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3. 해체기/양란-개항기 이전
2. 반주자학
경학
이황과 이이를 거치면서 확립된 조선의 주자학은 영남 학파와 기호 학파의 논쟁을 통해 더욱 복잡하게 발전하였다. 이 두 학파는 자기 학파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공격하였다. 따라서 17세기 주자학 발전의 이면에는 자기 이론에만 집착하는 폐쇄적 분위기가 가득 찼으며, 이러한 폐쇄성은 주자학의 절대화 경향을 가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적 학문 태도를 견지하면서 경전을 탐구하고 실천한 학자가 윤휴와 박세당이었다. 이 두 사람은 주자학적 학문관에서 벗어나 독자적 학문 체계를 수립한 학자로 유명하다. 더욱이 이들은 리기심성 같은 사변적 주제보다 경학 연구에 무게를 둔 최초의 학자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 윤휴
윤휴는 22세에 '사단칠정인심도심설'이라는 긴 글을 써서 당시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글에서 16세기 대표적 주자학자인 이황과 기대승, 이이와 성혼 사이에서 벌어졌던 리기, 사칠, 인심도심에 관한 토론을 조목별로 비판하고 자신의 학설을 피력하였다. 이 글은 당시 학자들 사이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까닭은 그의 시각이 동시대 다른 이들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자학은 더 이상 윤휴의 관심이 아니었다. 그의 저술을 정리한 '백호전서' 46권을 검토하면, 위 글말고는 주자학에 관한 글이 거의 없다. 그에 비하여 경전에 대한 탐구와 주해는 모두 11권에 달한다. 그가 주목한 고전 중 하나가 "효경"이었다. 그는 '효경장구고이서'에서 인간의 심성에 토대를 둔 자연스러운 실천은 도외시하고 과거 시험이나 사장학 같은 개인적 명예에 매달리는 지식인들을 비판하였다. 아울러 천명이나 심성 등 이론 문자에만 천착하고 사회 문제는 등한시하는 관념적 경향도 비판하였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주자학의 추상적 이론을 탐구하기보다는 주로 "효경", "소학", "대학", "중요",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춘추" 및 삼례 등 여러 경전들을 검토하였다.
윤휴의 경학관은 "대학"과 "중용"주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대학"과 "중용"은 본래 '예기'에 실려 있었는데, 고본에 흔히 나타나는 문헌의 혼란 때문에 적은 분량임에도 본문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주희는 이 점을 주목하여 본문의 순서를 바꾸고 주해를 달았다. 그는 "대학"을 첫단락에 보이는 삼강령 팔조목의 체계로 이해하되, 편차를 바꾸어 전문을 경 1장과 전 10장의 11개 장으로 구분하였다. 특히 '격물치지'에 관한 설명이 오랜 전래 과정에서 없어졌다고 단정하고, 그 대신 자신의 설명을 붙였다. 이것이 "대학장구"의 보망장이다. 이 같은 주희의 해석은 경문 분석을 통한 체계성의 확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경문 자체의 권위에 구애되지 않고, 사상 체계에 따라 경전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지적된다. 그러나 주희의 해설은 여덟 개의 조목 가운데 '격물치지' 항목에 지나친 비중을 두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주희는 지와 행의 영역을 엄정하게 구분한 뒤 지에 비중을 두어 이를 재구성하였다. 그 결과 구체적 실천인 '성의, 정심' 이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조선 주자학자들은 바로 이 주희의 "사서집주"를 토댈 자신들의 이론을 구축하여 왔던 것이다. 윤휴의 "대학" 관련 저술은 "대학고본별록"이다. 이 책에서 그는 "대학"을 본모습대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격물치지, 성의, 정심' 등을 단계적으로 나누는 주자학적 해석을 부정하였다. 이 같은 해석은 "대학"이 지식 습득을 위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천 주체가 도덕적 자각을 토대로 이를 가정, 국가, 천하에서 실현하기 위한 실천서라고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그는 '성의'를 실천 주체가 자각해야 할 최초의 공부라고 하면서 그것이 "대학"의 근본 취지라고 하였다.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도 주희와 다르다. 그는 격물하는 방법에 마음속에 수렴된 것을 바탕으로 대상에 따라 앎을 넓혀 가는 것과, 자세히 탐구하고 사색하기를 오래해서 궁극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격물치지'의 '격'도 외부 사물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마음의 기능과 활동으로서 성실한 마음과 깊은 생각을 바탕으로 한 노력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해석은 주체의 자각을 통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또 윤휴는 주희와 달리 10장의 체계로 재해석안 "중용장구보록"을 지었다. 이에 대한 당시 집권 서인의 반응은 마침내 그를 사문난적으로 모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윤휴는 자신의 경전 해석과 학문 방법을 선배의 학설이라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검토와 토론을 통하여 검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 밖에 윤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효경"과 "내칙"이었다. 본래 "효경"은 주희와 유자징이 "소학"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대표적인 수신서로 꼽혔던 책이다. 그런데 주희는 "고본효경"을 고쳐서 "효경간오"를 지었는데, 윤휴는 이와 달리 원본 그대로의 "효경"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이론에만 천착하는 폐단을 없애려는 데 있었다. 이러한 취지에서 그는 "효경장구고금문고이"를 지었고 "효경외전" 3편과 "효경외전속" 3편을 새로 편집하였다. 또한 "내칙"은 "예기"에 실린 글로서 가족간의 예의범절 등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그 가운데 중심 덕목은 효이다. 따라서 윤휴는 효를 중심으로 "효경"과 "내칙"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내칙"은 효의 구체적 실천 사례를 자세히 적은 "효경"의 각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윤휴의 경전 해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물론 "대학", "중용"에 관한 독자적 주석들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윤휴는 "대학"의 팔조목 가운데 '성의'를 가장 중시하였다. "대학"은 실천 주체의 마음과 뜻을 중심으로 실천자의 덕목을 기술한 책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실천은 스스로의 실천이며, 자기 자신을 토대로 가족, 사회, 국가, 천하로 넓혀가는 실천 구조를 지닌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실천은 가족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그 중심 덕목이 효라고 보았다. 따라서 "대학", "효경", "내칙"은 윤휴의 사상 속에서 효의 실천이라는 일관된 체계를 갖는다. 윤휴는 당시 유학자들의 관심사인 리기, 사칠 등에 관한 토론을 구체적 삶과 상관없는 관념적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그러한 형이상학적 논변보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들을 종합하고 체계화하는 데에 주목하였다. "효경외기", "내칙외기" 등은 그가 관련된 주제들을 다른 경전들에서 가려 내어 경전의 근본 정신을 더욱 구체화시킨 것들이다. 이처럼 그의 경전 해석은 실천 가능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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