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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36 호
단기 4340. 2. 16 (음력 12.29)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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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 공모 28일까지 접수 마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병익)는 `제8회 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 독서감상문'을 오는 28일까지 공모한다.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북돋우기 위해 마련된 이번 공모는 어린이부와 청소년부, 일반부로 나눠 열리며 대상도서는 2006년 4분기 우수문학도서 중 아동문학부문과 우수문학도서 전종이다. 우수문학도서는 홈페이지(www.for-munhak.or.kr, www.munjang.or.kr)를 참조하면 된다. 원고분량은 2천자 내외. 각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최대 5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 전체 대상 1명에게는 그 두 배에 달하는 10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 각각 주어진다. 단체상을 수상한 초·중·고 3개 학교에는 2006년 3분기 우수문학도서 전종을 기증할 계획이다. 이번 독서감상문 공모는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에 마련된 별도 게시판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수상자 발표는 오는 3월15일 사이버문학광장을 통해 이뤄진다. 문의 02-760-4690, 4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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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눈감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눈을 살짝뜨고 엿보지 않는 사람은 바보. / 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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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二十五章 (노자 - 도덕경 : 제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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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요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부지기명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고도대 천대, 지대, 왕역대,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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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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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째 장
직역
혼돈 되어 이루어진 것이 있었으니 하늘과 땅보다도 앞서 생겼다. 적막하고 모습이 없다. 홀로 서서 고치지 않는다. 두루 다니면서 위태롭지 아니하니, 가히 하늘 아래의 어미로 삼을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나, 글자로 말하기를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하여 크다고 한다. 큰 것은 가게 마련이고, 가는 것은 멀어지고, 멀어진 것은 돌아온다. 그러므로 길은 크다.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도 크다. 영역 가운데 네개의 큰 것이 있으니, 왕이 그 하나에 자리잡고 있다. 사람은 땅을 본 받고, 땅은 하늘을 본 받고, 하늘은 도를 본 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 받는다.
해석
도는 근원이다. 이것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름 할 수 없다. 그러나 억지로 이름하여 도라고 하는 것이다.
큰 것은 부서진다. 바위가 모래로 되듯이 도가 물로 변화한다. 이것은 도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멀어진 것은 다시 도로 돌아간다. 모래가 용암 속에서 다시 바위가 되듯이 사물은 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 단계 높여 설명을 한다면 사물도 도의 한 표현 모습이다. 더 높혀 설명을 한다면 사물은 그 자체로 도이다.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데 왕이 크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임금이 큰가. 이것은 위정자들을 옹호하는 것인가. 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나랏님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임금 노릇할 왕이다. 이 말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왕의 세 가로획은 천지인을 가리킨다. 이것을 꿰뚫은 사람이 왕이다. 이것은 세속적 정치권력을 가진 왕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주인 되는 인간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땅을 본받는다. 그것은 결국 자연을 본 받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함, 인위 하지 않는 무위의 행에 머무르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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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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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혼돈 상태에서 성립된 것이 있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다. 그것은 고요하고 적박하여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상대할 짝도 없이 홀로 서 있으며 홀로 서 있으나 항상 변함이 없다. 어디에나 가지 않는 데가 없으나 결코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은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나는 그것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편의상 이름하여 자를 지어 도라고 부른다. 억지로 큰 것이라 이름짓기도 한다. 무한정 크기 때문에 어디에나 퍼져 나가며, 어디에나 퍼져 나가기 때문에 멀리까지 간다. 멀리까지 갔다가 그것은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도는 크고, 하늘은 크고, 땅도 크다. 임금도 또한 크다. 이 세계에는 큰 것이 네 가지가 있다. 임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은 땅의 법도를 본받고, 땅은 하늘의 법도를 본받으며, 하늘은 도의 법도를 본받고 자연의 법도를 본받는다.
