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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76 호
단기 4340. 5. 9 (음력 03.2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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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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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건강보장 30주년 기념 건강보험체험수기 공모 요강 국민의 평생 건강파수꾼인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건강보험제도 시행 30주년을 맞아 건강보험과 관련한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인 체험 수기를 공모합니다. 응모요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마감 : 2007년 5월31일 목요일 오후 6시 ▷ 자격 : 전 국민 ※ 건강보험 가입자(피부양자)인 외국인, 재외국민 응모 가능 ▷ 발표 : 2007년 6월 15일 금요일 우리 공단 홈페이지 ‘알림마당’ ▷수기 내용 건강보험제도(의료급여제도)와 관련한 인상적인 체험 또는 감동적인 사례 ▷원고 분량 : 200자 원고지 20매 내외 ▷ 원고 제출 : 우편, 방문 또는 전자우편 접수 - 제출처 :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8-9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 건강보험 체험수기 담당자 앞 (우편번호 121-749) - 제출 전자우편주소 : avuso@nhic.or.kr ▷시상 내용
구 분 |
대 상 자 |
상 금 |
최우수상 |
1명 |
200만 원 |
우수상 |
3명 |
각 100만 원 |
장려상 |
5명 |
각 50만 원 |
?± 모든 응모 작품은 순수 개인체험담이어야 합니다. 수상작이 체험담이 아닌 창작된 허구의 수기로 밝혀질 경우 수상을 무효 처리합니다. ?² 원고 첫 장에 제목, 주소, 본명, 나이, 연락처(자택전화, 이동전화)를 기재해야 합니다. ?³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원고를 제출할 경우 글자 크기를 14포인트로 하여 주십시오. ?´ 우편으로 원고를 제출할 경우 봉투에 '체험수기 공모작품'이라고 표기해 주십시오. 마감 당일 우편 소인이 찍힌 응모작까지 유효합니다. ?µ 모든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으며, 수상 작품의 사용권한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습니다. ※ 더 자세한 사항은 「건강보험체험수기 공모계획」을 참고하세요. 건강보장 30주년 기념 건강보험체험수기 공모계획 목적 ○건강보장 제도시행 30주년을 맞아 국민보건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이라는 제도의 목적이 국민생활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그 실제 모습을 파악하고 제도개선에 활용 ○생활현장의 체험사례를 통하여 제도의 장점과 한계를 생생한 모습으로 전파 공모 내용 ○공모 주제 —건강보험가입자(피부양자) 또는 의료급여대상자로서 건강보험 제도와 관련된 인상적인 체험 및 감동적인 사례 —요양기관의 종사자로서 환자들을 의료공급 과정에서 체험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제도와 관련된 인상적인 체험 및 감동사례 —건강보장제도 종사자(국가?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단?심평원임직원)로서 업무수행 중 체험한 제도관련 인상적인 기억 및 사례 ※체험 내용은 사실에 근거하여야 하며, 창작된 허구의 수기로 밝혀질 경우 수상을 무효 처리 ○응모자격 : 제한 없음(건강보험가입자 외국인, 재외국민 가능) ○응모작의 분량 : 원고지 20매 내외 ○접수방법 : 우편, 방문, 전자우편 접수 응모작의 심사 ○심사기준과 항목별 배점
항 목 |
내 용 |
배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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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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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내용면 |
제도와의 밀착성 |
?제도의 장점과 한계를 선명하게 나타내는가? |
30 |
호소력 |
?독자에게 전달되는 강한 감동이 있는가? |
25 |
내용의 사실성 |
?내용에 허구적인 요소가 없이 사실성이 강한가? |
20 |
형식면 |
구성의 치밀성 |
?작품의 구성은 허술함이 없이 치밀한가? |
15 |
표현의 정확성 |
?문장은 어법에 맞게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는가? |
10 |
○심사 : 10명 내외 심사위원회(외부 전문작가 2명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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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때로 푹 쉬도록 하라. 한 해 놀린 밭에서 풍성한수확이 나는 법. / 오비드 (고대 로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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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六十五章 (노자 - 도덕경 : 제6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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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복, 지차양자역계식, 상지계식, 시위원덕, 원덕심의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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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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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다섯째 장
직역
예로부터 도를 잘 행하는 자는 그것으로 백성을 밝게 하지 않고, 그들을 어리석게 하였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운 것은 그들이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나라를 도적이오, 지혜로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복이다. 이 두가지를 아는 것이 또한 둘도 없는 형식이니, 항상 이 형식을 아는 것을 가리켜 그윽한 덕이라고 한다. 그윽한 덕이여 깊도다. 멀도다. 사물과 더불어 되 돌아간다. 그러한 이후에 큰 따름에 이르게 된다.
