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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19 호
단기 4340. 1. 27 (음력 12.09) / 발행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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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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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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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 / 윌리엄 포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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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八章 (노자 - 도덕경 : 제8장) |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증인지소오 고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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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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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 장
직역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거의 도이다. 사는 것은 땅이 좋아야 하고, 마음은 깊어야 좋고, 함께 할때는 사람이 좋으며, 말에는 믿음이 좋고, 바름에는 다스림이 좋야야 하고, 일에는 능해야 좋고, 움직임에는 때가 좋아야 한다. 대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해석
물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과도 같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잃지 않는다. 물은 어디에 담아도 물이다. 그러나 나무젓가락을 작은 컵안에 담아 보아라. 나무젓가락은 부러진다. 그때에는 이미 나무젓가락으로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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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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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만인이 싫어하는 낮은 곳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거주하는 곳을 잘 선택하여야 하며, 마음은 사려가 깊어야 좋고, 친구는 제대로 다스려야 좋으며, 일은 능률적으로 처리되어야 좋고, 행위는 때에 알맞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다투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오가 없게 되는 것이다.]
주
중인지소오: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즉, 낮고 아래인 위치를 말함. 정(바를 정): 정(다스릴 정)의 차자임, 다스림을 의미함. 우: 과실, 과오, 잘못.
해
물은 모든 생명에게 크나큰 이로움을 주지만, 자신을 항상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하고도 다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도에 가깝다고 노자는 물의 선함을 칭송하고 있다. 사람도 이와 같은 물의 선을 본받아야 한다. 즉, 남보다 아래인 낮은 곳에서 생각은 맑고 고요하고 깊어야 하며 어진 사람과 신의로써 사귈 것이며 정치는 무위로써 다스려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다툼이 없을 것이고 다툼이 없다면 잘못도 없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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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 박태견 지음
POWER 024 세계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동 공개시장위원회
미국 연방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산하기구인 연방준비제도 공개시장위원회(The Market Committee of the Federal Reserve, 약 FOMC는 통화공급과 금리 인상과 인하 같은 공개시장조작을 책임맡아 행함으로써 미국내 경제계뿐 아니라 전세계 경제계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학자들 중에는 FOMC를 산하기구로 두고 있는 FRB를 세계의 중앙은행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이 기구의 국제적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 위원회는 7명의 FRB 이사와 5명의 연방은행 총재로 구성되며 의장은 FRB 의장이 경임하고 있다. 실무적 공개시장 조작은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실시한다. FRB 이사 7명은 대통령이 임명한 뒤 미국 상원의 승인을 받아야 취임할 수 있다. 재임은 불가능하나 임기는 14년으로 안정돼 있다. 의장, 부의장은 이사들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 4년으로 재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기구는 한국, 일본 등에서는 달리 전통적으로 행정부로부터 독립성이 강해 임명권자인 대통령조차 그 앞에서는 쩔쩔맬 지경이다. 현재 의장은 1987년부터 앨런 그리스핀(68)이 맡고 있다. 그린스핀은 원래 공화당 지지자였으나 1992년 말 클린턴 대통령당선자와의 독대 후 입장을 바꿔 정권출범시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안 작성에 깊게 관여하는등 경제고문으로서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지금도 수시로 클린턴정부 수뇌부와 만나 미국의 국내외 경제정책 결정과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FOMC의 미국 내 이자율 결정 같은 공개시장 조작은 그 영향력이 단지 미국 내 경제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예로 최근 폭등을 거듭해 일본경제에 치명적 상처를 입히고 상대적으로 한국 등에게는 활로를 뚫어 준 엔고는 미국의 금리인상 여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일본 정부가 무한정 달러화를 사들였음에도 폭등을 거듭하다가 1994년 7월 FOMC가 금리를 0.5p 인상하자 엔화는 비로소 폭등행진을 멈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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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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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늦은 밤, 외과인 존슨 박사에게 존슨 박사는 할 수 없이 뛰다가 전화가 걸려왔다. 지치면 걷고, 조금 걷다가 다시 한 소년이 총을 가지고 장난을 뛰어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다. 하다가 그만 오발을 하여 생명 "어떻게 됐습니까?" 이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다. 가쁜 숨을 쉬며 담당 의사에게 소년이 입원한 병원은 50Km나 물었다. "5분전에 죽었습니다. 