주
혼성 :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뜻. 즉 도는 하늘과 땅이 아직 성립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편성과 항존성을 지닌 영원불멸의 존재이다.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다 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 때문이며,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인 것이다. 노자의 만물생성론과 그리스인의 우주생성론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착상이 될 것이다. 그리스인에 의하면 신은 무질서와 혼돈 상태인 카오스의 세계에서 질서와 조화의 코스모스의 우주로 세계를 개조하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물주가 아니라 혼돈의 우주에서 새로운 원리를 부여하여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 낸 일종의 창설자요, 건축 설계사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적혜요혜 : 고요한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상태. 독립 : 도의 짝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홀로 서 있다고 한 것. 불개 : 고치지 않는다, 언제나 변함이 없다. 도의 불변성과 항존성을 표현한 말임. 불태 : 위태롭지 않다, 도는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이 없다는 뜻임. 천하모 : 만물의 근원, 천하의 어머니, 만물의 생성자. 원왈반 : 반은 반의 뜻이니 돌아온다는 말임. 도는 무한정하게 퍼져 나가지만 언제나 원위치로 돌아 오고 있다는 뜻임. 역중 : 우주내, 이 세계 안을 뜻하고 있음. 법 : 법칙으로 한다, 법도로 삼는다, 본받는다.
해
이 장에서 노자는 본질에 대한 원리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도는 하늘의 땅이 생기기 전에 혼돈 가운데에서 먼저 생겼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 도는 그와 짝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다만 홀로 서 있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로나 아래로나 언제 어디에서도 그 움직임에 변화는 없다. 그것은 불멸의 존재로서 손상되거나 위태롭거나 가감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는 천하 만물의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것의 본래의 이름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편의상 도라고 지칭할 뿐이다. 억지로 이름짓는다면 큰 것(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는 우주의 끝까지 안가는 데가 없다. 그래서 멀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원위치로 돌아온다. 도는 우주 만물의 구석구석 어디에나 스며 있다. 그것이 바로 도의 보편성이다.노자는 이 우주에는 큰 것이 네 가지 있음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도와 하늘과 땅과 임금이다. 사람은 땅의 이법을 본받고, 하늘은 도의 이법을 본받게 된다. 자연은 작위 하지 않지만 천하 만물이 저절로 육성되고 운행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사람은 도의 인식을 통해 무위자연의 위대한 섭리에 합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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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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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재 수난사 - 이구열
제2장 일제하의 수난
반출경위가 인멸된 원공국사승묘탑
앞의 양평 보리사터 현기부도탑은 서울에서 찾아갔던 일본인들의 끈덕진 강청에 따라 상원사 주지가 그전의 소유권 주장자인 3명의 마을사람들과 공동으로 팔아먹은 것이었다고 당시 일본 경찰은 조사, 보고했었다. 그러나 그때의 일본인들은 이 땅을 강점한 일제의 강세를 배경으로 거리낌없이 조선인을 위협하고 공갈하며 최소의 돈으로 그들을 매수함으로써 값나갈 유물을 아무 데서나 불법반출한 악질적인 고물상(골동상) 패거리였다. 그들은 양평의 현장에서 현기부도를 120원으로 사 놓고는 서울에 앉아서 또 다른 일본인에게 500원에 팔아 넘김으로써 당장 380원을 벌어들였다. 이런 일은 일제 초기엔 비일비재했다. 일찍이 이 땅에 건너왔던 일본인들 가운데 일부 악질배들은 앞서와 같은 수법의 문화재 반출 및 큰 부자가 되었고, 그들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여 철수할 때까지 큰소리치며 이 땅에서 살았다. 그때까지 각계각층의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점유하고 있던 한국문화재의 종류와 수는 부지기수였다. 그중엔 총독부 법령에 따라 등록된 것도 많았다. 해방전까지 서울 남대문 시장께에 살았던 와다가 그의 정원에 갖다놓고 즐겼던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 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이웃인 남산동의 닛타가 몰래 점유하고 있었던 보리사터의 현기부도탑과는 달리 전문가들의 조사·평가에 따라 1938년 10월 이후 이미 고려 초기의 중요한 유물로 지정돼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원위치인 강원도 원성군 부론면 정산리의 거돈사터에서 언제 어떤 일본인들이 어떤 수법으로 서울로 반출해 왔고, 또 어떤 경로로 남대문께의 와다의 집으로 팔려 들어갔었는지의 경위를 알려주는 기록이나 자료는 하나도 없다. 보리사터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수난 조건을 갖고 있다. 보리사터의 것은 반출경위는 뻔한데 물건이 서울에서 행방불명됐고, 이 거돈서터의 것은 서울에서 줄곧 있는 곳이 확인돼 있었으나 반출경위와 그 증거가 완전히 인멸돼 있다. 그러나 둘은 공통점이 있다. 다같이 지대석까지 일괄하여 반출하지 않고, 위의 탑신부만 들어옴으로써 지금 이화여대에 있는 보리사터의 부도나 경복궁에 있는 거돈사터의 승묘탑이 모두 지대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돈사터의 원공국사승묘탑은 해방 후 보리사터의 현기부도탑과는 또 다른 경로로 현재의 위치인 경복궁의 석물군 속에 들어갔다. 그것은 1948년의 일이었다. 당시 미군정청의 미술·고적 담당 고문으로 채핀이라는 미국인 할머니가 와 있었다. 그녀의 출근 근무처는 국립박물관이었다. 어느날 그녀는 과거에 총독부가 지정한 문화재의 소재지를 재확인하려고 일본인 와다가 살던 집을 찾아 남대문 시장께로 발길을 돌렸다가 거기에 분명이 있어야 할 원공국사승묘탑이 어디론가 없어진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해방 후에 누군가가 실어 갔다는 것이었다. 