해석
밝다는 것은 똑똑하게 한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똑똑하면 똑똑할수록 나라를 다스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현대의 독재정권들은 3S(스포츠, 스크린, 섹스)로 사람들을 어리석에 만들었다. 그렇다면 노자는 이런 우민화 정책을 군주에게 권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우민화정책이 아니다. 정치를 하는데 어려움은 무엇인가. 바로 서로의 이익을 조절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과 그 기득권을 향해서 달려드는 사람들을 조정하는 일이다. 이제는 댐하나, 다리하나, 도로도 정부가 마음대로 놓지 못한다. 왜인가. 군사정권이 아니라 문민정부이어서 그런가. 그런것도 있지만 이제는 양보할 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것을 하나라도 더 찾기 위해서 밝은 대낮에 커다란 후랫쉬를 들고 설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공익을 위해서 무얼하자고 한다면 사람들은 찬성은 한다. 단. 자신의 것에는 손을 대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바대로 한려면 상관이 없다. 모두들 그렇게 말한다. 공익을 위해서 해도 좋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에게 조금의 손해라도 와서는 안된다. 그것이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어도 안된다. 그래서 강 상류 지방의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서 마을에 공장을 유치하려고 하면 하류 지방의 사람들, 의회는 벌떼 같이 일어난다. 그러나 상류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하류지방의 자금을 끌어다 쓰려고 하면 얼굴을 붉히며 따진다.
"왜 우리돈을 다른 곳에 쏟아 붙는가. 상류 지방의 주민들은 그들이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편하고 이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은 메스미디어가 너무나 잘 발달이 되어 있다. 이런 때에 정부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드는 정책을 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약간의 손해를 보는 것이 후일 큰 얻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현실에 있어서는 꿈인가 보다. 한 두명의 천재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곤 한다고 말한다. 이익을 쫒는 방향일 때는 그렇다. 그러나 대도를 따르는 길일때는……. 사물과 함께 되돌아가는 이 길이야 말로 큰 따름이다. 바로 존재계를 따르는 것이다. 근원에의 회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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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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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그 옛날 무위자연의 도를 잘 행한 사람은 백성을 밝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그것으로 그들을 어리석고 순박하게 했다. 백성들을 제대로 잘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지혜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적이요,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다. 이 두 가지는 정치에 있어서 영구 불변의 법칙임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이와 같은 법칙을 아는 것을 그윽하고 불가사의한 덕이라고 한다. 그윽하고 불가사의한 덕은 깊고도 멀다. 그것을 지닌 사람을 만물과 더불어 도에 복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무결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주
