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편지】: 제 183 호
단기 4340. 5. 22 (음력 4.6)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한자가 ? 로 표시되어 안보이시는 경우 홈페이지에 오시면 해당 한자를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
한 마디 |
|
|
문학소식 |
전국소월문학 백일장
정의롭고 신선하고 향기로운 문학을 지향하는 새한국문학회와 종합문예지 「한국문인」에서는 김소월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한 일대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소월 백일장 및 세미나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밝은 미래를 문학과 함께 열어갈 수 있도록 작가 지망생을 배출하는 한편 청소년의 꿈을 실현하는 새로운 장이 될 것입니다. 참여를 기다립니다.
[ 참가안내 ] ▶ 일시와 장소 : 2007년 6월 9일 10시 양재시민의 숲 윤봉길회관 ▶ 대 상 : 전국 고등학생. 대학생 및 일반 ▶ 부 문 : 시? 수필 ▶ 작품시제 : 백일장 당일 출제 ▶ 심사발표 : 고등학생 추후 개별 통지(학교장, 개인), 일반은 당일 발표 (응모작품은 반환되지 않으며, 표절 또는 이전에 발표된 작품은 당선이 취소됩니다.)
[ 참가방법 ] ▶ 전화 또는 서신 접수 ▶ 학교장의 추천 또는 본인 신청 가능 개인 참가자는 당일 접수가능하며, 단체 신청은 2007년 5월 30일까지 접수 가능합니다. 신청접수자는 당일 해당장소 본부에 오전 9시 30분 까지 등록 구체적 사항 및 신청서식 발급은 홈페이지의 공지사항 참고 및 전화 문의
[ 참가신청 접수처 및 문의 ] ▶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4동 1345번지 새한국문학회 사무국 (우)137-064 ▶ 전화 : 02-594-4602 / 팩스 : 02-3476-4202, 02-533-4200 ▶ 홈페이지 : www.hkmoonin.co.kr
[ 특전 ] ▶ 고등부 상위 입상자는 대학 입학시 해당학과 특기자 추천서 발급 및 입상증명서 발급 ▶ 일반은 일정 교육 후 등단 문인으로 대우
|
|
글터 → 명언 / 격언 |
만조에는 모든 배가 떠오른다. / 존 F.케네디
|
|
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七十二章 (노자 - 도덕경 : 제72장)
|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夫唯不厭, 是以不厭, 是以聖人自知不自見, 自愛不自貴, 故去彼取此.
민불외위, 칙대위지, 무압기소거, 무염기소생, 부유불염, 시이불염, 시이성인자지불자견, 자애불자귀, 고거피취차.
|
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
일흔 두째 장
직역
백성들이 두려워할 위엄이 없으면 즉 큰 두려움이 온다. 그 사는 곳을 업신여기게 하지 말고, 그 살아가는 바를 싫어하게 하지 마라. 무릇 싫어하는 것이 없게 해야, 이것으로 그 삶을 싫어하지 않게된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자기를 알면서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아끼면서도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해석
사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이 권위라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에 따라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즉 백성들이 따를 규범이 없다면 다스리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쫒겨나게 된다. 백성들이 삶을 일일이 간섭을 하고, 그들이 삶을 지겹게 느끼게 된다면 어디선가 혁명의 세력이 싹트게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지겹다고 느끼는 것은 향락에 빠져 있을 때이다. 업무에 시달릴때는 지겹다고 느끼지 않는다. 힘들다고 느낄 뿐이다. 위정자가 지겨운 것은 향락에 지칠때이다. 그렇게 할려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야된다. 그럼 백성들은 자신의 삶을 지겹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노자의 시대와 지금 시대의 정치형태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지금은 백성들이 지겹게 여기면 위정자를 갈아치우면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노자는 자신이 짤리지 않고 위에 서는 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정권을 잡고 싶으면 백성들이 지겹게 느끼지 않게 해야한다. 힘들게 느끼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
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
72.
