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3. 해체기/양란-개항기 이전
3. 실학
조선 실학의 철학적 의미
실학자들의 저술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현실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경세론 또는 사회 사상으로 보이지만, 실은 철학 사상면에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 많다. 실학의 철학적 특징은 출발시부터 완전히 갖추어졌던 것은 아니고,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경향이 진전함에 따라 차츰차츰 형성되어 갔다. 그러므로 초기 실학자들과 후기 실학자들이 같은 철학적 입장에 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경향성으로 볼 때 초기 실학자들과 후기 실학자들의 철학적 지향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학의 철학적 기반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나갔다.
첫째, 내성적 수신론에서 사회의 현실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철학으로 전환시키는 문제이다. 둘째, 심성론 중심의 관념적 논변을 실제 사무와 구체적 사물에 대한 연구로 전환시키는 이론의 논리적 근거에 대한 문제이다. 셋째, 천주교의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 문제이다. 넷째, 서구 자연 과학 지식과 대비된 전통적 자연관의 반성과 재정립의 문제이다.
개별 실학자의 철학은 이 문제들에 답을 찾으려는 연속적 과정의 한 단계에 해당하며, 그 속에는 일정한 방향을 가진 논리의 발전이 있었다. 이러한 논리의 발전은 철학사라는 큰 흐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 철학은 나름대로 특징을 지니는 한편, 중국 철학의 흐름, 즉 주자학에서 양명학을 거쳐 기철학으로 이어지는 흐름과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 실학의 철학적 의미를 주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천인합일에 대한 '천인지분'의 관점이다. 천인합일은 성리학적 수양론에 핵심이 되는 이론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주자학 이론은 천리와 인간의 본성을 선으로 일관시키고 있다. 그에 따라 선한 본성의 회복이 우주의 진리와 합일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주자학의 관점에서 '선'은 유학의 윤리 체계가 지지하는 사회 규범으로서, 천인합일의 논리에 의해 불변의 진리로 보증된다. 그러므로 이 때 '천'은 주자학적 인성론이 규정한 선한 인간 본성의 객관적 투영물일 뿐, 인간의 의식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자연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인지분의 관점에서 '천'은 객관적 자연을 의미하게 된다. 천인지분의 관점은 고대 철학가 가운데 순자의 사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주자학자들은 순자를 비판하고 그대 대척점에 선 맹자를 선택하였다. 천인합일과 천인지분의 관점 차이는 일식과 월식에 대한 이이와 홍대용의 설명을 대비시키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이는 '천도책'에서 "해는 임금의 상징이요, 달은 신하의 상징입니다. 그 운행하는 길이 같고 모이는 도수가 같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이 되는 것입니다. 달이 희미한 것은 괴변이 되지 않으나, 해가 희미한 것은 음이 왕성하고 양이 약한 까닭으로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형상입니다. 정자는 '하늘의 덕과 임금의 도는 그 핵심이 자기 마음을 조심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 지금 우리 동방의 동물과 식물이 다 자연의 길러 줌에 힘입는 것은 어찌 우리 성스러우신 임금께서 마음을 조심하는 데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홍대용은 "의산문답"에서 "음양론에 얽매이고 리와 의에 빠져서 천도를 살피지 못한 것은 선유의 잘못이다. 달이 해를 가르면 일식이요, 지구가 달을 가리면 월식이다. 경도와 위도가 같아서 달, 지구, 해가 일직선상에 놓여 서로 가리면 일식이나 월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천도가 운행하는 법칙이다. 이러한 달, 지구, 해의 운행 법칙은 세상의 치란과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윤리와 물리의 구분 문제, 객관적 자연 법칙의 인정 문제 등에서 이들로 하여금 각기 다른 길을 걷게 하였다. 실학자들 중에도 전통적인 주자학 개념을 사용하여 이 새로운 관점을 설명하려 하는 등 이들의 사상에도 불명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한기에 이르면 이 문제는 '운화지리'와 '추측지리'라는 개념으로 체계화된다. 이 천인지분의 관점은 사변적인 심성론 논쟁을 비판하고, 구체적 사물 연구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정당화시키는 데 유력하게 작용하였다.