떨어져 최고 속력으로 차를 몰 5분만 일찍 오셨더라면 살 수 아도 족히 30분은 걸렸다. 있었을텐데." 이때 죽은 소년의 "소년은 살릴 수 있는 의사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소년 박사님밖에 없습니다. 의 아버지가 존슨박사를 무섭게 제발 빨리 와주십시오!" 전화상 노려보았다. "아니, 당신은?" 의 다급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당신이 의사였단 말이오!" 존슨 박사는 차의속력을 최고로 "아들은 당신이 죽였습니다." 냈다. 그런데 20Km쯤 갔을 때 박사가 혀를 차며 질책하자 사나이 웬 사나이가 갑자기 길을 막으며 는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었지만 차를 세워달라고 손짓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나이가 몹시 급하게 보여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존슨 박사가 차를 세우고 묻자 가슴을 활짝열고 세상을 보아라 中 사나이는 대뜸 권총을 들이댔다. "잔말 말고 어서 내려!" 존슨 박사는 뜻밖의 상황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소년의 생명이 초를 다투는데 정말 큰일이었다. "여보시오. 나는 의사요. 지금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치료하 러 가는 길이니 제발 보내 주시 오!" 애원을 했지만 사나이는 싸늘한 표정으로 박사를 차에서 강제로 끌어 내고 거칠게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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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 4장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아는가
2.극단적인 의심
앎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선 자아가 어떤 성질의 것이냐에 따라서 크게 좌우된다. 자아가 극단적으로 감각과 동일시될 경우에 성립하는 앎은 상대적인 앎뿐이며 상대적인 앎이 도달하는 곳은 회의론이다. 자아를 경험의 종합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때 성립하는 앎은 경험적 앎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아를 정신 내지는 이성과 똑같이 생각할 때 성립하는 앎은 직관적인 앎이다. 이곳에서는 극단적인 의심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누구 나를 막론하고 청소년 시절에 한번쯤은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경험을 소유한다. 정열은 넘쳐흐르지만 현재가 모순 덩어리로 느껴지며 미래는 불확실하고 과거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어수선하기가 일쑤이다. 상당히 많은 젊은이들이 "도대체 나는 공부를 무엇 때문에 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등 무수히 많은 물음을 던지며 고뇌에 찬 밤을 보내기 마련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삶 전체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허무주의에까지 빠질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무정부주의라든가 테러리즘에 가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또한 알 수 있는가? 결국 난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앎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의심할 때 우리들의 회의론자가 된다. 모든 존재자를 극단적으로 의심하는 입장은 앎의 주체를 감각적인 육체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각 개인이 아는 것은 각 개인에게 고유한 것으로서 공통의 보편적인 앎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각각의 개별적인 것들이 나에게 나타나는 그대로 이며 너에게는 너에게 나타나는 그대로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1앎의 공통적이고도 보편적인 주관인 인간의 자아가 아니라 개별적인 개인을 앎의 주체로 보며 따라서 #2보편적인.필연적인 이성이 아니라 감각을 앎의 주인으로 보므로 #3앎은 개인마다에 따라서 이럴 수도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존재자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척도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척도이다." 고대 희랍에서 앎의 문제에 대하여 회의적인 견해를 극단적으로 나타낸 사람들을 일컬어 우리들은 그들을 궤변론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아를 인정하지 않았다. 설령 자아를 인정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감각적인 자아이다. 그러므로그들 중의 한 사람은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보는 사물과, 반대로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으로 보는 사물은 다르기 때문에 일정한 한 대상에 대한 앎도 개인의 상황에 다라서 달라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인간은 특수한 상황에 좌우되는 개인을 말한다. 궤변론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앎을 성립시켜주는 공통된 자아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극단적인 경우 궤변론자들 중의 한 사람은 다음처럼 주장하였다.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다. 만일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이 예를 보면 궤변론자들이 앎의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감각에 의존했는지를 알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구름을 살펴보기로 하자. 새벽녘 아침 해가 뜰 무렵 구름은 불그레한 색을 띤다. 한낮의 구름은 희디희다. 석양이 질 무렵의 구름은 진홍빛이다. 넓은 벌판에 기차길이 있다고 하자. 두 가닥의 기찻길은 나로부터 멀어질수록 서로 가까워지다가 결국 아득한 곳에서는 한 곳으로 합치고 만다. 만일 감각을 앎의 근원으로 삼는다면 우리들이 무엇이 무엇인지를 분간할 수없게 되어 #1순간순간의 앎만이 진리이고 영원한 진리란 있을 수 없으며 #2나아가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교실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흔히 그들이 극단적인 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자 여러분, 시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그러면 강양, 지금 강양의 시계를 보고 몇 시인지 말해보게." "11시 30분입니다.." "지금 강양이 시계를 보고 11시 30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계에 나타난 수가 시간인가 아니면 그 수를 읽는 인간의 마음의 시간인가?" "시계에 나타난 수와 그것에 일치하는 인간의 마음이 시간입니다." "강양, 그러면 좀더 정리해봅시다 각자의 시계가 나타내는 수가 조금씩 다를 때는 시간을 무엇이라고 하 수 있나요? 특히 좋아하는 사람과 한시간 동안 있을 때와 싫어하는 사람과 한 시간 같이 있을 때를 비교해보게. 이때 시계상의 시간은 한 시간인데도 각각의 시간에서 앞의 경우는 매우 짧은 한 시간이고 뒤의 경우는 상당히 긴 한 시간일 텐데.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시간을 보통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누는데 과거는 과연 있는 것일까? 강양이 5살일 때의 과거를 찾을 수 있는가?"