백성들이 두려워 할 만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큰 징벌이 내리게 된다. 백성들의 주거나 행동을 속박하지 말고, 그들의 생활과 생계 수단을 억누르지 말라. 억누르지 않는다면 싫어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스스로 알면서도 그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도 잘난 체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력의 다스림을 버리고 무위의 다스림을 택한다.
주
대위: 큰 위력, 큰 징벌. 부자현: 현은 드러내다, 나타내다, 보이다의 뜻. 현은 현과 통합, 따라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임. 거피취자: 억압과 형벌 위주의 정치를 버리고 무위와 무사의 정치를 택한다는 뜻임.
해
이 장에서 노자는 억압 위주의 법가적 통치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힘과 으름장으로 유지되는 질서란 결코 오래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은혜와 덕망인 것이다. 백성들이 위정자의 통치권에 복종치 않으면 보다 큰 위력 즉 극형을 예사로 하게 된다. 그리고 백성들의 주거나 행동거지에 대하여 세세한 교제와 압박을 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활 자체가 속박이 되어 버린 백성들은 유민이 되거나 도적이 되어 통치 질서에 대하여 도전하게 된다. 원래 인간 불신에 의한 인간 조종술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법가의 정치철학이다. 그것은 성악설에 근거를 주고 정치에서 윤리와 도덕을 애초부터 분리시키고 있다. 불신은 불신을 낳고 혼란은 더 큰 무질서를 조성케 한다. 성인은 자연의 이법을 체득하고 있으나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하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지 않는다. 위력과 형벌의 정치를 버리고 무위와 무사의 정치를 그는 택한다. 천하는 저절로 잘 다스려지며 백성들은 태평가를 부르게 된다.
|
|
|
글터 → 국사
|
한국 문화재 수난사 - 이구열
부록
갱론 도취옥탑 - 1907년 4월 13일자 논설
다나카 자작의 사절이 개성 근방의 옥탑을 탈취해 간 사건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엊그제 (서울 프레스) 신문(일제 통감부가 발행한 영자지)에 개탄한 바 있으니, 우리 대한매일신보의 사건 폭로를 그 신문이 받아준 것은 이번이 처음 인 듯하다. 그 기자의 비탄과 그 논조가 자못 솔직하였다. 따라서 본 기자가 그 내막을 재론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인은 거짓 사과를 잘 하는 만큼, 이 옥탑사건을 만약 엄밀하게 밝히지 않으면 그런 사태는 오늘처럼 이어질 것이다. 생각건대 한국은 옥탑을 잃고 한탄을 얻었으나 일본으로서는 옥탑을 얻고 잃은 것은 없게 된 것이다. (서울 프레스)가 보도하기를, 만약 이토 히로부미 후작이 한국에 있었던들 이런 못된 짓은 반드시 없었을 것이라 하였고, 일본인의 그 불미로운 행위를 가볍게 거론하려고 하면서, 일개 일본인으로 진기한 물건을 사고파는 자를 이번 문제에 끼어넣어 옥탑을 옮겨가려고 음모한 자는 그 상인이라고 꾸며대고 있다. 또한 이미 꾸며댄 말도 있다. 다나카 자작이 이 문제를 한국 내부대신과 궁내부대신에게 말하여 동의를 얻었다는 것이고, 그 대신들은 통해 황제의 허락도 얻었다는 말이 그것이다.