명민: 백성을 밝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 여기서 밝음이란 세속적인 간지에 의해 교활하게 된 것을 말함. 우지: 어리석게 한다는 뜻, 본문에서는 순수하고 소박한 상태에 있게 한다는 의미임. 지다: 지혜가 많다는 뜻임, 본문에서는 교지와 세속에 닳고닳은 약삭빠름을 말하고 있음. 계식: 법칙, 법식, 규정을 뜻함. 해식으로 표기된 판본도 있음. 현덕: 그윽하고 불가사의한 덕, 신비하고 오묘한 덕. 여물반의: 만물과 더불어 순수한 도에 복귀한다는 뜻임, 반은 반과 같음. 연후내지대순: 그런 뒤라야 완전무결한 도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해
옛날에 도를 체득한 이는 지혜로써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다스리면 백성들도 순박함을 잃어버리고 교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다스리는 것은 나라에 해로움만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무위 무사의 정치는 백성들을 어리석고 순박하게 만들어 나라를 복되게 한다. 지혜란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욕망을 자극하게 된다. 그것의 충족을 위해서는 서로 싸우고, 속이고 빼앗는 등 인간은 구제 불능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와 같이 혼란에서 구제 받고자 한다면 태고의 순박함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순박함이야말로 참되고 순수한 도의 본모습인 것이다. 도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덕을 알고 만물과 더불어 참된 근원인 도에 복귀한다면, 그것이 완전무결한 도의 작용에 순응하는 길이다. 이 장은 자고로 노자가 우민 정치를 부르짖는 대목이라 하여 학자들간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노자가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문명사회가 낳을 것으로 인간의 갖가지 욕망을 자극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욕망의 충족을 위하여 인간은 서로 싸우고 빼앗고 죽이는 등 니전투구의 혼란상을 조성한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는 평화와 행복이란 찾아볼 수 없고 인간은 서로 구제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노자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부정적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시인도 가지고 있는 소박한 일차적 욕망(먹고, 마시고, 잠자는 등)은 그도 긍정하고 있었다. 노자가 염려하는 것은 문명사회가 제공하는 지혜와 지식에 의한 이차적 욕망이었다. 즉 권력에의 의지, 물욕, 명예욕, 허영심 등은 병든 문명사회가 만들어 낸 정신적인 공해로 보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의 자기 구제는 불가능하다고 그는 본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충족하기 위하여 인간은 서로 속이고, 빼앗고, 모함하며, 국가간에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지는 등 문명사회의 지식과 지혜에 의한 병폐는 심각한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 현과 우도 문명이 일어난 후 사회생활이 다원화, 분업화되면서 생겨난 것이므로 그와 같은 겉치레가 없는 순수 태고의 순박한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지론이다. 그의 이와 같은 지론은 후세 법가 계열의 학자들에 의하여 오용된 감이 있다. 즉 진의 상앙, 한의 한비, 진의 이사 등의 냉혹한 인간 조종술과 우민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권모술수에 의한 잔혹한 정책은 노자의 참된 뜻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권모술수의 이론적 배경을 노자에서 구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의 진의를 왜곡시킨 것이며 아이러니컬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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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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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재 수난사 - 이구열
제 7장 도굴,도난 위조품
봉은사 보물 향로 도난사건