채핀은 경복궁으로 돌아오자 당시 박물관 연구원이었던 황수영에게 어찌된 영문인가를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놀란 그들은 즉시 사라진 지정문화재의 행방을 조사, 추적했다. 몇몇 증언으로 승묘탑의 행선지는 금세 밝혀졌다. 이아무개라는 사람이 성북동 골짜기의 별장에 실어다가 계류와 정자 옆에 세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국가에 등록돼 있는 문화재인 것을 모르고 있던 이아무개는 박물관측의 설명에 따라 순순히 탑을 도로 내놓았고, 승묘탑은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현재 보물 제190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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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 7장 자연적 아름다움과 예술적 아름다움
3.아름다움과 삶의 목적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은 아름다운 시이다."라고 말할 때 시에 대한 나의 느낌은 이미 사고에 의하여 정리된 것이다. 어떤 느낌이 사고에 의하여 정리되면 그것은 이미 판단이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판단을 사실 판단, 가치판단 그리고 미 판단으로 구분한다. 보통 자연적 사실에 관한 앎의 문제는 사실 판단에 속한다. "수소와 산소가 화합하면 물이 된다",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등과 같이 주로 어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일정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실을 규정하면 그러한 판단은 사실 판단에 속한다. 그러므로 사실 판단은 자연의 법칙을 기술하는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 법칙을 기술함에 있어서는 인간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믿음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들은 인과 법칙에 종속하는 자연현상을 사실 판단에 객관적으로 기술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현상에 관한 규정이 사실 판단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규정은 가치 판단이다. 사실 판단에서는 사실의 긍정이나 부정, 다시 말해서 사실의 참다움이나 거짓됨이 적용된다. 이에 비해서 가치 판단에서는 행위의 선함과 악함이,곰 행위의 참다움이나 거짓됨이 기술된다. 이에 비해서 가치 판단에서는 행위의 선함과 악함이, 곧 행위의 옳음과 그릇됨이 기술된다. "네가 수재민을 위해서 기부한 행위는 선한 행위이다", "타인을 인격체로 대하는 행위는 선한 행위이다" 등과 같이 행위의 가치 문제를 규정하는 판단이 가치 판단이다. 결국 선한 행위는 자유로운 행위이다. 그러므로 가치 판단의 척도는 바로 자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재의연금을 내거나 타인을 인격체로 대하는 행위가 선한 행위라면 그것은 바로 그러한 행위가 자유를 바탕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자유를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 판단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판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칙적인 자유와 자발적인 자유를 연관 시켜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술이다. 우리는 예술이 곧 자연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예술이 바로 자유라고 할 수 없다. 예술은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자유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예술의 형식은 자연적이지만 예술의 내용은 자발적인 자유이다. 예술의 자연적인 형식과 자발적 자유에 의한 내용의 결합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신사임당의 우아한 난초 그림"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예술의 아름다움을 규정하므로 이 경우에 성립하는 판단은 미 판단이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우리는 이론적 인식에 관한 판단을 사실 판단, 실천적 행위에 관한 판단을 가치 판단 그리고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예술적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을 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또 하나의 다른 문제가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우리들은 맹목적으로 아름다움을 구성하며 또한 느끼는가? 우리들이 예술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것은 식욕이나 성욕과 같이 기본적인 본능에 속하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정당한 물음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이미 일상성을 순화시킨 정신세계의 창조 대상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정신적인 산물인 한에 있어서는 특정한 목적을 결여할 수 없다. 의식적인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인간은 학문을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며 종교를 통하여 선을 행하고자 하며 또한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움을 구성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아름다움 여기 삶의 목적에 속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때 갖가지 형태로 빛을 발하니 그것들은 앞에서 말한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이다. 이처럼 "하나가 여럿"인 이론은 율곡의 이일분수 이론을 살펴보면 쉽사리 이해가 될 수 있다. 율곡은 다음처럼 말한다. "일본지리는 이의 체이고 만수지리는 이의 용이다." 율곡은 세계의 근원인 태극을 본체와 현상으로 구분한다. 본체는 움직임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본체는 그 쓰임새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반대로 수없이 많은 현상들은 하나의 본체를 근원으로 가진다. 그러므로 "물은 그릇을 따라서 모나기도 둥글기도 하며 허공은 병에 따라서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한다." 라는 말은 율곡의 이일분수설과 이통기국론을 잘 대변해준다. 이통기국론이란 이는 두루두루 통하며 기는 국한시킨다는 말이다. 우리는 율곡의 말을 따라서 삶의 목적인 행복은 하나이지만 그 현상은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에 관하여 말할 때, 아름다움을 결여한 예술은 단지 형식적인 예술에 지나지 않으며 더욱이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결여한 삶은 삶의 목적을 상실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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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마누라
