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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82 호
단기 4340. 5. 18 (음력 4.2)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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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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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2000만원 고료 문학수첩 작가상
모집 부문 : 장편소설(원고지700매 내외) 응모 자격 : 신인.기성제한 없음 응모 마감 : 2007년 6월 30일 발 표 : 문학수첩 2007년 가을호 상 금 : 2,000만원 응모 원칙 응모작품은 우편으로만 접수합니다. 응모작품 처음과 끝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를 기재하십시오. 응모작품는 A4용지 3매 분량의 줄거리를 첨부해야 합니다. 당선작품에 관한 저작권은 5년간 (주)문학수첩에 귀속됩니다. 응모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으며 기타 사항은 이메일로 문의해 주십시오. moonhak@moonhak.co.kr
역량 있는 작가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문화단지)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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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만일 당신이 비밀을 바람에게 털어놓았다면 바람이그것을 나무들에게 털어놓는다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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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七十一章 (노자 - 도덕경 : 제7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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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 不知, 上, 不知, 知, 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지, 부지, 상, 부지, 지, 병, 부유병병, 시이불병, 성인불병, 이기병병, 시이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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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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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한째 장
직역
알면서도 알지 않는 것이 최상이오,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무릇 오직 병을 병으로 알면 이것은 병이 아니다. 성인은 병이 없다. 그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이런 까닭에 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해석
자전거를 탈 줄 아는가. 자전거를 타면서 커브를 틀때 어느정도의 각도를 틀어야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도는지 생각을 하는가. 그걸 생각하고 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고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감각으로 길에 맞게 각도를 튼다. 그것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아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앎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것을 아는 것보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최상의 앎이다.
교통사고가 났다. 그런데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사촌이 의사인 사람이 나서서 의료행위를 하겠다고 깝죽댄다. 응급치료를 넘어서 전문치료를 한다고 상처에 칼을 댄다. 그럼 급한 환자가 얼나마 고쳐질까.
술을 먹는다. 그런데 얼마만큼 먹으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적당히 마신다. 그럼 몸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아픈지도 모르고 몸에 어디가 고장나는지도 모르면서 술을 먹는다. 그것은 큰 병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본다. 부귀공명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몸을 부셔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노자가 말한 삶을 살 수가 있을까. 문득 회의가 든다. 자신의 몸에 병이 들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현실에서 물러나 있다고 자신의 한 몸을 보존 할 수 있는가. 굶어 죽기 딱 알맞은 말을 한 것은 아닌가. 병을 알아도 치료할 수 없는 현실은 어떻게 하는가. 고민이다. 내가 버려야 할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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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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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오직 병을 알아야만 병이 되지 않는다. 성인에게는 이와 같은 병이 없다. 그것은 자신의 병을 병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주
상: 가장 좋다. 병: 결점, 폐단.
