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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89 호
단기 4340. 5. 30 (음력 4.1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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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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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 하반기
본지의 <新人推薦作品賞>은 시를 지망하는 신인들이 가장 나오고 싶어하는 등용문으로 그 권위를 널리 인정받아 왔습니다. 기존의 추천제도와 신인상제도의 장점을 살려 본지가 도입한 <신인추천작품상>에 역량있는 많은 분들의 응모를 바랍니다.
분 야
시 ― 10편 이상
평론 ― 200자 60장 안팎 1편 이상
응모방법 및 심사
1. 추천과 동시에 당선으로 인정함.
2. 응모작품은 예심을 거친 후 추천심의위원 혹은 본지가 위촉한 심사위원에게 위임함.
3. 당선된 시인은 당선 이후 기성시인과 동등한 대우를 함.
4. 당선된 시인에게는 상패와 함께 소정의 상금을 지급함.
5. 평론 부문은 수시로 모집하여 발표함.
접수 마감 및 발표
상반기 마감 : 매년 3월 1일(본지 4월호 발표)
하반기 마감 : 매년 9월 1일(본지 10월호 발표)
기 타
1. 응모작품은 반드시 본지 편집부로 접수하여야 함.
2. 응모작품은 <신인추천작품상> 원고임을 명기하여야 함.
3. 원고 끝에 반드시 주소와 전화번호를 밝혀야 함.
4. 필명일 경우 반드시 본명을 밝혀야 함.
5. 간단한 자기소개서 혹은 이력서를 첨부하여야 함.
6. 워드프로세서나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를 환영함.
7. 본 응모 규정에 맞지 않는 작품은 접수를 거부함.
8. 인터넷이나 이메일로는 응모를 받지 않음.
9. 투고된 원고는 반환하지 않음.
120-814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324-1 동화빌라 202호
월간 현대시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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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먹는 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거짓 없는 사랑은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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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七十八章 (노자 - 도덕경 : 제7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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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莫柔弱於水, 而功堅强者, 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謂天下王, 正言若反.
천하막유약어수이공견강자, 막지능승, 이기무이역지.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 시이성인운, 수국지구시위사직주, 수국불상시위천하왕. 정언약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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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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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여덟째 장
직역
하늘아래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견고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데 그것을 이길 것은 없다. 그 것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긴다. 하늘 아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건만, 능히 행하지 못한다.이런 까닭에 성인은 말한다. 나라의 더러움을 지니는 이것을 일컬어 사직의 주인이라 한다. 나라의 상서롭지 못함을 지니는 이것이 하늘 아래 왕이 되는 것이다. 바른 말은 반대인 것 같다.
해석
자주 인용하는 말이지만 떨어지는 물은 바위를 꾀뚫는다. 물의 약함은 진정으로 약한 것이 아니다. 강함이 승화되어서 약해 보이는 것이다.
왕은 나라의 부귀를 한 몸에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왕이 아니라 도적이다. 왕은 천하의 일을 자신의 일로 삼고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따라서 나라의 온갖 일에 뛰어든다. 일이란 무엇인가.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은 서로가 나서서 할려고 하기 때문에 왕이 나설 필요가 없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나서서 하는 사람이 왕이다. 그래서 나라의 온갓 힘든 일을 나서서 하는 것이다. 임금이 되어서 부귀를 누리려 한다면 그는 도적인 것이다. 도적 중에서도 아주 큰 도적이다. 백성들의 고혈을 훔치는 자이기 때문이다. 노자의 왕관은 우리가 생각한 기존의 왕관과는 다르다. 하늘 아래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왕은 역사 이래로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지금의 현실에도 왕은 도적처럼 보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면에서 수천년전에 백성들을 위해서 온갖 어려움을 뒤집어 쓰고 나가는 왕을 찾은 노자는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때에 이런 왕을찾다니, 그러나 이러한 꿈이 있었기에 세계는 그나마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노자의 시대보다는 지금이 더욱 이러한 왕을 만들기가 쉽다. 지금의 왕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한 표를 소홀이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지도자는 아주 작은데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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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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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유능한 것은 없다. 물과 바꿀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을 이긴다는 이치를 이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능히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말했다. 나라의 욕됨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를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불상사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 한다. 도에서 나온 올바른 말은 진실과는 반대되는 것 같다.