1961년에 서울 창덕궁에 보존되 오던 과거의 왕실 유물과 미술품의 도난사실이 알려져 세인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각 사무처가 발표한 그 도난유물과 미술품의 수는 무려 216점이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정확한 파악이 아니었음이 그후 조사에서 드러났다. 당시 창덕궁 유물과 미술품의 관리자는 구황실 재산사무총국이었는데 전문적인 직원이 없었고, 따라서 정확한 유물 조사대장조차 작성돼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과거의 서류나 기록도 8·15와 한국정쟁 때 거의 유실되고 없었다. 사건이 발표된 후 확실한 내막조사를 위촉받았던 관계전문가들은 조사과정에서 기록에 없는 유물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기록에 있는 물건이 기록장소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관리상태를 확인했다. 물론 실제로 도난당한 것으로 믿어지는 유물도 많았다. 창덕궁의 귀중한 왕실 유물과 미술품 200여 점이 도난당했다고 발표되기 전인 5월, 창덕궁에 침입하여 '칠보화병' 과 '칠보향로' 등 4점의 유물을 훔쳐내어 골동상에 팔려던 범인이 경찰에 체포된 일이 있었다. 이때는 구황실 재산사무총국에서 도난사실을 즉시 알고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당장 범인도 잡고 물건도 무사히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3월에(사실은 그 이전에) 도난당했다지만 실제로 언제 어떻게 도난당한 것인지 확실치 않은 유물과 범인 수사에서 경찰은 아무런 구체적인 단서도 잡을 수가 없었다. 국가 지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을 훔쳐 국내 혹은 국외로 팔아먹으려던 그야말로 간덩이가 부은 절도범 사건이 1963년 이후 다섯 번이나 있었다. 첫 사건은 서울 한강 남쪽의 봉은사에서 일어났다. 1963년 5월 9일, 문화재관리국 직원 한 사람이 봉은사에 보관돼 있던 보물 제321호의 '지정 4년명' 고려 '청동루은향로' 의 보호상태를 확인하려고 나갔다가 향로가 감쪽같이 도난당한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도난현장을 검색한 후 봉은사 측에서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는 유력한 용의자 유아무개를 전국에 즉각 수배했다. 용의자의 행방을 추적하여 수명의 형사가 각지로 급파되고, 다른 수사진은 성루과 기타 도시의 골동상을 내사했다. 보물 향로의 절도 용의자 유모(당시 32세)는 자칭 수도승으로 제주도 한라산에 있는 관음사에서 수도생활을 하다 올라왔다면서 봉은사를 찾아왔다. 사건 발생 한달 전의 일이었다. 그는 수도승임을 자처하여 어렵지 않게 숙식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는 봉은사에 머무르는 동안 보물 관리책임자인 김대성 씨(당시 26세)와 같은 방에서 기거했다. 그때 보물 향로를 보고 값으로 치면 100만 원도 넘을 거라는 농담도 주고 받았다. 그러던 그가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진 후 보물 향로의 도난 사실이 발견되었다. 절 측에서 먼저 의심을 했고, 경찰도 유력한 용의자로 단정할 만한 인물이었다. 범인 수사에 착수한 지 일주일 만인 18일 오전, 서울 시내 조선호텔 앞의 한 골동상에 들렀던 성동서의 길운제 형사가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했다. 이틀 전에 향로를 팔겠다고 온 사나이가 있었는데 연락처를 말하고 갔다면서 골동상 주인은 용의자의 거처를 알려주었다. 길형사는 그길로 불광동의 D여관을 급습했다. 범인은 예측했던 대로 봉은사에서 사라졌던 자칭 수도승 유아무개였다. 미처 팔아먹지 못한 보물 향로가 여관방 한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형사가 들어닥치자 범인은 모든 범행사실을 즉석에서 자백했다. 범행날짜는 5월 3일이었다. 보물 관리자 김씨가 부산에 다니러 간다고 떠나자 유는 우발적인 범행을 감행했다. 다락방에서 몰래 열쇠를 꺼내 갖고 보물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간단히 보물 향로를 꺼내 들고 봉은사를 탈출했다. 밤 9시께였다. 크기가 한 아름이나 되는 향로를 보자기에 싸 갖고 무사히 한강을 건넌 유는 택시를 잡아타고 범행장소와 정반대쪽인 서대문고 불광동으로 달린 후 D여관에 투숙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그는 거액으로 팔아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그가 자백한 바로는 모 재벌 수집가에게 팔려고 중간 소개인과 접촉하려다가 실패했고, 조선호텔 앞의 골동상을 찾아갔다가 마침내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범인은 대학교육까지 받은 지식청년이었다.