해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다. 모르면서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은 도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도란 인간의 감각 능력을 초월한 것이므로 우리의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논리를 초월한 직관일 뿐이다. 성인은 도의 신비성과 불가사의함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의 지식의 세계란 형이하의 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감각할 수 있고 구체화될 수 있는 상식의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의 세계에 만족해하며 그것을 진리 인양 과신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의 세계, 경험의 세계를 있게 하는 것은 형이상의 세계 즉 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를 체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지식은 막연한 억측과 주먹구구식의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개인적 편견과 기호에 좌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자각이 없이 자신의 지식에 세계를 진리의 세계로 확신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병폐요 폐단이다. 병폐를 병폐로 알고 있으면 즉 자신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무지와 무력을 자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병폐가 되지 않는다. 성인은 도의 신비성과 불가사의함을 깨닫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병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말하고 있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 (논어 위정편) 그러나 노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아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근원적인 것에 대한 인간 인식의 한계성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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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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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재 수난사 - 이구열
부록
사수 옥탑 - 1907 3월 12일자 잡보
개성군과 풍덕군 접경지역에 있는 경천사탑은 고려 공민왕 때에 공주를 위해 옥석(대리석)으로 10여 층(10층)이 되게 세운 수백 년 된 유물이다. 한데 무슨 허가를 받았는지, 일본인들이 그 탑을 무너뜨려 일본으로 실어간다 하기에, 두군민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결사적으로 빼앗기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옥탑 탈거의 속문 - 1907년 3월 21일자 잡보
개성 쪽에 있는 옥탑을 일본인들이 약탈해간 사건은 이미 거론하였지만, 그곳에서 방금 또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풍덕군 서면 경천리 읍내에서 10여 리 되는 곳에 있었던 그 탑은 고려 공민왕 때에 중국 원나라의 노국공주가 공민왕의 왕비로 시집오면서 석탑재를 가지고 와서 세웠던 것으로, 서울의 사동탑(원각사지 십층석탑)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중국 원나라 재상 탈탈의 원탑이다. 그 돌은 옥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며, 돌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여 사동탑과 똑같다. 아래층에 조각된 인물상들은 무지한 부녀자들이 쪼아가 상처를 입었고, 윗층의 인물상들은 온전하니, 이는 6백여 년이나 된 유물이다. 지난 3월 6일에 일본인 수십 명이 많은 인부를 데리고 와서 허락문서도 없이 탑을 헌다는 사실을 군청에서 듣고, 그를 막으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날은 탑을 헐기 위한 장목 등만 가져다 놓았고, 10일에 가보았더니 탑은 이미 다 헐려 달구지 여러 대로 거의 다 운반되어 갔고, 남아 있는 탑석은 40여 덩어리였다. 그 불법반출 때의 정황을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8일에 내부의 경무 고문 통역관 와타나베 등이 석탑을 조사하려고 내려왔다기에 군수가 같이 가서 하루 머무르며 그 운송을 금지시킴과 함께 인부들은 쫓아보냈고, 만일 내부에서 허락문서가 도착하면 그 뒤에 실어가느 것을 논의하자고 말하고, 그 즉시 그 문제를 개성 이사청 경부가 하기노에게 조회하고, 또 내부와 도에도 보고하였다. 뿐만아니라, 동네사람 수십 명을 불러내 며칠이라도 산에 올라가 탑을 지키라고 하였더니 일본인과 인부들이 다짜고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면서 탑을 헐어 10여 대의 달구지로 실어가니, 동네사람들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하기에, 군수가 현지에 달려가 보았더니, 완전히 실어가고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관리들에게 들으니, 작년 가을에 성명을 알 수 없는 감리자가 일본인 승려 아유가이·다이엔·에묘의 청원을 받아 탑이 섰던 경천사 터에 사찰을 새로 세우겠다더니, 이번 일도 일본인이 아유가이 등을 시켜서 저지른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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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 시대별로 본 한국 철학
2. 고대의 사상/고조선--삼국 시대
5. 화랑도