이 경우 질문을 받은 학생은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의심에 빠지기 마련이다. 철학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한 학기나 두 학기 철학 강의를 시험삼아 들어본 학생들 중 일부는 극단적인 의심에 빠져서 학문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예도 있으며, 어떤 학생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기가 싫어서 아예 철학과는 담을 쌓고 자신의 개별 학문에만 전념하거나 아니면 상식이 최고라는 신념을 강하게 붙잡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극단적인 의심을 점차로 벗어나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극단적인 의심에서 헤어나서 못하고 계속하여 회의론자로 남아 있는 다면 그는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있어서 혼란만을 맛볼 것이며, 사회에 대하여도 역시 아무런 의미나 가치를 제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극단적인 의심을 단지 올바른 앎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치거나 아니면 참다운 앎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거치거나 아니면 참다운 앎에 이르기 위한 과정으로 거친다면 그것은 그에게 긍정적인 의미를 제공하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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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한글 바로쓰기 |
개개다(개기다)
본뜻 : 어떤 것이 맞닿아서 해지거나 닳는 것을 가리킨다
바뀐 뜻 : 원하지 않는 어떤 것이 달라붙어 이쪽에 손해를 끼치거나 성가시게 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가 달라붙어서 귀찮게 구는 것을 흔히 '개긴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개개다'를 잘못 쓴예다
개차반
본뜻 : 차반은 본래 맛있게 잘 차린 음식이나 반찬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차반이란 개가 먹을 음식, 즉 똥을 점잖게 비유한 말이다.
바뀐 뜻 : 행세를 마구 하는 사람이나 성격이 나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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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3.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제2차 포에니전쟁이 끝난 후 시간이 흐르자 카르타고는 지중해 세계의 강자로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니발 전쟁의 악몽이 생생하게 남아 있던 로마인들에게는 카르타고의 부흥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강력히 일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포에니전쟁에 종군해서 많은 전공을 세웠던 카토가 가장 강력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원로원 연설에서 카르타고에 대한 강경론을 주창했다.
"또한 나는 주장하노니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 견해에 반대하는 정치가도 많았다. 카르타고가 적극적인 침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전쟁을 일으켜 멸망시키는 것은 대의명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로마공화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외의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화국 내부의 분열과 타락을 막을 수 있고, 어느 정도 긴장감 속에서 로마가 건전하게 발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로마는 누미디아를 충동질하여 카르타고와 전쟁을 하게 한 다음 그것을 구실로 기원전 149년에 카르타고를 공격했다. 이로써 로마와 카르타고와의 제3차 포에니전쟁이 시작되었다. 카르타고에서는 초기에는 로마와의 전쟁을 피하고 항복하려 했다. 그러나 카르타고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 주전파가 권력을 잡고 카르타고성을 마지막까지 사수할 것을 결의했다. 3년 동안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기원전 146년 로마 장군 아이밀리아누스 스키피오에 의해 카르타고시가 함락되고 철저히 파괴되었다. 카르타고는 초토화되었고 남자들은 살해되거나 노예로 팔렸다. 카르타고는 이제 아프리카 속주로서 로마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다. 카토의 주장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그후 로마공화국의 역사는 카르타고의 파괴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우려했던 현상이 나타났다. 로마는 지중해의 패자가 되었지만 내부의 대립과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그락쿠스 형제의 개혁을 시작으로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후로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은 역사상 숙명적인 라이벌들이 상대의 완전 제거를 주장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그런데 로마의 예에서 보듯이 외부의 경쟁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면 대개 내부 문제가 보다 첨예화되는 것을 자주 본다. 적절한 외부의 경쟁 상대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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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
전통주
매실주
노랗게 숙성되기 전 상태의 청매실을 이용해서 매실주를 담는다. 아주 새파란 풋매실보다는 노르스름한 빛이 막 감돌기 시작한 매실로 담그는 것이 향이 좋을 뿐 아니라 입에 착 달라붙는 듯한 새콤함이 살아 술맛을 한층 돋운다. 담그는 시기는 6월 중순이 가장 좋다.