지정4년명고려청동루은향로(고려 말기), 보물 제321호, 높이 3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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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강좌 한국철학 : 사상, 역사, 논쟁의 세계로 초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 시대별로 본 한국 철학
2. 고대의 사상/고조선--삼국 시대
1. 고유 사상
단군 신화의 내용과 의의
신화란 역사 이전부터 구전되어 오던 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다소 신비적이고 비합리적인 내용이 담겨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 고대인의 삶과 사회적 경험이 녹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적절히 해석한다면, 이는 고대인의 사유 방식과 세계관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오랜 신화인 단군 신화도 이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단군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위서"에 말하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여니 이름이 조선이다. 요 임금과 같은 시대이다"라고 하였다..."고기"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이 아들인 환웅이 자주 세상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므로,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했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신단수 아래 내려왔으니...바람, 비, 구름을 주관하는 신하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다스렸으며, 인간 세상의 온갖 일을 맡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인간이 되기를 원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그것(쑥과 마늘)을 얻어 먹고 세 이레를 금기하여 곰은 여자가 되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여자가 되지 못하였다... 환웅이 거짓 변하여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곧 단군왕검이다...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1,500년간 다스렸는데...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하였다.
단군 신화의 내용을 통해 미루어 볼 수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현세주의적 사고이다. 단군 신화는 다른 나라의 신화와는 달리 세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없다. 게다가 내세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다만 중시되는 세계는 현재하는 인간 세계일 뿐이다. 둘째는 인간 중심 또는 인간 존엄의 가치관이다. 하늘의 신도 인간 세계를 탐내고 땅의 동물도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신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인간을 이롭게 하느냐에 집중된다. 셋째는 조화 지향적인 세계관이다. 서양의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신들의 투쟁, 신과 인간 혹은 동물간의 갈등이 없다. 오히려 신과 동물이 결합함으로써 하늘과 땅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단군 신화는 고대 민간 신앙, 특히 무속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용 가운데 태백산 등의 산은 '높은 데'를 숭배하는 무속과 관련된다. 특히 높은 산은 신단수와 더불어 우주의 축을 상징한다. 우주의 축이란 세계의 중심으로 샤먼이 하늘의 신(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장소이다. 우리 나라의 민간 신앙 혹은 무속에서도 높은 산이나 오래된 나무 혹은 이를 인위적으로 본뜬 솟대를 중심으로 의례를 행하였다. 또 곰이 동굴(자궁을 상징함)에서 금기한 후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내용은 지모신의 숭배나 터부 등의 무속적 요소와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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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무동태우다
본뜻 : 옛날 걸립패나 사당패의 놀이 중에 여장을 한 사내아이가 어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춤을 추는 놀이가 있었다. 이 때 어깨 위에 올라선 아이를 '무동'이라 불렀는데 글자 그대로 '춤추는 아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 태우는 것은 '무동태우기'라고 하게 되었다.
바뀐 뜻 : 아이를 목 뒤 양어깨에 태우는 것을 말한다. 흔히 '무등태우다'로 쓰는데 이것은틀린 말이다.
"보기글" -여보, 아이가 그렇게 같이 놀기를 원하니 무동이라도 한번 태워 주시지요 -네가 이번 시험에 붙으면 내가 너를 무동 태우고 온 동네를 한바퀴 돌 것이야
박살내다
본뜻 : 두드릴 박에 죽일 살로 이루어진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때려 죽인다'는 뜻이다.
바뀐 뜻 : 오늘날에는 꼭 사람이나 짐승 등 살아 있는 사물에만 한정되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건을 완전히 때려 부수어 조각조각으로 만드는 일까지를 뜻하게 되었다.