화랑도는 풍월도 혹은 풍류도라고도 한다. 화랑도는 신라 진흥왕 때 비로소 제도로서 정착되면서 그 정신을 진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원은 이보다 앞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남선에 따르면 풍월이나 풍류는 '부루'라는 말을 한자음으로 옮긴 것이며, 부루의 도란 곧 신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 때 신도는 고조선의 종교 사상이므로, 고대 종교의 신도 사상인 풍류도, 풍월도가 화랑의 정신 또는 이념인 화랑도로 전승되어 구체화되고 발전하였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한편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이 가르침이 만들어진 근원은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이는 실로 삼교를 포함하는 것으로 뭇 생명을 교화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선사"라는 책이 남아 있지 않아 풍류도의 근원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없다. 다만 고구려에도 조의선인 등의 관직이 있었고 경당을 통해 청소년을 교육한 사실이 있음을 볼 때, 화랑도와 같은 유형의 사상이 신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그보다 오랜 근원이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화랑의 대표 인물인 김유신의 설화는 화랑도와 단군 신화, 무속의 상호 연관성을 잘 대변해 준다. 김유신이 삼국 통일의 염원을 품고 산의 석굴에서 천제에게 기원하자 한 노인이 나타나 능력을 전수해 주었다는 "삼국유사"의 설화는 다분히 무속적일 뿐만 아니라 곰이 동굴에서 극기를 통해 인간으로 환생한 단군 신화의 내용과도 유사하다. 이 밖에도 화랑이 노래와 음악을 즐기고, 유명한 산과 큰 강을 유람하던 수양 방법은 고대의 제천 행사에서 필수적으로 따르던 노래와 춤, 산악 숭배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신라는 화랑의 정신과 기백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외래 종교나 사상의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나 임신서기석의 "충성의 도리를 견지하자"는 맹세 등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화랑도는 불교와 유학 등 외래 사상의 일부를 파기하거나 선택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고유 사상만으로는 부족한 가치관을 보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래의 고유 신앙과 사상에 외래 사상을 소화하고 흡수한 화랑도는 독특한 사상 체계를 형성하였다.
화랑 제도는 지, 덕, 체의 연마라는 교육적 기능과 인재의 발굴 및 양성이라는 정치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신라의 사회와 정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서 "현명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여기에서 자라나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들이 이로 말미암아 생겨났다"고 말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니다. 그리고 신채호의 지적처럼 신라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화랑의 전통이 조선을 온통 중국화하려는 기도를 저지한, 다시 말하면 조선이 조선되게 한 정신적 지주로 작용하였는지도 모른다.
* 더 읽어 보아야 할 책들
1. 고유 사상 부분 차주환, "한국도교사상연구" (한국문화연구소, 1978)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김홍철 외, "한국종교사상사" 4 (연세대학교출판부, 1992)
2. 유학 부분 김충열, "고려유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1984) 주홍성 외, "한국철학사상사", 김문용 외 옮김 (예문서원, 1993)
3. 불교 부분 박종홍, "한국사상사" (불교편) (서문문고) 고익진, "한국의 불교사상" (동국대학교출판부, 1987) 불교신문사 편, "한국불교인물사상사" (민족사, 1990) 불교문화연구원, "한국불교사상사개관" (동국대학교출판부, 1993)
4. 도가 사상 부분 이능화, "조선도교사", 이종은 역주 (보함문화사, 1977) 차주환, "한국도교사상연구" (한국문화연구소, 1978) 이정호 외, "국민윤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93)
5. 화랑도 부분 유동식,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 (연세대학교출판부) 김충열, "고려유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1984) 이정호 외, "국민윤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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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영락없다
본뜻 : 숫자를 나눌 때 딱 맞아 떨어져 나머지가 0이 되었다는 말이다.
바뀐 뜻 : 사리가 분명하고 이치에 딱 들어맞는다는 뜻으로 강조를 나타낼 경우에만 사용한다. '영락없다'는 한자에서 나온 말이므로 '틀림없다'로 바꿔 쓰는 것이 좋다. 그냥 영락이라고 쓸 경우에는 뜻이 사뭇 달라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세력이나 사람이 아주 보잘 것 없이 된 상황을 가리키는 것으로 '김 진사댁 가문이 아주 영락했더구만' 등에 쓰인다.
"보기글" -그 친구가 약속한 것이라면 영락없으니까 믿어 -그 일은 영락없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될 거야
주먹구구
본뜻 : 주먹으로 구구셈을 따지듯이 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며 구구셈을 하는 것은, 하는 당사자도 틀리기 쉬울 뿐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기도 힘들다.
바뀐 뜻 : 정확하지 못한 계산이나 계획성 없이 어림짐작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주먹구구하듯 한다고 한다.