재료 - 매실 1Kg, 설탕 200g, 소주 10 컵
만들기
1. 매실은 완전히 익기 직전의 신선한 청매중에서 단단하면서 흠집이 없는 것을 골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마른 거즈로 잘 닦아 시원한 곳에 하룻밤 둔다. 2. 병이나 항아리에 매실을 담아가며 켜켜이 설탕을 함께 뿌리고, 분량의 소주를 부어 뚜껑을 단단히 봉해서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3. 6개월 정도 지나면 숙성되어 신맛이 도는 술이 된다. 완전히 익은 다음 에도 열매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4. 그대로 마셔도 좋지만 설탕이나 꿀을 넣기도 하고 물을 타서 마시기도 한다. 여름의 음료로는 물을 타 마시는 것이 이상적이다.
과일주에 탄산수와 검시럽(설탕), 얼음을 넣어 칵테일해서 입맛을 돋우는 목적으로 식전에 마시기도 한다. 또 추운 겨울밤에 뜨거운 물과 검시럽(설탕)을 넣어 마시면 온몸이 따뜻해져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당질대사에 효과가 있고 미량의 피크린산을 함유하고 있어 내장의 활동을 활발하게 할 뿐만 아니라 변비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또 여름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설사, 원기회복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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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 |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5 캄캄한 서양 반짝이는 동양
7. 제22조 군사규칙이라고?
미국은 최후의 카드를 대만 분열주의자 쪽에 던졌다. 대만해협에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서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항공모함을 대만 근방에 파견했다. 이런 짓을 하는 미국의 속셈은 분명하다. 즉 대만의 분열세력을 돕는 한편 그들의 해군력을 중국에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에 맞춰 중국은 육해공군 합동군사훈련을 시행했는데 이는 아주 정당한 것이었다. 시간과 장소 선택도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은 '대만관계법' 한 장으로는 아무 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대만문제는 다른 나라가 간섭해서는 안 될 중국의 내정문제이다. 대만은 중국의 한 부분이며 이 지구상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중국만 있을 뿐이다. 연합국도 이 점에 대해 동의한 바가 있다. 미국은, 중국과 미국이 함께 발표한 3개의 공동성명과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고 미국 패권주의의 진면목을 거리낌없이 보여 주었다. 미국은 도처에서 민주를 표방하고 있지만 대만문제에 있어서는 강권정치 수단을 쓰고 있을 뿐이다. 하나의 중국이란 정책을 위배하는 것은 미국에게도 이로울 것이다. 대만해협의 긴장된 정세는 앞으로 완화될 추세이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는 데 있어 무력금지 사항을 승낙하지 않는 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중국 측에서 이 '승낙하지 않는다' 는 것이 결코 대만 민중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해도 대만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의문을 풀지 못 한다. 이제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만일 비평화적인 방식으로 대만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이를 거부한다면 분명히 외세가 개입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중국의 입장은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중국과 대만의 분리를 획책한다면 중국의 입장은 더욱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무력사용 금지를 승낙하지 않는다는 것은 양쪽 날을 가진 보검과 같다. 대만 독립주의자들에게는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고. 외세에게는 신중한 행동을 하도록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홍콩 반환일자가 가까워지고 중국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미국의 손 안에 든 카드는 갈수록 적어지고 그 무게를 잃을 것이다. 미국이 대만문제를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은 이 카드로 중국을 혼란 속에 빠트려 약화시키고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미국과 대만 관계는 우선 중국을 제재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항공모함을 이용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것이 미국의 정치적 음모이기도 하다. 대만은 미국의 7대 무역상대국이다. '대만관계법'을 들고 나와 중국에게 시비를 걸면서 대만보호를 위한 우산을 펼쳐 주고 있으며, 대만문제를 국제화하여 중국으로부터 경제 및 군사적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리떵후이가 미국으로 달려가 연설한 것은 미국에게 혼란만 주었고 대만해협 정세에 폭탄을 던진 꼴이다. 연설 다음에 중국의 군사훈련이 있었다. 리떵후이가 얻은 것은 패트리어트미사일이고, 남긴 것은 매국노의 이름뿐이다. 민족의 이익을 팔아먹는 자는 끝이 좋을 수 없다. 미국은 리떵후이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리떵후이를 미국으로 초청하든 군함을 파견하든. 이 천고의 죄인 리떵후이는 스스로 오점 투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씻어도 그 오점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의 통일과업은 역사의 조류에 순응하는 것이기에 약간의 저항이 있다고 해도 대세를 막을 수는 없다. 홍콩과 대만문제에 있어 중국이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앞으로 내정간섭을 허용하지 않으며 중국의 일은 중국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고, 아무리 작은 땅덩이라도 조국을 분열시키려는 것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세계에 표명하기 위함이다. 