본뜻 : 마누라는 조선 시대에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처럼 마마와 같이 쓰이던 극존칭 어였다. 그러다가 신분제도가 무너지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늙은 부인이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바뀐 뜻 :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때 아내를 낮춰 일컫는 말이다.
망나니
본뜻 : 조선 시대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형집행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형수의 목을 내리치기 전에 입에 물었던 물을 뿜어내고 한바탕 칼춤을 추어 대며 겁에 질린 사형수의 혼을 빼놓곤 하던 사형집행수를 망나니라고 불렀다.
바뀐 뜻 : 말과 행동이 몹시 막돼먹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매무시
본뜻 : 옷을 입을 때 고름을 맨다거나 저고리를 여민다거나 하는 뒷단속을 일컫는 말이다.
바뀐 뜻 : 뜻이 바뀐 것이 아니라 '매무새'라는 말과 자주 혼동되어 쓰이기에 여기에 실었다. 매무새는 '너 이제 보니 매무새가 아주 곱구나' 같은 경우에 쓰는 말로 옷을 입은 맵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반면에 '매무시'는 고름을 여민다거나 단추를 채운다거나 하는 뒷단속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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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5. 나 여기에 서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
다른 것을 모방하기란 쉽다. 그러나 그것을 처음 발견하기란 아주 어렵다. 예를 들자면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의 발견도 그러했다. 그가 발견한 후에 다시 아메리카대륙을 간다는 것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 것이니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또 사실 콜롬버스가 아니더라도 당시의 과학기술이나 항해술의 수준으로 보아 대서양 너머의 대륙을 발견하기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곳을 인도로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 대서양처럼 건너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모험이었다. '지중해'라는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사람들은 지중해를 지구의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대서양을 계속 가다 보면 언젠가 낭떠러지 같은 것이 생겨서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갈 것으로 믿고 있었다. 따라서 대서양은 중세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곳 그 자체였다. 미지의 곳은 또한 신비롭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전설 속의 섬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는 섬인 아틀란티스가 지중해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살았던 힘센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 가려다가 아테네에 패했다. 아틀란티스는 아테네에 패한 지 몇 년 후에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서양을 항해한다는 것, 그것은 이러한 신비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그것은 기독교적인 이상향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과도 결부되었다. 콜럼버스의 이름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그의 이름 '크리스토퍼(Christopher)'는 그리스도의 사자라는 뜻이다. 물론 이것 때문에 그같은 모험을 감행한 것은 아니다. 아주 현실적인 계산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쪽 대서양을 통해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이같은 항해에 지원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던 것이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콜럼버스는 우선 포르투갈에 가서 자신의 계획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실망에 찬 그는 다시 에스파니아로 가서 당시 세력팽창을 꾀하던 이사벨라 여왕을 설득했다. 여왕이 거의 승낙을 굳히고 있었을 때 갑자기 전쟁이 일러나 승낙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다니며 설득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거의 포기하고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의 계획에 대한 지원이 결정되었다. 1492년 8월 3일 배 세척을 이끌고 항해를 떠난 그는 41일 만에 어느 섬에 도착하여, 그 섬 이름을 산 살바도르('성스러운 구세주'라는 뜻)라고 붙이고 돌아왔다. 그가 성공적인 항해를 마치고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환영해 주었다. 그런데 그를 위한 연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이 위대한 발견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주었지만 그의 공적을 시기하여 그것을 깎아 내리려는 사람도 역시 많았다.