둘째, 기철학으로의 발전 경향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철학이란 주자학 내부 논쟁에서 주리론에 맞섰던 주기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주리론과 주기론으로 나뉘어 벌어졌던 주자학적 논쟁은 심성론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그 논쟁이 철학의 근본 문제로 이해되었던 것은 거기에 천인합일론이 개입하였기 때문이다. 기철학적 입장이 뚜렷해지면 오히려 주리냐 주기냐 하는 심성론의 논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심성론에서 주리론이나 주기론은 천인합일이라는 관점에서는 같은 철학적 입장에서 서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리론과 주기론을 유물론과 유심론으로 분류하려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리와 주기의 문제를 철학의 근본 문제에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려면 그에 따른 많은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실학이 기철학으로의 경향을 갖는다는 것은 홍대용, 정약용, 최한기 등이 심성론에 접근하는 방법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주자학의 성선설을 문제삼았다. 성선설은 주자학의 핵심 이론이기 때문에, 만약 이 이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면 그것은 전통 철학 전반에 걸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되며, 기철학 자체의 이론 기반에도 위협하는 것이 된다. 기철학도 원시 유학의 '수기치인'론을 계승하고 있으며, 성선론도 이 원시 유학의 이론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선설을 더욱 철저하게 비판해 들어갔다면 기철학은 어쩌면 유학의 틀을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 실학자들에게 유학의 규범은 아직 현실적으로 효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주자학적 성선설 비판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먼저 선험적 도덕성을 설정한 것 자체를 비판하면서 주자학적 본성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 인간의 사회성과 윤리적 형식의 상황성을 강조하면서 선의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인식론이나 진보적 역사관과 같은 보조 이론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는 경향이나 공리주의적인 사고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기철학적 경향은 주자학의 '리체기용'이라는 본체론적 논리에 대해 '기체리용'의 논리를 제시한다든지, 주자학의 '리선기후' 명제에 대해 '리재기중'이라는 명제를 제시한다든지 하는 데서도 읽을 수 있다.
셋째, 음양오행론 비판이 갖는 특수한 의미이다. 실학자들의 음양오행론 비판은 철학적 입장을 비판하는 문제와는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음양오행론은 성리학 체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태극도설'의 음양오행 해설은 주자학 체계 안에서 차지하는 이론적 비중으로 볼 때 하나의 장식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실학자들의 음양오행론 비판은 구체적으로 당시의 미신이나 잡술에 대한 비판이었다. 사주, 관상, 작명, 점성, 풍수지리 등의 영역에서 음양오행론이 이용되었고, 의술에서도 음양오행론은 이론적 설명 체계로서 또는 신비적 발견의 논리로서 이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치료 의학이나 잡술에 등장하는 음양오행론은 주자학의 이론 체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주자학자들도 미신 잡술에 대해서는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비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학자들의 음양오행론 비판은 주자학 이론에 대한 비판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실학자들의 음양오행론 비판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은 한문으로 저술한 책 속에서 서양의 사행설과 중국의 오행설을 비교하면서 사행설의 타당성을 주장하였다. 그 논증 과정에서 중국의 오행설은 오재설로 규정되었다. 즉 중국에서 말하는 오행은 만물의 근원이 되는 물질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 많이 쓰이는 다섯 가지 재료를 가리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 최한기 등의 오행론 비판에서 이 논리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음양오행론에서 오행론만이 특히 문제된 것도 서양의 사행설과 관련이 있다. 실학자들이 선교사들이 쓴 책에 관심이 많았다는 증거는 많다. 예컨대 홍대용, 정약용, 최한기 등이 공통으로 인용하는 실험, 즉 그릇의 바닥에 동전을 놓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물러선 다음 그릇에 물을 채우면 동전이 보인다는 내용은, 마테오 리치가 쓴 "원경설"에 그림과 함께 그 원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실학자들의 음양오행론 비판은 적어도 두 가지 특수한 뜻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실학자들이 서학서에 개방적인 자세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것을 대하는 정서적 차원의 공동 보조라고 할 수 있으며, 또 학술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정통이니 이단이니 하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방적이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이것이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심은 철학과 과학 기술 또는 윤리 규범과 과학 기술의 관계 문제에 생각이 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학자들의 음양오행론 비판은 전통적 과학 기술 분야에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서양의 사행설을 쉽게 인정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오행설과 사행설을 모두 비판하고 개별 과학에 대한 기철학의 지도성 문제를 생각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주제는 전통 철학의 역사에서 볼 때 실학자들에게 와서 비로소 문제가 된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실학의 철학적 의의는 논리적인 측면보다 실학의 역사적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실학은 당시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의 비리를 비판하는 데서 출발했다. 삼정의 문란, 곤궁에 처한 백성들의 삶, 붕당 정치의 폐해, 관료 체제의 부패, 불공평한 과거 제도, 치안의 문란, 국방의 미비, 낙후한 생산 기술, 비생산적인 양반층의 허식, 백성들의 권리 의식과 마찰하는 신분 제도 등등이 실학자들에게 문제 의식을 안긴 계기였음은 그들의 저술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실학의 철학적 측면들이 형성되어 갔다. 철학적 범주에서 볼 때 실학 사상은 앞에서 제시한 문제들과 연관되어 본말론, 명실론, 지행론, 정통과 이단의 문제, 역사 인식 등에서 주자학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실학 사상의 전통은 뒤이어 개화 사상으로 연결되지만, 시대 상황의 변화와 역사적 조건의 차이로 인해 개화 사상은 실학 사상의 철학적 의의를 충분히 계승하지 못한 면이 있다. 현실 원칙으로서의 부국강병론은 어느 시대에나 나올 수 있는 시무책이고, 선진적인 서양 과학 기술을 수용하는 논리로서의 동도서기론도 이미 통일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철학의 관심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이에 비하여 실학 사상의 철학적 관심은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추구하는 데 있었으며, 이런 점에서 이들의 철학적 사색의 내용이 다시 음미될 필요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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