"보기글" -어제 밤에 웬 술취한 사람이 우리 가게 유리창을 박살을 내고 행패를 부렸지 뭐야 -후세인이 이번에는 이란을 박살내겠다 그랬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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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9.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영국을 일컫는 말이다. 빅토리아 여왕(Victoria, 재위 1837-1901)이 재위하던 시대에,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잡았고, 강력한 제국주의 정책을 통해 아프리카, 인도 등을 식민지로 삼아 세계의 제국으로 발돋움하였다.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영국은 이시기가 황금기였다. 그러나 영국의 황금시대는 이때만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 재위 1558-1603) 치세야말로 영국이 세계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대서양의 해상권을 장악했으며, 셰익스피어로 상징되는 영국 르네상스의 개화기요, 절대왕정기의 절정이었다. 영국이 식민지 전초기지였던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해외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런데 영국만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역사상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맨 처음 어울렸던 나라는 스페인이다. 사실 이 말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월터 스코트의 "나폴레옹 생애"에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스페인의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던 카를 5세가 한 말로 전해진다. 또 독일의 시인 실러의 "돈 카를로스"에서는 카를 5세의 아들인 펠리페 2세가 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이 두 황제의 시대에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앞세워 대서양의 패권을 쥐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이 움직이면 세계가 떤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영국과 스페인이 건설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질적으로 크게 달랐다는 것이다. 영국은 강력한 해군과 산업혁명을 통해 강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반면, 스페인이 유럽에서 대제국을 건설할 때 처음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탄탄한 국력이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었다. 16세기 유럽은 두 왕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하나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실이요,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발루아 왕실이었다.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미 여러 혼인을 통해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수중에 넣고 대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마침내 기회가 오자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 왕국과도 역시 혼인을 통해 결합했다. 게다가 스페인 왕위계승자들이 차례로 요절하자 1516년 운좋게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실 출신인 카를이 스페인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바로 " 나의 왕국에는 해 지는 날이 없다."고 했다는 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였다. 사실 그는 스페인 왕이라기 보다는 합스부르크 왕이었다. 게다가 그는 1519년에 프랑스 왕을 물리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산출됨으로써 카를 5세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왕으로서 실질적인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는 무적함대를 앞세워 대서양을 안방처럼 생각했다. 게다가 이 펠리페 2세는 영국의 여왕 메리와 결혼함으로써 영국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안겨 주기도 했다. 열렬한 가톨릭 숭배자인 그녀는 '피의 메리'라고 불릴 정도로 영국 국교도를 탄압했는데 그런 그녀가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왕과 결혼한 것은 우연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비록 스페인이 무적함대를 앞세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구축했지만, 그러한 번영을 지속하기에는 국내의 기반이 취약했다. 그래서 몰락이 그리 멀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펠리페 2세가 재위 중에 두 번이나 파산을 선고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스페인의 패배는 바로 무적함대의 패배였다. 펠리페 2세는 전처였던 메리 여왕의 나라인 영국이 사사건건 스페인의 정책에 반기를 들자 영국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욱이 메리 여왕의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가톨릭이 아니라 신교도였다. 그리고 영국의 해적들이 신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스페인 상선을 습격하여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에 펠리페 2세는 영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다. 영국은 당시 유명한 해적이었던 그레이크를 사령관으로 하여 이에 맞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터키함대를 격파하여 위용을 자랑하던 무적함대가, 기동력을 자랑하는 영국함대에 오히려 무참히 패하고 말았다. 이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더 이상 스페인이 아니라 영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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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끼있는 여자 지적인 여자가 아름다운 이유 : 소냐프리드만
1.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여성
'분노'만으로 생계는 꾸려지지 않는다.