기자가 요 전날 쓴 바와 같이 황제에게서 그런 허락을 얻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나카 자작이 귀국하는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에 황제가 육백여 년의 그 고적을 옮겨가겠다는 것을 들어주었을 리 만무하고, 설령 옥탑을 선물로 삼기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황제의 본뜻의 아니었을 것임도 일본 사절도 역시 알았을 것이다. 결국 재난을 당한 옥탑의 탈취자는 그를 반출해 가면서 실컷 즐거워했을 것은 역시 뻔한 일이다. 우리가 탐문한 바로는 그 반출자는 전보통신과 철도관처의 협조를 받았고, 무장한 자들을 데리고 가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때 철도관청 사람들이 해체한 옥탑 전부를 기차로 실어갔다는데도, 그 사실을 전보로 내무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다. 만약에 이토 후작이 한국에 있었던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혹시 그랬을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 말이 어찌 한국사람을 위로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 후작이 한국에 와 있는 일본사람을 대신하여 어떻게든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면, 그가 자주 한국을 떠나 있을 때에도 적합한 사람으로 대리권한자를 정했어야 한다. 기자가 그에 대해 말할 것이 이뿐이 아니지만, 다만 옥탑을 완전하게 도로 갖다 놓을 것을 권고하며 이 글을 맺는다. |
|
|
글터 → 철학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 중세의 사상
1. 형성, 확립기/남북국 시대-고려 중기
1. 유학
남북국 시대의 유학
중세 봉건 사회가 성립하는 후기신라에 이르면 유학의 전장 제도뿐만 아니라 이념적 측면까지 수용하는 모습이 더욱 분명해진다. 신라의 국립 교육 기관인 국학(682)과 인재 등용을 위해 설치한 독서삼품과(788)의 교과목 중 "논어"와 "효경"이 공통 과목이 되고 있는 점을 보면, 원시 유학의 효제충신 정신이 당시 국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이념적 밑받침으로 기능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대표적인 유학자로는 외교 문장가로 유명한 강수와 설총을 들 수 있다. 강수는 불교는 속세를 벗어난 종교이기 때문에 유학의 도를 배우겠다고 하였으며, 또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를 배우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하여 실천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설총은 방언으로써 구경을 풀어 설명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비록 전하지는 않지만 이는 우리 나라 유학사상 최초의 경전 해설서이며, 유학이 실질적으로 소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그의 '화왕계' 한 편이 전하는데 이는 우화 형식의 글을 통해 유학의 덕치주의적 이상을 담고 있다. 후기신라 말기에는 도당 유학자, 특히 숙위 학생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숙위 학생은 대부분 육두품 계층에 속하여 당시 진골이 지배하는 골품제 사회와 마찰을 빚으면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시대 정신을 일구어 갔다. 지방 호족들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숙위 학생들은 고려가 건국하자 적극적으로 유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유학자로 최치원, 김운경, 김가기 등이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신라 골품 사회의 냉대 속에 유학뿐만 아니라 불교나 도교에도 관심을 가져 사상적 유랑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특히 최치원은 그의 '난랑비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고유 사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유, 불, 도 외래 사상과 조화시키고자 노력한 흔적을 보여 준다는 데서 사상사적 의의를 남긴 사람이다.
발해는 건국 초기부터 고구려 유민이 지배권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주체적으로 당 문화를 이룩하였다. 발해 문화는 고구려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당의 문화를 수용하여 이루어졌다. "구당서"에 따르면 발해에는 "자못 문자 및 서기가 있다"고 하여 한문학에 능한 자와 역사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후신임을 자칭한 발해는 태조 고왕 때부터 고구려 계통의 학자들을 모아 학문과 사상을 부흥시켰다. 고구려 유민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했던 만큼 지배 계층의 지도 이념은 유학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유학자들의 학설이나 주장이 담긴 자료는 없지만, 상류층 가운데 한문학에 능통하여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라든지, 당시의 국가 체제나 교육 제도를 통해서도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
|
|
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주책없다
본뜻 : 원말은 한자어 주착에서 나왔다. 주착은 '일정한 주견이나 줏대'를 뜻하는 말이므로'주착없다'는 곧 '일정한 자기 주견이나 줏대가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면서 '주책없다'로 소리가 변화되었고, 학계에서도 현실음의 변화를 인정해서 주책을 표준어로 삼았다.
바뀐 뜻 : 일상 생활의 어떤 상황에서 그 자리에 적당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할 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흔히 쓰는 '주책이다' '주책스럽다' 등은 잘못된 표현이다.