주
사직: 사는 토지신, 직은 곡신을 지칭함. 땅과 곡식이 없으면 백성이 살아갈 수가 없고 나라도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나라마다 사직단을 만들어 토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었다. 이 제사의 제주는 임금이었다. 사직은 곧 국가나 조정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정언약반: 도에서 나온 올바른 말은 세상 사람들이 신봉하고 있는 상식이나 진실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임.
해
이 세상에서 물은 가장 부드럽고 약한 존재이지만, 억세고 단단한 것도 물의 힘을 당해 내지는 못한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모진 것을 이긴다는 이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지만 이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은 나라의 온갖 욕됨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며, 괴롭고 해로운 일도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큰그릇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도에서 나온 올바른 말은 언제나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나 진실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들린다. 이 장에서 노자는 다시 한번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이치를 물의 경우를 들어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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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1. 형성, 확립기/남북국 시대-고려 중기
2. 불교
4. 선종
선은 종래의 인도 불교와는 다른 중국적 특색을 나타내는 불교의 한 종파이다. 후대에 정형화된 표현에 따르면 문자에 구애받지 않으며(불입문자), 전통적인 경전의 가르침과는 달리 따로 전해지고(교외별전), 직접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직지인심), 사람의 본성을 보아 성불한다(시성성불)는 것이 선의 요체이다. 전통적으로 선종은 6세기 전반기의 달마를 그 창시자라고 설명하지만, 중국에서 커다란 세력을 얻는 것은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지고 난 이후 남종선 계통인 6조 혜능의 계통이 성행한 이후로 볼 수 있다. 신라에 선종이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도 아직 선이 널리 퍼지기 이전인 삼국 시대부터이지만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하대에 들어서이다. 최초의 선의 전래는 법랑에 의해 4조 도신의 선이 전해져 온 것이고, 이어서 신수 계통의 북종선이 신행에 의해서 전해져 왔다. 그러나 신라에서 선이 크게 세력을 뻗치는 것은 도의와 홍척이 귀국한 이후의 일이다. 도의와 홍척은 서당지장의 법을 전하여 받았는데, 서당지장은 혜능으로부터 남악회양 -> 마조도일 -> 서당지장으로 법맥이 연결되는 돈오를 주장하는 남종선 계통의 선법을 이어받았다.
그 뒤를 이어 중국에 유학하여 선을 배운 혜소, 혜철, 무염, 범일, 도윤 등 많은 승려들이 계속 귀국하면서 신라에서도 선종이 흥하게 되었다. 후기신라 시대에 이들에 의해 중국에서 도입된 선종은 주로 남종선 계통이었다. 이들은 주로 지방 호족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기존의 교학적인 불교를 비판하고 새로운 불교를 널리 전파하였다. 그리하여 국내 각처에 선종 사찰이 세워지고 특색 있는 여러 문파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신라의 선종은 고려 중기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구산선문으로 정리되어 호칭된다. 구산선문이라는 용어가 신라 말 고려 초의 선종계를 망라하여 지칭하는 용어로는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구산선문이라는 용어가 법적인 관계보다 인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선의 특질을 보여 준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일반적으로 선문구산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선문구산은 다음과 같다.
가지산 보림사(장흥):도의, 염거, 체징 실상산 실상사(남원):홍척, 수철 동리산 태안사(곡성):혜철, 여, 윤다, 도선 사굴산 굴산사(명주):범일, 개청, 행적 봉림산 봉림사(창원):현욱, 심희, 찬유 사자산 흥녕사(영월):도윤, 절중 희양산 봉암사(문경):도헌, 양부 성주산 성주사(보령):무염 수미산 광조사(해주):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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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갑종 근로소득세
본뜻 : 근로소득에는 갑종 근로소득과 을종 근로소득이 있다. 을종 근로소득이란 외국 기관 또는 국제 연합군(미국군 제외)으로부터 받는 급여와 국외에 있는 외국인 또는 외국법으로부터 받는 급여를 말한다. 이 을종 근로소득에 속하지 않는 모든 근로소득을 갑종 근로소득이라 한다. 갑종 근로소득은 봉급, 수당, 상여금, 연금, 퇴직금 또는 이와 비슷한 성질의 급여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원천징수를 하는 소득을 가리킨다. 이 갑종 근로소득에 매기는 세금을 갑종 근로소득세라고 한다
바뀐 뜻 : 사업 소득세, 양도 소득세, 근로 소득세 등등 수많은 소득세 중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로, 갑종 근로소득인 급여의 성격을 띤 소득에 매기는 세금을 가리킨다. 매달 급여에서 일정액을 세금으로 공제하는 원천징수의 방법을 택한다 줄여서 갑근세라고 한다.