중국은 일찍이 아편 판매상에게 'No! '라고 한 바 있다. 1839년 봄에 린저쉬가 대중이 보는 앞에서 2천 톤의 아편을 후문(虎門)의 생석회 탄광 속에 처넣었다. 사람을 일깨우기 위한 아편전쟁은 중국으로 하여금 후 먼탄광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류 역사의 웅장한 드라마 속에, 자본주의의 해외시장개척사에, 이렇게 치욕스런 거래로 전쟁이 일어났고 또 이렇게 참혹한 결과를 낳은 것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후문을 시작으로 중국의 부강책은 꾸준히 모색되어 왔다. 홍콩이 반환 될 이 즈음에 조국을 분열시키려는 자가 있다면 중국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No!'라고 소리칠 것이다. 자존심이 없는 민족은 발전은커녕 존재하기도 어렵다. 오만과 자존은 결코 극악무도함과 자만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민족교류사 혹은 관계사에 문명의 충돌과 융합은 항상 공존한다. 깊고 면밀한 사색 과정 없이 이루어진 덥상에서 얻어낼 수 있는 합의는 무게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No!'라고 해야 할 때 'NO!'라고 해야 'YES !'라고 할 때 굴복으로 오해되지 않는다. 'YES !'라고 할 때 'YES!'라고 해야 'No!'라고 할 때 권력을 휘두른다고 오해되지 않는다. 예의를 숭상하는 민족이 예의 때문에 속박되어서는 안 되며, 예의 때문에 피해를 봐서는 더욱 안 된다. 'No!'라 해도 좋고. 'YES!'라고 해도 좋다. 평등한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면 이는 단지 기교에 불과하다. 그 목적은 모두 더 좋은 대화와 교류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No'와 'YES'가 서로 보완되어 발전할 수 있는 학문을 익혀야 한다. 이러한 학문이 없다면 정치, 경제, 무역의 협상테이블에서 어떤 수확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잠들었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중국은 세계가 뒤흔들리고 있을 때에야 깨어났다. 세계가 깨운 중국은 이 세계에 기적을 일으킬 이유가있다. 이 기적을 깎아내리고 왜곡하며 추한 것으로 만들갰다고 설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기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중국의 소생은 세계를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중국은 12억 인구를 가진 대국이다. 중국의 적대세력을 포함한 그 누구도 중국이 전무후무한 황금시장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을 제재하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반드시 엄청난 손해를 볼 것이며 이런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정치가는 이미 정치가로서의 자격미달이다. 편견과 적대감은 일을 그르칠 뿐이다.미국은 중국과 대항할 길 대신 대화할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화는 평등의 원칙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중 . 미 관계가 한 번 더 흔들리면 쌍방 모두 이로울 것이 없다. 대만은 중국의 한 부분이라는 것과 대만문제는 중국 내정문제라는 것을 미국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미국은 냉전이 종식된 후 마땅히 국내의 산적한 문제 즉 실업, 종족 간의 이견, 무역적자, 채무, 해외 주둔군문제 및 체납 유엔회비의 해결등등의 일들에 주력했어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클린턴 대통령도 적지 않은 표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내정간섭은 안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미국의 [제22조 군사규칙]이란 소설은 미국 국무원 대변인의 말보다 세계적으로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비행사는 미치지 않고서는 전선에서 귀국할 수 없다. 또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이유로 전역할 수 없다. 자신이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의식이 또렷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격추되어, 전쟁을 회피하려 보이지 않도록 유의하라.' 계속 비행하라는 이 결론은 아주 잔인하다. 미국의 수많은 행동방식과 처지는 이 22조 군사규칙에 직면해 있는 비행사와 비슷하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헤이그는 중국이 점차 강대국이 되어가는 것을 걱정하는 정치가들은 정말 우매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언젠가는 강대국이 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이 강대국이 되는 것은 꿈이 아니다. 만일 미국이 좀더 멀리 본다면 중국을 제재하려 드는 것이 중국을 더욱 강대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2억 중국인은 제재에 대항함으로써 민족자존과 민족자강의 무궁한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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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승의 조선사 나들이
정도전의 줄 서기와 문민 독재
문민 독재
이방원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쿠데타의 생리에 따라 이미 정해진 순서나 다를 바가 없다. 골육간의 싸움에 충격과 환멸을 동시에 느낀 이성계가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자, 이방원은 형님(방과: 정종)을 임금의 자리에 밀어올리고 자신은 그의 세제가 됨으로써 다음 대의 보위를 보장받는다. 조선왕조의 창업이 이루어진 때로부터는 8년째가 되는 해였고, 이방원의 나이 31세 때의 일이었다. 정종은 왕위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우일지라도 쿠데타의 실세요, 제2인자인 방원이가 세제의 자리에 버티고 있다면 무슨 변괴가 있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세제에게 양위한다.
