작가 하거드가 쓴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콜럼부스와 비슷하게 원주민을 위협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는 대목이 있다. 콜럼부스의 일화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하거드가 그것을 이용했는지 어땠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포인트는, 월식이라는 과학적 사실과 원주민의 신앙을 잘 결부시켜 전혀 그런 지식이 없는 섬사람들을 굴복시켜 식량 위기를 타개했다는 '착상'에 있다. 물론 그것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항해한 발상과도 일맥 상통하고, 헐뜯는 자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콜럼부스의 달걀'과도 연결된다. 콜럼부스의 착상은 모두 그것이 일단 실행된 뒤에 생각하면 실로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그러나 특정한 상황에서 반짝이는 착상이 문득 떠오르려면 반드시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 착상은 결코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념으로 굳어져 실행을 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결실을 맺는다. 따라서 그 결실을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깎아 내리는 것은 바로 자신이 사물을 얼마나 천박하게 보는가를 폭로하는 데 불과하다. 주어진 일을 보다 능률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할 때 천편일률적인 생활을 극복하고 새로운 착상을 얻는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착상이란 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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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풍경 - 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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