"보기글" -자네, 이번에 갑근세 얼마나 냈나? -이거, 갑근세가 너무 올라서 걱정이야 이렇게 되면 꼬박꼬박 원천 과세하는 봉급생활자만 억울한 거 아냐?
개안
본뜻 : 절에서는 불상을 만들거나 불화를 그린 뒤 부처님을 모시는 봉불식을 하기 전까지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채로 남겨 둔다. 그러다가 첫 공양을 할 때 눈동자를 그려 넣는 점안 의식을 행한다 이것을 개안 공양이라고 하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불상이나 불화에 눈이 생겨하나의 온전한 불상이나 불화의 구실을 하게 된다.
바뀐 뜻 : 안보이던 눈이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한다. 또는 그 동안 미처 몰랐던 사실이나 진리를 깨우쳐 비로소 사물이나 사건을 확연히 알게 되는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보기글"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제 인생의 개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개안은 장님이 눈뜬 것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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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일체의 이론은 회색이다
러시아혁명을 주도한 레닌은 마르크스 이론을 수용하여 러시아에 잘 적용시켰다. 레닌(Vladimir Il'ich Lenin, 1870-1924)은 나름대로의 이론도 발전시켰지만, 그의 생애에서 중요했던 것은 이론보다는 현실이었다. 헛되이 쉬운 이론에 빠지지 않고 날카롭게 현실의 정곡을 찌르는 그의 자세는 러시아혁명이 발발하면서 잘 드러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의 장래도 불확실해졌다. 괴승 라스푸친이 1911년 황후인 알렉산드라를 통해 차르에게 "전쟁과 더불어 러시아와 당신들의 최후가 올 것이다."고 경고했다고 하는데, 이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 더욱이 황후는 지금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독일 출신이었던 것이다. 결국 보다못한 몇몇 귀족들이 라스푸친의 암살을 기도했다. 그들은 독주와 독약이 든 과자를 그에게 먹였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에게 기타를 쳐달라고 부탁하여 술을 더 마시고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결국 총을 쏘아 그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다시 일어나자 사람들은 달려들어 총을 쏘아댔다. 그래도 안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밧줄로 묶어서 네바강에 빠뜨렸다. 사흘 뒤 시체가 떠올라 검시한 결과, 그는 총이나 독약에 죽은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익사했다. 1917년에 접어들면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으로 2월 혁명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차르는 퇴위하고 러시아 의회였던 두마가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실질적인 권력을 모두 갖고 있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소비에트는 임시정부와 대립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혁명 후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은 상태였다.
레닌이 러시아혁명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은 망명지 스위스에서였다. 그것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는 당장 귀국하고 싶어했지만 임시정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로서는 레닌이 귀국하면 당장 자신들의 권력에 해를 미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평생을 기다려 온 순간이 닥쳐왔지만, 그는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그저 상황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그는 초조해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3월말에 그는 하나의 묘안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적국인 독일에 들어가서 스칸디나비아를 거쳐 러시아에 들어가는 시켰다. 그같은 일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성공적이었다. 독일은 당시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와, 서부전선에서는 프랑스와 동시에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가들이 러시아에 들어가 한쪽의 전쟁만이라도 종결시켜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혁명가들이 탄 열차는 완전히 밀봉되었다. 결국 레닌은 이 '밀봉열차'로 러시아에 돌아왔던 것이다. 레닌을 태운 밀봉열차가 핀란드와 러시아 국경을 넘어 페테르부르그의 한 역인 핀란드 역에 도착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 '토지는 농민에게', '즉각적인 전쟁종결'을 내세웠다. 이같은 주장에 모두 깜짝 놀랐다. 임시정부는 물론이고 소비에트 지도부내에서도 반대가 들끓었다. 심지어 그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던 볼셰비키조차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실감각과 판단력으로 반대파들을 점차 잠재우면서 자신의 논리를 펴갔는데, 이때 그가 동료들을 설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체의 이론은 회색이며 푸르른 것은 영원한 생명의 나무이다."