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자,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콜럼버스씨, 당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을 것이오." 그러자 콜럼버스는 입을 다문 채 달걀 하나를 집어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누구 이 달걀을 세울 분 없습니까? " 그러나 아무도 그 달걀을 세우지 못했다. 콜럼버스는 아무도 나서지 않자, 직접 나서서 달걀 한쪽 끝을 탁자에 쳐서 오므라들게 한 다음 그것을 탁자 위에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것을 누가 못 해!" 하고 외쳤다. 그러자 콜럼버스가 말했다. 자신의 항해도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사실 콜럼버스가 아니더라도 대서양의 항로는 발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한번 행한 뒤에 따라하기란 어렵지 않지만 처음 그 일을 생각하고 이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콜럼버스가 시범을 보인 후에 달걀 한쪽을 오므라들게 해서 달걀을 세우는 일이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달걀에 대한 일화는 1550년에 바사리라는 이탈리아 사람이 쓴 책에서 이미 나온다. 이 책은 젊은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 레스코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피렌체는 1296년부터 대성당을 짓고 있었는데, 성당이 큰 만큼 원형지붕도 그에 걸맞게 커야 했다. 그런데 당시 건축 수준은 그렇게 큰 원형지붕을 짓기에 역부족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대성당은 1세기 이상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브루넬레스코는 이에 대한 설계도를 이미 완성했지만 그것의 성공여부를 납득시키기 어려웠다. 그때 그가 제시한 것이 바로 달걀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는 만약 매끄러운 대리석에 달걀을 똑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이 건축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매끄러운 대리석에 달걀을 세울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커다란 원형지붕도 만들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차례로 달걀을 세우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그가 나서서 달걀 한쪽을 약간 깨어 똑바로 세웠다. 이에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자기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원형지붕을 세우고 나면 당신들도 확실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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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 |
마음을 열면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 안의정
운전병과 연탄 배달원
고등학교 선배 중에 영어를 거의 영국인이나 미국인에 가깝게 구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이 명문대학을 나온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그것도 삼류 취급을 받는 학교를 거의 말석으로 졸업한 그는 감히 대학 갈 꿈은 꾸지도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하던 차에 그는 우연히 중학생용 영어 참고서를 보게 되었고, 그 길로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 줄도 모른 채 군에 입대 했습니다. 그는 부대장의 운전병을 하게 되었는데, 그 부대장은 직무상 미군을 자주 만났다고 합니다. 하루는 부대장이 “미국의 아이비 리그에 속한 대학을 나온 놈이 영어도 제대로 못한다”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부대장은 통역으로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을 나온 장교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만 통역이 서툴렀던가 봅니다. 선배는 그래도 설마 통역 장교가 영어를 못할까 싶었습니다. 어느 날 선배가 운전하는 차에 통역 장교와 미군이 탔습니다. 통역 장교가 미군이 말하는 것을 부대장에게 통역을 하는데, 선배는 깜짝 놀랐습니다. 통역 장교의 통역에 엉터리가 많다는 점에도 놀랐지만, 그것보다도 미군이 말하는 소리가 선배의 귀에 똑똑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선배는 부대장과 둘이서만 있을 때, 통역 장교의 엉터리 통역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다시 정정해 주었습니다. 부대장은 고등학교만 졸업했을 뿐인 그의 말에 처음에는 의심하는 눈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선배의 영어실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통역 장교 대신 운전병인 그를 통역으로 데리고 다녔습니다. 선배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그 부대장의 추천으로 모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선배는 그야말로 발군의 영어 실력으로 사장을 모시고 전 세계를 제집처럼 누비고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더 큰 물에서 놀아보겠다고 이민을 떠났지만, 선배가 그처럼 영어에 능통하게 된 데에는 스스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준비와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라 생각이 됩니다. 중학교 실력 정도의 문법을 한 달 만에 마스터한 선배는 70여편이나 되는 영화의 대사를 모두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배우의 특이한 음성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공부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매주 배달되어 오는 (뉴스위크)지를 큰 소리를 내가면서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무슨 큰 기대를 걸고 공부했던 것은 아닙니다. 심심해서 영어책을 펼쳤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영어에 빨려들었고, 그래서 영어를 필요로 하는 직장에 들어간 것뿐이었습니다.