"보기글" -그런 큰 회사의 임금 체계가 어찌 그렇게 주먹구구식이냐?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회사를 경영해서야 어디 한 달인들 버티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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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무엇을 할 것인가?
가끔은 정치 팜플렛보다 문학작품이 정치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정치 이론서는 일반적으로 딱딱하기 마련이어서 대중들이 접근하는 데는 문학작품이 더 용이하다는 이유도 있겠고,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이 현실을 더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더 설득력 있다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또 문학작품은 대개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한 책이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체르니셰프스키( Chemyshevskii, 1828-1889)라는 사상가가 쓴 이 책은 그 당시 혁명과 변혁을 꿈꾸던 젊은이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사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론을 주로 쓰던 사람이었다. 그가 활약한 "현대"라는 잡지는 당시 러시아에서 제일가는 월간지였다. 사회주의 혁명사상을 갖고 있던 그가 평론을 통해 차르체제를 비관하고 나오자, 정부는 감시와 회유로 그의 비판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감시와 회유를 거절하고 계속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자, 마침내 정부는 그가 외국의 망명자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 투옥시켰다. 그런데 감방에 있는 동안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을 써서 자신의 사상을 오히려 더 잘 유포시켰다. 사실 이 책은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인정했다시피 이 작품의 목적은 어떤 예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어떤 인간상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의 심오한 논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차르 전제정의 암흑 속에 갇혀 있었다. 비록 1861년에 농노제가 해체되었다고는 하지만, 농민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젊능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사상적인 혼란에 빠져 있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이 소설은 하나의 해답을 제공했던 것이다.
Chernyshevsky
이 작품에는 여러 인간형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 라흐메토프는 농민을 위한 순수한 순교자의 정신을 갖춘 청년과 혁명가들의 이상형이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단련하고 고통과 고뇌를 참을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해 못 위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그야말로 혁명을 꿈꾸는 러시아 지식인들이 지녀야 할 전형적인 인간형이었던 것이다. 라흐메토프가 전형적인 혁명적 지식인상이었다면 키르사노프나 알렉산드로브나와 같이 기존 사회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과감한 사회개혁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이들과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각종의 동지회나 생활공동체를 조직하고, 여성동지들을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구실로 허위 혼인신고를 하는 예가 속출하여 기성세대들을 당황시켰다. 이 소설은 이후 1870년대 등장하게 되는 지식인 운동인 '브 나로드(인민 속으로)'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지식인들의 빚갚음 운동이라고 할 만한 이 운동을 통해 지식인들은 농촌에 들어가 인민들과 생활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고자 했다.
이 소설은 잡지에 발표되었지만, 곧 금지되었다. 이때부터 이 소설은 비밀스럽게 읽혀졌다. 러시아 혁명운동에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마르크스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작품을 읽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웠다고 전재지거니와 레닌도 이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표시했다. 레닌이 1902년에 집필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유명한 소책자의 제목도 체르니셰프스키의 이 소설 제목을 따서 지었다. 그는 자신의 형이 차르의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하자, 이 책을 다시 읽었다고 한다. 하루는 동료가 이 책의 구성이 단순하다고 비판하자,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의 삶을 뒤바꾸어 놓았는지 상상해 보라고 하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 적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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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1.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여성
사과할 줄 모르는 남성은 경계할 것
결혼하고도 연애시절처럼 나를 대해줄까, 그 이상으로 나를 소중히 여겨 주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연애시절을 무난히 지내면 결혼하고 나서 보다 큰 권한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도 있다. 남성은 힘을 원하지만 여성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힘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의 일을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의 생활을 지배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하는 힘이 작을수록 사람은 복종적 순응적이 된다. 대개의 경우 여성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 스스로 살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까 두려워 자신의 인생을 남성에게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자기'를 가진 여성이라면 남성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의 언동이 모순되는 경우엔 그냥 흘려 넘기지 않고 그것을 지적하며 상대에게 확실히 말해준다. 이를테면 8시 약속인데 상대가 전화연락도 없이 9시에 모습을 나타냈다면, 그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행위라고 분명히 의사표시를 한다. 일부러 그가 보는 앞에서 문을 쾅 닫는다든지 볼멘 얼굴을 지어 보이라는 것이 아니다. 재치 있는 여성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걱정했어요. 기다린다는 건 지루한 일이에요. 기다리는 여자의 역할이라면 나는 사양하겠어요. 이제부터 늦어질 것 같으면 전화해 주겠어요? 또 연락도 없이 한 시간이나 늦는다면 당신이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만일 상대가 "교통체증이 심해서(혹은 회의가 길어져서, 옛 친구한테 붙잡혀서 등등) 전화할 틈이 없었어. 어쨌든 큰일은 아니잖아? 이렇게 왔으니까! 하는 반응을 보였다면 그가 어떤 남자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감정적 폭발은 여성이 자기 주장을 펼치거나 비판을 할 때마다 생길 것이다. 이런 남자는 한 덩이의 석탄에 지나지 않을 뿐, 다이아몬드 원석은 결코 될 수 없다.