원래 이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한 학생이 신학기를 대비하기 위해 파우스트를 찾아가 조언을 듣고자 했다. 이때 마침 파우스트는 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그러자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대신해서 학생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해주는데, 그 가운데 나오는 말이다. 메피스토는 인생을 황금빛 나무에 비교하고 학생의 세계를 잿빛의 음산한 이론에 비유한 것이다. 어쨌든 레닌은 이로써 볼셰비키에게 일사불란한 행동지침을 제공했다.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결국 그해 10월에 볼셰비키는 군사행동을 감행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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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1.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여성
아내의 자립을 원하지 않는 남편은 즉시 단념하라.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생활이 자신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결혼과 동시에 스스로의 선택권을 포기해 버린 여성이 지리멸렬한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후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단 손에 넣은 것은 무엇 하나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단을 내리고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 보자.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결혼생활을 새롭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면 부부관계와 자기 자신의 어느 쪽이라도 변화시킬 방법은 있다. 어떻게? 아무튼 지금 곧 행동을 취해야 한다. 마음속에 정한 목표-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립과 기능을 연마할 기회를 잡으려는 목표-를 향해서 한 걸음씩 전진해야 하며, 자신을 믿고 정확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만두기를 원하는 사람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갖가지 방해와 압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 싸운다. 남편이 이해해 주고 협력해 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자립하려고 하는 아내의 시도를 무시하고 뒷바라지를 거절했다면 남편 외에 돕고 격려해 줄 친구를 한 사람 정도 찾아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남편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처음에는 서로 부드러운 대화로써 온화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노력한다. 당신의 웃는 얼굴은 굉장히 좋아요. 이 정도라도 괜찮다. 남편에게 칭찬하는 말을 한마디 건넨다. 비슷한 찬사가 되돌아오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끈기 있게 계속 하라. 언젠가는 남편도 반드시 동조해 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남편이 아내와 대등한 관계가 되려 하지 않고, 당신의 호의적인 말이나 마음을 터놓으려는 노력에도 응하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지금 이대로 갈 것인가, 그 사람 없는 인생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때 당신이 어느 정도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고, 예전처럼 남편과 헤어지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남편을 한 사람 몫으로 만들기 위해 아내가 반쪽짜리 역할을 떠맡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대에게 애기하기도 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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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비 새는 집에서 살았던 맹고불 맹사성
맹사성(1360-1438)의 본관은 신창이고, 자는 성지, 호는 동포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열 살 때 어머니상을 당하였는데 일주일 동안 미음도 먹지 않았고, 장례를 치른 뒤에 3년 동안 산소를 지키며 죽을 먹었다. 묘 곁에 잣나무가 있었는데 산돼지가 내려와 잣나무에 몸을 비비곤 하여 말라 죽게 되었다. 맹사성이 통곡하니 그 이튿날 산돼지가 그만 호랑이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의 지극한 효성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려문이 서게 되었다. 정승이 된 후에도 그의 집은 늘 가난하고 협소하였다. 하루는 병조판서가 공적인 일을 보고하러 그 집을 방문하였다. 그때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집의 곳곳이 새서 의관을 모두 적시게 되었다.
"정승의 집이 그렇게 초라한데 내가 어찌 행랑채를 짓겠는가?"
병조 판서는 집으로 돌아와 탄식하며, 집 지을 준비를 해 두었던 것을 다 치우라고 하였다. 맹사성의 본가가 온양에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 내려갈 때면 관청에 들르지 않고 시종 한 명을 데리고 간편한 차림으로 가곤 하였다. 한번은 소를 타고 온양에 내려갔는데 양성, 진위 두 사또가 공이 내려온다는 것을 듣고 장호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웬 사람이 소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 문책하였다. 그러자 맹사성이 사또가 보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가서 온양 맹고불이라고 일러라"
그 사람이 돌아가서 그렇게 말하니 이 말을 들은 두 사또가 혼쭐이 나서 도망가는 바람에 차고 있던 인끈이 언덕 아래 깊은 못에 빠지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이 못을 인침연이라고 부른다. 맹사성이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용인에서 비를 만나 여관을 찾게 되었다. 이 여관에서 제일 좋은 방은 어떤 사람이 먼저 들어와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딸린 하인들이 무척 많았고 그의 차림새도 무척 호화로웠다. 그는 영남에 사는 부자로서, 녹사(기록이나 문서, 전곡 등을 담당하는 관리) 시험을 보려고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구석방에 든 맹사성을 누각으로 불러 올려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거만스런 말투로 제의하였다. 막힘 없이 말을 주고받되 묻는 말은 '공'자로 끝내고 대답하는 말은 '당'자로 끝내기로 약속하였다. 이 제의에 따라 맹사성이 먼저 시작했다.