현재 모 대학교의 미술대학 교수를 지내고 있는 분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20여 년 전에도 교수, 특히 미술대학 교수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습니다. 다른 학과에는 박사 학위 소지 여부 같은 채용 기준이 있지만, 예술계는 학위만으로 실력을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루 종일 화실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습니다. 작품이 하나하나 완성되어 제법 모여지자, 그는 친구와 공동으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하루는 노인 한 분이 그의 그림을 자세히 보더니, 명함 한 장을 주면서 시간 나면 한번 찾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노인이 그림을 사려는 줄로만 알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놀랍게도 그 분은 모 대학교의 학자이었습니다. 기회를 줄터이니 강의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노인의 제의에 따라 그는 그 미술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 정권하에서 오랫동안 한국의 경제를 담당했던 N씨도 열심히 삶을 준비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역시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삼류 대학에 다니면서 버스 안에서 중학교 영어책을 크게 소리내어 읽는 주책을 부리기도 했고, 미국 사람만 만나면 겁없이 엉터리 영어로 말을 걸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체면이 있고, 버스 안에는 여대생도 있었을 터이니 중학교 영어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공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진정한 용기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아와 대학 교수로 지냈지만, 그때에도 집안 살림이 어려워 부인이 따로 연탄 가게를 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와 연탄 배달을 하던 중에 장관으로 입각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후 한국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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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승의 조선사 나들이
조광조와 정치 개혁의 드라마
* 비록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편하게 하는 데에 관계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들 모두가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임금이 마땅히 굽어보고 쫓아야 할 것이다. (황희)
기득권 세력
나와 같이 역사드라마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의 눈으로 보면 요즘의 세태가 어수선하다 못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 한심하다는 작태도 따지고 보면 이미 우리 선현들이 겪고 체험한 일들이었던 까닭으로 심판의 결과 또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책의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허둥거리고만 있는 것은 역사에 대한 외경심이 부족한 탓일 테지만, 간혹 정답 비슷한 것이 입으로는 거론되면서도 실행될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역사 앞에서는 참으로 송구한 노릇이지만 그래도 감시의 눈은 똑바로 뜰 수밖에 없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우리 사회에 성한 곳이 없을 만큼 구조적인 비리와 부조리가 만연되어 있는 것이, 나와 같은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는 기막힌 소재 제공이 아닐 수가 없다. 개혁세력은 주인공이 되고 개혁에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은 악역으로 설정하기가 안성맞춤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의지에는 처음부터 '안정 속의 라는 안일하고 위험한 부분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나 그들과의 마찰을 피해 가면서, 아니 그들과 동행하겠다는 뜻이었기에 그 개혁의 성사를 장담할 수가 없음을 자인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명예혁명을 이룩하겠다는 당당한 명분이 있었음에도 마치 대통령이 법 위에 군림한 듯한 인상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왕조에서도 기득권 세력의 결사적인 저항과 반발이 개혁의 실패를 거듭하게 하였고,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통치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개혁을 소리 높이 외쳤지만 구조적인 비리의 골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기득권 세력이란 언제나 권력의 주변에서 싹트는 것이며 권력이라는 토양에서 무성한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그의 측근 중의 측근이 입에 담았다는 말이 당시의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일이 있었다. "우리가 혁명을 한 것도 아니고 인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라면서 '개혁' 부분에 부담을 느끼고 있더라는 단서가 달린 기사였다. 그때 나는 문민정부의 역사 인식에 적이 실망하였고, 그로 인한 혼란과 고초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우려했었다. 역사를 읽으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만일이라는 가정을 정해서 마음의 위로를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가령,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란'이라는 쿠데타가 없었다면 이른바 사육신 등이 학문과 충정으로 세종 시대의 황금기가 다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위안 받듯. 