"미안, 미안, 정말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지! 이제부터는 늦어질 듯하면 전화를 할게"하는 반응이 되돌아온다면 그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남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기간 중에 거의 매일 늦게 오는 남성은 결혼하고 나서는 귀가 시간이 늦어질 것이다. 또한 친구 앞에서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듣지 말게.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하고 자신의 여자 친구를 바보, 취급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부부의 맹세를 한 순간부터 아내에게 '가련한 여자'일 것을 강요하는 남자는 학업이나 일을 통해서 성장하려고 하는 아내의 모든 시도에 위협을 느낀다.
"저 사람이 대학진학을 하거나 일을 가짐으로써 나를 앞지르지 못하게 할거야. 감히 자기가 나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어!"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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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살아서는 왕의 형, 죽어서는 부처님의 형 양녕대군
양녕대군(1394-1462)은 태종의 장남으로 제일 먼저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는 천품이 활달하고 문장에 능숙하였다. 그는 동생 세종이 임금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미친 척하며 함부로 행동하였다. 드디어 태종 18년(1418), 영의정 유정현 등이 문무 백관을 거느리고 합동으로 아뢰어 세자가 덕이 없으니 폐위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이에 태종이 세자의 아들 세손을 세우려 하자 여러 신하들이 또 반대하였다. "상께서 세자를 그토록 잘 가르쳐 길렀는데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제 또 어리신 세손을 세운다면 어떻게 뒷날을 보장하겠나이까? 더구나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그 아들을 세우는 것은 의리에 마땅치 않습니다. 다시 어진 왕자를 택하여 세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경들이 어진 왕자를 택하여 건의하라" 이조 판서 황희가 아뢰었다. "나라의 세자는 함부로 가볍게 세울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이직도 불가함을 굳이 고집하였다. 태종은 화가 나서 황희 등을 문밖으로 내쫓고 재신들에게 말하였다. "충녕대군(뒤에 세종임금이 됨)은 천성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아무리 춥고 더운 날에도 밤새워 글을 읽을 정도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사리에 통달하니 나는 충녕을 세자로 삼고 싶다" 신하들이 축하를 올리며 말하였다. "신들이 합동으로 아뢰어 어진 왕자를 택하라고 한 것도 바로 충녕을 두고 드린 말씀입니다" 태종은 드디어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고 세자 양녕대군을 폐위하여 광주로 내쫓았다. 양녕대군은 이때부터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남루한 옷에 노새를 타고 산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를 일러 태백(주나라 태왕의 장자, 태왕이 유난히 총명한 손자 창에게 왕통을 이으려고 계력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나라의 앞날을 위해 동생 중옹과 다른 나라로 떠났다)의 지극한 덕이 있다고 하였다. 세종은 형 양녕과 우애가 극진한 사이였다. 양녕이 관서(평안도) 지방 유람을 떠날 때였다. 양녕이 세종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세종은 여색을 조심할 것을 특별히 당부했다. 양녕이 떠난 뒤에 세종은 즉시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을 내려 "만약대군을 가까이 한 기생이 있거든 즉시 보고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평안도 지방의 수령 방백들은 예쁜 기생을 골라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양녕대군이 정주에 도착하자, 소복을 입고 엷게 화장을 한 예쁜 기생 하나가 곡을 하는데 그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아름다웠다. 소리에 마음이 끌린 대군은 곧 사람을 보내어 그 기생을 불러와 함께 잠자리를 한 뒤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달빛이 베갯머리를 엿볼 일이 없는데 바람은 무슨 일로 비단 장막을 젖히나
이튿날 감사는 그 기생을 역마를 이용하여 서울로 보내고, 그 시도 임금께 아뢰었다. 세종은 그 기생으로 하여금 그 시를 노래로 부를 수 있도록 연습하라고 하였다. 양녕대군이 평안도에서 돌아와 세종께 배알하니, 임금이 대군에게 물었다.