부모가 딸에게 이야기해 주곤 하는 '처세훈' 가운데에서 가장 품격이 떨어지는 것은, '사랑은 여성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전부지만, 남성에게는 그저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딸에게 부부란 주인과 노에의 관계라고 가르치는 일은, 딸의 인생을 남편에게 팔고 그를 '메인 코스'로 삼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성을 '메인코스'로 삼는 시나리오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다음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일찍이 십대에 결혼을 하고 그 상황에 맞는 결심을 한다. 우선 남편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녀는 일을 한다. 이윽고 남편의 일이 궤도에 오르면 일하는 것을 그만둔다. 이제 '아내는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고 인생의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어엿한 성인의 수준에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아내는 남편의 그늘에 있으면서 뒷바라지를 한다. 그 동안 자녀도 생겨 남편이 공부나 일로 책상에 앉아 있을 때에는 아이들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부간에 대화도 없고 낮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도 않은 채, 반은 건성이고 기껏해야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인 남편의 태도에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왠지 남편의 인생 속에 끼여든 방해물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고독감이 바짝바짝 다가온다. 그러나 어떤 불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남편은 가족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다. 경우네 따라 남편은 어느 정도의 성공까지는 일직선으로 힘차게 나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십대 시절에 남편과 만난 그 지점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을 알고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몸에 익혀지는 '자신'도 없을 뿐만 아니다. 기능다운 기능을 하나도 연마하지 못한 십대의 소녀 그대로인 것이다. 혹시 남편과의 결혼 생화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도 자신의 생활을 지탱해 줄 경제적인 여유도 없으며, 그 것을 가질 만한 수단도 갖고있지 못하다. 남편은 출세가도를 달림에 따라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지고, 가정내의 자질구레한 일은 점차 아내에게 맡겨진다. 가정 이외의 생활무대를 갖지 못한 아내는, "함께 있어 주겠어요? 안 된다면 당신 혼자서 잘 해봐요. 나도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남편은 발끈해서 되물을 것이다. "일이라니 그게 뭐지? 집안일 외에 해야 될 일이라고 있어?" 그러고는 대체로 정해져 있는 과정을 밟는다. 마침내 남편은 비서나 독신 여성에게 마음이 끌리고, 그 여성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아내 이상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녀는 낮 동안의 파트너가 되며 아내 이상의 존재가 된다. 반면 아내는 점점 생활비를 받기만 하는 타인이 되어간다. 마침내 남편은 다른 여성을 얻기 위해서 아내를 버린다. 아내는 몹시 놀라고 분노를 느끼면서 상처받은 몸과 마음으로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생계를 꾸려나가려 해도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메인 코스부부'는 부부라기보다는 친자 관계에 가까웠던 것이다. '아이'처럼 살아온 아내는 갑자기 버림을 받았을 때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자력도 없고 변통의 제주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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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개국공신을 조롱한 송도의 명기 설중매
설중매는 송도(개성)의 이름난 기생이다. 태조가 조선을 개국한 뒤 군신들을 위해 의정부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모인 신하들 대부분이 옛 고려 왕조에서 벼슬하던 사람들이었다. 설중매는 재능과 용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색정도 강했다. 어느 정승이 술에 취하여 설중매를 희롱하였다.
"내가 들으니 너는 아침은 동쪽 사내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사내 집에서 잔다더구나. 오늘 저녁엔 나하고 자는 것이 어떻겠느냐?"
"동쪽 집에서 밥먹고 서쪽 집에서 잠자는 저 같은 천한 기생이 왕씨를 섬기다 이씨를 섬기는 정승을 모시고 자게 되니 매우 어울리는군요!"
설중매가 이렇게 응수하니 좌석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얼굴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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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월
영어 '허니문'에서 온 말. '사무엘 존슨' (1709--1780)의 정의를 따를 것 같으면 '오직 정다움과 열락으로 충만한 신혼의 1개월'을 가리킨다. 인생이 온통 장미빛으로 보이고 행복에 겨운 순간이지만 그 기간은 통틀어 1개월을 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는 동안에 차츰 각성과 오해가 싹트기 시작하여 밀월의 단 꿈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요컨대 밀월은 '꿀처럼 달콤한 달'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어원을 따져 볼 때 '스칸디아비아'에서는 신혼의 남녀가 한 달 동안 벌꿀로 빚은 술을 마시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 의하면 '문'은 달을 가리키며 부부의 애정이 차츰 식어가는 것을 이지러지는 달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물론 달은 다시 차는 것이니 부부 사이의 애정도 식었다 뜨거워졌다 하는 동안에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글자 그대로 부부 일신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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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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