우리가 말하는 소위 80년, 서울의 봄을 구가할 때, 12 . 12와 5.18과 같은 불행을 겪지 아니하고, 강력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5.16군사 쿠데타가 역사의 심판을 받으면서 혹독하게 단죄되었을 것이고, 그 수괴들에게 중형을 내렸다 해도 누구 한 사람 반발하거나, 3공화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하는 등의 넌센스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에 가까운 가정을 해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역사의 이름으로 청산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잃었던 탓으로 오늘의 청산이 더 힘들고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백악관의 직원을 25%나 감축하고, 고위직 전용의 식당을 폐쇄하더니 장, 차관급 고위관료들에게 50달러 이상의 식사초대에 응하지 말도록 조처하였고, 95년까지 3년 동안에 연방정부의 공무원 수를 10만 명 감원하여 무려 90억 달러의 예산절감을 선언하면서도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결코 남의 일로 생각되질 않는다. 그 나라에는 권력의 비호를 받는 구조적인 비리나 부조리가 싹틀 여지가 없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나카노 고지라는 사람이 쓴 "청빈의 사상"이라는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린 때가 있었다. 발간된지 5개월도 안 되어서 무려 23판 30만부가 팔렸다면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아닐 수 없다. 책의 내용만 해도 그렇다. 우리식으로 설명하면 맹사성, 유관과 같은 청백리의 일화나 한석봉의 어머님과 같은 분들의 가난하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삼았던 선현들의 지혜로운 삶을 엮은 내용이라니 '책의 해'까지 선포했던 우리의 현실을 더욱 참담하게 할 뿐이다. 부총리도 장관도 모두 24평 짜리 아파트에서 살 만큼 검소한 사람들이 청빈한 삶을 상찬하는 책을 경쟁적으로 사서 읽는다는 이웃나라의 엄연한 현실을, 60평짜리 맨션에서 아니 90평짜리 초대형 호화빌라에서 흥청망청한 삶을 즐기는 이땅의 졸부들에겐 웃기는 얘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 웃기는 얘기는 정말로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매국 5적의 증손자가 나타나서 나라를 팔아서 치부한 증조부의 땅을 여섯 건이나 되찾았는데 모두가 재판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일합병이라고 불리는 경술국치는 불과 90년 전의 일이다. 나라를 팔아서 작위를 얻고, 막대한 은사금으로 36년 간이나 계속된 식민치하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나서 겨우 50여년 동안을 숨어 살다가 그 재물을 찾겠다고 나서는 호안무치도 어지간하지만, 거기에 동조한 변호사와 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진실로 우리를 참담하게 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대명사나 다름이 없는 변호사는 그들에게 땅을 되돌려 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변하였고,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을 첩경으로 삼아야 할 판사가 그래야 옳다고 판결을 하였다면 도대체 이 나라에 역사의식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항일로 목숨을 잃은 애국지사의 유족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가르치려 하는지 물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라를 파는 매국행위가 50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법률의 보호를 받으면서 면죄될 수 있었기에 부정한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면서도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등의 가치관의 혼란을 거듭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을까. 따라서 그 변론문과 판결문이 공개되어 비록 법의 현실 인식이 상존한다 하더라도 평범한 윤리 인식을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도 역사 인식을 바로 하는 첩경일 것이다. 개혁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은 모두 드라마나 소설의 악역으로 등장되기에 안성맞춤이다. 10년이나 20년의 세월이 흐르면 오늘 우리의 현실은 대단히 흥미로운 역사드라마가 되어 다시 수치심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는 것도 또한 우리의 정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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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쥬안
다소 퇴색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방탕한 자, 호색한의 뜻으로 널리 쓰이는 말. 본래는 14세기 스페인의 전설적인 귀족 이름으로 방탕을 일삼았으며 남의 집 딸을 유괴하고 다시 그의 부친을 죽인 끝에 살인죄로 목이 달아났다는 사나이. 후세에 와서 갖가지 형태로 문학화되었는데 그를 영원한 인간 전형의 하나로 확립한 것은 '몰리에르'의 희곡 '돈 쥬안' (1865)이다. 그밖에 '바이론'의 서사시 '돈 쥬안' (1823)도 유명하며 '모짜르트'의 가극 '돈 죠반니' (1787)는 가극을 대표하는 것이 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여대생 등 수십 명의 여자를 농락한 끝에 법정에 서서 '법은 보호할 가치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명(?)판결을 낳게 한 박인수 (1955)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 '돈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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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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