"보기글" -좀 전에 우리 대화에 끼어들어서 갑자기 엉뚱한 얘기한 그 사람, 조금 주책이 없더라 -아니, 모처럼 부부 동반으로 모인 자리에서 주책없게 부부 싸움 한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해요?
중뿔나게
본뜻 : 말 그대로 '가운데 뿔이 나게'의 뜻이다. 가운데 뿔이 났다는 건 다들 고른 가운데 갑자기 하나가 툭 튀어나와 눈에 띄는 것을 말한다.
바뀐 뜻 : 어떤 일에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주제넘게 나서는 것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기글" -문중 어른들 모인 자리에서는 중뿔나게 나서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상책이야 자칫잘못하다간 배운데 없는 녀석이란 소리 듣기 딱 알맞다구 -거기가 어떤 자리라구 네가 감히 중뿔나게 나서는 거냐? 그렇게 나서서 잘된 일이 도대체 뭐가 있어? 괜시리 일만 그르쳐 놨잖아
|
|
|
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나는 고발한다
1898년 1월 13일 파리 시민들은 신문에 난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의 글을 보고 놀랐다. 문인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로로르"지에 발표했던 것이다. 이 글은 1894년에 일어나 그 동안 여러 차례 문제가 되어 온 소위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1894년 여름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훔쳐낸, 발신인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한 통의 편지가 프랑스 육군성의 손에 들어왔다. 편지의 수신인은 독일대사관부 육군무관 슈바르트코펜이었으며, 그 속에는 발신인이 슈바르트코펜에게 보내고자 하는 프랑스 육군의 기밀문서명이 열거되어 있었다. 육군장교 중에 매국노가 있음이 분명했다. 편지의 필적이 참모본부의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것과 흡사했으므로 그는 곧 체포되었다. 드레퓌스가 계속 무죄를 주장했고, 필적도 그의 것이라 단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사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반유태주의자 기관지 "자유언론"이 유태인인 드레퓌스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그는 이러한 반유태주의 여론의 압력에 밀려 종신금고형을 언도받고 아프리카 기니에 있는 섬으로 유형되었다. 그리고 드레퓌스라는 이름도 프랑스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1896년 3월 육군성 정보장교인 피카르 중령이 슈바르츠코펜의 편지를 입수했다. 수신인은 프랑스 육군 에스테라지 소령이었다. 전후사정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슈바르츠코펜에게 고용된 것이 틀림없었다. 피카르 중령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군 고위층은 이러한 사실을 묵살하고 오히려 드레퓌스의 형이 에스테라지를 고소했으나, 에스테라지는 국가주의, 반유태주의 신문에 선동된 여론에 의해 무죄선고를 받았다. 오히려 피카르 중령만 군사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휘가로"지가 드레퓌스의 결백을 확신하고 그것을 주장했지만, 다른 반대여론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외국에서도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심을 요구하는 세력이 미약해서 드레퓌스의 재심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졸라가 과감히 나서서 군부를 중심으로 한 반유태주의에 도전장에 낸 것이다. 그는 며칠밤을 꼬박 새우면서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큰 호소력을 발휘하여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는 여론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졸라는 고발당해 유죄판결을 받고 한동안 영국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졸라의 영웅적인 행위로 인해 여론은 바뀌기 시작했다.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는 운동이 강력하게 들끓기 시작했다. 프랑스 여론은 이제 완전히 두 갈래로 나누어져 대립하게 되었다. 한쪽은 그의 재심을 반대하는 측으로 반유태주의자들과 우익정치가, 군인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그의 재심을 요구하는 사람들로서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원래 이 사건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반유태주의와 우익이 드레퓌스 문제로 결집하여 공화정에 반대하고 나서자 여기에 두려움을 느껴 공화주의를 지지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후 드레퓌스는 재심을 받아 특사로 석방되었고 1906년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공화주의파들이 대동단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
|
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1.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여성
'상대 취향'이 아닌 '자기 취향'의 여자가 되라