"지난번 작별할 때 한 말씀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신이 어찌 감히 성교를 잊었겠나이까. 삼가 받들고 있나이다" "형님이 비단 이부자리 속에서도 그 말씀을 지키셨다니 기쁘고도 다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쁜 여인을 한 사람 준비시켰나이다" 이어서 세종은 궁중에 주연을 차리고 그 기생으로 하여금 그 시로써 노래부르고 대군에게 술을 권하도록 하였다. 그 기생과는 비록 밤을 함께 지낸 사이지만 밤에 만났던 까닭에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노래의 가사 내용을 듣고서야 알아차린 양녕대군은 그 즉시 뜰을 내려와 벌받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세종 역시 뜰 밑으로 내려가 대군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정담을 나누었으며, 그 기생을 양녕에게 돌려주었다. 이 기생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었으나 어미의 성과 관향을 알 수 없으므로 그냥 고정정이라고 불렀다. 고정정 역시 자유분방하게 어물과 육류를 물물교환 하면서 살았는데 교환이 이루어진 뒤에도 혹시 고기가 좋지 않으면 그 고기가 이미 삶긴 뒤에라도 반드시 되물리고야 말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되물리는 교역을 일러서 '고정정교역'이라고 일컬었다.
양녕대군의 후손 이명하란 사람이 어느 날 자기 부인과 더불어 장기를 두다가 떼를 써서 강제로 물리려고 하였다.
"당신은 고정정이 아닌데 어찌하여 번번이 물립니까?" 부인이 묻자 남편이 발끈 성을 냈다. "당신은 어찌하여 장기 때문에 남의 조상을 욕하는 거요" 그 부인이 부끄러워하면서 사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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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
'덴마크'의 유명한 동화작가 '크리스천 한스 안데르센' (1805-1875)의 대표적 동화 가운데 하나.
옛날 '아라비아'에 몹시 사치를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어서 수없이 아름다운 옷을 만들게 했다. 하루는 사기꾼 두 사람이 옷을 만드는 명수라고 속여서 많은 돈을 받고 임금님의 옷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옷을 만드는 시늉을 하면서 임금님에게는 투명한 천으로 만들기 때문에 현명한 사람은 그 천을 볼 수 있어도 어리석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속인다. 어리석으면서도 자만심이 강한 임금님은 사기꾼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알몸뚱이로 시가를 행진하다가 창피를 당한다.
속은 비어 있는 주제에 겉치레에만 급급하는 사람을 비꼬는 이야기. 하긴 스커트의 자락이 끝없이 올라가고 여름의 해변에는 '비키니 스타일'이 판을 치며 발가벗기를 좋아하는 세대이고 보면 멀잖아 발가벗은 아가씨 거리를 활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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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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