"서울은 무슨 일로 가는공?" "녹사 시험에 응시하러 간당" 맹사성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공이 뽑히도록 해줄공?" "하하, 그렇게 못한당" 뒷날 의정부에 그 사람이 녹사 입시생으로 들어와서 맹사성에게 인사하였다. 맹사성이 그에게 물었다. "그래, 어떤공?" 그는 엎드려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죽어지이당"
그 자리에 참석한 재신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맹사성이 그들에게 지난 이야기를 해주자 좌중은 배를 잡고 웃었다. 맹사성은 그를 녹사로 채용하였다. 그는 그 뒤 여러 고을에서 유능한 아전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이는 모두 맹사성의 추천 덕분이었다. 이 이야기는 '공당문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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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
베들레헴의 별
동방에서 별의 인도를 받고 '베들레헴'에 찾아온 세 사람의 박사는 갓난 예수가 있는 집 위에서 별이 멈추었으므로 그 집 안에 들어가서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만났다. 그리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한 다음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받쳤다. (마태복음 2장 1절)
이리하여 예수는 동방의 3박사로 대표되는 유대민족 이외의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 날을 '공현제'라하여 해마다 1월 6일 축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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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상/지혜/처세 |
나를 변화시키는 3분 - 하나오카다이가쿠
네 손으로 장작을 패라
헨리 포드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동차 발명을 완성하여 불과 20여 년만에 세계 굴지의 부호가 되었다. 그는 '적당한 운동과 조금 부족한 듯이 먹는 소식과 신선한 공기'를 건강의 비결로 삼아 지극히 간소한 생활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몸은 학처럼 여위었지만 매우 건강하여 엄동설한에도 외투를 입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 날 시의 모임에서 대회사의 중역으로 일하는, 첫눈에도 중역 티가 자르르 흐르는 뚱뚱한 친구를 만났다. 그가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포드 군, 자네는 당장 에라도 굶어 죽을 것처럼 바싹 여위었군 그래. 아무리 능률 향상이 중요해도 목숨을 이어갈 정도는 먹는 게 어떤가?" 능률 향상은 포드 회사의 방침이었다. 포드는 말했다. "충고는 고맙지만 건강에 대해서라면 자신 있네. 아직까지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네. 시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가끔 구경가지만 과식해서 수술 받는 사람들을 보면 으레 자네 같은 뚱보더라구." 회의가 끝나자 포드는 그 친구에게 다시 말했다. "내 건강의 비결을 보여 줄 테니 따라오게나." 포드는 그 친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난로 앞으로 끌고 갔다. 난로 위의 벽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액자에 적힌 글귀는 이런 것이었다. "네 손으로 장작을 패라. 이중으로 따뜻해진다."
조금 풍족해지면 우리는 곧 의식주의 유혹에 두 손을 들고 만다. 인간의 가련한 약점이다. 누구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즐기고, 사치스러운 음식에 파묻혀 호화롭고 큰 저택에 살고 싶어한다. 사람이 이런 일차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은 동물적 본능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유가 있다면 느긋한 삶을 즐기는 것을 특권처럼 생각하고 갖은 여유는 부리며 유유자적 일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게 우쭐대는 짓이며, 스스로 무덤을 파는 비극의 시작이다. 포드는 세계 굴지의 부호였다. 그러면서도 전혀 우쭐대지 않고 자신의 무덤을 파는 비극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적당한 운동과 조금 부족한 듯이 먹는 소식과 신선한 공기 세 가지를 건강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포드의 위대한 정신은 오로지 이것으로 대변된다. 나태해지기 쉬운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는 성실성이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것이다. 네 손으로 장작을 패라. 이중으로 따뜻해진다. 이 짧은 글귀 속에는 인생에 대한 갖가지 교훈이 가득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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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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