정당한 대접을 해주지 않는 남성과 결혼하는 여성은 그 지독한 대접을 어이없이 그냥 받아들여 버린다.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사고 방식까지 일일이 간섭을 받더라도 버림받지만 않는다면 여자로서 자신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타인의 기분을 배려하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닐뿐더러 인간으로서의 약점도 아니라고 가르치는 대신에, 그녀는 스스로 항복하고 상대를 자기 멋대로 행동하게 만든다. 어떤 여성은 남성의 부정적인 반응뿐만 아니라 남성이 전혀 반응을 나타 내지 않는 것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 버린다. 어느 주부의 고백에 따르면,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해서는 드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그것도 1년에 불과 한두 번에 지나지 않지만-밖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해서 10년 남짓 지났지만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그렇게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왜 그는 아내에게 한마디도 칭찬을 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 쪽에서 남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남편으로 있어 주는 것만으로 그녀는 고마운 것이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 좋은 증거이다.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을까? 그 한계를 처음부터 정해 두어서는 안 된다. 로맨스의 그물에 걸려들면 어느 사이엔가 상대의 변덕, 즉 '이러한 여성이 되라'고 남성의 기호에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여성은 자기 취향으로 자신을 가꾸지 않고 뒤범벅이 되어 남성 취향의 관계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상대의 인생에서 자기의 위치를 신중히 생각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기 시작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
|
|
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중이 되어 왕좌를 양보한 효령대군
효령대군(1396-1486) 보의 처음 이름은 우, 자는 선숙이며, 태종의 둘째 아들이다. 세종이 성덕이 있다고 하여 맏아들인 양녕대군은 자기의 세자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부러 방탕한 행동을 하였고, 효령대군은 궐내에 있었다. 양녕대군이 저녁에 효령대군의 처소에 가보니 그는 촛불을 환히 켜고 글을 읽고 있었다. 양녕대군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여 물었다.
"너는 내게 병이 있다는 것과 충녕(세종)에게 성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양녕대군이 묻자 효령대군은 합장을 하며 말했다. "이밖에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양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이튿날 새벽에 효령대군이 합장을 하고 벽을 향해 앉아 있는 것을 본 궁녀가 임금에게 보고를 드렸다. 이 보고를 받은 태종이 깜짝 놀라 직접 가서 효령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꿈에 부처님이 와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의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으로써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태종은 놀랍게 여기고 돌아갔다. 이후부터 효령대군은 항상 불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예법을 갖추었다. 맏형인 양녕대군이 술과 고기를 즐기자 어느 날 효령이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큰형님, 술과 고기를 끊으세요" 양녕대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살아서는 왕의 형이고 죽어서는 부처님의 형이 될 텐데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효형은 절에 들어가서 하루종일 북을 쳤다. 어찌나 많이 쳤던지 북맨 가죽이 하얗게 일어났다.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물건을 가리켜 '효령대군 북가죽'이란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
|
|
글터 → 이글저글 |
알카포네
'밤의 대통령'하면 '알카포네'를 연상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가 비명에 가지 않고 유유자적의 생활을 즐기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하와이의 별장에서 폐염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엄격한 금주법이 시행되던 1920년대의 미국은 법망을 뚫고 주류의 밀매로 한 몫 보려는 갱들이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무법의 거리 시카고에서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하여 악명을 떨친 갱의 두목이 바로 이태리 이민의 아들 '알카포네'였다. 그는 잔인 무도하기로도 이름이 났으며 29년의 '성 발렌타인제의 학살'을 비롯, 직접 간접으로 그의 손에 죽은 자는 2백 50명이나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법망에 걸려든 일이 거의 없었고 다만 탈세 사건으로 말미암아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을 뿐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다소 색다르지만 '정신적인 대통령'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
|
|
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