임금의 자리에 있은 지 3년 만의 일이었으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퇴진이었다. 이방원은 여러 차례 사양하는 단계를 두루 거치면서 보위에 올랐고, 그가 뜻하던 강력한 왕도 정치를 펼쳐 나갔으니 이른바 문민 독재의 시작이었다. 쿠데타로 인한 계층간의 괴리와 민초들의 아픈 상처를 씻어 내면서 국론을 하나로 하고서만이 새로운 태평성대를 열어 갈 수 있겠다는 그의 오랜 염원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쿠데타의 상처가 아물고 명실상부한 문민정부가 수립되자면 줄잡아 30여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이성계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면서 집권의 길을 트고, 정종, 태종을 거쳐 명실상부한 문민정부라 할 수 있는 세종이 보위를 이어 받들 때까지 28년의 세월이 필요했듯이, 박정희 장군이 주도한 군사쿠데타에서 제5, 제6공화국을 거쳐 명실상부하나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30여년이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이 그러하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태종(방원)의 재위 기간은 18년, 정말로 파란만장한 시절이었다. 그는 세자이자 큰아들인 양녕대군이 새로운 태평성대를 이끌어 갈 왕재가 아니라는 판단하에 몸소 대죄를 내려서 도성 밖으로 내쳤고, 외척이 성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통치 이념을 세우면서는 민무질, 민무구 등 친처남 넷을 귀양에 처했다가 그것도 부족하여 사약을 내리기까지 했으며, 나라의 국구요 자신의 사돈인 심온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자진을 명하는가 하면 자신의 그림자나 다름이 없었던 총신이자 친구인 이숙변까지 원지에 유배하였다. 모두가 세종으로 하여금 안심하고 정사에 임할 수 있도록 한 특단의 조처였다. 태종이 예상보다 일찍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 상왕으로 군림한 것은 소위 말하는 임금 자리의 공백 기간을 극소화하면서 세종의 치세를 초기부터 다져 놓겠다는 신념의 일단이었지만, 나이 어린 세종에게 국방과 군사의 일을 맡기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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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은 다음에는 홍수야 지든 말든
나중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 우선 신나는 대로 놀고나 보자 - 이런 생각은 누구나 갖게 마련인 것이지만, 명색이 일국의 왕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왕위에 오른 것은 18세기 후반으로 이미 대혁명의 기운이 차츰 짙어 갈 무렵이었다. 그는 봉건제 말기의 왕답게 철저히 무능했으며 정치를 싫어하여 규방에 틀어박힌 체 '샤톨루'부인, '퐁파두르'부인, '뒤 바리'부인 등의 정부와 놀아났다. 게다가 이들 정부의 말을 따라 공연한 전쟁에 개입하여 패배 당하는가 하면 식민지를 잃기도 했다. 정치하는 꼴이 너무나 엉망이어서 국민들 사이에는 '이대로 가다가는 대혁명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러한 소문이 귀에 들어와도 왕은 예사로 "내가 눈을 감기 전에는 이런 상태가 계속될 거다. 다음에는 태자가 어떻게든 잘 해 주겠지. 나 죽은 다음에는 홍수야 지든 말든 알 바 아니지"라고 뇌까렸다 한다. 그의 뒤를 이은 '루이' 16세 또한 암군이어서 결국은 대혁명이 일어나고야 말았으며 '루이' 16세는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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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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